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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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명한 그림이나 글씨를 놓고 진ㆍ위를 따지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얼마전에는 김홍도의 작품 중 몇몇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으나,

그런 와중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바로 '감정가'라는 직업이었다.

 

'감정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몰랐던게 아니라,

'감정가'가 되기 위해 하는 '감정 공부'라는 것이 무척이나 광범위하여 오르기 힘든 나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구할 서화작품을 당시 창작 상황과 가깝게 그려보는 것, 똑같이 모사하는 것은 감정 학습의 기본이며,

감정가 스스로 붓글씨나 그림을 흉내 낼 정도는 돼야 다른 사람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란다.

도장도 새길 줄 알고,

작품 표구 방식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덧붙이길...

서화 감정이 과학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창작의 실천과 재구성을 통한 검증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언젠가 김제동의 모친이 했다는 '가식도 10년이면 예절로  봐주어야 한다' 는 말이 떠올랐다.
처음엔 가식이었다 하더라도, 몸에 익어 버릇이나 습관이 되어버리면...성격이나 본성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생각이 짧은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작품이 '진짜이고 가짜이고' 를 떠나서 진ㆍ위를 논할 정도의 작품이라면, 가치를 인정받기에 충분하지 싶다.

다시말해, 작품이란 것은 남이 베낄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작가 고유의 개성과는 별개로,

예술성과 독창성으로 얘기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고유한 작품일지라도...

전작 '책은 도끼다'의 연장선 상 정도가 아니라, 리바이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이고 보면,

예술성과 독창성 내지는 참신성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쩜 '책은 도끼다'가 준 감동이 워낙 대단해서 이 책 '여덟 단어'가 그에 못 미쳐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전작 '책은 도끼다'에 이어 이 책 '여덟 단어'에서도,

'쭉~'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들을 소개해 주는데,

인생을, 또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하는 안내 정도가 아니라,

모든 이의 인생과 삶이 그가 제시하는 대로 그렇게 살아져야만,

맞춤 인생이고  모범적인 삶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어버리니까,

'삐뚤어지고 말테야~(,.)' 하고 삐딱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치켜 든다, ㅋ~.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기에게 음식을 씹어서 주는 느낌이다.

대신 삼켜주지 않는게 다행이다, 헐~!

이런 엄마는 아기가 첨 보는 이상하고 신기한 것에 관심을 보이면,

분명, '애비 애비, 지지...'할 것이다.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내가 그런 엄마였기 때문이 아니고,(난 거의 방임에 가까운 엄마이고~--;)

내가 그런 할머니와 고모들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ㅋ~.

 

그 예로 '책은 도끼다'에서 오주석이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라는 그림의 설명을 인용하는데, 감상의 방법까지 제시했었다.

 

그럴 것이다. 인생의 저녁, 저물어가는 노을빛 속에서 작품 제작의 연월일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폭에 가득 번진 환한 봄빛이 있고, 내 가슴도 훈훈한 봄빛을 머금고 있는데, 더구나 이 늙은 가슴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가슴이 곁에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림을 그렸을 때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에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 그것을 반증한다. 노인은 젊은이보다 봄을 더 많이 생각한다.(책은 도끼다, 330쪽)

 

무릇 감상이란 이렇게 해야한다...는 롤모델마냥 느껴진다.

 

기실, 나는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길 수도 있는 것들을 깨닫고 느꼈다.

그중 '가장'인 것은 지금 현재를 제멋에 겨워 살면 된다는 것과

무엇이 됐든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직장 생활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관계, 네트워킹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나름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도 그 우선 순위를 힘주어 얘기하는데, 난 여기서 반대로 힘을 빼는 방법을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는데 위계질서가 흔들리면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바꾸어 말하면 순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가방이 명품이 아니에요. 그 가방은 단지 고가품일 뿐이죠.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여덟 단어, 97쪽)

클래식, 즉 고전에 힘주어 얘기하기 위해 이렇게 얘기한걸 모르진 않지만...

이런 얘기 자체가  나누고 편가르고 하는 우월감과 자만심을 두드러지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거지만,

'인간'만을 따로 떼어내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속기를 빼고 골기만 남겨라,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 등

자연에서 본성만을 모두었을때에 남는 게, 인간이고 인문학이고 한게 아닐까?

이걸 느껴야 독서법에 있어서도, 속독이나 다독보다는 정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 예로,

난 한때, 나처럼 그림에 젬병이어도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는 피카소의 후기 그림들을 높이 평가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초창기 그림들을 보고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사실과 현상을 뭉개고,

선과 면을 이용하여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한 후기 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그의 사진으로 찍어낸 듯한 그림 습작 시절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됐든,

기본을 무턱대고 뛰어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가능하더라도 부실공사, 사상누각의 지름길임이 자명하다.

 

속기를 빼고 골기만을 남겼을때,

사물의 핵심에 빠르거나 넉넉하게 도달하려고 도달하려고 욕심부려도 탈나지 않는 것은,

자연, 그 중에서도 넉넉한 햇살이 으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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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정호승 시집 창비시선 36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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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나 '휴일'만 되면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는 사람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휴일이나 휴가라고 하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고 방에 콕 처박혀서 지내는 '방콕'족인 내가,

그들과 다른 종족인 것은 부인하지 않겠지만...백번 양보를 하여도,

여행이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잠을 자다, 잠시 머무르다'는 '쉬다'의 뜻에 부합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하여 내게 여행은 '휴가'와 어울리지 않는, 아니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고도의 '노동'쯤으로 간주됐었다.

 

여행

 

 

사람이 여행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 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 뿐이다

 

하여 시를 해석하거나 이해할 깜냥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여행'에 관한 시는 그런고로 더 더욱,

그냥 느낌만으로, 아니 내 맘대로 해석하곤 했었다, ㅋ~.

그러니까 일이 됐든, 유람이 됐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나가는 일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취지대로라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그것은 무장해제 하지 못하는 고로 제대로 된 쉼이 될 수 없을테고,

그런 논리대로라면, 무장해제를 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속만이,

사람의 그런 '외로운' 마음 속만이 '오지'이고 '설산'이고 간에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등단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낸 시집이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강산이 네 번 바뀔 정도의 세월이어서 그런지,

'변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시는 많이 변했다.

처음엔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불을 피우면 따뜻해진다며 '서울의 예수'를 읊조렸고,

한동안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었던 그가,

어느날보니 운주사의 '풍경'을,

또 어느날 보니 '미륵불'을,

또 어느날 보니 '성체조배'란 시를 만들었다.

사실 종교색의 변화라고 보면 놀라운 일인데,

그가 말하는 여행은 아무래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특정종교에 연연해 하지 않으며 '부활'이나 '해탈'을 얘기하는 듯 하여 숙연해진다.

 

번지고 스며 물들어 서서히 자연으로 영입되는 거 같다.

점묘법으로 나타내보자면,

진하고 촘촘하고 사람의 형상을 했던 점들이 연하고 성글어지지만,

그래서 사람의 형상으로는 흩어지는 거지만,

자연이나 바람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자연과 바람의 본성에 가까워진다고 해야할까?

'적멸에게'나 '차나 한찬'이라는 시를 보면 더 그런 느낌이 선명해진다.

寂滅(적멸)

자연()히 없어져 버림
불교()에서,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의 괴로움을 끊음, 죽음, 입적(), 열반()

적멸에게

 

새벽별들이 스러진다

돌아보지 말고 가라

별들은 스러질 때 머뭇거리지 않는다

돌아보지 말고 가라

이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제 다시 보고 싶은 별빛도 없다

아지랑이 이는 봄 하늘 속으로

노고지리 한마리 한순간 사라지듯

삼각파도 끝에 앉은 갈매기 한마리

수평선 너머로 한순간 사라지듯

내 가난의 적멸이여

적멸의 별빛이여

영원히 사라졌다가 돌아오라

돌아왔다가 영원히 사라져라

 

 

차나 한잔

 

입을 없애고 차나 한잔 들어라

눈을 없애고

찻잔에서 우러난 작은 새 한마리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라

지금까지 곡우를 몇십년 지나는 동안

찻잎 한번 따본 적 없고

지금까지 우전을 몇천년 만드는 동안

찻물 한번 끓여본 적 없으니

손을 없애고 외로운 차나 한잔 들어라

발을 없애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첫눈 내리기를 기다려라

마침내 귀를 없애고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첫눈 소리를 듣다가

홀로 잠들어라

 

배반

 

심년동안

꽃 한번 피우지 않은 춘란을 뒤산에 버렸다

더이상 배반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 한번이라도 꽃 피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나

기도는 언제나 나를 배반하고

나는 언제나 기도를 배반했다

그래도 혹시 내가 춘란을 배반한 게 아닌가 싶어

며칠 뒤 봄비가 그친 뒷산에 올라갔다

깨어진 화분 틈으로 춘란이 허옇게 뿌리를 드러낸 채

꽃을 피우고

저 혼자 빙긋이 웃고 있었다.

 

파리

 

한마리 파리도

푸른 하늘을 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흰 구름을 사랑할 때에도

한마리 파리가

푸른 하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마리 배고픈 파리가 밥상 위에 날아와 앉는 것은

한 그릇 밥의 거룩함을 깨달았기 때문일 뿐

파리를 내리치는 파리채여

파리채를 손에 쥔 인간의 손이여

멈추시라

파리도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를 기뻐하며

새처럼 나뭇가지에 앉아 밤하늘 별을 바라볼 때가 있다

인간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인간일 뿐

인간이 지니지 못한

날개를 지닌 파리는 자유롭다

 

'배반'이나 '파리'라는 시는 '인간중심' 또는 '자기 본위'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따뜻한 나라,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들은 나름 행복하게, 삶을 즐기며 잘 살고 있는데...

우리보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눈물바람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완전 내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과연 상대방을,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대로,

내 식대로,

날개를 꺾어 내 곁에 붙잡아두려 했었던게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나에 맞게 변하시키는게 아니라,

내 스스로 변하여 상대방에게 닮아가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방점은 '변하여'나 '상대방에게 닮아가는 것'에 아니고,

저 말 속에는 숨어 있지만,

'본성'이라는 말에 찍혀야 한다.

 

더우기 꽃처럼 한철만 보고 말것이 아니고,

사람은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오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도... 오래가기 위해선, 오래 남기 위해선,

모든 고전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렇겠듯이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편해야 한다.

본성이라는 말 속에 숨은 자연이나 편안함 따위의 말을

느끼겠긴 하겠는데,

잘 설명을 못하겠는게...나의 한계이다~--;

지금은 좋기만 하고 그러니까 나를 꾸미거나 치장해서라도,

잘 보이고도 싶고, 잘 하고도 싶고...하겠지만,

세월이 흐른뒤에도 그런 초심을 똑 같이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성은 초심에 대체될 수 있겠다.

얼마전에 읽은 박웅현은 그걸,

적어도 5년 뒤에도 기억될 수 있느냐 라고 표현 했는데...

난 몇년이라고 해야 할까?

변덕이 죽 끓듯하고, 싫증을 잘 느끼는 나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성체조배

 

꽃이 물을 만나

물의 꽃이 되듯

물이 꽃을 만나

꽃의 물이 되듯

 

밤하늘이 별을 만나

별의 밤하늘이 되듯

별이 밤하늘을 만나

밤하늘의 별이 되듯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내가 되듯

당신이 나를 만나

나의 당신이 되듯

 

그런 의미에서 '성체조배'라는 시가 참 좋았다.

나나 상대방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이심전심, 물아일체를 통한 부활이나 해탈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느낌이다.

내가 여기서 상대를 物로 표현했다고 하여,

사물로 낮추여  평가하는게 아니라, 나와 동격의 그것으로 본다는 걸 의미한다.

나나 인간이나 사물이나 나름의 '본성'을 지닌,

나름대로의 의미와 쓰임으로 존중 받을 대상이라는 거다.

 

또 한가지,

요즘은 책 말고 경험의 중요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책에서 얻게되는 단편적인 지식말고,

몸소 체험하고 경험하여 얻게 되는 그것들이 내게 다른 깨달음을 준다.

손에 대한 예의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손의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이고,

그래서 손을 좀 아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시는 노동의 신성함 내지는 숭고함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먼저,

내 손에 쥔것을 버려야만,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맞잡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깨닫게 해준다.

 

체험이나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책은 우리를 이끌어주는 스승이 될 수 있고,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만 책을 쓰다듬는 손이 경건할 수 있다.

 

그동안 그의 시들을 읽으면 사랑시라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인간'에만 국한된 것 같았다.

근데 요번 시집의 그것은 참여시까지는 아니어도,

시 하나 하나가 체험의 산물인듯 하다. 

사랑의 대상이 삶과 경험과 체험과, 그리하여 자연 전반으로 확대된 느낌이다.

 

다른 시들도 하나같이 좋다.

그냥 쉽게 읽어도 좋고,

깊이 곱씹어가며 아껴 읽어도 좋다.

 

묻지 마라 왜 사랑하느냐고 다시는 묻지 마라

바람인 나는 혀가 없다

                               ('바람의 묵비' 일부)

 

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지 않고 어떻게 해가 뜨고

지지 않고 어떻게 너를 이길 수 있겠느냐

아무리 바빠도 아들아

오늘은 변산 앞바다에 떠오른 일몰의 연꽃처럼 왔다 가라

직소폭포 물소리에 한쪽 귀라도 씻고 돌아가라

가다가 격포 채석강 붉은 절벽에 매달려

만권의 책을 꼭 읽고 가라

                                                       ('변산에서 쓴 편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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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7-01 19:30   좋아요 0 | URL
정호승 선생은 늙지도 않아요. 그이 인생의 그 무엇이 평생을 저토록 애닯고 애탄하고 목 마르게 사랑을 구하고
초월 욕망에 시달리고 갈급하게 하는지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그래서 시인인가? 저도 이 시집 구입해야겠네요.

숲노래 2013-07-01 21:37   좋아요 0 | URL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그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니까,
서로서로 '서로 모습 그대로'를 닮겠지요.
 

나의 기준점은 어디에 있는가

 

ㆍㆍㆍㆍㆍㆍ

말 그대로 '각자'의 인생인데,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게 용납되지 않아요.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나의 '자존'을 찾는 것보다는 바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ㆍㆍㆍㆍㆍㆍ

기준점을 바깥에 두고 남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안에 두고 나를 존중하느냐일 겁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 21~22쪽, 부분 발췌)

 

며칠전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멈추고, 그의 '책은 도끼다'를 찾아 다시 읽었어.

그때는 나를 멈추게 한 그 이유가 뭔지 몰랐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겠어.

 

 

 

 

 

 

 

 

 

 여덟 단어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우리는 다커서 만난 친구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도 닮고 해서,

어떤 사안에 대한 반응도 똑같을 때가 많아서,

쌍둥이라며 좋아하며 웃기도 많이 하지.

 

그런데 가만보니...닮은 점이 워낙 두드러져서 몰랐지만, 두드러지지 않게 다른 점도 많이 있더라구.

같은 책에 관심을 갖고,

똑같은 상표의 커피를 마시고,

이리저리 오지랖을 내세워가며 두루두루 잡기에 능하고,

이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다 닮았지만,

아니,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지만...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어서 잘 알지못했던 '본성'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

내가 지난 번 강신주 리뷰를 쓰면서도 잠깐 언급했었는데,

우리 사이에 필요한건 '역지사지'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삶'인것 같애.

 

얼마전에 나한테 창의성이 풍부하다고 했잖아.

우린 쌍둥이라는 논리대로라면,

너도 마찬가지로 창의성이 풍부해야 하는데 말야.

제도권 안에서 규칙과 틀에 맞게 하는건 바른생활이라고 할 정도로 잘 해 내고 있지만 말야,

창의성은 좀 아닌거...맞지?^^

 

얼마전에,

난 너한테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집착이 되어 거추장스러워질지도 모를 정도로,

의지하고 모든걸 털어놓고 얘기하고 그러는데 ,

성향 상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넌 나한테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

혼자 안으로 움추러드는 것 같아서,

내가 그런 것만큼, 넌 내가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을때,

 

네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어.

 

내가 참 솔직하지 못하지?

맘을 자꾸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건 아닌데...싫음 싫다, 힘들면 힘들다...말을 바로 하지 않잖아.

그게 너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배려하면서,

나쁜 말로 말하자면 눈치를 보면서

그런 게...몸에 배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쌍둥이라는 선입견에 갇혀서,

나만 바로보고,

내 본위로만 사고하고 행동하고...하면서 너의 진면목을 바라보지 못했던 거였네.

 

나 또한 제도권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틀을 버거워 하고,

나만의 기준이나 잣대를 다시 만들려고 했었거든.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

이렇게 되기까지는,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고,

내 자신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했어.

 

내 스스로 '스스로 따 시킨' '스.따.'라고 하고 돌아다녔고,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짬뽕공 입네,

감성만 풍부해가지고,

머리는 옵션으로 들고 다니네...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뭐, 신경쓰지 않았어.

 

덕분에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게 됐어.

그렇다고 제도권 교육을 받은 내가 뭐, 크게 틀에서 벗어나거나...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을 하지는 않게 되더라고...ㅋ~.

대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게 됐어.

 

주변에서 만든 규정이나 틀은 나 자신을 옭아매기 위한 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나를 위한 배려'라고 하는데, 그거 고맙지만 이젠 사양할래.

그리고 그게 눈치라면,

난, 나만은...네게 눈치 따위는 주지 않으니까,

눈치 따위는 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

 

나랑 꼭 닮은 쌍둥이는 말야...

편안하기는 하지만,

나랑 너무 닮아 익숙해서 새롭다거나, 가슴 아슴아슴한 떨림이나 설레임 따윈 없잖아.

 

너만의 멍석을 깔고,

내가 아닌,네 자신을 배려하면서...

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부탁하고 싶어.

 

난 네가 멍석을 제대로 깔 수 있도록,

내 오지랖을 최대한 넓혀 둘테니까 말야...

날개를 충분히 펼치고,

아니, 충분히 도움 닫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꺼이 내 곁도 내어줄테니까 말야...

여지껏은 때를 기다려 움추린 거라고 치고,

자아, 이제 날아오르는 거야~.

 

근데 말야.

내 오지랖도 내 곁도 넉넉하게 내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네 건강은 어찌할 수 없는 거 알지?

돈이나 물건 따윈 없거나 부족하면 남의 것을 구걸하거나 훔칠 수도 있다지만,

건강은 돈으로 살 수도,

구걸하거나 훔칠 수도 없는 거, 알잖아~.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책은 도끼다' 6쪽)

 

 

 

 

그리고 그렇게 얻은 돈오를 잊지 않고 게속 살아가는 것이 점수, 차츰차츰 정진하라는 겁니다. 깨달음이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살면서 게속해서 그 깨달음을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실천해야겠죠.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좋은 책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책이면 다 좋다는 편견이죠. 하지만 읽는 시간이 아까운 글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점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돈오하려면 깨달음을 줄 만한 좋은 책들을 찾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책은 도끼다' 345쪽)

 

그동안 책은 다 좋은 책인줄 알았어.

그런데, 박웅현은 책도 좋은 책과 나쁜책이 있어서, 좋은 책을 가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네.

카프카 식으로 말하면, 우리 안의 인습이나 편견, 매너리즘, 타성을 깨뜨려버리고 끄집어내 변화시켜 주는 도끼 같은 책이 좋은 책일거야.

저기 책의 자리에, 친구를 대입시켜도 좋을 것 같애.

그렇다면 네게 난 두끼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을 도끼에 비유하다니 좀 무시무시한가~--;)

그래도 네게 난 도끼같은 친구가 되고 싶은 걸, ㅋ~.

 

책의 자리에 대입시킨다면 이왕이면 고전이 좋겠어.

왜 고전이었으면 좋겠냐구?

세상 모든게 변하게 마련이고,

요 밑의 인용 구절을 보렴, 온 세상을 품을 것 같던 사랑도 지워진다지 않니, ㅋ~.

내가  짬뽕공 같다는 얘기는 바꿔말하면,변덕이 죽끓듯 하다는 얘기니까,

그런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 싶었다고 할까?

아니,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각자의 본질을 잃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아남자는 프로포즈라고 해야 할까?

 

인생의 한때를 같이 하는 친구가 아니라,

오래 오래 같이 갈 수 있는,

각자 중년을 살고, 각자 노년을 맞이하더라도...

언젠가 고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 그렇게 같이 갈 수 있는...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

어느 순간...축복처럼,

돈오의 문이 열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서로의 몸과 영혼을 막힘없이 타고 흐를 수 있을테니까 말야.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 그렇습니다. 온 세상을 품을 것 같던 사랑도 지워지고, 아름답던 얼굴도 시들고,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던 치욕의 순간도 흐려지고, 날아오를 듯한 환희의 순간도 희미해지죠. 이렇게 잊히는 인생인데 우리가 살다 간 흔적을 얼마나 남길 수 있을까요?ㆍㆍㆍㆍㆍㆍ그런데 고전은 시간과 싸워 이겨냈어요.ㆍㆍㆍㆍㆍㆍ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문학이나 미술, 음악 등 예술작품들은 본질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한테만 좋은 것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만 좋은 것이 아닌, 전 세계 다수의 인간이라는 종이 느끼는 근본적인 무엇을 건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박웅현'의 '여덟 단어' 78~79쪽)

 

그러니까 준비할 수 있어야 해요. 클래식, 고전을 만나기 위해서 함부로 씹다 버린 껌처럼 여기지 않으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있다는 말을 자주합니다.ㆍㆍㆍㆍㆍㆍ

진짜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궁금해질 겁니다.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그걸 알기 전에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ㆍㆍㆍㆍㆍㆍ알려고 하기전에 우선 느끼세요. 우리는 모두 유기체잖아요? 고전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문이 열려요. 그다음에는 막힘 없이 몸과 영혼을 타고 흐를 겁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 86쪽, 부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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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22 18:07   좋아요 0 | URL
좋은 마음으로 잘 읽으면 좋은 책 되고
나쁜 마음으로 제대로 못 읽으면 나쁜 책 되지요

세실 2013-06-23 08:18   좋아요 0 | URL
박웅현 참 멋지죠.
독서는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감성을 키워준다는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박웅현이 좋아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하루키도 좋아한다는것! 물론 유명한 곡이기도 하지만~~~
둘은 은근히 닮았더라구요^^
 

나는 성이 '서'가다.

오랫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던 이가, 갑자기 볼 일이 생겨 OO에 가신다며,

- 이러다가 언제 얼굴 보노?

하고 톡을 보내오셨길래,

- 보고싶지가 않은게지~(,.)

하고 대구를 했다.

그랬더니,

-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자꾸 동쪽으로 가네?

하신다.

난 또 질세라,

- 달마가 동쪽으로 가겠다는데, 凡人인 내가 어찌 알겠어요?

   못보더라도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잘 살면 되는거죠.

라고 했다.

잠시 후,

- 혜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내가 알지.

하시길래,

- 왕오천축국전 쓰러 갔겠죠, 뭐~.

   아님 말구~(,.)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 빈스플린 기사 보셨죠?

  너무 일만 열심히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 하는 수가 있으니, 건강도 돌봐가며 잘 사세요.

하는 토를 달았다.

 

빈스 플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자세하고 세세하게 개연성을 심어놓는 사람이라면, 삶도 그렇게 성실하고 진솔할 것 같다.

더구나, 미치 랩 같은 이를 주인공으로 그려내는 그라면...

자신의 건강 관리 또한 철두철미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터라,

3년 전부터 전립선암을 앓았고, 47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니...

게다가 나보다 겨우 서너 살 많을 뿐이라고 하니,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빈스 플린의 것을 서너권 읽은 것 같은데...집에 와서 찾아보니 쉽게 눈에 안 띤다~--;

 

 

 

 

 

 

 

 

 

 

 

 

 

 

 

 임기종료
 빈스 플린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2008-10-22 쓴 글>

이 책은 분량은 엄청 나지만,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내려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정치 스릴러'라는 타이틀로 미루어 볼때,우리나라의 지난 대선을 겨냥하여 나온 것 같은데...
난 얼마전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에서 '상원이 어찌되고 하원이 어찌되고' 하는 현실과 연결시켜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사건의 발단은,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 상원,하원 의원 들이 암살을 당하고,이 죽음이 대통령의 예산안 통과와 밎물려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이런 킬러가 나오는 내용이다 보니,아무래도 '프레더릭 포사이스'와 비교가 된다.'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작품들은 많은 것을 극도로응축시켜 간결하다면,빈스플린은 자상하다.

좋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쁜 놈의 속내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장면 묘사도 세세하다.때문에,개연성에서는 완벽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 할 수 없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오루크 하원의원이, 예산안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에 반대하였지만,그리하여 서민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한들...그게 국회의원의 본분인데,그걸 '잘 했다''멋있다'할 수는 없지 않나?
암살자의 경우,감정을 극도로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좀 멋있기는 하지만,암살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지만,그렇다고 하여 청부살인업자를 두고 '잘 했다''멋있다'할 수도 없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비서실장에 의해,언론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은...내가 가장 어이없어 하면서도 재미있어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그런 대통령을 향하여 감정이입은 되질 않는다.

암튼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복잡하다.
정치형태도 그렇고,군,경,법률체게도 그런 것 같다.FBI나 CIA,NSA...이런 용어들이 복잡한데다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그러다보니 작가는 계속 부연설명을 한다)혼란스러웠다.
여기서,각 분야별로 힘을 키우기 위해 모종의 암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FBI의 스킵 맥마흔을, 엘리트요원이라고 애기하면서도 자기의 할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든지,
CIA의 테러전문요원 케네디를,월등히 높은 아이큐를 이용하여 암살범의 범위를 좁혀가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부분 등은,다소 주관적이어서 혼란스러웠다.
'...특수부대원은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을 경멸합니다.정치인과 관료를 싫어해서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죠.특수부대원은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훈련받은 사람이며,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정의롭고 합리적인 문제해결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주 추악한 일들을 시킵니다.그러면서 그것이 전부 미합중국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죠.특수부대원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서 나쁜 놈들을 제거하고 있으며,미국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라는 부분은,결국에는 암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임을 짐작하겠다.

세상에는 머리로 생각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있지만,경험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도 있게 마련인데...암살자를 찾아내는 케네디박사의 경우,그녀가 어떻게 머리를 써서 암살자를 찾아냈는지의 과정은 미미하고 어린 아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부분만 확대 묘사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암튼 너무잘게 잘라주어 씹는 맛이 없었다고 해야하나?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놈인지의 판단은,그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판단은...독자의 몫으로 내버려 둘 수 없었을까?

미국 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하에 지역을 넓혀보면,독자가 미국만이 아닌 전세계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한사람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곳에서는 자유투사일수도 있는 것'이니까...열린 결말이 되어 읽는 이가 스스로 상상하고,읽는 이가 카타르시스를 느꼈음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권력의 이동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권력의 이동>2010-4-23 쓴글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었다.

<정치스릴러 소설>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이 소설에서 역동성과 액션,빠른 전개 들을 느껴줘야 할텐데,

나는 이런 모든 것이 충족되었으며 더불어 사람들의 감정이나 심리상태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이 소설이 참 좋았다.

그 때문에,

'미국 대통령과 비밀 검찰국의 보안을 위해 백악관의 레이아웃을 조금 바꾸거나 비밀검참국의 작전 중 어떤 부분은 조금 생략하기도 하였다.'

라는 책 앞장의 일러두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빈스플린'의 전작 ,<임기종료>에서 자상하게 살을 발라주는 걸로는 부족해서,잘게 씹어주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요번에도 세밀한 묘사 쯤은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했었고,

책 속에 빠져들어 버린다면 책속의 가상현실을 사실로 착각해...

백악관을 상대로 엉뚱한 호기를 부려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의 상황 설정이나 백악관을 비롯한 비밀검찰국 전반에 대한 묘사가 직접 경험한 누가 묘사한 것처럼 사실적이다.

 

때문에 남이 자상하게 살을 발라주고 씹다만 걸 마저 씹고 싶지는 않은 나만의 책읽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 책을 정치스릴러 소설로가 아니라,사람의 감정상태나 심리상태를 따라가며 읽는 것이었다.

 

이 책을 심리 소설로 봐도 좋은 것은,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인이건,그들과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테러리스트이건...

모두가 트라우마를 치료를 통하여,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절제력으로 잘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기서 '백지 한장 차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이건 '니편 내편'이나 '좋은 사람 나쁜 놈'같은 판단의 기준이 백지 한장만큼이나 불분명하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미국과 백악관을 무차별 공격하고 죽이는 테러리스트는 무조건 나쁘고,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든 그 테러리스트를 응징하는 것은 괜찮고 한...그렇고 그런 정치 스릴러 소설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 것이고,

때문에 니편 내편이나 선악의 잣대를 가지고 이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자신과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감정상태를 따라가며 책을 읽다보니,

사건의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따지는데 다소 무디어져 버려 그냥 지나갈 뻔 하였는데,책이 묘한데서 삐그덕거린다.

(하긴 분량이 엄청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지만서도...ㅠ.ㅠ)

그러니 살짝 재미가 반감되는 듯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이리도 완벽하게 빚어낸 작가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번역에서의 오류가 아닌가 원서를 뒤져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깐 했지만,

내가 믿어 의심치않는 이창식님의 번역이어서 작가 쪽에 무게를 두기로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이창식님이 누구인가?

당신이 먼저 재밌게 읽으시고 우리에게 또 우리정서에 맞게 리라이트해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듯 번역해 주셨던 분이 아니었나?)

 

이 책에 다소 생소한 단어가 등장하는데,'스웨트셔츠,스웨트 팬츠'라는 용어이다.

우리말로 땀복(운동복) 정도 되시겠다.

처음 대통령의 옷장을 이용하려 할때,우리의 훌륭한 '밀트 애덤스'(-은퇴한 백악관 경비원)께서 영부인의 옷장이 또 있다고 얘기하고,

거기서 옷을 가져오는 걸로 되어 있는데,뒷부분에는 계속 대통령의 옷을 빌려입었다고 얘기한다.

대통령이 입던 웨스트포인트 스웨트 셔츠라고 했다가,(428쪽)

검정색 스웨트 슈트(434쪽)라고 했다가 오락가락이다.

 

이것 말고도 몇가지 더 오락가락하는게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감정선을 따라 읽어갈 수가 없었던 건,

'간간히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다 말았다.'

감정이란 건 없는 듯이 담담히 써내려간 문장들만 나열되어 있다면 좋을텐데,

'체포하다가 발각되느니 제거해버리는 게 낫다.'

다소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하여,

'미국이란 나라는 절대선이고 다른나라는 죄다 나쁜놈'이란 사고를 강요하고 있다기 보다는,정신적인 반어법을 썼다고 생각하고 싶다.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치료되거나 희석되는 게 아니고,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트라우마를 들쑤시고 들춰 내서 사건과 결부시켜 버무려낸다.

여자친구를 죽인 범인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 미치 랩의 그런 폭력성을 잘 살려 인간병기로 길들인다거나,

성폭행 당했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여기자의 경우,

그걸 잘 살려 테러리스트와 얽어낸 품이나,구해준 미치랩과의 러브라인의 형성 또한 그럴 듯 했으며,

은퇴한 백악관 경비원 밀트 애덤스의 경우,

나이로 인한 잦은 화장실 행을 사건 속에서 경험으로 승화시켜 결정적인 사건해결이 실마리로 만드는 등 이다.

 

"다른사람들은 몇 살이 되기 전에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다거나,중국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아이를 갖고 싶다는 따위의 소망이 있는데,내겐 그런 것들이 없어요.그 대신 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파라 하루트와 아지즈를 죽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죠."(61쪽)

이 부분에서 미치 랩의 폭력성에 분노한다기보다는,그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어 서글펐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빚어내는 솜씨에도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는데,

79세의 토머스 스탠드필드를 사람을 단번에 간파해 내는 사람으로 묘사해 내는 게 참 적절하다.

113쪽의 '범인들의 비뚤어진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

188쪽의 '위대한 지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각을 드러낸다.위기에 맞섬으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같은 표현은,79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살아온 토머스 스탠드필드니까 가능한 판단이니까 말이다.

 

전형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 답게 얘기는 끝나 버리지만,

생각없이 쏴대는 총알만큼이나 시원하게 끝나 주시지만,

여기서 생각도 같이 스톱을 해버려야지,생각이 꼬리를 물면 파장이 커질 수도 있다.

 

권력의 이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분히 중의적이지 싶은데,

대통령에서 부통령으로 잠깐 옮아갔다 온것이 될 수도 있고,

그러면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잠깐 넘어갔다가 온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사나흘의 천하에서 CIA,FBI,군장성,법무부 등의 권력 다툼도 볼만하다.

내 생각에는 에필로그에서 미치랩이 끝내 라피크 아지즈를 처단하는 걸로 미루어,

어떤 힘이 있으면 그에 동조하는 힘과 반대하는 힘이 있게 마련이고...

이 모두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고,

일상에서는 거기서 한쪽으로 조금만 쏠리게 되더라도 힘의 크기와 방향이 변하는 삶의 연속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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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 중국철학 해석과 비판
강신주 지음 / 태학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난  공자와 맹자를,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배웠었기에, 

강신주와 지승호의 인터뷰집,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을 만나기 전까지는 노장사상이라고 하는데 익숙했었기에,

노자와 장자를 몇사람 번역본으로 접하고는 두루 섭렵했다고 만족했었다.

강신주와 지승호의 인터뷰집에서 슬쩍 맛보기로 접하고는 의아했었고,

이 책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을 읽고는 허를 찔린듯 공허하다.

노자와 장자의 그것을 같지 않다고 하여 분리하여야 한다고 하는것도 의외였지만,

장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동안 장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뚫어야만 한다는 게,

더 그러하였다.

섣불리 알고 있는 것보다, 백지의 상태가 장자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소리와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암튼 산다는 것을, 나이먹으며 산다는 것을...주체성, 자아를 확고히 하는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신껏 흔들리지 않으며 주관을 갖고 사는 것을 불혹(不惑)의 뜻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었다.

어떤 외적 요인들로부터도 견고한, 나만을 방어하는 벽을 철옹성같이 높이 쌓아올리고는, 그것을 자존감 내지는 자긍심이랑 혼동하였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자아 내지는 자의식을 확고히 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좋은 방향이건 나쁜 방향이건 간에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야'라는 고착으로 이어져, 우리의 삶을 부자유스럽게 한다는 것이 장자의 진단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장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통용되는 장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뚫어야만 한다는 거다.

장자의 것으로 알고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인위적으로 제어하거나 조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주장은,

장자의 것이 아니라 <외ㆍ잡편>을 쓴 장자 후학들의 사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자 후학들의 사상을 뚫고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오롯한 장자의 그것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러고보니, 그동안의 나는 벽을 높이 쌓아올리고는,

외부와의 단절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놓고는 '외로워, 외로워~--;'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한 친구와 친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은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이지만, 그 친구와 친해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동안 난 낯가림이 심하다는 핑계로, 사람을 좀 가렸었다.

나도 모르는 새,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는...안에 들이고 밀쳐내고 했었던 터라,

그 잣대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이댈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선입견이나 편견은 배제하려고 노력하였다.

보고 들은 것을 기억을 되살려가며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 되지 않도록,

그때 그때, 몸의 모든 공감각을 이용하여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기준과 잣대를 허물어 버리니,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는데...

정들고 익숙한게 좋다면서 습관이나 타성에서 죽어도 탈피하지 않을 것 같이 굴었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졌다.

낯설고 새롭고 두려웠지만, 가슴 뛰는 경험이었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그동안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지극히 자기본위의, 소극적인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을 대할 때는 '상대방이 대접받고 싶어 하는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는게 옳은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했던 그 임금님을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워진다.

 다시말해 그에게 새는 새가 아니라 사람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사람을 대접하는 방식으로 새를 대접했으니 어떻게 그 새가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 새는 죽고, 그도 다시는 그 새를 보지 못하게 되어싸. 이처럼 그가 자신의 고착된 자의식에 근거해서 새라는 타자와 관계 맺은 결과는 비참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경우 새는 타자라고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새는 새 자체로서의 새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투사된 외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ㆍㆍㆍㆍㆍㆍ여기서 새를 기르는 것으로 새를 기른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 새와 소통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소통을 통해서 새로 상징되는 타자와 어울리는 새로운 임시적 자의식을 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94쪽)

이처럼 만일 타자를 고착된 자의식에 근거한 인식의 대상으로 삼게 되면, 우리는 결국 그 타자와의 공생의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타자성에 근거해서 타자와 소통한다는 것은 주체와 그 타자를 삶의 짝으로 받아들으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96쪽)

때문에 己所不欲 勿施於人, 이 문장의 참뜻은 易地思之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삶' 정도가 되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朝三暮四의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의 경우도...

간사한 잔꾀로 상대방을 속이려는 술수의 대가로 바라보기 보다는,

상대방과 소통을 꾀하려고 시도한 갸륵한 인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 된다.

 

포정과 소의 만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포정이 아닌 다른 도살자가 잘랐으면 다른 자연스런 길이 생길 수도 있었고,

포정이었으되, 또 다른 소를 잘랐다면 소의 결은 다르게 드러났을 것이다.

 

『제물론』편에 나오는 "길은 걸어간 뒤에 생기는 것이다(道行之而成)"라는 말의 의미도 그렇다.

걸어간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길이고 뭐고 간에, 생길 일이 아닌 것이다.

 

이쯤되고 보아야,

장자가 하려는 말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인위적으로 제어하거나 조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 정도의 자연스러운 것도,

마음의 수양만으로 모든것이 해결되리라는 낭만적인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생이라는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닌데...

옛 책이나 글, 종교 등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것이나 정신 수양 또는 마음 수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것처럼 읽힌다.

 

때로 번짓수를 잘못 찾았을 경우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 성심(成心)이라는 것이 자신과 상대방을 동시에 해치는 양날을 가진 칼이란 걸 깨달아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리하여, 나의 적극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요구하는...내가 변해야 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나의 행동 철학이다.

 

세살 버릇 여른까지 간다는 말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를 둘러싼 벽이 두껍고 높아져서...

나를 깨고, 해체하고...

상대에게 맞추어 소통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게 나를 깨고, 해체하여...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했을때,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온 아프락사스 마냥 제대로 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이 들어 나를 깨부수고 해체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힘들지만, 설레인다...ㅋ~.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신 나고,

날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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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6-20 02:08   좋아요 1 | URL
오, 아, 감탄사와 끄덕임만 연발하네요

오랫만에 서재 왔는데 님이 계셔서 참 좋아요

sslmo 2013-06-20 23:34   좋아요 1 | URL
아우~~~~, 반가와요.
와락~~~~~~^^

날 더운데 똘똘이랑 이쁜이랑 알콩달콩 잘 지내시죠?
저도 님이 거기 그렇게 게셔서 참 좋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