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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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없이 추락하는 구멍이라는 의미의 무저갱은 악마가 벌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통로로 수많은 종교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무언가 무거운 느낌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표지의 실린 가면의 이미지는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악마. 마치 그런 악마와 대결하듯 그런 악마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 무저갱에 빠져 악마를 쳐다보고 있는 걸까?

 

소설은 세 명의 인물을 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싸움꾼, 사냥꾼, 파수꾼. 각자의 상황도 다르고, 역할도 다른 듯한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희대의 살인마 노남용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싸움꾼과 사냥꾼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파수꾼은 도대체 이 소설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 읽을수록 세 사람의 관계가 더욱 궁금해진다.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던 이들의 관계는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 독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서로 얽히고설키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소설은 전반적으로 무섭다기보다는 끔찍하다. 스릴러라기보다는 오히려 잔혹물에 가깝다는 느낌. 그렇기에 이들과 함께 독자마저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결코 용서받지 못한 채 지옥으로 끌려들어가야 하는 그런 느낌.


무저갱으로 빠진 이는 누구일까? 싸움꾼과 사냥꾼이 목표로 삼은 노남용, 아니면 그를 쫓는 싸움꾼과 사냥꾼. 그들도 아니면 과연 누가 무저갱으로 빠진 걸까? 정말 누구인 걸까?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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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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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포세이돈의 아들로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해 쇠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크면 머리나 다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늘여서 죽인 괴물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많은 이들에게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혹은 융통성이 전혀 없는 인물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괴물이 떠올랐던 이유는 뭘까? 노리코 역시 어떤 점에서는 프로크루스테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걸까?

 

물론 그녀는 프로크루스테스와는 다르다. 그녀는 정의라는 이름하에 올바른 행동을 한다. 그런데 독자는, 아니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의 말과 행동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가 어려웠다. 아니,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분노하다니 누군가는 제정신이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분노하게 된 건 노리코에게서는 정(正)은 찾아볼 수 있지만 의(義)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으로만 따지자면 노리코의 행동과 말은 모든 바르다(正). 법적으로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 토를 달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무조건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절대적 잣대를 들이대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옳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삼심제를 선택한 우리나라의 법체계를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법이란 그 법을 해석하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재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여러 정황과 증거를 토대로 재심에서, 어떤 경우에는 대법원 판결에서 원심이 뒤집히기도 한다.

 

또한 법이란 결코 사람 위에 군림하는 절대 가치가 아니다. 법은 그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훈훈한 법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리코에게서는 결코 의(義)를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담배를 핀 학생들을 선처한 선생님과 그 뜻을 알아준 경찰관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노리코가 판단한 그들은 분명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들에게는 법이라는 틀을 넘어서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 더 옳은 길로 선도해야 할 더 큰 의무와 책임이 있다. 단순히 벌을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말이다.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법보다 더 깊은 친구라는 인간 관계를 쉽게 던져버린 노리코의 행동을 ‘절대 정의’라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보게 될 뿐이다.

 

정의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행동에 절대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경우는 이처럼 허다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주저 없이 단죄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건, 작가의 이야기를 토대로 보자면, 결국 인간의 본성이다. 평상시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노리코와 리츠코처럼. 그래서, 그래서, 더욱 무섭다. 이런 인간의 본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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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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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 100문 100답 - 왕초보 창업자 & 왕초보 주식투자자를 위한 회계지능 100배 키우기 100문 100답
곽상빈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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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고, 주식투자를 하면서 재무제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주변에서 하도 공부하라는 말들을 많이 해서 나름 이러저런 책들을 보면서 공부를 했기에 지금은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재무제표를 읽고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100문 100답이라는 형태의 구성이 혹시나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핵심 사항을 점검해볼 수 있다는 것과 이전에 읽은 <주식투자 100문 100답>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이제 막 재무제표라는 낯선 세계에 첫 걸음을 뗀 이들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제목처럼 100가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가장 핵심적인 사항들을 파악할 수 있고 스타벅스, 네이버 등 실제 사례들을 제시하여 독자의 이해를 높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어려운 회계 용어나 내용을 누구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꿔서 간단하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물론 재무제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100프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한 번만 읽어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지만 핵심을 정확하게 콕 집어 설명한다. 또한 사업을 하는 이들과 주식투자를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먼저 재무제표의 일반적인 사항을 설명한 후 챕터를 나눠 설명한 것도 상당히 좋은 구성이 아닌가 싶다.

 

사업을 하든, 주식투자를 하든, 혹은 회사 전반에 대해 알기 위해서든 재무제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분야이다. 재무제표의 기본 내용과 실제 활용을 배워 모두가 원하는 목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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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9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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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언제부터인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즐겨 읽곤 한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용한 부분은 각 책에 대한 해제 부분이 아닌가 싶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역시 현대지성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다. 이 책에는 앞서 말한 해제 부분뿐 아니라 막스 베버를 비판한 카를 피셔에게 보내는 베버의 1-2차 반박 내용도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

 

막스 베버야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저자이기는 하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 등과 함께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인물로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이다. 경제, 역사, 정치, 법제도, 종교, 철학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던 베버는 이런 지식을 토대로 사회학적 분석에 필요한 이론과 개념을 구축하였고, 이 책도 그런 베버의 지성이 이루어낸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라는 어쩌면 상반된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두 개념을 막스 베버는 어떻게 연결시킨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저자는 자본주의 정신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청교도 윤리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돈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와 돈에 대한 욕망을 지양하려는 청교도. 이 둘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막스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돈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청교도들의 근면성실함에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막스 베버의 주장을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돈에 대한 탐욕이 결코 아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말하면서 돈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온 세상이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넘실대는 오늘날의 시대에 막스 베버가 주장한 자유주의의 모습을 깊이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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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Zero - 나의 모든 것이 감시 당하고 있다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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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웃으며 읽기 시작한 소설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차 무겁게 다가온다. 이런 상황이 진짜 현실인 걸까? 누군가가 나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나의 삶, 나의 생각마저 지배하려든다는 그런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소설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갔다.

 

드론으로 대통령을 습격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습격을 자행한 집단이 제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다. 이들은 감시사회라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각 개인의 정보를 수집해서 이용하는 권력 집단에 거세게 대항한다. 제로 추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데일리의 기자 신시아는 편집장에게 받은 스마트안경을 딸 비올라에게 무심코 넘겨주는데, 이 스마트안경을 쓴 비올라의 친구 애덤을 죽음으로 이끌고 마는데..

 

아마 신시아의 입장과 내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을 듯 싶다. 스마트 기기에 완전히 문외한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에 스마트 유저라고 하기도 뭐하다. 그런 입장에서 국가가 혹은 기업이 개인의 정보를 활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페이스북 사태 등으로 정보 유출에 대한 경각심은 있지만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것인지. 물론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가 마냥 허구의 이야기만은 아님은 여러 정황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감시사회.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누군가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런데 그런 정도를 넘어 누군가가 알게 모르게 내 생각을 조정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유용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런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족쇄를 채우는 과정이라면? 모두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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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