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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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역사서 중 조선왕조실록이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다. 보통은 차기 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서를 편찬한다. 예를 들면 조선초에 집필한 <고려사>가 있겠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에서 집필한 조선 당대의 역사서다. A라는 왕이 있으면 사관이 A왕을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열씸히 끄적인다. A왕이 죽고 B왕이 즉위했다. B왕은 실록청을 만들어 A왕의 실록을 편찬한다. A왕의 실록을 편찬할 때, B왕은 절대로 참여할 수 없다. 몰래 볼 수도 없다. 이는 조선왕조 500년간 쭉 지켜져 온 하나의 체계이다.

 

(참고로 정식적인 실록은 철종 때 까지다. 고종 및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때 편찬되었으므로 기록에 왜곡이 많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은 많다. 많아도 정말 많다. 어린이용 조선왕조실록부터 어른용 조선왕조실록, 작가도 다 다르다. 내가 읽은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열권은 족히 된다. 그럼에도 또 조선왕조실록을 읽었다. 과거에 읽은 책과는 나름 차별점이 있었기에.

 

과거에 읽었던 조선왕조실록은 대게 한권 내지는 두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면 이번에 읽은 이덕일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은 왕 별로 발행했다. 정확히 한 임금 당 한권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한 권당 1~ 3명의 왕으로 묶여있다. 과거에 읽었던 한 두권 짜리 책보다는 더욱 방대하고 세밀한 내용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방대하고 세밀했다.

 

과거에 읽었던 책 조선왕조실록. 당시에는 너무 어렸다. 해서 책에 나온 모든 것이 실제 역사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머리속에 든 것이 많아지면서 깨달았다. 시중에 나온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은 실록 그 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관점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을.

 

그 속에 팩트는 있으나 작가마다 팩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달랐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덕일이라는 한 사람의 주장이 담긴 역사소설로 읽어야 했다. 그 속에서 팩트와 주장을 걸러내고,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평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읽은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면 작가가 주장하는 그대로를 흡수하는 것 밖에 안된다. 물론 작가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성계가 최영에게 말했다.

"이 사변은 내 본심이 아니오. 국가가 편안하지 못하고

인민이 피로하고 원망이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잘 가시오.' - P173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 최영 장군이 직접 요동정벌군을 이끌었다면 조선의 개국이 조금은 늦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뭐 여튼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고려의 수문장 최영 장군은 더이상 고려를 지킬 수 없었다. 그렇게 고려의 기운은 완전히 꺾어버렸다. 이후에는 뭐 일사천리였다.

 

, 꼭 일사천리라고는 할 수 없겠다. 정몽주가 아직 살아있었으니까.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고 나서야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양왕이라고 말한다. 틀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려의 마지막 왕은 이성계다. 이성계는 공양왕의 양위를 받아들여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나라 이름은 그전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과 법제는 한결같이 고려의 고사에 의거한다 - P284

이성계는 그제야 화가위국이 비극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왕씨에게만 비극의 길이 아니라 이씨에게도 비극의 길이었다.

그것이 왕가의 길이고, 권력의 길이었다. -P347

 

고려 말 일개 무장이었던 이성계다. 정도전이라는 책사를 만나 이씨 집안은 왕가가 되었다. 이성계는 왕이 된 후 전 왕조, 왕씨들을 몰살시켰다. 무릇 권력이란, 장애가 된다 싶으면 아들과 아비가 없을진데 전 왕조는 당연히 척살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업보가 고스란히 이성계에게 돌아왔다.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켜 동생들을 죽였다. 정확히는 이방원의 이복동생 방번과 방석이다. 그 뿐이 아니다. 방번과 방석 말고도 이복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 경순공주였다. 다만 그녀는 살아남았다. 대신 그녀의 남편이 이방원의 손에 죽었다. 그렇게 이성계는 자기의 아들이 또 다른 아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아야 만 했다.

 

내 책장에는 본 책의 2권인 정종/태종편이 꽂혀 있다. 언제 2권을 꺼내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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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5
정승원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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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어디까지 가봤니?

너무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베트남을 가본 적이 없다. 해외여행은 허구헌 날 일본만 다녔고, 일본을 제외한 나라는 인도네시아 롬복 딱 한 곳 뿐이었다. 그나마 신혼여행이라 롬복을 간 것이지, 아니면 일본 외의 해외는 지금까지 못 가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 요새 들어 일본 여행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졌나보다. 나에게 일본은 비행기만 타고 돈만 좀 쓸 뿐이지, 언어도 통하고 음식도 맞고 하니 거의 국내와 다름 없다. 해외여행은 '무언가를 향한 도전' 이라는 데, 나에겐 도전이 아닌 해외여행이니.. 해서 그런가 정말 '도전'을 해야 하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그런 나에게 타이밍 좋게도 여행 가이드북 샐프트래블 베트남이 들어오게 되었다.

 

여행 가이드북은 처음이라 이걸 첫장부터 끝까지 정독해야하나, 아니면 맘에 드는 도시만 골라서 읽어봐야하나 읽기 전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책 표지를 넘기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베트남 여행지의 사진을 보자마자 그 고민은 말끔히 제거 되었다. 어떤 식으로 읽든 아무렴 어떠한가 ! 베트남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알아가며, 나만의 여행루트를 계획하면 되는 것을 !



 

최근 많은 방송에서 베트남 여행기를 보여주어서 그나마 베트남의 도시 이름들은 익숙하다. 다만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인지는 잘 몰랐는데, 책에 실린 지도를 보고 알았다. 베트남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길~~ 쭉한 나라였다. 그 와중에 내 눈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베트남 중간을 가로지르는 DMZ. 순간 깨달았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 전쟁, 그 흔적이었다.



 

베트남 지도를 훑어보고 책장을 넘기니,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 지 한눈에 알려주는 목차가 나왔다.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각종 정보를 시작으로, 베트남에서 해야할 모든 것, 베트남을 즐기는 방법, 그리고 각 지역별 정보! 특히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여행자의 관심 분야별로 지역을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근데 구분이 너무 세세하다 ㅠㅠㅠ 여기서 나와 맞는 여행지를 어떻게 골라야하나 고민을 할 찰나에, 바로 옆 페이지에 더 단순히 구분하는 방법이 나왔다. 바로 여행지 선호도 선택! 나같은 경우는 역사 문화 유적파 !! 이기 때문에 후에, 호이안을 선택했다. 추가적으로 도시파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베트남 리 왕조의 유적이 하노이에 있으니 하노이도 PICK


 

여행지를 선택했으니, 계획도 한 번 짜봐야겠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가게 될 테니까 ! 해외 여행 계획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여행시기, 환전 비용 등 인데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베트남 여행 시기북쪽(하노이), 남부(호찌민)10월 부터 5월까지, 중부(다낭)2월 부터 6월 까지 날씨가 좋다. 또 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지만 스콜이 자주 내려 견딜 만 하다. 하지만 언제 가든 비가 자주 오는 것을 각오 해야할 것 같다 ㅜㅜ

여행 비용은?항공료는 25만원 ~ 50만원, 호텔은 1박에 4만원 ~ 20만원, 식사는 1인 기준 5천원 ~1만원. 기타 비용은 11만원, 관광지 입장료나 쇼핑은 별도! 저가 항공 or 국적기, 1성급 호텔 or 5성급 호텔에 따라 여행경비가 많이 갈리는 듯!

환전은?한국에서 달러로 환전 한 뒤 현지 환전소에서 베트남 동으로 재환전 한다. 과거에 롬복 갔을 때도 느꼈지만 한국에서는 동남아권 환전은 조금 ㅠㅠㅠ...... 오히려 현지에서 환전하는 것이 환율이 더 좋다 !

비자는?15일 내 관광 목적일 경우 비자는 필요 없다. 나 같은 직장인은 어차피 길게 여행을 할 여건이 안되니, 크게 문제 없고 !

치안은?범죄율은 낮으나 밤 늦은 시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 ! 택시 사기와 오토바이 소매치기 조심 ! 녹색의 마이린 택시, 흰색의 비나선 택시, 노란색 띠엔사 택시, 흰색 택시그룹 택시가 정식 등록업체 택시라고 한다!





역사와 문화 관광 1번지 하노이.

2천년에 이르는 베트남의 역사 중 1천 년간 수도 역학을 담당했다. 특히 중요한 건 하노이 안에 호찌민 단지가 있다는 것 . 호찌민이라 하면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 초대 주석이 아닌가! 호찌민 단지라는 이름 답게 그 안에는 호찌민의 묘,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 관저 등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총 망라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11세기 경 베트남 리 왕조의 흔적까지도 ! 내가 하노이에 간다면 리 왕조의 흔적이 첫 번째요, 두 번째가 호찌민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할 것이다.

대체 리 왕조가 어느 왕조이길래 이렇게 목을 메냐고 내가 리 왕조에 목을 메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1174년 베트남 리 왕조의 수도 탕롱성, 즉 지금의 하노이에서 6대왕 영종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자로써 비단길을 걸을 줄 알았으나, 1126년에 쿠테타가 일어났고 리 왕조가 망했다. 그 때 이용상은 최측근과 함께 도피하여 바다를 건넜다. 험난한 바닷길을 지나 도착한 곳이 바로 고려의 해안가. 이용상은 그렇게 고려에 정착하였고, 고종(고려 23대 왕)에게 화산군 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여기까지가 옛 이야기!

 

이 이후의 이야기도 있다. 이용상을 시조로 하는 화산 이씨는 지금도 국내에 남아있는다. 여기서 더 대박 사건! 1995년 경 화산 이씨 종친회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화산이씨 종친들을 환대하고 왕손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매년 베트남에서 열리는 리 태조 즉위 행사에도 매년 초대되고 있다. 현재 이용상의 후손들은 한국과 베트남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의 고대도시, 후에.

베트남의 후에는 우리나라 경주에 비견되는 고도라고 한다. 이유인 즉, 이 곳은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으며, 그와 관련된 여러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제일 대표되는 것은 후에 왕궁. 책으로만 봐도 왕궁이 얼마나 넓은지 왕궁을 둘러싼 성곽이 10km에 달한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후에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아픈 DMZ, 즉 비무장지대가 남아있다. 이 곳이 바로 베트남 전쟁의 최접전지 였던 곳이었다. 책에 따르면 DMZ를 따라 베트남 전쟁의 흔적을 찾는데, 이동에만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여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DMZ 일대 관광은 보통 1일 투어 참여로 진행하는 것 같다.

 



여행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섭하다. 하지만....나는 태생적으로 동남아 음식은 입에 잘 안맞아서, 이 부분은 꽤나 걱정이 크다. 방송에서 나오는 베트남 음식들은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데, 난 왜 그 흔한 쌀국수 하나도 잘 못먹겠는지. 그래도 커피는 베트남 커피는 꽤 마시고 싶다. 이건 아무래도 베트남 여행 방송을 본 효과가 컸던 것 같다 ! 무엇보다 책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2번 째로 많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특히 '카페쓰어다' 라고 부르는 연유커피 ! 얼마전에 한국 캔커피 브랜드에서 연유커피 판매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현지에 가서 제대로 마셔보고 싶다ㅠㅠㅠ

 

정말 너무 자세하게, 자유 여행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대체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헀더니, 저자 정승원님은 배낭여행 인솔자란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긴 하나, 나 역시 관광통역사와 해외여행인솔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저자의 행보에 더 많은 눈 길이 간 게 사실이다. 어쩌면 머나먼 미래에, 혹은 내가 애기엄마가 되어서 반 강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후(?) 나의 진로가 이런 쪽일 지도 모르니까 ! 물론 주력 여행지는 다르지만..ㅋㅋ 그런 의미에서........여행가이드북과도 친해져야 하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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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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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혀 있던 지 한참 된 책이었다. 학창시절 외삼촌에게 선물로 받았다. 당시에는 책 속에 있던 용돈 5만 원에만 온 정신이 집중되어 책은 뒷전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2019년 현재. 이제서야 읽었다. 요 근래 나의 관심사가 임진왜란 이어서 그랬을까, 책장에 있던 이 책이 눈에 딱 들어왔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이순신 장군 본인이 작성한 일기를 토대로 각색된 소설이다.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 본인이며, 시점 역시 이순신 장군 본인의 시점이다. 작가는 글이 시작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 글은 오로지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 이순신의 장계, 임금의 교서, 유시를 인용한 대목들은 대체로 이은상의 이충무공전서의 문장을 따랐다. 그러나 글쓴이가 지어낸 대목도 있다. 그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 해전(海戰)의 사실은 대체로 난중일기에 따랐으나,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글쓴이가 지어낸 전투도 있다. 그러나 이순신 스타일의 전투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책의 부록으로 첨부한 <인물지><연보>에서 소설과 사실의 차이가 드러나기를 바란다.

 

이 책은 사실이 아닌, 사실에 기초한 소설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대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겨오고자 했지만, 전개상 지어낸 부분도 있으니 부록인 <인물지><연보>를 보고 독자 스스로 소설과 사실을 구분하도록 했다. 모든 이야기를 사실로 믿을 독자를 위한 배려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정말 소설인지, 이순신 장군 본인의 자서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인 내용 투성이었다. 이는 그만큼 작가님이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다.


 

한산 통제영 모항으로 돌아오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의금부 도사는 선착장에서 나를 묶었다.

의금부 도사에 따르면,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의 죄목은 조정을 능멸했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 P24

 

소설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이 곧 부산으로 넘어오니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토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 고. 이순신은 명령을 거역했다. 일본군이 부산으로 넘어 온다는 정보를 믿을 수 없음이 첫째요, 추운 겨울바다에 며칠이고 진을 펼치며 모르는 적을 기다리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판단이 둘째다. 하지만 선조는 가토의 머리를 원했다. 자신을, 아니 자기의 나라 조선을 지켜주는 수군이 몰살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토의 머리를 원했다. 이순신은 명령을 거역한 죄로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고, 이순신의 자리를 원균이 꿰찼다. 그리고 칠천량 앞 바다에서 조선의 수군은 궤멸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람이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한 결과다. 더 기가 찬 건.... 백의종군 하고 있는 이순신을 다시 불러들여 일본군과 싸우라고 한 것이다. 원균과 함께 궤멸된 수군과 말이다. (*칠천량해전 :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병신년에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되었을 때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을 분명히 알았다.

김덕령은 그렇게 죽었다.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곽재우는 거듭된 심문 끝에 겨우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 P66 ~ 67

 

얼마전 나의 포스팅에 달렸던 덧글이 있었다. 왜 선조가 의병장을 죽였냐고. 난 이 질문을 그 때, 그 곳에 있던 선조를 비롯하여 많은 정부 관료들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왜 당신들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죽였냐고. 그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 한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인데 그렇게 죽일 수 밖에 없었냐고. 왕이 죽이라고 했다고 그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당신들은 사람이기는 하냐고.

 

세계 그 어디를 둘러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백성 스스로가 목숨을 걸었던 경우는 없었다. 조선의 백성은 달랐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낫을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일본군을 상대하였고, 이겼다. 그들의 승리는 조선의 백성들에겐 기쁨이고 환호였다.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에게는 아니었다. 일본에 맞서기는 커녕 의주로 피난을 간 선조에게 의병은 혓바늘 같은 존재였다. 임진년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선조는 많은 의병들을 역모죄로 처형시킨다. 일부 의병은 그것을 피해 산 속으로 숨었다. 정유년 전쟁이 다시 터졌을 때, 그 누구도 의병이 되려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선조가 무엇을 무서워 하는 지를. 본인도 언제든 임금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서 그는 원했나보다. 임금의 칼에 죽는 것이 아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을 수 있기를..

 

이제 서울 백성들 중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이다.

살아남은 백성들이 마땅이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하거늘, 상복 입은자를 볼 수 없으니 괴이하다.

난리중에 강상이 무너지고 윤기가 더럽혀진 탓이로되, 내 이를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서울의 각 부는 엄히 단속하여라 - p193, 선조의 교서

 

임진왜란이 터지자마자 선조는 발에 모터라도 달린냥 빠르게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도망간다. 20일 만에 부산에서 한양으로 진격한 일본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환도했다. 그러면서 저런 교서를 내렸다. 정확히 전쟁이 아직 끝난 상황도 아닐뿐더러, 전 국토가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정상적인 왕이라면 저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집마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고, 산 자가 적기에 입에 풀칠할 여력도 노동력도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구휼미를 내려주는 건 고사하고, 윤리규범을 지키게 엄히 단속하라니 ..

 

항왜, 순왜라는 단어가 있다. 항왜는 투항한 일본인을 이야기하며, 순왜는 일본에 협력한 조선인을 이야기한다. 7년이라는 전쟁 속에서 많은 항왜와 순왜가 있었다. 조선과 전쟁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군이 항왜가 되었다. 선조는 일부 항왜 에게는 관직까지 주며 조선의 군인으로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게 했다.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항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북부 지역으로 쫓겨난다.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후 인조 재위 때 대부분의 항왜가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된다)

 

순왜는 지금으로 치면 친일파, 매국노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잘 보자. 수 많은 순왜들은 대게 힘없는 백성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지켜 주었어야 할 나랏님이 먼저 그들을 버렸다. 심지어 저 멀리 의주까지 도망갔다. 나랏님은 명나라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백성들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그 뿐이 아니다. 선조는 자기 아들들을 각지에 보내어 의병 활동을 독려하라고 했다. 세자였던 광해군이야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임해군, 순화군은 다르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그들은 의병 독려는 커녕 부녀자 겁탈과 민간 수탈을 자행하였다. 참다 못한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에게 조선의 왕자를 그대로 넘겨버린다. 과연 이들을 나라를 버린 매국노라고 욕할 수 있을까?

 

선조는 순왜에게 이런 교서를 내린다. 다시 돌아오면 처벌은 면하게 해주겠노라고.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본인은 제 한목숨 부지하려고 의주로 도망갔으면서 말이다. 기가 차고 코가 찰 노릇이다.

 

잘못된 정보를 주며 수군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했던 선조의 명령, 그 명령을 어겼다고 죽여도 시원치 않다며 이순신을 백의종군 시켰다. 원균이 조선 수군을 몰살시키자 마자 과인의 잘못이라고 얼굴을 싹 바꾸며 이순신을 복직시켰다. 복직시키고 얼마 안있어 조선의 수군은 힘이 없다며 육군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런 선조의 명령을 다시 어길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이순신은 전과 달랐다. 앞서 백의종군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보고서를 작성하여 선조에게 올린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고... 그렇게 승리한 전쟁이 명량해전이다.

 

 

정유년 가을에 나는 타격 방위를 설정할 수 없었다.

조정은 장님처럼 적의 먼 외곽을 더듬고 있었다.

강화 협상의 신기루 속에서 경상 해안 쪽의 점점 더 강력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명의 천자가 일본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밀통해서

내 함대가 아무 곳도 조준할 수 없고 내 칼이 아무것도 벨 수 없게 되는 환영에 나는 진저리를 쳤다 - P260

 

선조가 천군이라고 부르며 치켜세운 명의 원군. 그들은 일본과 협상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인 조선은 뒤로 뺀 채 그들끼리만 쑥덕쑥덕. 그리고 협상이 체결되었으니 일본군이 조용이 돌아갈 수 있도록 보내주라고 했다. 백골이 강토를 뒤덮었다.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을 평화롭게 보내주라고 하다니. 명나라의 말이 백 번 옳다는 선조는 조선의 왕이 아니었다.

 

신하가 몸을 던져 임금을 섬겨야 하는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

난중일기 1597108(정유일기)

 

7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은 그 곳에서 전사했다. 주군에게 버림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선조는 이순신의 죽음에 흔한 애도의 말 조차 하지 않았다. 비문은 커녕 시호 조차 내려주지 않았다. 그의 시호 충무공은 인조가 내려주었고, 비문은 한참 뒤 정조가 내려주었다.

 

수 많은 책, TV방송을 통하여 임진왜란을 보았고 들었고 공부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기적이어서 이순신 장군을 이해하지 못한다. 왕이 자기를 질투하여 죽이려 했고, 버렸고 또 버렸다. 이순신 장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선조를 등지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백성을 지키기 위하여 라는 이유만으로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조선 수군의 총 대장이었던 이순신, 그는 조선의 군대 1/3을 호령하는 자리에 있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왕을 갈아 엎을 수 있었을 뿐더러, 민심도 이순신 그를 향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살면 저렇게 우직하게, 오로지 한 길만 갈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이순신 장군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병신년에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되었을 때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을 분명히 알았다.

김덕령은 그렇게 죽었다.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곽재우는 거듭된 심문 끝에 겨우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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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 - 조선왕조실록 기묘집 & 야사록
몽돌바당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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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人妖), 그것은 도리에서 벗어난 요사스럽고 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분장을 한다거나, 여성이 남성의 분장을 하는 사람들을 인요라고 불렀다. 이러한 단어는 조선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손 꼽히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몽달바당님은 실록에 있는 기사를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한 편의 소설을 만들었다. 책의 제목이자 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는 인요, 그 외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기묘한 기사들을 여러개 발췌하여 작성한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난 시간날 때마다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틈틈히 보면서, 이런 내용이 기록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야사 같은 기사가 나오면 이따금씩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궁금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정사보단 야사가 아닌가! 헌데 야사를 주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설이 나왔다니,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걸까. 아니면 작가님의 문체와 내가 안맞는 것일까. 읽으면서 책과 싸움을 한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보통 싸움을 하게 되는 책이라면 읽다가 덮어버리기 마련인데, 이 책은 주제가 주제인지라 덮어버릴 수 조차 없었다. 작가님의 문체가 나랑 안 맞다고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스토리로 보았을 때는 매우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었기에! 거기다가 작가님 나름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연설명도 나쁘지 않았다. 작가님의 부연설명은 우리나라 매체에서는 큰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던, 조선의 중간관리들 혹은 민초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봉익·김상옥·이세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봉익(李鳳翼)을 사간으로, 김상옥(金相玉)을 교리로, 이세근(李世瑾)을 병조참의로 삼았다. 이세근은 사람됨이 음험(陰險)하고 간사(奸邪)한데, 얼굴을 단장하기 좋아하여 날마다 여러 차례 낯을 씻고 목욕하고, 분을 바르고, 눈썹을 뽑았으며, 의복과 음식이 모두 보통 사람과 다르니, 당시에 그를 인요(人妖)라고 불렀다. 또 성품이 탐오하여 일찍이 접위관이 되었을 때 왜인(倭人)이 침을 뱉으며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다만 붙좇는 데 교묘하여 때에 따라 얼굴을 바꿈으로써 승진하여 비옥(緋玉)에 이르렀으나, 조정의 관원들이 함께 반열(班列)에 서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숙종실록 63권, 숙종 45년 6월 4일 을사 1번째 기사 1719년 청 강희 58년>


이 책의 메인이 되는 이야기 인요.

21세기 현재를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이수혁이 주인공이다.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이라니, 꽤나 파격적이다) 그는 예기치못한 사고로 덕수궁 연못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왠걸 ! 조선 숙종 재위 시절 노론의 일원이었던 정현 이세근의 몸이 아닌가. 흔히 말하는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로 날라가는 타임워프 이야기였다. 타임워프를 소재로 한 소설은 워낙 많기 때문에 작가의 필력에 따라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성공이 좌우된다. 다행히도 인요의 경우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현대를 살던 트랜스젠더 이수혁이 조선의 문신, 인요라고 불리던 이세근으로 깨어났다. 자기가 조선시대로 왔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는 사극을 아주 많이 본 인물이었다. '사극에서 봤었던, 사극에서 나왔던, 사극에서 들었던' 모든 기억을 총 동원하여 이세근으로써 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수염이 있는 본인의 얼굴은 적응할 수가 없었는 지 눈 뜨자마자 바로 수염을 잘라내었다. 하기사 현재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그에게 수염이란 있으면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해서 조선에서는 수염을 자르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히 잘라낸 이수혁, 아니 이세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세근이라는 인물이 기방에서 인요들과 노는 것을 즐겼다는 것이다. 아 물론 소설에서다. 만약을 위해서지만 혹시라도 그의 후손들이 이 책을 본다면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픽션이니 그것을 꼭 감안해주었으면 좋겠달까? 하하하.

혼자서만 조선으로 온 줄 알았던 이수혁. 하지만 아니었다. 과거 군대에 갔을 때 자신이 괴롭힌 후임, 현재는 자신을 좋아한다며 스토킹하던 인물도 조선으로 타임워프한 것이었다. 그것도 왕세자,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몸으로. 현재에서는 이수혁이 우위를 점했었다면, 조선에서는 왕세자의 신분으로 나타난 그가 우위를 점한 것이다. 아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썩 .. 간혹 눈쌀이 찌푸려지는 장면도 있기에 이 부분은 독자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인 듯 하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현재로 돌아온 이수혁, 그가 조선에서 있었던 오랜 시간은 현재에서는 불과 몇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수혁은 다시 본래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스토리 전개과정 혹은 마무리에 대해서는 약간 갸우뚱 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 부분까지 감수할 만큼 흥미로운 주제는 확실하다.


-이보가 졸하였다.

보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무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이나 정원군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중간 생략…

<선조실록 209권, 선조 40년 3월 18일 신사 3번째기사 1607년 명 만력 35년>


책에 실린 여러 단편 이야기 중 하나인 살인귀.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선조의 아들 순화군의 이야기다. 이 부분의 경우 실록에서 순화군 · 임해군 · 정원군에 대한 기사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던 지라, 다른 이야기보다도 더욱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순화군의 이야기는 워낙 기록에 남아있는 것이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흥미진진한 전개까지는 못 미친 것 같다. 대신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는 이점이 있어서 그런지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소설을 쓰신 것 같았다. 앞서 수록된 소설들이 픽션소설 같다면, 살인귀 이야기는 이른바 팩션소설 같달까? 해서 역시나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들 순화군에 대하여 아버지였던 선조가 어떤식으로 대처했는 지 등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여 스토리를 전개하였다면 더 멋진 팩션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은 후 막연하게 느낀 사실은 이 책은 작가님이 처음 집필한 작품이 아닐까? 라는 것 이다. 읽으면서 색다른 주제 ; 파격적인 주제를 선정해서 좋았고,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흥미로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약간은 어설픈, 마음만 앞서는 듯한 스토리 전개도 분명히 있었기에. 주인공들의 일부 대사에서는 인터넷소설에서 볼 법한 문구가 나오기도 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의 취향이니 독자에 따라서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님께서 조금만 더 노력을 하신다면 나같이 편향적인 시선을 가진 일부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집필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작가님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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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진
이완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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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 이백년간 평화에 젖어있던 조선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왜놈이라고 부르며 비하하던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온 것이다. 그 유명한 임진왜란이다. 이때 조선왕조실록과 어진을 보관하던 세곳의 사고(춘추관, 충주사고, 상주사고) 가 잿더미가 되었다. 그 안에 있던 실록과 어진 역시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 왕들의 어진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이유인 즉 이러하다.

임진왜란 때 불타서 사라진 세 곳의 사고 말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고가 있었으니 전주사고 이다. 전주사고가 튼튼하거나 방비가 잘 되어있어서 실록과 어진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실록와 어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조선의 역사를 지키고자 했던 민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하필 몽진 일까? 몽진 이란 '먼지를 뒤집어쓰다; 급박한 상황에서 먼지를 쓰고 떠난다' 라는 의미이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길을 나선 선조를 두고 '왕이 몽진하였다' 라고 한다. 해서 나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의 주인공 유생 안씨와 손씨를 비롯한 여러 민초들은 실록과 어진을 들쳐매고 왜적의 눈을 피해가며, 온갖 위협과 고난을 넘기며 피난길에 올랐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민초를 지켜야할 나랏님조차 도망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민초들은 자기가 살고있는 조선을 위하여 천여권이 넘는 국가의 서적과 어진을 지키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가며 피난길에 올랐다. 이런 것이 작가님이 말하려 한 진짜 몽진이 아닐까?

 

"나랏일? 나라가 있기는 하더냐? 온 나라가 왜적에게 짓밟혀 죽고 약탈을 당해도 나라가 한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차라리 내 힘으로 나를 지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느니라" - P 081

 

나이든 유생 안과 손은 실록을 들쳐매고 피난길에 올랐다가 산적을 만난다. 안과 손은 자기들이 나랏일을 하고 있으니 무사히 보내달라고 하자 산적이 한 말이다. 왜적에게 짓밟혀 죽고 약탈을 당해도 나라가 한일이 무엇인가. 뼈를 때리다 못해 부러뜨리는 말이다. 안과 손도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나라를 위해, 실록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산적은 이런 늙은 유생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심지어 그들이 실록을 무사히 옮길 수 있도록 호위무사를 자청한다.

 

"저희들도 비록 산적질을 하며 살고 있지만, 나랏일을 한다는 마음에 잠시 사람처럼 사는 것 같아 신명이 났었습니다" - P 144

 

산적도 역시나 조선의 백성이었다. 전쟁이라는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 뿐이었다. 좋은 왕이 다스리는 땅에서 살았다면 농사를 지으면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행복을 느낄 그런 민초들이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왕을 잘못만난 죄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살기 위하여 산적이 될 수 밖에 없었으니까..

 

"우리 스님들도 나랏일에 보탬이 되어야지요. 용굴암까지는 우리 스님들이 옮길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P 151

 

실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피난길에 도움을 준 사람들은 산적 뿐만이 아니었다. 스님들도 실록을 옮기는 데 힘을 보탰다.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과 어진을 영은산(정읍 내장산)까지 옮기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구의 눈에 띄어도 안되었고 마음을 나쁘게 먹은 사람들 눈에 띄어도 안되었다. 여러 민초들의 힘이 모여졌기 때문에 비로소 실록과 어진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록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들은 왜구가 아니었다. 같은 조선 사람이었다. 실록에 부끄러운 내용이 기록된 사람들, 왜적에 투항한 벼슬아치.. 그들이야말로 실록 보관에 제일 위험이 되는 사람이었다. 나쁜놈들은 자기가 하는 짓이 나쁜짓이라는 것을 제일 잘 알고 있고, 그것에 기록에 남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 지를 잘 알고 있다. 해서 사고를 떠난 실록을 탈취하기 위해 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사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도 있는데, 그런 왕 밑의 신하들이라고 배운 것이 뭐가 더 있었겠는가.

 


이 책은 작가님이 말했 듯 '역사소설' 이다. 기록된 역사에 상상력을 살을 덧붙여 작성한 소설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완전 픽션인가? 라고 하기에는 사실과 맞닿은 부분이 너무 많다. 임진왜란 당시 실록을 옮긴 과정을 기록한 책 수직상체일기1)에 수록되어 있는 실제 사실을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1) 수직상체일기: 실록을 보관했던 나이 든 유생 안의의 친필 일기. '전주사고내장산 용굴아산해주강화안주묘향산'으로 옮겨간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안의와 손홍록은 사재를 털어 30여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370여 일간 왜적을 피해 실록와 어진을 지켰다)

 

왜구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만 조선을 지킨 위인이 아니다. 실록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안의와 손홍록 역시 조선을 지킨 위인이다. 뿐만 아니라 안의와 손홍록과 함께 실록을 지켰던 두 명의 참봉과 수복 한돌(한춘), 무사 김홍무 역시 조선을 지킨 위인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사와 고려사를 공백으로 남겨두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은 이들의 업적을 끝내 정사인 실록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선의 역사를 지킨 위인들의 이름은 잊혀졌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이들 덕분에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조실록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음을..




"나랏일? 나라가 있기는 하더냐? 온 나라가 왜적에게 짓밟혀 죽고 약탈을 당해도 나라가 한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차라리 내 힘으로 나를 지키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느니라"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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