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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평점 :
✅ 조금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섬뜩한 가족 이야기.
이 책은 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탐구하는 일에 천착해온 고전 큐레이션의 대가 유광수 교수가 ‘가족’을 주제로 새로운 고전 톺아보기에 대한 책이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혈연이라는 끈끈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사이가 되기도 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이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읽었던 <손순매아>,<장화홍련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구운몽〉, 〈옥루몽〉, 〈홍계월전〉, 〈변강쇠가〉, 〈열녀함양박씨전〉 등 삶과 죽음, 선과 악에 관한 탁월한 통찰과 현실 비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전을 다시 읽는 이유는 원본 작품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을 새롭게 맛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귀감을 찾고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현재 삶의 문제를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상징들을 지금의 가치관, 세계관에 맞춰 바라보고, 해석의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며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 바로 고전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는 〈손순매아(遜順埋兒)〉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 옛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인 ‘효자담’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가장인 손순이 노모를 더욱 극진히 모시기 위해 자신의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려고 산에 올라갔다가 땅에서 돌 종을 발견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금이 손순을 ‘지극한 효자’로 칭송하여 상을 내렸다는 줄거리다.
정말 손순은 효도하기 위해 아이를 생매장하려던 것일까? 그리고, 효를 위해서라면 자식을 살해하려던 아비의 죄는 용서될 수 있는 것일까? 저자의 생각은 단호하다.
아무리 손자가 밥상의 음식을 날름날름 집어먹는다 해도 노모가 손자를 땅에 묻어버리길 원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손순은 가난한 살림에 하나라도 먹을 입을 덜기 위해 자식 살해를 모의했던 것이고, 그것을 ‘효’라는 명목으로 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잔혹한 얘기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상적인 과자 집이 등장하는〈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도 끔찍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계모의 윽박을 못 이긴 무능한 아버지가 깊은 산속에 어린 남매만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흉년이 들어 살림이 궁핍해지자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남매를 유기한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저자의 통찰로 새로운 시각을 갖을 수 있는 책이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 눈,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준다.
자식은 언제나 부모를 배반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 한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에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무엇이라도 강요할 수 없다는 것, 가족이라고 해서 잘못이 덮어질 수는 없다는 것.
좋아서 같이 사는 거라면 그만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래야 비로소 행복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 책속으로 :
〈홍길동전〉에서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바로 소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길동이 조선을 떠나 바다 건너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처와 첩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산다. 그렇게 끝난다. 바로 이 부분이다. 서자로서 그렇게 괴롭힘과 설움을 당한 길동이 제 스스로 첩을 두다니 이게 될 말인가 하는 비판이 인다.
이것은 두 가지를 떼어서 보는 대신 합해놓고 보는 바람에 생긴 문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길동이 벗어나고자 한 것은 ‘적서차별의 문제’이지 ‘처첩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 길동은 적자와 서자의 차별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 근본적으로 첩을 반대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길동은 처의 자식이든 첩의 자식이든 공평하고 균등하게 대우하고 관직에 진출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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