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1
유진선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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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휴가 시즌! 이 맘 쯤에는 여름 휴가 여행지를 이미 선택하고, 계획을 짜느라 들떠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올해의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나보다 ㅠㅠ 하 내 이야기지만 너무 슬픈 이야기... 직장인에게 제일 중요하디 중요한게 여름휴가인데!!!!!!!!!에잇 퉷퉷!!!!!!!!!!!!!!! 여름휴가를 못가는 아쉬움을 언제나처럼 여행가이드북과 함께하는 간접 여행으로 달래본다ㅜㅜ


그래서 이번에 선택한 간접여행지는 무려 북유럽이다. 이렇게 습하고 푹푹 찌는 날씨에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시원한 빙하, 북극을 체험할 수 있는 곳!

 

이 책에서는 북유럽 6개국에 대한 여행 정보가 담겨있다. 그 시작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의 나라 덴마크, 최대 규모 이케아 매장이 있는 스웨덴, 최상급 연어가 나오는 나라 노르웨이, 무민의 나라 핀란드, 나는 잘 모르는 나라 에스토니아(..), 오로라의 나라 아이슬란드. 6개국 중 유독 한 나라는 생소하지만, 나머지 5개 국가는 TV에서 자주 봐서 그런가, 뭔가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보며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예상을 할 수 있다. ‘북유럽에서 꼭 해봐야할 모든 것에는 북유럽 여행에 필요한 기본 정보등이 있을 것이고, ‘북유럽을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에는 6개국에 대한 세부 정보가 있겠지?

 

Mission in Northern Europe

북유럽에서 꼭 해봐야할 모든 것

 

이 챕터에서 내 기준 제일 중요한 정보는 추천여행 일정이다. 북유럽, TV에서 아무리 많이 봤다고 하더라도 딱 거기까지일 뿐, 생소한 지역이니 초심자라면 이런 추천 여행일정을 따르는 게 좋다. 북유럽 6개국 기본루트는 1921일 일정이 실려있는데, 직장인에겐 정말 무리한 일정!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 책에는 직장인들의 휴가에 맞춘 10일 이내 일정을 소개하고 있다.

 

 

직장인을 위한 10일 일내 일정이라는 것도 참 마음에 드는데, 심지어 테마별로 있다. ‘디자인과 쇼핑’, ‘도시와 자연’, ‘각 나라별 중심(노르웨이, 스웨던, 핀란드)’, 그리고 북극권’. 요새는 리프레쉬라는 명목으로 주 5(일주일) 간 휴가를 쓸 수 있는 회사가 많이 늘어 났다고 한다. 뭐 명목상으로는 우리 회사도 그렇긴 하다.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으로 저런식으로 쉴 수 있는 회사도 많을테니 토일월화수목금토일이런 식으로 휴가를 쓰게 되면, 위의 추천일정으로 충분히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회사 부럽 ㅜㅜ)

 

추천 일정 외에도 북유럽에 가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 쇼핑 노하우, 저렴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 Q&A등이 실려있다.

 

9개의 Q&A 중 필수 정도 2개만 꼽아보자면..!

Q. 오로라를 잘 보기 위한 포인트를 알려주세요!

A.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밤이 긴 겨울, 그리고 조용하고 불빛이 적은 곳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9월 중순 이후부터 4월까지, 그리고 북극권 지역에서는 10~3월까지가 적기이며, 특히 맑은 날씨, 불빛이 적은 작은 마을이나 국립공원 지역이 관찰의 최적의 조건이 되겠죠.

 

Q. 공공장소에서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A. 북유럽에서는 화장실 사용에도 예외 없이 돈을 받아요. 기차역, 버스터미널, 백화점, 쇼핑몰 등은 전부 유료이며,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영수증에 적힌 번호를 눌러야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Enjoy Northern Europe

북유럽을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 책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아이슬란드 6개 국가에 대해 각 챕터별로 소개하고 있다.


 

우선 각 나라 별로 주요정보를 첫 페이지에 할애했다. 해당 국가의 수도나, 인종, 공휴일 등 기초 정보부터 시작해서 해당 나라를 가면 꼭 알아야 할 간략한 역사, 그 나라에서 유명한 위인들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여행 시 제일 중요한 !! 정말정말 중요한 여행하기 제일 좋은 시기, 대중교통 이용방법, 전화 및 인터넷 사용법 등이 있다.

 

안데르센과 인어공주의 나라 덴마크. 덴마크에 대해서는 크게 코펜하겐, 코펜하겐 근교, 로스킬데, 오덴세, 레고랜드를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고 싶은 장소를 콕 집어 보자면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이다. 뭐랄까, 인어공주 동상은 ....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춘천에도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 의암호 주변에.

 

춘천, 그곳은 할머니가 계신 시골이었던지라, 시골을 갈 때마다 인어공주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어려서부터 보았기 때문일까? 정말 그 때는 진짜 인어공주가 그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아빠, 인어공주 동상 보고 갈래!’ 라며 차를 세우고 꼭 보고 갔더랬다. 그 때는 정말 동심가득한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 머리통이 커지면서 시골을 가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어쩌다 시골을 내려가도 인어공주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였기 때문에, 그 곳에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 책 속에 나타난 덴마크 인어공주 동상은 어린시절, 인어공주가 정말 있을거라고 믿었던 어린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각 나라 간 챕터 사이 사이에는 짧다면 짧은 한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 에세이라고 해야하는게 맞는 걸..? 에세이처럼 보이는 이 짧은 글 안에는 북유럽 여행자에게 필요하지만, 가이드북에는 실려있지 않는 소소한 팁들도 들어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군것질거리, 복권과 시내 교통권 및 우표판매는 기본 중 기본이다. 중략심지어 스웨덴의 대표 편의점인 프레스뷔론의 일부 매장에서는 기차표, 장거리 버스표까지 구입 가능하고 무선 인터넷도 무료이다. 중략하지만 편의점이라고 24시간 영업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시내 중심가의 일부 매장은 늦게까지 영업하지만 대부분 밤 11시 이전에 문을 닫는다. _P118~119

 

북유럽 4개국 중 덴마크는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제한없이 다양한 맥주를 살 수 있고 가격도 괜찮다. 하지만 나머지 3개국에서는 나름의 법적 제한조치가 있어, 이를 피해 싸게, 많이 맥주를 마시려는 다양한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중략그러면 덴마크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서, 밤 늦게 맥주가 마시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야될까?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는 알코올 3.5도 이하, 노르웨이에서는 3도 미만의 라트욀이라는 낮은 도수의 맥주를 구입할 수 있다. _P242~243

 

한국에서 커피 없이 몬 산다 싶은 사람르은 북유럽에서 만세를 부르고도 남을 것이다. 커피값도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 않고 (물론 다른 유럽처럼 테이크아웃이 더 저렴하지만), 판매하는 원두 종류도 많은 데다 가격도 한국보다 더 싸다. _P375

 

북유럽은 한여름에도 시원한 날씨가 지속된다고 한다. 일부 남쪽 도시들은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긴 하지만, 지금 한국 땅에서 일어나는 폭염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애교 수준! 무엇보다 공기 질이 다르다는 점!!! 이번 태풍이 오기 전 까지 우리 나라 하늘, 잿빛 하늘이었다ㅠㅠ 미세먼지도 정말 심각했다. 다가오는 여름휴가에는 단 열흘이라도 폭염을 벗어나,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면... 북유럽 여행도 꽤 좋은 선택지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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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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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에세이, 아니 산문. 요즘은 너무 당연하게 이런 수필을 에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데, 이 책은 산문이라고 했다. 그저 영어와 한글의 차이일 뿐인데 묘하게 산문이라고 칭해서 좋았다. 저자가 단어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까? 읽기도 전인데 그냥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일기 혹은 그 날의 기분을 끄적였던 메모,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배열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부른 이름’,‘너와 부른 이름’,‘우릴 부른 이름들이라는 큰 주제로 묶여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이름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난 그 의미부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면, 열다섯,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잔뜩 난 내 얼굴과 교실 바닥을 비질하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따금 내 뒤에 다가와 제 키를 재어보고 좋아했던, 이제는 피곤한 얼굴의 도시 노동자가 되어 있을 한 남자아이도. 그 애도 이제는 나처럼 예전보다 모든 일에 재미를 덜 느끼고 또 덜 놀라는 어른이 돼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 시절 행복했니? 물으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라고 대답할 것맡 같지만. _ P 023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나던 그 시절 들었던 그 노래. 듣기만 하면 그 시절이 눈 앞에 자동재생 되는 그런 노래. 나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tv에서 그 노래를 부르던 가수를 보면, 그 때가 생각난다. 뭣모르고 철 없던 나와 내 친구 A,B. 나는 신화를 좋아했고 AGOD를 좋아했고, B는 클릭비를 좋아했다. B는 당시 학교 방송반이기도 했기에, 매 점심시간 마다 노래를 틀어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게 나름의 권력이었을까? B는 자기가 좋아하는 클릭비 노래, 내가 좋아하는 신화, B가 좋아하는 GOD 노래를 매일 매일 번갈아 가면서 틀어 주었다. 지금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내가 그 가수를 좋아했다는 감정마저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때의 노래를 들으면 철없던 그 때가 떠오른다.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며 들떴고, 점심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했던 그 때가.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기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_P133

 

내 자취가 남아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사라진 그 모습을 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이 공간이 사라질 거라고 미리 알았더라면, 그 곳에 있을 때 조금 더 소중히 여겼을텐데. 내가 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여러 기록을 남겼을 텐데. 하지만 이건 뒤 늦은 후회일 뿐이다. 그 때의 나는 이 공간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은 평생 내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한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오만일 뿐. 사람은 어떤식으로든 헤어진다. 살아가는 중에 헤어질 수 도 있고, 죽음으로 헤어질 수 도 있다. 그러니 이 사람은 항상 내 옆에 있을 거라 당연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변함 없어서 지루할지도 모르는 이 일상이, 이 공간에서 이 사람과 보내는 이 시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니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_P252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 나는 이 사람을 이해한다고 했는데, 정작 이 사람은 나의 그런 이해를 되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만큼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 역시도 나를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어느 면에서 나를 이해했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투성이니까. 온전히 그 사람이 되지 않고 서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이해라는 말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20144월 어느 날이었다. 난 그 날도 회사에 있었다. 그날 오후 우연히 실검에 떠있던 세월호라는 단어를 보았고,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바다 한 가운데 커다란 배 한척이 고꾸라져 있었다. 그 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탑승해있었고, 심지어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전부 구조 되었겠지? 라는 생각은 필요가 없었다. 뉴스에서는 탑승객 전원 구조라고 대문짝 만하게 발표를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비뚤어져있던 당시 정권에 잘 보이려는 거짓말이었다. 처음엔 전원이었던 구조 인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 사이 배는 계속 가라 앉았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우리 정부는 사고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걸 아이들이 봤다. 배 안에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걸. 다투어 생명을 지켜야 할 시간에 권리를 외치고 이익을 도모한 모습을. 도모를 가능하게 한 이 세계의 끔찍한 논리를. 아이들봤다. 어른들이 있는데서도, 없는 데서도. 그리고 자신들의 본 것의 의미를 알았다. _P260

 

이 사건은 해양사고로 다뤄지는게 아닌, ‘정치사건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누구의 의도였을까?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이 사고는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되었고, 심지어는 희생자들을, 희생자 유가족들을 희화화 하기 시작했다. ‘해양사고’, ‘구조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었을 이 사건은 이상하게 변질되어 갔다. 그리고 이 역시 잊혀져 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의 힘을 빌어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잊혀졌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잊어버렸을까?

내가 잊어버린 그 이름들이, 그때의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름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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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정면돌파한 여성 100인
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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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좋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었던 책이 었다. 내 독서 취향이라면 취향이랄까,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정확히는 한, , 일 역사 속의 인물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책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읽고 싶었는데!! 특히나 내 눈길을 끌었던 제일 큰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역사 주류에 서 있는 남성이 아닌, 언제나 역사 뒷편에 있었던 여성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물론 아닌 나라도 꽤 많지만) 과거에 비하면 정말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여성의 권리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그저 남편의 대를 이어주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던 그런 역할에 그쳤다면,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여성의 정치 참여는 상상도 못할 일이 었다면, 지금은 여성이 나라의 수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러한 세상이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희생된 그녀들 덕분에 나는 이런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텐데..

 

목차를 찬찬히 살펴보니, 책에 실린 100인의 여성은 대부분이 서양인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인인 저자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양보다는, 본인이 살고 있는 유럽을 포함한 서양 역사에 접근하는게 훨씬 편했을 테니. 나만해도 동양,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는 반면 서양 역사 속 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나. 그런 저자가 우리 역사 속 인물인 선덕여왕을 이 책에 실었다는 것은 실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역사 속 인물이 더 소개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선덕여왕 말고도 최악이든, 최초든 이 책에 실릴 만한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 말이다 ㅠㅠ

 

뭐 아쉬운건 아쉬운거고! 내가 과연 얼마나 많은 인물을 알고 있나 세어봤더니 이게 왠 걸! 고작 7명이다. 선덕여왕을 포함하여 아라곤의 캐서린, 서태후, 마리 퀴리, 아가사 크리스티, 마릴린 먼로, 미셸 오바마. 이렇게 딱 7.

 

서태후는 청나라 멸망사에서는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여인이기에, 그녀와 관련된 책도 여러번 읽은 적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에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하고, 나 역시 학창 시절 아가사 소설을 진짜 미친듯이 읽기도 했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으로, 마릴린 먼로는 한 시대를 대표한 섹시 심벌이기에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이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나름 알고 있었다.

 

반면 아라곤의 캐서린이나 미셸 오바마는 오롯이 그녀들에 대해 알려고 한게 아니라, 그녀들의 남편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그녀의 남편 헨리 8세의 미친 결혼력(...) 때문에 알게 되었고, 미셸 오바마는 당연히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녀의 남편 버락 오바마 때문이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아닌, 그녀들의 남편이 워낙 유명해서 곁가지(?)로 알게 된 것이었다. 참 뭐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반성이 되는 부분이었다.

 

1.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를 선언하다: 올랭프 드 구주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책 앞장에 나왔다. ‘올랭프 드 구주라는 여성이 발표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였다. 이 모든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여성은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대혁명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뤘지만, 혁명 세력은 권력을 잡자마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루이 16세를 베르사유궁에서 끌어내 파리로 데려온 것도 파리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프랑스 대혁명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내 실망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보편적 인권을 내세운 대혁명이었지만, 정치영역에서는 여성을 완전히 제외시킨 것이다. _P089

 

프랑스 대혁명을 담은 소설 레미제라블에서도 혁명군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겐 프랑스 대혁명은 딱 거기까지 였다. 이후에는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있었고, 로베스 피에르는 본인이 만든 단두대에서 본인이 죽었다. 이정도?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메인 줄기로 만들어진 소설이나 만화가 많았기에, 딱 그런 것들 위주로만 봐서 그 뒤에 가려진 여성의 이야기는 솔직히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막연하게 그 당시에 많은 인권 신장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낙담하지 않았던 올랭프 드 구주는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높여 여성의 권리선언을 발표를 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여성이 권리 신장을 보지 못했다. 로베스 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그녀는 이 땅에 없지만, 그녀가 바라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2. 최초로 왕의 공식적인 정부라는 지위를 부여 받은 여인 : 아녜스 소렐

프랑스 땅에서 진행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백년 전쟁. 이때 샤를 6세는 자기 아들에게서 왕위 계승권을 빼앗았다. 샤를 왕세자는 그렇게 한 순간에 계승권을 박탈당한 비운의 왕자가 되어버렸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런 샤를 왕세자가 아녜스 소렐이라는 여인을 만나고 변했다. 아녜스를 만나고 샤를 왕세자는 한 사람의 남자로써, 그리고 당당히 샤를 7세로 왕위에 올랐다.

 

샤를 7세의 총애를 받았으며 지성 또한 갖췄던 아녜스는 왕의 총애라는 영향력을 행사해 왕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도왔다. 이리하여 광기에 빠진 샤를 6세의 폐위된 아들은 충성받은 왕’, ‘승리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_P054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아녜스는 실의에 빠졌던 한 남자를 모두가 우러러 보는 왕으로 바꾼 여자라 칭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닥 부각되지 않았던, 아녜스로 인해 피눈물을 흘린 여성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녜스는 왕비가 아니라 정부. 국어사전에서 정부를 검색하면 아내가 아니면서 정을 깊이 두고 사귀는 여자라는 사전적 의미가 나온다. 말 그대로 내연녀라는 점! 물론 이건 불법은 아니었다. 중세 유럽, 이 시기의 왕들은 이상하게도 정부를 참 많이 뒀다.(그 유명한 마담 퐁파두르도 루이15세의 정부이기도 했고) 뭐 여튼! 아녜스도 정식 왕비가 아닌, 샤를 7세의 정부였다. 샤를 7세를 제대로 된 왕으로 만들었다는 공로는 그녀의 권력이 되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아녜스 뒤에서 눈물을 삼킨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샤를7세의 부인, 마리 왕비다.

 

마리왕비만 있는게 아니다. 샤를 7세가 왕에 오를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백년전쟁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했던 영웅, 잔다르크의 존재였다. 하지만 잔다르크는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불 길 속에서 그 명을 달리했다. 물론 잔다르크의 죽음에 아녜스가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 7세가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하고, 아녜스가 그 권력을 누리는 데 못해도 왕비 마리와 잔다르크라는 두 여성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녜스는 최초로 왕의 정부라는 지위를 인정 받았으며, 샤를 7세라는 왕을 만든 최고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승자의 관점에서 일 뿐, 적어도 마리 왕비나 잔다르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최악의 여성일 지도 모른다.

 

3. 그리고..

이 책은 출현의 시대, 주장의 시대, 요구의 시대, 용기의 시대, 참여의 시대, 희망의 시대6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100인의 여성에 대해 기술한다. 시대 구분으로 보자면 고대 ~ 현대까지의 시대를 세분화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구의 시대 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그녀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대가 올라가면서 어느새 1800년대 후반을 지나 1900년대 초반의 여성들이 나타났고, 이 즈음부터 책을 읽는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로 구분하자면 아주 정확하게 조선 말기 ~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랄까? 다시 요구의 시대로 넘어와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곱씹고 보니 이미 이때부터 서양의 제국주의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영토를 확장한다며 여러 나라에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는 그 시기였던 거다. 그들의 제국주의는 아시아까지 넘어왔으며 어떤 나라는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또 어떤 나라는 그들의 제국주의를 자기들 방식으로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웃나라를 침범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들먹이며 조선을 침략했고, 그렇게 이 땅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때 우리나라는 여성의 인권을 울부짖기는 커녕, 한 사람으로써의 인권조차 없었다. , 책 속에 나와 있는 당대 서양의 여성들은 여권을 신장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사람이 되는 동안, 동시간대 우리나라는 여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국민들이 서양에서 만든 제국주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뭔가, 책을 읽기 전에는 역사 속에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는데, 정작 읽으면서는 이 여성들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 시대 우리나라는 어땠지?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고대 ~ 중세까지는 가볍게 읽었다면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부터는 가볍게 읽을 래야 가볍게 읽히지가 않았다. 특히 우리가 그런 암흑기에 이르게 된 제일 큰 이유가 일본이라는 건 빼도 박도 못하는 제일 큰 이유지만, 그 저변에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에 나온 모든 이들을 부정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그녀들이 위대한 영웅이 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수 많은 참극이 떠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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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일사 - 분노하기 전에 알아야 할
이경훈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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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는 정말 가깝지만 심적으로는 너무 먼 나라이다. 멀어도 너무 먼 나라다. 고대만 해도 한반도와 일본은 정말 사이가 좋았다. 도래인들 덕분에 한반도에서 많은 물자와 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져, 당시만해도 한반도나 중국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일본은 문명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골이 생겼다.

 

일본은 1592년 조선을 침략하였고 이 땅을 황폐화 시켰다. 1910년에는 강제로 나라를 병합하였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받았다.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은 항복했다. 하지만 전후 처리가 깨끗하지 못했다. 일본을 밟아 누르려던 미국은 갑작스런 냉전체제로 인해 일본을 키워주느라 바빴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 할 때, 일본은 세계 정세를 읽고 미국에 로비하느라 바빴다. 조약은 일본에 유리하게 작성 되었다.

 

일본정부는 19514월 미 국무부 고문 덜레스가 방문하였을 때 한국은 일본과 전쟁상태에 있지 않았기 댐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한국이 (강화조약의) 조인국이 되면 한국인들은 연합국과 동등한 재산청구권과 배상금을 주장할 것이다. 재일한국인이 100만 명이나 되는데 이 사람들기 과도한 배상청구를 하면 일본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한국이 강화조약 체결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_ P 13

 

갑작스런 냉전체제로 한국 정치도 급변했다. 미국은 친일파 인사들을 그대로 고위관직에 앉혔다. 미국은 일본 식민지로 있었던 35년간 한국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는 눈을 감았다. 이후 한국은 한국전쟁을 겪느라 더 없이 피폐해졌다.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한일국교가 정상화 되었다. 이때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배상을 요청할 때마다 계속 발목을 잡는 조약이 되었다.

 

예를 들면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는 1910822일 이전에 체결된 조약·협정은 이미 무효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요된 한일병합 이전의 모든 조약이 무효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체결은 합법이었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략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무상 3억달러, 유상차관 2억달러의 성격에 대해서도 한국은 배상금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독립축하금이라고 하여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일 간의 재산·권리 등에 대한 청구권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라고 하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따른 한국국민들의 개인청구권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피해자 문제 등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B·C급 전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한국인들에 대한 피해보상에 관해서도 일본 측은 한일청구권협정을 내세우며 한국 측에 보상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졸속으로 체결된 재일한국인협정은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민족차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였습니다. 어업협정에서는 독도문제를 협정문에 명기하지도 않았고, 문화재 협정에서는 협정 이후 새롭게 드러나는 일본인 개인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환수에 대해서 한국정부에 '기증되도록 권장'한다고 하여 이후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가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_ P 16

 

샌프란시스코 조약’, ‘한일기본조약2가지의 조약은 일제강점기 피해보상을 요구할 때 마다 일본의 강력한 방패막이가 되었다. 그리고 2015, 박정희의 딸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과 밀실협약을 맺는다. 그렇게 또 한번 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들어주었다. 심지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으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로 소송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후 2017,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밀실 협약을 파기한다. 일본은 당연히 동조하지 않았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밀실이든 아니는 이미 정식으로 발효된 협약을 뒤집는 다는 사실은 용인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협약을 파기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정식 체결된 협약이기에 우리나라 정부도 더 이상 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로 인해 무기한 연기 되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도 다시 진행되었다. 당연히 일본기업을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우리나라 법원에서다. 일본은 역시나 수긍하지 않았고, 그렇게 지금 한일관계는 악화될 때로 악화된 상황이다. 물론 해답은 없다. , 정확히는 남들은 다 아는 해답을 일본만 모른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1. 국가총동원법, 조선인을 군수물자 취급하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할린 한인, B·C급 조선인 전범6가지 문제는 시기상으로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본이 아시아를 넘어서 서양으로 뻗어 나가려 야욕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치룬 일본은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한다. 남녀노소 상관 없이 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갔다. 누군가는 탄광, 또 누군가는 공장, 여성들은 정신대, 위안소, 또 어떤 사람은 포로관리원, 총알받이 등 분야 상관없이 여기저기 배치되었다. 이들 중에서 탄광이나 공장, 정신근로대 등 노동력을 착취 당한 사람들을 강제징용 피해자라고 부른다.

 

일본만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갔는데 월급이 다 뭐야, 아무것도 못 받고 개돼지처럼 일했어.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니네들 월급은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다. 귀국할 때 다 주겠다고 하는 거야. 일본 사람들 정직하고 착하다길래 그말만 빋고, 정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면서 일을 했는데 . 99엔이 뭐야, 99엔이 뭐냐고!” 열 네살에 끌려갔던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갖고 미쓰비시에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러 가는 길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_P 77

 

당시 일본은 노동자연금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민간기업의 종업원은 의무로 가입해야 했고, 월급에서 11%가 원천징수 되었다. 이 비용은 일본 전쟁비용으로 고스란히 조달되었다. 강제징용된 조선인 근로자들도 당연히 가입되었다. 이 보험은 1994년에 후생연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과 별개로 일본 정부에 후생연금 탈퇴수당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후생성은 본인이 신청하면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지급 금액기준을 현재가치로 환산하지 않고, 당시 액면가 그대로 지급하였다. 위의 양금덕 할머니가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받은 돈은 단돈 99. 우리나라 돈 100원이다.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부분에 대해서 일본의 입장은 이렇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한일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배상할 의무가 없다.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중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보상금이 포함되어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개별 보상을 충분하게 하지 않고 포항제철공장(포스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 사업에 활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국내의 청구권 수혜 기업들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_ P 86

 

강제징용 피해자들 중에서는 사할린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중에는 사할린에서 또 다시 일본 본토 및 규슈 지역으로 끌려가는 이중징용자들도 나왔다. 조선에서 사할린으로 끌려 갔을 때 조선에 있는 가족들과 한번 헤어진 후,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으로 끌려 갔을 때 또 한번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도 많았다. 사할린에는 강제징용된 조선인과 그 가족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광복 이후에 그들은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채 그곳에 버려졌다. 당시 일본은 사할린에 거주했던 자국민은 전부 일본으로 입국 시켰지만,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소련 역시 북한의 의견을 반영하여 사할린에 남아있는 한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흐른 뒤에 겨우 겨우 사할린 한인들이 남한으로 귀국기 가능하게 되었는데, 1세대에 한정하였으며 21조로만 가능했다. 이미 사할린에 터를 잡고 가족을 만든 사람들은 졸지에 또 한번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은 어머니 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머리가 터져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어머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할린의 동포들이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머니는 냉정하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뿐, 자식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머니가 할 짓입니까?” _ P 119

 

강제징용된 사람들 중 일부는 동남아 지역에서 사로잡힌 UN군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관리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전쟁 후 B·C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사형당하거나 일본 감옥에 갇혔다. 당시 일본은 일본에 거주중인 조선인에게 있는 일본인 국적을 전부 박탈시켰지만, 일본 감옥에 있는 B·C급 조선인 전범들은 당시에 일본국적이었으므로 석방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시간이 꽤 흐른 뒤 대부분의 전범들이 석방되었다.

 

당시 전쟁포로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는 일은 국제조약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육군성은 조선인 포로감시원 교육 시 포로관리에 관한 국제조약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조약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일본군 포로정책의 최전선애 베치되어 포로들을 직접 접촉하고 명령하고 통솔했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은 계약기간 2년이 지나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을 조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계속 일했습니다. 일본군 지위체계의 최말단으로서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국제조약을 어긴 범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_ P136

 

일본군의 강요 및 세뇌로 인해 포로들에게 가혹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라고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들이 전범이 아니라거나, 친일행위를 한것이 아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만약 이들이 어쩔수 없이 이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두둔하는 그 순간, 그건 일본에게도 그대로 통용되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버린다? 그건 아니다. 적어도 일본은 이들을 챙겨줘야 하는게 맞았다. 일본정부는 샌프란시스코조약 체결 이후 전쟁부상자와 전사자 유족 등에 관한 지원법을 제정하여 당시 일본군과 그에 준하는자, 유족들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일본 전범들도 이 안에 포함되었다. 그렇게 일본 정부는 당시 군인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하지만 조선인, 타이완인 등 광복 이후 일본인의 국적을 강제 박탈당한 식민지 국가 국민들은 지원에서 제외되었다. 일본에 의해 B·C급 전범이 되어버린 조선인에 대해서 일본은 한일청구권에 의해 전부 해결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친일행위를 했다는 죄로 배척당한 채 힘든 삶을 살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2006년 한국 정부에서는 이들을 전범이 아닌,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하며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일본군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한 피해자들을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른다. 국제법에도 어긋나는 반 인류적인 행태였지만 일본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양국적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는 사과와 배상을 했다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 일본군이 위안소 제도를 만든 이유는?

첫번째. 일본군의 점령지 여성 강간방지: 모든 전장에 위안소 설치는 불가능 했기에 실질적으로 일본군의 강간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두번째. 성병 감염에 의한 전투력 손실방지: 하지만 군 위안소는 오히려 성병을 확산시키는 진원지가 되었다.

세번째. 성적위안 제공: 전쟁터라는 극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정부에서 적극 추친했다.

네번째. 스파이 방지: 병사들이 민간 매춘업소를 이용할 경우 군사 기밀 발설을 우려하여 군 전용 시설로 위안소 설치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겨우 살아왔지만 그녀들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지옥이었다. ‘순결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가족들에게 조차도 버림받았다. 위안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몸 성한 곳이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크나큰 상처를 받은 그녀들이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녀들을 죄인이라 낙인했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른 1991. 고 김학순 할머님이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하였다.이후 많은 시민단체들이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20151228일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분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방안을 밀실협상으로 밀어부쳤다. 20161월 일본 의회에서 아베총리는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 중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없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한국 정부는 피해자인 자국의 할머니가 아닌, 가해자인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3. 그리고..

일본인들은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멀리한 채 전쟁의 희생자, 피해자라는 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심판한 도쿄재판을 지켜본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은 군인을 중심으로 한 국가 지도자에게 있고 자신들은 국가 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책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전후 냉전체제가 강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미국이 일본을 반공의 교두보로 삼고자 피해 국가들과의 문제 해결을 재촉하면서 일본국민들은 과거 일본의 침략과 전쟁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_ P 18

 

일본 국민들은 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 지를 알지를 못 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정권에서 역사왜곡 교과서를 이용하여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닌,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이며, 자기들은 이 전쟁에서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맞은 가엾은 피해국가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베가 미친듯이 바꾸려고 하는 헌법 제 9, 일명 평화헌법. 이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 헌법개정을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은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되기에 반대한다. 그냥 들어도 맞는 말이고 두번 들어도 맞는 말이지만, 이 안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 깔려있다. 본인들이 일으킨 전쟁의 참상이 너무 참혹해서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원자폭탄을 맞았던 전쟁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평화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뼛속까지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20131월 보수정당 소속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폴란드 방문 당시, 42년 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 처럼,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묘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무 계속 사과하는 것 아니냐고. 메르켈 총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나치의 범죄는 무한책임이기 때문입니다.” - P 20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에 대해 일본과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다. 피해국인 한국이 나서서 한일협정이라는 정말 좋고 두꺼운 방패를 가해국 일본에 가져다 바치며 지금까지 삽질하는 동안, 똑같이 가해국이던 독일은 피해국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사과를 하고 또 사과를 하고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3년이 흘렀 것만, 그 때와 지금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모든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막혀있고, 일본은 그때 보다 훨씬 더 우경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겉은 한국인이지만 매일 광화문 앞에서 미국 성조기를 흔들며 일본을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 참 이상한 나라다.

2013년 1월 보수정당 소속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폴란드 방문 당시, 42년 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 처럼,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묘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무 계속 사과하는 것 아니냐고. 메르켈 총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나치의 범죄는 무한책임이기 때문입니다." - P20

"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은 어머니 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머리가 터져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어머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할린의 동포들이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머니는 냉정하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뿐, 자식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머니가 할 짓입니까?"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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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이런 통계가 있었다니!! 제 독서량도 알게되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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