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유전자 -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하여
요아힘 바우어 지음, 장윤경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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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인류가 저지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전쟁, 가난, 혐오, 파괴, 기후 위기,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저만 살겠다고 우리 공동체를, 그리고 지구촌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명제가 이 모든 행위를 가능하게 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인간은 정말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본성을 지닌 존재일까? 인류 그리고 지구의 미래는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일까?

필자의 개인적인 철학 사고를 갖고 말하면, 이타(利他)의 이면에 있는 진짜 이유가 이기(利己)라면 그것은 진정한 이타가 아니다.

진정한 이타가 아니면 자비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기적인 요소가 없이 오로지 이타를 말하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이 전체적인 사유는 ‘남과 나를 구분하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며, 나를 위하는 것은 너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너를 위하는 것은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며, 두 가지는 완전히 구분된 개체이다.’라는 구조이다.

이 구조 자체가 수렁에 빠지게 하는 관건이며, 우리에게 합리적인 해답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가령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동력이 이기에 있다면, 이타적인 행위의 동력도 당연히 이기에 있지만, 이기를 출발점으로 하는 이타는 진정한 이타가 아니다. 이러한 사유 구조에서는 단순한 이타적인 행위는 불가능하게 된다.

마음에 남과 나를 구분하는 이러한 사유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먼저 이기와 이타의 절대적인 구분을 없애야 한다. 그것을 없앨 수 있어야 이 사유의 늪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날 길을 찾고 어리석음[無明]에서 깨어나 이 모순을 없앨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요아힘바우어 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유전자는 의미 있고 인간 친화적이며 사회적 태도에 반응한다. 환경적 요소와 생활 방식에도 반응한다.

따라서 가치 중심적이고 공동의 삶을 지향하는 내면의 태도는 우리에게 이로운 유전자 활동을 이끌어내며, 그로 인해 우리가 건강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게 대적할 이 책을 모두에게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 책 속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공명을 찾는 행위다. 아이들은 각자 지극히 다른 행위를 드러낸다.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 또한 무의식적인 호소인 경우가 빈번하다.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세계는 우리를 무감각하게 또는 우울하게 만들며 공격적인 성향을 키운다. 그러면 결국 중독될 만한 것을 찾아서 의지하게 될 수도 있다.

아동과 청소년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공명도 받지 못하면 몸을 돌리고 만다. 그렇게 공명이 결핍된 틈 사이로 소셜 미디어나 그 외에 인터넷 세계가 제공하는 다른 무언가가 밀려들어온다.

#공감하는유전자 #매일경제신문사 #인문학 #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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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 - 소설로 읽는 붓다의 가르침
김정빈 지음 / 덕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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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종교로서, 학문으로서, 철학으로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경전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불교 철학을 40년 넘게 공부한 필자도 난해하고 어렵다. 하지만 불교공부를 하는 목적은 인생이 고통이라는 진리와 그걸 극복하기 위해 삼독을 제거해 나가는 수행, 그리고 마침내 무아를 체득해 궁극의 경지에 올라가는 길이 우리가 불교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합목적적’인 이유이라 생각한다.

불교를 배우는 것은 사실 새로운 관점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을 배우는 것과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은 다르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은 이전에 알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새로운 관점을 배울 때는 반드시 기존의 관점을 아예 제거해야 한다. 이런 학습 과정은 일종의 지식 전체에 대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낡은 배를 완전히 뜯어내고 새 배를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기존의 낡은 관점을 아예 제거해야 하는 이러한 일 자체가 가장 어려운 단계이다. 이 어려움 또한 집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철학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가 정말로 옛것을 제거하고 새것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고, 본래의 지식 기반이 이미 제거되어 아무런 지식 기반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지식이 기존의 낡은 지식보다 더 진상(眞相)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이점에 대하여 불교는 대체로 진짜로 새로운 관점을 파악한다면, 저절로 이것을 진실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고 본다.

진상을 발견하는 이러한 인식 과정을 ‘지혜의 직관(直觀)을 통한 깨달음’이라고 한다.

마치 탐정이 안개처럼 뒤섞인 실마리 속에서 갑자기 하나로 꿰뚫는 일관된 생각을 보았을 때, 영감이 번쩍이고 안개가 걷히며 세상의 모든 것을 간파하여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한없이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불교를 읽고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상태를 ‘도를 깨우쳤다[悟道]’라고 한다. 하지만 도를 깨우쳤다는 것은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그 단계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이 정말로 이러한 새로운 관점으로 바꿔서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본래 기존의 낡은 관점과 고통을 가져오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고 깨달음이다.

그런데 단지 이러한 관점을 배운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 쓸모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현재 지니고 있는 지식의 기반 위에 새로운 관점을 더하는 것일 뿐이며, 이때의 새로운 관점은 기존의 낡은 관점에 의해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진정으로 체득해 깨달아야 한다. 체득해 깨달으면 진정으로 새로운 관점을 깨달아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내려놓게 된다.

이 책은 1984년 소설 《단(丹)》으로 다음해 1년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을 단학(丹學), 기(氣), 수행, 명상 열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던 김정빈 작가의 불교 소설이다.

2022년 4월 미국 Mascot Books에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동시 출간되었고 붓다가, 간음을 저지르고 수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엄청난 죄업을 지은 빙기사를 만나기 위해 제따와나(기원장사) 사원에서 남쪽의 항구도시 숩바라까로 가는 여섯 달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삶과 초월, 선과 악, 운명과 자유의지, 꿈과 이상에 대한 불교 사상이 장엄하게 전개되어 있으며, 빨리대장경, 한역대장경, 티베트대장경 등 3대 불교 경전의 핵심 사상을 소설을 읽다 보면 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책 속으로:

괴로움의 진리는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요, 늙음은 괴로움이며, 병듦은 괴로움이요, 죽음은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은 괴로움이요,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니, 간략히 말하면 집착하는 심신은 괴로움이다.

그러나 너는 알아야 하나니, 여래가 삶을 괴로운 것 이라고 설하는 것은 염세주의자여서가 아니다. 밧디야여,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삶에는 즐거움도 많은데 세존은 왜 삶을 괴로운 것이라고 설하시는가?’라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P.S: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대는장차붓다가되리라 #김정빈 #덕주 #불교 #불교문학 #소설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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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이기봉.이태호 지음 / 덕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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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도시 안동에 가면 #도산서원 이 있다. 도산서원은 지식을 구축하고 이를 특정 경로를 통해 확산시키는 기초 단위였다. 말하자면 서원은 이 공동체들이 작업하는 미시 공간이었던 것이다.

도산서원의 서적 간행은 지식을 다른 곳으로 전달하고 퍼뜨리는 역할을 맡았고, 지식 사이의 교환이 일어나도록 도왔다.

또한 서로의 인적 연망관계도 다양하게 했다. 이처럼 도산서원은 지식을 발견하고 저장해서 정교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서점이나 책을 유통시키는 시장이 극히 드물었던 조선사회에서 지방의 지배 엘리트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선호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했던 지식을 퍼뜨렸고, 그 과정에서 서로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는 담론 공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도산서원은 퇴계의 학문적 명망과 함께 시간이 흐를수록 영남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다. 안동 중심 영남에서 이황은 학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영남, 특히 안동지역의 문집 간행을 저자의 학문적 업적의 결과라기보다는 문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 컸다.

실제로 조선 후기 문집의 간행은 조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후손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손들은 문집을 통해 문중의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문중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크게 드러내 보였다.

간행된 문집을 지역의 사족과 다른 문중에 배포함으로써 문중의 건재를 널리 알리기도 했으며, 문집의 공유를 통해 다른 문중과 학문 및 사상뿐만 아니라 사족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문집 간행은 문중의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서원이 강학과 장수를 위한 기구임을 그렇게 강조한 퇴계 역시 현실에서 서원을 세울 때는 계기를 사림계가 존봉하는 인물의 연고지에서 구했다.

성주에 고려 말의 학자 이조년李兆年을 위해 영봉迎鳳서원을 건립하려 할 때 김굉필의 처향妻鄕이어서 왕래했다는 연고를 들어 함께 제향할 것을 제안한 것이라든가, 특히 예안 출신의 인물인 역동易東 우탁禹倬에 대해 그를 제향하는 서원이 없다는 것은 예안 사림의 수치라고 하면서 제자들에게 역동서원의 건립을 독려했던 것이 좋은 예다.

이산서원이 퇴계 제향에서 기선을 잡았지만, 퇴계가 벼슬할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머물렀고 특히 만년 10년 동안 많은 저술 문자를 남기면서 문인들과 더불어 강학하던 향리인 도산에 서원이 없을 수는 없었다.

도산에 서원을 세우자는 여론이 일어나기는 퇴계의 장례가 끝난 선조 4년 봄, 아마도 문집 편찬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던 역동서원의 모임에서였을 것이다.

이후 서원을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공식화된 것은 이듬해인 선조 5년 4월에 열린 도산서당 문도들 모임에서였다.

이 기록은 서원 건립에 관여했던 몇몇 문인의 연보에 공통되게 나오고 있다. 이때의 모임에서 ‘선사를 제향하는 사묘尙德祠’를 도산서당 뒤에 세우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도산서원이 완성되자 그 위상은 먼저 이뤄진 여강서원을 능가했다. 역시 퇴계의 본거지로서 도산서당이, 명종이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을 정도로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미처 퇴계 판位版의 봉안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조정으로부터 사액이 내려왔다.

일반적인 사액은 유생이 청액소請額疏를 올리면 예조가 이에 대한 의견을 내고 대신의 수의收議를 거쳐 임금이 결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편 백운동서원의 사액에서처럼 풍기군수였던 퇴계의 부탁을 받은 경상도 관찰사의 계문啓聞으로 조정에서 바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초창기였던 만큼 도산서원도 이러한 예에 속하지 않았을까 추정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18세기의 영조 이후 높아진 도산서원의 위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정조 16년의 도산서원 치제였다. 이때 정조는 규장각 각신인 이만수李晩秀에게 경주에 가서 신라 시조 묘와 옥산서원에 치제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산서원에도 치제하게 했다.

그러나 이때는 단순한 치제로만 그치지 않았다. 영남의 선비들에게 도산에서 과거를 보게 한 것이다. 미리 열읍에 고지되었던 터라 도산서원 앞에 개설된 시험장에 등록한 유생 수는 7000명을 넘었고 수행 인원까지 합하면 1만 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임금이 미리 정한 제목을 전교당典敎堂 앞에 내걸고 응제應製하게 하여 여기서 거둔 시권만 3632장이었으며, 이를 서울로 가져와 임금이 친히 고열해서 두 명을 급제시켰다.

이 책은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던 우리 국토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퇴계 선생 덕분에 역사의 길, 휴식의 길이 생긴 셈이다. 육백 리 퇴계길을 걸으며 휴식의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 책속으로:

동호대교 중간쯤에서 뒤로 돌아 북쪽을 한번 바라본다. 지금은 아파트숲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북쪽의 매봉(鷹峯)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좌우로 둘러싼 아늑함이 조금은 남아 있다.

남산 오른편으로 북한산 능선들이 아스라이 겹쳐지며 아직도 봐줄 만한 한 폭의 그림이다. 해질녘 하늘 아래 보현봉과 삼각산 능선이 아름답다.

그 옛날 두뭇개나루 앞에는 거대한 모래섬 저자도(渚子島)가 있었고, 나루와 섬 사이의 한강은 호수같이 깊고 잔잔해서 뱃놀이를 하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이곳을 서울 동쪽에 있는 호수란 뜻의 ‘동호(東湖)’라고 불렀다.

동호에 배 띄우고 저자도 모래섬에 내려 이별시를 주고받던 풍경,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인 1569년 3월 5일 오전, 떠나가는 퇴계 선생과 떠나감을 아쉬워하던 고위 관료들 사이에 벌어졌던 풍경이다.

P.S: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육백리퇴계길을걷다 #이기붕 #이덕주 #문화 #역사기행 #덕주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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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을 말하지만 - 여태현 산문집
여태현 지음 / 마음시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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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은 ‘살갗을 맞대고 있기에’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가끔은 우리 삶의 축을 뒤흔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자신보다 오래 살 수는 없고, 모든 사랑에는 유통 기한이 있기에 늘 외롭고 슬프다.

상실이 계속되는 날들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물으며 그저 슬픔을 때론 천천히 헤적일 뿐이다.

이 책은 세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한 사람이, 사랑을 통해 생을 배우고 자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써내려간 기록이다.

사랑은 아무런 준비도 없을 때 느닷없이 들이닥쳐 제멋대로 그를 흔들어놓고 사라져버리곤 한다.

저자는 자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소외된다. 사랑은 그를 바다로 달려가게 만들거나, 포기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그는 처절해지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해진다.

사랑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피할 도리가 없기에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자주 상처로, 가끔 다정한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는 저자의 글을 통해 각자의 삶에 비추며 자신의 사랑과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과 사랑을 향한 온기 가득한 #이태현 의 산문집은 우리가 슬픔 속에서도 마침내 사랑으로 설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이 책을 통해 사랑을 하며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대리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찬란한 지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아주 초라하면서 아주 특별한 꿈을 사는 것. 다시라는 단어가 없는 시간 속에서 매일을 시작하는 처음을 잊지 말기를.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이라는 걸…

📚 책 속으로:

언젠가 당신은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키면서, 저기 잠기면 외롭고 무섭겠다, 했지. 나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저기 잠길 일이 있으면 내가 같이 있어줄게, 했고.

나는 당신이 어디에 잠기든, 어떤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든 함께 있어줄 거였는데, 이젠 그러질 못하게 되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애석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가엾은 표정을 짓게 된다.

P.S: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사랑을말하지만 #마음시선 #에세이 #사랑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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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처럼 이순신처럼 - 두 거인에게 배우는 궁극의 리더십
노병천 지음 / 밥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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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나의 진심과 남을 헤아림이다. 나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하여 점차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영향력이자 파동이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두 인물, 말할 것도 없이 세종과 이순신이다. 이 두 사람을 우리는 성군과 성웅으로 칭한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최고의 호칭이다. 그만큼 위대했던 두 사람이다.

광화문광장에는 저 멀리 북악산 아래 경복궁에서 궐 밖으로 행차하신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고, 또 임진왜란의 외침에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자리잡고 있다.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행적은 우리 역사의 저력(底力)이자 스토리텔링의 영감(靈感), 영원한 리더십 유산(遺産)이다.

이 책은 임금과 장군으로 신분이 달랐고 시대도 달랐지만, 위대한 지도자라는 공통의 키워드로 그들을 조명했다. 그 안에 그들의 리더십과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알아야 할 업적, 자질, 품성, 인간적 면모 등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우리는 대체로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 이야기’를 확실하게는 잘 모른다. 그리하여 얼른 네이버나 구글 등 검색엔진에 의존하지만, 눈을 현혹하는 자료의 홍수 속에서 정통한 내용을 확인하기도 좀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직접 책을 읽어보지 않고 광고만을 보고 책을 구입할 경우에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우리가 존경하는 두 위인의 리더십 이야기가 머리와 꼬리는 없고 몸통만 남은 거두절미(去頭截尾)의 영웅전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관주위보(貫珠爲寶)’라고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

이 책으로 나라의 미래와 우리 개개인의 삶의 길을 명쾌하게 만나보면 어떨까.

P.S: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종처럼이순신처럼 #노병천 #밥북 #리더십 #자기계발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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