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리커버)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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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 유명하다 못해 스테디셀러가 된 『라틴어수업』.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라틴어에는 단 1도 흥미가 없다. 랄까, 서양언어만 보면 알러지증상이 미친듯이 올라오는 전형적인 한국인이랄까. 아마 그래서 이 책을 볼까말까 간만 본 것 같기도. 진짜 제목 그대로 라틴어에 대한 내용만 나오면, 내 흥미를 끌지 못할테니 말이다. 허나, 이 책은 외국어 책이 아닌 인문학 책이니, ‘뭐, 라틴어가 얼마나 나오겠어?’ 라는 생각이 책을 펼친 것 같다.


책을 펼쳐보니, 역시나! 스테디셀러인 이유가 있었다. 물론 ‘라틴어’라는 외국어에 대한 내용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 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라틴어 문장을 보고, 그 문장에 대한 어원, 역사, 문화, 사회 전반에 관련된 그야말로 ‘인문학’ 강의였다. 난 서양언어는 싫어해도, 서양의 역사나 문화에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내용이 많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하지만 제일 좋았던 부분은 저런 역사, 문화관련 내용이 아니었다. 그 뒤에 덧붙여진, 문자로 남겨진 저자 한동일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콕콕 들어왔다. 그 생각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지금 내 모습은 어떤지, 내가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앞으로 내가 살 세상은 어떻게 될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는 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되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항구를 떠나 먼 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쩌면 그것은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거품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배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물거품을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는 정작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오해가 쌓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p 046

가끔 저는 라틴어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 언어도 이런 수평적 성격이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어의 수평적 성격이 발달하면 회의나 모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나 사회구조도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p176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언어, 한글을 쓰고 있다. 누구나 쉽게 글을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단절된 삶을 살고,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쉬운 언어를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사용하기 쉬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바로 그 언어로 인해 파생된 문제가 아닐까?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다. 즉 우리가 쓰는 한글에는, 옛부터 내려온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우리의 문화란 무엇인가? 바로 ‘수직적’인 문화다. 옛부터 양반, 상놈을 나누었던 문화, 고귀한 신분, 천한 신분을 나누었던 그 문화 말이다. 흔히 존댓말, 존칭어, 높잎말 등이라고 말하는 그것. 우리의 수직적인 문화를 담은 그것 말이다. 물론 우리가 쓰는 언어가 만들어진 시기는, 신분제가 엄격했던 왕조국가였기에, 그런 수직적인 문화가 담겨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신분제가 폐지된지가 한참이고, 왕조국가가 아닌 시민사회로 나아간 지금까지도 우리는 수직적인 문화가 담겨있는 언어를 쓰고 있다.

본디 언어라는게 사용을 하지 않으면 사어가 되거나, 새로운 언어가 발생하는 등 문화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다. 우리의 한글 역시, 시민사회에 들어서면서 그 흐름에 따라 변화했어야 하지만, 슬프게도 그러지 못했다. 너무 급격하게 시민사회로 바뀌어서 그런건지, 서양의 다른 나라처럼 국민들의 힘으로 쟁취하지 못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시민사회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가 이어져서 그런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 옛날 신분제 속 양반네들의 삶이 부러웠던건지. 뭐 이것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수도 있다.

확실한건 우리는 수직적인 언어를 계속 사용하며, 사라진 신분제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다만 그 신분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신분증에 기재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만들어 졌다. 그 신분제를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다이어수저. 어떤 지역에 사느냐,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부모가 얼마나 돈이 많으냐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정도의 많은 신분 구분방법을 써, 수저로 칭하는 것이다. 이 수저들은 본인들이 속하는 계층, 본인이 사는 환경에서 소통을 한다. 서로가 사는 문화가 다르기에, 흙수저와 금수저가 소통이 안되고, 은수저와 다이아수저가 소통이 안된다. 당연한 일인 것이다.

오로지 계층간의 소통이 안되는 이유에 대한 생각만 썼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끊없이 생각이 늘어지는데, 계층이 아닌 지역간 소통의 부재, 세대간 소통의 부재는 어떠할까. 서로 대화에서 ‘본질’을 보지 못하기 있기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는 건 이제 변명조차 될 수 없다. 시민사회로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는 변할 수 있는 상황을 여러번 마주했음에도, 스스로 변하는 것을 거부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할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사회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는 무신경해요. p 056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는 분명 공부해서 남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사’짜 돌린 직업군들 말이다. 열씸히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어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기도 하고, 법학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어 누명을 쓴 사람들을 변호해주기도 한다. 물론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게는 공부해서 남에게 주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점은, 이런 ‘사’짜 돌림 직업군이 아니라하여도, 공부해서 남을 준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 스스로 힘겹게 공부한 걸 남을 주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그건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공부해서 남을 주기는 커녕,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뉴스를 한창 달구고 있는 ‘LH 땅투기 사태’.

본인들이 공부하여 토지공사에 입사하고, 주택공사에 입사한 건 충분히 박수받을 일이다. 그렇게 박수받고 공사에 입사를 했으면, 말그대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본인의 지식을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사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땅투기를 해왔다. 그것도 오랫동안. 심지어는 그들은 익명 웹을 빌어, 자기들의 땅 투기는 LH의 복지이고, 그렇게 아니꼬우면 공부해서 LH에 들어오라며 조롱까지 했다.

비단 LH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토지개발 등의 공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유관부서, 시의원, 국회의원 아주 줄줄이 사탕이다. 분명 국가를 위해, 국민들을 위해, 공적인 업무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여기서 내가 더 화가 나는건, 그들의 땅 투기로 내가 사는 지역이, 매일매일 뉴스에 나오고, 내 손으로 투표해서 뽑았던 시의원이 그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누구보다 공부해서 남을 줘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럴진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저는 인간이기에 욕망합니다. 그러나 만족합니다. 아니 만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만족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청년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껏 욕망하는 것조차 주제넘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고, 과거처럼 노력하면 될 거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가슴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욕망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으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p 223

우리는 모두 욕망이 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고, 좋은 직장에 들어아고 싶고, 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그런 욕망 말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 앞에서 우리는 계속 좌절하게 된다. 대입을 준비생 눈 앞에 나타난 ‘대입, 학사비리’, 취업준비생 눈 앞에 나타난 ‘취업비리’, 집을 구입하려는 사회 초년생 눈 앞에 나타난건 ‘대출규제’ 등등등,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탑 앞에서 말이다.

우리가 욕망하는 이 모든 것들을, 누군가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아주 손 쉽게 얻어내고, 그를 과시하며 이를 욕망하는 모두를 비웃는다. 쉽게 말하면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대대손손 물려주려 한다. 그걸 보는 나와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일년동안 쌔빠지게 일해도, 내 집 마련하기가 하늘에 별따는 것 만큼이 어려워, 은행에 빚내서라도 내 집을 사려고 하니, 나라는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무분별한 대출규제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대출규제가 비교적 적은, 내 직장과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 한적한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럼 다니던 직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직장을 잃으면 또 대출이 힘들어져, 집을 못구한다. 아니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야하는데, 대출이 규제가 되서, 내 스스로 돈을 일정금액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억대 수준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이런 규제를 만든 사람들은 이미 온갖 방법으로 다 저질러서 지금의 부를 쌓아놓고 말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했던 ‘LH사태’같은 토지개발 비리랄까?

아마 위에 말한 대입, 취업, 토지개발 비리 말고도, 그들 속에는 더 많은 비리들이 숨어있을 거다. 그렇게 그들은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나누지 않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심한다. 그리고 그런 방법들이 한번씩 뉴스에 보도 될때마다, 우리는 알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욕망이 정말 헛된 욕망이고, 욕망해봤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얘나 쟤나 다를게 하나 없었고,

더 슬픈건,

얘나 쟤보다 더 나은 제3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아, 한없이 우울해져버린 리뷰.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이 책 「라틴어수업」이 몇 년간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말은 즉,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고,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을 했다는 이야기며,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해 성찰을 했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그 중 누군가는 한발 더 나아가 비정상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이 책 「라틴어수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비정상의 정상화’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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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사 - ‘사농’ 말고 ‘공상’으로 보는 조선 시대 직업의 모든 것
강문종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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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사」, 말그대로 조선의 job(직업)을 소개하는 책이다.


우리는 사극이나 책을 보면서, 조선의 여러 직업들을 보았다. 궁궐 안에서 “즈은하, 아니되옵니다~~~”라고 하는 문무백관, 어진을 그리는 화원,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는 유생, 활인서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녀, 수랏간에서 음식을 만드는 숙수, 기방에서 일하는 기생 등등등. 이런 직업들은 사극에서 단골로 나오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직업들이 있었다. 조선의 일반 백성들이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들이지만, 당시 신분제 상에선 하찮은 백성들이 하는 일이기에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 누구도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사극속에서는 만날수조차 없는 그런 직업군을 조명한게 바로 이 책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알려주는 직업군들을 보다보면, 이상하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들의 해결점이 보이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들이 생겨났다는 점도 보인다.

관청 소속 여종과 기생은 본연의 업무가 있으므로 사적인 일을 시키면 안된다. 바느질감이 있거든 ‘침비’나 ‘침가’에 맡겨야 한다. p 013

이 구절을 읽으며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다. 유퀴즈에 최연소 공무원 합격으로 출연했었던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최연소로 서울시 7급 공무원이 되었으나, 그녀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궁금했던 찰나에, 그녀의 업무분장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 업무분장은 가짜뉴스가 아니었고, 그녀가 몸담고 있던 기관의 홈페이지에 아주 당당하게 쓰여있었던 그녀의 업무분장이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다른 공무원들과는 월등히 다른 업무분장. 심지어 젤 마지막에 있던 업무는 ‘기타 타직원에 속하지 않는 잡무’ 였다.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인천의 한 보건소에서는 44세 미만의 여성들에게만, 보건소장의 사무실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게 하였다. 굳이 44세 미만 여성에게만 시킨 이유가 무엇이냐 물어보니, ‘여성’이 더 깔끔하게 청소를 할 거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 보건소에서 일하던 여성 보건소 직원들의 업무는, 지자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각종 일을 하는 것일텐데, 전혀 다른 보건소장 사무실 청소라. 이 역시 기타 잡무를 시키고 있었던거다.

오백년전 조선은 관청 소속 여종에게 분담된 외의 일은 시키지 않았는데, 오백년 후 현재의 관공서는 직원들을 대함에 있어 조선보다 나은게 무엇인가?

망나니의 행패는 이뿐이 아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떼 지어 시장에 나타나 물건을 빼앗고 돈을 갈취했다. 쌀가게에 들어가서 큰 바가지로 쌀을 마구 퍼갔다. 주인은 감히 막지 못하고 손님은 더럽다며 가버렸다. 원성이 높아지자 보다 못한 원님이 나섰다. p 045

우리는 흔히 패악질을 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망나니’라고 칭한다. 하지만 망나니라는 이름은, 과거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던 직업군의 이름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모두가 기피하는 일인데, 그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망나니라는 직업이, 왜 지금은 불량한 사람들을 빗대어서 말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을까 싶었는데, 이거 참. 이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부 망나니들은 사형을 집행하기 전, 사형수 가족들이 뇌물을 주면, 사형수가 단칼에(고통없이!!)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지만, 뇌물을 주지 않는 사형수들은 일부러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가게끔 한다고 한다. 음, 여기서부터 음.... 뭐, 지금도 LH사태다 뭐다 하면서, 공공기관에서조차 뇌물, 비리가 판치는데, 망나니의 저 정도 비리 쯤이야. 지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넘어가려 하였으나, 이거 참. 망나니들은 사형집행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 시장에 나타나 패악질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얼마나 패악질을 많이 부렸으면, 지금에 와서까지 ‘망나니’라는 말이, 패악질을 부리는 사람들을 빗대어 말하는 용어로 남아겠는가.

망나니라는 직업은 사라졌으나, 패악질을 부리는 그들의 행태만은 예나지금이나 똑같아서 ‘망나니’라는 단어가 살아남았으니, 참 신기할 일이다.

월천꾼은 섭수꾼이라고도 한다. 길손을 등에 업거나 목말을 태우고 시내를 건네준 뒤 품삯을 받았다. p 070

월천꾼은 조선과 중국, 일본에서도 널리 활용된 서민들의 발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객이 물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기록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종을 부리는 이들은 종에게 업혔으며, 위낙 흔한 일꾼을 특별히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p 073

가마꾼도 알고 뱃사공도 알고 인력거꾼도 아는데, ‘월천꾼’은 정말 초면이다.

손님을 목이나 등에 태우고 냇가를 건너는 사람들을 월천꾼이라 한다. 심지어 월천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보면 ‘越川 : 냇가를 건너다’ 이니, 그들은 조선 사람들의 발을 대신 했던것이다. 근데 정말 아무리봐도 새로운 직업이다. 왜 나는 이런 직업군을 처음 들어봤을까? 싶었는데, 책에 그 답이 있었다.

월천꾼들에게는 특별한 사고가 있지 않는 한 기록에 남을 일이 없었다고.

기록이 없다는 건 그만큼 사고가 없다는 이야기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에 없다는 건, 그런 직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조차도 알수 없게 하니 안타깝기도 하다. 분명 그 시공간에, 그들은 조선 사람들의 발이 되어가며, 냇가를 건넜을텐데도 말이다.

산삼이 많은 곳은 평안도와 함경도의 국경지대다. 국경을 넘으면 더 많지만 발각되면 사형이다.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심마니다. 선단을 이루어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와 산삼을 캤는데 그 수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총과 활로 무장하고 수십 명씩 떼 지어 다녔다. 사냥을 겸한다는 핑계였지만 조선군과 전투를 벌이거나 민가를 약탈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으니 산적이나 다름없었다. p 076

조선의 삼이 유명하고, 조선의 삼이 중국에서 비싸게 팔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내가 배운건 산삼이 아니라 인삼, 그리고 인삼을 파는 ‘개성인삼 상인’ 정도 였다. 산삼이나 산삼을 캐는 심마니에 대해서는 뭐 크게 배운적도 없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그렇게 잊혀질뻔한 심마니이 삶이 이 책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그 내용에 우리가 사는 동 시대에, 우리가 보는 뉴스에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내용들이 있는게 아닌가.

매해 봄이나 가을철이 되면 꼭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들이 있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서해안에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어업을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제지하는 우리나라 해경들에게 작살질까지 하는 그런 사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조선시대에도 일어났었다는 것, 차이점이 있다면 현재 사건의 주 무대가 바다라면, 조선시대의 사건은 산이라는 것 정도?

매년 우리나라 어장을 침범하는 것도 그렇고, 매년 미세먼지를 미친들이 보내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코로나19로 전 세계를 초토화 만든 것도 그렇고. 진짜 중국놈들은 얘나지금이나 ‘짱깨’라고 불릴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구나.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네.

매골승의 업무가 급증하는 시기는 기근과 역병, 전쟁이 일어날 때다. 기근과 역병은 늘 함께 오는 친구였다. 기근이 발생하면 굶주린 이들은 희멀건 죽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도성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오랫동안 굶어 약해진 데다 먼 길을 걷느라 힘이 빠져 죽은 사람이 많은 탓에 도성과 그 근방에 시신이 쌓인다. 이들은 십중팔구 병을 앓았으니, 그로 인하여 역병도 창궐했던 것이다. p 084

세종 때 창설된 금화도감은 성문의 관리 업무를 추가로 맡아 수성금화사로 개편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필요 없는 비용과 인원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혁파되고 소방 업무는 한성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1467년에 발생한 화재로 금화군을 50인으로 늘렸고, 1481년에 다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자 금화도감의 재설치를 논의했지만 후속조치는 없었다. p 095

이 책에서 내가 제일 놀랐던 직업은 바로 ‘매골승’이다.

간혹 TV 사극을 보면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외세가 침략하여 백성들이 죽어나가거나, 이미 죽어있는 모습. 역병이 돌아 백성들이 죽어나가거나, 죽어있는 모습. 대 기근이 돌아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나가거나, 죽어있는 모습. 이런 장면들의 공통점은 카메라가 비추는 마을, 거리마다 시체들이 즐비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기한 사실은 그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이 하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이후다. 왕실에서 외세를 물리쳤다던지, 구휼미를 풀었다던지, 역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들이 나타난다던지 뭐 이런 해결방법들이 나오고, 어느 순간 시신으로 가득찼던 마을에선, 시신은 온데간데 없고 마을이 그렇게 깨끗해질 수가 없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유교가 판치는 그 시절에, 도사가 나와서 도술을 부렸을리는 없을테고.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시신들은 싹 사라지고 깨끗한 마을이 나온다는 사실이.

전쟁, 역병, 기근등을 이유로 갑작스레 죽어가는 사람들이 급증했을때, 그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 그들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TV 사극에서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고, TV 사극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몰랐을 뿐이다.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 그들은 ‘매골승’이었다. ‘매골승’, 그들은 승려였다.

왜 이들은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들이 시신들을 치우는 행위는, 땅을 정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공기를 정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행적은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으며, 알려주지 않았고, 밝혀주지도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이, 양반네들 입장에서는 더러운 일이라 치부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교사상이 팽배한 조선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 승려였기 때문일까? 이유가 어떠하든, 매골승이 하던 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했던 일은 누가 뭐래도 숭고한 일이 틀림없다. 어쩌면 승려였기에 가능했을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으로 하여금 매골승을 비롯하여, 우리가 몰랐던 하지만, 일상에 꼭 필요했던 수 많은 직업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다 더 슬픈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이유는 이미 옛날부터 그런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런 인식 때문에 이렇게 많은 직업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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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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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식물에 빠져, 키우고 죽이고 한지 벌써 반년. 난 아직도 ‘초보’ 식집사다. 언제고 초보 딱지를 떼보나, 하는 생각에 심심하면 하나 둘 읽은 식물관련 책. 오늘 읽은 책은 식물 가드닝이라기보단, 식물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정확히는 일본의 가드닝 역사라고나 할까?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에도시대, 그러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그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에도)는 식물 친화적인 도시로 구성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이런 추측은 한 90%정도 맞았다. 이유인 즉, 이 책은 에도시대만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에도시대 바로 전 센고쿠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보는 일본사 흐름

센고쿠 시대(전국 다이묘들이 들고 일어남) → 아즈치(오다 노부나가)/모모야마 시대(도요토미 히데요시) → 에도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

지금의 번화한 도시 도쿄, 그 시작은 ‘쌀’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에도평야가 시작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무장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논 만들기를 장려했던 것일가. 이는 결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쌀’은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센고쿠 시대 다이묘에게 영지 내에 논이 있다는 것은 경제력을 갖춘 것을 의미하며, 이는 군사력으로 직결되었다. 지금으로치면, 쌀 생산이 가능한 논을 만드는 것은 ‘돈’을 찍어내는 것과 마찬거지 였기 때문에(중략). p 041

작금의 도쿄는 드넓은 도쿄 평야를 가지고 있다. 그 평야 위에 지금과같은 번화한 도시 도쿄가 생겨났고, 그 평야 위에서 넓디 넓은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평야가 옛날부터 생겨난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본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다.

과거 일본의 수도는 일왕이 살던 교토였고, 제일 번화한 도시 역시 교토였다. 이후 군사정권인 막부가 들어섰을 때에도 주요 도시는 역시나 교토였다. 반면 교토와 반대편에 있는 에도(도쿄)는, 교토와 멀리 떨어진 만큼 번화하지 못하였고, 틈만나면 수해가 일어나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 땅을 지금의 광활한 평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당대에 ‘쌀’은 화폐와 다름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영지에 논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이묘의 위치가 달라졌다. 하지만 에도에는 논다운 논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 터를 잡을 수 밖에 없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로써는, 에도 개발이 어쩔수 없는 숙명과 같았다. 그렇게 에도 개발에 착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결국엔 에도땅에 일본에서 제일가는 평야를 만들었다.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놨으면, 본인이 정권을 잡은 뒤에 교토로 이주하지 않고 계속 에도에 남아있었을까(도쿠가와 이전까지는 교토에서 정치를 하는게 당연했다).

거기다 도쿠가와가 정권을 다스린 후 부터는 일본 내에 전투가 사라져서, 더더욱 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에도에는 계속 논이 늘어나고, 논이 늘어났다는건 평야가 늘어났다는 이야기고, 그렇게 에도는 돈이 돌고도는 부자도시가 되고, 그 부와 평야를 기반으로 현재의 도쿄 도심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

뭐, 여기까지가 현재 도쿄가 번화할 수 있게된 역사적인 흐름이라고나 할까?

일본 성 내에 소나무가 많이 심긴 이유는?

소나무는 수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속에 하얗고 얇은 껍질이 있다. 이 얇은 껍질은 지방분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 껍질을 절구로 찧은 뒤 물에 담가 쓴맛을 빼고, 말려서 가루로 만든다. 이것에 쌀을 더해서 떡으로 만드니, 바로 송기떡이다. p 057

일본 성을 볼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사실 하나, 왜 일본 성에는 소나무가 많을까? 였다. 직접 가서 본 것도 그렇고, 일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렇고 꼭 일본 성 내에는 소나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걸? 소나무가 군사용 비상식량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전투가 시작되면 성 하나를 둘러싸고 공성전이 벌어진다(뭐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공성전을 하게 되면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밖의 보급물자가 차단되기 때문에 식량의 유무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다. 보통은 성 내에 전투를 대비한 비상식량을 구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지 몰라서, 정말 완전 비상사태를 위해 준비한 비상식량이 바로 소나무였던 것이다.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소나무를 식량으로 쓴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라는 점!

이 책에 있는 내용은 아니나,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도 임진/정유재란 당시 굶주린 백성들이 송기떡을 해먹었다고 한다. 어라, 가만히 보니 시기가 임진/정유재란?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그 때다. 그러니까 도요토미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이다. 음... 그럼 송기떡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 병사들을 통해 건너온건가? 왠지 시기를 보니, 그런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든다......

닌자가 쓰는 화약의 정체는 쑥?

(생략) 그렇다면 닌자는 어떻게 화약을 만들었을까. 사실은 식물 쑥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이다. 그래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었다. 그렇게 비생물을 발효시킨다. 오줌 속의 암모니아와 쑥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던 것이다. p 075

닌자가 사용한 화약이 쑥이라니!!!!!

적잖은 쇼크를 받은 부분이다. 뭔가 화약이 아니라 쑥을 사용한다는 대목에서, 범접할 수 없던 닌자가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아니 뭐 생각해보면 그렇다. 당시 일본은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이 없었고, 화약을 쓰려면 외국에서 수입을 했어야했으며, 수입한 화약은 부르는게 돈이었다. 거기다 화약에 일본에 수입된 건 끽해야 오다 노부나가 즈음의 시기인데, 닌자의 활동은 훨씬 전 부터 있었을 테니.

고로 닌자는 화약을 직접 만들어야 했고, 그 화약의 재료는 일본땅에서 나는 재료여만 했다. 아니 근데 성분들을 어떻게 알고, 저렇게 조합했을까. 닌자들은 진면모는 닌자가 아니라, 화학자였을까?

오다 노부나가가 사랑했던 꽃

뜻밖에도 노부나가가 사랑했던 것은 옥수수 꽃이었다고 한다. (중략) 옥수수 꽃은 어떤 꽃일까. 그나저나 옥수수에 꽃이 피기나 할까. p 112

우선 옥수수에 꽃이 있다는 사실에 1차 놀랐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옥수수라는 열매가 맺힐려면, 먼저 꽃이 피어야하긴 할테니, 꽃이 있는게 당연한건데도, 옥수수꽃을 본적이 없어서 ...그래서 놀랐다.

알고보니 옥수수에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고 한다. 옥수수 암꽃은 꽃잎이 달려있지는 않으나, 긴 암술을 늘어뜨린다. 흔히들 말하는 옥수수 수염이 바로 옥수수 암꽃이라 보면 된다. 이 암꽃의 암술에 수꽃의 꽃가루가 날라와 부비부비하면, 그제서야 우리가 아는 옥수수가 생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암술의 수염 하나하나가 옥수수 한 알 한 알과 이어져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2차 놀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일본에 옥수수가 들어왔을 때, 옥수수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 작물이었다고 한다(옥수수의 맛을 몰랐던 과거의 일본인들, 가엾구려).

난 처음에 오다가 옥수수꽃을 좋아했다길래, 옥수수수염 각각이 옥수수 한알과 이어져있어서, 백성들의 굶주림을 달래주는 작황식물이라 좋아한 줄 알았는데 하하하. 옥수수가 관상용이었다니, 하 정말 충격적이다. 대체 왜 관상용이었을까 싶었는데, 옥수수수염이 갈색의 비단실과 같아서, 그래서 관상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다는 화려한 비단실을 품은 옥수수꽃을 좋아했다는 것. 허허허. 그럼 그렇지.

일본인은 왜 벚꽃을 좋아할까?

‘사쿠라’의 ‘쿠라’는 ‘신령이 나타날 때 그 매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벚나무는 밭의 신이 내려오는 나무다. 즉 논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되면 밭의 신이 산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벚꽃을 피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p 151

농민에게 멎꽃은 농업의 시작을 알리는 나무이지만 산에 피는 산벚나무는 나무에 따라 개화시기가 다르다. 그 때문에 벚꽃은 ‘씨 뿌릴 때’를 알리는 벚꽃으로 불리며 마을의 특별한 상징이 되었다. p 159

일본어를 꽤 하는 나이지만, ‘쿠라’라는 단어에 저런 뜻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심지어 일본 신화 관련해서도 다큐나 책을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처음 듣는 의미의 단어였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일본어를 습득. 하, 역시 배움엔 끝이 없군!

그러니까 결국 일본은 옛날부터, 농사의 신이 벗나무에 깃들어 꽃을 피우기 때문에, 그 벚꽃이 필때가 ‘씨 뿌릴 때’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벚꽃을 좋아했다는 이야기. 역시 농사를 짓는 나라는 이렇게 관련된 이야기가 없을 리가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농사와 관련되어 만들어진 날이기도 하니 말이다.

에도(도쿄) 강가에 벚꽃이 많은 이유는?

습지를 매워 만든 도시 에도에는 많은 하천이 흘러, 하천 범람으로 인한 수해가 자주 일어났다. 수해를 막기 위해서는 튼튼한 호인을 만들어야 했는데, 벚나무를 심으면 그 뿌리가 자라 둑이 튼튼해진다. 게다가 벚꽃놀이를 위해 강가를 찾는 사람들이 흙을 밟음으로써 둑은 더 탄탄해진다. 이렇게 사람을 모으기 위해 제방에 벚나무를 심은 것이다. p 160

그렇게 논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벚나무가, 뿌리도 탄탄해서 수해까지 막아준다. 거기다 꽃이 이쁘니, 사람들이 와서 구경도 한다. 즉 일본에서 벚꽃은 농사를 도와주고, 수해도 막아주고, 관광객도 불러와 관광수익까지 불러오는 1석 3조의 친구인셈!

이러니 일본 사람들이 벚꽃을 좋아할 수 밖에.... 이정도면 벚꽃사랑이 DNA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벚꽃의 퇴색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란 말이 유행했던 무사의 시대에 벚꽃은 이렇듯 아름답게 지지는 않았다. 질 때가 너무나도 선연한 왕벚나무의 이미지는 비참한 군국주의 시대의 와중에 ‘죽음의 미학’을 필요 이상으로 조장해버렸다.

“피는 꽃이라면 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이 군가의 가사처럼 깨끗하게 죽는 것을 미화한 가치관은 일제히 피고 한꺼번에 지는 왕벚나무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p 165

그런데.. 그렇게 사랑받던 벚꽃을, 일본인 스스로 그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다.

한때 제국을 표방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 주변국가를 침략한 일본은 자국민들이 사랑하는 ‘벚꽃’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을 벚꽃에 빗대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가는 것를 미화시켰다. 그렇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지네나라 국민들도 그랬겠지만, 강제 징병된 가엾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희생양이 되었다는 건 두말하면 입아프다.

내가 언급한 부분은 이 책의 빙산의 일각일 뿐. 실로 방대한 내용이 책이 실려있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개인의 약초원이 있었다던가. 전투가 사라진 뒤, 할 일이 사라진 무사들이 찾아낸 또 다른 직업이 원예사라던가 뭐. 그런거? 이렇게 읽고 보니, 새삼 우리나라 관련된 식물 역사책은 왜 없는가 싶어지기도 하고.....아니면 있는데 내가 모르는건가 싶고 ㅠㅠㅠ

뭐 여튼! 간만에 읽은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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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초록 식물 잘 키우면 소원이 없겠네 - 선인장도 못 키우는 왕초보를 위한 4주 완성 가드닝 클래스 소원풀이 시리즈 15
허성하 지음 / 한빛라이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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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카페를 기웃기웃하다가 자주 마주친 책이 있다. 너무 궁금해서 결국 구입하고야 만 이 책, 「나도 초록 식물 잘 키우면 소원이 없겠네」.



내가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지만, 식물관련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솔직히 두근 반 세근 반! 식집사의 길로 들어선 이후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보니 난, 그 흔한 식물관련 책도 한번 읽어보지 않은 채 식집사의 길로 들어섰다. 예전만해도 모든 지식은 책을 읽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읽었어야 했을 식물 관련 책인데 말이다. 하지만 책 한권 안 읽고도 식물관련 여러 지식을 습득한 걸 보면, 새삼 책이 아니어도 컴퓨터,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싶었다. 와, 세상 참 좋아졌구나?



뭐,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 지식습득이 쉬워졌다고 하더라도, 기초를 다지기엔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하겠다. 인터넷으로 접하는 지식은 솔직히 단계적으로 습득한 것도 아니고, 워낙 중구난방하게 습득한 지식이 많으니까 ㅠㅠ 역시 책을 읽어야해!




물주기 3년, 또 3년 그리고 또 3년





사람들이 식물을 죽이는 제일 이유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과습’이라고 한다. 대충 99.9% 라고나 할까? 그래서 난 아직 닥치지도 않은 과습이 두려워, 모든 식물들 분갈이를 할 때 ‘배수’를 제일 큰 비중에 두었다. 아무리 물 좋아하는 친구여도, 무조건 특급배수!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하게, 물을 자주주면 될 일이니까. 뭐 덕분에 집에서 쉬어야하는 시간에도, 물시중 노동이다...ㅠㅠㅋㅋㅋㅋ



일주일에 한번, 이주일에 한번, 뭐 이런식으로 한방에 물시중을 들면 참 좋을텐데, 초록이들마다 물마르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보니 휴. 그냥 집에 있는 시간은 물시중 노동시간이랄까?




식물 키우기는 도구빨?


ㅇㅇ 완전 도구빨!





식집사의 길에 들어서면서, 물시중 잘하고 볕시중 잘 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물 주는것도 대충 생수통 재활용해서 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뭐, 공중습도를 위해 분무기를 하게 되고, 흙을 퍼나르기 위한 모종삽도 사게되고, 원예철사, 전지가위 등등. 심지어는 과거에 사용하던 공예도구까지 가드닝 전용으로 바꿨다. 정말 진짜 식물키우기는 완전 도구빨, 장비빨이었다...



뿐만인가? 혹시모를 갑작스런 분갈이를 대비에 크기별 화분 준비는 물론, 각종 흙을 준비하는 것도 기본이 되었다. 심지어는 언제 할지 모르는 파종을 위해 각종 일회용기까지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버릇이..... 이건 뭐, 책을 빼고는 나름 미니멀리스트였는데, 초록이들 때문에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휴. 



결국 초록이용 도구함까지 만들게 되었으니, 확실히 식물 키우기는 무조건 장비빨이다.





식물 키우기 대비해 인터넷으로 주로 확인한 내용이 바로 병충해였다. 특히 충해!! 벌레라면 치를 떠는 나지만, 벌레 실사까지 찾아보며(...) 정말 벌레마다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지 열씸히 외우고 또 외웠다. 다만 병해는.....봐도봐도 어려운 것ㅠㅠ. 그래서 뭔가 정리된 내용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 책에 딱!!!! 세상에나 감사하기도 해라 ㅠㅠㅠㅠ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병충해에 대한 증상이 실사진이 아닌, 일러스트형식이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실사진이 있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벌레는 정말... 실사진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얘가 쟤같고, 쟤가 얘같고 넘나 어려운 것 ㅜㅜ






물주기, 병충해 말고도 초록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햇빛’.



식물 키우기에 앞서 그 위치를 선정할 때, 보통 직광, 반양지, 반음지, 음지 뭐 이런식으로 구분하는 이유가 바로 햇빛 때문이다. 대충 뉘앙스를 보자면 직광은 말그대로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테라스, 창문을 열어놓은 베란다를 생각하면 된다. 반양지는 창문을 거쳐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이나 창문을 닫은 베란다, 반음지는 햇빛이 들어오지는 않으나 간접적으로 밝은 곳, 음지는 걍 어두운 곳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저렇게 따지면 우리집은 반양지, 반음지, 음지만 있다는 점(베란다는 창문을 열지 않음!).하지만 우리집에 있는 식물들은 거의 햇빛을 좋아하는 애들뿐이다. 일일초는 햇빛을 봐야만 꽃색이 쨍하게 나오고, 크기도 커진다. 몬스테라도 햇빛을 봐야만 찢잎이 나온다. 그외 망고, 아보카도, 아가베처럼 고향이 아열대, 적도부근인 친구들도...아휴 두말하면 입 아프다. 거기다 심지어 우리집 습도는 건조경보 수준인 20도~30도 사이. 특히 촉촉한 열대가 고향인 식물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다(미안해 몬스...).



그나마 습도관리를 위해서는 베란다에 내놓는게 제일 좋은데, 우리집은 베란다 확장형이다. 그나마 있는 베란다라고는 안방에 쥐똥만큼 자리잡은 공간 하나. 그 좁은 베란다에 자리잡은 애들은 습도관리가 정말 중요한 율마와 동백이들. 그외 대부분의 식물들은 거실창가 및 방구석 행이다.



여기서 또 하나 슬픈 사실은  우리집은 오전에만 해가 들어오는 동향이라는 점이다. 휴... 해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은데, 해가 들어오는 공간은 협소하고. 결국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었다. 일일초나 몬스테라, 호야, 아가베 같이 햇빛 양에 따라 반응이 빨리오는 친구들은 거실창가에 배치했다. 고작 오전만 들어오는 해라도, 쨍하게 받으라고! 파키라는 간접광으로 그나마 밝은 거실 구석탱이로, 카랑코에 처럼 적은양의 햇빛이 필요한 애들은 안방으로, 스투키나 문샤인은 아예 해가 들지 않은 작은방으로 흑흑. 그나마 다행인점은 식물등을 설치했다는 정도랄까? 물론 그 식물등마저도 없는 곳도 있지만 ㅜㅜㅜ 하, 식물등을 더 사야되나 고민이다(역시 식물키우기는 장비빨).



아... 역시 전원주택으로 이사가는게 답인가보다... 이놈의 아파트 생활 얼른 탈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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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삶은 결국 여행으로 향한다
채지형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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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종 전염병 코로나19로 우리의 모든 삶이 멈춰졌다. 여행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더더욱 힘든 한해였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달라지겠지’ 라는 마음으로 버텼던 1년이었다. 하지만 2021년인 지금도 코로나19는 우리와 함께한다. 백신이 나왔다고는 하나, 나같은 일반적인 성인이 맞으려면 빨라야 하반기. 고로 올해도 우리는 코로나19와 함께해야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여행은 STOP 이다.



멈춰진 시간만큼 여행에 대한 갈증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결국 이 갈증을 채우는 방법은 과거 여행기를 복기하거나, 누군가가 쓴 여행에세이를 읽는 것. 오늘은 후자, #여행에세이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처럼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삶이 멈춰지며, 여행에 대한 갈증을 과거의 여행기를 복기하며 해소하고 있었다. 이 책은 과거의 여행기를 복기하며, 그때의 감정과 추억을 써내려간 책이었다. 



수십 번 일본을 여행했지만 처음 여행한 사람처럼 감탄사가 나온다. 감탄의 대상은 ‘디테일’이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허를 찔린 느낌을 받는다. 기대하지 못한 배려와 상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는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맡은 일에 혼신의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p 079



지리적으론 가까울지언정, 마음의 거리는 미국보다도 먼 일본. 하지만 난 그런 일본을 연 2회 방문할 정도로, 여행지로써 일본을 좋아했다. 제일 큰 이유는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디테일’. 호텔에서, 길가에서, 관광지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무언가를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고, 혹은 본인들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를땐, 질문한 내가 미안할정도로 과하게 사과를 하곤 했다. 물론 그들이 속으로도 미안해하는지, 혹은 혐한을 하는 사람인지 알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난 일본을 가는게 더 편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를 가면 일부 업자들은 손님을 앞에두고 대놓고 곁눈질하거나, 대놓고 불친절하고, 대놓고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이 꽤 있다. 이런 행태에 진절머리가 났던 나는, 더더욱 인적이 드믄 유적지를 찾아가거나, 편리함을 포기하고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 국내 도시를 여행하곤 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사람 많은 곳을 다니고 싶을때도 있다. 어쩌다 한번 유명한 관광지를 가면, 꼭 못난 일부 업자들 때문에 기분좋아야 할 여행이, 기분나쁜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난 대놓고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보다는 속으론 싫어할지언정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는 일본인들이 차라리 훨씬 편했다. 그럼 적어도 그 동안의 내 여행은 계속 기분이 좋을 테니까. 뭐, 그리고 어차피 나역시 일본이라는 나라에 사는, 일본인에 대해서는 썩 좋게 보는 편은 아니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행지에서 만난 잠깐의 시간동안 겉으로라도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면 서로 좋은게 아닌가. 



가끔 뉴스에서는 재난이나, 큰 사건으로 인해 관광객이 뚝끊긴 모 지역들 이야기가 나올때가 있다. 그 중 일부 지역은 군인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게 곳들이 꽤 있다. 그렇게 바가지를 씌우는 지역의 상인들이 주로 군인들이 빠져나가면 생계가 어렵다, 재난으로 인해 고객들이 안와서 생계가 어렵다, 라는 볼멘소리를 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행동인가. 지금까지 바가지 씌우며, 배째라 식으로 영업을 해놓고 이제와서 못살겠다라니. 나참.



아니, 한 발 양보해서 워낙 핫한 관광지라 바가지 씌우는 건 어쩔수 없다 치자. 그렇다면 우리가 지불한 돈 만큼의 서비스를 받아야하는데, 그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태반이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이전까지, 수 많은 국민들이 국내여행이 아닌, 해외여행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강원도나 제주도 여행비면, 일본에서 놀고 먹고 사는 거 까지 완전 충분했으니까. 아니, 외려 강원도, 제주도 여행비보다도 경비가 더 적게 들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코로나19가 강타한 지금,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인 지금, 많은 국민들이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린 지금, 핫한 관광지에서 배째라식의 장사를 하던 업자들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음. 아직까진 멀어보인다. 이대로라면 코로나19가 완전 종식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다시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으로 눈길을 돌릴 것 같다.


아편으로 고통받던 이들이 매파루앙 정원에 활짝 핀 꽃을 보며 미소지었을 때 왕비는 얼마나 기뻤을까.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정원을 돌아볼 수록 왕비의 용감한 도전이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p 110(매파루앙 정원)



그저 여행기라고만 생각했던 이 책에서, 난 뜻밖에도 행동하는 리더십이 어떤 건지를 보았다. 저자가 방문했던 태국의 매파루앙 정원 이야기다.



한때 매파루앙 정원은 태국의 대표적인 아편(마약) 생산지였다. 그러다보니 아편을 재배하던 지역주민들도 자연히 마약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태국의 왕비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아편 생산을 멈추게 하였다. 아편은 분명 마약이지만, 돈이 아주 많이 되는 재배인건 분명하기에,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리더들이었다면 아마 지역주민들 건강따위는 눈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왕비는 달랐다.



그녀는 이 곳을 수차례 방문하여, 지역주민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들을 이해시켰다. 그렇게 태국의 대표적인 아편생산지였던 이 곳은, 아편이 아닌 아름다운 꽃과 나무, 커피가 자라나는 멋진 정원으로 변모하였다. 아편만큼은 아닐지언정, 이런 꽃과 나무, 커피등의 재배로 지역주민들의 생계도 책임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마약에서 벗어나면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관광수익까지. 이 모든게 마약에 허덕이는 국민들 구하기 위한 리더의 행동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 여행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바람이 스치는 순간에도 적고 찍어야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기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기록의 힘을 더욱 믿게 해준 여행지가 몇 곳있다. (중략) 옛 가톨릭센터에 둥지를 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을 찾았다. 기록관에 전시된 자료로 더듬어본 광주는 처참했다. p 125, 128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국민을 위해 행동하는 이런 리더가 있을까. 대통령이든, 관공서든, 국회의원이든 그 누구든 말이다. 아쉽게도 아직은 그런 리더들을 못본 것 같다. 국민들 주거 지원을 위해 신도시 개발한다고 지역을 지정해놨더니, 알고보니 그 지역들의 땅을 토지공사 직원, 친인척들이 죄다 매입해서 자기들 돈벌 궁리만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기록이 중요하다’. 


저자의 마음에 완벽하게 공감한 구절이다. 더군다나 그 예시를 든 곳이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라니. 나 역시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애초에 여행 테마를 5.18 민주화운동으로 결정하고 관련 유적지만 돌아다녔었다. 어딜가든 마음이 아팠지만, 유독 더 아팠던 곳이 바로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건 다름이난 당시의 기록들이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가보면, ‘와-’ 하는 마음 반, ‘정말, 여기가 맞아?’ 하는 마음 반이다. 아무래도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방문하면 더더욱 그렇다. 파란 하늘과, 초록빛의 나무들 그게 끝이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는 해도, 그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고, 그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물은 다르다. 기록물은 역사적 사건의 매개체가 된다. 그 중에서도 사진으로 남겨진 기록물이라면 더더욱, 그 사건이 눈 앞에 되살아난다. 그렇기에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정말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 사건은 공권력에 의해 민간인들이 학살된 사건이기에, 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철저하게 은폐되었을 사건이기 때문이다.





와, 묘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행 금단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어느정도 해소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감동은 여기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여행에세이에서 끝났을지도 모르는 이 책이, 나에게는 달랐다. 분명 이 책은 여행에세이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그 나라의 사회를 보았고, 문화를 보았고, 정치를 보았다. 저자의 발길이 닿았던 그 곳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보았다. 그저 여행지에 대해 ‘설명’만 하려는 그런 책들과는 달랐다. 뭐,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아.. 여행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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