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힐링하우스 - 내가 만난 고양이, 나를 만난 고양이
박미아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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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색다른 에세이를 읽었다. 언뜻 보면 일상 에세이? 포토 에세이? 근데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간다. 바로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에 바로 그 ‘고양이’다. 무엇보다 나는 고양이가 없기에, 어쩜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아, 나도 고양이...T_T” 하며 읽게 된 에세이였다.




에세이 『미아 힐링하우스』는 저자 박미아가 전원주택 생활하며 만난 고양이들과 인연을 기록한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와 고양이들과 인연은 8년이 끝이 아닌, 현재진행형! 





우리 집에 왜 왔니

2015년, 단순히 ‘내 땅’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아파트에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하고 보니 내 땅인 줄로만 알았던 주택 마당에 고양이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마당에 자신의 영역표시를 하고, 서로 서열 싸움도 했다. 고양이들을 마당에서 쫓아내려 많은 시도도 해보았지만, 떠날 마음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고양이들을 쫓아내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2016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엄마 고양이 하나가 어디선가 새끼를 낳아 내 마당으로 하나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와 고양이들과의 영역 싸움은 ‘공생’의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기 고양이들의 이름을 짓고, 밥과 물을 챙겨 주는 집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캣 맘”이라 불렀다. p017



전원주택에 고양이와 공존하는 생활. 고양이에 한참 빠져있던 그 때, 내가 엄청 원했던 삶이다. 물론 한참 뒤, 전혀 다른 식집사생활을 하게 되며(?) 전원주택 생활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저 대리만족하기로 결정했지만. 근데 이제 마냥 대리만족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런게, 우리 뿡뿡이 초등학교 입학 전 쯤에 전원주택 월세살기를 생각하고 있기에! 어쩌면 대리만족하던 이 삶을 내가 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생각? ..은 TMI 여기까지!



이 책에는 저자가 8년간 만난 수많은 고양이들의 족보를 시작으로, 모든 고양이들과 인연이 하나하나 남겨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저자가 직접 고양이를 입양한게 아닌, 고양이들이 저자를 간택했다는 것!! 스스로 저자가 사는 전원주택 마당으로 하나 둘 들어오다가, 아예 터를 잡아버린 것이다.




밤톨이와 점점 더 친해지던 어느 날, 밤톨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임신한 밤톨이에게 약속했다.
“걱정하지마, 너의 아기 고양이들은 내가 돌봐 줄게.”
그 약속으로 나는 ‘캣 맘’이 되었고, 밤톨이의 세 번의 출산으로 태어난 모든 새끼들을 돌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양이에 관해 조금은 무지했기에 할 수 있던 약속이었다. p 033





고양이들에게 마당을 내어주며 공존을 선택한 저자는 그렇게 캣 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캣 맘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일부 몰상식한 캣 맘들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한 적도 많았다. 고양이를 위한 마음을 직접 행동으로 보이는 건 좋은데, 꼭!! 부적절한 행동까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사례는 굳이 언급 안하는 걸로). 


근데 저자는 그야말로 존경받을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무늬만 캣맘이 아닌, ‘자기 소유’의 공간을 고양이에게 내어준 사람. 뿐만 아니라 고양이가 본인의 공간에서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기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한 사람. 저저야말로 진정한 캣 맘이었다.



종종 고양이들이 공동육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고양이들끼리 서로의 새끼를 함께 돌보는 것이다. 고양이들의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배울 모습들이 많다. p 071

고양이들도 가장 좋아했던 친구가 갑자기 떠나면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는 것 같다. 카페는 자신을 키워 주고 같이 자던 레오 형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떤 짐작을 하는지 모르겠다. 먼저 별이 된 레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 p 121

고양이들도 가끔 우울해하는 시기가 있다. 라떼도 그런 시기들이 있다. 온전하게 혼자 사랑받고 싶은 라떼는 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잘 알기 전에는 고양이가 독립적이고, 사랑을 많이 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 p 132



저자가 기록한 마당냥이들의 면면을 보자면 그야말로 애교넘치는 냥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냥이는 절대 곁을 안주는 냥이도 있었다. 정말 하나같이 다른 성격을 가진 냥이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놀랍고 신기했다. 그럴수록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에게 마당을 내어준 저자가 존경을 넘어서,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같은 속세에 찌든 사람은 차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모습. 고양이를 얼만큼 좋아하면,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캣 맘이란 …
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
냥이들을 “애기야~” 라고 부르는 사람
냥이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사람
냥이들의 눈빛만 봐도 아픈 줄 아는 사람
손등과 팔에 늘 상처가 있는 사람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 p 143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쇼리가 3일 내내 비가 오던 마지막날 나를 찾아왔다. 다리에는 뼈만 남아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스스로 알고 찾아온 것일까…. 쇼리는 만지는 것을 허락하는 듯 내 옆에 편안하게 누웠다. 그렇게 마지막이 되어셔야 쇼리를 만져볼 수 있었다. 캣 맘으로 지낸 8년 동안 많은 고양이가 별이 되기 전이면 집으로 찾아와 마지막을 나와 함께해 주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돌보며 그들을 살리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는 것이다. p 161


온도에 예민한 고양이들이 폭설과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을 스스로 이겨 내기는 쉽지 않다. 사실 나도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던 8년 전만 해도 동물들이 스스로 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물과 사료를 공급해 주어도 겨울이 지나면 많은 고양이가 면역력이 떨어져 별이 되었다. 이후 미아 힐링 하우스 집 안에 들어오기 원하는 냥이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p 195


2022년 11월부터 미아 힐링하우스 고양이 식구들은 집 안에서 겨울을 지내고 있다. 긴 겨울밤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온 냥이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하지 않은 식사와 따듯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는 것이다. 모든 고양이가 집 안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집 밖 마당에서 겨울을 견디는 냥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그들의 선택에 맡긴다. 바깥 고양이들이 따듯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통조림을 벽난로에 데운다. 겨울에는 따듯한 물을 자주 줘야 한다. 나와 반려견 할리, 고양이들은 힘들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밖으로 나갈 봄을 기다린다. p 197


 



 
미아 힐링하우스를 찾아온 고양이들은 저자의 마음을 아는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곁을 주지 않는 길냥이가 스스로 자신을 돌봐달라고, 내 새끼들을 지켜달라고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이런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리고 무늬만 ‘캣맘’을 따라하는 그들까지. 고양이를 진정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에세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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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망)한 여행 - 망한 여행도 다시 보면 완전한 여행이 될 수 있지
허휘수.서솔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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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처음 읽는 책은 바로!! 여름휴가를 잊고 싶지않는 마음에 선택한 여행에세이 『완전 (망)한 여행』 이다. 이 여행에세이 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말 그대로 ‘망한’ 여행이지만, 표지를 잘 보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완전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본디 여행이란, 여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망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완전한’ 여행이 될 수도 있기에 이 만큼 적절한 표현이 어디있나 싶기도 하고?



이 책은 대략 작년에 리뷰했던 에세이 『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없지』를 썼던 저자‘들’이 썼다. 고로 저자는 허휘수, 서솔 2명. 두 사람이 경험했던 여행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앞선 책을 읽었을 때는 허휘수님의 경험에 많은 공감을 했더랬다. 해서 이번 여행에세이도 비슷할거라 생각했는데, 왠걸? 정반대였다.


일상적인 경험과 여행 경험은 확실히 달랐다. 전작과 달리 서솔님 경험에 많은 공감을 하게되었다고 해야하나. 반대로 허휘수님 경험에는 약간 ‘왜?’ 라는 물음표가 상시 떠다녔다. 적어도 난 ‘여행’이라는 주제로 책을 읽었을 때, 허휘수님보다는 서솔님 가치관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하나.



아래 에피소드는 허휘수님의 여행경험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경험했을 법한 가족여행과 친구과 함께한 여행! 홀로 여행이 아닌이상, 타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불편함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평생 여행메이트가 될 수도 있고, 다시는 안 볼 사이(또는 절대 여행을 같이 안가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휘수님 경험은 후자였다. 



▶강릉

나의 기대를 깨버린 건 엄마의 무심한 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부터 엄마의 발언이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이 집이 하루에 얼마라고? 돈 아깝다.”, “아니 무슨 돈을 그렇게 받으면서 바비큐값을 또 받냐?” 식당을 나오면서는 “해 먹는 게 더 낫네.”, “이 집은 물이 제일 맛있네.”

평소 같으면 귀여운 투정 정도로 넘겼을 이야기인데 그날 따라 목에 턱턱 걸렸다. 

“엄마, 가족여행 시 금지항목이 10개가 있어. 엄마가 숨 쉬듯이 하는 대사거든? 엄나는 여행가서 되도록 말을 줄이길 바라.” 여행 출발 전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재채기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엄마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 날 밤엔 정말 폭발해버렸다. p 070

강릉 여행에서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무심한 듯 따뜻하고 유머를 잃지 않아 재밌지만, 가끔 짜증 나는. 그게 우리 엄마인데. 아마 나에게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래가 불안정해서 고민이 많았고 안정을 느끼고 싶어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안정적일 수 없는데 모순이 가늑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엄마랑 여행은 안 가냐고? 강릉 여행으로부터 2년 반 뒤인 올해 7월, 우리 가족은 다시 해외여행을 간다. 엄마와의 여행을 다시 결심하는 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제발 내가 잘 참아내기를, 2년간 더 성숙해졌기를 바란다. p 076


▶도쿄

가깝게 지내던 친구 Z와 떠나기 만만한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Z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이것저것 정보를 찾는 일에 능숙했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 통에 도쿄 근처도 가기 전에 질려버렸다. 다 알아봐주는 것이 머리로는 고마웠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질린 나는 어느새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과정이 힘들 뿐 Z가 싫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잘 마치고 싶었다. p 091


특히 여러 아빠들 얼굴에 드리운 지리멸렬함은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이썽ㅆ다. 디즈니? 유치 뽕짝의 향연이며, 가격은 말도 안되게 비싸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정이라고 뒤늦게 한탄했다. 속으로만. 디즈니랜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퇴장로를 걸었다. 낮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나를 위해 Z의 계획보다 이른 시각에 숙소로 향했다. 도쿄 이틀 차, 몸살이 났다. 아픈 나를 위해 Z는 하루를 간호에 할애했다. 혼자라도 나갔다 오라는 말에 Z는 내 옆을 지켰다. 고마웠지만 불편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Z와 멀어졌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다. p 093


나는 단 한번도 Z처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었다. 그런데도 Z의 여행제안을 덥석 받아버린 건 내가 나에게 무지하고 무심했던 탓이다. 취향을 모르는 여행자, 다시 말해 줏대없고 우유부단한 여행자에게 즐겁도 딱 맞는 여행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p 094


요즘 자녀들은 가족여행시 부모님께 “ㅇㅇ하기 금지”라는 금기사항을 사전에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금기사항은 생각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왜 이런 금기사항이 유행하는지 이해못하는 부모라면 더더욱. 여기서 1차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이를 대처하는 자녀 입장에서 부모를 이해하고 넘어가면 1차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만,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져버리고 만다. 이런 경험은 비단 저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겪어보았고, 가족여행을 해봤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겪어봤을테다. 다만 이런 경험이 있은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나도 부모님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부모님은 “ㅇㅇ하기 금지”에 해당되는 금기사항을 내뱉은 적이 없다. 최근에도 없었고, 근 10년간 부모님과 여행을 떠올렸을 때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기억나지 않던, 부모님과 처음 여행을 갔던 어느 날. 분명 나와 부모님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다. 없을 수가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부모님과 나는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니까. 다만 나는 성격상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한다.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한다. 물론 여행하고 있는 때에는 오로지 즐거운 여행만 생각하고 싶기에 가볍게 넘어갈 뿐이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어쩌고저쩌고블라블라미주알고주알” 쏟아낼뿐.


이렇게 갈등이 ‘처음’ 발생했을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서로 고쳐나가고자 대화를 한다면 이후 가족 여행은 그야말로 ‘해피’하다. 물론 부모님에 따라 이해해주지 않거나,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은 부모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부모님은 갈등을 잘 해결했고, 이후로 가족 여행은 언제나 해피 그자체다. 일단 내가 가족 여행을 계획함에 앞서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게 ‘부모님 취향’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우리 부모님은 내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언제든지 Call을 외치며 달려나온다.


친구와의 여행도 그렇다. 가족여행은 그렇다치더라도, 친구와 여행은 독자입장에서 휘수님을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웠다. 적어도 글 전반적으로 친구 Z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족했다. 특히 글 에서 보여지는 저자를 향한 Z의 배려를 보면 볼수록. 분명 이 글은 저자가 썼기에, 저자의 행동이 더 미화되어있을 확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드는걸 보면, Z는 저자를 위해 많은 여행 내 많은 배려를 했을 것이다. 나중에 깨닫게 된 여행 취향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변명만으로는, 너무 아쉽다.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취향이나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제일 중요하다. 



▶캄보디아 씨엠립

그때부터 가이드는 우리 가족을 차별하기 시작헀다. 관광지에서 아빠의 질문만 못 들은척하며 대답하지 않는가 하면, 귀국하자마자 있을 언니의 이사문제로 가족들끼리 급히 상의할 일이 있어 ‘선택 관광’이었던 서커스 쇼를 보지 않겠다고 하자 화를 냈다. 가이드는 우리가족에게 ‘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할거면 패키지를 왜 왔냐’며, 선택관광을 하지 않으면 가이드에게 돌아오는 수입이 줄어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p 083


물론 이 일화로 패키지 여행을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조금 특이한 가이들르 만났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직항 비행기표가 없었기에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없다. 그게 아니었다면 갈 수도 없었던 여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움보다 억울함이 더 컸던 여행이었지만, 아빠의 오랜 소망을 실혔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그때 찍은 가족사진인 걸 보면, 가이드의 몽니도 아빠에겐 별일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p 084


▶체코 프라하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그를 ‘중국인’이라고 단정짓고 느낀 불편함이 정당한 일이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만 했다. 4시간 동안 나에게 공포심을 밀어 넣은 것은 ‘우한 폐렴’인가, ‘나의 편견’인가?


동양인으로 태어나 서양 국가를 여행할 때마다 인종 차별적인 눈짓만으로도 분노하는 내가, 중국어 한마디에 내면으로부터의 차별과 낙인을 찍었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를 보며 ‘바이러스’를 외치던 유럽인과 중국인을 계속해서 불편해하던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다른 선상에 있는 것일까? p 133


위 에피소드는 서솔님 여행 경험이다. 패키지 여행, 해외 여행시 인종차별. 이 역시 여행할 때, 특히 해외여행 할 때 한번 씩은 겪었을 법한 경험담이다. 


패키지 여행 시 ‘선택 상품’에 대한 강제는 문제가 있는 요소로, 몇번 사회적 이슈가 된 적도 있다. 거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슈로 해외여행까지 급감!그래서 그런가? 여행업체에서는 가이드 강제를 제제하기 위하 여러 자구책을 내놓았고, 실제로 예전에 비하면 선택상품 강제하는 행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완전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해본적은 없지만, 해외 여행 시 1일 버스투어 형식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본적은 있다. 1일 버스투어 였지만 그 안에도 ‘선택 상품’이 있었는데, 해당 상품을 이용하지 않아도 가이드는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선택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객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동안 가서 구경하면 좋을 장소를 여러군데 추천해주었다. 얼마나 친절하던지! 그때 알았다. 패키지 여행은 가이드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인종차별! 해외여행을 하면, 특히 서양권 국가를 여행할 때면 한 번쯤은 겪는다는 문제 중 하나다. 다만 이런건 우리를 ‘피해자’ 입장으로 봤을 때다. 잘 생각해보자. 내가 누군가를 향해 인종차별을 했던 ‘가해자’였던 적은 없었는지를. 제일 가깝게는 코로나가 ‘우한 폐렴’으로 불렸을 당시, 중국인을 향한 인종차별.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다문화 가정을 향한 은근한 차별. 저자 서솔님처럼 ‘나의 편견’으로 알게모르게, 인종차별 가해자가 되었던 적,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동양인인 나를 향해 하는 인종차별과 내 ‘편견’으로 알게 모르게 내가 한 인종차별. 둘 다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에 부당함을 말하기 앞서, 내 행동을 먼저 돌아봐야 할 때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여행은 ‘망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했던 여행도 아니었지만, 각자의 마음에 인상 깊은 풍경은 물론 작은 전환점을 만들어왔다. 이 사실들로 미루어 보자면, 이 여행을 ‘완전한 여행’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개고생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여행의 매력이다. p 085



책을 구경하러 간 행사였지만, 나는 또 다른 것을 한 아름 얻어 돌아왔다. 여행이라는 건 언제나 그런 것 같다. 기대했던 것에 실망해도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그것을 기억 한편에 잘 저장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좋은 창고를 만들어 오는 것. 프랑크푸르트에서 느낀 찰나의 깨달음 역시 그 창고 안에 잘 수납되어 중요할 때 다시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p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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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문 기행 1 - 고전 들고 떠나는 펠로폰네소스 유랑기, 2024년 하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 도서 그리스 인문 기행 1
남기환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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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읽히는 신화는 무엇일까? 아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신들은 누구일까? 길 가는 초등학생 붙잡고 물어보자. 팔 할은 그리스 신을 이야기 할 것이다. 비단 초등학생 뿐이랴? 길 가는 성인을 붙잡고 물어봐도 대다수는 그리스 신들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명하다. 오죽하면 어려서 처음 읽는 만화책이 ‘그리스로마신화’ 일까.

나 역시 그리스 신 이름을 대라고 하면 줄줄줄 이야기 할 수 있다. 로마신들이야 뭐, 훗날 그리스 땅에 로마가 들어서면서 그리스 신 이름이 로마식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으니 생략(예컨데 그리스신 제우스가 로마신 쥬피터로 변했다는 뭐 그런정도?). 그러다보니 난 그리스를 꽤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고작 몇개 에피소드, 줄줄줄 꾀고 있는 신 이름들만 가지고 말이다.

그런 내가 여행에세이 『그리스 인문 기행』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리스 고전이란 고전을 모조리 독파 후, 고전을 따라 그 지역, 그 장소를 답사했던 그리스 인문기행책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그리스 신도 좀 알고 있고, 나름 세계사도 잘 아는 편에 속했던 나였기에 ‘그리스 인문기행?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군!’ 라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난 깨닫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는, 그리스가 아니라고. 난 그리스 무지랭이였다. 정말 무지랭이도 이런 무지랭이가 없을 정도로, 난 그리스 무지랭이였다. 오히려 이 책 덕분에 그리스 역사를 제대로 알았을 뿐더러, 그리스 고전들까지도 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읽은 책은 한 권인데, 다 읽고 보니 고전을 비롯해 그리스 인문 역사책까지 여러권을 읽은 느낌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였던 코린토스, 미케네, 스파르타 등을 찾아갔다. 매 챕터마다 장소와 관련된 그리스 고전을 인용하다보니, 어떤 부분에선 21세기 사람이 과거 그리스로 돌아가서, 그 곳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뭐랄까,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내가 모르던 그리스 이야기가 한 가득이라, 이건 뭐랄까. 이 책을 ‘여행에세이’라고 분류하기엔 조금 아깝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저자는 이 책이 그리스 여행기이긴 하지만, 그냥 여행기가 아닌 인문학 여행기라고 했다. 정말로 이 책은 인문학을 빼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근데 또 인문학책이라고 하기엔 책이 너무 쉽고 재밌게 읽히고. 고로 이 책을 그리스 인문학 여행 에세이로 분류하기로!


아래는 『그리스 인문 기행』 중 ‘스파르타’에 대한 내용이다. 다른 지역들도 흥미로웠지만, 유독 스파르타가 기억에 남는건 아마도 “디스 이즈 스파르타!!!” 때문이려나? 분명 나에겐 ‘디스 이즈 스파르타’ 였는데, 막상 알맹이를 까보니 과거에 용맹했던 스파르타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그저 소박한 도시 스파르타였다. 나에겐 그 어떤 반전보다 놀라운 반전이랄까.

가혹함의 원천, 스파르타
프사르타는 군사적 엄격함과 훈련에 대한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보통 스파르타를 라케다이몬이라고 불렀다. 현대의 스파르타는 상주 인구가 2만명을 넘지 못하는 작은 도시다. 고대 스파르타의 유적은 대체로 소멸하였지만, 고대 극장과 신전, 일부 고고학적 흔적을 볼 수 있다. p 195

겉으로 보이는 유적은 소박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구성된 신전도 웅장한 건축물 하나 없다. 방문객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심지어 낮은 울타리 하나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아예 꾸밈이 없다. 투키디데스는 볼 것 하나 없다는 스파르타의 미래를 예견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라케다이몬의 도시가 황폐해지고 신전과 건물의 기초만 남게 된다면 후세들은 그 명성에 비해 과거의 힘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펠로폰네소스의 삼분의 이 이상의 동맹을 통제하며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흩어져 살고 있는 라케다이몬의 인구와 소박한 건물을 보면 그 힘을 실제보다 덜 인상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 p 139


더 신기한건 이미 2,500년전 인물이 이런 스파르타의 반전을 예견했다는 사실이다. 투키디데스는 예언까지 하는 역사가였던가!

생각해보면 그렇다. 기원전에 있었던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국가 흔적은 이제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돌무더기에서 빛나는 그리스 문화를 비춰보고 있다. 이 모든게 기원전에 살았던 투키디데스나, 헤로도토스 같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면, 돌무더기를 보며 이 곳이 한때 그리스 세계를 호령하고, 번영했던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공동 식사, 아고게, 크립테이아….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만들어냈다. 선한지 악한지를 떠나 그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스파르타 사회는 유지되었다. 개인적으로 영혼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얽매임 없는 삶을 추구하는 나같은 여행자에게는 상상도 못 할 체계이며 소름끼치게 끔찍한 정체(정치체제)다. 그런데도 스파르타의 정체는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등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플라톤은 스파르타의 정체를 ‘이상국가’의 원형으로 삼았을뿐더러 스파르타의 정체와 유사한 정치 체제는 지금까지 세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p 161

스파르타는 명령과 복종이 생명과 같았다. 시민 계급인 자신들을 먹여 살릴 농노 계급 메세니아의 헤일로테스를 완벽하게 노예화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복종하게 할 제도가 필요했다. 리쿠르고스는 일종의 비밀 조직을 만들어 내는데, 플라톤은 이를 ‘암행감찰’이라고 기록했다. 아고게에서 전사로 성장한 젊은이 중 가장 촉망받는 인재는 비밀 조직인 크립테이아의 일원으로 차출되었다. 그들의 임무는 헤일로테스 중 노예답지 않은 자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될 만한 떡잎부터 다른 싹을 찾아내 목을 베는 것이었다. p 167

소년 때부터 말하는 법을 따로 훈련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스파르타인들의 말은 함축적이다. 말을 짧게 하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짧은 표현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말하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몰론 라베(와서 가져가라!)’는 특별히 스파르타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말이며 레오니다스 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p 169
*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할 말만 하는’이라는 뜻의 라코닉laconic 이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


‘디스 이즈 스파르타!!!’ 를 알고는 있으나, 이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1도 몰랐던 나다. 하지만 이제 안다. 이 책 덕분에 나 쫌 지식+1 된듯?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지배자라 불리는 리쿠르고스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현인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 그가 스파르타 사회 전체를 병영으로 개조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디스 이즈 스파르타!!’가 시작된다.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땐 가혹하기 그지 없는 리쿠르고스가 만들어낸 체제가, 당시 사회상에선 충분히 가능하다못해 환영받던 체제인 것이다. 오히려 그 덕분에 스파르타는 더욱 강성해졌다. 이런 연장선에서 스파르타의 끝을 고하는 테모필레 전투가 나온다.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하여 벌어진 테모필레 전쟁.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300》의 배경이기도 하다.

레오니다스 왕과 선발된 300명의 스파르타인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스파르타인답게 긴 머리카락을 빗고 다듬으며 한가롭게 적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80년 7월 어느 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사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p 185

계곡은 전수 소리, 칼의 충돌, 부상자들의 외침으로 메아리 쳤다. 레오니다스도 칼을 들고 전선에 섰다. 레오니다스는 살아남은 그리스 병사에게 달아나 목숨을 건지라 하지만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사를 택한다. 그들은 가족, 땅,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위해 최후까지 싸웠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페르시아인의 진격을 지연시켰다. 아테네인들이 살라미스섬으로 대피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p 186


그리스 무지랭이 였던 나는, 이 책 덕분에 그리스 지식이 +1 되었다. 여기서 반전. 이 책은 1권이다. 고로 언젠가는 2권이 나온다는 것! 내 그리스 지식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얼른 2권을 읽어봐야 할텐데?! 으흠. 2권은 언제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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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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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본투비 역덕인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했다. 예컨데 이런거.


백 년 전 조상이 살던 세상부터 조선이 건국되던 오백 년 전, 피터지는 후삼국을 지나 고려가 건국되던 천 년 전,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 땅따먹기 하던 천 오백년 전, 더더더 거슬러 올라가서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까지. 내 조상들이 어떤식으로 문명을 이룩해나갔는지, 매번 궁금했고, 매번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점점 더 진화하여 내 조상, 내 땅을 떠나 ‘인류’ 역사로 이동해갔다.


포유강>영장목>사람상과(유인원과)>사람과>사람속. 인간이 속한 카테고리다. 인간은 ‘인류’, 즉 사람으로 특정되기 전까지, ‘유인원’이었고, ‘유인원’에 속해지기 전까진 ‘영장류’였다. 인간의 시작은 침팬지나 고릴라, 보노보 같은 영장류였다. 헌데 어쩌다 비슷한 동물들을 다 제끼고, 유일한 사람이 되었으며, 심지어 거대 문명을 이룩한 지구 최대 권력자가 되었을까?


이 책 『인간이 되다』는 바로 그 답을 찾는 여정이다.




인류의 여정, 문명의 역사. 이 책을 소개하는 키워드다. 키워드만 봤을 땐 『총,균,쇠』, 『사피엔스』, 『지리의힘』과 비슷한 내용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책 『인간이 되다』는 위 3권과 확연히 다르다. 비슷한면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르다. 왜? 관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 『인간이 되다』 는 말 그대로 ‘인간’을 다룬다. 물론 『사피엔스』도 인간을 다루긴 하지만, 그것과도 차별된다. 예컨데 『사피엔스』는 문과적 해석, 『인간이 되다』는 이과적 해석인 느낌 같달까? 고로 관점이 다르니, 진행되는 내용도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되다』가 더 내 취향인듯.




“협력은 우리 종의 초능력이며, 인류가 단지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서식지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인간이 되다』 p 025


이 책은 인류가 진화하고 문명을 일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발전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반응성 공격성이 감소한 것이며, 또 하나는 고도의 ‘협력’이 가능하도록 사회성이 발달한 것이다. 반응성 공격성 감소와 사회성 발달. 내 방식대로 생각해봤다.


반응성 공격성이 감소, 즉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누가 나를 때렸을 때, 즉각적으로 반격하는게 아니라 그 순간을 참아내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반격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계산과정에서 누군가와 ‘협력’ 했을 때, 더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협력을 위해 자연스레 ‘사회성’이 발달되었다.


간혹 다른 동물들도 ‘협력’을 하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유독 인간들이 고도의 협력을 할 수 있는 사회성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언어’ 사용이다.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소통이 수월해졌고,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집단을 이루다보니 의견이 다른 집단과 배척하기도 하고(때론 배척이 전쟁이 되기도), 서로를 견제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언어’ 사용은 인간의 사회성 발달을 떠나, 인류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우리는 큰 집단을 이루어 평화롭게 살기 위해 공격성 패턴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협력적이고 이타적으로 변했다. 협력과 이타성은 구별할 필요가 있는데, 이타성은 제공자가 손해를 감수하는 반면 받는 자에게는 이득이 돌아가지만, 협력은 쌍방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 하지만 인류사이에서 나타나는 협력의 규모는 지구상의 어느 종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문명 자체도 궁극적으로는 협력의 산물이다. p034


간접적 호혜성은 아주 정교한 형태의 인간 협력인데,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이 필요하다. 당사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을 목격한 목격자가 있어야하고, 당사자들의 행동에 관한 정보가 전체 집단의 공통 정보 풀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뒷담화를 해야한다. p 045


반응성 공격성이 감소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하고,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고도의 협력이 가능해졌다. 인류에게 주어진 이 능력으로 인류는 우리가 아는 역사를 쌓아올렸다. 집단을 이루고, 집단끼리 싸우고, 권력자가 나오고, 국가를 만들고, 제도가 만들어졌다. 때론 권력에 취한 독재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 역시 다른 인간들의 ‘협력’으로 독재자가 제거되고,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된다. 모든게 ‘협력’의 산물인 것이다.


특히나 이 ‘협력’이란 것이 말로는 쉬워보이지만, 절대로 쉽지않은 사회성의 결정체다. 다수가 협력해야 하는 일에 ‘에이 나 하나 쯤이야’ 라고 생각하는 무임승차자(또는 사기꾼)는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서로가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여부를 ‘계산’하며 사회성을 키우고 협력해온 사람들에게, 무임승차자 발생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런 재앙마저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또 다른 ‘협력’으로.


훨씬 크고 복잡한 사회에서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게 만들어 결국 문명의 탄생을 낳은 핵심 엔진은 무임승차자가 날뛰지 못하게 제어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 사이의 이타적 행동과 협력을 장려한 체계들이었는데, 이것들은 갈수록 점점 정교하게 발전해갔다. p 062




최재천 교수와 『지리의 힘』 저자 팀 마샬이 이 책을 강력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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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남진 - '원조 오빠'에서 '영원한 오빠'로
온테이블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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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책 취향과는 사뭇 다른, 정말 새로운 책을 읽었다. 근데 또 책 구성이나, 흐름 이런건 꽤나 익숙하다. 심지어 내 관심사 중 하나인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도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다르게 느낀건, 이 책 속 주인공 때문이다. 왜? 이 책 속 주인공은 내 세대보다는, 우리 엄마 세대가 좋아할 바로 그 사람! 오빠 부대 원조! 가수 ‘남진’ 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오빠, 남진』.


가수 남진의 음악 인생사는 대한민국 대중가요 음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요는 잘 안듣지만(?) 대중가요 음악사는 꽤 관심이 있는 편이다. 여기저기서 주어들은 잔지식도 꽤 있고. ‘역사’라는 범주 안에 있다면, 어떤 장르의 역사든 일단 파고 보는 습성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우리 전통 음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이전까지 왕을 위한 궁중음악과 중인 이상 지배층이 즐기던 가곡, 서민들의 잡가 등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는데, 신분제가 폐지되고 근대식 극장과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이런 구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판소리와 잡가에 능한 전문 소리꾼이 국왕에서 천민까지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대중매체가 등장했다. p 022


19세기에 이미 변화를 겪고 있었던 전통 음악은 우리 대중 음악이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외래 음악의 영향을 받은 전통 음악이 대중음악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민요풍의 창작 대중가요인 ‘신민요’다. 전통 음악 다음으로 대중음악에 영향을 준 것은 서양 음악이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교회 그리고 대한제국 군악대 등을 통해 도입된 서양 음악은 창가와 찬송가, 군가의 형태로 우리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쳤다. 그 뒤를 이은 일본 음악은 일본의 전통 음악이라기보다 ‘일본이 받아들인 서양 음악’에 가까웠다. 서양음악이 일본을 거쳐 우리 대중음악으로 정착한 셈이다. p 025


모름지기 대중음악이란 ‘대중’이 듣는 음악을 말한다. 고로 대한민국 대중음악은 대중이 존재하는 시기부터 시작한다. 그 시기가 언제인고 하면, 백년 전으로 훌쩍 올라가 신분제를 철폐한 갑오개혁까지 가야한다. 그 과정과 배경에는 청일전쟁과 조선에서 주도권을 빼앗고자 하는 일본의 흑심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갑오개혁으로 조선에서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물론 왕족 제외하고. 그렇게 이 땅에 대중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개화기. 일본을 시작으로 여러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다. 자연스럽게 외국의 음악도 조선으로 들어온다. 조선 땅에 있는 음악이라고는 궁중음악이나 판소리, 민요 등이 전부였으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러 장르의 노래가 동시다발적으로 조선 땅에 들어왔다. 백성이었으나, 이제는 대중이 된 개화기 조선 사람들. 그들은 조선에 들어온 외국 노래를 조선화 시키며 부르기 시작했다.


1. 신민요: 기존의 민요를 대중가요화한 장르로 작곡, 작사가가 따로 있다.

2. 트로트: 일본에서 유행하던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처음엔 일본 유행가 번안곡 형태로 시작했다.

3. 재즈송: 재즈, 팝성, 샹송, 라틴음악 등의 서양 대중 음악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로, 가사에 외래어를 섞어 쓰는 특징이다.

4. 만요: 미국 팝송에 재미난 가사를 붙인 일종의 코믹송. 대표적인 노래로 ‘유쾌한 시골 영감’, ‘오빠는 풍각쟁이’가 있다.


하지만 서슬퍼런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이 연이어 터진다. 개화기 때 한창 발전하던 한국 대중가요는 긴 기간 암흑기를 보냈다. 


일제 말기가 되면서 당국의 검열은 더욱 심해졌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노골적인 친일을 담은 군국가요 음반만 발매할 수 있었다. 심지어 빅타와 컬럼비아 같은 레코드 회사는 ‘적성 국가 언어로 된 이름’이라 하여 회사 명칭까지 바꿔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성장을 거듭하던 대중음악이 암흑기에 접어든 것이다. p 039 


1935년 발매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우리 민족의 현실을 담아낸 가사로 인해, 일본 경찰이 문제 삼았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음반사 측 기지로 풀려났고, 오히려 이 일화로 인해 더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는 그 노래! 목포 유달산에는 이를 기념하는 노래하는 비석까지 서있다. 그 목포에서 해방을 맞은 1945년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김남진. 무려 양반가문에, 재력까지 있던 집안의 늦둥이였다. 


해방 후 한국의 대중가요는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이난영(목포의 눈물)’을 시작으로 ‘현인(신라의 달밤)’, ‘한복남(빈대떡신사)’, ‘백난아(낭랑 십팔세’), 등 지금도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는 명곡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 명곡들은 발매된지 채 몇년 안되서, 묻히고 만다.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오며 전쟁이 시작되었기에. 바로 한국전쟁, 6.25 전쟁이다. 더욱이 한국전쟁 당시 많은 예술인이 월북(을 빙자한 납북)되었다. 일제강점기 못지 않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암흑기였다.


한국전쟁이 끝났다. 그와 함께 대한민국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미군이 주둔하자, 자연스레 팝송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소년 김남진을 사로잡은 팝송의 유행은 한국전쟁 때 한반도로 온 미군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쟁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원판 LP들은 기지촌 주변과 양키 시장에서 유통된 것이다. 1957년 첫 방송을 시작한 AFKN(주한 미군 방송)도 한몫했다. p 058


해방둥이로 태어났던 김남진은, 팝송을 즐겨 듣는 청소년이 되었다. 그렇게 팝송에 푹 빠진 김남진. 그때까지만해도 철부지 김남진은, 자기 인생이 대중음악과 한 몸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극장 쇼는 악극에 신파, 코미디, 국악, 가요, 팝송, 미술까지 망라한 종합 엔터테인먼트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팝송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당연이 국악이나 트로트보다 팝송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했죠. 그래서 쟈니리나 정원, 김상국 같은 분들이 나온다고 하면 학교를 빼먹고라도 꼭 보러 갔어요. 『오빠, 남진』 中


미8군쇼와 미국 대중음악의 유행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팝송스타일의 가요가 주름잡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노래로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 현미의 ‘밤안개’, 정훈희 ‘안개’등이 있다. 이렇게 팝송 스타일의 가요가 유행한 건 미군 주둔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내적으로 보면 미군에 잘보여야 할 군부독재 정권의 묵인도 한몫했다. 


이때 한창 유행했던게 바로 ‘미8군쇼’다. 미8군쇼에 얼굴을 비치고, 노래를 부르면 바로 인기가수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미8군쇼에서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긋는 존경받는 가수가 되었다. 당시 인기가 어느정도였나면, 당시 수많은 음악학원 중 미8군 무대 진출을 위한 음악학원도 있을 정도였다. 


청소년 김남진도 이때 음악학원에 들어갔다. 유명 작곡가 한동훈이 세운 한동훈 음악학원에.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거다. 청소년 김남진은 요즘말로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팝송을 부르는 그의 실력이 꽤나 좋았다는 이야기다. 


난 진짜 그때 앨범만 나오면 인기 스타가 될 줄 알았어요.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언론사를 통해 기사화까지 예정되어 있었으니 더욱 그랬죠. 앨범이 나오고 기사가 뜨면 방송국에서 내 노래를 틀어댈테니, 인기가수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오빠, 남진』 中


‘최희준 모창 가수’라고 할 정도로 스타일을 따라한 음악적 한계, 방송계에 촌지를 돌리는게 관행이었으나 이를 몰랐던 신인가수 남진과 고지식했던 작곡가 한동훈. 그렇게 가수 남진의 데뷔곡 ‘서울 푸레이보이’는 대실패했다. 하지만 이 실패는 가수 남진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그때 제일 인기 있던 라디오가 동아방송이었는데, 아는 사람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어요. 지금도 이름을 잊어버리질 않아. 강수향 음악부장님이라고, 원래 테너 가수였는데 은퇴하고 방송국에서 음악 방송 총책임자로 일하고 했었어요. 무턱대고 그분을 찾아가서 앨범을 드리며 인사를 했지.


6개월즘이 지나가 여기저기 다른 방송국에서도 내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MBC, KBS, 동양방송, 기독교방송까지 모두 다요. 심지어 하루에 네댓 번까지도 방송을 탔어요. 정말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죠. 『오빠, 남진』 中


금지곡 지정. 검열이라는 명목하에 금지, 통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유신독재시절이다. 금지 사유야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자 마음에 안들면 바로 금지가 되어버리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남진이 부른 ‘연애 0번지’는 금지곡이 되었다. 여기서 반전. 남진이 부르기 싫었던, 어쩔수 없이 불렀던 트로트 ‘울려고 내가 왔나’가 인기를 타기 시작했다. 요즘말로 순위 역주행!



그때 기분을 지금도 잊지를 못해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디다. 애당초 부를 생각이 없었던 곡인데 작곡가가 술에 취해서 하기 싫은 걸 할 수 없이 불렀고, 다행히 다른 노래가 인기를 끌다가 금지곡이 되어버렸고, 어머지가 이 노래 좋다고 해서 방송국에 부탁할 때도 이게 터질 거란 생각은 한 번도 안했어요. 근데 그해 우리나라 가요를 통틀어서 최고 히트곡이 바로 ‘울려고 내가 왔나’였어요.

『오빠, 남진』 中



또 금지곡 지정.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대중들에게 가수 ‘남진’이라는 이름을 깊이 새겼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가수 남진의 음악인생은, 굴곡진 우리나라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대중음악사 지식은 해방이전 근대사에 한했다. 하지만 이 책 『오빠 남진』 덕분에 그 범위가 넓어졌다. 더해서 엄마들이 왜 가수 ‘남진’에 열광하는 지까지!


이 책은 고스란히 우리 엄마님께 상납하고 효도하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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