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소녀

그림자 소녀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4년 7월

1980년 12월 23일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비행기가 몽테리블 산과 충돌하면서 탑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사망한다. 단 한 명의 갓난아이만을 제외하고. 이렇게 살아남은 아이를 자신의 손녀라고 주장하는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손녀라고 주장하는 할아버지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 아이는 누구의 손녀일까?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살아남은 아이, 릴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비행기 추락 장면과 18년 만에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를 깨달은 탐정 그랑둑의 탄식과 함께 시작된다. 소설은 18년 간 릴리가 누구의 손녀인지를 추적한 그랑둑의 일기를 통해 지나간 과거를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시점에서 릴리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마르크, 릴리가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말비나 등 주변인물의 행보를 그리면서 서서히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이 소설은 여러 장치를 통해 독자의 눈길을 책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먼저 그랑둑의 일기를 조금씩 읽어나가는 마르크의 모습을 감질나게 그려내면서 18년간 그랑둑이 찾아낸 진실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서 결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또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무언가 수수께끼와 같은 비밀들을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독자가 각 인물들의 비밀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그 외에도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움 사랑 이야기 등이 이 소설을 더욱 빛나게 한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결론은 전혀 새로운 반전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중간정도 읽었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다만 큰 그림은 그려졌지만 과연 이를 어떻게 세밀하게 풀어낼 것인가라는 점이 궁금했는데 작가다운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점만 밝혀두고자 한다.

이 책은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부분을 차지한다. 그랑둑의 사랑, 마르크의 사랑, 엄마의 사랑.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의 사랑은 방향을 잘못 잡은 듯이 보이고, 누군가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랑이고, 누군가의 사랑은 가슴 시리도록 너무나 아름답다. 제각각의 사랑이지만 그런 사랑이 있기에 인간의 광기, 탐욕,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 끝이 너무나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 오늘을 위해 밝히는 역사의 진실
김태훈 지음 / 일상이상 / 2014년 7월

<명량>을 본 관람객이 15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명량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일견에서 제시하는 명량 신드롬의 이유는 참된 지도자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고 한다. 세월호 사건, 윤일병 사건 등 올 한 해 수많은 사건들이 터졌지만 이를 제대로 책임지는 지도자가 없는 시대이기에 참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명량>에 나오는 이순신은 신비로움을 벗어버린 인간적인 모습의 고뇌하는 이순신이다. 우리는 어찌 보면 수많은 신격화에 의해 이순신 장군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명량>이라는 영화만큼 이순신 장군을 신화가 아닌 사실로 보여주고 싶어 한 책이 있다. 바로 김태훈의 저서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이다. 전작 <이순신의 두 얼굴>의 개정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이순신 장군을 사실에 근거해서 살펴본다.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7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의 작품이지만 책을 읽는 어려움은 전혀 없다. 중간 중간에 사진이나 지도 등을 삽입하여 이해도를 높였고,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그 당시의 주변 환경이나 정세 등을 설명하였으며, 필자의 역사적 추정을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사실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고, 전략적 사항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육전에 대해 설명한 ‘삼가 육전을 아룁니다’ 코너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읽고 흥분했던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임진왜란 당시의 무능력했던 선조와 조정의 모습을 또 다시 보게 되니 답답해지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 답답함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시대의 답답한 모습과 연결되기에 더욱 깊어진 것 같다. 임진왜란 때나 대한제국 초기처럼 열방의 이권에 둘러싸여 있지만 자신의 기득권만 챙기는 모습이 넘치는 이 땅의 지도자들을 보면 이순신 장군과 같은 지도자가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잘 못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한다. 거북선이 과연 이순신 장군의 발명품인지? 이순신 장군이 모든 해전에서 승리하였는지? 조선 수군의 전력과 일본 수군의 전력은 어떠했는지? 전문 학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쓴 책이기에 혹자는 과연 저자가 얘기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여부는 이 책을 읽어보고 각자가 직접 판단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토대로 복원한 이순신 장군이 우리처럼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인간이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불굴의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참된 영웅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안중근, 아베를 쏘다

안중근, 아베를 쏘다
김정현 지음 / 열림원 / 2014년 8월

너무나 송구스럽고 부끄러웠다. 물론 작가의 상상 속에서 다시 살아난 안중근 의사이지만 이 시대의 모습이, 후손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다시 그 몸을 일으켜 아베를 저격하였을까?

일본 아베 정권의 행보를 바라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뭐라 말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당연하다는 듯이 신사참배를 하고,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고노담화’를 흠집 내고 부인하고,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모습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그럴 것이다.

다시 살아난 안중근은 이토의 죄 15가지를 고발했듯이 아베의 죄 15가지를 고발한다. 15가지라는 죄목에서 보듯이 1909년의 이토나 2014년의 아베는 서로 다른 종류의 죄인이 아니다. 다만 이토는 그 죄악으로 인해 안중근 의사의 총을 맞고 죽었지만 아베는 아직 그 잘못을 고칠 시간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한 반성과 용서를 비는 마음을 보여 달라는 것, 바로 그것이 작가의 마음이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의가 아닐까 싶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재판에 임하는 안중근 의사의 당당한 태도와 논리 정연한 진술, 동지를 아끼는 마음 등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에 더해 이 책을 읽으며 더 가슴 저리게 다가왔던 장면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와 아내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의연한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대의에 의한 죽임이라고는 하더라도 항소조차 포기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어머니, 그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더 큰 길을 나가라고 격려하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안중근 의사라는 영웅이 탄생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뿐 아니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던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이 재판에 임하는 모습도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너무나 당당했던 우덕순의 진술. 이런 선조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자유라는 커다란 선물을 가지고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리라. 작가의 말처럼 이들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지만 나조차도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음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2014년, 우리는 선조들의 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주권 국가에서 산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열강들의 모습은 조선시대 말기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말도 솔잖게 나오는 시대이다. 미국 뿐 아니라 우경화로 치달리는 일본이나 중화제일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채 그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국 등의 국가들은 우리를 둘러싼 이들의 모습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톱을 숨긴 채 우리에게 늑대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더라도 작가의 말 중에 나오듯이 평화를 외쳤던 안중근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의기 높은 이, 그런 이들이 더욱 많아지는 대한민국을 마음속으로 힘껏 그려본다.

기적의 고전 독서법

기적의 고전 독서법 -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모든 길은 고전에 답이 있다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4년 9월

요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냥 책을 읽는 그 자체에만 중독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내용도 한 번 보고 쑥 지나가니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고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주는 부분도 없었다. 그저 읽는 행위에 만족하는 책읽기였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평소 고전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책을 넘긴 첫 순간부터 책을 덮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실 너무 놀라웠다. 책 내용과는 별개일 수도 있지만 하루에 10권의 책을 읽고 요약한다는 저자의 독서법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하루에 한 권 이상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저자의 책 읽는 법 자체가 이미 경이로움이었다.

책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저자는 일반도서와 고전의 차이를 먼저 설명한다.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고전을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고전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고 높이 평가하는 책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고전의 특징은 책을 읽는 이의 사고를 넓혀주는 책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읽는 고전과 일반실용서의 차이는 결국 전략과 전술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일반실용서가 눈앞에 보이는 단순한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전술적인 정보와 지식을 알려준다면 고전은 우리의 삶 전체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전략적인 지혜와 올바른 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렇기에 일반도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접해야 할 책이 바로 고전이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무턱대고 읽으면 안 된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어른처럼 고추장에 나물을 비벼서 먹을 수는 없다. 아이는 아이에게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각자의 독서 수준에 맞춰서 책을 선택해야 한다. 아직 고전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먼저 책 읽는 습관부터 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하면 실패한 확률이 더 크다. 그렇기에 자신의 독서 수준을 파악하여 내게 맞는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고전을 읽는 자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고. 고전을 통해 끝없이 삶을, 사람을, 인생을 깊이 생각하기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아는 자가 어찌 실패할 수 있느냐고. 저자의 주장 하나 하나가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왔다. 책을 읽어도 아무런 변화 없는 내 삶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저자가 말하듯이 1년이라도 고전에 온전히 미쳐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넘쳤다. 위대한 삶이라고 할 것 같지는 없어도 후회 없는 삶, 고전을 통해 그런 삶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 ㅣ 피터 드러커 라이브러리 4
피터 드러커 지음, 안세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7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의 <새로운 경제 사회의 경영>은 12개의 에세이를 묶은 책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12개의 에세이 모두가 관심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경 위기, 정년퇴직, 다국적 기업 등 몇몇 에세이는 우리의 현실과 아주 밀접한 주제에 대한 것으로 모든 독자가 눈여겨볼만한 에세이였다.

미래 경제와 관련해 저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압축해 보자면 생산성의 최적화이다. 저자는 미래의 경제가 공급 중심의 경제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미래의 미시경제 이론이 생산성과 자본 형성에 집중한다면 거시경제학이나 미시경제학 하나만을 선택하는 상황이 아니라 이 둘을 일정 부분 통합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미래 경제를 예측하는 저자의 마지막 결론은 생산성이 모든 문제의 비전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산성의 최적화를 환경 문제와 연결한다.

저자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하고 일부 환경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환경보호를 위한 처벌법을 강화하기보다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분명 드러커의 말처럼 덜 나쁜 것들로 조합을 이루고 분명한 환경 정화 목표와 일정을 갖춰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대중을 교육하고 실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얼마 전에 읽은 <100억 명, 어느 날>이라는 책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생산성의 향상만으로는 현재의 환경위기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더 많은 환경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례로, 생수 1리터를 생산하는 데에는 물 4리터가 필요하단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져 생수 1리터를 생산하는데 물 2리터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치자. 이것으로 환경 위기를 해결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중국의 모든 인구가 차를 구입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해 자동차 공장을 한없이 가동하고 물류 이동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여 지구 온난화 현상을 가속화해야 할까? 내 대답은 글쎄다. <100억 명, 어느 날>의 저자 스티븐 에모트의 주장처럼 우리는 가장 먼저 소비량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 생산성 향상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식 변화와 실제적인 소비량 감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환경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세밀하게 무언가를 알려주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굵직굵직하게 묘사하면서 각각의 주제에 대한 거시적인 모습만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책을 읽는 이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줄 수 있는 힌트가 책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전술이 아닌 전략을 세울 능력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키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