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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평점 :
일본문화, 일본인에 대해 제일 객관적인 저서로 꼽히는 책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일본과 일본인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인용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덕분에 이 책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를 쉽게 알 수 있었고, 꼭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오판이었다. 나는 단순하게 이 책은 일본인의 이중성 내지는 양면성, 혼네/타테마에 등에 저술했다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의 의도가 단순히 ‘일본인의 이중성’을 밝히는 거라고 단언하기에는,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이 책,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에 대한 내용을 쓰면서, 정작 일본에는 단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다.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기록할 수가 있지? 싶었다. 이 책은 서양인의 눈으로 본 일본인이되, 그 일본인을 아주 오랫동안 옆에서 관찰하고, 그들과 동거동락하며 기록한 내용처럼 정말 세밀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하게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헌데도 이렇게 방대한 양을 기록했다는 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본에 관한 많은 서적을 읽었고, 일본은 가지 못했지만 일본이 아닌 제 2국에 있는 일본인을 만나서 관찰했다는 거다. 루스베네딕트, 그녀는 정말 대단한 문화인류학자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미국 정부의 요청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 생각했던 것 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전쟁에 임했기 때문이다. 분명 전세는 미국으로 기울었는데, 일본은 계속 죽음을 불사하며 전쟁에 임했다. 전세를 바꾸는 데 1도 도움이 되지 않았음에도, 일본은 자살특공대를 활용했다. 심지어 일본의 자살특공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봐도 충격적인데, 당시 이런 일본을 상대한 미국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래도 일단 전세는 미국쪽으로 기울었으니, 일본이 패전하게 될 경우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지 연구도 필요하고 그렇기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게 시급했다.
일본에 대해 연구한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기 위해 연구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답을 찾았다. 대체 무엇으로 일본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일본인을 지배하는 관념이 대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바로 이 것들이다.
일본인이 사용하는 범주와 상징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일본인의 많은 행동적 모순은 이미 모순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 할 것이다._ P 043
알맞은 위치 - 은/恩(충/忠, 효/孝) - 의리/義理 - 수치/恥 - 인/仁 - 인정/人情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많은 일본인의 이중성, 모순된 행동은 위의 다섯가지 항목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은(恩)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은(恩)이 다르고, 우리가 생각하는 의리(義理)와 일본인이 생각하는 의리(義理)가 다르다는 점이다. 수치, 인, 인정도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평생 일본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어떤 포로는 죽여 달라고 요청했고, “그러나 당신들의 관습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범적인 포로가 되고싶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범적인 포로 이상이었다.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극단적인 국가주의자였던 그들은 탄약고의 위치를 알려 주고, 일본군의 병력 배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미군의 선전문을 쓰고, 미군의 폭격이에 동승하여 군사 목표로 유도해주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았다. 새로운 페이지에 쓰인 것과 낡은 페이지에 쓰인 것은 정 반대였지만, 그들은 새 페이지에 쓰인 구절을 한결같이 충실하게 실천했다. 물론 포로 전부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_P 071
미국은 이러한 일본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죽창을 들고 자기를 죽이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오던 일본군이 그 태도를 180도 바꾸는 모습, 근데 심지어 그 모습이 정말 진실된 모습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하지만 포로로 잡혔던 저 일본군 입장에서는 그 나름대로 자기가 현재 처한 ‘알맞은 위치’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끈임없이 죽여달라고 요청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포로들은 자기 위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죽고자 했던 포로는 당시 일왕에 대한 ‘충’으로, 적군에게 잡힌 ‘수치심’으로, 자기 이름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죽고자 한 것이다. 정말 소름돋게도 서로 다른 행동을 한 일본군 포로들이지만, 이 포로들은 전부 본인들의 살면서 새겨온 그 가치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알맞은 위치’라는 가치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는 일본이 자국 국민들에게 태평양전쟁에 대해 가르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은 자기네 나라가 아시아에 있는 여러 국가들의 형이라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형이라는 위치는 동생들을 잘 돌보아야 하는 법이다. 일본의 가정은 아버지(연장자)가 ‘가장’이 되어 가정을 진두지휘한다. 아버지가 ‘가장’의 위치에서 내려오면, 다음 ‘가장’은 장남이된다. 일본은 자기들이 말하는 대동아 공영권에서, 지네 나라가 형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 ‘가장’의 역할을 하려고 한거다. ‘가장’의 대표적인 역할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인데, 이 때 일본이 말하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서양이었다. 그러니 일본은 형(가장)이라는 위치에서 동생들과 힘을 모아 외세와 맞서 싸웠다는 이론이다. 이게 일본이 말하는 태평양 전쟁, 아니 ‘대동아전쟁’이다.
그렇다면 저 ‘가장’의 알맞은 위치, 일본이 규정하는 알맞은 위치는 대체 무엇일까.
그 어떤 나라든 근대화가 되기 이전에는 전부 계급제가 있었다. 일본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계급제도가 여타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나라는 ‘왕’을 비롯하여 귀족, 백성, 천민 으로 구성된다면, 일본은 그렇게 간단히 말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왕은 있는데 그 왕이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근데 또 그 왕을 무시하자니, 그 왕이 정치를 하는 쇼군을 임명했다. 그러면 쇼군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스렸나? 그건 또 아니다. 각 ‘번’이라 부르는 지역별로 다이묘(영주)들이 있었다. 각 번에는 다이묘를 모시는 가신집단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었다. 물론 고대, 중세, 근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본의 계급제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렇든 저렇든 계급제 국가에서는 쿠테타 내지는 혁명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한국의 역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가깝게는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조금 더 올라가면 고려시대 만적의 난 등.. 하층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게 없었다. 일본에도 분명 하층계급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걸 당연시 했다. 불합리하다는 의문을 갖지 못했다.
이렇든 저렇든 일본에서도 서민 계급은 분명히 있었다. 높으신 분들에게 피 쪽쪽 빨리는 계급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번’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그게 본인들의 위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말 쉬운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저들이 말하는 천황이다. 만세일계 현인신이라는 천황은 일본의 국교인 신토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일본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신토, 그 중 최고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후손이 바로 천황가라는 것이다.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땐 뭐 저런 제도가 있지? 싶을 수 있는 그 천황제가 일본인에겐 태어나면서 접하는 살아있는 인간신 이라는 이야기다. 신이 우리 곁에 있으니, 우리도 당연히 이 자리를 지켜야된다. 라는 거랄까.
그래서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천황제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이용했다. 일본인은 천황이 하라고 하면 당연히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존재가 계속 있어야만 전쟁 후 일본을 통치하는데 수월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12세기 이래 쇼균이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 어떤 시대에는 직능이 극단적으로 분할되어, 유명무실한 주권자인 천황이 세습의 세속적 수장에게 위탁한 실권이, 그 수장의 세습적 정치 고문에 의해 행사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 권력은 항시 이중 삼중으로 위탁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명백이 끊어지려는 최후의 시기까지도, 페리 제독은 일본 권력 구조의 배후에 천황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라지 못했다. _P 102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도 온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룬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국민은 공경을 다하고 천황은 거기에 응답했다. 그들이 천황이 ‘국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온 몸을 희생했다. 일본처럼 완전히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치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_P 178
일본인의 삶은 태어나면서 짊어지는 의무가 있다. 그게 바로 은혜(恩)이다. 이 은혜가 무엇인고 하면, 평생 다 갚지 못하지만 갚아야 하는 부채이다. 그럼 대체 무엇이 은인가?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황에 대한 보은(충忠)이다. 부모에 대한 은(효孝)이다. 이 두 가지는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개념이다. 특히 일본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가치관 중 제일 우선시 되는 것이다. 만약 충과 효에 충돌이 생긴다면, 당연히 충을 따라야한다. 물론 여기에 함정이 있긴 하다. 충을 따르면서 효를 저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효를 저버렸다는 것만으로 자기 이름 내지는 명예를 모욕한 것이 되버린다. 그럼 그 끝은? 결국 할복이다. 두 가지의 가치관이 충돌할 경우, 그 끝이 할복(자살)로 끝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충도 지키고 효도 지켰다는 명예를 얻게 된다. 일본인들이 유독 자살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다. 사무라이 할복, 연인의 자살, 전쟁의 자살특공대 등, 유독 자살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미화가 되는 이유는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
『국화와 칼』 164P - 일본인의 의무 및 반대 의무 일람표
일본인에게 형성되는 이런 가치관을 보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저런 이론이라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했을 때, 당시 천황은 할복했어야 했다. 일본 전국시대에서 각 다이묘들의 전쟁만 봐도, 전쟁에서 질 경우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을 한다. 일개 다이묘들도 그랬는데, 일본을 대표한다는 천황이 전쟁에서 졌고, 자기 나라의 명예를, 본인 이름의 명예를 더럽혔다. 일본인의 가치관으로 보면 더럽힌 명예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할복 밖에 없는데, 천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천황의 태도 역시 일본의 가치관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거다. 바로 ‘알맞은 위치’. 전쟁에서 졌고, 본인은 패전국의 수장이라는 위치를 지키며 유례없이 미국에 충성을 했다. 정말 반항 1도 없이..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천황의 목소리가 방송되기 전에 강경한 반대자들은 궁성 주위에 비상선을 치고 정전선언을 저지하려 했다. 그런데 그 선언을 일단 발표한 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그것에 승복했다. 만주나 자바의 현지 사령관도, 일본에 있던 도조(도조 히데키, A급 전범)도, 누구 하나 그것을 거역하려 하지 않았다. 미군은 비행장에 착륙하여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 한 외국인 기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며 착륙했지만, 점심 때는 총을 치워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해드렸다. 1주일 전까지 그들은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죽창으로라도 오랑캐를 격퇴하기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P_181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한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의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_P 225
일본은 시작부터 모순적이었다. 모순은 그 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우리가, 주변의 여러국가가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이었다. 그건 일년이 흐르든, 십년이 흐르든,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은 그 모순을 들먹이며 이웃나라를 침략하였으며, 침략한 사유를 모순적인 가치관을 들어 정당화시켰다. 아니 지금도 정당화시키고 있다.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도 온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룬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국민은 공경을 다하고 천황은 거기에 응답했다. 그들이 천황이 ‘국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온 몸을 희생했다. 일본처럼 완전히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치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 P178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한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의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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