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일사 - 부산 선비, 근대 일본을 목격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1
박상식 지음, 부산박물관 옮김 / 서해문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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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조들이 남긴 글을 읽으려고 서해문집 오래된 책방시리즈를 꽤 많이 구입했다. 원래 시리즈를 계속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앞서 읽었던 발해고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 권, 두 권, 기존에 읽고 싶었던 고전을 몇개 골라내다보니 어느새 9권이나 구매. 이럴 바엔 그냥 시리즈 1권부터 하나씩 살껄 그랬나 후회가 들긴하지만... 이게 또 몇 몇 고전은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가지고 있거나, 읽어 본 것도 있는지라 참 애매하다.

 

이 책, 동도일사는 서세강점의 시기. 조선이 일본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에 쓰여진 글이다. 정확히는 당시 부산에 살던 선비 박상식이 제2차 수신사 사행원으로써, 근대 일본을 방문 한 뒤 남긴 일종의 일기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적인 일기라고 말하기에는 또 어렵다. 어찌보면 이 책은 일기이기 이전에, 수신사행에 대한 업무 보고서 같기도 하다. 이 책 동도일사의 구성을 보면 이렇다. 1부는 박상식 본인의 사행일기, 2부는 정사 김홍집과 일본 외무성 관료와 주고 받은 문답, 3부는 수신사 관련 공문이다. 1부는 본인 일기, 2-3부는 사행원이자 일종의 속기사로써 받아적은 공적인 업무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일본으로 수신사를 보냄)

 

이 책을 한글로 국역한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제2차 수신사 관련 연구는 수신사행등록, 수신사기록, 동문휘고, 왜사일기, 김홍집유고등을 기본 사료로 활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 동도일사에는 앞서 언급한 기본사료에는 없는 기록들이 상당부분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료적 가치가 큰 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학계의 주목은 커녕 존재 자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뭐 그것과 별개로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지점이 여럿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많닸다. 강화도 조약이 어떤 조약인지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조선의 위정자들은 세계사적으로 조선의 위치가 어땠는지를 알지 못했고, 본인들이 얼마나 함몰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중화사상에 찌들어있었다. 조선보다 먼저 개항하여 변화와 개혁을 한 근대 일본을 눈 앞에 두고도 그들을 업신여겼다. 오히려 일본에서 만난 청나라 사람들을 동포 만나듯 했고, 그럼에도 청나라 사람들이 대 명나라의 사람에 비해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명나라를 이어가는 소중화였기에, 실제 조선이라는 나라는 빈껍데기였다. ‘소중화그 안에 함몰되어 있으며 빗장을 꽁꽁 걸어닫고 있었기에, 외세가 침범해도 그 속뜻을 이해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중화라고 정신승리에 취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기울어져가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게 당시 조선의 위정자였다.

 

2차 수신사 김홍집을 비롯하여 사행원들이 만난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몇몇 나오는데, 적어도 좋은 의미로 아는 인물은 아니다. 일단 전부 메이지 시대의 인물이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당시에 다들 한 끝발 하던, 혹은 관련 업무를 하던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리는 인물이 두명 있으니 이토 히로부미오쿠라 기하치로. 경술국치 이후 초대 조선통감 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우리나라 문화재란 문화재는 일본으로 무단반출한 오구라 콜렉션을 알린 오쿠라 기하치로. 이런 사람들은 2차 수신사들은 반갑게 맞이했다. 어쩌면 강화도 조약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이때 우리 선조들은 세상물정을 몰랐고, 너무나 순진했다.

 

2차 수신사들에게 이토 히로부미나 오쿠라 기하치로 등은 그저 조선에서 온 사행원을 위해 찾아온, 정성을 보여준 일본인 손님에 불과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순조 때 까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행은 꾸준히 있었다. 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낼 당시 조선의 위치는 일본보다 위, 그러니까 우리가 너네 나라의 격을 높여주기 위해 특별히 통신사를 보내주겠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적어도 조선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은 자국 내에서 조선이 일본 막부에 조공을 하는 사절이라고 했으며, 일본이 유일하게 교류한 서양 네덜란드에도 조선을 일본의 종속국이라 했다. 조선만 몰랐을 뿐이다. , 뒤가 달랐던 일본을 봐왔고 임진/정유재란이라는 전쟁의 참상까지 겪었는데도, 또 당한거다. 조선은 그저 우리의 높은 문물을 일본에 전달해준다고 생각했을 그 뿐이었다.

 

통신사 교류 중단도 일본에서 먼저 요청했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빼먹을 기술은 다 빼먹었고, 어느 시점부터 조선보다 일본의 기술이 낫다는 것을 깨달은 뒤였다. 그 때가 조선 순조 때다. 조선에서는 세도정치가 판을 쳤던, 조선의 발전시계를 200년 정도 후퇴하게 만들었다는 바로 그 때다. 바로 이때 조선은 퇴보했고, 일본은 발전했다. 이후 얼마 안가서 일본은 조선을 찾아와 문호개방을 요구하니, 최초의 근대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인 강화도 조약이다.

 

강화도 조약을 맺은 후 답방 겸 재개된 게 수신사인데, 앞선 통신사와는 차별점을 둬야 하기에 부르는 명칭도 수신사로 바뀐 것이며 그 이동경로도 달라진것이다. 달라지지 않은 거라고는 일본은 조선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통신사의 마음과, 수신사의 마음이랄까.

 

이 책의 저자 박상식이 참가한 제2차 수신사 사행원 명단을 보면 낯 익은 이름있었다. 조선책략을 가지고 왔으며 당시 쓰러져 가는 조선을 개혁하려 했던 김홍집, 얼마전 광주공원에서 만난 친일파 윤웅렬, 그리고 종두법의 지석영. 특히 지석영은...진짜 그 종두법의 지석영이 맞나 잠깐 고민했는데, 아주 친절하게도 책 말미에 그 지석영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답답했던 점이 정말 많았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당시 수신사 정사였던 김홍집이 늦게나마 국제정세에 눈을 떴다는 점이다. 문호 개방, 부국강병, 근대화에 필요성을 깨달았기에 이 때 그 유명한 조선책략을 조선에 가지고 온 것이다. 물론 이 책을 가져와서, 조선의 위정자들이 얼마나 동조를 했느냐?를 이야기 한다면, 거기서 끝이라는게 아쉽긴 하다. 당시 조선의 왕과 고위관리들은 그저 자기들의 재산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 급급했고, 그를 위한 정치를 했으니까. 말이 근대화 개혁이지 정말 백성을 위한 근대화 개혁이었나? 라고 들춰보면, 어디까지나 황제를 위한 개혁이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유독 욱했던 부분들이 <2, 정사 김홍집과 일본 외무성 관료들의 문답>에 참 많이 있었다. 조선 후기의 외교능력이 얼마나 덜떨어졌는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불통에 유연함이 없었는지. 일부만 발췌 해본다.

 

-요시카와: 병사의 기숙사와 기국은 볼 것이 많은데 여행기간이 이처럼 촉박한가?

-김홍집: 종전 통신사의 행차는 이보다 더 되지 않았다. 또한 병학과 기계는 이 사신이 어수룩해서 평소에 아는 바가 없어서 보더라도 도움될 것이 없다.

 

-우에노: 신문을 보니 귀국 신사가 글씨를 잘 쓴다는 데 본 받을 글씨를 주시기 바란다.

-김홍집: 본 신사는 글씨 쓸 줄 몰라 귀국에 들어왔을 때도 붓을 잡은 적이 없다. 혹 사행원 중에 글씨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게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우에노: 아니다. 신문에서 전한 것은 부산에서 온 사람이다. 들으니 귀국신사는 문망이 있다고 했다.

-김홍집: 이것은 혹 잘못 전해진 것이다. 대단히 부끄럽다.

 

-우에노: 우리 나라는 요즈음 부강해지는 기술을 모두 터득했다. 귀국도 부강해지기를 원하는 만큼 상무가 왕성하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요즈음 세계의 형세가 일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순치의 도움이 있어야 하니, 귀국과 함께 동심동력으로 군무나 기계 등 어느 곳이나 서로 이끌어 구라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김홍집: 귀국의 왕성한 의욕이 이러하고 우리나라와 우리 정부에 일찍 알게 해 주어 감사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강토가 한구석에 있고 서쪽에는 청국 동쪽에는 귀국이 있는데 그 밖의 다른 나라는 처음부터 경계를 접하지 않고 왕래도 없으므로 조야(조정과 민간)의 인심이 옛 규정만 지키니 오늘날의 사세가 실행하기 쉽지 않은 바가 있다.

 

-이노우에: 이 자리의 대서기는 어제 독일에서 돌아왔는데 이탈리아 지방에서 러시아 해군경을 만나 같은 배를 타고 중국 상해 땅에 와서 길이 갈렸는데 앞으로 연료를 싣고 다시 나가사키 섬으로 온다고 한다. 배 안에서 그의 동정을 살피니 걱정이 되어 대단히 조급했는데 중국 일이 다행이 잘 끝나 빨리 떠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중략) 이 때 귀국 병력은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러시아 사람이 이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걱정이 다시 절박해질 터이니 이를 어쩌겠는가?

-김홍집: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국경은 상접해 있을지라도 서로 통상하지 않고 오직 귀국에게만 친목하므로 유사시에는 서로 보호해주기 바란다.

 

-이노우에: 각하가 돌아가 보고할 지라도 조정에서는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충고하지 않을 수 있나? 서양 각국은 먼저 수호하기만 바랄뿐이지 서둘러서 반드시 통상을 하려 하지 않는다. 현재 귀국의 계획을 보건대 병사와 기계는 배울 필요가 없고 오직 빨리 몇 사람을 파견해 이곳에 와 머무는 동안 각국의 교제 사정을 상세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니 허술하게 듣지 마시기 바란다. 만약 위험에서 안전하게 회복하고 재해에서 유리해진 뒤에도 성의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다시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외교력도 꽝이었고, 정보력도 꽝이었으며, 보고 듣고 배울 마음 조차 없었다. 오죽 답답하면 일본 외무공사가 각국의 교제 사정을 상세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니-” 라는 이야기 까지 할까 싶었다. 일본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수신사 일행은 때 되면, 조선에 있는 왕을 향하여 망궐례, 진하례를 챙겼다는게 함정이다.

 

만약 근대일본을 보고 온 이들이, 근대일본을 보고 온 이들의 보고서를 본 조선의 위정자들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난 이 책을 읽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수신사를 보냄으로써 근대 일본을 본 조선이, 우물 안에서 벗어나 우리 식으로 근대화를 수용하는 등 개혁을 하여 그들과 동등하게 혹은 그들보다 더 우위로 갔다면. 적어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게 했다면, 나는 이 책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읽었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일제강점기라는 역사가 어떻게 해도 변경되지 않을 고정적인 시점이라면, 적어도 조선이 당시 세계 각국에 대한 정세를 알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자기들 안위 때문이 아닌, 어떻게든 조선이라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조선이라는 땅에서 살고 있는 수 많은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하려고 했다면 역시나 나는 이 책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읽었을 거고, 당시 우리 조상들을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눈으로 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읽을 수록 씁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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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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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받았을 땐 조금 당황했다. 다름 아닌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한 0ZERO제목 때문에. 보통 제목을 보면 소설의 장르가 유추가 되는데, 이 책은 제목만 보았을 때는 대체 무슨 장르인가, 약간 해멨다. 숫자 0, 제로.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다는 뜻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유추가 안되서 책장을 넘겼다.

 

첫 장에 나온 문구는 프랑스 시인 랭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뮤지컬 랭보를 봤어야 했을까 ㅠㅠ. 책 첫 장에 나오는 시는 분명 이 책을 관통하는 그 무언가를 담고 있을 건데, 난 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아, 뭔가 철학적이고 이 책에서 말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읽기 전에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유추하는 건 내 능력 밖인지라,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소설이다. 오롯이 책 속 주인공 의 관점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는 한마디로 영악하다. 타인의 행동을, 분위기를 재빠르게 읽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알게 모르게 조정한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재물로 사용하는 거다. 가족, 친구, 애인, 동료모든 사람들의 의 재물이었다.

 

또한 는 본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기의 강점이 무엇인지,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한다. 그 강점을 부각 시키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을 하는 를 나는 비난할 수 없다. 그녀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쯤 생각해보았을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_P 046

 

누군가 나에게 성공한 식인종으로서, 예비 식인종들에게 해줄 말, 나누어줄 지혜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하하! 솔직히, 사람을 잡아먹는 데 지혜 따위 필요 없죠. 그리고 식인종이 뭐 특출난 종족이 아니다.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무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_P 055

 

주인공 는 주변인물들을 잡아먹으며 자기 세상을 공고히 했다. 특히 소설 1부에서는 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묘하게 자기 생각에 거슬리는 그 누군가를 타겟으로 정한다. 그리고 살금살금, 타겟이 알아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그들을 좀먹는다. 그런식으로 는 자기 세상을, 자기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이 모습을 우리는 욕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밟고 올라왔는지 생각을 해보자. 본인은 더할나위 없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파멸시켰다거나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하다못해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시기/질투 하고, 그 아이가 잘 못 되기를 바란적은 없는지 그저 그런 나쁜 생각들 말이다. 우리는 그저 이런 나쁜 생각들을 그저 생각으로 머무르게 했다면, 주인공 는 이러한 생각을 그저 실행한거다. 자기의 강점을 보다 드러내고, 약점을 보완하며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내 말은, 아돌프 히틀러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부자나 카사노바가 되라는 뜻도 아니다. 그저 아주 평범한 수준에서, 아주, 소박한 수준에서의 삶의 안락함과 편리함, 매일매일의 안전과 기쁨에 대해서 나는 말하고 있다. 알다시피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별다른 큰 욕심도, 대단한 야심도 없다. 나는 오직 지금과 같은 수준의 안락함,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삶, 그 안의 행복을 바란다. 그것이 나쁜 바람인가? ?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요구다. 바로 그런 상식적인 수준의 인생을 위해서 이따금 타인들을 사용하는 것을 겁내지 말라는 것이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_P 101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_P 120

 

2부에서는 에게 잡아먹힌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묻는다, 나에게 왜 그랬느냐고. ‘에게 잡아먹힌 의 엄마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아주 위험한 짐승이란걸 알았지만, 내 딸이라서 받아들일 수 없었노라고. 결국 그들은 척발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본인보다 강했던 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용한 장기 말중 하나에 그쳤다. ‘에게 그들은 관계로써 연결된 게 아닌, 이 척박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소모품이었다.

 

나는 앞으로 아주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내 인생은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하여, 세간의 소문과 달리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는 것.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있다. _ P 187

 


주인공 가 살아가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매일 매일 뒤에서 누군가를 욕하고, 앞에서는 웃는 세상. 나에게 그 어떤 부정적인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온라인 세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악플을 달고 욕하는 세상.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수 많은 타인을, 재물로써 밟고 올라서야 하는 폭력적인 세상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찜찜하다. 우리들이 한번 쯤은 했을 법한 나쁜 생각들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를 보며,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살아가는 를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영악하게 살지 못하고 호구처럼 살지?라고 반문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슬펐다. 이렇게 살아야만, 세상에서 살아남는 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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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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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부제 하에 7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가 바로 그 7개 사찰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유홍준 교수는 기존에 책으로 발표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소개했던 산사 20여 곳을 따로 한 권으로 엮어서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만 여기서 함정은 이 책에 나와있는 사찰 20여 곳 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산사는 대흥사, 부석사, 선암사, 봉정사 네 곳이다. 그 외 사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산사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찰들에 대해 실려있다.

 

책에 실려있는 사찰은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와 개암사,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 부여 무량사와 보령 성주사터, 문경 봉암사, 청도 운문사, 창녕 관룡사, 구례 연곡사, 영암 도갑사와 강진 무위사 및 백련사, 정선 정암사, 묘향산 보현사, 금강산 표훈사로 총 22곳 이다. 이런 걸 보면 또.. 나는 어디어디 가보았나 따져보기 마련인지라, 세어보니 몇 군데 안되었다. 아직까지 해당 지역 여행을 못가서가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해당 지역은 갔으나 더 보고 싶은 다른 것을 보느라 못 갔다. 크흡 과거의 나를 반성할 시간....

 

책 리뷰를 하며 전체적인 내용의 감상을 적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냥 내가 갔던 사찰, 그 중에서도 내 마음에 여운을 남겼던 영주 부석사 한 곳에 대한 답사기를 써보려한다.

 

그나마 갔던 곳 중 한 곳인 영주 부석사. 집에서 새벽같이 나와서 아침 일찍 영주 부석사에 도착했었다. 일주문을 지나 부석사로 오르는 그 길은 너무 빼곡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듬성듬성하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으로 은행나무가 심어져있는 가로수 길이었다. 거기에 조금은 경사가 있었던 비탈길. 유홍준 교수님처럼 노란 은행나무잎이 떨어지는 가을은 아니었지만, 봄의 싱그러움을 담은 초록 은행나무잎은 그것대로 좋았다.

 

그렇게 길을 오르다 천왕문 근처에 다다르면 보물로 등재된 부석사 당간지주가 있다. 당간지주가 크고 높을 수록, 그 옛날 이 사찰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데 부석사 당간지주가 바로 그랬다. 무엇보다 이 때는 한창 관통사 자격시험 준비를 하던 때라 사찰에 대한 지식도 달달달 외우고 있었던 상황. 과거에 내가 부석사의 당간지주를 봤다면 아 돌기둥!’이러고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이 때의 나는 부석사의 당간지주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기둥에 걸렸을 당(깃발)은 얼마나 멋졌을까?’. 이래서 사람은 뭘 보든 알고 봐야 한다는 것!

 

천왕문과 안양루를 지나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에 다다랐다. 옛날에는 사찰의 법당은 당연히 대웅전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공부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조금은 놀랐더랬다. 사찰별로 법당 모시는 부처님이 각기 다른데, 어떤 부처님이냐에 따라, 법당 이름이 달랐다. 이를 알게된 건 역시나 관통사 공부를 하면서였는데, 정말 이 때 공부했던 내용 중 내 기준 제일 유익한 내용이 바로 사찰과 관련된 지식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모시는 부처님은 서방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이다. 내가 배운 그대로다. 그런데 아주 가끔가다가, 여러 지역의 사찰을 다녀보면 법당의 이름과 그 곳에서 보시는 본존불이 안맞는 경우가 있다.

 

"샌님여, 운문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불상은 비로자나불 맞지예?"

"그렇지. 지권인을 하고 있으니 비로자나불이지."

"그란데 와 대웅보전이라 캅니까? 대웅보전에는 석가모지 모셔진다고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습지. 조선 후기 들어서면 스님들이 계율보다 참선을 중시한다고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 했어요. 그 바람에 저렇게 잘못된 것이 많아요. 굳이 해석하자면 본래는 석가모지 집인데 비로자나불이 전세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될까 보다." _ P 269

 

왜 이 법당에 다른 부처님이 모셔진 걸까? 에 대한 나의 의문이 바로 이 책에서 풀렸다. 그것도 너무 간단해서 허탈할 지경. 뭐 어쩌겠나, 옛 사람들이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 한다고 저리 한걸, 이제와서 요즘 사람들이 다시 원래 부처님으로 들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흠흠. 법당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센 느낌이긴 한데, 뭐 그렇다.

 

부석사에는 위에 언급한 법당들과는 전혀 다른 조그만 전각(이라고 하는게 맞나..)이 있는데, 바로 선묘각이다.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곳은 부석사의 이름 부석,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정말 큰 연관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절친 의상과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가는 길에 올랐는데, 원효는 그 유명한 해골물일화로 유학가는 길을 때려친다. 의상은 그대로 유학길에 올랐다. 바다 건너 등주에 도착한 의상은 한 신도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선묘라는 딸이 있었다. 이 선묘가 의상대사에가 천 눈에 반해버렸다. 이후 의상은 귀국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났는데, 의상을 흠모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지며 의상을 지키는 수호 용이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의상은 좋은 터에 절을 창건하려 하였으나, 사교 무리가 이를 방해하니, 용 한마리가 나타나 큰 바위를 들고 사교들을 위협했다. 그 모습에 깜짝 노란 사교들이 도망가니, 의상이 비로소 절을 창건하였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영주 부석사다.

 

! 용이 된 선묘가 들었던 큰 바위는 무량수전 왼편에 남아있다. 이 바위에 신묘한 기운(?)이 남아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위 틈새 틈새에 동전을 붙이기 위에 안간힘을 쓰고, 동전이 붙으면 기도를 드리길래 나 역시 세속적인 기도를 드리고 왔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석사는 딱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부석사에는 나로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둘 있다. 하나는 석룡이다. 절 스님들이 대대로 전하기로 무량수전 아미타여래상 대좌 아래는 용의 머리가 받치고 그 몸체는 자로 꿈틀거리며 법당 앞 석등까지 뻗친 석룡이 있따는 것이다. 이것은 사찰 자산대장에도 나와 있고 일제시대에 보수할 때 법당 앞 마당을 파면서 용의 비늘 같은 조각까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때 용의 허리 부분이 절단된 것을 확인하여 일본인 기술자에게 보수를 요구했으나 그는 완강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것이 선묘화룡의 전설과 연결되는 것인지 지맥에 의한 건물배치의 뜻이 과장된 것인지, 그것은 모르겠다. P _046

 

석룡이라니. 나도 분명 무량수전 아미타여래상을 보았는데, 대좌 아래 용의 머리가 있었다니! 심지어 그 용이 법당 앞 석등까지 뻗쳤다니!! 당장이라도 땅 파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이지만, 이런 이야기는 오히려 전설로 남겨야 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이라도 진짜 땅을 팠는데 없으면 ... 그야말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알고보니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가 발원했이야기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테니까 ㅠㅠ

 

책 덕분에 영주 부석사를 다녀왔던 좋은 추억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어서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되었던 유홍준 교수님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늘상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대상이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 학생처럼 나무 하나는 괜찮다라고 실수 없이 간취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미라는 인공적 아름다움과 문화미라는 정신적 가치는 그 나름의 훈련과 지식 없이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아는 만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_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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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지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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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어린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는 1인 크리에이터 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유튜버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힘든 조직생활, 회사생활을 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게 첫 번째요, 동영상만 올리는 것 뿐인데 그 것만으로 수익이 생긴다는 이유가 두 번째요, 유명 크리에이티브는 너무 쉽게 tv 여러매체를 타고 유명인이 될 수 있는게 세 번째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유튜버의 고충을 모른 채, 그저 멋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내뱉는 말이다.

 

나 역시 유튜버의 고충은 1도 모른 채 그저, 유명한 1인 유튜버를 부러워했고 나는 왜 유튜버를 하지 않았나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하지만 조금씩 유튜버 실상을 접하면서, 차라리 안하길 잘헀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자기 위로중일 뿐이지만 ㅠㅠㅠㅋㅋ 부러우면 지는거니까 ㅠㅠㅠㅠ). 이래저래 어린 아이들 뿐만아니라, 다 큰 성인들에게도 유튜버는 그저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내가 유튜브를 자주 보느냐? 그건 또 아니다. 고작 나영석PD 채널과 (내 사랑 우주대스타)펭수TV 딱 두 개만 본다. 그나마도 펭수에 빠지기 전에는 나PD채널 한 개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사랑한다는 것 치고 나는 썩 유튜브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던 거다. 그저 유튜버로써 수익을 내는 것에 무한한 관심과 부러움이 있었을 뿐. 아마 한 동안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했어서,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라면 난 아직 아날로그적이라 그런건지는 몰라도, 영상을 보는 것 보다 문자를 읽는 게 좋다. 그래서 책이 좋고, 박물관이나 사적지에서도 안내판 읽는 것이 좋다. 그냥 그렇다.

 

이 책의 저자, 여행 유튜버 원지. 그녀가 유튜버로 얼만큼 수익을 벌고 있는 지 나는 잘 모른다. 유튜브를 잘 안보기에 그녀가 어떤 동영상을 올리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고, 그녀가 얼마나 핫한 유튜버인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좋았다. 혹시라도 사전에 그녀에 대한 정보가 있거나, 그녀가 올린 동영상을 보았더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 대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떠한 종류의 편견을 가졌을지도 모르니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명실공히 흙수저였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집안 곳곳에 붙은 빨간딱지, 내쫓기듯 집을 나와 정착한 곳은 내 방도 없고, 제대로 된 화장실 하나 없는 그런 곳.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런 경험들을 줄줄이 겪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꾹 참고 성인이 되었으며, 꿋꿋하고 열씸히 살아온 보상이었는지 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부터 그녀는 떠나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그 곳, 오지라고 알려진 아프리카’.

 

이제 갓 성인이 된 어린 소녀가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으로 옮긴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가진 것이 풍족하지 않은 그 나이 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여기서 이원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여행 유튜버로써 우뚝 서게 되었는지, 조금은 깨달았다.

 

분명 누가봐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고, 당시에는 아프리카 라는 지역에 대해 정보조차도 없었다. 이런 난관을 기어이 깨치고 나왔다. 나라면 진작에 주저앉았을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고도,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난거다. 무서우리만치 하나에 집중하고, 그 하나를 위해 달려가는 그 모습 솔직히 부러웠다. 나는 무언가 하기 위해 이 정도로 끊임없이 달려가 본 적이 있었나?암만 곰곰히 생각해도 없다. 이런 모습이 바로 지금의 여행유튜버 원지를 만들어냈나보다.

 

아프리카 90일 배낭여행 이후 한국 복귀, 일상 속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그렇듯 회사에 취업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도대체 왜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모두가 따라야 하는가. 이것이 조직 생활이라면 사양하고 싶었다. 평일 저녁은 그렇다 쳐도 주말 중 단 하루 쉬는 것이 이렇게 어렵나. 이때의 나는 주머니 사정도 건강도 정신도 모든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느 때 처럼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현관에 엎드려 엉엉 소리내 서럽게 울었버렸다. P_ 156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그나마도 지금은 워라밸이다, 52시간 법정근로시간이다 뭐다 해서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생활은 고되다. 나만의 업무 스타일이 있지만 언제나 상사의 스타일을 따라가야 하고, 내 일을 다 끝내고 퇴근하려고 하지만 상사가 퇴근을 안하면 괜시리 눈치를 한 번 더 보게 되는게 조직생활이다. , 조금 울고 싶.............ㅠㅠㅠㅠㅠ 나는 이 조직생활을 때려칠 용기가 없어서 벌써 10년 째 하고 있다. 하지만 원지는 역시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정신으로 과감히 퇴사 ... 후 물론 힘든시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때 유튜브를 시작해서 소소하게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물론 이후로 그녀에겐 여러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은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며 느낀 건, 그녀의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 여행 유튜버 원지가 존재하는게 아닐까 싶다는 것. 물론 그녀에게 타이밍과 운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 운 조차도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천운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녀가 실패를 거듭하며 쌓아 놓은 경험이 긍정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타이밍과 운도 그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난 실패를 두려워 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시작하지 못했고 도전하지도 못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도전해봐?’ 라는 생각도 잠깐 들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나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도전하기엔, 그 도전으로 인해 잃어버릴 그 무언가가 먼저 떠오른다. 난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한 비겁한 사람이다.

 

, 이 책에는 초보 유튜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도도 실려있다. 유튜브를 시작하려면 처음 1년은 수익은 생각하지 말고, 일단 꾸준이 영상을 찍고 올려보라는게 유튜버 원지의 이야기.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오롯이 본인의 경험이 바탕이다.

 

이 에세이는 분명 여행 유튜버 원지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저 유튜브를 어떻게 시작 해야하는 가?’같은 뻔한 이야기가 아닌,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 수 많은 실패가 불러온 긍정적인 타이밍과 운,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행력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 꼭 나같은 (ㅠㅠㅠ) 사람들이 읽어보아야 할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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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나라 역사를 따라서 한국을 찾아 걷다 - 일본 아스카.나라에 남아 있는 한민족 문화유산 탐방기
김홍수 지음 / 북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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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지라 관련 책을 더러 읽었다. 올 봄에는 규슈 역사를 따라서 한국을 찾아 걷다라는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저자 김홍수님은 앞으로도 일본 여러 지역을 답사하며, 도래인의 흔적을 찾아다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2권 격인 아스카,나라 역사를 따라서 한국을 찾아 걷다가 나왔다. 1권을 샀으니, 2권도 사는 건 인지상정이기에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 책장에 묵혀놓다가 (ㅋㅋㅋ) 얼마전에야 읽었다.

 

앞선 1권에서 다뤘던 규슈에도 도래인의 흔적은 많지만, 그럼에도 도래인의 흔적을 찾기에는 긴키지방(교토, 오사카, 나라, 와카야먀 등)만큼 많은 곳이 없다. 긴키지방이란 옛 기나이(흔히 말하는 수도권)에 가까운 지역라는 뜻인데, 일본 고대사에서 기나이 즉, 수도권은 일본 천황이 살던 곳이다. 헌데, , 도래인의 흔적을 찾는데 일본의 수도권이 나오는건가? 싶을 수 있다. 이게 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위치는 언제나 권력자 측근이었다. 정치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교육 등 각종 기술에서도 넘나 뛰어나다보니, 일본 고대 건축,유물에서 도래인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게 바로 한국을 대할 때, 일본이 가지고 있는 고대사 콤플렉스다. 하하..하하하..하하..

 

자 그럼 일본의 수도(?)의 역사를 보자. 각 시대별로 아스카 오사카(나니와쿄, 645~) 나라(헤이죠쿄, 710~) 교토(나카오카쿄헤이안쿄, 784794~) 도쿄(1869~)’ 로 이루어진다(쿄는 대충 수도를 말한다). 도쿄를 제외하면 지금은 칸사이 지방이라고 불리는 지역들이자,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제일 많이 찾는 핫했던 일본 관광지이기도 하다. 덧붙여 말하면 이들 지역에서 수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사찰들은 99.9%가 도래인 내지는 도래인 후손들이 만들었다. 다만 이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게 함정.

 

이 책은 아스카, 나라에 한정한 답사기다. 교토까지 넣기에는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할 테니, 아마 교토는 3편으로 나오지 않을까 한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1192년 최초의 막부, 가마쿠라 정권이 시작되면서 권력은 천황이 아닌 막부로 넘어간다. 그 즈음부터 일본 정치에서 내노라 하던 도래씨족들의 이야기도 많이 사라졌다는게 함정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천황/일왕 표현에 대해서 메이지일왕을 기준으로 그 전까지는 천황, 메이지 부터는 일왕으로 표현)

 

목차를 보고 기대감 뿜뿜. 참 이상한게, 나름 도래문화 관련 서적을 많이 봤다고 봤는데, 아스카/나라 쪽 역사는 금새 까먹는다. 반면 교토쪽 역사는 머리속에 계속 남아있다. 아무래도 직접 보고 안보고의 차이인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ㅠㅠ. 애초에 내 일본 여행은 한일고대사&한일근대사를 주제로만 다녔는데, 지역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교토 내지는 도쿄. 몇번을 가도가도 자꾸 가봐야 할 답사지가 너무 많아서 아스카, 나라 지역은 발도 못디뎠다. 덕분에 아무리 책을 읽어도 머리속에 남지 않는 사태가 발생.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아스나, 나라지역 한일 고대사를 더 열씸히 읽고 있는데..왜 기억에 남지를 않는건가 !!!!!!!!!!!!!!!!!

 

1979년 차 밭을 개간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어 묘실 안의 유골 및 진주와 함께 동판으로 만든 묘지가 발견되었다. 그 묘지에 오오노 야스마로(고사기 편찬자)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는데 그가 지금의 JR나라역의 서쪽에 살았다는 것과 723년에 사망하였음이 기록돼 있어서 실재의 인물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일본 내에서 큰 충격을 준 발견이었다. _P 022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 고사기는 일본서기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서다. 물론 그 진위여부는 둘째치고 말이다. 다만 고사기 편찬자로 알려진 오오노 야스마로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편은 아니었는데, 나라현에서 그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일본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왔다. 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그의 무덤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묘지명 덕분에. 굳이 일본 역사서 편찬자 무덤에 대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수 도 있지만, 이 편찬차를 비롯하여 그의 가족은 백제계 도래인이다. 오오노 야스마로를 포함한 오오씨는 백제 멸망시 백제 왕자 풍장을 호위하던 사람들로, 당시 호위하던 사람들 중에는 오오노 야스마로의 조부가 있었다. 적어도 백제 멸망 시 일본으로 넘어온 백제계 도래인 1세대라고 보면 될 듯하다(백제가 한창 일본과 교류하던 도래인은 제외하고). 그래서 그런걸까? 고사기에서는 백제를 빼면 이야기가 훅 줄어들 정도로, 백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양을 차지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역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보다 더 자세한 백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건 사실이다.

 

아스카 지역은 소가 씨의 본거지와도 가깝고 일찍부터 이 세력권하에 있었다. 588년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사원인 아스카데라가 소가씨의 씨사로서 조영되고 592년 소가노 우마코의 조카인 스이코 천황이 도유라노미야에서 즉위한 후 아스카와 그 인접 지역에는 천황의 궁전이 위차하게 되는 등 소가씨의 영향이 크게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 간고지 가람 연기에 의하면 588년 아스카데라의 조영에 있어서는 백제로부터 불사리를 가져온 승려와 함께 사원 건축의 공인, 와박사, 화공 등의 기술자가 백제로부터 왔다고 한다. _P 076

 

소가씨는 야마토 정권 당시 대표적인 실권자였다. 모노노베씨가 소가씨를 몰아낼 때까지 소가씨는 아스카 일대를 호령했다. 무엇보다 소가씨는 백제계 도래인이었다. 소가씨를 몰아낸 모노노베씨 역시 도래인이었다는 건 함정이랄까. 뭐 이 시대의 역사는 누가 뭐라해도 도래인들이 정치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에서도 부정 못할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조금 갸우뚱하는 지점이 나왔다.

 

덴무 천황 사우 그의 황후인 우노노사라라가 지토 천황이 된다. 그 이후 그녀의 아들인 쿠사카베 황자가 천황을 승계하지 못하고 일찍 사망함으로써 그의 손자로 알려진 가루 황자가 성장한 후에 지토 천황의 뒤를 이어 몬무(文武)천황이 된다. 몬무천황도 지토천황의 손자로 알려지고 있으나 출자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는 인물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으나 신라의 삼국 통일에 기여한 태종 무열왕의 아들인 문무왕이 사망한 이후 일본에서는 같은 이름의 몬무 천황이 즉위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다. 이 때문에 두 인물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연구도 많이 있으므로 그의 출자에 대한 사실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_P 113

 

... 신라의 문무왕과 일본의 몬무천황의 연관성이라.... ....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편입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일본학전공이었는데, ....

지금까지 읽어본 한일 고대사 관련 책에선 본 적이 없는 내용이라 으음.... 내가 이런 내용들 때문에 정말 일본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일본에서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궁금해져서 일본사학자가 쓴 한일고대사를 읽기 시작한거다(하지만 고대사 원서는 너무 어렵 ㅠㅠㅠ).

 

그 어떤 역사든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이 담길 수 밖에 없는데, 고대사는 더욱 그렇다. 특히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얽힌 역사에 대해서는 더더욱. 한국인이 쓴 고대사는 당연히 한반도가 주가 되기 때문에, 내 시각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것 같아서 일본역사가가 쓴 고대사책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지금껏 일본 원서는 꽤 많이 읽었는데 와, 고대사.....전문적인 용어나 고어가 너무 많아서 읽는게 버겁긴 하지만, 확실히 한국인이 쓴 것과는 다른 시각이 느껴졌다.

 

고대사는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가 않아서 상상력을 많이 가미해야한다고 하지만, 이게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그냥 판타지가 되어버린다. 특히 한일 고대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그 순간부터 역사 왜곡이 되니 참. 예를 들어 일본이 줄창 외치는 임나일본부가 그 중 하나다. 근데 또 임나라는 지명이 한반도에 아예 없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일 여러 기록에 따르면 임나라는 지명이 나온다. 대략 정리해보면 일본이 줄창 외치는 그런 임나일본부는 없으나, 가야연맹에 임나를 사용하는 가야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정도? 이래저래 한국과 일본의 시각 양쪽에서 다 보아야만, 그나마 균형잡힌 시각, 상상과 사실을 골라내는 시각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임나에 대한 기록: 한국 (광개토대왕비문, 삼국사기 열전 제6 강수조, 진경대사 비문), 중국(송서 왜국전), 일본(일본서기))

 

앞서 1권을 읽을 땐 잘 몰랐는데, 이번 2권을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답사기에는 응당 관련 사진이 많이 실려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생각보다 사진이 적다. 특히 저자가 이야기하는 답사지, 유물들에 대한 사진들이 적다 못해 없다.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면 도록 사진이라도 실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없어서, 솔직히 저자가 말하는 수 많은 보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쇼소인의 헤이라덴하이노하쯔가쿠교와 삼성리움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가야 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140호인 나전단화금수문경이 같은 문양으로 남아 있어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쇼소인의 헤이라덴하이노하쯔가쿠교는 야광 조개를 잘라 만든 하얀 나전과 동남아시아산의 붉은 호박 등으로 꽃이랑 새의 문양을 만들고 그 주변을 흰색과 파란새그이 작은 터키석으로 메웠다. P 043

 

소쇼인의 보물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물론 관련 사진은 없다. 오로지 문자만 있다. 하다못해 내가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나전단화금수문경을 보기라도 했으면 상상의 여지라도 있는데, 이마저도 기억속에 없다. 정말 책 속에 나오는 수 많은 건축물, 보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런식으로 서술이 되어있다.

 

해당 보물에 대해 한 번 쯤 보았거나, 혹은 미술에 대해 상당히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저자가 말하는 보물이 무엇인지 당최 머릿속에 그릴 수 없다.

 

도래인 문화 유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지만, 아무래도 나라·아스카 쪽은 직접 가본적이 없다보니 몇 몇 책으로 습득한 이미지가 전부다. 과거에 접했던, 기억에 남는 도래인 유물이라면 위 텍스트를 보면 바로 머리속에서 형상화를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형상화 하기가 어려운거다. 그나마 한국 보물과 비교 서술한 경우, 대부분 직접 보거나 한국사 책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기에 다행이었다. 결과적으로 저렇게 자세히 설명해준다 한들 사진이 없으면 머리 속에 그릴 수가 없다. 본인이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도록 사진을 이용해도 참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쉬울 따름이다.

 

난 분명 이 책에 1권 격인 규슈 역사를 따라서 한국을 찾아 걷다를 읽었다. 그 때는 왜 이런 점을 못느꼈나 생각해보니, 규슈 관련 도래인 유적 및 유물 사진을 워낙 많이 봐왔기에 머리속에서 자연스레 그려진 덕분이었나보다. 결국 이 책은 사전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읽어야만, 흥미가 있을 법한 책이었던 거다. vs책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면에서 보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가가 초심자에게 얼마나 친절한 책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저자가 3권을 계획한다면, 사진의 중요성을 인지했으면 한다.......하하..ㅠㅠㅠ..

 

아스카 지역은 소가 씨의 본거지와도 가깝고 일찍부터 이 세력권하에 있었다. 588년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사원인 아스카데라가 소가씨의 씨사로서 조영되고 592년 소가노 우마코의 조카인 스이코 천황이 도유라노미야에서 즉위한 후 아스카와 그 인접 지역에는 천황의 궁전이 위차하게 되는 등 소가씨의 영향이 크게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 『간고지 가람 연기』에 의하면 588년 아스카데라의 조영에 있어서는 백제로부터 불사리를 가져온 승려와 함께 사원 건축의 공인, 와박사, 화공 등의 기술자가 백제로부터 왔다고 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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