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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시절 이후 이미 수없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나도 고등학생 조카를 보면서 ‘공부해야지, 이놈아’라고 말하는 그저 그런 소위 기성세대가 되었다. 한 때 학원 강사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고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다시 떠올려봤다. 물론 그 당시에도 대학이라는 커다란 관문 앞에서 모두들 공부에 치여 살았다. 친구들을 괴롭히던 아이들도 있었다. 성적이 좋은 아이에게 더 많은 호의를 베푸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성적으로 판단되기도 했다. 오죽 했으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하지만 그 당시의 우리들에게는 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이 계셨다.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이 함께 하셨다.
레너트 피콕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성적이 우선이고, 대학이 우선인 사회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면 우리 아이들에게 남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성적에 관한 이야기를 빼고 과연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알게 모르게 학교에서 괴짜로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들을 따돌리는 아이들은 가해자일까,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일까?
18번째 생일에 자신의 친구였던 애셔를 죽이고 자살을 결심한 레너드 피콕, 책을 펼치고 읽은 첫 장면의 느낌은 살인과 자살을 말하지만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라기보다 오히려 조금은 가볍고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레너드의 아픔이 곳곳에서 밀려들었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던 레너드의 고통이, 분노가 나에게도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하지만 고통과 분노 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레너드의 모습과 레너드에게 관심을 쏟아 붓는 실버맨 선생님의 모습, 레너드를 알아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월트의 모습에서는 고통과 분노를 가라앉히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애셔와 얽힌 이야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학원 폭력을 파헤쳐 들어가 보면 가해자인 아이도 어느 면에서는 또 다른 피해자였다. 애셔의 고통이 레너드의 고통으로 전이되었듯이 피해자였던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용서해줘’라는 제목도 결국 이 모든 것이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우리 어른들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표현은 아닐까?
따돌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레너드는 딴 나라 세상의 아이가 아니다. 바로 내 주변에 있는 아이이다. 레너드에게는 자신을 이해하는 실버맨 선생님이 있었기에, 또한 정말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월트(이 둘을 보면 친구 관계는 결코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가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에 다시 돌아설 수 있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아이들에게 월트와 같은 바로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거운 주제이지만 무겁지 않고 때로는 유쾌하기까지 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실버맨 선생님의 조언으로 레너트 피콕이 쓴 미래의 아내와 딸 등에게서 받은 편지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도 사용해 볼만한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아무쪼록 이 책이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아이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