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걸작 논픽션 6
신슈밍 지음, 쭤위안보 엮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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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구입한 책,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자금성에 있었던 16명의 환관(태감)들이 구술한 회고를 묶은 내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종이나 순종부부, 의친왕 등을 모셨던 내관이 작성한 '대한제국 황실비사' 라고 할 수있다. 즉 청 황실에서 일어난 수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황실비사'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미를 당기게 하는 소재다.


황실비사라는 것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데, 저 먼 왕조의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에서 제일 가까운 왕조인 청나라의 이야기라니 이것은 읽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중국 드라마로 청나라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


나는 생각보다 중국 드라마를 자주 봤다. 심지어 어려서 제일 처음 본 외국 드라마가 중국드라마 '황제의 딸' 이었다. 당시에는 어렸기에 tv에서 방영해준 중국 드라마만 보다가 철이 들 무렵부터는 P2P에서 다운받아가며 여러 중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중국사를 수박 겉핥기 정도나마 알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중국드라마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그런 중국 드라마에서 꼭 빠지지 않는 배경이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때의 이야기다. 이 3대의 황제 때가 청나라의 최고 전성기 였기 때문에. 아 물론 건륭제 후반부 즈음에 이미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 것이 가경제, 도광제를 지나 훅훅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함풍제 때 이르러 그 유명한 서태후가 나온다. 함풍제 당시에는 서태후는 태후가 아닌 그저 귀비였고, 함풍제 사후 그녀의 아들이 황제가 되면서 태후 자리에 오르며 그 유명한 서태후 시대가 개막된다.  

 

내가 생각하는 서태후의 이미지는 '청나라를 무너뜨린 요녀' 라거나 '냉정하고 잔혹한 성정을 지닌 여자', '권력을 놓지 못하여 아들도 죽인 여자'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헌데, 그녀의 측근이었던 태감들은 이런 서태후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도 너무 긍정으로 이야기를 해서 놀랍기 그지없었다. 물론 자신이 과거에 모시던 상전이라지만, 서태후가 죽고 난 뒤에도 쭉 '저 사람은 내 주인'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정에서 군기대신들을 대할 때면 더 없이 온화하고 자상하면서도 그 표정과 자태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있었다.…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이라 할 수 있다. P 40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태감들, 서태후를 모셨던 태감들은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저렇게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면서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너무 세세하게 구술하고 있어서, 대체 왜... 어떤 면에서 저렇게 충성 충성 할 수 있나 의아할 뿐이다. 심지어 서태후가 기분이 안좋을 때 태감들은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가장 잔인했던 일은 바로 서태후가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였던 일이다.

궁안 태감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 노인은 이 일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서태후 자신은 젖을 잘 내는 두 부녀를 선별해 매일 같이 온 몸을 깨끗히 씻게 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서태후는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다.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대소변을 먹이는 것

이것이 바로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P 419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음에도 서태후를 높이 우러러 본 태감들이다. 이게 정말 사실인걸 까 싶다가도 지금껏 봐온 청나라 시대의 드라마를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꽤 많은 태감과 궁녀들이 자기의 상전이 어떠한 나쁜 짓을 일삼든 상관않고 무조건 충성을 받쳤으니 말이다. 이런면을 보면 중국 드라마도 꽤 수준 높은 고증을 한 느낌이랄까?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서태후가 시안으로 피난을 가야했던 시기에 사건이 터진다. 당시에 서태후는 자신의 손으로 황제로 만든 조카 광서제를 포함하여 여러 궁인들과 함께 시안으로 피난을 가야 했는데 그 와중에 눈에 가시였던 후궁 진비를 죽음으로 내몬다. 겉으로는 진비가 관직을 매매하여 죽였다고는 하나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 처사가 매우 잔혹한 것만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진비 궁의 수령태감 30여명은 신형사에서 장형으로 죽었다. 


물론 이 책은 서태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태후와 동치제의 살벌한 모자관계, 황후와는 앙숙이면서도 향락을 일 삶다가 화류병에 걸려 일찍 죽은 동치제, 권력을 놓을 수 없어서 자신의 조카를 황제로 삼은 서태.ㅎ..........앗 그냥 이 책에 있는 황실 내용은 죄다 서태후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가 없다. 아! 책의 내용이 환관들이 구술한 기록이니 만큼 환관들 자신의 이야기도 꽤 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환관이 되었는지, 환관으로써 무엇을 해야만 했는지,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끝은 언제나 본인들은 좋은 상전을 모시는 복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래저래 확실한 건 이 책은 청나라에 대한 얕은 배경지식이라도 없다면 읽기에는 조금 버거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정에서 군기대신들을 대할 때면 더 없이 온화하고 자상하면서도 그 표정과 자태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있었다.…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이라 할 수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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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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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나라 조선


조선에서는 성리학에 어긋나는 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유를 들어 책과 책의 저자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의 사회상을 더 심도 있게 해석하려고 한 듯 하다. 즉 저자는 금서가 되어버린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 그 책이 금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가 어땠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중반이 되면 사회적으로 앎의 욕구기 높아지면서 그에 맞춰서 책을 읽고자, 혹은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계속된다. 하지만 당시의 기득권 층은 그 요구를 끝까지 묵살했다. 당시 사회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것,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바로 권력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당시 백성들에게 앎을 허락하지 않았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 담겨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 내의 풍부한 서적을 보유한 개인 소유의 도서관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보는 것만도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 주인은 책을 빌려주지도 않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손님에게 절대로 책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로서는 빌려주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왜 그 책을 그렇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그러한 조선인의 관습을 설명하기 힘들다.

-선교사 호머 B 헐버트



만일 만 권의 책을 저쟁해놓고도 빌려주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햇볕을 쏘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빌려주지 않는 것은 인(仁)하지 못함이요,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함이요,

햇빛을 쏘이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지 못함이다.

사군자가 글을 읽자면 남에게 책을 빌려서도 읽는 법인데

책을 꽁꽁 묶어놓기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덕무


수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위의 두 문구이다.


이 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 즉 고도의 기술인 인쇄술이 서양의 인쇄술보다 최소 2백년이 앞섰던 것이다. (개성에서 발견된 금속활자 '복' - 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고도의 기술을 권력의 도구로만 사용했다.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역시나 책은 기득권층의 소유물이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던 시대였으며 그 권력을 일개 백성들에게 나눠줄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반면 서양의 금속활자를 제작한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제작하여 널리널리 보급하였다. 서양의 인쇄술은 이때를 기점으로 기하학적으로 발전하였고 백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수 만권의 책들이 발간되었다.

많은 일반 민중이 읽었고 그렇게 그들은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리고 서양은 엄청난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근대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조선에서는 기득권층이 책을 꽁꽁 숨기고 심지어는 죽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양반들끼리도 이럴진데 일반 백성들이 책을 보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구했더라도 책이 전부 한자로 되어있다면 ? 정말 택도 없는 일이다.


앎의 권리가 없었던 백성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모른 체로 살아왔고 비합리적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국가에 위험이 있었을 때 마다 제일 먼저 희생을 당했다. 지금 껏 아는 것이 없었고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해왔던 힘 없는 백성이었기에..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수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진위여부 판단이 필요한 경우도 많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는 건 지금도 유효한 전제이다. 우리의 힘 없는 조상들은 못했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감시가 지금은 가능하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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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100배 즐기기 - 유후인.벳푸.기타큐슈.나가사키 19'~20' 개정판 100배 즐기기
RHK 여행연구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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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 부모님을 모시고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해뒀어요. 부모님과 가는 여행이라 이것 저것 신경쓸 부분이 정말 많이 있는데, 이 책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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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 독립선언
강세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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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3년 차, 직장인 5년 차, 만 28세 여성. 지은이의 프로필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또래였고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는 모든 청춘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지옥철에 힘들어하고, 은행의 노예가 되는 운명을 택했다. 나 또한 자진하여 은행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서글픈 인생이다.




내가 생각해도 난 그냥 적당히 잘 자랐다.

엄마는 "작은 딸은 거저 키웠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자랐다는 뜻이다.

어른들 말에 무조건 순종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쁜 아이 경계선을 밟아본 적은 없다.

나에겐 착한 아이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P. 102


우리 엄마 역시 친척 어른이나 지인에게 저런 말을 곧잘 하셨다. 맏딸로 태어나서 그런 것일까?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물론 말썽을 안 피웠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다만 그 말썽이라는 게 남동생과 다투는 정도였고, 그 이상의 말썽을 피운 적이 없을 뿐이다. 또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그녀처럼 적당하게 자라는 착한 아이가 되었고, 그 모든 것이 답답해졌을 때는 이미 그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릴 때 좀 더 다양한 어른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한다. 

자라면서 봤던 어른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을 주축으로 친척 어른들과 부모님의 지인 정도가 전부였다.

그들은 모두 나를 비슷한 인생으로 안내했다.P. 112


요새 들어서 사무치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 황금 같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저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나의 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나의 삶은 1%라도 조금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혹은 늦게나마 알게 된 나의 꿈,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 아닌 그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시간만 축내는 것이니, 후회할 시간에 나의 꿈을 위해 조금이나마 공부를 하는 쪽이 더 낫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존과는 다른 어른으로 나이 먹는 거다.P. 115


오늘 거울 속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1%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사회생활 슬럼프는 3, 6, 9년 차에 온다던 선배들의 말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오늘 하는 일과 내일 해야 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걸 계속 반복한다고 더 나은 사람 또는

더 잘하는 마케터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P. 137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꽤 빠르게 취업을 하였고 올해 들어 직장인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정말 서글펐다. 또래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청춘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사회에 빨리 내던져졌을까 싶었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공부했고 수능도 이 정도면 괜찮지! 싶었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다. 그렇게 2년제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대학시절은 2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바로 취업. 하지만 그런 마음도 길게 가지 않았다. 


첫 슬럼프가 온다는 직장생활 3년 차에 슬럼프는 커녕 쾌감을 느꼈다. 나는 소위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회사에 자리를 잡았고 적응을 한 반면 또래 친구들은 취업 준비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니까. 나 스스로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얄미웠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나에게 위로를 하고 싶었다. 일종의 자기 위안이었다. 


물론 나 역시 3, 6, 9년 차의 법칙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는지 1년이 지난 4년 차에 슬럼프가 왔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루했고, 변화가 없는 일상이 지겨웠다. 어떻게든 슬럼프에서 빠져나와야 될 것 만 같아서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 2년제 졸업이라는 꼬리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도 한 몫했다. 그렇게 난 일단 질러보자는 심정으로 4년제 대학에 편입하였고 일과 학과를 병행하였다. 그리고 졸업! 뿌듯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소리 없이 외쳤던 것들이

모두들 한 번씩 겪는 일이었다는 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게 그냥 삶이구나, 삶은 이런 거구나,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여졌다.P. 237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하늘을 원망할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 이상하게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전부 행복해 보인다.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은 나 혼자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사람살이가 다를 리가 있겠는가? 알고 보면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저 사람도 죽을 만치 힘든 일이 있었고, 내 옆에서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울메이트도 말을 안 할 뿐 힘든 일을 버티고 있다. 그러니 그저 버틸 수밖에 없다.


다들 그 정도는 아프면서, 견디면서 살아가P.237


어쩌면 냉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한마디는 힘들어하는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갑옷과도 같다. 물론 가끔은 냉정함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나만의 동굴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가끔 그 안에 들어가 숨습니다.

그곳에서 머리를 비우고, 생각이 가득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P. 97 (유병욱 '생각의 기쁨' 中 )


그때는 나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자. 동물이 겨울잠을 자듯 나 역시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거다. 모든 상념이 가라앉을 때까지.겨울잠을 깨고 나올 나는 어제의 나보다 한 단계 성숙해져 있을 테니.


내가 생각해도 난 그냥 적당히 잘 자랐다.

엄마는 "작은 딸은 거저 키웠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자랐다는 뜻이다.

어른들 말에 무조건 순종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쁜 아이 경계선을 밟아본 적은 없다.

나에겐 착한 아이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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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동경
정다원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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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부하는 것이 있다. 다독을 하는 사람에 비하면 터무니 없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이 정도면 나는 책을 꽤 많이 읽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해 하며 책장을 보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책을 편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사는 집의 책장과 친정 집의 책장의 8할이 역사 관련 서적이었다. 나머지 2할은 장르소설이나 만화책, 취미실용서 정도였다. 정말 편식을 해도 너무 편식을 한 것이다.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볼까 싶어도 워낙에 읽어본 적이 없기에 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던 어느 날, 상상출판 표지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한 권 받았다. 그 책이 바로 여행 에세이 #소소동경 이었다. 내 인생 첫 에세이였다.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도쿄라는 도시의 매력을.


이 책의 저자, 정다원 님은 도쿄에서 4년을 살았다. 그리고 도쿄를 떠나 여러 나라에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도쿄에서 보낸 4년 간을 잊지 못하여 도쿄 여행을 자주 한다. 도쿄에 살아본 적은 없는 나지만, 나 역시 도쿄에 첫 방문하였을 때 그 느낌을 잊지 못하였다. 심지어 6박 7일, 장기라면 충분히 장기적은 해외여행은 도쿄가 처음이기도 했다. 두 발로 도쿄 땅을 밝으며 이 곳 저 곳을 다녔고, 그 추억이 자꾸 맴돌아서 해마다 찾아갔던 도쿄였다.


아무리 도쿄를 자주 방문하였더라도 그 곳의 현지인이 아닌 이상은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단골집이다. 저자가 말하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에서는 손님이 주인장을 마스터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누가 봐도 처음 오는 손님이 아닌 단골집 주인과 손님의 관계. 손님이 가게에 오면 마스터는 한결 같은 표정으로 손님이 항상 먹던 음식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손님은 마스터에게 미주알 고주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는 어땠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스터는 항상 그 이야기를 들어준다.


요즘같은 현대 사회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 까?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세상이 너무나 각박해졌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마스터 만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왜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들어준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유가 될테니까.


저자는 마츠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마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 서로 돕고 산다는 연대감을 일깨워 주었다 고. 헌데 마츠리에 대해 이해를 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일본의 마츠리는 공동체 의식이 빛나는 마을 축제라기 보다 더 무거운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타공인 신도(신토)를 믿는 국가다. 일본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십, 수백, 수천의 신이 있다. 그 신들을 위해 작게는 마을 단위에서 도시 단위로 많은 신사가 있다. 마을 골목 골목에 보이는 아주 자그마한 신사 '호코라',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신사(진쟈)가 바로 그것이다. 덧붙이자면 신사도 세세하게는 여러 등급으로 나뉜다. 신궁과 대사(타이샤), 궁(구)과 대신궁(다이진구) 그리고 일반적인 신사이다.


보통 마츠리는 이러한 신사에 모셔져 있는 신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행위이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기도한다. 또한 가족과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후자의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은 한국의 제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행위이지만, 전자인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라는 행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한국인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자손을 이롭게 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이지만, 일본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일본은 사람이 죽어서 귀신(원령)이 되면, 언제든 자신들을 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寃: 원의 개념). 하여 귀신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도록 달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일본 가정집 내부에 조그마한 제단이 있는 것도 아마 일맥상통한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제사 행위, 즉 마츠리가 마을 단위로 점점 커지면서 우리가 아는 일본의 마츠리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덕분에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지탱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등굣길의 초등학생들이 하나 같이 똑같은 가방을 메고 있는 사실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일본을 갈 때마다 보았던 모습이었고, 저자와 똑같이 궁금했다. 대체 이 학생들은 왜 불편해 보이는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걸까? 하고. 그리고는 그 때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또 같은 의문이 들었지만, 뭐 학교에서 정해줬겠지 싶었다. 헌데 왠걸 !! 책에서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주었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튈까 봐 …


일본에서는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이 폐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던 그런 민폐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민폐행위에 더해서 일본의 집단주의 정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집단주의 정서를 이들이 말하는 폐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공동체의 이익과 안정을 우선시 하며, 이를 깨뜨리는 돌출된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폐를 끼친다는 의미가 너무 넓다고 해야할까, 이해가 안된다고 해야할까. 나름 일본문화를 많이 접했다고 자부했고, 그만큼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도쿄 여행 에세이라고 내세웠고 실제도 도쿄의 여러 지역을 소개해주었다. 저자 역시 본인의 책은 '도쿄 졸업 일기' 혹은 '졸업 논문' 이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이 책은 도쿄만 소개한 것이 아니다. 도쿄의 생활이었지만 실제로는 도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일본의 문화와 생각, 생활을 보여주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이제라도 알게 해준 이 책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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