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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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두번째 편이 나왔다. 이번 전쟁의 주제는 #중동전쟁. 뭔가 예상외였다. 첫번째 편이 병자호란이었어가지고, 난 당연히 국내 전쟁사가 나올 줄;; 생각해보면 <토크멘터리 전쟁사>만해도 국내 전쟁뿐만 아니라 외국 전쟁까지도 총 망라했었으니, 당연히 외국의 전쟁이 나올 거라 생각했어야 했는데...ㅋㅋㅋ 뭐 여튼, 갑작스런 중동전쟁이라 당황했지만, 중동전쟁도 흥미로운 전쟁사 중 하나니까!




아유 근데, 임용한 교수님 또다른 신간 「세계사를 바꾼 전쟁의 고수들」도 아직 못읽었는데, 허허허허. 뭐... 뭐든 읽으면 되니까..하하하.허허허.


나한테 중동전쟁은 꽤..... 거리가 먼 주제라서 잘 모르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왠걸. 은근 이런저런 세계사책을 자주 읽다보니 중동전쟁에 대해 얻어걸린 내용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착착착! 덕분에 이 책을 읽는데도 막힘없이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중동전쟁에 대해 배경지식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읽어도 전혀 문제 없는 세계사책이긴 하지만, 난 뭐랄까. 한국사를 제외한 세계사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이러는 편이다. 그래야 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번 봐야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눈에 잘 들어온다. 예컨데 이 책 「중동전쟁」에선 이스라엘 쪽 중요 인물인 벤구리온, 메나헴 베긴 ... 같은 뭐 그런 이름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쓰잘데기 없는 TMI.




중동전쟁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국가를 세우기 위해 아랍국가인 팔레스타인과 벌인 전쟁이다. 공식적인 전쟁의 승리는 당연히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운 유대인 사회다. 근데...이게 쉽게 말하기가 참 어렵다. 중동전쟁 자체가 총 4차례나 일어났기 때문이다. 네 번의 중동전쟁은 유대인 사회가 팔레스타인 땅을 일부 뺏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설한 것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 땅으로 확장시켰다. 즉, 중동전쟁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땅 따먹기라고 해야할까?



어찌보면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 빼내는 형국인데, 이게 또 그렇게만 보기에도 어렵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가나안(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 먼저 살았던 사람들은 히브리인(유대인)이다. 아 물론 히브리인 역시 이집트에서 박해받다가 가나안으로 넘어오면서, 가나안 원주민을들 쫓아내고 점령한 것이긴 하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가나안에서 잘 살다가 여러 이유로 가나안에서 쫓겨나서, 우리가 아는 영원한 이방인, 유대인이 된 것이다. 



히브리인의 왕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아시리아의 신바빌로니아왕국에 의해 멸망했다. 그 뒤로 유대인 자치령은 있었지만, 왕국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 땅은 필리스티아인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세계 전역으로 흩어졌지만, 놀랍게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했다. p 022



※이집트에서 박해받던 히브리인은 가나안으로 도착. 가나안 원주민을 쫒아내고(!) 도시를 세웠으나 이스라엘(사마리아인)과 유다(유대인) 두 왕국으로 갈라지고 결국 나라가 사라짐. 현재는 ‘히브리인=유대인’으로 정착.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만든 특별한 조항은 바로 ‘토지 소유 금지’ 였다. 이것이 유대인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은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니 농사도 지을 수 없었던 유대인은 중세시대부터 도시로 몰려들었고, 상인, 수공업, 고리대금, 무역을 장악했다. 당시만해도 산업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 유대인의 금화 주머니는 비상시에는 만인을 위한 금고가 되었다. 근대까지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유대인 학살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기근에 시달리거나 공권력이 허약해지는 등 집단의 야성이 이성을 무력화하는 상황이 되면 유대인을 향한 집단 공격이 어김없이 시작되어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지곤 했다. p 024



그렇게 유대인들은 유럽 여러국가에서 살았지만, 오만가지 박해를 받았고, 토지소유 역시 불가능했다. 그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는 단 한가지, 중세 유럽에 뿌리내린 신앙은 기독교, 즉 예수를 믿는 종교인데, 하필 고대에 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네? 그래서 유대인들은 끊임없는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거다. 거기다 토지소유를 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당시 기독교에서 죄악시했던 ‘금융업, 고리대금업’ 등이었는데, 중세유럽인들은 가끔씩 돈이 부족하게되면 꼭 유대인 박해를 시전하며 그들의 돈주머니를 탈탈탈 털어갔던 것이다.



긴 고난 끝에 근대가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근대라는 세계에 특화된 인종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1697년 런던 주식거래소 중개인 100명 중 20명이 유대인이었을 정도였다. 유대인은 빠르게 금융업을 장악해나갔다. 금융, 즉 ‘돈’을 쥐고 있으니 정보력도 늘어났고 시장의 세계화에도 자연스레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됐다. (…) 유대인들은 아직 국가가 없었기에 이런 방법(국제금융, 신용 등)만으로는 재산을 지키기 어려웠다. 따라서 유대인은 자신들만의 ‘지하세계’를 만들어나갔다. 군수품 조달, 밀수, 비밀조직, 정보기관의 전문가가 되었다. 고급 정보를 계속 조달해야 했기에 <뉴욕타임스>, <로이터 통신>등 언론사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도시에서 만개한 문화예술계 인사, 의사,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직, 언론, 심지어 밀수와 도시 갱단에까지 농부가 대다수였던 토착민보다 유대인들이 앞서서 뿌리를 내렸다. p 026~027



박해받던 유대인들의 위치가 역전된건, 세계가 근대화가 된 이후였다. ‘돈’만 있으면 뭐든게 다 되는 세상, 심지어 지금까지도 동일한 그 세상. 유대인들의 돈주머니는, 자신들의 국가를 설립하기 위해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게 중동전쟁이다. 물론 이 외에도 중동전쟁 배경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 배경에서... 영국이 빠지면 섭하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는 영국 유대인협회장 로스차일드에게 편지를 쓴다. (…) 이것이 유명한 벨푸어선언인데, 이 편지에는 중동 정세를 혼란에 빠트린 두 가지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었다. 첫째, 신생 유대인 국가에서 비유대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필수 조건으로 설정하지 않고 ‘믿는다’, 즉 기대한다는 정도로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은 영국이 이 문제를 전적으로 유대인 국가에 일임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두번째, 영국이 밸푸어선언 이전에 아랍 국가들과 다른 약속을 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10월,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메카 후세인 빈 알리에게 전쟁이 끝나면 아랍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하는 서한을 보냈다. (…) 맥마흔선언이 끝이 아니었다. 1916년 5월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흑해 남동부를 각각 나눠서 차지하고 위임통치를 시행한다는 ‘사이크스-피코협정’을 체결했다. p 038



정말 세계사에서 온갖 나쁜 사건, 또는 악행에서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영국! 원조 섬짱깨이기도 한 영국이다. 그런 영국이 중동전쟁에서도 어김없이 한 건 했는데, 아 한건이 아닌가? 영국은 유대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아랍국가에도 손을 내밀고, 심지어 프랑스+러시아와도 따로 손잡고...이건 이중계약을 넘어 삼중계약이다. 뭐, 당시 세계 정세가 1차 대전으로 인해 이리저리 위험천만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러니 유대인 사회가 빡치고도 남지!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참고 참아온 유대인 사회는 결국 군사단체, 테러단체등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대표 무장조직: 하가나(대표적 무장조직), 팔마(정예특공대), 이르군(강경파 테러조직), 레히(이르군보다 더한 초강경파/슈테른)




중동전쟁의 서막


19세기 말 팔레스타인에 처음 시오니스트들이 나타났을 때, 순박한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손을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팔레스타인은 아랍 지역 중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고립된 곳이었다. 그들도 고대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에 나라를 잃었다. 오스만제국 치하에 살고 있으면서, 독립에 대한 의지도 약했다. 20세기 초반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둘러싸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혀 몰랐다. 이를테면 1차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가 사이크스-피코협정을 맺어서 팔레스타인을 오스만제국에서 떼어내 분할하기로 한 일, 1917년 영국이 벨푸어선언을 발표하고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세우기로 결정한 일 등을 듣지 못했다. p 049



아랍민족주의는 시오니즘보다 30년은 늦게 개화했다. 오지인 팔레스타인의 자각은 더 늦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팔레스타인에 정치 단체가 결성되고, AHC(아랍고등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반면 유대인들은 1930년대에 이미 정예 특공대와 무장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이르군에서는 1943년에 전설적인 지도자가 나타났다. p 050



테러전쟁에서도 유대인들이 우위를 보였다. 펠레스타인은 정치든 군사든 끝내 통일된 조직을 만들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조직된 최대 군사 단체는 1945년에 무함마드 알하라위가 창설한 ‘알나나다’였다. ‘알나자다’는 이스라엘의 하가나와 비슷한 조직으로, 전성기에는 20여 개 지부에 8,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렸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 혹은 훈련이란 퍼레이드나 아마추어 정찰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유대인은 전 세계에 뿌려놓은 디아스포라 덕분에 전문가도 많았고, 후원조직도 막강했다. p 052



유엔 결의안 탄생에는 유대인의 노력과 국제적 로비 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나중에 분할안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신탁통치안을 검토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유대인 유권자들을 의식한 나머지 밀어붙치지 못했다. 또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충격도 무시할 수 없었다. (…) 전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 유럽에서 골칫거리인 유대인을 차라리 팔레스타인에 뿌리내리게 해 지긋지긋한 고리를 끊자는 속셈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증오하고 반성하면서도, 심지어 유대인들이 굴지의 영화사와 언론사를 모두 장학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유대인 혐오는 여전했다. p 056



결국 1947년 5월, 유대인 국가의 수립이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약 1년 후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훗날 ‘중동전쟁’이라 명명된 전쟁이 발발했다. 공식적인 개전 일자는 1948년 5월 15일. 그러나 전쟁은 그 전부터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p 058




전쟁이 시작되면서 더 흥미진진해지지만

그건.. 책을 읽어봅시다 ㅋㅋㅋ



중동전쟁의 결말은 위에서도 말했듯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승리다. 물론 이스라엘이라고 모든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다름아닌 ‘정치’ 였다. 정치가 어떤식으로 전쟁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데,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정치논리를 적절하게 버무렸고, 반면에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연합은 말그대로 서로 정치싸움만 하다가 개판되었다. 그런데......이렇게 중동전쟁은 끝났게 맞나? 중동은 이제 평화가 찾아왔나? 음. 잊을만 하면 뉴스에 나오는 중동문제를 보면, 중동에 아직 평화는 찾아오지 못한 것 같고..



고대, 중세의 전쟁사와 달리 근대의 전쟁사는 이게 문제다. 끝이 끝이 아닌 기분. 아직도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기분.... 찝찌름한 그 기분^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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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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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명실공히 식집사다. 지금은 육아를 하느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화분을 많이 줄였지만, 아직 우리집에는 초록이들이 곳곳에 있다. 내가 식집사를 자처할 때 만해도 우리 신랑은 초록이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벗뜨... 식집사의 기본인 먹뱉(ㅋㅋ)으로 발아한 사과나무와 동네공원에서 씨앗 줍줍해서 발아한 자귀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신랑도 초록이에게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신랑은 늘어나는 초록이들에게 무한 애정을 쏟았지만, 정말 슬프게도...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초록별로 가는 친구들을 왕왕 마주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은 화분속에 사는 아기 사과나무와 아기 자귀나무는 잘 버텨주었다. 식집사로써 사는 기간이 점차 늘어가면서,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고 초록별로 보내는 식물들도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죽어가던 초록이들을 살리기도!



하지만... 아무리 집에서 초록이들을 잘 키운다 한들, 화분 속에서는 한계가 있다. 집 안에서, 좁은 화분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예민하다. 반면에 밖에서, 노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무난하다.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수돗물을 주면 썩 좋아하진 않는다. 어떤 애들은 수돗물의 염소성분을 한 이파리에 몰빵해서, 그 잎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비료도 주기적으로 챙겨줘야하고, 실내 화분에서 생기는 벌레들과도 싸워야 한다. 하지만 노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다르다. 수돗물을 줘도 문제없다. 비료? 굳이 안줘도 알아서 잘 자란다. 모든 식집사들은 알고 있다. 노지가 최고의 화분이라는 것을!!



그래서인가...언젠가부터 신랑과 나는 전원주택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내가 키우는 아기 사과나무와 아기 자귀나무가 우리집 마당에서 자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조그만 화분에서 자라는 다른 초록이들에게도 노지라는 최고의 화분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집 초록이들이 잘 클 수 있는 마당있는 전원주택. 그게 나와 신랑의 ‘언젠간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원주택의 삶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 희망사항이 되었다. 다름아닌 언젠가 걷고, 뛰게 될 우리 집 상전(!) 뿡뿡이를 위해서. 이따금씩 신랑이랑 전원주택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전원주택의 삶이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벌레라던가 쓰레기 처리, 냉난방, 잔디관리 기타 등등. 그래서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에세이 「집이라는 모험」을 만났다. 우리처럼 아파트에 살다가 호기롭게 아파트를 등지고 마당있는, 그것도 엄청난 텃밭 부지를 품고있는 전원주택에서 살기를 선택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호기심 많고 놀기 좋아하고 활동적인 아들을 땅만 밟으면 날개를 단 듯 신이 났다. 아이는 흙과 동물, 그리고 벌레를 사랑했다. 놀이터에서도 그네보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를 관찰하는 걸 더 좋아했다. (…) 땅으로 내려가고 싶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다 있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p 011



저자가 마당있는 전원주택을 택한 이유는 내가 전원주택을 희망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다만 나는 아직도 여러 현실적인 이유를 핑계로 고민하는 반면, 저자는 바로 GO !!! 편리한 아파트를 버리고, 주변의 편의시설들을 버리고 전원주택을 택한 이 가족들의 삶은 어땠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훗날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니까.



이사 오기 전까지 살던 아파트는 전철역도 가깝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서 여러모로 쾌적하고 편했다. 남편은 그 집을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느닷없이 이 집을 보고 이사를 조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생각할 필요도 없다던 사람이다. 일 년이라도 좋으니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며칠을 간절하고 절절하게 부탁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마침내 져주었다. 


“당신이 좋으면 난 그걸로 됐어…” p 022



이 집은 오래 비어 있었다. 바닥 난방을 한다고 단번에 따뜻해질 수 없었다. 이사를 오기 전에 집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어디로 바람이 제일 많이 새어 들어오는지, 어디를 어떻게 손봐야 한기가 덜 스미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이사를 왔다. (…) 모든 문제를 찬찬히 파악해서 대비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 함께 모여 각자의 체온으로 서로를 덥혀주는 겨울밤에 우린 이불 속에서 재미난 얘기들을 많이 나눴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제 몸을 꼭 붙이고 잠들었다. 굴속의 토끼들처럼, 엄마 곰 품안에 있는 아기 곰들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겨울을 났다. 추위라는 모험은 호되고 힘겨웠지만 가족이 함께 통과하면서 추위와 사이좋게 어울리는 법을 찾아냈다. 우리가 받은 첫 선물이었다.  p 026~027



역시나. 전원주택의 제일 큰 걱정인 냉난방 문제가 제일 먼저였나보다. 한 겨울에 따수운 아파트를 등지고, 추운 전원주택에서의 삶이라. 헌데 그마저도 이 가족들에겐 선물이 되었다. 아파트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서로의 온기를, 추운 전원주택에 와서야 누리게 되었던거다. 엄마곰 품속의 아기곰들이라니. 상상만해도 웃음이 난다. 서로 한데 모여 부둥켜않고, 잠들때까지 조잘조잘거리는 모습. 저녁만 되면 서로 자기 방에 들어가버리는 아파트에서의 삶과는 다른, 가슴 땃땃한 풍경이다. 전원주택은 춥지만 그 안에 있는 가족들의 마음은 땃땃하기 그지없다.



이사를 한 지 닷새 만에 시가 식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모두 지방에서 먼 길을 온 터라 당연히 일박 이일이었다. 좋은 아파트를 버리고 외진 곳에 있는 주택으로 이사했으니 어떤 집인지 궁금할 것 같아 서둘러 마련한 자리였다. 시어머님은 잠을 설쳐가며 밤새 벽난로에 불을 지피셨다.


“흠… 안팎에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p 053



이 집에서는 어떤 일을 겪을 지 몰랐다. 그래서 뭐든, 어떤 일이든 우선 신기하고 새로웠다. 조심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아이들을 단속하기보다는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하고 눈과 마음을 빛내며 창밖을 보곤 했다. (…) 이 집에서는 나날이 모험이었다. 모든 날이 다른 색채와 느낌으로 다가와 놀랍고 뿌듯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모험이 넘치는 집에 산다는 것, 눈을 뜨면 여전히 설레고 놀랍고 두근거리는 일이 기다린다는 것,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다. p 057~058



아파트와는 달리 전원주택은 안팍으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위험요소가 확실히 많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위험요소들은 호기심 천국인 아이들에게는 새롭고 신기한 모험이자 놀이고, 교육이다.



요즘 아이들은 해가 뜨면 교육기관을 뺑뺑돌다가, 늦은 오후나 저녁에 집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뛰어다녀야 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심지어 그 놀이터 조차도 아이들 다치지말라고, 모래밭이 사라진지 오래다. 나 어릴땐 매일같이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여있었다. 모래밭 놀이터라 모래를 맨날 파고, 뛰어다니고 막 그러면서 놀았던 기억이있다. 분명 그때는 당연했던 모래밭 놀이터가 지금은 사라지고, 바닥이 고무로 포장된 안전한 놀이터가 되었다. 더 안전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없다. 발이 푹푹 들어가는 모래밭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놀이자 또 하나의 교육이다. 거기에 의도치않은 면역력 증진은 덤이다. 하지만 안전한 고무바닥은 집안에 있는 놀이매트와 다를게 없으니, 우리 아이들이 굳이 놀이터에 나갈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지를 않으니, 그만큼 활동성은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니 정신력도...휴.



난 우리 뿡뿡이가 모래밭, 흙밭을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놀이터는 전부 고무매트 시공이다. 이게 지금의 내가 전원주택을 원하는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집을 계약할 때 주인 어르신은 텃밭 농사도 꼭 지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집 주변이 다 밭인데 놀리고 묵히면 땅도 집도 금방 망가진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그래야죠, 맞장구를 쳤다. 텃밭 가꾸는 게 꿈이었다고, 염려하지 말라고 목에 힘을 주었다. 주인은 미심쩍어 했다. ‘어린애 셋에, 더구나 막내는 아직 돌도 안 지났다면서 이 애들을 데리고 큰 집 건사하는 일만 해도 벅찰텐데 농사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자신 있다며 방긋 웃었다. p 105



수확은 변변찮았지만 십이 년간 비닐과 농약, 비료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온 점은 스스로 칭찬하고 있다. 유난히 우리 밭에 벌레와 동물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거다. (…) 우리가 돌보고 우리를 키워온 땅, 이곳을 떠나도 내 몸은 봄이 오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던 일을 기억하고 또 어딘가에 무엇을 심을 생각에 들뜨지 않을까? 바라건대 어디에 살든 심고 가꾸고 돌보는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다. p 110



마당 있는 집으로 와 농사를 짓게 되면서 내게도 첫물의 맛이 생겼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얼었던 땅이 녹고 온갖 초록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땅거죽은 단단하지만 샆으로 떠서 뒤집으면 고슬고슬하게 풀어진다. 그 땅을 일궈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땅에서 뾰족한 순들이 솟아 나올 때, 시들하던 모종이 이윽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마침내 새 잎을 밀어 올릴 때면 쿵쿵 가슴이 뛴다. 어서 자라라, 빨리 자라라 노래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된다. p 135



밭일이 너무 많아서 고단하고 지친 나머지 이제 농사를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첫물의 맛을 기다리게 된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분명 먹었을 텐데 첫물의 맛은 언제나 오나벽하게 새롭고 감동적이다. (…) 살아 있어 해마다 새봄을 맞고 첫맛을 보는 일은 얼마나 멋지고 귀한가. 모든 것이 얼어붙언 찬 겨울에도 땅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새 맛을 알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힘든 날을 견디게 한다. 어쩌면 이번 봄의 나도 지난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지 모른다. 첫물의 맛처럼 내 안에서도 쉼 없이 처음 솟아나는 무엇이 있기를 바란다. p 137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두번째 이유는 바로 이거다. 베란다 속 화분 따위가 아니라 무려 ‘노지’에서 텃밭을 꾸릴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초록이들을 원없이 가꿀 수 있다는 것. 베란다 온실&텃밭에서 키우는 초록이들에게 유료햇빛도 쐬어주고, 물도 잘 챙겨주고 비료도 꾸준히 챙겨준다 한들, 노지에서 자라는 애들을 이길 수 없다. 맛도, 크기도, 그 위용도...정말 다르다. 이태리산, 독일산, 국내산 각종 화분을 골라도 결국 최고의 화분은 ‘노지’다. 



다만 두려운 점은 있다. 생각보다 시민의식이 떨어진 사람들이 많다보니, 남의 텃밭에 들어가서 작물을 터는 상황을 자주 보았다. 뿐만인가? 대문 안에 있는 화단, 텃밭까지도 기어들어와서 파가는 경우도 보았다. 대문열고 들어와서 튤립, 수선화 알뿌리만 쏙쏙 파내갔다는 이야기에는 진짜 혀를 내둘렀다. 이쯤되면 시골이고 도심이고 상관없이, 남의 화단&텃밭을 탐내는 도둑놈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이게 바로 전원주택은 커녕, 넘쳐나는 주말농장 조차도 선뜻 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말 전원주택의 삶은 아파트와는 달리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 단점이라기 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불편함’이라고 해야겠지. 그 불편함 때문에 나는 편리한 아파트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가 아주 명확하게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알고서도 전원주택을 택한 저자를 보자니, 못할 것도 없지않나 싶다. 전원주택의 불편함은 그냥 내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전원주택의 삶은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얻는게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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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01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뱉 ㅎㅎㅎ빵 터졌어요. 초록별로 가는 식물이라 정말 예쁜 글이네요 *^^*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아라이 메구미 지음, 김정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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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주 놀라운 책을 읽었다. 뭔가 21세기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의 책이었달까? 어떻게 클릭 한번이면 많은 것이 변하는 21세기에! 불과 백년 전 조선에서나 볼 법한 사회문화가!!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는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이런 놀라움을 선사한 책은 영국의 사회문화상을 담은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라는 책이다. 세계사책도 꽤 좋아하다보니, 그저 영국사의 일종이라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왠걸. 입이 떡떡 벌어지면서 “이게 진짜라고?”, “21세기 맞아?”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와, 뭐지 정말?! 나에게 영국이란 ‘유나잇 킹덤’, ‘입헌군주제’, ‘닥터후’, ‘해리포터’, ‘일본이 사랑하는 나라’ , 딱 5가지의 키워드 밖에 떠오르는게 없어서 그런가. 허허허.



입헌군주제 국가니까 당연히 왕이 있다는 것 까지는 이해했는데, 하하.. 귀족사회라니. 상류계급이라니. 심지어 지금도 이어지는 영국의 사회문화라니. 내가 지금 무슨 책을 본 것인가. 하하.허허..하하하하. 근데 생각해보니, 왕이 되지 못한 왕족들은 곧 귀족이네? 그러고보니 지금 영국 왕족들 보면 프린스, 프린세스 말고도 백작이나 공작 작위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 근데 정말 ㅋㅋㅋㅋㅋㅋ 선진국이라는 영국이 아직도 귀족이니 뭐니, 그들만의 귀족문화를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는게 넘 충격적이다. 혹시나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좀 해봤더니, 더 충격적 사실을 발견. 영국 의회를 구성하는 구성체가 ‘귀족원(상원)’과 ‘서민원(하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서민원보다 귀족원의 인원수가 훨씬 많다. 난 영국의회 의원들이 그냥 미국 상원, 하원처럼 그런 의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건 뭐여.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와 영국의 21세기가 같은 시기가 맞는건가. 허허허. 물론 귀족원의 귀족들 중 대부분의 일대 귀족이고, 약 10%가 안되는 인원만 세습귀족이라고는 하는데, 어찌되었든 다 귀족이자나! 내참. 하 ㅋㅋㅋ 



이 책에 따르면..



영국의 귀족들은 어퍼 클래스와 어퍼-미들 클래스로 나뉜다. 어퍼는 ‘작위’를 수여 받는 사람과 그 가족.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 어퍼클래스 안에는 어퍼와 어퍼-미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영국의 작위&재산은 대대로 장남세습제라고 한다. 즉 부친의 작위와 재산을 세습받게 될 장남은 계속해서 어퍼클래스지만, 세습받지 못하는 차남 이하는 어퍼클래스에서 방출! 그럼 차남 이하는 어떻게 먹고사느냐? 월급쟁이로 먹고산다. 단, 흔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고소득층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월급쟁이로. 한마디로 차남 이하는 어퍼클래스 환경에서 자라지만, 독립이후에는 혼자 벌어먹어야 하는 미들 클래스로 넘어가야데, 그렇다고 미들클래스 취급하자니, 진짜 미들 클래스와는 급(?)이 아주 다르기에 어퍼-미들클래스라고 한단다. 무슨.....조선시대야?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건지. 하. 아니 근데, 영국인들은 이런 자국의 귀족 문화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는데 진짜인건가. 와 혼란하다 혼란해. 



그러다 문득... 인터넷에서 보았던 귀족출신 영국 배우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고나니, 확실히 알게 된 건 분명하게 어퍼클래스라면 그들이 배우를 할 리가 없다는 것. 헌데 지금 배우를 하고 있다는 건 이들은 어퍼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어퍼-미들클래스라는 이야기! 이렇게 어퍼-미들 클래스 출신의 영국배우들이 누가 있느냐 하면....



해리포터의 벨라트릭스, 스위니 토드의 러빗부인을 연기했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어퍼-미들 배우 중에서도 제일 급이 높은 사람이라한다(어퍼-미들 중에서도 급을 따집니다요, 허허허). 대표적인 정치진 집안에다가, 증조부가 영국수상(백작)! 그녀의 친척이 지금도 귀족에(아마도 증조부 작위 상속?), 헬레나 가문은 로스차일드 가문과 연관되어있다고;;


토르에서 로키를 연기했던 톰 히들스턴도 어퍼-미들 출신인데, 외증조부가 작위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셜록과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했던 베네딕트 텀버베치도 어퍼-미들 출신이란다. 리처드 3세 후손이라는데, 그건 모르겠고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조상이 대규모 노예상이었다고 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킹스맨의 해리 하트를 연기한 콜린퍼스는 부모가 전문직 교수인, 어퍼-미들 출신이다.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를 연기한 엠마왓슨도 부모가 전문직이며, 어퍼-미들 출신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어퍼-미들 출신의 영국배우들은...어퍼-미들 중에서도 급(?)에 따라 나열한 것이다. 즉 같은 어퍼-미들이어도 헬레나 본햄 카터가 제일 상류계급. 하 ㅋㅋㅋ정말 21세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게 너무 어이없긴 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영국 귀족은 지금도 있고, 계속해서 세습되고 있기 때문에, 하 ..ㅋㅋㅋ 아 근데 자꾸 얼척이 없는건 왜인가 ^_T. 미춰버리겠네. 진짜 21세기 맞는거지 지금..



뭐,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현대에 들어서면서 작위에 서임된 신진 귀족들이나 그 후손들은 저택이나 땅 등 상속재산과는 큰 인연이 없다고 한다. 거기다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도 있다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고. 1965년 이후로는 비왕족에게 수여되는 세습 작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귀족의 대가 끊기는 경우도 생겨나는 중이란다. 이말은 즉 귀족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 그치그치, 21세기에 세습귀족이 왠말이야.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 또 하나. 내가 알고 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래 개념은 현대에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사실. 원래 영국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저 자기 영토와 저택을 지키고, 자기 영토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지키고, 자기의 재산을 후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었다니. 거기다 자기의 토지를 밟고 다닐 수 있게 허가해주는 ‘통행권’을 주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니. 아, 정말.... 하, 21세기. 그래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21세기다. 하..



아.. 그러고보니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계급이 세습되기는 하는구나? 대기업 설립자 가문이라던가, 뭐 그런거. 근데 유독 이런 세습들은 부정부패, 비리가 넘쳐나는데. 어차피 대기업 세습이나 영국 귀족 세습이나 계층간 이동이 불가능한건 매한가진데, 이쯤되면 차라리 자기 영토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지켜주는 영국 귀족 세습이 더 건전한건가?


하 ㅋㅋㅋㅋ 이 책을 읽고 꽤 머리가 딩-하긴 했지만, 매번 사건, 사고, 인물이 위주인 세계사 책만 보다가 이런 사회문화를 주제로한 세계사 책을 보니 진짜 엄청 새롭긴 하다. 새로운 눈이 뜨인 기분;



아래는 영국 귀족 문화중에서 제일 관심이 높은 귀족의 칭호와, 어퍼-미들 클래스의 차이, 상속제도에 대해 일부 발췌하였다.



▶ 귀족의 칭호


헨리 왕자의 정식 명칭은 서식스 공작, 덤버턴 백작, 킬킬남작 전하였고, 메건은 서식스 공작부인 비 전하였다. 헨리 왕자의 세계의 작위는 그의 결혼식 날 아침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여한 것이다. 그중에서 서식스 공작은 이른바 ‘정식(substantive)’ 작위이고, 나머지 두 개는 ‘부차적(subsidiary)’인 작위이다. 여러개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 가장 위의 작위가 ‘정식’, 나머지가 ‘부차적’ 작위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국의 작위를 확인해보면 위로부터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순으로, 이들이 세습귀족(hereditary peer)이다. 여기에 자녀들에게 작위가 상속되지 않고 1대만 유지되는 귀족(life peer), 그리고 세습제이지만 ‘귀족’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귀족원 멤버도 될 수 없는 준남작(baronet)이 있다. p 014~015



다이애나 사후에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카밀라의 정식 칭호는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 비 전하이다. 그러나 카밀라는 이 칭호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콘월 공작부인 전하로 알려져 있다. 콘월 공작이란 찰스 왕세자의 부차적 작위로, 카밀라는 사고로 죽은 다이애나에 대한 경의의 뜻으로(그리고 아마도 여론을 고려해서)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p 016 



이와 같은 칭호는 그 사람이 공작, 후작, 백작의 장남인지, 차남 이하의 아들인지, 그 아래의 작위를 가진 집안의 아들인지, 귀족의 딸인지, 아내인지, 이혼한 아내인지를 드러내는 구조로 되어있다. ‘정식’작위와 ‘예의상의’ 작위의 차이점도 사실은 영어 표기로 알 수 있다. ‘정식’ 작위는 The Duke of Devonshire라고 ‘The’가 어두에 붙는 반면, ‘예의상의’ 작위는 Marquess of Hartington이라는 식으로 ‘The’가 붙지 않는다. p 019



‘나이트’라는 칭호는 왕실로부터 훈장과 함께 수여된다. 여기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고, 편지의 수취인 이름 등으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하나는 왕실이 설립한 ‘기사단(Orders of Chivalry)’에 속하는 것, 또 하나는 기사단 입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트 배철러(Knight Bachelor)’라고 불리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나이트에게는 ‘서’라는 칭후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태어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8년에 나이트 칭호를 수여받아 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되었다. 나이트는 그 인물이 국가, 왕, 또는 교회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인정될 때 수여되는 칭호로 세습제가 아니다. p 025



*서식스 공작: 1801년에 조지 3세의 여섯 번째 아들인 어거스터스 프레데릭 왕자를 위해 창설


*덤버턴 백작: 스코틀랜드 작위로 1675년에 창설, 1749년에 상속자가 없어져 사라짐


*킬킬 남작: 북아일랜드의 작은 항구에서 유래된 작위. 헨리 왕자에게 북아일랜드의 작위를 수여하기 위해 창설



*The Duke of Devonshire ㅇㅇ: ㅇㅇ공작


*Marquess of ㅇㅇ: 공작의 장남 ㅇㅇ


*The Marquess of ㅇㅇ: ㅇㅇ후작


*Viscount ㅇㅇ: 후작의 장남 ㅇㅇ


*The Lord ㅂㅂㅇㅇ:ㅇㅇ공작(또는 후작)의 차남이하 ㅂㅂ




▶ ‘영거 선’과 어퍼 미들 클래스


‘영거 선(커뎃)’이란 차남 이하의 아들들이라는 의미로, 이 경우에는 특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미트퍼드의 소설 『추운나라에서의 연애(1949)』에서는 몬트도어 백작 부인이라는 인물이 딸의 결혼 상대 후보가 ‘장남’이라는 것에 만족한다. (…)‘영거 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영거 선이야”라는 문맥에서는 단순히 차남이나 셋째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 또는 작위는 없어도 ‘한사상속제도’가 적용되는 지주의 ‘차남 이하의 아들’, 즉 작위도 재산도 상속받지 못하는 못하는 불리한 입장에 있는 아들을 가리킨다. p 037



여기에서 말하는 ‘직업’이란 어퍼클래스의 ‘영거 선’들이 주로 종사했던 ‘전문적인 직업’이라고 불리는 일, 즉 육군과 해군의 사관, 외교관, 성직자, 그리고 법률가다. 그리고 금융과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직업들은 모두 ‘특수한 능력과 연줄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수당과 월급을 받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피트퍼드는 「영국의 귀족」에서 “귀족이 살아가는 목적은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영거 선들은 필연적으로 그 아래 계급, 즉 누군가에게 보수를 받기 위해서 일하는 이른바 ‘미들 클래스’로 진입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가족 안에서도 귀족과 대지주인 ‘어퍼 클래스’와 보수를 얻어 생활하는 ‘미들 클래스’가 혼재하게 되는 것이다. p 039



어퍼 클래스의 ‘영거 선’이 직업을 가짐으로써 그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는 반면에 이러한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규모의 상인과 작은 농장을 가진 사람들의 아들들, 이른바 ‘미들링 소트’라고 불린 종래의 미들클래스다. (…) 나중에 ‘어퍼 미들 클래스’라고 불리게 되는 이 계급은 이처럼 ‘위에서 아래’와 ‘아래에서 위’로 이동한 사람들이 혼재하는 사회적인 계층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 특징과 계급의식도 좀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p 040



▶ 컨트리 하우스와 상속


귀족의 친척이라도 ‘미들 클래스’인 경우는 많았다. 그 이유중 하나는 제2장에서 서술한 것 처럼, 장남이 아버지의 칭호와 저택, 토지를 상속받는 장자상속제도로 말미암아 차남 등은 필연적으로 어떤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고, 그 결과 ‘미들 클래스’로 진입해 ‘미들 클래스’의 배우자를 얻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The Heir and the Spare(상속자와 그 예비)’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 부호의 딸로 제9대 말버러 공작의 부인이 된 콘수엘로 밴더빌트가 두 번째 아들을 출산했을 때 사용한 표현이라고 한다. 귀족과 대지주에게는 우선 장래 상속자가 될 아들이 태어나야 하는데,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예비’의 아들, 즉 ‘영거 선’도 있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작위와 저택을 상속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형이 몸이 약하거나 할 경우에는 자신이 상속자가 될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의 추리소설에서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들 간의 갈등이 자주 묘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남과 차남 이하 형제들의 상속 규모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p 076



귀족의 상속제도에도 예외는 있다. (…) 영국에서 여성 최초로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가 1992년에 수여받은 칭호가 여남작이다. 단 그녀의 경우는 ‘일대(一代)귀족’으로, 자녀들에게는 작위가 계승되지 않는다. ‘일대 귀족’제도는 1958년에 제정된 ‘일대 귀족 법안’으로 정해진 것으로, 그것을 제정한 의도는 의회의 귀족원을 근대화해서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제도에 의해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과 여성들이 귀족원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일대 귀족은 통상 ‘남작’이라는 작위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인기 작가이자 정치가이고 위증죄로 투옥되는 등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제프리 아처도 일대 귀족이자 남작이다. p 080



이와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영국에서는 귀족과 지주의 저택과 재산을 장남이 전부 상속받는 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여성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남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차남 이하의 교육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지만, 딸의 경우에는 상속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좋은 결혼을 하기 위한 예의범절과 교양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앞에서 언급한 제9대 말버러 공작의 부인인 콘수엘로는 1953년에 출판한 『광채와 금』이라는 자서전에서 소녀 시절에 동갑내기인 영국 귀족의 딸과 친해질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가 너무나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깜짝 놀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p 084



레이첼 워드는 자기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것을 바꾸려고 해도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고 말한다. 21세기의 젊은 여성들은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희망하는 직업을 가지며 남성과 같은 대우를 원하는 동시에 그러한 대우를 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자상속제도의 모순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마치 몇십 년 전에 있었던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항후 영국 귀족과 지주를 유럽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온 ‘전통’과 ‘다음 세대에 무사히 상속한다’는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온 제도에도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p 087



어퍼 클래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소유하고 있던 저택과 토지를 관리하는 것,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웃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 그리고 저택과 토지를 온전히 다음 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주민들이 좀 더 가까운 길로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의 토지에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는 ‘통행권’을 발급하고, 토지와 저택을 1년에 몇 번씩 공개하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무다. 19세기 후반의 소설 속에는 갑자기 큰 돈을 벌어서 토지를 얻은 ‘벼락 부자 지주’들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불만을 산다는 테마가 자주 보인다. p 090



컨트리 하우스는 그 규모나, 사람들이 감상하기에 적합한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이러첨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20세기가 되자 방대한 유지비로 허덕이는 귀족과 지주들이 자신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저택의 일부와 정원을 공개해서 입장료를 받아 수입의 일환으로 삼게 된 것도 이 ‘컨트리 하우스 방문’이라는 관습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선대로부터 커다란 저택과 토지를 물려받은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을 어떻게 유지해서 다음 대에 물려줄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p 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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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세계사 교양 수업 365
김윤정 옮김, 사토 마사루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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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출간되는 역사책들을 보면, 대게 숫자로 보는(?) 역사책이 많아졌다. 정말 많은 역사책들이 한국사, 세계사 망라하고 역사를 숫자로 보고 있다. 우리집 책장에도 숫자로 보는 역사책이 한국사, 세계사를 망라하고 열댓권은 있다. 이런 책들은 공통점은 대체적으로 대중서, 교양서를 표방하다보니 역사를 어려워하는 청소년, 어른이들이 읽기에 딱 좋다는 점이다. 특히 책 제목에 붙는 숫자가 ‘365’일 경우, 하루에 한 페이지 또는 한 주제씩 끊어 읽어도 전혀 문제 없는 책들이다. 책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딱 좋은 책!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인 「인물로 읽는 세계사 교양 수업 365」도 그런 류의 역사책이다. 이 책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365명의 인물들을 선정하여, 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 인물의 삶이라니, 한 사람당 내용이 긴거 아니야?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걱정은 NO! 대체적으로 1페이지고, 길어야 2페이지에서 끝난다. 거기다 해당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매 페이지마다 주석에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추천도서’가 선정되어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의 인물을 시대별로 나눴는데, 시대 속에서도 ‘정치, 군사, 경제/경영, 철학/사상, 종교, 과학, 문학/연극, 예술/건축, 사진/영상, 그외’의 주제로 인물들을 나누어 설명한다. 시대별로 따지면 고대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대의 인물까지 총 망라되어있다. 특히 고대 편을 보자면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 중에선 ‘정치: 함무라비왕, 람세스2세, 알렉산더대왕’,‘과학: 피타고라스(^^..)’ 등이 있고, 반대로 세계사에 크게 관심이 없을 경우에는 익숙하지 않은 ‘군사:스키피오, 플리니우스’, ‘문학/연극: 베르길리우스’ 등 어려운 이름의 고대 인물들도 있다. 시대를 훅 건너 뛰어서 서양의 현대편으로 오게 되면 ‘음악: 루이 암스트롱, 존 레넌’, ‘미술: 앤디 워홀’, ‘사진,영상: 월트 디즈니, 마릴린 먼로’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세계사 속 중요한 인물들을 거론하는 책에서 만약 오롯이 모르는 인물들만 가득했다면 선뜻 읽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모르는 인물들도 있는 반면, 우리가 잘 아는(또는 교과서에서 나온)인물들도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책을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




다만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세계사를 표방한 이 책에 실린 인물들중 동서양의 비율을 따지자면 ¾ 이상이 서양인이고, 80명이 채 안되는 나머지가 동양인이라는 점이다. 순간적으로 대체 이 비율 무엇인가 싶어서, 지은이가 서양인인가 하고 다시 표지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지은이는 일본인! 음, 그렇다면 인정. 일본사나 일본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상하게 일본은 유럽에 대한 환상이 강하다(일본인들의 파리증후군도 대표 사례중 하나랄까). 특히나 근대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따라하기(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 등)를 목표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일본은 지금까지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높은 편이다. 뭐 이건, 이게 내 편견이라고 한다면 어쩔수 없겠지만, 일본에서 생겨난 서브컬쳐들을 보면, 오랜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벗겨지지 않은 것 같다. 뭐, 거기다 난 지금도 심심하면 NHK 채널을 즐겨보는 사람이라 그런가, 서브컬쳐가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유럽에 대한 환상이 곳곳에서 보인다. 뭐, 어차피 우리에게 ‘세계사’라고 하면 우리를 제외한 아시아 역사보다는, 아무래도 서양의 역사라는 생각이 더 강하니까 동/서양 인물들에 비율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대신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책에 실린 동양인 중 일본인 비율이 꽤 높다는 점이랄까?아무래도 저자가 일본인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일본 인물들에게 너무 치우쳐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컨데 문학/연극편에 이백, 두보, 왕희지와 함께 무라사키 시키부가 나란히 실려있다. 물론 겐지모노가타리가 수준 높은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음. 군사편에는 단 두 사람이 있는데 항우, 도고 헤이하치로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일본에서는 위대한 해군 제독이긴 한데, 도고가 들어있을 정도면 이순신도 저 자리에 있어야하는게 맞지 않나 싶었다. 철학/사상편에는 공자, 노자, 맹자, 사마천, 주자, 사마천과 함께 니토베 이나조가 나란히 실려있다. 약간 음. 이들이 모두 일본에서는 유명한 인물들인건 맞긴한데, 음. 인물 선정에 따른 저자의 사심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만 제외하면 이 책에 실린 인물에 대한 내용은 꽤나 객관적으로 서술한 느낌이기에!



동양의 인물들 중 정치면에는 고대부터 근세까지 내노라하던 인물들이 꽤 많이 있었다. 대륙 출신으로는 진시황제, 한무제, 당태종, 측천무후, 양귀비, 쿠빌라이칸, 정화 등등등. 중국사 뿐만아니라 세계사 측면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 줄줄이다. 한반도 출신은 세종과 김일성, 박정희 딱 세명이다. 뭐, 우리에게는 우리의 위인들이 익숙하기도 하고 많기도 엄청 많지만, 세계사 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꼽으라고 하면 그리 많지는 않으니, 이 부분은 어쩔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좀.. 위에서도 말했듯 이 책에 기록된 일본 인물들을 면면을 보자면, 조금 아쉽긴하다. 하하하. 뭐, 여튼!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님은 두말하면 입아프니 넘어가고, 김일성과 박정희는 대체 왜 이 책에 실려있나 살짝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이 두 사람은 일본 정치쪽에도 큰 영향을 끼쳤기에 이 책에 실린건가 싶다. 이유야 뭐- 김일성의 한국전쟁 덕분에 일본의 경제가 살아났고, 박정희는 과거 일본군 출신에다가 한일기본조약으로 일제의 만행에 면죄부를 준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뭐랄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거 아니야?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왠걸? 김일성이나 박정희에 대한 내용은 생각보다 사심없이, 중요한 내용들이 모두 기록되고, 심지어 정확(?)했다. 특히 박정희 편은 정말......‘오-!’ 하면서 읽었다. 특히 박정희편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있다.



1979년 10월 박정희는 중장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61세에 암살당했다. 한국은 이후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는 민주화의 시대를 맞이하지만, 1980년 5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전두환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해 한국의 민주화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2013년에는 박정희의 장녀 박근혜가 대통령에 올랐으나, 세월호 침몰 사고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인해 2017년 대통령에서 파면되었다. p 416



와 ㅋㅋㅋㅋㅋㅋ 정확해정확해. 탄핵된 그 딸의 이야기까지 실려있을 줄이야. 동양 인물 선정 기준만 제외하면, 이 책은 청소년이나 역사에 관심없는 어른이들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세계사 책을 읽어보고 싶으나, 기존의 세계사 책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가히 추천할 만한 역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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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 구글러가 들려주는 알기 쉬운 경제학 이야기
박진서 지음 / 혜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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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태생적으로(?) 문과이자 인문학도에다가, 심지어 전공도 인문계열인 행정학/일본학이다. 태생적 문과(?)답게 수능 사탐과목 조차도 뭘 골라야할지 모를 정도로, 대부분이 흥미로워서 고민했었다. 물론 딱 한 과목 ‘경제’를 제외하고. 심지어 고2 담임쌤이 경제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아주 극혐했다. 당시 담임쌤에겐 미안하지만, 경제시간에는 거의 다른 과목 공부 할였으니 뭐. 그정도로 난 경제와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그렇다고 경제 과목을 아예 무시한건 아님! 다만 시험을 위해 주입식으로 외웠을뿐) 당최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는 무슨 공자님 말씀마냥, 내가 아는 사회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에 이런게 경제라면, 내 삶과 무관할 것 같았다. 이런 경제를 배워봤자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고, 내 집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그렇게 1n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내가 한 모든 행동들은 충격적이게도, 내가 그렇게 극혐하던 경제생활이었다. 거기다가 매일매일 뉴스 경제면을 장식하는 유가변동, 금리인상/인하, 원재료값상승, 집값상승, 최저임금 인상, 코스피 급락 등등등 두말하면 입아픈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삶에, 우리 모두의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까. 확실한건.. 학교에서 배웠던 경제 교과서에선 이런 현실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가르쳐준적이 없었다는 거다.



거기다 TV에 나오는, 경제학자라는 명함을 들고 있는 저명한 인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뭐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러니 사람들이 자꾸 경제를 멀리하게 되고, 경제를 멀리하게 된 여파는 역풍의 부메랑으로 다시 돌아오고, 거기다 역풍을 맞는 이유 조차 생각해보지 못하는거 아닌가. 예컨데 학교에서 금리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에 나와 급하게 내집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골라준 대출을 한다 치자. 그 결과가 바로 현 상황이 아닐까? 이자가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까지 올라서 한달에 부담해야할 이자가 원금보다 더 높은 상황같은 뭐 그런거. 만약 고정금리, 변동금리, 금리인상/인하 등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다면 만약을 위한 사태에 대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뭐, 그렇다고 갑인 은행을 우리같은 을도 아닌, 병/정 같은 소시민들이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뭐, 여튼! 한마디로 우리는 경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경제를 공부해봐야하나? 경제 공부는 어떻게해야하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경제도 전문용어 남발에, 대한민국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만 줄줄줄이었는데? ... 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경제도서가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심지어 전문용어 남발이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 경제를 이야기하며,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제일 중요한건 주류 경제학자 돌려까기(^^). 내가 본투비 인문학도인 것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난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선호하고(?), 모두까기, 돌려까기도 선호하는 사람이다. 헌데 바로 이 책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라는 경제도서가 내 취향이 딱 맞았다. 내 나름대로 경제관련 책도 몇권 읽어봤지만, 솔직히 와닿지 않아서 한 권 읽는데 몇일을 소비하고 심지어책장 구석에 처박아뒀는데.. 이 책은 펼친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깊이 잠들어주신 우리 뿡뿡이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ㅋㅋㅋ



이 책의 목차는 총 8개로 나뉘어 있는데, 목차만 봐도 .... 내가 말한 모두까기, 돌려까지, 주류까기(ㅋㅋㅋ)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을 믿지마라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정치경제학’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일까?


부자만이 아닌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경제학


경쟁은 누구도 승자로 만들지 않는다




특히 첫 주제인 “경제학자들을 믿지마라”. 와, 너무 멋져! 박수치고 싶다.


▶경제학자들을 믿지마라


왜 사람들은 경제를 알고 싶지 않은 것으로, 경제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현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현실에 근거한 이론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출 때에만 경제학을 호출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경제는 우리들의 삶과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근본은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것이기 때문입니다. p 016



우리는 경제학 교과서 즉 주류 경제학에서 너무나 좁게 정의한 ‘개인의 최대 만족을 위한 최적의 선택’ 이라는 명제로부터 탈출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최적의 선택만으로 나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게되는 것이죠. 이러한 고민은 굳이 어려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 쓸 일이 많으니 지금보다 더 벌어야지’ 라는 생각부터 ‘똑같은 일을 하는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걸까?’처럼 현실의 평범한 언어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근데 경제학자들은 이런 고민을 굳이 ‘생산성 증대를 통한 소득의 증가’라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문제’라고 어렵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p 020



경제 발전을 모색하고 연구하는 경제학은 최신 기술을 이용해 기업의 생산성을 올리고 이윤을 더 많이 확보하는 길만을 찾는 학문이 아닙니다. 기업의 생산성을 올린 대가로 얻은 성과와 이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를 연구하는 것 또한 경제학 본연의 임무인 것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사례에서 보다시피 문제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도입해 얻는 혜택은 과연 누구를 위한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풀어 가야 할 문제입니다. 경제발전을 통해 얻어진 성과물들은 서류로만 존재하는 법인이 아닌 생명을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p 029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매해 11월 초, 기업의 각 부서들은 다음 해 사업 계획서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어느 직장인의 푸념처럼 연간 사업 계획은 “계획을 위한 보고서, 보고를 위한 계획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두 달여 동안 최소 3번 이상의 승인 요청과 반려를 거듭한 사업계획서는 CEO의 승인을 받는 순간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것을 작성한 노동자에게 1년 동안 족쇄로 작동합니다. 매달, 매 분기별 수치화되어 있는 목표와 그에 따른 실적은 각 팀 구성원의 인격(!)입니다. 또한 목표 대비 달성률을 나타네는 퍼센티지(%)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기본 급여와 보너스의 기준이 됩니다. p 045



-주요 대학의 이른바 일류 경제학자의 연구일수록 외국 학술지를 지향해 한국 경제의 현실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학계는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외국 학술지 게재를 지향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핍돼 있고 학문 재생산 능력도 상실했다.(…)이런 이유로 한국의 경제학은 관료나 기업들과 진정으로 대화하지 못하며,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로 자처하기 힘들다.


경제학자들에게는 몹시 유감스러운 노릇이겠지만 위의 내용은 한국 경제학계와 학자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동업자(!)의 주장 중 일부입니다. 어쩌면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경제학의 하청 업체일지도 모릅니다. p 054



한국 현실을 말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학계의 중심에 있거나 이런 내용이 연구나 교육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 경제학 연구와 교육이 한국 경제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사람이 더욱 적다. p 056 /연세대 경제학과 홍훈 교수


1n년간 내가 회사에서 하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저놈의 ‘사업계획(예산)’이다. 초반 몇년은 사업계획을 작성할 때마다 아주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몇년 간 얻은 교훈은, 사업계획은 ‘답정너’ 라는거. 다음해 물가인상은 커녕, 당해년도 물가인상 고려하는 것 마저도 원가절감이라는 이유 하나로 칼같이 잘라낸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직원들이 받는다. 더군다나 ‘대기업’이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회사인데도 이런데 다른 회사들은 어찌할런지. 그렇게 ‘답정너’가 되어 승인된 사업계획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새해 업무를 하고 있노라면. 하 ㅋㅋㅋㅋ 뭐, 대놓고 직원은 소모품이라고 말하는 회사인데, 뭘 더 바랄게 있나 싶기도 하고.



근데 여기서 원가절감 운운하는 것도 결국 회사 경제를 위함인데, 대체 이 회사 경제는 누구를 위함인가? 적어도 나와 다른 직원들은 아닌 것 같다. 오롯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을 위한건지, 아니면 그 ‘법인’뒤에 숨어있는 설립자 가족을 위한건지. 확실한건 회사 경제는 회사를 이끌기 위해 야근을 마다않는 대다수의 직원이 아닌, 그들 위에 군림하는 소수의 누군가를 위해 돌아간다. 우리가 아는 대다수의 회사들도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고, 이에 대해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분명 뭔가 잘못된거 같은데,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이상한 회사경제가, 실은 우리 사회 모습의 축소판이라서 그런게 아닐까싶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경제’에서는 고려되지 않았으니까.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국가의 부가 20배로 들어날 때 과연 이들의 삶도 20배 좋아졌을까요? 온 생애를 바쳐 열심히 살아온 그들에게 남은 건 고작해야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집 한채 뿐입니다. 누구는 평생의 소원인 해외여행 한 번 가지 못했고, 누구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짬뽕과 커피장사에 매달려 있으며, 누구는 콜라텍에서 노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갑니다. 박정희 시대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20배로, 전두환 시대에는 GDP가 2.8배 늘어났지만 그 눈부신 열매는 결코 그들의 몫이 되지 못했습니다. p 113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은 결국 인간의 삶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숫자보다 그 시절을 살아낸 평범한 이들의 작은 역사를 소중히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지금껏 버텨 낼 수 있었던 건 숫자로 대변되는 눈부신 경제 발전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팍팍한 삶 속에서도 함께 부대끼며 끝까지 곁에 있어 주었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p 113



1934년 GDP 개념을 최초로 정희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GDP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국민소득 추계로부터 한 나라의 후생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이 말을 현실에 적용해 볼까요? 공장의 폐수로 인해 마을의 식수원이었던 강물이 오염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공짜로 마시던 강물 대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합니다. 이 소비 덕분에 GDP수치는 오르겠지만, 그 마을의 후생 즉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쿠즈네츠가 말하는 GDP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p 118



거창한 경제 개념을 몰라도 우린 여러 경험을 토해 어떤 통찰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1948년 정부가 출범한 이래 1970년대 오일파동과 1998년 IMF 탁치 시절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GDP는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이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수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의 모순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GDP라는 숫자가 지닌 허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제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p 119



그동안 경제학에서 정의했던 빈곤은 ‘필요한 상품을 살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소득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빈곤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잠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을 빈곤으로 규정했습니다. 빈곤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가질수 없다는 데 있는게 아니라, 가난을 더욱더 비극적으로 만든는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빈곤은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공정성 같은 사회문제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근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경제 위기 또한 ‘악마는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표현처럼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부터 희생시키지요.”라는 센의 말은 자본주의 사회의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p 123~124



“한강의 기적”.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고도 성장을 일컫는 말이다. 근데 참 웃기다. 실제로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건 서류상으로만 있는 ‘법인’이 아닌가? 아니면 ‘법인’을 내세워, 그 뒤에 숨어있는 설립자가족이라던가. 근데 분명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은 ‘법인’이 아니라, 대다수 노동자들이 땀과 고혈이 아니었나? 그들의 땀과 고혈이 아니었으면, 한강의 기적은 개뿔. 어쩌면 아직도 한국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헌데...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다수의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노동자중에는 우리 부모님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한강의 기적을 맞이했나? 음, 글쎄. 우리 부모님의 지금 상황은 그저... 과거에는 시골이었던, 이제서야 조금 수도권 취급받는 외곽 도시의, 대출이 껴있는 아파트 한채가 고작이다. 거기다 두분 모두 아직도 은퇴를 못하셨다. 아, 아니면 한강의 기적이란게 이런걸 뜻하는거였는데, 내가 몰랐던건가!




▶경제적 불평등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국내총생산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건 국민들의 수입이 반토박 났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모두 함께 망해버린 것이죠. 하일부로너는 대공황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생산성 증가에서 나온 이득을 저소득층에게 분배하지 못한 반면 잠재적으로 지출하지 않으려 드는 사람들의 소득이 크게 불어난 관경에 주목해야 한다.


대공황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창출된 부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않고 굳이 필요치 않은 계층으로 흘러들어 금고에 쌓이기만 한 결과 경제긔 균형이 무너지고 대공황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결국 불평등은 이렇게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p 191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본과 노동이 손을 맞잡고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자 경제 질서가 바뀐 것입니다. 이 협약을 통해 경제적 활동의 과실은 더 이상 특정 계급에 의해 독식되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 기술의 진보, 자본과 노동 간의 협약 그리고 정부의 역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은 위기를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의지와 실천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연,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대공황 시대에 빗대 묘사한 ‘대압착시대(1930~1950까지 미국에서 증세 등 강력한 조세 정책으로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 격차 및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급격히 좁아졌던 시대)’도 결국 인간에 의해 그 운명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공모로 태어난 신자유주의가 대압착 시대의 저격수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에 의해 추동된 신자유주의도 인간들이 만든 정치적 결과였던 것입니다. p 194



정치와 경제 그리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일 모두 인간의 영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좇는다면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라는 체념이 ‘불평등도 그 격차는 줄일 수 있다’ 라는 신념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p 195



▶부자만이 아닌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경제학


지금으로부터 50녀년 전 한 흑인 인권운동가(마틴 루터 킹)가 외친 보장소득 즉 ‘기본소득 운동’은 경제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고 시대 담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한 달 뒤, 폴 새뮤얼슨, 제임스 토빈, 존 케네스 캘브레이스 등으로 대표되는 1,200명의 경제학자들은 미국 의회에 ‘(연간)보장소득’도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1969년 닉슨 대통령은 4인 가족 기준 연간 1,600달러를 보장하는 법안인 ‘가족지원제도(FAP)’를 추진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틴 루터 킹의 유산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백악관이 추진한 현대판 기본소득 법안은 미 하원의 문턱은 넘었지만 상원에서 10표차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킹 목사의 꿈은 결국 무너져 버렸고, ‘진보와 복지’ 대신 ‘보수와 불평등’을 선택한 미국은 현재 선진국 중에서도 경제적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p 213



기본소득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논쟁거리를 낳았습니다. 망명가들의 이해할 수 없는 논쟁에 아득함을 느낄때면 저는 그들의 주장에 현실을 대입시켜 봅니다. (…)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 일도 안하면서 정부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건 미친 짓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가족 공동체를 한번 떠올려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을 하는 어머니, 직업이 없는 아버지,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 이렇게 네 식구로 이루어진 가정의 어머니는 자신의 수입을 아무 조건 없이 다른 가족들과 나눕니다. 만일 당신이 지구 공동체라는 말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는 몇 안되는 천재가 만든다는 끔찍한 우화를 믿지 않는다면 당신도 지구 혹은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아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경제를 움직이고 부를 창출시키는 기반이니까요. p 222



실질적 자유를 얻기 위한 도구로써 기본소득에 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이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될지도 보릅니다. 팬데믹이라는 인류 전체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불러낼 얼굴이 신의 형상일지 아니면 악마의 화신일지 결정하는 것도 이 고민과 대답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p 224


‘기본소득’. 난 기본소득을 찬성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주는건 반대한다. 적어도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기본소득까지 받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누군가는 똑같이 세금내는데, 왜 받지 못하냐고 하며 ‘역차별’이라고 한다. 과거에 책인지 칼럼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내용만큼은 선명히 기억나는 어떤 글을 읽었다. 그 글의 내용은 ‘역차별’을 이야기 한다는건, 무언가를 누리는 데에 있어서 그 사람이 이미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해서 ‘역차별’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갈 수록, 사회는 점점 살기 좋아지는 거라고 했다. 이 글이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남는 건, 나 역시 같은 사회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사회가 온다면 빈곤이라는 악마가 찾아왔을 때, 항상 잡아먹히던 꼴찌들이 힘껏 저항할수 있지 않을까? 자포자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뿡뿡이가 그런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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