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용이 울 때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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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어령 선생의 유작,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두번째 편이 나왔다. 책 제목은 「땅 속의 용이 울때」 (첫번째 편은 「별의 지도」).




첫번째 편인 「별의 지도」를 읽은 뒤, 진정한 인문학책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두번째 편 「땅 속의 용이 울 때」  역시도 읽기 전부터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보통 기대가 크면 클 수록 실망도 큰 법인데, 역시는 역시일까?! 이 책을 읽고보니, 이어령 선생의 책은 그 어떤 책을 읽어도 절대 실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되면 베스트셀러인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도 한 번 읽어볼까 싶은? 



아니 뭐, 생각해보면 내가 읽고 있는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야말로, 진정한 이어령선생의 마지막 수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 제목인 「땅 속의 용이 울 때」 를 보면서, 땅 속의 용은 무엇을 빗댄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시리즈가 ‘한국인’ 이야기이니, 땅 속의 용은 분명 한국인을 비유한 것일텐데... 뭐랄까, 용과 한국인? 딱히 와닿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릴 적 꼬부랑 할머니를 자처하며, 흙먼지를 풀풀 풍기는 우리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던 이어령 선생인데, 그런 그의 입에서 ‘용’의 이야기가 나온다는게 좀 의아했다.



그렇지 않나? 흔히들 우리 땅은 오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데, 실상 그 속의 이야기를 들춰보면 용처럼 불을 내뿜는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땅에 나는 풀 한포기에도 감사함을 잊지않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니 말이다. 그런데! 내 이런 의문은 순식간에 풀렸다. 그것도 이 책의 첫 챕터를 읽자마자.



흙 속에 숨은 작은 영웅, 지렁이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게 있어요. 그 많은 벌레 중에 왜 하필 지렁이였을까요? 실제로 벌레 중 먹이사슬의 제일 밑바닥이 지렁이예요. 지렁이는 눈도 없어요. 그래도 몸으로, 피부로 빛을 느껴서 그 감각으로 빛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가죠. 지렁이는 암컷 수컷도 없어요. 한 몸에 암수가 다 있어요. 그리고 지렁이는 모든 동물의 밥이에요. 하늘을 나는 새부터 바닷속 물고기까지. 우리가 낚시할 때 낚싯밥으로 지렁이 쓰잖아요. 그러니까 먹이사슬의 제일 하층에 있죠. p 023



참 한국 사람들 대단하지요. 지렁이는 한자어 지룡(地龍)에서 파생된 말이에요. 그 하찮아 보이는 지렁이를, 햇빛 나면 그냥 말라비틀어질 뿐인 그 약한 지룡이를 ‘저것은 지룡(地龍)이다, 땅속의 용(龍)이다’하고 생각했어요. 용이라는게 뭐에요.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할 만큼 신령스러운 동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존재 아닙니까. 자연현상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에요. 그러니까 용은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도 소중한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지렁이를 알아준 사람은 한국인, 그중에서도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에요. 다윈보다도 먼저 말이죠. 땅속의 용인 지렁이가 환상 속의 용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울지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준 우리 선조들이에요. p 046



옛날 사람들은 깊은 땅속에서 지렁이가 운다고 생각했어요. 지렁이는 울지도 않고, 소리 낼 방법도 없는데 왜 우리 농촌에서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었을까요? 저 알수 없는 지렁이 울음을 듣고 싶은 간절함. 깊은 땅속 흙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겠어요? 우리 농촌의 저 땅, 혹은 흙 아래에서 울려오는 소리, 숲에서 울려오는 것도,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도 아닌, 땅속에서 울어 나오는 저 소리, 그게 지렁이 울음이에요. p 033



땅 속의 용, 지룡은.....지렁이였다. 가끔 햇볕이 쨍한 날 땅 위에서 말라 비틀어져 있는 그 지렁이. 먹이 사슬 최하층의 지렁이. 모두에게 짓밟히는 지렁이. 처음엔 이름 한자 없었을, 하찮디 하찮은 생명체가 어느 순간에 ‘땅 속의 용’이라는 아주 거창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름을 붙여준 건 다름아닌 우리 조상들이었고.



우리 조상들은 지렁이의 본질을 알았던 것이다. 지렁이는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 존재로 인해 모든 생명들이 이 땅에서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이 땅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 조상들은 지렁이를 ‘땅속의 ‘용’으로 보았다.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였으나, 우리 조상들로 인해 땅 속의 ‘용’이 된 지렁이. 우리 조상들은 땅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땅속에 사는 용이 우는 소리라 칭했다.



그렇게 이름없는 하찮은 존재가, 땅 속에서 울부짖는 위대한 용이 되었다.



지렁이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덕(德)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첫째, 지구의 땅은 지렁이 덕분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배출하는 과정에서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질감도 좋게 만들어요.


둘째, 지렁이들은 뭐든 다 먹어 치웁니다. 부식한 것, 짐승이 절대로 먹지 않는 썩은 것도 먹어서 나쁜 균은 전부 자신의 장으로 걸러내고 좋은 미생물만 쏟아내죠. 또 지렁이의 배설은 다른 생물에 유익하고, 미생물이 먹어 치워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지렁이가 오줌을 누면 딱딱하게 변해서 그게 칼슘 같은 것이 되어 흙이 된다고 해요. 지렁이가 죽으면 미생물들이 또 먹습니다. 그래서 퇴비가 되죠. 나서 죽을 때까지 지렁이 신세를 지고 인간은 살아갑니다.


셋째, 먹이사슬의 최하층답게 방어 수단은 일절 없지만, 상위 포식자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어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돕습니다. 지렁이의 천적은 두더지, 개구리, 두꺼비 같은 양서류, 새, 설치류, 육식성 거머리, 그리고 딱정벌레, 지네, 여치, 사마귀 같은 육식성 곤충등이 있지요.


넷째, 약재와 식용으로도 쓰입니다. 뉴질랜드나 아프리카 등지에는 아예 식용으로 쓰는 굵고 커다란 녀석이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토룡탕이라는 것을 먹는데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지렁이를 고아서 만든 국입니다.


다섯째, 지렁이는 강력한 생명력의 소유자입니다. 원폭이 떨어져도 산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다른 생명의 삶까지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p 026~027



생각해보면 그렇다. 현대인들은 지렁이를 그저 지렁이로 대할 뿐, 지렁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 식집사들은 예외일지도. 적어도 식집사들은 지렁이들이 만들어주는 흙, 일명 ‘지렁이 분변토’를 돈주고 사온다. 간혹 화분에서 지렁이가 나온다면? 그 순간 지렁이는 지렁이‘님’이 되어 박멸이 아닌, 귀빈 모시듯 다시 고이 화분 속 흙으로 보내준다. 왜? 지렁이가 내 화분 속의 흙을 더 좋게 만들어주고, 그 좋은 흙 덕분에 식물들이 더 많은 영양을 얻을 테니 말이다. 



일개 화분에서 발견된 지렁이도 이렇듯 귀빈 모시듯 하는데, 과거 농업이 주가 되었던 이 땅의 조상들은 땅 속에서 발견된 지렁이들이 얼마나 이뻤을까? 그러니 지렁이를 땅속의 ‘용’으로 대접하지 않았을까. 



하찮지만 귀한 존재 지렁이. 이어령 선생이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어째서 한국인 이야기에 ‘땅 속의 용’을 빗대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난 늘 이야기를 해요. 한국 사람이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고요. 세계적으로 지금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국민소득으로 따져도 잘 해봐야 우리는 세계 10위에서 13위를 왔다 갔다 하니까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10개 나라도 넘는거에요. 그 나라들보다 우리가 못살고, 노벨평화상 하나를 빼고는 학술 분야에서 노벨상을 탄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남의 민족 눈에서 피눈물나게 하고 그 가슴에 못질한 적도 없어요. 남을 침해하지 않은 민족 가운데 우리만큼 사는 민족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정말이에요. p 125



우리는 남을 정복하기는커녕, 우리 고향에서도 내쫓기던 민족이었어요. 그래도 남의 눈에 피눈물 안 나게, 남의 가슴에 못 안 박고 올바르게 살았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더 잘사는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들은 다 전과자에요.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바로 “너희 몇 년에, 몇 세기 때 우리에게 와서 착취했던 나쁜 사람들이야”라고 지탄받지만 우리는 그게 없잖아요. p 126 



지금이야 K문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을 만큼, ‘대한민국’ 전 세계에서 그 위상이 드높다. 하지만, 불과 백년 전...아니 백년도 채 안되는 시간 전까지만해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쳐들어오는 외세로 인해 이리저리 휘둘려 살았다. 우리 역사에서 굵직한 외세침략을 꼽아보면 일제강점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귀주대첩, 원간섭기, 살수대첩 등. 정말 역사의 매 시간대마다 외세의 침략이 있어왔다. 뭐,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어쩔수 없다면, 어쩔수 없는 것이긴 해도. 이렇듯 언제나 외세에 짓밟히던 한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로 여기서 대한민국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지금 세계에 위상을 드높이는 여러 나라들을 보면, 전부 수많은 식민지를 거스렸던 나라들이다. 오로지 한 나라의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제외한, 잘산다고 하는 10여개의 나라들은 불과 백여년 전 온 나라가 더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켰던 그 시기에,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것들을 토대로 부를 쌓아 올렸다는 이야기다. 



뭐, 조금 더 따지고 들어간다면 우리도 월남전에, 베트남 민간인들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역사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돈받고 파병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 학살한 것이나, 베트남에서 버려진 라이따이한 등 안면볼수 한 사건들에는 절대로 면죄부를 주면 안되지만 말이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래?” 라고 묻는다면 “나 지렁이처럼 한 번 살아 볼래”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실 지렁이처럼 살면 밟힙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밝은 자’의 역사가 아니라 ‘밟힌 자’의 역사예요.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밟힌 지렁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초목이 나오고 어떻게 나뭇잎이 다시 살아나는 봄이 옵니까? 우리의 모든 역사는 ‘밟힌 자들의 역사’이기에 영웅이 생겨나고 지도자가 있어온 것이 아니겠어요?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암흑의 영웅, 무명의 영웅, 밟히면 꿈틀한다는 먹이사슬 최하위에 있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야 합니다. 저 땅속에서 울리는, 사실은 울지도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었다고 고집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땅강아지의 울음이라고 해도 그걸 지렁이 울음이라고 합시다. p 228




이어령 선생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장 하찮은 지렁이가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듯, 외세에 침략을 받던 한반도가 지금은 전 세계에 K문화를 선도시키듯,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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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기 전에
권용석.노지향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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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첫장부터 눈물흘리기가 쉽지 않은데, 이 에세이 『꽃 지기 전에』가 그것을 성공해냈다. 



보통 책을 읽을 땐 서문을 꼭 읽는지라, 이 에세이를 읽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정말 가볍게 책을 열고 읽었는데, 왠걸. 방심했다. 서문에 쓰여있던 글은 이 책의 공동 저자 권용석님이 아내이자 또 다른 저자 노지향님에게 받치는 글이었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자신의 끝을 함께 해줄 이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그리움이 담긴 글이었다. 분명 담백하고 짧은 글이었음에도, 순식간에 저자에게 이입이 된건지 눈물이 나와서 조금 당황했다. 하필 책을 읽은 공간이 회사였기에, 더 당황했다면 당황했달까. 하하.


나의 남편 권용석은 1963년 태어났고 1988년에 결혼, 10년은 검사로 그 후 15년은 변호사로 살았다. 2009년 사단법인 행복공장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지내다가 2022년 5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가 가기 4, 5년 전 부터 쓴 것들이다. p 015


담백하면서도 슬픈 서문을 읽고 난 뒤 알게된 사실은, 이 글을 썼으며 이 책을 공동으로 집필한 권용석님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권용석 님의 유고집이다. 권용석님이 살아오면서 써온 글과 시를 모아서, 아내인 노지향님이 책으로 엮어서 낸 것이다. 



사실상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끝은 죽음이다. 어찌보면 죽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한번 뿐인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 가깝지 않다고,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정작 중요한 일은 뒷전에 둔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을 선고 받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어쩌면 삶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닌데,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서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해야 하는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미루어 왔던 일들이 지금 내가 할 일이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했던 일들이 내금 내가 그만두어야 할 일입니다. 남은 삶 동안이라도 쉽게, 단순하게 살겠습니다. p 028


그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죽음이 구체적인 가능성으로 다가 왔습니다. 왜 그리 걱정하고 안달하며 살았을까? 뭐가 그렇게 못마땅해서 미워했을까?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일 시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훨씬 기쁘고 생생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p 037



주 저자인 권용석님은 검사로, 변호사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다 모든 직을 내려놓고 ‘행복공장’을 설립해 오롯이 자기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해던 찰나에 암 선고를 받았다. 그것도 완치가 어려운 암. 그렇게 젊다면 젊은 나이에 그는 시한부가 되었다. 언젠가 죽는다가 아닌, 곧 죽을 것이다라는 선고를 받게 된 그의 삶과 시간은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 역시 죽음을 선고받기 전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남은 시간을 어찌 살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저 이 에세이로나마 그의 삶을 잠시 엿본 나로써는, 죽음을 선고 받기 전의 그의 삶은 찬양받아 마땅한 것 같아 보이는데도, 그는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이 책에 추천사를 써준 분들의 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남들은 선뜻 살 수 없는,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온 그였으니까. 착한 사람은 하늘이 빨리 데려간다는 말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그의 삶은 선하고 또 선했다. 이렇게 선한 사람이 검사생활을 어떻게 했으며, 검사생활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지 눈에 보일정도로.


그렇게 바쁘게 검사, 변호사 생활을 하며 매일을 치이고 치이는 삶을 살았던 그에게는 ‘쉼’이 필요했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홀로 성찰 할 수 있는 독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행복공장’을 설립한 공장장이 되었다. 나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선한사람은 죽음을 앞두었다 한들 달라지지 않나보다. 그는 오히려 자기 자신보다 휴식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남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한결 같을 수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 살인, 강간, 강도보다 더 큰 죄가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고,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 사람은 남이 얼마나 귀한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함부로 하게 된다. 여러분이 이곳에 온 이유는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알지 못해서 자신에게 함부로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을 가둔 것은 경찰이나 판사, 검사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가장 좋은 것을 나에게 주라. 여러분은 당당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구속보다는 자유를, 불행보다는 행복을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의 길을, 자유의 길을, 행복의 길을 가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과 엄청난 돈을 가진 재벌들이 다른 길을 걷다가 수감되거나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에게 함부로 하면서 남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 못하여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것으로부터 모든 죄가 시작된다.”

제 말이 학생들의 마음에 닿아서 학생들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p 072


자기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그가 한 말이다. 대게 자신들을 비난만 하는 어른들을 만나왔을 비행 청소년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저 입발린 ‘나쁜짓 하지마라, 너네가 그러면 그렇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만 보았을테니 말이다. ‘비행’ 청소년이라는 딱지가 붙기 전에, 이런 어른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 아이들의 인생에 ‘비행’이라는 딱지가 붙을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유독 자아 성찰에 대한 글들이 많이 보인다. 


뉴스나 댓글을 보면서 ‘나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선한사람인가, 악한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돌팔매질 당하는 사람에게 내 모습이 보이 기 때문인지 돌팔매집이 가혹하게 느껴지고, 환호받는 사람에게서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인지, 환호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 ) 사실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수많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드러난다면, 아마도 나는 이 땅에서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구에나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한쪽 면만 보면서 욕하고 박수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빛을 사랑하는 거은 좋지만, 빛 속에 숨어있는 어둠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충분히 경계했으면 좋겠습니다. p 091


돌이켜보면 남을 위한 일이나 남이 시킨 일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을 위한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소홀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열심히 들으면서 내 목소리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남들에게는 정성을 다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정성스럽지 못했습니다. 남들로부터는 인정받으려 애쓸 뿐, 나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많은 시간을 돈을 벌고, 돈을 쓰는데 허비했습니다. 남들 살아가는 모습 구경하다가 내 삶이 떠내려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p 103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오점을 떠올리며 반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죽음을 앞두면 삶에 대한 후회가 많아질테지만, 그 후회가 과연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는냐는 다른 이야기니까. 그래서 그럴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선고받게될 날이 올텐데, 그 때가 된다면, 난 내 삶을 어떤식으로 후회를 할게될까? 후회가 반성으로 이어질까, 아니면 무언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으로 이어질까. 부디 전자였으면 좋겠다.


끝으로 그가 남긴 감동적인시 두 편을 소개한다.



행복공장


행복공장을 왜 하냐구요?

제가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들 수심이 가득해 보여서.

행복하지 않은 내가 너를 물들일 것 같아서.

행복하지 않는 너에게 내가 물들 것 같아서.

행복으로 물들이는 너와 내가 되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행복공장을 합니다. 



꽃 지기 전에


“곧 보자” 했던 이의

‘부고’ 문자 받아들고

하늘을 본다.


보고 싶으면

정말 보고 싶으면

지금 보자.

꽃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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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이 작고한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 이제와 말하지만, 난 이어령 선생의 부고 기사가 올라오기 전까지만해도 이 분이 누군지 몰랐다. 부끄럽긴하지만, 부고기사로 인해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알았고, 이 분이 문단계에서도 정말 유명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저서도, 쓰신 글도 어마무시하게 많았는데, 그럼에도 내가 이어령이라는 사람을 몰랐던 이유는 역시나....내 독서 편식이 한 몫 했기 때문일것이다. 지금이야 여러 장르의 책을 두루두루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독서 편식이 남아있는데, 과거에는 독서편식이 더욱 심했으니 말 다했다.



이 책 「별의 지도」를 읽기 전까진, 이어령 선생의 저서를 읽어본 적도 없고,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서 위키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정보를 훑어보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인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전 문화부장관 등등. 그를 이야기하는 수식어가 정말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의 ‘지성’ 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보였다. 그와 함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도 많이 보였다. 다만 생전에 언행이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비판도 많았던 것 같다. 뭐, 이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생전 행보에 대해선 내가 왈가왈부 할 건 아니고. 



그저 이번에 읽은 이어령 선생의 책 「별의 지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이 분은 유일무이한 대한민국의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로써의 이야기꾼 말이다. 좀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책에 쓰여진 한 줄, 한 줄이 주옥같다고 해야할까? 허투루 쓰인 글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글에는 역사와 철학, 윤리, 인문학적 사고 등 모든 것이 조화롭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본디 인문학이란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동양의 사상이나 문화는 공자, 맹자, 순자,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성서, 기독교가 바탕이다. 이렇게 동, 서양의 사상에서 시작하여 중세를 지내 근세, 근대로 넘어오면서 수많은 문화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향유했다. 이렇게 방대한 인문학이라는 학문으로 책을 집필한다면,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인문학 책들은 읽어보면, 그냥 무늬만 인문학이 많아서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추천하는 인문학책이란게 이런건가? 싶은 생각도 들면서, ‘사람들이 숱하게 말하는 인문학책들은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라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헌데 왠걸? 이 책, 이어령 선생의 「별의 지도」를 읽고나서야, 진정한 인문학 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이어령 선생의 인문학적 지식이 얼마나 방대하고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동양의 정신세계의 바탕이 된 공자, 맹자, 순자, 노자를 비롯하여, 서양의 성서, 서양의 고전문화, 동양의 고전문화등에 대해서 해박하지 않다면, 절대 집필하지 못할 인문학책이다. 다름아닌, 바로 이런 책이 인문학책이다. 이런 인문학 책이라면, 나는 군말없이 인정할 것이며, 이런 책이 인문학 도서라면 수십 권도 읽을 생각이 있다. 이런 인문학책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인문학책이 아닐런지!



이 책에는 정말 수많은 내용이 있었다. 인문학적 사고, 삶의 태도 등 배울 점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책 속의 키워드는 다름아닌 ‘윤동주’였다. 책의 시작부터, 끝을 장식한 이야기도 시인 ‘윤동주’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윤동주’라는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의 키워드로 ‘윤동주’를 꼽는 이유는 하나다. 이어령 선생의 시선으로 본 윤동주는, 내가 알고 있던 윤동주와는 달랐다.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일제강점기에 시로써 일제에 저항한 ‘저항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별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인’ 윤동주 였다.




 



덕분에 책장에 꽂혀있던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저항시인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읽었을 때는 몰랐던 윤동주 시인의 시가 새로이 보였다. 



이어령 선생이 말하는 시인 윤동주. 그에 대한 내용만 발췌하였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읽으려 한다면, 이 책을 읽거나, 이 포스팅을 읽은 후에 읽었으면 좋겠다. 그럼 ‘저항시인’ 윤동주가 아닌,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가 보일테니.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눈을 들어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별’하면 먼저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되지요. 지상에서 마주한 얼굴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의 얼굴, 하늘의 눈동자가 되면 윤동주의 시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됩니다. (…) 첫 행과 둘째 행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맹자의 어록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어린 시절 윤동주는 《맹자》와 《성경》을 배웠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약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란 하늘을 뜻합니다. 


윤동주가 《맹자》와 《성경》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여겨지지만 <서시>는 동양적인 문맥의 ‘천天’의 개념, ‘앙불괴어천’ 사상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어요. 옛날 한국인들은 오늘의 우리보다 훨씬 더 사물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본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본성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 여겼어요. 인간은 그 무수한 사물의 본성을 통해 물질의 만족이 아니라 정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존재요. 여기서 본성이란 쉽게 말해 적자의 마음, 즉 아이의 마음입니다. 그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을 맹자는 ‘대인’이라 불렀는데, 몸뚱이가 큰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p 015~017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책에 줄을 긋고 칠하면서 배운 시가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윤동주’, ‘저항시인’,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며 줄줄줄 외웠죠. 윤동주 저항시? 윤동주가 저항하는 거 봤어요? 다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지요. 이 시를 읽기도 전에 선생님이 알려준거에요. “윤동주는 저항 시인이다. 이 시는 일제에 저항한 시다”라고 말한 뒤 시 읽기를 시작하지요. (…) 윤동주 선생이 저항시인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항시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이 시를 보면 이 시의 진짜 값어치를 모르게 돼요. 다 일제에 저항하는 시로만 읽으니까, 이 시의 장치나 비유도 딱 그렇게 한정짓게 되니까요. p 096



저항시라는 말도 모르고 윤동주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길을 걷는데 그냥 <서시>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주워 읽었다 칩시다. 그런 마음으로 솔직하게 그냥 읽어보세요. 이 시만 읽어서 ‘아, 이분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체실험 희생자로 돌아가시고, 그 집안도 다 기독교인데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지’ 하고 느껴질까요? 그런데 저항시인이라는 프레임을 제거하고, 시대상황도 배제하고 이 시를 읽으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예외가 있습니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의 구별이 있어요? 공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라’를 빼고, 이 시에서는 ‘노자’까지 나갔어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이니까 ‘사람’까지 뺐잖아요. (…) 태어나면서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 사람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버티고 싸우지요. 윤동주는 그 안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올라갔어요. 하늘에 올라가면 별이 있습니다. 땅을 노래하는 마음이 아니라 별을 노래하는 거니까 벌써 그 안에 역사를 내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역사를 포함하고 점점 위로 올라가면 땅이 보이고 지구가 보이고, 거기서 쭈욱 올라가서 별을 노래하는 겁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거죠. 그러니까 하늘까지 못 올라간 사람, 별을 모르는 사람은 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리가 없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말은 ‘현재 나 자신은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다, 나는 결백하다’, 이런 의미라기 보다는 ‘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며 스스로에게 맹세하는 말이에요.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소원하는 거죠. p 099



<서시>를 일제에 대한 저항시라고 했을 때는 이 시를 정치적 레벨에서 읽은 것입니다. 국가 간의 정치 속에서 이 시를 읽을 수 있어요. 국가의 개념을 털어내고 인간의 레벨의 문제로만 읽었을 때는 휴머니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종교적, 초월적 하늘의 레벨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해서 <서시>는 저항시(정치), 인간주의시(휴머니즘), 종교시 이렇게 3개 층위로 읽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뜻은 천지인입니다.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애, 인간애, 우주애 말이죠. 이처럼 하늘, 땅, 사람으로 나눠놓으면 놀랍게도 이 시가 금세 보입니다. p 116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의 기저에는 ‘나-하늘’이 직접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연결된 지상의 인간들은 사랑을 해도 뭘 해도 다 죽지만 별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을 때, 내 마음속 심리적인 부끄러움이나 괴로움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극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죠.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마음이 아니라 시인이니까 윤동주는 하늘의 별을 노래하지 스스로 하늘의 별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다시 천지인으로 돌아옵니다. 제일 높은 곳에 ‘별’이 있고, 가장 아래에 ‘잎새’가 있고 그 사이에 ‘내(사람)’가 있습니다. 위를 보고, 아래를 보고, 다시 시인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p 117



인간의 마음속에는 땅의 마음만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이 있고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 너도 사람이냐?”고 할 때는 ‘그 말을 듣는 너라는 상대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비난입니다. 그러데 “나도 사람이야” 할 때는 실수할 수 있고 완벽할 수는 없는,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신처럼 완벽할 수는 없지만 짐승은 아니지요. 지금 ‘사람’은 신과 짐승 사이에 있습니다. p 120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기 때문에 하늘을 볼 때는 신을 향하고 땅을 볼 때는 짐승을 향합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의 눈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윤동주의 눈이 그래서 아름다워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기를 맹세하는 사람이니까 사랑해야지, 영원히 미래를 향해서 사랑해야지,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겁니다. p 122



이 시에서 바람이 두 번 나옵니다. 처음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인데, 그 바람이 지금은 ‘하늘의 별에 스치고’ 있어요. 모든 것을 시들게 하고 죽게하는 바람은 시간이죠. 그 시간이 별에 스치면 영원까지 갑니다. 그러니 윤동주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말할 때의 그 길은 풀잎에서부터 별까지 가는 것이지요. 바람을 따라서, 잎새에 이는 땅의 바람에, 저 허공에 부는 바람까지 뻗쳐서 별까지 가는 그 과정의 길입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길이지요. p 123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고 서술어 대신 말줄임표 (….)를 썼어요. 이건 읽는 사람이 서술부의 시제를 무엇으로 넣어 읽느냐에 따라 이 문장을 과거로도 현재로도 미래로도 읽을 수 있다는 거지요. 한 번 해볼까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맹세했다’라고 읽으면 과거에 맹세한 것이지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맹세한다’라고 읽으면 지금 현재에 내가 맹세하고 있는 것이에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맹세할 것이다’라고 읽으면 미래에 그리 맹세할 것이라는 다짐이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는 이야기예요.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라는 말이지요. p 130



그런데 윤동주가 시인이 아니라 군자라면 어떻게 될까요. 군자는 이미 초월한 사람입니다. 땅에 사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에요. 맹자는 《맹자》 <진심편>에서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부모님과 형제가 모두 무사하면 첫번째 즐거움이고, 둘째는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부끄럽지 않을 때가 두 번째 즐거움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더 교육을 함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하였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이 두 번째 즐거움에서 나옵니다. ‘앙불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 윤동주의 <서시>를 전부 과거형으로 고치면 윤동주는 시인이 아니라 군자가 됩니다. 과거형으로 바꾸어버린 시에는 망설임과 노력하려는 마음과 현실에서의 부딪침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시인의 마음인데요, 남에게 말하는 것은 시가 아니라 자랑이에요. 과거형으로 바꾼 <서시>에서 윤동주는 시인이 아니라 군자가 되었습니다. p 136



<서시> 원문을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어요. 이루어진 것은 보통 과거형, 완료된 문장으로 서술되는데 이 시에서 과거형으로 쓴 것은 ‘괴로워했다’ 단 하나예요. 그러니까 괴고워한 것만은 사실이고 현실이지요. 나머지 서술부의 시제를 보면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하는 미래의 다짐, 미래의 원망遠望과 의지만이 나타납니다.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맹세지요. p 137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이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윤동주가 만약 별이 되었다면, 별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별 그 자체가 되었다면, 땅을 내려다보면서 어떤 시를 썼을까요. 윤동주의 다른 시 <자화상>에서는 이미 시인을 초월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p 177



이 시를 보면 윤동주는 이미 땅 위의 인간, 시인을 초월했어요.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까 제 얼굴이 있을 텐데 그것을 ‘낯선,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은 이미 위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윤동주가 우물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일종의 ‘반성적 사고’ 입니다. ‘참 자기찾기’인 것이죠. 그런 점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일종의 격려 혹은 박수치는 행위와 다름이 없지요. 그러니 우물을 내려다보고 자신과 마주하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p 180



우리는 윤동주를 일제강점기 역사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울린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만약 윤동주가 역사적 차원에서 저항시로만 <서시>를 썼다면 광복 후에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는 않았겠지요. 윤동주의 시는 우리 생각의 틀을 한 번 더 깨주고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인이 할 일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일, 하늘에서 한국을 내려다보는 별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 역사 속에서 천지인의 천天을 가지는 일입니다. 윤동주는 하늘로 올라가는 그 길이 아름다운 포물선임을 가르쳐준 시인입니다. p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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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그도 그럴 것이 책을  이는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우는 소설가 박범신님물론 자타공인 독서편식가인  문학소설이라고 불리우는 책과는 거리가 멀기에박범신 님께서 쓰신 소설들은 대게 「은교」나 「고산자」 처럼 영상화된 것만 봤을 뿐이다한마디로 박범신 님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



그래도 언젠가 읽어봐야지 마음은 먹었었는데이번에 박범신님 산문집 『순례』가 출간되어 !! 읽을  있었다문학소설은 당최 눈이  안가지만산문은  결이  다르기에무엇보다 이렇게 유명하신 (?) 산문집은 왕왕 읽어보고  느낌이 좋았던터라꽤나 기대를 품고 박범신님 산문집 『순례』를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는 역시나였다박범신님의 산문집 『순례』는 읽으면 읽을수록 ‘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내가 바라는 행복은 무엇인지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게 맞는지 등등정말 오롯이 ‘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박범신님 산문집 『순례』의 전체적인 틀은 편지형식이다박범신님께서 히말라야를 순례하며그날 그날 K형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글이다약간 삼천포긴 하지만내가 이렇게 깊이 있게 쓰인 편지를 받아본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이렇게 편지를 써본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만약 내가 편지를 쓴다면 이렇게 깊이있는 글을   있을까 싶기도 하다정말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에 깊이가 있다고 느낀 책은 오랜만이라고 해야하나?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사람들이 주로 보는 글들은 조그만 스마트폰 화면 속에 떠있는 짧은 글들이 많다심지어 누군가와 소통을  때도 조차도 글을 쓰기보단 단축말이나 이모티콘 등을 주로 이용한다깊이 있는 글은 고사하고짧은 글조차도  안쓰려는게 요즘 추세라면 추세랄까 뿐인가가끔가다 책에 대한 이야기누군가가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만한 사람이 없다.

만약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하루에아니 일주일에  1권이라고 읽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면 대다수가  읽는다고 말한다아니바빠서 못읽는다고 한다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그래서 누군가에게 ‘ 문장 너무 멋지다’, ‘  읽어봤어?’ 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도들어줄 사람도 없고 공감해줄 사람이 없다근데 정말 아이러니하다바빠서 책을  읽겠다는데왜들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시간은 많을까그냥 뭐랄까이렇게 깊이 있는 글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이 슬프다.

이왕 주절주절거리는 김에조금  주절거리면.

요즘 나오는 에세이를 보면(심지어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들), 대게 신변잡기 글이 많다내가 알기로는 에세이 역시 산문의 하위호환 영역일텐데이상하게 글에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그저 글쓴이의 이름값(?)으로 베스트셀러가  느낌이랄까그래서 그럴까 ‘에세이라고 불리는 책들 보다는이렇게 ‘산문으로 불리는 책들을 좋아한다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산문집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온 책들은 언제나 글에 깊이가 있었고나를 오래도록 생각하게 하였으니까물론 그런 산문집들의 저자는 대게 박범신님 처럼 관록이 있는 분들이 많긴 했지만.

유명인의 에세이신변잡기 글을 읽으면 이상하게도 ‘’ 자신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앞에 보일듯 보이지 않는 성공에 열을 내거나 혹은 ‘ 사람은 했는데  이렇게 못하지?’ 같은 자기비하에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물론 정말 깊이있고오롯이 ‘’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에세이도 많지만 말이다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요즘 핫한 인물이  에세이베스트셀러가  에세이라고 해서  좋은 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오히려  지금의 20대들에게현실에 아파하는 청춘들에게 그런 에세이보다는박범신님의 산문집 『순례』를 추천하고 싶다그대들이 지금 힘들어하는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그럴수록 오히려 ‘’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고적어도  산문집을 읽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우니 향기롭다

히말라야는 무엇보다 내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악을 써가며 지키고자 했던 사악한 전투거짓말허세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이 주었떤 상처들까지얼마나 나와 상관없이 주입된 가짜 꿈들에서 비롯된 것인이 분명히   있도록 도와줍니다이곳에서   있는 일은 걷는 것뿐입니다자동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습니다오직  앞에 놓인 길만이 나를 도울 뿐입니다그러므로 영혼은 분산되지 않습니다멀리 있으니 오히려  나라가 조감도처럼 한눈에 보이고 그곳에서 습관에 의지해 죽을    달려온 나의 지난 삶도 아프게 보입니다바로 ‘은혜로운 생음 불러온 본원적 세계를 사실적으로 보고 느끼는 축복을 누릴  있다는 말입니다. p 017

티베트 불교의 성자 밀라레파는 이렇게 읊었습니다그가 지닌 것은 배고픔을  견디는 몸뚱이와 누더기 면포와 헤진 방석뿐이었으나그는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감히 밀라레파와 비교할  없겠지만 나는 이제 내가 가진 모든 이를테면 좋은 기민한 휴대전화요술 상자 텔레비전재빠른 자동차로부터 벗어나도 외롭지 않은 시간의 길로 들어갑니다느릿느릿걷겠습니다그것은 오래전 전근대의 ‘한량들이 갔던 길이며밀란 쿤데라의 표현에 따르면 ‘신의 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p028

돌림노래는 길고 따뜻했습니다.

간간이 웃음소리와 잡담이 돌림노래 사이로 섞여 들어왔습니다촛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손에 손을 잡고 둘러앉아 돌림노래를 부르면서 밤을 보내는 저들에게 ‘가족 무엇일까요 눈엔 자꼬 가족이 모여도 서로 마주 앉기보다 일렬로 앉아 현대인의 신이기도  텔레비전을 향해 경배드리는 우리네 가정의  풍경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p 052

K형에게 여기에서 다시 묻고 싶습니다당신은 행복해지기위해서 이순간 무엇 무엇을 소유하고 있습니까내가 가진 더운 밥과   넓이의 방과 시멘트 욕조와 새로  내의와 삐걱거리는 침대를 갖고 있나요지금의 나처럼 모국어에 대한 감동을  갖고 있나요그렇다면 형이 가진 그것들로 지금의 나만큼 충만되고 행복한가요?

나는 히말라야에서 보았습니다.

내가  것은 속도를 다투지 않은 수많은 길과본성을 잃지 않은 사람과문명의 비곗덩어리를 가볍게 뚫고 들어와 내장까지 밝혀주는 투명한 햇빛과 자유롭기 한정없는 바람만년 빙하를 이고 있어도 결코 허공을 이기지 못하는 거대한 설산들을 보았습니다 감히 고백하자면행복하고 충만 되기 위해서 내가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행복해지는 길이 어디에 있는이 어렴풋하게나마 찾을  있었습니다. p 087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나는 넓은 비닐 주머니를 거꾸로 쓰고 흐느적흐느적 빗속을 겉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내가 사랑했떤 사람도 떠오르지만 내게 상처를 주었떤 사람 내가 상처를  사람들도 생각납니다오해에 불과한 작은 일로 나를 버린 사람아집에 따른 어리석은 고집으로 내가 버린 소중한 사람들도 떠오릅니다회한은 많고  길은 멀고남은 사랑은 아직도 이렇듯 여일하게 뜨겁습니다. p 103

나는  순간 눈물겨웠습니다나의 존재가 너무도 가벼워 눈물겨웠고죽을    일벌레로 살아온 우리네 넓은 날의 초상이 안쓰러워 눈물겨웠고동강  조국에 살면서 그래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겠다는 장한 꿈을 쫓아 오늘도 다리가 찢어져라 내달리고 있는 조국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겨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p 114

행복해지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부자가  필요도 없습니다죽어라 일해 돈을 버는  최종적으로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그래서 나는 우리가 지금 어떤 ‘샹그릴라 가슴에 품고 있는지과연 행복을 향한 비전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물론 이런식의 질문이 자본주의적 속성을 쫓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질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나는 압니다. ‘사는  이게 아닌데….’라는 회의는 뒤집힌 압정과 같아서 밟을 때마다 하고 억눌려 있는 본성이 속에서 비명을 지를테니까요. p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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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귀신이 되다
전혜진 지음 / 현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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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여성, 귀신이 되다」 라는 책, 정말 흥미롭다. 분류를 역사책으로 묶어야 할지, 고전소설로 묶어야할지 약간 애매하긴한데. 일단 성리학적 사상이 바탕이 된 조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러 고전이나 설화, 필기, 야담집을 인용하긴 했으나 결국 조선이라는 역사적인 배경 아래서 기록된 이야기들이니. 역사책으로 분류를 해볼까 한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으레 알듯 성리학적 사상, 흔히 말하는 유교사상을 토대로 세워진 나라다. 무엇보다 그놈의 유교는 ‘사농공상’을 이야기하며, 학문을 하는 선비를 중요시 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할 부분이있으니, 사농공상의 주체는 바로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우리 모두가 알듯,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가 달리 권리가 없으며 가부장제도 안에서 보호되어야 할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보호’다. 생각보다 많은 조선의 여성들이 가부장제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성리학적 사상에 짓밟혀야만 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권리는 없었고 의무만 있었다는 사실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만 봐도 여성의 존재가 어떤 모습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빗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매체에서 그려진 조선의 여성들은 대부분 가부장적 제도안에서 큰 사고 없이 사는 극히 일부의 조선 여성들의 모습만 그려졌으니까. 물론 그 안에서도 아주 당연하게 남녀차별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매체에서는 그리지 않았던, 조선에서 바라는 ‘정상적인’ 여성상을 살지 못하고 죽은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당대 사대부들이 썼던 필기, 야담집의 이야기를 통하여. 여기서 함정은 필기, 야담집을 쓰고 읽었던 사람들은 당연히 성리학을 공부하던 선비들, 즉 사대부 남성들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귀신이야기에서, 죽은 사람이 조상이 되는지 원귀가 되는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그 사람이 이승에서 각종 통과의례를 별 탈 없이 거치고 살아왔는지, 얼마나 정상적으로 죽었는지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p 015



성리학적 문화권, 유교 문화권에서는 조상, 성현에게 지내는 제사가 참 중요하다. 어느집이든 4대조 조상까지 제사를 지내고, 조상이 업적을 드높이면 조정에서는 그 조상을 불천지위 대상으로 지정하여, 대대손손 제사를 지내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제사를 받는 대상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사망한 ‘남성’이다. 물론 사망한 여성도 제사를 받기는 한다. 제사를 받는 남성의 배우자이면서, 대를 이을 자손을 낳고, 그 자손이 문제없이 대를 이을경우에 한하여. 즉 조선에서 말하는 각종 정상적인 통과의례를 거친 여성만이 사망후에 제삿밥을 먹을 수 있었단 이야기다.



조선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상적인 통과의례는 한 가정에 태어난 후, 정상적인 집안에 본처로 시집을 간 뒤, 그 집에서 자손을 낳고, 그 자손이 정상적으로 대를 이었을 경우를 말한다. 



※성리학적 제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귀신들※

어려서 죽은 이들은 부모 가슴에 못 박고 죽은 불효자식이라고, 제사는 고사하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젊은 사람이 결혼하지 못하고 죽으면 강한 원한을 품어 세상에 해코지를 하는 처녀귀신이나 손각시, 몽달귀신이 된다고 믿었다. 이들 역시 제대로 묘를 쓰지 못했다. 함부로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뭇 사람들이 밟고 다니도록 길 한복판에 묻기도 했다. 혼인을 했어도 자식 없이 죽은 사람, 혹은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은 누군가의 조상이 될 수 없으니 제사를 받지 못하고, 제사를 받지 못하니 원귀가 된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조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식은 있으되 아들이 없어도 원귀가 되었고, 집에서 죽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죽은 사람은 객사한 원귀, 소위 객귀가 되어 떠돈다고 믿었다. p 016



※성리학적 제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귀신들을 위한 의례※

그래서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성리학적 제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별도의 의례들을 마련했다. 죽은 사람에게 굳이 양자를 들여 제사를 잇게 하고,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위해 사후 혼사굿을 했다. 객사한 이들이나 재해로 죽은 이들을 조상으로 안주시키기 위한 굿도 있었다.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결코 조상이 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무속과 불교의 의례를 동원했다. p 016



물론 조선의 남성들도 정상적인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하고 죽었다면, 제삿상을 받지 못했다. 예컨데 단명, 비명횡사, 자손없음 등 말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했더라도, 사망한 그 남성이 좋은 가문 사람이었다거나 종친이었다면 양자를 들여서 제사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죽은 뒤 제삿상 받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뭐, 여기까지는 대충 기본 배경이고... 이 책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범죄에 희생되고, 성리학에 또 다시 희생된 우리네 조상, 여성들의 이야기다.


사또, 억울하옵니다.


‘처녀귀신’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아랑설화」와 「장화홍련전」이랄까? 특히 이 두 이야기는 TV드라마나 영화로도 각색될 정도로 유명한 조선시대 처녀귀신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방영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여름마다 안방을 찾았던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도 수많은 처녀귀신 이야기가 나왔다. 헌데 그 모든 처녀귀신 이야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분명 서로 다른 처녀귀신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구조가 비슷하달까? 



비참하게 죽은 여성이, 죽었을 당시의 모습으로 원님 앞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원님이 억울함을 풀여주면, 처녀귀신이 말끔한 모습으로 바뀌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하직인사를 올리며 사라지는 것. 대부분의 처녀귀신 이야기가 이런 플롯을 가지고 있다. 대체 왜그럴까?


「아랑설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전형적인 처녀 귀신 이야기다. 흰 소복에 머리는 길게 풀어헤친 귀신이 바람과 함께, 때로는 찢어지는 듯한 귀곡성과 함께 원님 앞에 나타난다. (…) 아랑 이야기는 이렇게 원님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야기의 전형이 되었다.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잘못된 소문으로 고통받는 것은 가해자의 잘못이지, 피해를 입은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여성들은 이런 억울한 일을 겪고 어디다 호소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과거에만 그랬을까. 현대에도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사람들은 어두운 밤거리를 돌아다녀서, 외진 곳에 혼자 있어서,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아서 등 범죄의 원인을 손쉽게 여성에게 돌려버린다. p 029



이야기 속에서 여성 원귀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상은 남성 사대부이다. 그 남성 사대부는 대부분 고을의 원님이나 어사나 무변과 같은 사법권을 쥔 관리였다. 피해자는 젊은 여성, 특히 어머니가 없는 젊은 처녀나 기생, 비구니, 여종처럼 약자의 입장에 놓인 이들, 억울함을 직접 말하기 어려운 이들이었다. 특히 아랑처럼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피해 사실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단서만을 주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여성의 이야기는 범행 내용 외에는 흐릿해진다. 이야기는 여성의 억울한 죽음이 아닌, 사대부들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셈이다. p 032



그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처녀귀신 이야기들은 정말 놀랍게도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대부 남성들이 기록하고 향유했던 이야깃거리였다. 애초에 처녀귀신 이야기들이 실려있는 조선시대 수많은 기록들인 『ㅇㅇ필기』, 『ㅇㅇ야담』 등은 기록하는 주체가 남성 사대부였고, 읽는 사람 역시도 남성 사대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처녀귀신 이야기 플롯은 언제나 현명한 원님이 나타나고, 현명한 원님이 처녀귀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우리가 알고 있는 처녀귀신 이야기들을 더듬어 본다. 대부분의 처녀귀신 이야기에는 희생된 여성들의 억울한 사연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거기다 그 여성이 범죄에 희생되는 동안, 여성을 보호했어야 할 가부장제도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예컨에 희생된 여성의 아버지의 보호와 책임등을 말이다. 



적어도 현존하는 필기, 야담집에 수록된 처녀귀신들의 이야기 속의 그녀들은 가부장제도 안에서 정상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대표적인게 바로 「아랑설화」다. 아랑의 부친은 사대부, 그것도 귄위있는 사대부 밀양부사였다. 하지만 아랑의 부친은 아랑이 사라지자 딸을 잘못 가르쳤다며, 사라진 딸을 찾을 생각도 하지않고, 혹시나 범죄에 희생된 건 아닐까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밀양을 떠나버렸다. 「장화홍련전」은 또 어떠한가. 장화, 홍련의 부친인 배 좌수는 계모의 부추김에 손쉽게 넘어가서 자신의 딸들을 의심하고 죽음에 이르게 방조했다. 처녀귀신 이야기는 아니지만, 「콩쥐팥쥐전」의 콩쥐 부친은 아예 언급도 없다(원전에서는 콩쥐가 일단 자신의 몸을 잃기도 했으니). 어머니를 여읜 여성들에게 유일한 보호막은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버지들은 딸을 보호하지 않았다. 



처녀귀신 이야기를 향유하는 사대부 입장에서 이러한 가부장제도의 허점은, 가부장제도를 뒤흔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희생된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택한 것이다. 대신 처녀귀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현명한 원님에 초점을 맞추어, 사대부라는 존재가 얼마나 학식이 높고, 약자를 못 본체 하지 않으며, 용기가 있고, 완벽하고 유능한 존재라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러니 사실 여성 원귀들의 이야기는, 귀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님의 이야기다. 원님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귀신들을 정상성 안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그들을 평화롭게 내쫓은 뒤 현실을 복원하고 가부장적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  현실에서 약자들이 받는 억압은 바뀐게 없고, 아버지는 처벌받지 않으며, 권력자인 원님은 명관이 된다. 이 얼마나 체제 수호적이면서도 당대의 사대부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을까. p 045



어쩌면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왜 희생된 여성들은 귀신의 모습으로 가해자가 아닌 원님을 찾아간걸까? 


놀랍게도 이 역시 이런 기록을 남긴게 남성 사대부이기 때문이다. 희생된 여성들 입장에서 가해자는 1차 피해를 입힌 남성 가해자와 자신의 피해를 방관한 남성인 아버지다. 만약 처녀귀신이 가해자들을 찾아간다면, 남성이 우월하고 가부장제도가 당연시되었던 조선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 수 있으며, 동시에 사대부를 드높이는 기록이 남겨질 수 없으므로 당연히 처녀귀신은 원님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런 처녀귀신들은 이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존재다. 따라서 성리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녀들은 당연히 아버지 보다 더 위에 있는 아버지. 조선의 만 백성이 섬기는 ‘큰’ 아버지를 찾아갈 수 밖에 없다. 조선의 만 백성이 섬겨야 할 아버지는 당연히 임금이다. 하지만 한낱 여성이, 그것도 원귀가 된 여성이 지엄한 임금을 찾아갈 순 없으니 임금 대신 마을에 파견된 행정관인 원님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만 성리학적 사상과 사대부를 드높일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원귀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준 사대부에게 반하지 않는다. 억울함을 밝히고 깨끗하게 다시 매장되고 나면 대부분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은 간혹 원님이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 「원님의 목숨을 구해준 처녀」처럼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고, 「이원지와 재상의 딸」처럼 자신의 가족들을 찾아가 현실적인 보답을 받게 하기도 한다. 감사를 표한 뒤에는 더는 미련도 원한도 없다는 듯이 정말로 사라진다. 영명함은 과시하고 싶지만 귀신과 오래 얽히고 싶지는 않았을 사대부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편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p 034



사대부들은 기본적으로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 (…) 하지만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죽음과 영혼의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성리학자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의 문제를 이기론을 이용해 해명하려 했다. 이들은 필기, 야담과 같은 문집에서 자신들의 흥미와 관심 분야를 드러내며 귀신 이야기를 다루었다. 자신들의 흥미를 느끼는 대목들만을 골라서. 필기, 야담의 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대부들은 이상정인 모습에 가깝다. p037



그래서 처녀귀신 이야기의 결말은 언제나 깔끔하다. 가해자들의 처벌에 대한 내용도 없고, 이런 범죄 피해에 대한 재발방지에 대한 내용도 없다. 그저 처녀귀신의 시신을 찾아 곱게 묻어주고, 처녀귀신은 원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떠난다.



우리는 이런 처녀귀신 이야기를 단지 조선시대 억압받던 여성들의 이야기로 한정 지을 수 있을까?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21세기인 지금도, 자신의 범죄 피해와 억울함을 밝히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하늘의 별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피해를 꼭꼭 숨긴채 오래도록 마음의 병을 키우기도 한다. 그들에게 범죄피해를 밝히는건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왜? 범죄피해를 밝히고 가해자들을 신고한다 한들,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현대판 나랏님들은 재발방지를 위한 법안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유명무실하기 그지없다.



처녀귀신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선 성종 대 어우동과 그녀와 만났던 수 많은 남자들의 처벌을 돌이켜보자. 어우동이 우리가 아는 어우동이 되기 이전에, 그녀는 남편이 있는 부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다른 여자가 좋다며 어우동을 버렸다. 조선 초기까지는 고려의 영향으로 여성의 자율성이 어느정도 있었기에, 어우동은 이혼을 원하였지만, 당시 왕이었던 성종은 그녀의 이혼을 금지시켰다. 왜? 성종은 그의 모친 인수대비와 함께 조선에 남녀가 유별하다는 성리학을 완벽하게 뿌리내리고자 했던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아는 어우동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어우동, 어우동과 간통한 남자들의 처벌수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우동은 사형된 반면, 그녀와 간통한 수 많은 남자들은 한마디로 무죄였다. 



21세기 대한민국, 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들. 피해자들 보호는 여전히 잘 되지 않고,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다.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우리는 정말 처녀귀신 이야기를 조선시대 이야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안채도, 규방도 안식처는 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조선의 일처다부제 속에서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 명의 부인을 맞았다. 납채, 문명, 납길, 납폐, 청기, 친영의 여섯 절차인 육례를 치르고 어엿하게 맞이한 부인의 소생의 가무의 대를 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사대부들은 첩을 들였다. 부인은 맞는다면, 첩은 들이는 것이었다. 예물 대신 예전 명목으로 첩의 친정에 돈을 보내기는 했으나, 부인을 맞을 때처럼 정성스레 육례를 갖추지는 않았다. 자신이 정실이고, 자신의 자식이 가문의 대를 이을 것이라 하나, 남편의 사랑을 다른 여성에게 빼앗긴 부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첩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을 낳아봤자 서자에 불과하고, 평생 부인의 위세에 눌려 있어야 하는데다, 대게는 친정도 부인의 친정보다 신분이 낮거나 가난하니 난편 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 이런 그들이 서로 갈등하고 때로는 미워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대부는 제 정욕 때문에, 혹은 본가를 떠나 한성에서 지낼 때 제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해서 첩을 들이지만, 그 뒤에 벌어지는 가정에서의 갈등은 책임지지 않았다. 고통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p 150



조선의 사대부는 공식적으로 1명의 부인과 여러 명의 첩을 둘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말이다. 사대부들이 여러 여자를 취하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이었다. 사대부들은 자기들의 욕정, 또는 필요로 인해 첩을 두었으나 그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문제들에는 눈을 돌렸다. 대신 그 문제들을 일명 ‘처첩갈등’, 그저 ‘여자’들의 문제라 타자화하며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득옥 이야기는 『성호사설』을 비롯해, 『해동기화』, 『이순록』, 『국당배어』, 『기문총화』, 『풍암집화』 등 여러 필기, 야담집에 실려있다. 경신환국이라는 사건과 대군 가문의 몰락을 배경으로, 사대부 가문에서 벌어지는 축첩 문제와 처첩간의 갈등, 여성들의 질투와 증오라는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틀은 간단하다. 인평대군이 득옥이라는 기녀 출신의 첩을 들였고, 인평대군 부인이 투기해 득옥을 죽였는데, 득옥의 원귀가 집안을 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p 153



사대부들은 외려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고 향유하면서, ‘여성’ 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왜곡된 시선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뿌리깊게 조선 오백년간 뿌리깊게 내려진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기백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부 사람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다(예컨데 성범죄범이나, 가정폭력범이라던가?).



「강생의 전처와 후처」 이야기를 읽으면 필기, 야담이 어디까지나 남성 사대부가 기록한 글이라는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젊고 건강한 후처의 몸에 성품이 어질고 부지런한 전처의 영혼을 집어넣는다는 발상부터가 지독하게 남성 중심적이다. 그런데다 후처가 왜 사나울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비겁할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다. 후처는 첩이 아니다. 전처가 죽은 다음 다시 정식으로 혼인한 부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후처를 전처보다 낮잡아 보았고, 첩으로 오해하는 일도 잦았다. p 159



「귀신이 지은 시를 알아본 김정국」 이야기는 첩이 시가 사람들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불안정한 신분이었음을 보여준다. 글공부가 부족하고 풍류를 좇던 송생이 재주 많은 여성을 만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들, 그 공은 송생의 공일 뿐이다. 여성은 함부로 재주를 내비치니 겸손하지 못하고 요망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현실이었다. 송생의 첩은 귀신이었던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재주 많은 여성을 핍박해 끝내 죽음으로 몰아 낙수의 물귀신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p 165



「일월당 황씨부인 유래」에서는 가난한 집안에 시집 와 아홉 번이나 출산을 한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모질게 시집살이를 시키고 괴롭힌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특히 젖먹이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날 만큼 심한 학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황씨 부인의 서글픈 인생은 시집살이로 고통받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황씨부인당에는 따로 제사를 지내는 날이 없다. 대신 여성들이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재수가 없을 때 찾아와 촛불을 켜고 쌀과 과일을 두고 치성을 드리곤 한다. 구박받던 황씨 부인은 그렇게 이 지역 여성들의 수호신이요, 토지신으로 좌정했다. 그 모든 서러움과 슬픔을 담은채로. p 171



시집을 간 여성들에게 처첩갈등만 있을까? 본처와 후처에 대한 이야기, 시집살이 문제도 고스란히 그녀들의 몫이었다. 후처 자리에 들어간 여성은 이미 죽은 본처와 비교를 당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본처의 자식들이 대를 잇는다면, 후처의 입지는 더더욱 작아질 수 밖에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악명높은 시집살이도 문제였다. 조선 초기까지만해도 고려의 영향을 받아 남자가 여자집으로 장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성종대 이후부터 강력한 ‘유교사상’ 확산으로 여자가 남자집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렇게 여성들의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시집간 여성들이 이 모든 일을 겪는동안 많은 사대부 남성들은 무엇을 했을까? 자신의 배우자가 겪는 어려움을 그저 강 건너 물 보듯 했다.



위의 「귀신이 지은 시를 알아본 김정국」의 일화는 그저 첩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으니, 바로 초당 허엽의 딸이자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이다. 초당 허엽만 봐도 알 수 있듯 허난설헌은 유력 명문가의 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다른 형제들처럼 시/서화에 재능이 있었다. 심지어 부친인 허엽도 그녀의 재능을 아꼈다. 하지만 그녀가 시집을 간 뒤, 그 재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독이 되고 말았다. 허난설헌의 남편은 그녀의 재능을 시기했으며, 같은 이유로 시댁 어른들 역시 그녀를 어여삐 보지 않았다. 거기다 자녀들도 일찍 죽어버리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허난설헌은 결국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만다. 당시 유력한 명문가의 딸이었던 허난설헌의 일생도 이러했는데, 한미한 집안의 재능있는 여성들은 삶은 어땠을까? 신사임당의 가족같은, 유니콘 같은 친정/시댁을 만나지 않고서야, 재능있는 여성이 조선에서 행복하게 살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처/첩 이를 것 없이 재능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의 핍박을 받는게 바로 조선의 여성들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 신사임당은 친정/시댁이 모두 유니콘(?) 같았기에 그녀의 재능이 꽃피웠고, 지금도 신사임당의 그림들이 널리 알려져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명한 아들(율곡 이이)을 둔 덕이 크다. 한마디로 신사임당은 재능있는 여성으로써 이름이 알려진게 아니라, 천재적인 아들 율곡 이이을 키워낸 현모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결국 재능있는 여성이 좋은 가족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해도, 자식을 잘 둬야 그나마 후세에 작품 및 당호라도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비극적이게 삶을 마감한 허난설헌의 경우, 동생인 허균 덕택에 작품과 당호 및 이름 ‘허초희’가 알려질 수 있었던것이고.



왜 조선은 이토록 여성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을까? 유교/성리학을 창조한 공자, 맹자는 진실로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을까? 현자로 일컬어지는 공자, 맹자가 여성을 억압하라고 말하진 않았을텐데.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의 여성을 옭아매던 ‘칠거지악’은 공자의 제자들이 집필한 『공자가어』에 실려있다. 물론 당시 칠거지악이란, 적어도 공맹과 그들의 제자들은 정상적인 며느리와 정상적인 시댁을 떠올리며 남긴 공맹의 자산이었을 것이다.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그 성질이 비틀어지고, 조선의 여성들을 그토록 옭아메는 악법이 되었을뿐.




칠거지악 그리고 삼불거, 내훈


그렇게 조선에서는 ‘칠거지악’과 더불어, 인수대비가 집필한 ‘내훈’을 들이밀며 조선의 여성들을 옭아메기 시작했다. 물론 여성들에게 방패가 되는 ‘삼불거’라는 규범이 있긴 했다. 하지만 남성 사대부들은 이 삼불거조차도 교묘하게 비틀어버렸기에, 실제로 삼불거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조선의 보조 법전인 『대명률』에 기록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권리, ‘칠거지악’.

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거나

아들을 낳지 못하고

음행을 저지르거나

남편이 사랑하는 다른 여자를 질투하고

치료가 되지 않거나 자손에 유전되는 병이 있거나

말이 많거나

도둑질을 할 경우 


여기서 (7)도둑질은 범죄이고 지금도 이혼 사유가 되기에 이해가 되는 사유이다. 하지만 그 외의 사유들은 여성들에겐 너무나 불공평한 사유가 된다. 특히나 (5) 음행의 경우 역시나 지금도 이혼 사유이나, 당대 조선에서는 남성은 첩을 두고 기생방을 가기도 했다. 즉 남성은 합법이나, 여성은 불법이라는 이중잣대란 이야기. (4)투기도 (5)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남성의 일처다부제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1)과 (6)의 정상적인 해석은 시부모에게 잘하라는 이야기인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 시부모가 시집살이를 시켜도 복종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시집살이를 할 때는 눈 감고 삼 년, 귀 막고 삼 년, 입을 막고 삼 년 지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볼 수 있다. (2) 아들을 낳지 못하고는 요즘 시대에서는 당연히 씨를 잘못 준 남성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여자탓을 하는 시부모가 있으니 뭐. (5)도 (2)의 아들을 낳는 것에 대한 연장선이다. 건강한 아들을 낳기 위하여 있는 조항이다. 남성에게 유전병이 있는건 침묵하되, 여성에게 유전병이 있는건 있을 수 없는 조선이었다.



한마디로 조선 사대부들이 생각한 칠거지악은 조악한(!) 시부모를 만나더라도 침묵하고 효성을 다해야하며, 남편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침묵하고 남편을 사랑해야하며, 남편에게 유전병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건강한 아들을 낳아서 대를 잇게 해야한다는, 시가의 화목과 안정/평화를 위해야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이 칠거지악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조선의 여성들은 이혼을 당했다.



물론 여성에게도 원치않는 이혼을 막을 수 있는 방패, ‘삼불거’ 라는 규범이 있었다. 


아내가 의지할 곳이 없거나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뤘거나

혼인할 때는 가난했다가 나중에 부자가 된 경우


언뜻 보기에는 불합리하게 규정된 칠거지악에 대항하는 규범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삼불거 조차도 혼인한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사대부들은 ‘불량한’ 부인까지 삼불거 규범을 허용하면, 사회적으로 불미한 결과를 남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인이 아무리 삼불거를 들이밀어도, 사대부가 부인을 ‘불량한 처’라고 매도하면 여성은 이혼을 막을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 조선 왕실에서더 ‘내훈’이라는 규범을 집필하여, 조선의 여성들을 옭아매는 데 박차를 가했다.



<내훈>


-제1장 언행에서는 부녀자가 말과 행실에서 주의할 점 및 준수사항을 서술하였다.  현모양처의 교육적 인간상을 그리면서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의 여유사행(女有四行)이 있음을 밝혔다. 


-제2장 효친은 어버이에 대한 올바른 효도방법이 무엇인가를 밝혔다. 친가의 부모뿐 아니라 시가 부모를 모시는 법, 부모가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의 효도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제3장 혼례는 혼인의 예절을 밝힌 부분으로, 혼례의 뜻과 혼수감에 대한 기본자세, 혼인 뒤의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였다. 


-제4장 부부는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밝힌 부분으로, 부부의 도를 음양의 이치로써 설명하고, 남편에 대한 예의와 마음가짐 등을 정의한 뒤 역사적인 사실을 특별히 많이 인용하여 아내의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 


-제5장 모의는 어머니로서의 예의범절을 밝힌 부분이다. 유모의 선택에서부터 자식의 연령에 따른 교육방법, 시어머니로서의 마음가짐과 며느리에 대한 교육 등을 설명하였다. 


-제6장 돈목은 정애(情愛)와 화목에 대한 것으로서 동서 또는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밝혔다. 


-제7장 염검은 청렴과 검소의 정신으로 어떻게 생활하고 손님을 대접하며, 관직에 있는 남편을 어떻게 보필할 것인가 등을 밝히고 있다. 



옛날엔 남존여비가 당연했어,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어. 현재의 가치관으로 파악하지 마.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 이전, 고려는 달랐다. 물론 고려에서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그 위치가 높기는 했으나, 적어도 고려의 여성들은 조선의 여성에 비하면 더욱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 이전 시대로 올라가면 더 자유로웠고. 그래도 남존여비가 당연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점은 지금이 21세기라는 점이다. 아주 뚜렷하게 남녀차별이 사라지고 있다. 완벽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함은 없을 정도로 사라졌다. 부디 내 딸이 장성해서, 스스로 삶을 영유하는 시대에는 작은 불편함 조차도 사라진 세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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