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레스토랑 - 오지랖 엉뚱모녀의 굽신굽신 영업일기
변혜정.안백린 지음 / 파람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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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든, 무엇을 하든 ‘친환경’을 생각해야하는 시대다. 대기업들은 이미 앞다투어 ESG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기업이나 영세업체들은 ESG는 고사하고, ‘친환경’도 어려운게 현실이다. 사업주 본인이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사업장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기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모녀가 있다. 이 모녀는 현재 서울에 위치한 비건 레스토랑 ‘천년식향’을 꾸려가는 오너이자, 이 에세이를 쓴 사람들이다. 여기서 조금 놀라운 건, 그들의 이력이다. 모녀 모두 소위 말하는,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것도 특정 소비자를 타겟으로 하는 ‘비건음식’을 만들고 ‘제로웨이스트’ 까지실천하는 고급 식당을 말이다.

누가봐도 어려운 길인데, 이 어려운 길을 뛰어들다니! 이 일을 강력하게 밀어부친건 다름아닌 딸 안백린 쉐프였다.

동물권 옹호자이자 비건을 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딸 안백린. 딸이 못마땅에 언제나 잔소리를 했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있던 엄마 변혜정. 엄마는 딸이 하는 일을 못마땅했고, 딸은 엄마가 하는 말이 ‘입 발린 소리’라고 못마땅해했다. 딸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엄마는 딸을 지지했다. 그렇게 고급 파인 다이닝 식당이자, ‘비건’식당이며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천년식향이 탄생한 것이다.

그냥 ‘장사’도 힘든데, 그들이 선택한 길은 일반적인 ‘장사’보다 더 힘든 자갈+가시밭길 콜라보! 그럼에도 그들은 그 힘든 길을 걸었다.

물론 그 순간의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자들에게 나의 말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었으며, 때로는 불편한 내 말은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또 대안 없이 비판적 주장만 한다는 비난도 많았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실천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정작 내가 실천하려고 하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참 많은 말들을, 쉽게도 했구나 싶다. 그러나 장사는 내가 ‘꼰대’라는 것을 매일 깨닫게 해준다. p 032


저자는 천년식향을 운영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별다른 의미없는 본인의 행동이, 어떤 식당 주인에게는 진상으로 다가서진 않았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특권층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특권층에 속했고 아주 당연히 그에 대한 대우를 요구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싫어하는 건 남도 싫어한다는 모토를 가지며 살았다.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가 철저하게 내 기준에서 ‘진상’짓을 하려고 하면, 먼저 나서서 제지하고는 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내 행동이야말고 그 사람에게 진상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저 모든 이에게 민폐가 아닌, 오로지 내가 그 행동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딸은 말했다. 52시간 노동법을 지키고 있지만, 그렇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자기는 문재인이 아니라 홍준표를 지지해야겠다고. 평소 인권과 차별에 감수성 있었던 딸은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사장이 살아야 직원도 산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알아야 한다며, 과연 식당에서 일해보고 정책을 만드는 것인지를 따지며, 나를 원망했다. 직장 내 괴롭힘부터 노동법까지 매일 훈수했던 나는 자영업자의 딸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다. p 040

지나고 나니 가장 안타까운 점은 본인이 한 공사비용은 지출 처리나 부가세 공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딸이 몸으로 때운 비용들, 그리고 제로 웨이스트를 위한 황학동 중고물품 구매 등은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아 실비용조차 지출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 당시는 몰랐던 이 사실은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통장 잔고를 넘는 부가세가 폭탄처럼 날아와 거의 기절할 뻔 했다. 이런 일에 대비한다고 개업 초부터 세무사와 거래하고 있었으나, 알고보니 그들도 맞춤형으로 알아서 조언해주지는 않는다. p 048

52시간 노동법, 인건비, 세금문제…. 이 모두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겪고 있는, 언제까지고 해결해나가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소위 지식인들은 입바른 말을 한다. 현실적인 대안은 무시한채. 엄마 저자 역시 그런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딸 저자는 그런 지식인들을 원망하는 현실을 사는 자영업자였다. 실제 자영업자들 현실문제를 눈 앞에서 목도한 엄마저자는, 그저 침묵했다. 아니,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마저자의 침묵은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깨달은, 참회의 침묵이었다.

천년식향은 ‘가치를 판매하는 사업장’이 되고 싶었다.

현재 한국의 미식 문화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잠정적 결론이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천년색향의 불편함을 소개하면서도

감히 손님들에게 그 불편함을 요청했으니

참 건방지고 불편한 가게다.

불편한 레스토랑 p 070

여기까지가 자영업을 시작하며 느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소회라면, 아래는 ‘천년식향’ 운영방향에 대한 소회다. 일반 적인 고급 다이닝이 아닌, 무려 ‘비건’ 음식에다가,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식당인 만큼 일반적인 식당과는 운영방향이 사뭇다르다. 여기선 음식을 소비하는 고객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환경 아니 지구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고객은 지구를 위해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게 이 식당의 룰이다.

그동안 얼마나 불편하셨어요? 정말 힘드셨죠. 참 죄송합니다.

천년식향은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여 일회용 물티슈도, 냅킨도 없습니다. 깨져도 괜찮은 돌그릇을 사용합니다. 앞접시는 부득이한 경우에 요청시 바꿔드립니다. 설거지 세제 또한 석유가 아닌 코코넛 베이스의 인체에 무해한 세제를 쓰며, 대부분의 음식 재료는 친환경 또는 못난이 채소입니다. 모든 음식을 맞춤형 수제로 만들기 위해 적은 손님만 모십니다. 외부 음식 반입이 되지 않습니다. 영업시간 전에는 직원복지를 위하여 출입이 불가합니다. 모든 성적 지향을 존중하며 화장실도 남녀 구분 없는 젠더 프리 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올라오기 힘드십니다.

식물성이지만 비건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음식의 시즈닝이 복합적이라 강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비슷한 재료가 들어간 자극적인 메뉴 세 개 주문을 지양합니다. 빵, 밥, 피클이 메뉴에 없습니다. 내추럴 와인만 와인 리스트에 있습니다. (이하 생략)

불편한 레스토랑 p 070

간혹 TV에서 비건 음식을 본 적이 있다. 육류는 일절 없는게 확실한데, 분명 TV에서 나오는 음식 형태는 ‘스테이크’다. 육류가 아닌 채소로 육류의 질감과 맛을 표현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몇 배의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다.

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지점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주부 나이대 여성들이 가성비만 따지는 모습이었단다.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요리를 해야 맛있다는 것도, 그것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까지도 몸소 느끼고 있을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같은 주부로서 너무나 씁쓸한 이야기였다. p 040

심지어 천년식향은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다. 유기농을 사용하면 금액대는 더 오른다. 요즘 아기를 키우면서, 유기농을 자주 사다보니 ‘유기농’이라는 단어만 붙어도 얼마나 비싸지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가성비를 따지는 한국인. 참 슬프게도 아기가 먹는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가성비 위주로 장을 보고 음식을 사먹는다.

조금 생각해보면, 유기농이 왜 비싼지는 답이 나온다. 시중에는 채소 포함 식물을 키우기 위한 여러 비료 및 농약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약품들이 환경에 좋은지 생각해보면, 그 답은 NO 다. 농약을 생각해보자. 다년간 농약 살포는 토양을 오염시켰다. 뿐만아니라 꿀벌들을 사라지게 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 생태계는 무너진다. 단순히 꿀벌만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농약’ 사용에 대한 단적인 예시다.

비건 음식도 그렇다. 비건은 그 속에서도 종류가 나뉘긴 하지만, 뭐 단순하게 육류를 안먹는 사람이라고 치자. 사람들이 먹는 육류는 보통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다.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은 대규모 농장에서 키운다. 가축의 양이 많은 만큼 폐기물이나 분뇨가 어마무시하게 나온다. 그에 따른 탄소 배출도 어마무시하다. 뿐만 인가? 가축들을 먹이기 위한 사료를 공급하기 위해, 또 어딘가에서는 많은 양의 물을 끌어다쓰고 농약을 치며 곡식을 키운다.

지금까지 수많은 다큐를 보며 알게된 내용들이다. 어라? 이렇게보니 나도 환경 자체에는 꽤 관심은 많은 편인..것 같기는 하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천년식향의 또 다른 모토인 ‘제로웨이스트’. 이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해볼수 있고,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실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실천하는 장소가 사업장이라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보통의 한국 소비자들은 깨진 접시에 내가 먹을 음식이 나오는 것을 반기지 않을 테니까. 왜? 돈을 낸 만큼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식당을 표방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근데 잘 생각해보면, 그 옛날 인류는 지구에 친절한 토기를 사용했다. 지금처럼 지구에 불친절한 플라스틱이나 여러 소재가 짬뽕된 그릇들이 아니라!

천년식향은 깨진 그릇도 사용한다. ‘제로 웨이스트’ 컨셉트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실은 그릇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가격이 있는 식기를 손님도 깨고 직원도 깬다. 그러나 손님들은 이 나간 그릇을 싫어한다.손 다칠 수 있어서 싫어하나 했는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깨진 그릇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했다. 이것은 손님이 나를 부르는 첫째 이유이기도 하다. p 090

최근데 시카고의 미슐랭 1스타 다이닝에 갔었다. 그곳의 식기들은 찌그러진 깡통에서부터 돌, 조개껍데기, 일회용 케첩까지 정말 다양했다. 가격도 비싼 미슐랭 3스타부터 가이드까지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떤 누구도 가게의 특별함, 기이함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긴다고 할까? 외국의 다이닝 경험이 물론 모범사례는 아니지만, 그 다양성만큼은 존중하고 싶다. p 092

해외 유명한 식당 중에는 제로웨이스트를 시행하는 곳들이 있다. 심지어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고급 식당이다. 그 식당을 갔던 고객들은 이에 대해 클레임은 커녕,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국내에서 이런 모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음. 향후 1백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그들과 다른 문화권인 이유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정말 깨끗하게 세척해서 재활용하는게 맞는지에 대한 신뢰도가 없기도 하고.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는 그놈의 돈 때문에(!) 음식가지고도 장난하는 업자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보니 버려지는 기물들을 깨끗하게 세척해서 재활용한다는 자체를, 그저 돈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돈 아끼려고 그러는거 같은데 세척은 제대로 하기나 할까? 라는 식으로 꼬아서 생각하게 된다. 분명 좋은 취지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게 다 이기적인 일부 업자들 때문에 생겨난 편견이라면 편견이랄까.

​​

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친환경 신기술, 비용 같은 그런 물질적인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마도 미래에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아름다움’, ‘불편함’의 정의가 변해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기후위기 대책을 보니 너무 배울 것이 많았다. ‘추우면 겉옷을 입고, 냉방을 하면서 절대 문을 열어놓지 않는다’같은 기본적인 부분부터 실천하려는 자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p 076

이처럼 환경을 고려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순간 귀찮지만 결국 나, 그리고 내가 사는 지구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을 믿고 현재의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하자! 어쩌면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창과 방패처럼 각 개인이 직면한 모순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p 079

천년식향은 비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여러 문제점을 마주했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그들의 가치관과 정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인간은 보다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바다를 메웠고,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았다. 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 수많은 교통기관을 만들었다. 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수많은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보다 편리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일회용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빙하가 녹고, 바다 수온이 오르고,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인간이 ‘편리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하자, 환경이 파괴되기 시작한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환경파괴로 인해 제일 큰 피해를 입게 될 대상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동, 식물들도 많은 피해를 입겠지만 말이다. 문득 일전에 읽었던 김상욱 교수의 저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런식으로 환경이 파괴되면, 종국에는 인간의 대멸종을 불러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수차례 대멸종이 있었는데, 대멸종의 대상은 언제나 당시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현재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인간이 그저 ‘편리함’만을 위해 환경파괴를 지속하면, 그 부메랑은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아니 이미 부메랑은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부메랑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 뿐이다.

천년식향은 부메랑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최전선에 나와있는 것 뿐이다. 비건이나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여, 인간이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는 걸로 지구 환경에 안정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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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 - 인물열전 편
이영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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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역사적 인물을 소개하는 책들은 대게 그들의 굵직한 업적(과오 포함)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업적에 대해 아주 세세하게 A~Z까지 설명한다. 거기에 더해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조미료처럼 들어간다. 빛나는 업적은 잘했다는 해석과 과오는 못했다는 해석이. 그래서 대다수는 역사적 인물의 굵직한 업적은 눈 감고도 술술 외울정도로 잘 알고 있다. 예컨데 이런식이다. ‘세종대왕=훈민정음/겨레의 스승!’, ‘정조=초계문신제, 장용영설치/ 조선의 르네상스!’ 같은.

그러다보니 이 책도 그런 류의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웬걸?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역사책들은 한 인물에 대해 평면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은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함과 동시에, 인물에 대한 편향적인 해석도 최대한 지양했다. 문득 저자가 머릿말에 쓴 문장이 떠올랐다.

“나만의 해석을 내리고 또 타인과 그 해석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은 역사공부가 될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있을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

이 역사책은 타인의 역사적 해석을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 역사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주기 위한 일종의 역사 지침서였다.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것도 맘에 들었지만, 마음에 드는 점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이 책의 구성이다. 뭐랄까, 구성방식이 국사책스럽달까? 물론 요즘 국사책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왠지 국사책스러운 느낌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학창시절 국사책을 제일 좋아했어서 그런가, 괜시리 더 손이간다.


책 구성도 그렇고 내용도 읽기 쉽다보니, 청소년 역사책 추천도서로도 이만한 책이 없지않나 싶다. 우리 딸이 응애 애기만 아니었어도, 같이 읽는 건데. 아쉬울 따름!

보수의 방패와 개혁의 칼을 동시에, 정조


조선 제 22대왕 정조. 우리나라에서 정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극 드라마/영화 주인공(또는 조연)으로도 자주 나왔던 왕이고, 학교 국사시간에서도 무조건(!) 배우는 왕이니까. 어떻게? 영조와 함께 탕평책을 실시하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일으켰으며, 지금의 수원을 핫하게(!) 만들어준 수원화성을 조성한 사람이니까.

TMI이긴 한데, 나에게 정조는 아직까지도 이서진인데ㅋㅋㅋㅋㅋㅋ 흐흐흐흐. 요즘 친구들에게 정조는 이준호라며! 아 물론 나도 그 드라마를 잘 보긴 했지만(개인적으로 덕화쌤의 영조 정말 와 진ㅉㅏ 와!!!), 그래도 나에게 정조는 이서진bb.

세손은 자신의 외척인 홍봉한-홍인한 형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의 외할아버지도 모두 노론 사람이었으며 사도세자의 죽음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손은 정순왕후를 자주 찾았고 정순왕후도 차기 국왕이 될 세손과 척을 질 필요가 없었기에 두 사람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홍봉한은 그런 세손을 어느정도 이해했으나 홍인한은 노골적으로 외가를 멀리하는 세손을 탐탁지 않아 했다. 혼자서는 세손을 막을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홍인한은 정후겸과 손을 잡았다. 정후겸은 영조의 딸 화완옹주의 양아들이었다. p 115

정조는 홍인한의 형 홍봉한만은 지켜주었는데,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가 홍봉한마저 압박했다. 이에 대한 정조의 대응이 충격적이었다. 정조는 김귀주를 파직한 뒤 유배를 보내 버렸다. 김귀주는 평생 복귀하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이런 처분에 큰 배심감을 느꼈다. 정순왕후 쪽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지만 척신정치 청산을 원했던 정조에게는 정치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김귀주 또한 외척 출신으로 척신정치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토사구팽이었다. p 116

1777년(정조 1년) 7월 28일 정조의 집무실이었던 경희궁 존현각에 자객이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책을 읽느라 자지 않고 있던 정조는 다행히 지붕 뜯기는 소리를 듣고 피했지만 국왕 암살 미수 사건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국문결과 이들을 사주핸 배후는 홍상범으로, 바로 홍봉한-홍인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이 일로 정조는 홍봉한을 제외한 홍씨 집안 전체를 풍비박산 냈고,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었지만 은전군에게도 사약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인 1778년 정조가 끝까지 지켜 주었던 외조부 홍봉한까지 눈을 감으면서 마침내 영조 대의 척신들이 모두 사라졌다. p 117

정조의 세손시절 일생이야 많이 알려져있고, 등극 이후의 일생도 잘 알려져있지만, 대중들이 잘 모르는 점이 있으니 바로 정조가 인력활용에 있어서 종종 사용한 ‘토사구팽’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뒤를 이어 까면 안되는 왕 중 하나인 정조다보니, 역사교육이건 대충매체건 정조의 안좋은 면은 왠만하면 부각을 시키지 않는 편이다. 무엇보다 정조가 잘한 업적들만 이야기해도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가니, 굳이 안좋은 면을 부각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정조 업적: 규장각/초계문신제도, 장용영 설치, 신해통공(금난전권 폐지), 수령권한 강화(및 암행어사 파견빈도 多), 수원화성 조성(인부들에게 임금 지급) 등등. 겁나 많음.

하지만 이 책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조금이긴 하지만 정조의 토사구팽 사례를 포함하여, 정조 후반대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신해박해), 문체반정, 세도정치 시발점까지도 이야기한다.

* 신해박해

1791년(정조 15년) 보수적인 유교적 가치를 지향하던 정조에게 시험대 같은 사건이 터졌다. 오늘날의 충남 금산 진산군에서 천주교 신자였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윤지충의 모친상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다며 천주교식으로 신주를 불태워버렸다(진산사건). 진산사건은 조정에도 논의의 대상으로 보고가 되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천주교를 서양에서 전래된 학문, 즉 ‘서학’이라고 불렀다. 정조는 윤지충과 권상연 두 사람을 처형했고,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 베드로를 포함 관련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어 삭탈관직 되거나 유배령을 받았다. p 124

* 문체반정

정조는 ‘서양학을 금지하려면 먼저 패관잡기부터 금지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명나라 말에서 청나라 초기 중국에서 대중문학이 크게 유행하고 조선으로까지 넘어왔는데 정조는 대중문학이 성리학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며 패관잡기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신해박해 사건이 있고 1년 후였던 1792년(정도 16년) 정조는 당시 노론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패관문학의 풍조를 맹비난하고 고전의 문체를 부활시키라며 특명을 내린 ‘문체반정’을 일으켰다. p 125

* 세도정치의 길을 엶

정조는 본인이 없어도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아들을 보필할 정치적 동반자를 키우기로 한다. 자신의 정책에 따르는 시파이면서 충분히 아들을 보필할 수 있는 명문가 출신의 인물을 물색한 결과 안동 김씨 가문의 김조순을 선택했다. 김조순은 정조의 사돈이자 곧 왕이 될 세자의 장인어른이 되었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척결한 외척을 자기 손으로 다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해에 정조는 사망했다. 11살의 어린 아들이 외조부인 김조순의 보호 속에 23대 왕 순조로 즉위했다. p 131

물론 이 책이 정조가 시행한 신해박해, 문체반정과 손수 없었던 외척등용 등 어두운 업적을 자세하게 서술한 건 아니다. 예컨데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사상통제 및 학문이 억압되었고, 실학자들이 청에서 배워온 개혁안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웠다거나 이런 내용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정조의 과오도 설명한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내리고 싶다.

동양 평화를 위해 ‘이것’ 해야 한다, 안중근

누군가 당신에게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가 누구인가요? 하고 물어본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떠올리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안중근’이다. 익히 알려진 그의 행적은 이렇다. 하얼빈에서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고, ‘동양평화론’을 주장하였으며,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수많은 글을 남겼다는 것. 여기서 조금 더 보태면 안중근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이 예정된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정도가 있겠다. 이러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행적은 공교육에서도 아주 당연하게 배우고, 여러 대중매체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이 책에서도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행적이 실려있다.

여기까지라면 이 책 역시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이야기하는 수 많은 역사책(또는 교과서)와 다를바 없었을 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거기에 더해 잘 알려지지 않은 안중근의 이야기 및 안중근의 가족 이야기를 포함했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바라보려한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특히 안중근 사후 남은 가족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말이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에 그 뜻이 크도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

북풍은 차가워도 내 피는 끓는구나

강개한 뜻으로 한번 가면 기필코

쥐새끼 같은 도적을 죽이고 말리라

우리 동포여, 우리들이 힘들인 임무를 잊지 마소서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안중근 <장부가>

독립운동 당시 안중근 의사 행적은 워낙 잘 알려져있고, 유명하기도 하니 생략하고. 안중근 의사 사후 남겨진 가족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안중근의 가족들은 모친과 형제, 아내와 아들 딸로 나뉠 수 있다.

* 안중근 모친 조 마리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두 아들 안정근과 안공근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조마리아 여사도 거처를 상하이로 옮겼고 이곳에서 김구의 모친이었던 곽낙원 여사와도 침하게 지냈다. 192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여러가지 이유로 무너지고 있을 때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조마리아 여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제후원회’의 임원이 되어 물질적 후원을 하기도 했으며, 이듬해인 1927년 위암으로 별세하셨다. 거물급 독립운동가들이 여사의 장례를 치러 주었지만 상하기 교민회 쪽 사람들의 실수로 묘소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현재는 묘소를 찾을 수가 없다. p 147

* 안중근 여동생 안성려

(안중근의)첫째 여동생 안성녀는 오빠의 죽음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에 힘썼다. 구체적인 기록 없이 증언으로만 전해질 뿐인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편과 함께 독립군에게 피복을 제공해주었고, 남편 사후엔 만주로 넘어가 문서 정리 및 자금 조달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가 이곳에서 숨을 거두어 묘소도 부산에 있다. p 147

* 안중근 남동생 안정근과 안공근

안중근의 남동생들인 안정근과 안공근은 안중근의 사형집행 후 둘다 러시아군으로 입대하여 일본군과 싸우다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했다. 첫째 동생 안정근은 김구와 사돈 관계를 맺었으며 임시의정원의 의원이기도 했다. 그는 상하이와 북간도를 오가며 독립전쟁을 격려하고 주도했으며 형 안중근이 존경했던 안창호를 따르기도 했다. (…) 해방 후에도 몸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다가 1949년 상해에서 영면했다. 현재 그의 유해도 찾지 못하고 있다. p 148

둘째 남동생 안공근의 초반 독립운동은 형 안정근과 비슷했따. 한때 김구의 참모라고도 불렸지만 후반기에 독립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에 김구는 안공근을 멀리했다. 무엇보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와중 김구는 안중근의 가족을 보호해주고 있었지만 상하이 여의치 못하자 안공근에게 안중근의 가족을 부탁했는데, 안공근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으면서 김구와 더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했을 때였던 1939년 안공근은 실종되었고 아직까지도 죽음의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p 148

안중근의 모친과 동생들도 독립운동을 했다. 특히 안정근은 안창호를, 안공근은 김구를 따랐다. 그들의 결말은 아니나 다를까,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비슷하다. 다만 둘째 남동생 안공근의 행보는 조금 미심쩍다. 특히 독립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의혹과 안중근의 아내와 자녀를 챙기지 못한 일들이. 아래에서 서술하겠으나, 안공근이 안중근의 아내와 자려를 챙기지 못한 일은 엄청난 후폭풍으로 돌아온다.

* 안중근 아내 김아려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여사는 남편의 의거 후 일제의 지난한 취조와 심문을 받았으며 남편 사후에는 헤이룽장성 무링에 숨어 살다가 시댁이 임시정부 활동을 위해 상하이로 갔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갔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안중근의 둘째 동생 안공근이 상하이에 있던 안중근의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아서 김구와 멀어졌을 때, 그 가족이 바로 김아려 여사와 그녀의 아들들이었다. 이 때문에 김아려 여사는 일본군에게 잡혀가 협박과 감시에 시달려야만 했다. (…)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여사도 두 자식의 박문사 참배로 인해 위신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중 두 남매의 귀국 직전인 1946년 사망했다. 김아려 여사의 무덤도 소재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p 148~149

* 안중근 큰 아들 안문생

안중근과 김아려 여사 슬하에는 2남 1녀의 자식이 있었다. 장남 안문생은 아버지 사형 이후 가족이 다 같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갔다가 얼마 안 있어 1911년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 누군가 건네준 과자를 먹고 즉사했으며 그의 나이 겨우 7살이었다. p 148

* 안중근 둘째 아들 안준생과 딸 안현생

안중근의 딸 안현생은 아버지의 의거 후 명동성당에 숨어 살다가 191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족들과 합류한 뒤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독립운동가 황일청과 혼인했다. (…) 1939년 식민지 조선의 7대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가 상하이에 있던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을 강제로 귀국시켰다. 그리고 서울 남산에 있던 박문사로 데리고 갔다. 안준생을 협박하여 아버지 대신 사죄하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참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년 후에는 누나 안현생과 남편 황일청도 강제로 귀국하여 역시 박문사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참배했다. 안준생과 안현생의 이토 히로부미 참배는 대서특필되었고 김구를 포함해 수많은 조선인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배신자라며 두 사람을 맹비난했다. 친일파 낙인이 찍혀버린 안현생의 남편 황일청도 독립운동가들에게 살해됐다. 안준생과 안현생 남매도 독립운동가들의 표적이 되어 중국으로 도망쳤다가 해방 후에는 귀국하여 숨어 살아야만 헀다. 안준생은 1951년 부산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누나 안현생은 그나마 천주교회의 도움으로 교편을 잡으며 생활하던 중 1959년 서울에서 사망했다. p 149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 아내와 자녀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보호아래 있었다. 하지만 최재형 역시 일본에 의해 죽었고, 최재형 가족들 역시 누군가를 온전히 챙길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실제로 최재형 사후 최재형 가족들 역시 힘들게 살았으니). 뿐만 아니라 당시 어렸던 큰아들 안문생이 독살을 당한 사실도 거처를 옮기는데 힘을 보탰을 것이다. 그렇게 안중근 아내 김아려 여사는 자식들을 대리고 상하이로 넘어갔다. 당시 상하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고, 임시정부 안에는 시댁식구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자신과 어린 자식들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임정 및 안중근의 시댁식구(안중근 둘째 동생 안공근)들은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이유야 어쨌든.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박문사를 참배할 수 밖에 없었던 안준생과 안현생. 그런 그들을 맹비난하고, 심지어 친일파라 낙인하며 죽이려 했던 독립운동가들. 나는 당시 독립운동과들과 달리 안준생과 안현생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들을 친일파로 낙인하고, 죽이려 했던(실제로 죽였던) 독립운동가들은 잘못이 없는가 되묻고 싶다. 물론 그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안중근의 자녀를 친일파라고 비난하고 죽일 자격이 있는가? 적어도 난 그들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안중근의 자녀들을 보호할 책무를 저버린건 다름아닌 당대의 독립운동가였으니.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당시 환경은 살벌하고 엄혹했다. 다시금 말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안중근의 가족들을 보호하지 못한 제일 큰 원인은 다름아닌 안중근의 남동생 안공근이었다. 그래서 김구가 안공근을 멀리했었고.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안공근이 안중근의 자녀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로인해 안공근을 멀리했다면! 김구를 포함하여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나서서 직접 안중근 자녀들을 보호했다면 어땠을까. 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거룩한 희생이라고 찬양하며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키워내면서, 정작 남겨진 안중근 자녀들은 등한시했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역사는 평면적으로 보고 해석하면 안된다. 뿐만아니라 누군가의 해석을 답습해서도 안된다. 역사란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해석하고자 해야, 제대로 된 역사공부라 할 수 있다. 또 그러한 과정이 있어야 역사공부로 인해, 내 삶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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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별맘의 쉬운 요리 -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집밥 레시피
최상희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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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요리책이다. 정확히는 어른용 요리책?! 뿡뿡이를 낳고 나서 몇 개월간 이유식 만드는 요리책만 보다보니, 이렇게 내가 먹을 수 있는 요리책을 보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진짜 이유식 요리책을 보면서 따라할 땐, 하. 그저 재료 본연의 맛(?)을 위한 손질과 찌고 익히고 삶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내가 먹고 싶은 마음이 아주 1도 없었다. 짭쪼름하고 달달한 어른 요리만 먹던 사람이, 갑자기 재료 본연의 맛을 위한 이유식을 만들고 있으니 그게 먹고싶을 턱이 있나T_T.


그래서 그런가 정말 진짜 이렇게 제대로 된 요리책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무엇보다..우리 뿡뿡이...지난한 이유식 기간을 지나,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있으니까! 요즘말로는 유아식이라고 해야하나. 다만 간은 좀 덜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 음식이라도 무염, 무당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ㅋㅋㅋ 아이들도 맛있어야 밥을 먹을테니까. 맛없는데 누가 먹겠어!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있는 뿡뿡이를 위해서라도, 매 끼니마다 식단 걱정을 안할 수가 없다. 매일 같은 것만 먹이자니, 매너리즘 올 것 같은. 지금이 딱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요리책이 눈 앞에 강림하다니 흑흑흑. 매일 하나 씩은 솔직히 힘들고, 주말에 한, 두개 정도는 이 요리책에 있는 메뉴를 만들어어서 뿡뿡이에게 줘봐야겠다. 뭐, 간은 ... 어른보다 적게 하면 되는거니까!

이 요리책 『금별맘의 쉬운 요리』는 집밥 레시피를 표방한 요리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요즘 말하는 ‘집밥’은 예전 ‘집밥’과는 다르다. 예전에 말하던 집밥은 소위 국과 밥, 반찬 몇가지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말하는 집밥은 예전 집밥에 더해서 카페에서 먹는 브런치, 특별한 날에 먹는 일품요리, 아이에게 해주는 간식 등! 이 모든 요리가 다 집밥에 포함된다. 왜? 이제는 모든 요리들을 집에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요리책에 키포인트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책이 말하는 집밥 레시피는 요즘 말하는 집밥 레시피다. 그러니까, 일반 국, 밥 요리를 포함해서 브런치나 간식 등 레시피가 포함되어있다는 것! 우리 뿡뿡이 간식까지 쌉 가능이라는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일 마음에 듦)

요거 말고도 이 요리책의 장점이 더 있다.


일단 식재료! 고가의 식재료나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냉장고(또는 펜트리)에 있을 법한 아주 친근한 식재료를 사용한다. 간혹 집에 없는 식재료가 나올 때가 있는데(예컨데 장기간 보관이 어려운 제철 채소), 이런건 그냥 집 앞 마트가서 사면 된다.

그리고, 이 요리책은 레시피다 쉽다. 정말 쉽다. 요리과정이 복잡하면, 따라하기도 어렵지않은가. 하지만 이 요리책은 ‘간단한’ 집밥을 표방하는 지라, 레시피 사진 최소 4컷 ~ 최대 8컷이다. 사진 밑에는 요리방법 몇 줄 포함. 세상 간편한 방식으로 일품요리가 완성된다.

요리책에서 제일 중요한 계량법도 쉽다. 스푼은 밥숟가락 및 티스푼 기준으로 하되, 정량(!)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중량까지 표시했다. 사진포함은 당연한 일. 물이나 간장같은 액체류 계량은 종이컵 및 쌀 컵 기준이다. 역시 중량 표시도 철저하다. 이 외에도 주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후라이팬(냄비) 등 길들이는 방법은 덤!

개인적으로 스테인리스 제품을 많이 사용하다보니(특히 아기 식기류), 이런 건 정말 꿀팁인듯!

본격적인 레시피에 들어가기 전에, 집밥만들기에서 중요한 ‘육수’ 만들기나, 재료손질법, 냄비로 찜요리 하는 법도 있으니 확인은 필수!



이 요리책의 레시피 구성방식은 아래와 같다. 브런치 달걀토스트 레시피(p.44) 다. 레시피 사진 6컷, 요리법 5줄 ㅋㅋㅋㅋㅋ 세상 간단하다.


  1. 빵 한면에 버터를 각각 바른다.

  2. 버터 바른 면에 슈가 파우더(또는 설탕)을 골고루 뿌린다.

  3. 빵 가장자리에 마요네즈를 2겹으로 올린다(마요네즈를 꼼꼼히 발라야 달걀이 옆으로 새지 않아요!).

  4. 모차렐라 치즈를 올리고 달걀 1개를 올린 뒤 노른자를 터트린다(노른자를 터트리지 않으면 노른자 윗부분만 익어 딱딱해질 수 있습니다).

  5.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80℃에서 11~12분간 돌린다.

*포인트: 버터는 미리 실온게 꺼내 말랑한 상태에서 바릅니다. 만약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딱딱한 상태라면 전자레인지에 10~20초 정도 돌려요. 반숙 상태로 익히고 싶을 땐 180℃로 8~9분 정도가 적당해요.

예전엔 에어프라이어 있는 집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에어프라이어는 물론 오픈까지 보유한 집이 많으니 뭐. 이제 집에서 손쉽게 브런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대라는게 새삼 놀랍다. 우리집만 해도 광파오븐(에어프라이어/찜기 겸용) 사용중이고..하하하.

어떤 음식을 만들어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다가, 브런치 카테고리에서 예전에 한 예능에서 보았던 ‘클라우드 에그’ 레시피가 있어서 조금 반가웠다. 뢰스티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구름모양(?)같은 흰자 먹어보고 싶었기도 했고 ㅋㅋㅋ 물론 만드는데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레시피를 보니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요리도 아니었다.

클라우드 에그, 주말에..한번 시도해봐야지 ㅋㅋㅋㅋ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는 손질이 귀찮아서 섣불리 손이 안가긴 하지만, 요즘은 뿡뿡이 때문에 이것저것 많은 식자재를 사고 손질하고 있다(신랑이ㅋㅋㅋ). 이왕 요리하는 우리 신랑이니, 스키야키 해달라고 졸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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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예능에서 우리나라 4대 종교 지도자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놀라웠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스님, 신부, 목사… 그들이 믿는 신은 다르지만, 그들이 향하는 길은 그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길일 것이라고. 근데 이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오늘 읽은 #시집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시집은 원경 스님과 김인중 신부님의 합작품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두 종교인이다. 부처를 믿는 스님이 시를 쓰고, 예수를 믿는 신부님이 그림을 그렸다. 이 둘의 시와 그림은 원래부터 한 세트인것 마냥 조화롭다.




시와 그림 무지렁이인 나인데도, 원경 스님의 시편과 김인중 신부님의 회화(스테인드 클라스)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 한 구석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스님이 쓰신 시에서 ‘감사함’이, 신부님이 그린 회화에서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는 이분들이 단순히 종교인이라서가 아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종교인이 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울림을 주는 종교인들은 생각보다 드문편이기도 하고.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원경스님과 김인중 신부님이야말로 요즘같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이 아닐까? 비록 지금 세상은 정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타인은 커녕 지인마저도 조심해야할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 되었지만. 이런 분들이 계시는 한,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빛섬과 달빛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빛섬이 되었다

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도시마다의 빛섬


가없이 빛사래 치는 하늘별들을 닮아

스스로 빛을 지녀야 한다며

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빛섬


모정처럼,

늘 마음 놓지 않고 빛섬 위를 맴도는 달빛

어둠 바다의 등대인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절집의 꽃문살이 달빛에 어리듯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햇살의 신비를 안는다


섬김이 미덕의 옷이기에

절집 공양의 정성처럼

봉헌 속에 빛난다


동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처소 없이 해와 달과 함께 꽃이 피거늘

서로 비추고 거울처럼 마주하노라면

저마다의 빛으로 향기 오간다


화장세계이기에




달과 모닥불


무지의 빛 검은 어둠이 있기에

달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냉정한 차가움이 있기에

모닥불 같은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랑의 길을 나섰기에

빛이고 불꽃이고 싶습니다




혼빛

그대는

빛의 혼을 그리는데


그리움 그리움 그리다 그리다

화룡점정에 이르러

쓰러져 잠드시리


잠 못 드는 한밤의 꿈을 꾸다가

새벽에 드는 비울음처럼

그리 쓰러져 울다 잠들면


바람도 쓰다듬듯 달래며

새날을 맞으리



시와 그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마음 속 여유가 사라져, 각박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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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 없지 - 두 젊은 창작가의 삶과 예술적 영감에 관하여
허휘수.서솔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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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21세기. 내 우편함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봉투 형식의 우편들이 다수 꽂혀있다. 하지만 그 우편 속에 오롯이 나를 향한 사적인 글, 예컨데 ‘편지’는 이미 사라졌다. 대체로 ㅇㅇ은행, ㅇㅇ카드, ㅇㅇ공단 등에서 보낸, 아주 대놓고 공적인 서류들이 우편봉투에 고이 담겨있을 뿐이다. 나를 향한 ‘편지’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잘 생각해보면, 난 편지를 자주 쓰던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멀리 이사 간 친한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보내면 시차는 있었지만, 언제나 그들에게 ‘편지’가 왔다. 그 편지들은 지금도 친정 서랍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금은? 편지는 무슨! 흔한 깨톡 한 줄도 보내기 귀찮다. 지금 내 모토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어제까지만해도 그랬던 나다. 

에세이 『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 없지』를 읽었다. 문득 그때가 그리워졌다. 편지를 주고 받던 순수해던 그 시절이. 그들에게 편지를 쓰며, 편지 받을 그들을 생각하던 내 모습이. 편지쓰기를 즐겨하던 과거의 나는 어디가고, 왜 감성따윈 쌈싸먹은 세상 무감각한 어른여자가 되어있는지! 



이 에세이는 책이기 이전에, 저자 허휘수X서솔의 ‘대화’다. 그리고 그들의 ‘편지’다. 물론 난 이들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유명한 유튜버이자, 예술가라지만, 난 유튜브도 안보고 예술과도 거리가 엄청 먼- 사람이기에.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는 나에게 자그마한 울림을 주었다. 왜? 누군가와 끊임없는 ‘대화’라는게 보통 그렇지않나.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친근감이 느껴지고, 동질감이 느껴지고 막 그런거. 이들이 쓴 에세이가 나한테 딱 그랬다.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내 생각이 어디서부터 생겨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지, 궁금함에 고통스럽던 밤이 있었다. ‘어린이’에서 ‘학생’으로 넘어갈 무렵, 호기심은 내 생각의 근원이었다. 그 시절 나는 생각의 꼬리를 찾기 위해 한쪽으로 빙글빙글 몸을 돌려 일부러 어지러움을 느끼곤 했다. 어지러움을 못 이기고 이불에 풀썩 주저앉으면 이내 생각은 멈추고 몽롱한 상태만이 의식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생각의 방황, 이것이 나의 사춘기였다. p 047, 서솔

처음은 한 번뿐이기에 고귀하고, 다시없을 순간이라서 기념한다. 처음의 기준이 뭔데? 기준을 세우는 것은 만족스러운 처음을 만들려는 시도다. 처음은 그냥 처음이다. 정의와 기준은 개인적이다. 과도한 의미부여는 사이비를 낳는다. 그럴듯한 처음이란 건 없다. 처음은 처음이다. p 048, 허휘수

어렸을 적 ‘처음’이라는 단어에 매달렸던 적이 있었다. 아마 저자 휘수처럼 딱 ‘사춘기’가 시작되었던 시기였으리라. 무엇보다 당시에는 ‘편지’쓰기를즐겨하던 감성많은 소녀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 사춘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감성’많은 시절도 짧았다. ‘처음’에 의미부여를 하던 시절은 짧게 지나갔고, 그저 처음이고 나발이고. 복잡한 생각들을 놔버렸다. 그저 단순히 살자!

보통 갑작스런 변화는 어떠한 사건에서 기인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사건이 잘 떠오르진 않는다. 확실한건 그 때부터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 확신이 들면, 빠르게 머리속에서 지워나갔다. 사람도 포함해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처음’이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할 만큼 감성이 있지는 않은듯! 

뭐 요즘은 육아를 하면서 감성이 조금 필요하지 않나 싶긴 하다. 누군가는 아기가 처음 하는 모든 행동을 저장하고 기록하는데, 나는 뭐. “했네? 대단해!” 이 정도니까. 아기의 ‘처음’은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해줘야하나 싶기도 하고. 요즘은 그렇다.


이름이 두 개인 사람

나는 예술가인가 아닌가? 나는 창작가인가 아닌가?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과 모양새에 따라 무엇으로 반드시 분류된다. 태어난 날에 따라 신생아에서 어린이로 바뀌며 교복을 입는 순간 학생이 된 뒤 직업에 따라 적당히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 바뀐다. 마땅이 취업해야 하는 나이대가 될 때 사람은 세 가지의 이름으로 다시 분류된다. 취업 준비생, ㅇㅇ사원, 그리고 백수. 그것도 아니면 구직 포기자 등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나를 설명하고 집어넣는 단어가 있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건 반드시 무엇인가로 분류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서솔이라는 표본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는 무엇일까? p 080, 서솔

내 이름은 뭘까? 좋은 세상 덕에 엔잡러.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이곳저곳 떠도는 보부상.

돈 되는건 일단 떼어다 파는 도매상.

나도 팔고 춤도 팔고 영상도 팔고 글도 파는 잡상인.

예술가이고 싶었는데, 열심히 살 수록 예술과 멀어지는 듯 하다.

어쩐지 떠나온 육지도 안 보이고, 바람 한 점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의 선장. p 080, 허휘수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과 모양새에 따라 무엇으로 반드시 분류된다.’ 저자 서솔의 말이다. 정말 십분 공감한다. 지난 3n년 간을 살아오면서, 내 이름은 두 개 이상이었다. 지금 날 부르는 이름은? 등본에 씌여진 내 이름과 뿡뿡이엄마, 피로님,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ㅇㅇ매니저. 이름이 몇개야? 여기서 진정한 나를 부르는 이름은 뭐지? 조금 슬픈 사실은, 앞으로도 난 사는 동안 내 진정한 이름을 찾지 못할 것 같달까. 정확하게 말하면 앞으로도 등본에 씌여진 내 이름은 계속 불릴 일이 없을 것 같달까. 애기 엄마의 비애인가....



가끔은 나도 이 에세이를 쓴 허휘수x서솔 님처럼 하루종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는데! 친구와 대화를 할 여유? 아니 그전에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 아닌가. 과거에는 이런 친구가 바로 내 옆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고. 수다삼매경을 하고 싶은 또 다른 친구22는 바다 건너 저편에 살아서, 일 년에 한 번 만나기가 어렵고. 나보다 날 더 생각해준 또 다른 친구333는 서로 일하는 환경이 달라서 만나는 시간 잡기가 어렵고. 하, 인생 3n년을 살았는데 역시 삶은 녹록치 않구나. 

그래도 나에겐 평생지기가 있으니까! 오늘은 빠른 육퇴(!)를 하고 내 평생을 함께할 신랑이랑 신나게 수다를 떨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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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9-06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3n살이시니까 신랑이랑 수다 좋지요~~~

전 5n이라 그런가 남편이랑 수다가 안돼요. 신랑이 아니라서 그럴지도요..
신랑님이랑 정다운 수다 넘치는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