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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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문제, 고민거리, 심사숙고해야 일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네이버에 물어봐이다. 아주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자신의 인생, 경력, 인간관계 모든 일들에 대한 답을 네이버, 다른 네티즌의 자문을 통해 찾는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히 늘어난 같다.

 

 

이뿐 아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우리 시대의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SNS 관련이 있다. 누군가의 의견이 올라오면 트위터, 페이스북에 자신의 의견을 올린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가 줄이나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올린다.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깊은 사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의견에 대한 여론을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만 말할 뿐이다. 자신에 의견에 반대하거나 여론에 반하는 댓글이 달리면 흥분해서 다시 덧글을 달지만 막상 논리적으로 말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저 다른 이의 의견을 되풀이하거나 단순한 욕지거리일 뿐이다.

 

 

이는 어떤 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추론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팩트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생각의 시대에는 팩트 뒤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생각의 도구가 있었다. 바로 아르케(원리)이다. 아르케는 관찰과 사고라는 날개로 날아오른다. 추론(가추법) 아르케의 개인 사고의 방법이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생각의 시대에서 사용했던 5가지의 생각의 도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모스(), 레토리케(수사). 다섯 가지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생각의 시대의 네이버이다. 아니 네이버 검색이 결코 좇아올 없는 탁월한 기능의 도구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대로 지식의 홍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내게 정말 필요한 지식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시대이며, 지식이 넘쳐나기에 오히려 지식을 활용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을 만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5가지 생각의 도구이다. 앞에서 추론에 대해 잠시 살펴봤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팩트를 보는 눈이 아니라 행간에 숨은 진실을 찾아내는 생각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이끌어주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어떠한가? 오늘날의 시대는 남들과 별반 다를 없는 생각을 가진 이들을 원하지 않는다. 기획서를 작성하든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든지, 신제품을 개발할 아이디어를 제공하든지 간에 남과는 다른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찾는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로 메타포라(은유) 통해서이다. 생뚱맞은 같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렇구나 라는 긍정의 끄덕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사용하는 것이 은유이기에 그렇다.

 

 

얼핏 보기에 철학적인 개념인 담긴 어려운 책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버려도 같다. 저자의 말처럼 책은 이론서가 아니라 도구별로 훈련법을 공개하여 현실적으로 활용할 있게 만든 실용서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다섯 가지 생각하는 도구를 통해 당신의 생각이 올곧이 서는 경험을 해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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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1
정병철 지음 / 일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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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선배들이 하던 얘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신문을 반드시 행간을 읽으라고. 요즘 말로 팩트(fact) 읽어서는 진실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행간에 담긴 의미와 뜻을 읽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언론은 팩트라는 틀만 제시할 진실을 올바로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프레임, 틀이라는 기본 의미에 더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 고정관념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실 혹은 생각의 틀에 갇혀 버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있다. 정병철의 소설 <프레임> 바로 어떤 틀에 갇혀 버린 관점, 사고방식에 대해 고발하는 이야기이다. 책은 표지부터 도발적이다. 검은 건물 혹은 도형 속에 빨강 , 노란 눈들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디자인은 얼핏 보기에도 섬뜩한 느낌이 든다. 표지에 담긴 눈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프레임은 나라를 뒤흔들었던 여대생 살인 사건을 토대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신문사 기자인 정부장의 비밀파일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과연 여대생 살인 사건과 후에 벌어진 형집행정지 처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작가 나름의 소설적 상상력을 펼쳐 독자에게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라는 책이 떠올랐다(<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소설 형식이 아니다. 사건 전체를 조명해 있게 만든 기록물이라고 있다). 책은 언론, 경찰, 검찰, 여론 등이 사건의 진실을 방향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소설을 읽다보면 무언가 께름칙한 느낌이 드는 것만큼은 부인할 없다. 과연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걸까?

 

소설 표현을 빌리자면, 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법정이 다른 법정인 여론 법정의 유죄추정의 원칙에 휘둘려 결국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유죄 판결로 몰아갔고, 여론의 선정주의와 상업주의가 전체가 아닌 진실의 일부분만을 전달하면서 여론의 공분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선입견, 프레임이 코앞에 있는 진실조차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견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소설 사건의 진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프레임이라는 의미 자체가 말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도 그렇고,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에서도 그렇고, 법정이나 검찰, 경찰, 언론, 여론 등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결코 움직이지 않는 코끼리(프레임에 나오는 표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눈앞에 진실이 있음에도 자신의 밖에 있다면 결코 그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표지 디자인의 눈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갇혀 있는 눈들은 오로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갇혀 있는 눈들, 아니 우리 모두의 눈들이 밖의 것들을 보기 시작할 수만 있다면 진실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 그저 틀에 박힌 말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임을 벗어난다면 우리의 가운데서 진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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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김호경 지음, 전철홍.김한민 각본 / 21세기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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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감동에서 오는 암울함이라는 아이러니

 

아직 영화 <명량> 보지 않았다. 봐야지 하면서도 어쩌다 보니 1700만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명량> 무엇을 그려 놓았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있었을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없었다. 그러다 영화보다 먼저 책을 접하게 되었고, 결국 감동에 함께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위대하다. 2014년에 들어서 이순신 장군이 갑작스럽게 위대한 인물로 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 들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혹자는 명량 신드롬을 얘기하면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끝없이 터져 나오는 시대적 상황에서 도저히 찾을 없는 참된 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이가 바로 이순신이기에 사람들이 그처럼 열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책을 읽고 그렇게 감동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솔선수범하는 리더의 모습을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볼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갖고 싶지만, 아니 가져야 하지만 결코 가질 없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이순신 장군이라는 하나의 샘에 자꾸만 빠져들게 한다.

 

책을 보면 일본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는 전략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 어린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출정을 앞둔 새벽녘에 어머니의 위패 앞에서 하늘로 피어 오른 연기에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이순신. 승리 아니면 돌아올 없는 길을 준비하는 그이기에, 아니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려는 그이다 보니 어찌 눈물 방울 흘리지 않을 있었으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모습 자체가 너무나 감동이었다. 이순신이라는 참된 명의 리더가 이렇게 제각각의 생각과 삶을 찾으려는 이들을, 두려움에 자포자기한 이들을 하나 되게 하였다. 두려움을 이기게 하였다. 자신과 지아비의 죽음마저 이기게 하였다. 하나됨을 이끄는 , 그것이 바로 리더의 위대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위대한 리더가 없는 우리 시대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여하튼 영화에서 표현한 <명량> 어떨지? 아무리 바빠도 빠른 시일 내에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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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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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으로 세상이 따뜻해지고, 삶이 아름다워진다. 이렇게 중요한 사랑의 결실로 이루어진 것이 결혼이다. 하지만 사랑의 결실인 결혼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지 못하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어느 일방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람 모두의 잘못일까? 아니면 애초에 만남이 잘못된 것일까?

 

헤르만 헤세, 우리의 삶에 수많은 영향을 끼친 위대한 작가이다. 학창 시절에 헤세의 작품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을 읽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지금도 가슴 한견이 아려온다. 그만큼 헤세는 수많은 독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단한 인물이다. 이런 헤세는 어떤 사랑을 했을까? 헤세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책을 접하기 전까지 헤세의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헤세의 전기나 자서전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나 궁금했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천재의 사랑은 어떠했을까? 왠지 모르게 가슴 시린 너무나 예쁜 사랑을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헤세는 마리아 베르누이, 루트 벵거, 니논 돌빈이라는 명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했다. 아니, 헤세가 사랑한 여성은 이들 외에도 많았다.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은 이들이 명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번의 결혼이 문제가 될까? 종교적 신념 이혼에 반대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헤세의 입장은 보통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극단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책을 보면 헤세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이와의 사랑, 결혼보다 자신의 , 내면, 창작이 훨씬 중요했다. 헤세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헤세의 생각과 그를 사랑하는 여인들의 생각이 같을 수만은 없었다. 헤세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 하고, 그를 포용하려고 하다가도 헤세의 180 돌변하는 모습에 결국 사랑을, 결혼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또한 헤세를 사랑한 여성에게 결혼은 오랫동안 꿈꾸어온 이상이었지만 헤세에게는 막다른 골목에서 이루어진 체념일 뿐이었다. 엘리자베트 루프의 글을 보면 헤세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있다.

 

당신은 사랑할 모릅니다. 아니, 사랑을 없습니다. 에오바르(헤세의 분신)! 당신은 타오르기만 , 나를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니까요.(p.240)

 

헤세는 분명히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다. 하지만 다른 이를 따뜻하게 해주는 장작불은 아니다. 그저 자신만 태우는 호롱불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헤세가 자신의 말처럼 인간을 사랑할 없는 존재였을까? 글쎄라는 의문이 든다. 헤세는 명의 부인을 사랑했다. 단지 자기가 사랑할 있는 만큼만 사랑했을 뿐이다. 자신의 본질적 자아가 구속받지 않는, 진실하고 아름답지만 자유스러운, 그런 사랑을 했을 뿐이다. 사랑의 정도가, 방법이 다르다고 인간을 사랑할 없었다고 말할 있을까?

 

책은 헤세가 사랑한 명의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헤세 자신의 생각과 심리상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주변 인물들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헤세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배경과 속에 투영된 헤세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책은 헤세의 작품 해설집이기도 하다. 헤세라는 위대한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이 어떠했는지, 또한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어떻게 작품에 실렸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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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이란 무엇인가?
제프리 베네트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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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출신인 나로서는 상대성 이론은 넘어서기 힘든 벽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문과 출신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그런 상대성 이론을 쉽게 읽을 있는 책이 있다는 말에 차례의 고민도 없이 선택한 책이 바로 <상대성이론이란 무엇인가?>, 책은 저자가 여름 학교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면서 일반인들에게 각인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상대성 이론과 상충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일반인들이 이를 쉽게 이해할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지은 책이다.

 

내가 책을 읽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의 말처럼 책에는 상대성 이론이 나름 쉽게 설명되어 있었지만, 세월의 탓이라고 해야 하나 어렸을 때와는 달리 이해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보니 페이지를 넘기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읽은 과학 관련 서적은 이번이 처음인 영향도 같았다. 예로 0.19 근호를 씌운 값이 0.44 된다는 내용을 가지고 한참이나 헤매었다. 루트 값보다 값이 나오는지 인터넷을 뒤져 후에야 이해를 있을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같다.

 

그렇다면 책의 설명이 저자의 말과는 달리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들여다보니 분명히 책은 쉬운 얘기로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기에 가장 기초적인 과학 지식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있을 것이다. 책이 내게 어려웠던 다른 이유는 저자의 말처럼 새로운 상식을 수립하는 데에는 그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아래에 대한 개념을 세우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다 보니 역으로 과학 관련 서적들이 계속해서 찬밥 신세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읽게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었다는 , 아이들이나 한참 공부하는 학생들이 과학의 기본 원리를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배울 있게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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