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OUT 유럽역사문명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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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라는 인문학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음악, 미술, 건축 등 모든 카테고리를 총 망라한, 유럽 예술 문화에 대한 모든 내용이 정리된 인문교양 에세이였다. 내용이 쉽게 쓰여있었기에, 읽기도 편했다. 거기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예술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아서 질적인 면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예컨데 19세기 화가들이 수많은 르네상스 화가 중 굳이 ‘라파엘로’를 선택하여, ‘라파엘전파’라는 작품활동을 했는지등 말이다. 정말 인문학적으로 유럽 예술 문화를 알려주는데 있어서 이토록 추천할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었다.






세상에나! 저자가 후속편을 썼다. 제목은 『테이크아웃 유럽역사문명』.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역사’가 주제다. 그러다보니 리뷰를 쓰면서 키워드를 역사책이나 세계사책으로 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접고, 이 책 『테이크아웃 유럽역사문명』 키워드를 전작처럼 인문학책으로 결정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인문학적 학습과 경험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말마따나, 이 책은 역사전공자 시각이 아닌, 호기심 많은 광고인의 시각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그런가? 확실히 쉽게 읽힌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 『테이크아웃 유럽역사문명』이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음에도 인문학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구성에 있다. 일반적인 역사책과는 구성이 확연히 다르다. 내용면에서도 일반 역사책에서 잘 알려주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예컨데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을 보자. 나는 살면서 내가 보고 있는 달력이 그레고리력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달력은 음력, 양력만 있는줄 알았지? 여기서 조금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세시풍속, 24절기가 양력기준이다라는 정도? 그런데 ...뭐, 그레고리력? 거기다 그 전에는 율리우스력을 썼다고? 심지어 러시아는 크리스마스가 1월이라고?! 이야 진짜. 나름 이것저것 많이 보고 읽었던 터라 남들보다는 잡학다식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확실히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역사 이야기는 색다르다. 거기다 재밌어!! 원래도 역사는 재미있지만, 더 재밌어!!!!!





1.율리우스력과 동방정교회

위에서 살짝쿵 이야기한 달력 이야기다. 내 표정을 @.@ 로 만든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은 무엇이고 율리우스력은 대체 무엇인가? 이 차이가 무엇이길래, 우리 기준으로는 11월에 일어났던 러시아 혁명을 왜 10월 혁명이라 부르는걸까? 대체 왜 러시아에서 크라스마스는 1월 7일인 걸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수많은 명언을 남긴 기원전 로마 공화정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까지 올라간다. 아니 대체 어째서?!


율리우스력은 말 그대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 달력입니다. 로마 정권을 잡은 카이사르는 많은 개혁을 하는데 달력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 율리우스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과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아니 월력, 일력으론 똑같습니다. 그러니 러시아인이 불편함이 없기에 지금도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학성도 놀랍지만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가위질을 엿장수 마음대로 하듯 로마인 마음대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2월은 동네북입니다. 새로운 7월과 8월은 본래의 6월과 7월 사이에 새치기해 들어갔습니다. 7월 줄라이와 8월 어거스트는 영어로는 쥴리어스 시이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어거스트인 아우구수투스가 태어난 달입니다. 샘 많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전임자인 카이사르에 뒤질세라 그가 한 것이라면 본인도 똑같이 따라서 했습니다. 달의 순서와 날의 길이까지도 바꾸면서 말입니다. p 040




율리우스력은 말그대로 정권을 잡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 달력이었다. 달력을 손대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넣고 쳐내고, 심지어 자기가 태어난 7월에 자기 이름을 넣었어!!! 7월 영어명 줄라이가 율리우스의 영어명이라니. 더 충격적인건 그 뒤에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를 따라서, 자기가 태어난 8월에 자기 이름을 넣었다는거. 이 외에도 여러 달을 줄이고, 늘리고. 이야 정말 대단한 로마인들. 이렇게 제정된 율리우스력은 16세기까지 사용되다가, 그레고리력으로 교체된다. 왜?



로마 카톨릭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또 한번 달력을 수정을 제안했으니까. 전반적으로는 율리우스력과 비슷하지만, 율리우스력보다는 훨씬 오차가 적고 더 정확한 달력을 사용하자고! 그렇게 탄생한게 그레고리력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기도 하고. 아니, 그러면 그레고리력이 훨씬 더 디테일한 달력인데,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고집하지? 놀랍게도 여기엔 11세기에 있었던 동서교회 대 분열이라는 아주 커다란 원인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표준 달력은 그레고리력입니다. 1582년 그간 사용해오고 있던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하여 만들어진 캘린더로 당시 이것을 제안한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구조와 표기되는 내용, 달력으로만 치면 율리우스력과 같습니다. 초력 계산에서 미세한 차이가 납니다. 한마디로 율리우스력이 128년마다 하루의 오차가 있다면 그레고리력은 3000년마다 하루의 오차로 정확해졌다는 것입니다. p 041




그런데 러시아와 동방정교회는 왜 다소 부정확한 율리우스력을 고집하고 있을까요?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국가로서의 러시아는 혁명이 끝나자마자 바로 그레고리력으로 전환했으니까요. 하지만 러시아의 동방정교회는 여전히 교회력으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정론이든 추론을 해봅니다. 하나는 교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방정교회는 이름에도 들어가 있듯 정통성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그래서 과거 로마 시대부터 2천 년 넘게 교회력으로 채택되고 기록되어온 정통한 달력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레고리력이 서방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발의해서 만들어진 교황의 달력이라는 점입니다. p 043




1054년에 교리 차이로 빚어진 동서교회가 분열되었다. 동쪽은 동로마 정교회, 서쪽은 서로마 카톨릭으로. 동로마 정교회 수장인 콘스탄티노플 총 대주교와 서로마 카톨릭 수장인 바티칸 교황이 서로를 파문하며(!!!) 완전히 결별했다고. 그래서 동방정교회를 믿는 러시아는(러시아정교회) 서방 교회 수장인 교황이 발의해서 만든, 교황의 달력은 거부(!)했다는 뭐 그런 초딩들 싸움같은 이야기랄까?




하지만 20~21세기에 들어서 동방정교회와 서방 카톨릭 수장들이 연이어 만나 서로 화해하며 파문을 철회했다. 아이러니한건 이 둘의 만남을 주선한 주선자가, 그 유명한 쿠바 독재자 카스트로. 수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탄압한 독재자가 기독교의 두 수장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들에게 축복을 받았으니 그가 저지른 죄악은 사라진건가? 죽었으니 진짜 천당갔으려나. 흡사 21세기 면죄부 느낌이다. 아무리 죄악이 많아도 돈 많거나 권력이 있으면 장땡같은 느낌이라 별로다.




1965년 바티칸의 교황 바오르 6세와 이스탄불의 총대주교인 아티나고라스는 예루살렘에서 만나 천 년의 화해를 하였습니다. 1054년 동서 교회 대 분열 시 서로를 파문했던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동시에 그 파문을 철회한 것입니다. 이어서 지난 2016년 2월엔 프란체스코 교황과 정교회의 실세인 러시아의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만나 또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해를 주선한 인물은 쿠바의 독재자 카스트로였습니다. 이렇게 큰 일을 주선하고 카스트로는 그 해 11월 사망했는데 이 일로 그는 확실하게 천당을 갔을 것입니다. 지구상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두 분을 천 년 만에 만나게 했고, 서방카톨릭과 동방정교회의 수장인 그들에게 동시에 축복도 받았을 테니까요. p 060






2. ‘하느님’과 ‘하나님’, ‘여호와’와 ‘야훼’ 그리고 알라


위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에서 나온 기독교 동서교회 대분열. 자연스레 기독교가 궁금해진다. 이 책 저자는 참 똑똑하다! 이 책 속 여러 챕터 중에는 역사적으로 바라본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물론 유럽 종교!). 난 무교지만, 개인적으로 종교의 역사를 흥미롭게 보는 사람이다.




예컨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를 떠올려보자. 불교는 윤회사상을 이야기하지만, 실상 부처는 윤회는 없다고 말했었다. 애초에 윤회사상을 이야기하며 계급사회를 중시했던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종교였으니까. 거기다 부처는 죽기전에 자신을 신격화하지 말라고 했었고. 하지만 부처 사후 오랜시간이 지나며, 일부 권력자들이 국가 통치를 위해 불교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윤회사상이 덧입혀지고, 부처가 신격화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가 재탄생했다. 신학이 아닌, 역사적 관점으로 보는 종교는 꽤나 재미있다. 




불교를 역사적 시각으로 아주 간략하게만 봐도 이렇게 흥미진진한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기독교는 어떨까. 아!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하면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떠올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독교는 서방 카톨릭(천주교), 동방 정교회, 개신교(프로테스탄트교) 3대 종파를 아우르는 이름이다. 거기다 오리지널 ‘기독교’를 이야기하자면, 어디까지나 카톨릭이 먼저다.




원래 기독교는 카톨릭(천주교) 하나 였다. 그러다 11세기에 교리 차이로 동,서 교회가 분열되면서 서방 카톨릭(천주교)와 동방 정교회로 나뉘어졌다. 그렇게 오백여년이 흘렀다. 16세기에 로마 카톨릭에서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하자, 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다. 이게 기폭제가 되어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고, 그때 카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교가 떨어져 나왔다. 바로 개신교다. 이렇게 기독교가 3대 종파로 나뉘어졌다.




기독교의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는 모두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유일신으로 받들고 예수 그리수도를 그의 독생자로 믿는 종교입니다. 경전인 공히 성경입니다. 이 성경의 다른 해석으로 기독교가 크게 3개로도 나뉘었지만, 그 안에서 또 많은 종파나 교파로 분파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각각의 종교마다 교리와 예식에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직자의 결혼 유무만 보더라도 카톨릭은 주지하다시피 신부는 미혼만 가능하여 사제서품을 받고서도 평생 미혼으로 살아야합니다. p 077




카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는 서로 신을 섬기는 방법이나 교리 해석 등 많은 편에서 차이가 있다. 카톨릭은 교황이라는 종파를 아우르는 수장이 있는 반면, 동방 정교회나 개신교는 그런 수장이 없다. 다만 동방 정교회는 지역별 총대주교가 있어서, 각 국가의 종교대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비교적 뒤늦게 파생된 개신교는 지역별 수장조차 없다. 처음부터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시작된 종교가 아니고,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종파다보나 단일 조직 체계를 갖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개신교 내에서도 이후에도 여러 차이로 인해 교파가 생겨났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는 카톨릭 신부들은 사유재산이 없고 미혼만 가능하지만, 개신교는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결혼도 자유다. 역시나 뒤늦게 만들어진 종교이기에 비교적 자유로운 면이 있는 듯 하다. 정교회는 서품을 받기 전에는 결혼이 자유지만, 서품 받은 이후에는 거기서 고정된다. 결혼한 상태에서 서품을 받았으면 평생 결혼을 유지해야하고, 미혼한 상태에서 서품을 받았으면 평생 미혼으로 살아야한다는 말이다.




하늘에 계신 유일신을 향한 믿음 외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각 종파. 근데 왜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닐까? 유대교도 유일신을 믿고, 거기다 예수 그리수도는 유대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나? 


그런데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 이외에 왠지 기독교일 것만 같은 종교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유대교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인 유대지역은 기독교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이고, 그도 유대인이기에 그렇게 생각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이슬람교가 기독교가 아닌 것처럼 유대교는 기독교와는 다른 종교입니다. 일단 유대교는 기독교를 규정하는 중요한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p 082




놀랍게도 유대교는 다른 기독교 종파들과 달리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슬람교는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한다는 것. 뭐지? 여기서 다시한번 동공지진!!!! 이슬람교는 대체 어떤 종교인가 당최 가늠이 안된다. 근데 또 이슬람교의 탄생을 보면, 얼추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타고 올라가면 그 꼭대기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 모두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그 족보 중간쯤엔 유대 왕국을 통일한 다윗과 지혜의 왕 솔로몬도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뒤늦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으로 인하여 이렇게 화려한 유대인의 가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슬람교에도 아브라함이 등장하는데 그는 무슬림에겐 이브라힘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슬람의 족보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으로 안내려가고 그의 다른 아들인 이스마엘 쪽으로 내려갑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에 이집트 출신 이방인인 여종 하갈을 통해 먼저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p 087




책에선 정말 많은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쓰여있지만! 여기서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예수의 선조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기독교와 유대교 모두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라 한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한명은 적자인 이삭, 또 한명은 서자인 이스마엘. 아브라함은 적자에게 승계하기 위해 서자를 쫓아냈다. 아브라함은 적자인 이삭을 통해서 유대교가 이어나가는 반면, 쫓겨난 서자 이스마엘은 하늘에 계신 유일신이 굽어살피사(!) 그를 통해 이슬람교가 이어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스마엘을 선조로 생각하는 이슬람교와 아브라함을 섬기는 기독교가 서로 배척하는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도 한 몫 한다고나 할까.




여기까지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배척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유대교가 서로 배척하는 이유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과거 로마제국이 영토를 넓힐 때 유대인들은 자신이 살던 나라에서 쫓겨나 기독교를 믿는 유럽 곳곳에 정착했다. 유럽인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외지인이 자신들의 영토에 굴러들어와서 맘에 안드는데, 거기다 그 외지인이 자신들이 믿는 예수를 핍박한 유대인들이다? 누가봐도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반대로 유대인 입장에서는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상대로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할테고. 그렇게 서로가 배척하는 상황이 생겨난거다. 




위의 구약 창세기 내용은(창세기 21장 17~20절)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가 모두 공유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광야에서 생사를 오가던 이스마엘과 하갈을 살려주고 축복한 신은 기독교의 카톨릭과 정교회에선 우리말로 하느님으로 불리지만 개신교에선 하나님으로 불립니다. 위의 인용한 창세기는 개신교 성경이기에 하나님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하느님은 히브리 원어로는 여호화, 또는 야훼가 됩니다. 사실 여호화나 야훼든 이것이 불분명한 것은 하느님이 직접 내가 누구라고 밝힌 것을 들은 사람은 그로부터 십계명을 전달받은 모세가 유일하므로 모세만이 정확한 그분의 이름을 알 것입니다.p 090




또한 기독교와 유대교의 야훼 하느님은 이살람교에서는 알라가 됩니다. 영어 성서에선 가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위의 창세기에 이스마엘 모자를 살린 같은 사건에 등장한 그 신은 다 다르게 불리지만 다 같은 신일 것입니다. 세상에 딱 한 분밖에 한계시는 유일신인데다가 사는 곳도 같고, 하는 일도 같은 그분이 종교마다 다르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모순일 것입니다. p 091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서로 배척하는 뿌리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다는 것! 내 개인적으로는 딱히 믿는 종교가 없어서 그런가? 역시 종교는 신학적인 관점보다 역사, 인문학적 관점으로 보는게 더 재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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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닌자 이야기 - 60가지 주제로 알아보는
곽범신 옮김, 야마다 유지 감수 / 마나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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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일본사 역사책은 애니 및 일드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특히나 더쿠들이라면 더더욱 친숙할 주제다. 다름아닌 #닌자 이야기! 나만해도 소싯적 더쿠였기에, 피스메이커나 나루토같은 닌자물도 엄청 좋아했기에(ㅋㅋㅋ) 괜시리 ‘닌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뭐 물론 지금은 탈덕한지...아아, 이제 언제적인지 기억도 안난다. 

근래에 접했던 닌자 이야기는 몇 년전 읽었던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라는 책이었다. 나에게 덕질용어라 생각했던 ‘닌자’를 역사적 직업으로 탈바꿈해 준 바로 그 책이다. 이후 직장 특성상 약학(?) 관련 역사책을 종종 읽었는데, 그때도 닌자가 종종 등장했다. 전국시대까지만해도 겁나 바빴던 닌자들이, 평화시대인 에도시대에 이르러 할 일이 없어지자 자연스레 직종을 변경했는데, 그 직종들이 대체로 제약업과 화학업이었고 그렇게 그들의 지식이 이어진게 지금의 제약회사, 화학회사라는 뭐 그런 이야기랄까. 갑자기 닌자가 제약, 화학업을 한다니까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세 일본에서 닌자만큼 식물과 화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부류는 없었으니까. 뭐, 이건 오늘 포스팅 할 일본사 역사책 『센고쿠 닌자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디까지나 에도시대 이후 닌자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인술은 본래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입으로 전해졌지만, 천하가 태평안 에도시대로 접어들자 닌자가 활약할 장소는 줄어들었고, 도구의 사용법이나 지식 등의 기술도 더는 대물림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기술을 정리해놓은 책이 바로 인술서다. 100권 이상의 인술서가 존재했다고 하나 가장 뛰어난 것은 『만센슈카이』(22권)로 이가닌자 후지바야시 야스타케가 남긴 책이다. 제목의 유래는 이가, 고가 및 모든 유파의 인술이 정리되어 있으므로 모든 인술을 하나로 정리했다는 의미다. 그 외에 기슈루 인술이 정리된 『쇼닌키』(3권), 저명한 닌자 핫토리 한조 가문에 전해지는 『시노비히덴』(4권)이 있는데, 여기에 『반센슈카이』를 더해 ‘3대 인술서’로 통한다. p 034

이제 본격적으로 『센고쿠 닌자 이야기』 책을 살펴보자. 이 책은 여기저기 전투가 발생했던, 활약상이 실로 대단했던 전국시대 닌자들을 이야기한다. 애니 속 닌자가 아닌, 현실에 살았던 ‘진짜’ 닌자를! 더군다나 이 책 참고도서는 현존하는 인술서다. 나는 이시점에서 이미 놀랐다. 현존하는 인술서라니. 인술서, 비기 이런건.... 애니 속에만 있는거 아니었어? 와. 진짜 일본은 정말! 뒷말은 생략한다.

이 책은 닌자는 어떻게 생활했고, 서로 어떻게 연락을 취하고, 어떻게 수련을 했고,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무기를 썼고,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등등등 정말 닌자에 대한 사소한 내용부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까지 전부를 담고 있다. 특히 닌자가 사용한 기술이나 무기에 대해선, 혹자는 애니에서 자주 보았던, 크고 화려한 인술을 사용하는 닌자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예컨데 나루토가 외치는 “그림자분신술!!!!”이나, 오로치마루의 “목둔술” 같은 인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게 되면 아아, 닌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당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일단 소소하게 ‘닌자’의 역사부터 시작해보자.


과거 오토모노 사비토(사이뉴)라는 인물이 ‘시노비’로서 쇼토쿠 태자를 섬겼다는 내용이 16세기의 『닌주쓰히쇼오기덴』에 쓰여 있지만 역사적 사실로서의 신빙성은 낮다는 것이 최근 연구로 밝혀진 정설이다. 헤이안 시대에는 고가와 이가의 선조가 등장한다. 다이라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의 전쟁에서는 닌자가 활약했다고 하는데, 이가닌자의 선조로 여겨지는 핫토리 헤이나자에몬 이에나가가 다이라 가문을 섬겼다.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당시 활약한 모치즈키 사부로 가네이에는 고가닌자의 선조라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는다. 닌자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남북조 시대를 무대로한 군담소설인 『다이헤이카』로, 장원제 지배에 저항했던 무리를 가리키는 말인 아쿠토가 닌자의 기원으로 추정된다. 닌자가 가장 활발하게 활약했던 시기인 센고쿠 시대에 각지의 다이묘들은 상을 내려 닌자의 활동에 보답했다. p 004

이러한 조건들이 겹치며 이가와 고가는 발전해나갔는데, 이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1487년에 벌어진 ‘마가리의 진’이었다. 이가와 고가의 닌자들은 무로마치 막부에 적대하던 롯카쿠 가문에 협력해 막부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활약을 선보였다. 또 한가지, 닌자의 이름이 일본 전토에 널리 퍼진 전투로는 1579년에 벌어진 ‘덴쇼 이가의 난’이 손꼽힌다. 이 싸움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인 노부가쓰가 이끄는 8천명의 군세에 맞서 이가슈는 불과 1,500명의 병력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p 007

닌자 역사의 시작은 이가닌자과 고가(코가)닌자 되시겠다. 참고로 썰이 아닌, 기록에 남은 무려 정설이다. 소싯적 바람의나라(ㅋㅋ)를 해본 게이머라면, ‘이가닌자’라는 단어가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아아, 이렇게 또 연식이 슬쩍 드러난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이가모노’, ‘고가모노’라는 말을 들어봤을텐데, 이 단어도 이가닌자와 고가닌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튼 헤이안 시대부터 등장한 닌자는 가마쿠라 막부를 지나, 무로마치 막부를 훑고 전국시대였던 에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활약한다.

책 본론으로 들어가면 정말 닌자에 대한 모든 것이 아주 낱낱히 파헤쳐진다. 내가 알고 있던 인술이!!! 환술이!!!!!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었다니. 하. 소싯적 닌자물을 봐왔던 나조차도, 그 닌자물이 대다수 상상과 창의력이 가미되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하. 실제 닌자들이 사용한 인술과 환술은 그저 소소한 기술, 어떤 기술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닌자라는 직업군이 사용하는 기술이었다는 점에서 참....하 ㅋㅋㅋㅋㅋ

아래 내용부터는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인술과 환술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었다!라는 점을 보여주는 책 내용을 발췌했다. 이 책을 읽고도 닌자에 대한 환상이 깨지지 않았다면, 정말 그 사람들은 진성 더쿠. 하하하.

닌자가 사용한 대표적인 인술로는 위장술인 둔주술이 있다. 둔주술은 활용하는 지형, 지물이나 형태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쉽게는 ‘은신술’이 여기에 속하고, 우리가 애니에서 많이 접했던 ‘화둔’, ‘수둔’, ‘목둔’ 도 이에 속한다. 그리고 실제 둔주술은....... 애니 속의 그 모습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정말 달라도 너어무 다르다. 

다시금 말하지만 나루토가 사용한 그림자분신술, 오로치마루가 사용한 목둔술을 생각했다면 정말 .. 배신감에 치를 떨지도!

적의 눈을 속이고 몸을 감추는 기술을 ‘은형술’이라고 부른다. 그중 하나가 ‘메추라기 은신’이다. 적에게 엉덩이를 향한 채 팔다리와 머리를 움츠려 웅크리는 것이다. 참고로 얼굴을 가려서 시야를 차단하는 데에는 공포심을 억누르는 효과도 있었다. ‘관음 은신’은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벽이나 나무 뒤에 몸을 붙이고 서는 기술이다. 얼굴을 가린 것 외에는 그저 서 있을 뿐이지만 의외로 잘 들키지 않았다. ‘너구리 은신’이라 하여 나무 위로 숨는 기술도 있다. 이는 위쪽으로는 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심리를 노린 기술이다. p 049

‘화둔술’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을 이용해 도망치거나 숨는 기술이다. 저택이나 진지 등에 불을 질러서 적이 동요한 틈에 도망치는 것이다. 때로는 화약을 터뜨릴 때 나는 큰 소리로 상대 전의를 꺾거나 풀밭을 불태워서 자신과 적 사이에 불의 장벽을 만들어 발을 묶기도 했다. 닌자는 화약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대대로 전수받았다. 화약의 주된 재료인 초석에 숯이나 황을 섞어서 만드는 화약 제조법은 닌자 마을에서는 비전 중의 비전이었다. p 050

‘수둔술’은 물을 이용한 둔주술이다. 성을 둘러싼 해자나 강, 연못 등에 몸을 숨기는 기술로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닌자만의 도주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물속을 이동할 때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소리나 물보라를 만들지 않는 ‘누키테’라는 수영법이 사용되었다. 다만 물속에 들어가는 경우는 매우 위급한 상황으로, 자주 사용된 ‘수둔술’은 큰 돌을 던져서 물속에 뛰어든 것처럼 착각하게 틈에 도망치는 기술이 아니었을까. p 050

‘천둔십법’은 날씨를 이용한 기술이다. 해를 등져서 적이 시력을 잃었을 때 도망치는 ‘일둔’, 달이 구름에 가려져서 주변이 어두컴컴해진 틈에 도망치는 ‘월둔’, 돌풍에 일어난 모래먼지에 몸을 숨기는 ‘풍둔’, 비나 번개를 이용하는 ‘우둔’과 ‘뇌둔’ 등 자연현상에 편승에 도주하는 방식이다. 우연히 일어나는 자연현상에 의지하다니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닌자들은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해도 냉정하게 주변을 관찰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p 052

‘지둔십법’은 지상의 자연물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모래나 흙을 뿌려서 상대의 시야를 빼앗는 ‘토둔’, 세워져 있는 목재를 무너뜨려 상대방의 진로를 차단하는 ‘목둔’, 풀을 엮어서 발을 붙잡는 ‘초둔’, 끓는 물이 든 가마솥 따위를 뒤집어서 상대방이 당황한 사이에 도망치는 ‘탕둔’ 등이 있다. p 052

‘인둔십법’은 사람이나 동물을 이용해 도망치는 방법이다. 도망치는 도중 추격자로 변장해서 “수상한 자는 저쪽으로 도망쳤다!”고 소리쳐서 적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항했을 때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는 기술 외에도 노인이나 어린아이, 여성으로 변장하는 기술도 있었다. p 052



분신술의 원리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잔상에 따른 눈의 착각을 이용했다는 설이다. 빠르게 달리다 아주 잠시 움직임을 멈춘 뒤 다시 이동한다. 이를 반복하면 움직임을 멈춘 지점에 잔상이 남아 마치 분신이 생겨난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대역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닌자는 ‘당’이라 불리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동족으로 조직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용모가 비슷한 사람이 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p 056

환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는 인간의 착각이나 믿음을 이용한 기술로, 지금으로 따지면 마술에 가까운 기술이었다고 한다. 인술과 환술은 전혀 다르지만 닌자의 변신술인 ‘시치호데’ 중 하나로 마술이나 곡예를 선보이는 호카시가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마술에 정통한 닌자가 있으리란 것도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진실이 무엇이든 분신술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아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p 056

만화 등에도 등장하는 ‘임병투자개진열재전’이라는 주문이 있다. ‘구자신호법’이라는 주문으로, 닌자가 정신을 통일하기 위해, 혹은 재앙을 쫓기 위해 읊었다. 인술의 기원 중 하나는 수험도라는 산악신앙으로, 이 수험도에서 도입한 주문이 바로 구자신호법이다. ‘임병투자개진열재진’을 해석하면 ‘싸움에 임하는 투사는 모두 진을 짜서 앞으로 나서라’ 라는 뜻이다. 싸울 때는 선두에 서서 나아가라는 의미로, 주문을 읊는 데에는 사기를 진작시키거나 두려움을 없애는 효과,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p 058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 정보의 경우 닌자가 의존했던 기술이 바로 ‘불망술’이다. 이는 정보를 떠올리며 칼 따위로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는 방법이었다. 사람은 상처를 보면 다쳤을 때의 상황을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 이를 이용한 기술이 불망술로, 흉터를 본 닌자는 그 상처를 냈을 때의 정보를 떠올렸다. p 064

일설에 따르면 최초로 여자 닌자를 휘하에 두었던 인물은 센고쿠 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이었다고 한다. 말이 여자 닌자이지 실제로는 ‘순회무녀’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특정 신사에 몸담지 않고 무녀 복장으로 전국 각지를 순회하는 신의 사자였다. (…) 에도시대 인술서 『반센슈카이』에는 남자가 잠입하기 어려울 경우 여자가 대신 잠입한다는 ‘쿠노이치술’과 앞서 언급된 ‘가쿠레미노술’이 소개되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성을 기용했다는 기술일 뿐 여자 닌자가 활약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 여자 닌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이다. p 066

하, 진짜 여러모로 닌자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일본사 역사책이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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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미술관 여행 - 자연 친화적이고 혁신적인 북유럽 미술관을 가다
이은화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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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평 주인공은 『북유럽 미술관 여행』이라는 미술 여행에세이 책이다. 미술관련 책이야 거의 분기에 한 번 꼴로 읽었던 터라, 이런 책에 바라는 기대치가 꽤나 높다. 적어도 초심자용(?) 미술관련책은 진작에 타파했고! 이후에는 미술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들을 읽으면서, 미술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북유럽 미술관 여행』이라는 책을 읽기전에, 내심 내 궁금증을 얼마나 해소해줄지 기대가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는 제목 그대로 북유럽 5개국에 있는 ‘미술관’에 초점을 맞춘 미술 여행 에세이다. 미술 작품 해설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망 잠시 넣어두는 걸로! 이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술관’ 매력 빠지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근처에 미술관이 있는지, 한 번쯤은 미술관을 가볼 생각을 하게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북유럽 5개국에 있는 미술관 여행을 하였고, 그 여행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당연히 미술관에 걸려있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는 말이다. 다만, 미술작품 이야기는 일종의 곁가지이고, 주는 ‘미술관’ 자체라는거! 근데 뭐, 따지고 보면 미술관도 하나의 미술작품이나 다름없다. 독특하고 개성있는 외관은 둘째치고, 건물 자체가 품고 있는 역사성만 하더라도 왠만한 미술작품 저리가라니까. 따라서 이 책 역시 미술작품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유명 미술작품들은 대체로 고전작품이 많을뿐더러, 소장처는 루브르 박물관 같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그런 곳들이 많았다. 헌데 왠걸? 이 책이 소개한 미술관에는 내가 몰랐던 미술작품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으레 알고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심지어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내가 생각하는 보수적인 공간이 아니라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방문했던 우리나라 미술관은 보수적인 공간 인테리어가 많았다. 전시실도 책에서나 볼 법한 그림이나 조각은 많았으나, 체험 공간이나 멀티미디어 공간이 많이 부족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갔었던 미술관은 대게 연식이 오래되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랬기에 이 책에서 소개한 북유럽 미술관이 하나같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무엇보다 부러웠다T_T. 

아래는 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미술관 중 내가 가보고 싶은 미술관 두 곳에 대한 내용이다. 왜 하필 이 두 곳인가? 에 대해서는 뭉크 그림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사심 듬뿍이라서다. 2014년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했었던 뭉크전을 보러갔었던게, 나에겐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뭉크 그림을 다시 한 번 두 눈으로 보고 싶달까?!



노르웨이: 문화의 아이콘, 뭉크 미술관

미술애호가들에게 오슬로는 에드바로 뭉크의 도시다. 붉은 노을이 지는 황혼 녘, 해골 모습의 사람이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명화, <절규>가 바로 이 도시에 있다.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뭉크만큼 절절하고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화가가 있을까. 루브르의 <모나 리자>만큼이나 유명한 <절규>를 만나기 위해 해마다 수백만 명이 오슬로를 찾는다. p 017

뭉크 미술관은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뭉크의 작품와 아카이브 자료 약 4만 5,000점을 소장한 세계 최대 미술관이다. 이 방대한 소장품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작가의 기증 덕분이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노르웨이를 점령하자 아내도 자식도 없던 뭉크는 오슬로시에 자신의 작품과 소유물을 다 기증했다. 그가 사망하기 4년 전이었다. 이때 기증품 수는 2만 8,000점이 넘었는데, 단일 작가가 기증한 양으로는 역대 최다였다. 뭉크 미술관 소장품은 작가의 기증 외에도 그의 막내 여동생 잉에르의 사후 기증과 개인 컬렉터들의 기증으로 더 탄탄하고 방대해졌다. p 023

7층에선 뭉크가 생애 마지막 30년을 살았던 에켈리의 별장을 재현한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9층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시 공간이고, 10층은 음악과 시각예술의 융합을 경험해보는 특별한 공간이다. 11층은 체험형 작품 전시 공간으로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2022년에는 오슬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니 브링가케르가 초대돼 뭉크의 어린시절 바닥 낙서화에 영감을 받은 <브레인 미로>를 선보였다. p 033

 



뭉크 미술관이라고 해서 모든 층, 전시실에 뭉크 작품만 있을거라는 편견은 버리자! 각 층마다 독특하고, 개성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 건 둘째 치고, 여러 체험공간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도 체험할 수 있다는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미술관은 고리타분하다’는 당신의 편견을 완벽하게 부실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술관에 대한 내 편견을 깨부셨다.

‘절규의 방’은 조도를 낮춘 무척 어두운 공간이었다. 한 공간 안에서 그 유명한 <절규>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으나, 아뿔싸! 판화 버전 한 점만 벽에 걸려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너무 몰려 있어서 가까이 가서 보는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렵게 만난 그림이라 그런지, 관람객들은 다들 그림 속 비명 지르는 사람을 흉내 내며 인증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왜 유화 버전은 없는지 궁금해 주변을 둘러봤더니, 벽에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 가지 버전의 <절규>는 작품 보호를 위해 한 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공개된다는 내용이었다. p 025

지금은 노르웨이의 국보 대우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명화지만, 처음 <절규>가 발표됐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평론가들은 ‘정신병자가 그린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뭉크는 발끈하지 않고 그림 왼쪽 상단에 이렇게 썼다.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광기를 인정한 것이다. p 027

지금은 국민화가로 불리는 뭉크지만 생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연이어 누이를 잃었다. 아버지는 강압적이었다. 거기다 뭉크 본인과 여동생은 정신질환까지 앓았다. 업친데 덥친격이다. 뭉크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물론 뭉크에게도 연인은 있었다. 결론적으로 뭉크의 연애사는 여러모로 처참했다. 그런 뭉크가 그림을 그렸다. 당대 사람들 가치관으로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그림들이었다. 지금은 뭉크 작품으로 제일 유명한 <절규>가 바로 당대 사람들이 외면한 그림 중 하나다.


스웨덴: 뭉크와 니체를 품은 컬렉터의 집, 티엘 갤러리

문화적으로 봤을 때 스웨덴의 행운은 하나 더 있다. 바로 티엘 갤러리다. 노르웨이의 국민화가 뭉크의 작품을 노르웨이 밖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 중 하나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데스마스크도 소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섬에 지어진 건축과 미술, 조각 공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자 아는 사람만 아는 스톡홀름의 숨은 명소다. p 212

원래 이 건물은 부유한 은행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에르네스트 티엘과 그의 아내 시그네마리아 티엘이 살던 집이었다. 소장품이 늘어나자 티엘은 수집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하얀 궁전을 유르고르덴섬에 지었다. 거주 공간과 갤러리 공간이 함께 있는 빌라 형태의 건물이었다. 경제 대공황 때 티엘은 재산 대부분을 잃었다. 1922년 완전히 파산 상태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살던 빌라와 수집품, 가구까지 모두 팔아야 했다. 다행히 스웨덴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정부는 1924년 티엘의 집과 소장품을 일괄 매입한 후 1926년 국립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이후 건물은 현대화를 위해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했지만, 대부분 20세기 초에 지어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p 214


티엘갤러리는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티엘이라는 부유한 사업가가 살던 집이었다. 다만, 티엘이 워낙에 미술 오타쿠&컬렉터다보니 어느새 집에 많은 많은 미술작품이 쌓였을 뿐이다. 자연스레 집이 미술관처럼 변했고, 티엘은 내친김에 집을 갤러리 공간으로 바꿔버렸다. 역시 덕질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배웠달까. 허허허.

 무엇보다 놀라운 건, 방대한 뭉크 컬렉션이다. 층고가 높은 뭉크 홀의 벽면 모두 뭉크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티엘 부부의 초상화는 물론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픈 아이>와 <절망>도 만날 수 있다. 티엘 갤러리는 뭉크가 그린 열 두 점의 유화와 100점에 가까운 판화를 소장하고 있는데, 노르웨이를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큰 뭉크 컬렉션 중 하나로 손꼽힌다. p 222

꼭대기 층에 있는 타워 룸에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데스마스크와 뭉크의 판화 작업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1900년 니체 사망 직후 만들어진 데스마스크가 여러점의 에디션으로 제작됐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티엘은 니체의 열렬한 팬이었다. 해서 데스마스크를 소유했을 뿐 아니라, 1906년 뭉크에게 의뢰해 니체의 초상화도 그리도록 했다. 다리 위에 서서 아래의 풍경을 응시하는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티엘 갤러리에 있는 이유다. p 224

돈많은 오타쿠(!)답게 티엘은 당대 여러 화가와 교류했는데, 그중 한 명이 뭉크였다. 뭉크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 모두를 노르웨이 오슬로시에 기증했는데, 모든 작품을 기증한 건 아니었다. 자기 가족에게 주거나, 혹은 지인에게 주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티엘도 개인으로는 단연 돋보적으로 많은, 뭉크의 작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티엘은 망하고, 티엘이 소장하던 모든 작품들은 스웨덴 정부가 매입하여 국립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결과적으로 제일 이득을 본 건 스웨덴 국민들이라고 할까? 만약 티엘이 망하지 않고 자신의 미술작품들을 계속 소장하고 있었다면, 그가 소유한 모든 미술작품들은 티엘과 그 가족들만 볼 수 있었거나, 혹은 아주 비싼 값을 내고 미술작품을 보러 왔어야 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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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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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역사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기록을 남기고, 기록을 모아서 정리하고, 정리한 기록을 또 다른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가 보아온 역사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남자거나, 혹은 남자에게 유리한,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도 ‘History’, 즉 ‘그’의 이야기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가 남자의 이야기라는 전제는 어디까지나 여성과 아동이 사람이 아니었던, 부계중심사회가 시작되었던 고대부터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정립되기 직전인 근대까지다. 현대 사회, 즉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기록을 남기고, 향유하는 주체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 모두다.


조선에 살았던 여자들 기록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다. 여자들 스스로 직접 남긴 편지 같은 기록물도 꽤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역사를 향유하는 유학자였던 ‘남자’들이 직접 쓴 기록이었다. 그 기록들은 스스로를 돋보이기 위해, 여자를 매개체로 남긴 기록이 아니었다. 본인이 기록하지 않으면, 살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는 가족을 염려하여, 그녀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남긴 아버지·남동생·아들이 남긴 가족을 향한 마음이었다.



다만 좀 슬픈 사실은 이런 기록들을 읽다보면, 상류층 여성과 그 외 여성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예컨데 영응대군 부인 송씨는 왕실 가족이자 상류층 여성이었다. 물론 상류층이라 할지라도 여성이라는 한계점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씨 부인은 왕실과의 인연을 무기로 재산을 어마무시하게 늘려나갔다. 비슷한 사례로 봉보부인 백씨도 있다. 그녀는 노비였으나 왕실과 연을 맺어 상류층에 편입하게 되었고, 역시나 엄청난 재산과 지위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반대로 왕실여성임에도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된 여성들도 있다. 소현세자빈 강씨라던가, 성종비였던 폐비 윤씨 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을지언정, 그들은 상류사회 일원이었고 그에 따라 역사에 기록되거나 후손들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후손들 기억속에도 없으며, 분명 살아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았던 여성들에 대한 내용이 있다.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미가 측실이라는 이유로 없는 사람이 된 여자들이다. 아예 천민출신인 여성도 있지만, 일단 이 포스팅에선 ‘적서’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적서차별은 조선 신분제 사회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였다. 정실부인이 낳은 자녀는 적자/적녀가 되어 계속해서 정식적인 가족 구성원이되었지만, 측실부인(첩)이 낳은 서자/서녀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었다. 그래도 서자는 신분상승 기회가 왕왕 있었지만, 서녀는 그 조차도 없었다. 간혹 좋은 집안 측실로 들어가, 아들(역시나 서자)을 낳고, 그 아들이 역사를 빛낼 공을 세우면 죽어서나마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측실 출생이어도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서, 신분상승 기회조차 박탈되었던 것이다. 뭐, 여기에 더해 얼자도 있긴 한데 여기까지는 생략!


대표적인 사례가 신사임당의 두 손녀다.


신사임당은 본인부터 학문부터 예능까지 엄청난 재능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자녀들도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았다. 주기론을 주창하고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율곡 이이는 사임당의 학문적 재능을 물려받았고, 사절이라 불리던 옥산 이우는 사임당의 미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조모에 이어, 아비들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딸들 역시 여러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율곡의 딸과 옥산의 딸은 서녀였다. 그들의 어미는 측실이었던 것이다.




▶율곡 이이의 서녀

아무리 아비가 망명 높은 대가에다 힘 꽤나 쓰는 가문이라도, 측실 소생 서녀라면 혼처 자리 역시 측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친이 저명한 집안이었기에, 측실로 들어간 집안도 꽤나 저명한 집안이라는 점이다. 율곡의 서녀는 김장생의 며느리이자, 당대 최고 학자인 김집의 측실이 되었다. 그리고 와병중인 정실부인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했다.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이었던 김집은 조상에게 고하는 축문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칠십 노인이 되면 집안일을 자손에게 물려주곤 하지만 저는 후계자가 없고 또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하기도 어려워서 그저 슬퍼 탄식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집을 서술한 다른 자료에서조차도 “김집은 아들이 없다”라고 말한다. 아비가 율곡이고, 시아비가 김장생이고, 남편이 김집이었고, 아들마저 낳았지만, 그녀는 측실이었다. 측실은 없는 사람과 같았고, 측실이 낳은 아들도 없는 사람이었다.



옥산 이우의 서녀

옥산 이우의 서녀는 벽오 이시발의 측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사촌인 율곡의 서녀와는 조금 달랐다. 벽오는 그녀를 사랑하고 아꼈다. 심지어 벽오는 정실 부인이 죽었을 때는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은 반면, 측실인 옥산의 서녀가 죽었을 때는 제문을 남겼다.


“자네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잠 못 드는 날을 보내기를 반년, 결국 자네 부모의 허락을 얻어냈지. 혼인한 후에 자네의 지행을 보니 그 총명하고 명석한 재능과 단정하고 정숙한 자질이 과연 일반적인 규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자네 부모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생략). ”


심지어 벽오를 서술한 다른 자료에도 그녀에 대해 “반소처럼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가 낳고 가르친 아들들은 문, 무과에 급제하고 나라에 공까지 세웠다. 그로 인해 그녀의 아들들은 서자가 아닌, ‘적자’로 신분 상승했다. 이와 함께 그녀는 사후이긴 하나, 벽오 이시발의 정실부인으로써 ‘정경부인’에 제수되었다.


이 둘은 분명 신사임당의 손녀였고, 율곡 이이와 옥산 이우의 서녀였으며,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녀들이 물려받은 재능과 출신은 같았다. 하지만 그녀들을 측실로 맞이한 남편들은 행동은 너무나 달랐다. 김집은 측실과 측실의 자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반면, 이시발은 측실과 그 자녀를 사랑과 존중으로 대했다. 현대인 관점으로 보면 후자가 당연하고, 전자가 이상하게 보이지만, 당대 관점으로는 그 반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신사임당의 두 손녀 이야기는 여러모로 씁쓸한 사례다.



이번에는 다산 정약용 이야기다. 다산은 남겨진 기록만봐도 엄청난 애처가임을 알 수 있다. 다산이 남긴 수많은 저서에 아내 홍혜완에 대한 내용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아내와 수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고,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조차도 오로지 아내의 안위를 챙겼다.



다산 정약용의 정실 홍혜완

“우리 이별은 그렇다 치고 너희는 언제 어머니 모시고 고향 집에 돌아갈 것이냐. 되도록 빨리 돌아가도록 하라. 너희 어머니 안색이 위험하니 영양있는 음식으로 보하고 약을 써서 다스리도록 유의하여라.”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 그리하여 두 아들은 효자가 되고 두 며느리는 효부가 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그대로 늙는다고 해도 유감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힘쓰도록 하여라.”


다산과 홍혜완만큼 금슬이 좋은 부부가 조선에 얼마나 있었을까? 심지어 이정도로 남편의 존중을 받는 아내가 얼마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면 조선에선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다산은 조선 제일의 애처가였다. 하지만 다산의 그런 면모는 오로지 정실부인인 홍혜완에게서만 보일 뿐이다. 강진 유배시절 자신을 보필하고 딸 홍임까지 낳은, 홍임 어미에 대한 기록은 단 한줄도 남기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의 측실 홍임어미

그녀는 기나긴 강진 유배시절, 다산의 곁을 지키며 그를 보필하고 딸 홍임을 낳은 여자다. 하지만 홍임어미와 홍임의 존재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다산의 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실부인 홍혜완이 낳았지만 요절한 아이들에 대한 기록은 절절하게 남긴 다산이었지만, 홍임과 홍임어미는 예외였다. 그렇다고 아예 작정하고 홍임어미와 홍임을 숨겼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묵은 가지가 다 썩어가는 즈음에 갑자기 푸른가지가 나와 꽃을 피웠다”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더지만 꽃을 활짝 피웠구나.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의 어린 새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



다산은 시를 쓰며 은근하게 홍임어미와 홍임을 그려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해배된 이후 홍임 어미와 홍임은 다산의 본가로 찾아갔지만, 내쳐졌다. 아마도 다산의 정실부인인 홍혜완에 의해 내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다산이 남긴, 아내에 대한 기록으로 추정하면 말이다.


“내 아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만 속이 좁은 것이 문제다”


홍혜완 입장에서는 유배간 남편을 대신해 가문을 이끌고, 고생을 해왔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첩을 들였으니 좋게 보였을리 만무하다. 따지고 보면 홍혜완이나 홍임어미 두 여자는 그저 다산이라는 남편을 만난 것 뿐인데 말이다. 애초에 문제의 씨앗을 뿌린건 다산이었다. 다만 다산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홍혜완에게 떠넘겼을 뿐이다. 이렇게 내쳐진 홍임 어미와 홍임은 어떻게 살았을까? 남겨진 기록은 없으나 《남당사》라는 시로 추정컨데, 이들 모녀의 삶이, 그 끝이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편에게 사랑과 존중을 받았던 홍혜완, 반면 소용이 없어져 남편에게 버려진 홍임어미. 두 사람의 남편은 다산 정약용, 같은 인물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서자, 서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양반네들 본인들은 첩을 들였지만, 첩은 첩일뿐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첩이 낳은 자녀들도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적자에게는 없는 재능을 가진 서자, 서녀라면 더 심각했다. 간혹 아비, 남편이 누구냐에 따라 위에 나온 벽오처럼 측실과 서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한 사례도 있긴했지만 흔치 않았다. 그만큼 조선에서 서자, 서녀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조선 오백년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왜? 이런 사회문제와 구조를 만든 건 다름아닌, 권력을 지녔던 양반들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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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뉴스에 어휘력, 문해력 문제에 대한 보도가 증가했다. 뉴스에서 말하는 어휘력, 문해력 문제는 쉽게 말하면 이거다. 분명 글을 읽을 수는 읽는데,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예컨데 ‘사흘’이라는 단어를 4일이라 이해하거나, ‘금일’이라는 단어를 금요일로 이해하거나, ‘중식’이라는 단어를 중국음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가 청소년 뿐만 아니라, 다 큰 성인들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이게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자, 어른의 어휘력, 문해력과 관련된 책들이 인기를 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어휘력, 문해력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솔직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흘을 4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진짜 있다고? 심지어 저렇게나 많다고? 에이 거짓말. 솔직한 내 반응이었다. 만약 저런 사람들이 있다고 치더라도, 일부 소수라 생각했다. 뉴스에서 과장하여 보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내 주변에도 저렇게 어휘력, 문해력이 부족한 어른들이 많았다. 그것도 엄청(!!!) 많았다. 그것도 우리 회사에.

오늘 리뷰하는 『어른의 국어력』은 어휘력, 문해력이 부족한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내 주변에 있는 그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회사에서 어휘력, 문해력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실제로 관련 책 리뷰를 블로그에 쓰기도 했었고). 심지어 굳이 그들이 보는 앞에다 책을 올려놓기도 했다. 왜? 제발좀 그들이 읽어줬으면 해서!! 그들에게 대놓고 읽으라고 추천하면 괜시리 마음 상할 수 있으니, 책을 은연중에 노출시키는 방법을 선택한거다. 그러면 누군가는 ‘저 사람은 저런 책도 읽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도 한 번 읽어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내가 이렇게 책을 노출해서, 그 책을 읽은 직원들도 있었고.

근데 이 책 『어른의 국어력』을 다 읽고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 책은 어휘력이나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어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책이라고나 할까. 왜냐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올바르게 읽고, 예의 있게 말하고, 나를 빛나게 하는 쓰기 방법이기 때문이다.

읽고, 말하고, 쓰는 건 다들 기본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 모두가 읽고, 말하고, 쓰는 건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들 장담할 수 있을까? 내가 읽는 방법이 올바른 건지, 내가 말하는게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는 건 아닌지, 내가 쓰는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을 하고 있는게 맞는건지 등을 말이다.

국어의 가치가 달라진 요즘입니다. 잘 정비해두지 않으면 어른으로서의 교양 그 자체를 평가받는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방적 소통이 주를 이루던 시대가 지나고 양방향 아니 역방향, 즉 약자에게서 강자를 향한 커뮤니케이션이 대세가 되면서 말하고, 쓰고, 읽는 국어력이 나 자신을 대변하게 되었습니다. p 017

요즘 소통방식은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의 말을 듣는 일종의 일방향 소통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위고하 막론하고 누구든 읽고, 말을 하고, 듣는 사회다. 심지어 SNS등의 발달로 인해 양방향이 아닌 다방향(!!) 소통 시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말, 내가 어딘가에 쓰는 글, 내가 어딘가에서 읽는 글 모두가 중요해졌다. 말 한 번 잘못하면, 글 한 번 잘못쓰면 배척되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 책은 크게 읽기, 말하기, 쓰기 3가지 주제로 진행된다.

  1. 읽기: 상위 1퍼센트의 책장에서 찾아낸 레버리지 독서법

  2. 말하기: 말을 할 거라면 그 말은 침묵보다 나아야 한다.

  3. 쓰기: 당신이 쓴 글이 당신 자신을 보여준다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단정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사실 사람들이 읽는 글의 양은 최근에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TV프로그램을 보면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에 자막까지 넣어주지 않습니까. 문해력 부족의 원인이 듣고 읽는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지만 글을 쓰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도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간혹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하던 행태를 버리지 않는, 그런 태도로 쓰고 말하는 사람의 불친절함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p 199

아래에 읽기 및 말하기 부분에 대한 내용 일부를 발췌하였다. 어라, 이제보니 이렇게 책 리뷰하는게 저자가 말한 ‘발췌독’ 및 ‘독서목록’ 만드는 거였군! 내 나름대로 올바른 읽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뿌듯하다.

▶ 읽기: 상위 1퍼센트의 책장에서 찾아낸 레버리지 독서법

이제 완독과 정독에게 이별을 고하고 편하게 책을 읽어봅시다. 책을 읽는 것은 국어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책에 굴복당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실행해야 할 독서법은 발췌독, 즉 ‘골라독’ 입니다. 골라 읽으면 됩니다. 책 한 권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자신에게 필요한 10퍼센트만 찾아 읽어도 대성공이라고 여유있게 생각하세요. p 034

지금 나에게 러닝메이트가 아닌 리딩메이트 한 권 정도는 있어야 인간답게 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모르는 낱말들이 마치 지뢰밭처럼 깔려 있거나, 문장 하나의 길이가 무려 반 페이지에 이르는 그런 책을 함부로 골라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 분야에서 일한다면 산업안전과 관련된 책을 열심히 읽는 것이 세계 명작을 읽는 것보다 더 유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분야와 관련된 책을 먼저 읽고, 그 뒤에 서서히 다른 책에 접근하며 독서 습관의 지평을 넓혀가면 좋겠습니다. p 039

독서 목록이라고 해서 양식이나 방법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삶에 유효하게 느껴진 책에 대한 평가를 짧게 정리하기면 하면 됩니다. 글은 다이어리에 써도 좋고, 휴대폰 메모 앱에 저장해도 좋습니다. 먼저 책 제목을 쓰고, 아래에 책에서 얻은 실질적 도움이나 앞으로 내 삶에 적용해보고 싶은 부분을 써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책에서 읽은 인상 깊은 구절만 써도 됩니다. 그런 목록이 여러개 쌓이다 보면 이미 올바른 독서는 여러분의 습관이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p 049

접고, 밑줄 긋고, 그리고 찢고, 이 과정에서 읽기 능력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 나고 책이 있는 거지, 책 나고 사람 난건 아니니까요. 독서를 통해 우리의 생산성을 다양한 분야에서 높이고 싶다면 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책은 반드시 우리를 위해 철저하게 봉사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것, 기억해주십시오. p 059

▶ 말하기: 말을 할 거라면 그 말은 침묵보다 나아야 한다

여러분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인격을 송두리째 훼손당한 경험은 없는지요? 또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준 경험은? 말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의 영역을 최소한도로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선’을 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요? 퇴근시간에 임박했는데 갑자기 윗사람에게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퉁명스럽게 “싫어요” 라고 대꾸할것인가요. 이는 여러분을 지키지 못함은 물론 말을 잘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에도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렇게 반갑지 않은 제안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됐을 때를 대비해 다음과 같은 예시를 알아두고, 현명하게 대처하기를 바랍니다.

[1단계] 매너 있는 태도: 상대에게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2단계] 상처 주지 않는 말하기: “좋은 기회인데 어쩌죠, 두통이 심해서…… 쉬어야 겠습니다.” p 080

가끔은 조금 강하게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말하기도 필요합니다. 무례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세상 여기저기에 많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감정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무례함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조금만 더 당당해지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인 여러분이 여성이고 싱글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어느날 점심 식사 시간에 “남자친구 있어?”라는 말을 상사에게 늦게 된다면 “소개팅해주시게요?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치면 됩니다. p 081

핵심을 말하는 기술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역량입니다. 말을 듣는 사람이 의사결정 선택지에서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 핵심이란 ‘할 말 만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습니다. 할 말을 꼭 하겠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부터 보고는 중구난방이 됩니다. 보고를 할 때는 가능하면 60초, 길어봐야 120초 정도가 적당합니다. p 085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비워야 할 때 비울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갖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상대방의 나쁜 점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점을 찾아낼 여유도 생기는 것이지요. 이미 고집과 아집으로 꽉 찬, 수용을 거부하는 팍팍한 마음으로는 인간관계가 나아질 수 없습니다. 잘 비웠다면, 상대방의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제 우리의 말하기는 ‘절제’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p 100

친구라고 생각이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생각이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관계가 행복에 가까워집니다. 그래도 가끔은 고쳐주고 싶다고요? 그러지 마세요.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설령 그가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더라도 그냥 놔두세요.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에 개입하고 비판하는 순간 그 관계는 멀어지게 됩니다. p 112

세상에 배척의 대상이 되고 싶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른의 말하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어런의 말하기는 자기 욕망을 타인의 욕망과 혼동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바라는 것을 타인 역시 바란다고 생각하는 화법은 일명 요즘 말하는 ‘라떼의 말하기’, 혐오스런 어른의 말하기가 됩니다. 존중받기는 커녕 배척받기 딱 좋습니다. p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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