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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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카오가 감청 거부 방침을 밝혀 온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감청, 검열, 모니터링이라는 말을 들으면 군사 정권 하에서 이 땅을 억압하던 인물들이 떠오른다. 그러기에 일반인들이 느끼는 거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검열에 대해 에코는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검열과 침묵>에서 에코는 두 가지 검열에 대해 이야기한다. 침묵을 통한 검열과 소음을 통한 검열. 언뜻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칼럼을 읽어보면 그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예전에 우리나라 미디어들을 보면 뭔가 숨겨야 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별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을 오히려 크게 부각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음의 검열이다.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에만 관심을 갖는 습성이 있다. 정작 중요한 사건이나 일은 그 소음에 묻혀 어떠한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사그라진다.

 

<검열과 침묵>은 에코의 칼럼 14편을 묶은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칼럼이었다. 검열이라는 단어가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시대에 드러내놓고 자행되던 시기를 보냈던 세대였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14편의 칼럼을 보면 에코의 진면목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철학, 신학, 기호학, 천문학, 미학 등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가 있기나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다방면에 걸친 그의 지식이 칼럼 곳곳에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읽는 이가 괴롭다. 칼럼 하나하나가 무슨 입문서 같다.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페이지 한 장을 넘기는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 제목이기도 한 <적을 만들다>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파키스탄 택시 기사의 우리의 적은 누구냐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에코의 사유를 그린 칼럼이다. 국가나 사회적 차원에서 만들어낸 유대인, 흑인, 마녀라는 적에서부터 개인적 차원에서 만들어낸 적까지, 우리는 본성적으로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적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개인적 의미에서는 적보다는 차라리 라이벌이 필요한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에코가 예로 든 장 폴 사르트르의 <닫힌 방>에서처럼 3명의 남녀가 갇혀 서로가 서로에게 끔찍한 지옥이 되는 상황은 결국 우리의 본성이 악하기에 적을 만들 수밖에 없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속담 따라 살기>는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칼럼이다.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태어난 행복 공화국. 이 나라 국민들은 속담에서 말하는 대로 살지만 속담이 주는 지혜와는 완전 반대로 혼란스러운 삶을 이어갈 뿐이다. 다소 엉뚱한 듯한 이 칼럼에서는 수많은 속담을 끌어들인 에코의 언어적 유희를 느낄 수 있다.

 

에코의 작품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했을 때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 어렵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음미할 때 독자가 느끼는 쾌감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에코를 향해 당신을 손을 뻗어보라. 그의 열정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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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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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 <오후 네 시>를 읽고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떨까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번에 나온 작품 <푸른 수염>은 샤를 페로의 잔혹 동화 <푸른 수염>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을 읽기 전에 푸른 수염이라는 동화를 찾아서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원작과는 달리 노통브의 손을 거친 작품은 어떤 모습과 색깔을 가질지 궁금해서였다.

 

, 이렇게 작품이 바뀔 수 있구나, 이것이 작가의 능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탄생한 푸른 수염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작가 특유의 비꼬는 듯 냉소적인 유머와 위트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 녹아내린 채 독자들이 책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마법을 펼쳐낸다.

 

사실 8명의 여자를 살해한 돈 엘레미리오와 살인자인줄 알면서도 그와 함께 하는 사튀르닌, 둘 모두 알쏭달쏭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살해한 8명의 여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9번째로 동거하기로 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 살인마인줄 알면서도 함께 동거하며 그가 저지른 살인을 부인하고 싶어 하는 여자. 이 책의 한 부분은 분명히 이 둘의 사랑을 그려낸 것인데,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랑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사랑은 존중을 전제로 하오. (p.79)

 

그렇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존중은 사랑의 기본 전제 조건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에 자기중심적이고 억압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비틀린 사랑. 그 밑바닥엔 믿음 대신 불신이 존중 대신 경멸이 도사리고 있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또 하나는 금기이다. 돈 엘레미리오는 9명의 여자들에게 단 하나의 조건만을 말한다. 암실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하지만 8명의 여자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렇듯 금기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인가 보다.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든 기어이 하고 마는.

 

아멜리 노통브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모습, 다음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그려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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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
정재영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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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렸지만 어렸을 때는 여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려고 해야 모를 수가 없었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하면 굿을 하는 집들이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기독교인인지라 굿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몰래 가본 적이 있었다. 소리에 맞춰 방울을 단 칼을 흔들며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상당히 낯설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정재영의 소설 <바우>는 저자의 단편 8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지금은 보기 힘든 옛날 일들이 많이 있었다. <>라는 작품에 묘사된 산당굿은 지금은 자주 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기에 충분할 만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또한 <바우>에서 나오는 동짓달 팥죽도 어렸을 때 즐겨먹던 팥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팥이 좋다는 이야기에 팥죽 전문점이 생기는 추세지만 그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팥죽만 할까? 특히 빼대기라 불리던 고구마 말린 것을 넣은 팥죽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풍미를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8편의 작품들에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혹은 변해버린 옛 정취가 많이 담겨있다. 또한 문학평론가 신호님의 말처럼 이 작품들에는 토박이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도 있지만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표현들이 너무나 정겹게 다가온다.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동지섣달 꽃 본 듯이>에는 40년 만에 만난 동창들 사이에서 보여주는 따뜻함과 푸근함이 넘쳐난다. 요즘 밴드를 통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경험 때문일까?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함께 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 편안했던 시간들을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길과는 완전히 달라 보이는 작품도 있다. <그 여름의 잔해>에서 보이는 토종벌과 양벌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우리네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몸통도 크고 색깔도 완연히 다른 양벌이 토종벌의 벌통을 빼앗으려 드는 모습은 우리네 서민의 삶을 빼앗으려 드는 무언가가 떠오른다. 결코 함께 살고자 하지 않는,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들기만 하는 그런 존재.

 

작가의 말처럼, 소외된 인간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살피는 길, 그 길이 바로 우리가 함께 사는 길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길이 결코 작가의 길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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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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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다. 순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순정 :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pure love).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책에서 느낀 감동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서수철 할아버지와 오순덕 할머니의 평생을 이어온 사랑, 순정. 영혼으로 이어진 그들의 삶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먹먹하고 애잔한 색상으로 물들이고 말았다. 나라면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사랑, 순정에.

 

두 사람의 사랑이 따뜻함과 애틋함을 불러일으키면 일으킬수록 또 한편에서는 눌러도 눌러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던 일제의 만행은 아무리 용서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아니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으니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 일본의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보이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더 분노했던 것은 우리의 역사를 잊어버린 바로 내 모습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하고 힘들었던 삶, 그 삶을 후세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참한 마음으로 알려주었던가? 소록도, 그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킨 지역으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아름다운 장소로만 생각했던 그 곳.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일제의 핍박 속에서 실험도구로 사라져 갔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 제목, 그 날은 언제일까?

일제 강점기 하의 그 날,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아픔으로 뒤덮인 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날,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의 슬픈 역사를 알리고자 했던 매일 매일의 그 날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서수철 할아버지와 오순덕 할머니가 다시 만나는 그 날,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그 날, 선조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어린 삶을 모든 후손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그 날을 말하는 걸까?

 

욕봤다” “욕봤소


아마 내 평생에 결코 잊지 못할 단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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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 THAAD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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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진명님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실과 소설 속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다른 모든 시간과 공간은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것을 허구의 소설로만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정말 팩트로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이전부터 많이 들었던 얘기다. 국가 경제력이 G2로 올라서면서 중국은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위안화로 대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국은 적자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자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며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달러 약화로 인한 미국 경제 및 세계 경제의 동반하락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또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의 묵인 하에 우경화의 길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암시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정말로 현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변호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3년 째 취직도 하지 못하던 최어민은 식당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김윤후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개업을 한다. 세계은행 직원인 리처드 김의 의뢰를 받아 그의 어머니를 보살피던 최어민은 미국으로 돌아간 리처드 김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이를 파헤쳐달라는 어머니의 피맺힌 절규에 결국 미국으로 건너간다. 최어민은 미궁에 빠진 리처드 김의 살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MD(미사일 방어망)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싸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싸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한반도에 설치하면 중국의 대륙간탄도탄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싸드를 설치하면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설치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진다. 두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소설 속 태프트 리포트도 상당히 흥미롭다. 채동욱,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문수, 윤상현 등 오늘날 야당과 여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차기 대권에 대한 가능성을 분석하면서 각 인물들의 이전 움직임과 성향을 분석한 내용이 꽤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미국은 과연 우리나라의 영원한 우방일까? 일본의 우경화를 은근히 지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 당시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중국은 또한 어떨까? 폐쇄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인 밀려드는 자유화의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의 예측처럼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중국은 북한 대신 우리나라를 선택할 수 있을까? 중국이나 미국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영원한 타인일 뿐이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겐 어떤 지혜가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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