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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이런 말이 나도는 이유는 뭘까? 아마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새로운 신분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무리 좁은 길이었다고는 하더라도, 모두에게 열려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이 달라지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사회적 신분도 달라진다. 오죽했으면 부가 아니라 신분을 대물림하는 시대라고 말하는 정치인도 있을까?
학원 강사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실제로 아이의 성적도 달라진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실력이 늘지 않는 아이는 외국으로 보내 학교를 마치게 한다. 물론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 영어 하나만 제대로 배워 온다면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 것이다.
정아은 작가의 <잠실동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잠실이라는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늘 사회적 핫 이슈가 되는 교육 이야기가 그려진다.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잠실이지만, 잠실을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장소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게 다가온다.
강북에서 학원 강사를 할 때 만났던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맞벌이를 하거나, 중소 자영업자가 많았기에 책에서 묘사한 엄마들처럼 아이들의 교육에 쏟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저 학교나 학원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는 정도이거나, 혹은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보니 학원에 맡기는, 마치 보육원처럼 생각하는 부모님들도 있었다. 이런 부모님들에 비해 초등학교, 아니 그 이전부터 수업 끝날 시간에 맞춰 학원에 가 아이를 다음 학원에 데려다주고, 과목마다 팀을 짜서 수업을 듣게 하고, 학원 수업만으로 모자라 학습지나 과외를 붙이는 강남(책에서는 잠실) 부모님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강남 부모들은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 존재일까? 글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모가 되다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아이를 틀에 박힌 공부 기계처럼 만들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헬리콥터맘이 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신만의 노력으로 최정상의 위치에 올라가는 이들보다 이제는 부모의 재력으로, 부모의 신분으로, 부모의 인맥으로 너무나 쉽게 그런 자리에 오르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내 자식에게 그런 길을 열어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문제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물론 하는 행동은 사람마다 천양지차이지만). 강남에 사는 부모나, 강북에 사는 부모나, 잘 사는 부모나, 못 사는 부모나 다 자식 잘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 복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교육의 정상화, 아니 사교육을 넘어서는 공교육이 세워져야 교육의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도 언뜻 볼 수 있듯이, 교장이 바뀌면 학교에서 추진하던 프로그램들이 대폭 변경된다. 교사들은 쓰잘데기 없는 행정업무에 제대로 수업을 준비할 시간도 없다. 학부모에게 치이고, 윗사람에게 치이다 교육자의 사명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교사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이 개선되어야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고, 이런 환경이 이루어져야 사교육을 넘어서는 공교육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잠실동 사람들>에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 이 시대의 슬픔이 가득 담긴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 중에는 결코 되고 싶지 않은 내 미래의 모습이, 우리 모두가 바라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에서, 이런 사회에서 그저 도망치듯 전학을 가는 것이 결코 올바른 답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 답인지, 우리 모두 곱씹어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