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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ㅣ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만세!!!!!!!!!!!!!”
밑도 끝도 없이 만세라니, 의아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나에게 환호성을 지르고도 남을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이시한님은, 다름아닌 내 애정프로그램 tvN <책 읽어드립니다> 선정위원이라는 것! 매번 <책읽다>를 볼 때마다, 어쩜 하나같이 명서만을 고르는지. 대체 그 책을 고른 선정위원이 누군지 참말로 궁금했는데 말이다. 일단 <책 읽다> 도서 선정위원이라는 것 만으로 내 마음의 빗장 해제 ★
‘생각하는 인간편’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저자가 고른 18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는(혹은 연구해보는?) 기회를 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거다. 아무리 ‘생각’을 하기 위한 책이라고 해도, 책의 내용이 어려워 읽기를 포기하거나, 정말 생각이란걸 하지 않고 그냥 텍스트만 읽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깔끔하게 차단!
저자는 독자들이 쉽게 ‘생각’하며 따라 올 수 있도록 18권의 책을 레벨 1,2,3로 나눈 뒤, 진짜 정말 완전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생각’이란걸 하며 읽게끔 유도를 해준다. 진짜 생각이란걸 하지 않던 사람도, 나도 모르게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책이랄까?
레벨1: 질문하는 인간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제레드 아이아몬드 「총, 균, 쇠」, 토머스 불핀치 「그리스 로마신화」, E.H카 「역사란 무엇인가」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은 인지 혁명,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죽음까지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류로 진화하고 있다. p.038
사냥에 필요한 의사소통과 무리들을 엮는 데 필요한 집단이라는 개념이 ‘사회’라는 개념으로 발전하는 거죠. 150명 정도가 아니라 몇십반 몇백만을 통합하는 개념이 필요해진 겁니다. p.043
인간의 입장을 벗어나 생태계 차원에서 본다면 과연 이 지구의 빌런은 누구일까요? p.050
왜 인간만 ‘사피엔스’ 한 종일까? 다른 동,식물들은 하나의 과에도 종이 여러개인데 말이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우리는 꽤 오래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은 인간이 직렬로 진화했다고 배웠다. 실상은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인간‘종’은 정말 많았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바로 지금의 우리, 사피엔스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많던 종이 다 죽고 사피엔스 한 종만 살아남아, 이 지구에서 살아남았는가? 그건 결국 사피엔스들이 그 많은 종을 정복하고, 죽이고, 그 위에 섰기 때문이다. 이 모든게 가능했던건 사피엔스들끼리 단합이 가능했기 때문에, 일종의 ‘사회’가 만들어진 인지혁명 때문이었다.
농업혁명과 과학혁명, 그 이전에 사피엔스들을 지금의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한 제일 큰 혁명인 ‘인지혁명’. 이 혁명으로 인해 사피엔스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서로 유기적인 결합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피엔스가 생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다른 인간종들을 하나하나 정복해갔던 것이고, 사피엔스들끼리만 남았을 때도 역시 살아남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고, 전쟁을 했다. 사피엔스들의 생존을 위한 혁명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총,균,쇠>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뉴기니인 친구 얄리의 질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문명의 발명품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하는겁니까?” p.057
환경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따라할 수 있어 노하우가 되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노하우는 그 가치를 잃습니다.(중략) 그래서 동불의 가축화와 식물의 가축화는 동서방향으로 축을 이루는(그러니까 기후적으로 비슷한)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쉽게 전파되었지만, 남북으로 축을 이루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기후가 다르다보니 전수될 수 없었죠. 이것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이 중세 시대까지 인류 역사의 중심이었던 이유입니다. p.067
원래 진화생물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두 번째 증거로 유전학적인 비교를 내놓습니다. 고대 조몬인은 일본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누인과 유사하지만, 현대 일본인의 조상인 야요이인은 한국 쪽 유전자와 유사하다고 말입니다. p.071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백인의 문명이 발전하여, 지금처럼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 건 그저 ‘운’이라고 했다. 발전에 적합한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살아갈 땅을 잘 고른, 그저 복불복 게임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농사를 시작한다. 농사에서 나온 잉여농산물이 재산이 되었고, 그 재산이 사회적 계급이 되었다. 농사를 할 수 있는 비옥한 땅이 있었기에 농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비옥한 땅이었기에 가축을 키울 수 있었다. 농사를 짓다보니, 더욱 많은 수확을 하기 위해 보다 발전된 (쇠)농기구를 만들었고, 이러한 기술발전은 결국 서로간 정복전쟁을 할 수 있는 (총)전쟁무기가 되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전쟁을 이끌 수 있는게 (균)생화학전이라는 걸 알게된다.
결국 인간의 생존본능과 쾌적한 환경이 합쳐져, 백인이 문명 발전을 주도한 것일 뿐이다. 백인이 잘나서 문명을 주도한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약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살고, 흑인들이 유럽전역에 살았다면, 역사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하자면, ‘사회’와 ‘기록’이라는 2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역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p.093
역사에는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역사가 과거와 역사가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를 살펴봐야 하는데, 역사가는 개인이자 시대의 산물이므로 그의 시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것을 살펴보는 방법론은 모두 과학적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지만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므로, 결국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것이다. p.098
학창시절 국사 첫시간에 배운건 E.H.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한 문장이었다. 그저 명언인 줄 알았는데, 1n년의 시간이 흐른 한참 뒤에서야 유시민 작가님의 「역사의 역사」를 읽고, E.H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서 논하였지만, 저마다 제각각의 신념을 그들이 저술한 역사서에 녹였다. 예컨데 이븐 할둔은 인류사를 쓰면서, 주기적으로 ‘알라신 찬양’을 끼워넣었고, 랑케는 로마-게르만 민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은 미개인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본인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주입하여 역사서를 썼다.
E.H.카는 이런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역사는, 그러니까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는 그 기록을 남긴 시대상과, 그 기록을 한 역사가를 봐야한다. 시대상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E.H.카의 시각으로 볼 때, 위 두 책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제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는 정말 역작이다. 기존 역사가들의 시각을 통채로 들어내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했으니까.
레벨2: 탐구하는 인간
- 플라톤 「국가」,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니콜로 마키아밸리 「군주론」,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장 자크 루소 「에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윌든」,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조지 오웰 「1984」
<국가>
왜 이 책의 제목이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국가’가 되었을까요? 바로 국가 체제를 한 명의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의로운 것인가 설명하기는 어렵잖아요. 사람은 다 상대적이니까요. 반면 정의로운 국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고 정의로운 국가는 이래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p 115
플라톤의 사상은 서양 사회의 중요한 줄기가 되는데요. 고대와 중시 시대 신분제의 정당성을 제시해주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왜 왕이고, 귀족은 왜 귀족이며, 농노는 왜 농노인가를 밝혀주고요, 현실에서 불만을 가지지 말고 자신의 직분을 잘 수행하면 나중에 하늘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거든요. p.122
부패할 대로 부패했던 고려 말, 백성들은 “국지불국(國之不國)”이라 말했다. 그대로 해석하면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이걸 현대식으로 바꾸면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된다. 왜 이런 말들이 나왔을까? 고려라는 국가가 국가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릇 정의로워야하고, 정의를 잃은 국가는 국가가 아니게된다. 당장 현재 대한민국 상황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나라가 나라같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으니.
그래서 플라톤은 국가가 지켜야 할 ‘정의’에 대해 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국가의 정의를 논한 이 책은 권력자들을 위한 책이 되고야 말았다. 플라톤이 말한 ‘정의’는 주어진 계급에 따라 생활하며, 설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만 한다면 사후에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론이니까. 물론 당시 시대상을 본다면 그가 말하는 ‘정의’가 맞을 수도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플라톤이 정말 순수하게 ‘국가를 위해서’ 이 책을 썼는지 여부다.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 세력에 의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본 후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민주제를 우둔한 민중들의 집합체라 생각했고, 정의로는 국가는 강한 권력을 가진 통치자가 다스리는 군주제를 원했다.
고로 <국가>는 그대로 답습하면 안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찾고, 진정 국가가 꾸려야하는 ‘정의’를 찾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리바이어던>
『리바이어던』의 전체적인 내용은 인간은 그냥 놔두면 싸우니까 서로 싸우지 않기로 약속을 하는데, 그 약속을 지키게 강제하는 역할을 할 국가가 필요하고, 그 국가는 정의롭거나 정당할 필요는 없다, 국가는 이 계약을 이행할 만한 공권력만 가지면 된다는 정도로 얘기할 수 있어요. p 164
성악설에 기초한 이 책은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를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보았다. 따라서 서로 해치지 않기 위해 강한 규제가 필요한데, 이 규제를 국가가 해야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플라톤의 <국가>와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플라톤은 인간은 계급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토마스 홉스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전제한다. 평등한 인간 사회에서 강한 규제를 위해, 강력한 공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시대상에 따르면, 결국 이 책도 강한 군주제를 옹호하는 책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 <리바이어던>을 읽는다면, 강한 공권력을 강한 군주가 아니라, 강력한 ‘법’으로 치환해서 읽어보자. 그러면 나름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유론>
내가 기부하는 것은 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기부하는 것을 통해 혜택만 누리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성향을 알 수 있죠. 사실은 우리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인간이니까요. p.224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별성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기본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개별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 그에 따른 합의와 원칙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 과정들이 귀찮다고 누군가에게 위임한다면 그것은 기껏 찾아온 권리를 다시 왕이나 신과 같은 권력을 노리는 사람에게 주는 거나 마찬가지 행위입니다. p233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남은 해야한다는 인간의 이기심.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을 이야기 한다. 토마스 홉스처럼 인간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기초한다. 이런 인간의 이기심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꽃인 ‘법’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과연 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어디까지 자유가 허용될까?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하면 다수결 원칙을 이야기한다.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정당한 민주주의일까? 우리는 정말 올바른 민주주의를 배운 것일까?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건 개인의 의견을 짓밟고, 그저 다수의 의견을 따라 획일화하는 것 뿐이다. 정당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군주제였던 조선의 왕 세종 조차도, 신하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지 않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소수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레벨3: 생각하는 인간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칼 세이건 「코스모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은 더 지불하고 합의와 원칙 위에 서는 것, ‘내 돈 내고 더 편하게 이용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고는 곧 국민주권 국가의 기본 전제인 합의와 원칙이 때에 따라 무시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p256
16세기 유럽, 카톨릭을 지탄하는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하나다. 카톨릭이 부패하여 돈으로 면죄부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카톨릭에서 판매하는 면죄부만 사면 사실상 무죄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말 안타깝게도 중세 유럽과 다를바가 없다. 돈으로 못 사는 것이 없다.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정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지는 바로 그런 사회가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이 나라다. 그런데 정말 돈이면 다 되는걸까? 이런 사회가 정말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인걸까?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가 소름 끼치는 이유는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내는 미래가 실제로 멋지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1984』는 두렵고 공포스러운 미래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경계하게 되지요. 반면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세계의 통제자가 이 세계의 시스템을 설멍하며 주인공에게 “이만하면 멋진 신세계 아닌가?”라고 불어보는데, 단번에 부정하기가 힘들어요. 일견 합리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거든요. p278
애초에 직업적 필요에 의해 설계된 대로 태거나기 때문에 실업이란 있을 수 없고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죠. 애정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인간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고요, 가족간의 문제 역시 없죠. 가족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가족도 없고 연인도 없는 세계는 외로워야 정상일 것 같지만 외로움 역시 없습니다. 오히려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를 지키며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며 외로워하지 않습니다. p.284
위 플라톤 <국가>편을 읽으며 떠오른 게 있었으니, 바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다. 플라톤이 말한 것 처럼 각각의 계급에 맞게 설계되어, 계급에 맞는 일을 하고, 그런 사회에 불만조차 없는 사회. 과거 같았으면 이런 책을 읽고 그저 웃고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멋진 신세계>에서 태어나는 자유 의지 없이 정해진 대로 생활하는 계급별 인간들처럼, 주입된 학습으로 자유의지가 없이 일을 하는 인공지능이 나왔다. 자, 이제 이 책을 그저 웃고 즐길 수 있을까?
지금이야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지만, 그 범위가 넓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단적인 예가 자율주행이다.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이 사용화 된다면 자율주행차를 타고 있는데, 차 앞에 차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치자. 차가 어린아이를 치면 운전자인 나는 살 수 있지만, 내가 핸들을 틀어 아이를 살릴 수도 있다. 다만 아이를 살린다면 내가 죽는다. 이런 경우 자율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백이면 백 운전자인 나를 살리고, 어린아이를 치어 죽이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선택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은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을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tvN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 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어째서 레벨 1~3으로 구분을 했는지 자연스레 수긍하게 된다. 레벨1의 읽기는 ‘인류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레벨2의 읽기는 그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인류가 추구한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레벨3 은 그 이후 미래의 인류의 삶, 앞으로 인류는 무엇을 추구하게 되는지를 생각한다.
책 한 권으로 이토록 방대한 지식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근데 이 책이 그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해내고 있다.
정말 이 책에서 언급한 18권의 책을 제대로 읽을 자신은 없는데, 그럼에도 읽고 싶다면, 바로 이 책 「지식편의점」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