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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리커버)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인문학 서적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 유명하다 못해 스테디셀러가 된 『라틴어수업』.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라틴어에는 단 1도 흥미가 없다. 랄까, 서양언어만 보면 알러지증상이 미친듯이 올라오는 전형적인 한국인이랄까. 아마 그래서 이 책을 볼까말까 간만 본 것 같기도. 진짜 제목 그대로 라틴어에 대한 내용만 나오면, 내 흥미를 끌지 못할테니 말이다. 허나, 이 책은 외국어 책이 아닌 인문학 책이니, ‘뭐, 라틴어가 얼마나 나오겠어?’ 라는 생각이 책을 펼친 것 같다.
책을 펼쳐보니, 역시나! 스테디셀러인 이유가 있었다. 물론 ‘라틴어’라는 외국어에 대한 내용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 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라틴어 문장을 보고, 그 문장에 대한 어원, 역사, 문화, 사회 전반에 관련된 그야말로 ‘인문학’ 강의였다. 난 서양언어는 싫어해도, 서양의 역사나 문화에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내용이 많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하지만 제일 좋았던 부분은 저런 역사, 문화관련 내용이 아니었다. 그 뒤에 덧붙여진, 문자로 남겨진 저자 한동일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콕콕 들어왔다. 그 생각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지금 내 모습은 어떤지, 내가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앞으로 내가 살 세상은 어떻게 될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는 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되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항구를 떠나 먼 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쩌면 그것은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거품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배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물거품을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는 정작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오해가 쌓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p 046 가끔 저는 라틴어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 언어도 이런 수평적 성격이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어의 수평적 성격이 발달하면 회의나 모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나 사회구조도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p176 |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언어, 한글을 쓰고 있다. 누구나 쉽게 글을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단절된 삶을 살고,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쉬운 언어를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사용하기 쉬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바로 그 언어로 인해 파생된 문제가 아닐까?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다. 즉 우리가 쓰는 한글에는, 옛부터 내려온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우리의 문화란 무엇인가? 바로 ‘수직적’인 문화다. 옛부터 양반, 상놈을 나누었던 문화, 고귀한 신분, 천한 신분을 나누었던 그 문화 말이다. 흔히 존댓말, 존칭어, 높잎말 등이라고 말하는 그것. 우리의 수직적인 문화를 담은 그것 말이다. 물론 우리가 쓰는 언어가 만들어진 시기는, 신분제가 엄격했던 왕조국가였기에, 그런 수직적인 문화가 담겨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신분제가 폐지된지가 한참이고, 왕조국가가 아닌 시민사회로 나아간 지금까지도 우리는 수직적인 문화가 담겨있는 언어를 쓰고 있다.
본디 언어라는게 사용을 하지 않으면 사어가 되거나, 새로운 언어가 발생하는 등 문화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다. 우리의 한글 역시, 시민사회에 들어서면서 그 흐름에 따라 변화했어야 하지만, 슬프게도 그러지 못했다. 너무 급격하게 시민사회로 바뀌어서 그런건지, 서양의 다른 나라처럼 국민들의 힘으로 쟁취하지 못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시민사회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가 이어져서 그런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 옛날 신분제 속 양반네들의 삶이 부러웠던건지. 뭐 이것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수도 있다.
확실한건 우리는 수직적인 언어를 계속 사용하며, 사라진 신분제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다만 그 신분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신분증에 기재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만들어 졌다. 그 신분제를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다이어수저. 어떤 지역에 사느냐,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부모가 얼마나 돈이 많으냐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정도의 많은 신분 구분방법을 써, 수저로 칭하는 것이다. 이 수저들은 본인들이 속하는 계층, 본인이 사는 환경에서 소통을 한다. 서로가 사는 문화가 다르기에, 흙수저와 금수저가 소통이 안되고, 은수저와 다이아수저가 소통이 안된다. 당연한 일인 것이다.
오로지 계층간의 소통이 안되는 이유에 대한 생각만 썼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끊없이 생각이 늘어지는데, 계층이 아닌 지역간 소통의 부재, 세대간 소통의 부재는 어떠할까. 서로 대화에서 ‘본질’을 보지 못하기 있기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는 건 이제 변명조차 될 수 없다. 시민사회로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는 변할 수 있는 상황을 여러번 마주했음에도, 스스로 변하는 것을 거부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할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사회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는 무신경해요. p 056 |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는 분명 공부해서 남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사’짜 돌린 직업군들 말이다. 열씸히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어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기도 하고, 법학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어 누명을 쓴 사람들을 변호해주기도 한다. 물론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게는 공부해서 남에게 주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점은, 이런 ‘사’짜 돌림 직업군이 아니라하여도, 공부해서 남을 준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 스스로 힘겹게 공부한 걸 남을 주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그건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공부해서 남을 주기는 커녕,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뉴스를 한창 달구고 있는 ‘LH 땅투기 사태’.
본인들이 공부하여 토지공사에 입사하고, 주택공사에 입사한 건 충분히 박수받을 일이다. 그렇게 박수받고 공사에 입사를 했으면, 말그대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본인의 지식을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사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땅투기를 해왔다. 그것도 오랫동안. 심지어는 그들은 익명 웹을 빌어, 자기들의 땅 투기는 LH의 복지이고, 그렇게 아니꼬우면 공부해서 LH에 들어오라며 조롱까지 했다.
비단 LH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토지개발 등의 공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유관부서, 시의원, 국회의원 아주 줄줄이 사탕이다. 분명 국가를 위해, 국민들을 위해, 공적인 업무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여기서 내가 더 화가 나는건, 그들의 땅 투기로 내가 사는 지역이, 매일매일 뉴스에 나오고, 내 손으로 투표해서 뽑았던 시의원이 그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누구보다 공부해서 남을 줘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럴진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저는 인간이기에 욕망합니다. 그러나 만족합니다. 아니 만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만족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청년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욕망하는 것조차 주제넘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고, 과거처럼 노력하면 될 거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가슴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욕망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으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p 223 |
우리는 모두 욕망이 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고, 좋은 직장에 들어아고 싶고, 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그런 욕망 말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 앞에서 우리는 계속 좌절하게 된다. 대입을 준비생 눈 앞에 나타난 ‘대입, 학사비리’, 취업준비생 눈 앞에 나타난 ‘취업비리’, 집을 구입하려는 사회 초년생 눈 앞에 나타난건 ‘대출규제’ 등등등,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탑 앞에서 말이다.
우리가 욕망하는 이 모든 것들을, 누군가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아주 손 쉽게 얻어내고, 그를 과시하며 이를 욕망하는 모두를 비웃는다. 쉽게 말하면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대대손손 물려주려 한다. 그걸 보는 나와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일년동안 쌔빠지게 일해도, 내 집 마련하기가 하늘에 별따는 것 만큼이 어려워, 은행에 빚내서라도 내 집을 사려고 하니, 나라는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무분별한 대출규제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대출규제가 비교적 적은, 내 직장과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 한적한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럼 다니던 직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직장을 잃으면 또 대출이 힘들어져, 집을 못구한다. 아니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야하는데, 대출이 규제가 되서, 내 스스로 돈을 일정금액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억대 수준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이런 규제를 만든 사람들은 이미 온갖 방법으로 다 저질러서 지금의 부를 쌓아놓고 말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했던 ‘LH사태’같은 토지개발 비리랄까?
아마 위에 말한 대입, 취업, 토지개발 비리 말고도, 그들 속에는 더 많은 비리들이 숨어있을 거다. 그렇게 그들은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나누지 않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심한다. 그리고 그런 방법들이 한번씩 뉴스에 보도 될때마다, 우리는 알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욕망이 정말 헛된 욕망이고, 욕망해봤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얘나 쟤나 다를게 하나 없었고,
더 슬픈건,
얘나 쟤보다 더 나은 제3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아, 한없이 우울해져버린 리뷰.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이 책 「라틴어수업」이 몇 년간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말은 즉,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고,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을 했다는 이야기며,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해 성찰을 했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그 중 누군가는 한발 더 나아가 비정상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이 책 「라틴어수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비정상의 정상화’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