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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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

 

같은 칼날일지라도 누군가는 상처받고 피흘리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벼리고 모두어 앞으로 나가는 가지치기의 용도로 삼을 수도 있다.

 

한동안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의 접수를 맡은 직원이 급성 요통으로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디스크 파열이라고는 하지만,

나도 치료하는 상병명을,

나의 조언도 없이,

아니 나의 조언과는 아무 상관없이 꿋꿋하게 수술을 했다는 상황이 그리 깔끔한 기분일 수만은 없었다.

하긴 얼마전 올케의 급성요통 일때도 남동생 내외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택하였었다.

가족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원의 신뢰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이겠지 싶어...

그냥 겉으로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 서운해하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엊그제 올케와 전화통화 할 일이 있어 안부를 묻다가 그때의 서운함을 슬쩍 흘렸더니,

올케는

"형님, 오해세요~."

하면서 펄쩍 뛴다.

언젠가 남동생이 아파서 잠깐 봐준 적이 있었는데,

작고 조그만 체구에 땀흘리며 애쓰고 고생하는 걸 보고 무척 안쓰러워 하였단다.

 

직원 또한 알고 보니,

보험을 여러 개 들어놓은 터였고,

보험 처리 과정과 보험 혜택 문제 때문에,

그런 쪽으로 일처리가 잘되고 수월한 병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털어놓는다.

 

지난번 어느 책의 리뷰에선가,

내가 그동안 누군가의 실력을 잘못 알았는지도 모르겠다...하면서 상찬하였더니,

글쎄~, 소급 적용하여 서운한 내색을 한다.

 

ㅎ, 어쩔 것이여...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이미 내뱉은 말과 지난 일은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아버지학교>가 나오면 1빠로 사읽겠다고 다짐에, 결심을 하였지만...

1빠로 사기는 한것 같지만, ㅋ~.

말뿐인, 공허한 다짐 같고...~--;

암튼, 이렇게 뒤늦게라도 감상을 몇 자 남긴다.

 

 

내게 아버지는 풍요인 동시에, 결핍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아버지학교>에서 <어머니학교>와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었나 보다.

'어머니 학교'에서의 작중 화자인 어머니는 다소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곤조곤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이 재치있고 현명한 분이었다.

'아버지학교'의 작중 화자인 아버지 또한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내가슴

아버지학교1

 

  아들아, 저 백만 평 예당저수지 얼음판 좀 봐라. 참 판판하지? 근데 말이다. 저 용갈이* 얼음장을 쩍 갈라서 뒤집어보면, 술지게미에 취한 황소가 삐뚤삐뚤 갈어엎은 비탈밭처럼 우둘투둘하니 곡절이 많다. 그게 사내 가슴이란 거다. 울뚝불뚝한 게 나쁜 것이 아녀. 물고기 입장에서 보면, 그 틈새로 시원한 공기가 출렁대니까 숨 쉬기 수월하고 물결가락 좋고, 겨우내 얼마나 든든하겄냐? 아비가 부르르 성질부리는거, 그게 다 엄니나 니들 숨 쉬라고 그러는 겨. 장작불도 불길 한번 솟구칠때마다 몸이 터지지. 쩌렁쩌렁 소리 한번 질러봐라. 너도 백만평 사내 아니냐?

 

 * 용갈이 : 용이 밭을 간 것과 같다는 뜻으로 두꺼운 얼음판이 갈라져 생긴 금.

 

이 시에서의 캐릭터대로라면,

아버지는 말을 많이 아끼는 분이어야 할 것 같은데...

용갈이처럼 부르르 한번 성질이야 부릴지 몰라도 말이다, ㅋ~.

 

어차피 인생이란 것은 살얼음판일때도 있고, 두꺼운 얼음판일때도 있는 법이다.

두꺼운 얼음판일때 호기롭게 부르르 용갈이 성질이라도 부려본다지만 말이다.

무모하게 호기롭기보다는,

봄이 되어 저수지 물이 풀리는 때를 기다리는게 현명할 수도 있겠다.

요즘 난 무모하게 호기로운 사내보단 부드~러운 사내에게 끌린다.

 

왜가리

아버지학교 7

 

  저수지 비탈 둑에서 뛰어다니던 왜가리 때문에 엄청 웃은 적 있지? 메뚜기 잡아다 새끼 주랴 제 헛헛한 허구리 채우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술 취한 막춤을 보며 박장대소했지. 부리나케 일어나서는, 밀친 놈 없나? 비웃는 놈 없나? 두리번거리던 꼬락서니에, '술 좀 줄여요. 왜가리 꼴로 훅 가는 수가 있어요.' 내게 쏠리던 눈초리가 떠오르는구나.

 

 

  왜가리도 가을 지나 겨울 오면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물고기를 기다리지. 사내란 저런 구석이 있어야 해. 시린 발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지느러미가 전해주는 미세한 떨림을 읽는거지. 눈은 시린 구름 너머에 던져놓고 의젓한 품새로 뒷짐 지고 말이여. 물고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단 한 번 고개 숙이고는 다시 먼 하늘이나 바라보지. 물속 하늘은 가짜라서 진짜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니겄어?

 

  사내란 탁한 세상에서 탁발을 하고는 구름 너머 시린 하늘로 마음을 씻지. 식구들 뱃속 채워주는 일이라면 시궁창에 발 담가도 되는 거여. 사내는 자고로 연지蓮池 수렁에 서 있는 왜가리 흰 연꽃이여.

 

오히려 '왜가리'가 설득력 있다. 하지만, 왜가리의 대화도 시인이 지어낸 것이지 실제 대화는 아닐 수 있다.

사내만 저런 구석이 있어야 할까?

완전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품, 그대로인데 말이다.

강태공은 정계에 진출할 때를 기다렸었고,

왜가리란 새는 물고기를 기다리고,

시 속의 사내는 뒷짐지고 무엇을 기다리나?

 

물속 하늘은 가짜라서 진짜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니겄어?

 

아흑, 멋지다.

난 햇살 한자락 바람 한줌 허락하여 주신다면...

같은 강물이 아니어도 노상 발 담그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ㅋ~.

 

사랑

아버지학교 27

 

운동장 한가운데다가 물동이를 엎으면

철봉대 옆 볼품없는 나무 쪽으로 물길이 나는 거여

폭우 때 진즉 바닥이 쓸려나갔던 거지.

 

생선장수도 한마리만 사는 사람한테는

값도 헐하게 받고 큰놈으로 챙겨주는 거여.

서너 마리 흥정하는 이한테는 잔챙이도 섞어 팔어.

오죽 복잡한 속사정이면 이십 리 자갈길에

고등어 한 마리만 들고 가겄나? 그렇다고

이 가게 저 가게 다니며 한 마리씩 사는 놈은

마음주머니까지 가난한 좀팽이인 거지.

 

가난하다는 건 비탈이 심하다는 거다.

마음 씀씀이 좋은 생선장수든

마른 땅 적시는 물길이든, 뿌리가 드러난 쪽으로

정이 쏠리는 게 순리고 이치여.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평탄하기만한 일상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가난하고 비탈이 심하더라도,

삶의 굴곡을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고,

나와 다른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미건조하고 순탄하게 살기보다는 치열하고 가열차게 살고 싶다.

 

산다는 건 어쩜 죽음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한살 더 먹으면서 그런 건지,

요즘 가까운 사람들이 아프고 하나씩 둘씩 떠나가고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흐릿해져 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몸매도 허물어져 가고 하는...

죽음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단지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산화하여,

번지고 스며 물들어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자연이 되어가는 과정 같다.

 

자연이 되어가는 그것을,

거스르거나 거역할 필요가 있을까?

순리나 이치란 그런 것일게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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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7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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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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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말의 사용함에 있어서,

그 낱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 때문에 문장이나 구절 속에서의 호응이나 대구를 놓고 혼란에 빠질때가 있다.

나의 경우엔 '보수'나 '진보' 같은 것이 그렇고, '민주 주의' '사회 주의' 할 때의 '민주'와 '사회' 같은 것들이 그랬다.

육체노동자인지라 노동의 정직함은 경험 내지는 몸으로 체득했다고 생각했었던 터라,

한때 경제 중심의 신당 발언을 했던 안철수 의원 측이 이번엔  노동을 중심 의제로 삼는다고 하고,

진보정의당은 사회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려고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경제'라는 단어와 호환되어 쓰인다는 게 생경하고,

'사회'와 '민주'와 '노동'의 단어 조합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이런 것들과 관련하여, 내 속에 들어왔었던 것처럼  명쾌하게 정리해준 책이 이 책이다.

_ 학문의 영역이 잘게 나뉘어 있고, 철학같이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학문은 비현실적이고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들 하잖아요. 삶은 철학과 관련이 없고 철학은 사는 데 도움도 안 되고 돈벌이와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_ 그게 자본주의 논리예요. 돈이 안 된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뭉뚱그리는 거죠. ㆍㆍㆍㆍㆍㆍ(62쪽)

 

제글이 쉬워지고 편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대중성의 차원이 아니라 사람들과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해서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편하게 읽는지를 알아요. 지금 사람들 문제의 보편적인 구조도 알고요. 그러니까 글이 편하죠. 대중적으로, 쉽게 쓰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핵심이에요. 핵심을 찌르고 진짜 그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 대중성이고 애정이죠.(71쪽)

 

처음 이 책의 출간을 접했을 때는, 다른 책마냥 일단은 콜렉션을 위한 사재기였다.

장르소설을 읽던 시절부터 책에 남 다른 집착을 보였는데...그게,

어느 날 자고 깨어보니 품절이나 절판이더라...하는 상황이 되어 있을까봐 일단은 사서 쟁여두고 본다.

그게 꼭 기우만은 아닌 것이 얼마전 50% 세일을 했던 '야생종'같은 경우가 그런 예였다.

암튼, 이 책을 조만간 읽을 지를 고려하지 않고, 사재기를 한 이유는...

그동안 내가 알던 강신주는 겁나게 쿨했으니 차치해 두고,

지승호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인기와 지명도에 편승하여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요즘 나의 독서 방법인 정독에, 숙독까지 해야 할 목록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이 책의 '프롤로그'를 들추는데, 뭔가 '훅~!'하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의 다른 인터뷰집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어떤 진지함이랄까, 깊숙함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작업을 했던 김규항이나 정봉주, 우석훈 같은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같이 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다보니,

그의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느낀 바에 애기해 보자면,

인터뷰이들이 어떤 색깔이나 견해를 가졌든지 간에...

인터뷰어로서 다소 중립적이거나, 보기에 따라서 소극적이거나 주춤해 보일망정,

인터뷰집의 전체적인 색깔이나 견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걸로 미루어 요번에도 별반 기대가 없었다.

게다가, 철학이야말로 어렵고 난해하여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가능한 부문이고,

강신주 같은 경우 성격 까다롭고 깐깐하기로 유명한데다,

제 할말 다 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지라...

둘의 조합이 과연 어떤 행보를 그려낼 수 있을지,

그동안 10여권이 넘는 저서들을 낸 철학자에게 질질 끌려가 버리는게 아닐지 궁금했다.

좋아서 공부할 요량으로 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강신주의 책들을 그의 의도대로 명확히 읽어낼 수가 없을테고,

밥벌이를 위해 억지로 하기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일테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방향을 잡지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는 배가 산으로 가버리거나 꿀먹은 벙어리 노릇을 해버리고 말텐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동안 내가 강신주의 책들을 읽으면서 쌓아올린 신뢰의 탑이 높고 견고했다.

암튼,

요번 인터뷰집 한권으로 인하여,

그가 그동안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던게 아니라,

그의 자질을 알아주고 믿고 멍석을 깔아주는 인터뷰이를 만나지 못했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질문의 방향을 명확하게 잡는다는 것이 책을 읽는 독자와 책을 낸 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자에게는 글의 요점을 명확하게 잡아내는 이점이 있고,

저자 강신주에게는 그동안의 그의 저작들을 돌아보고 반추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을 터이다.

그동안의 저작할동을 나름 매듭짓고, 한단계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았다고나 할까?

나에겐 그동안 안 읽은 그의 저작들을 찾아 읽어보는 지름신이 강림하는 기회가 됐을 뿐이고 말이다.

 

 

솔직히 인문학, 인문학...말은 많이 하면서도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뭘 인문학이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었다.

강신주는 이걸 쉽게 설명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

바꾸어 말하면 직접 경험의 중요성.

자기가 공감하면 다른사람도 공감한다는 거...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의 차이를 들어 설명하는데 인상적이다.

잡스의 '자기가 해본다는 데서 오는 그것'을 '인문학 정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자기가 하려는 일이 우선이라는 점, 자본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런 심정으로 안 싸우고 서로의 호스피스가 될 때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그런 글을 쓸때가 있는데 그런 글은 쓰면 안 된다고요. 이 여자가 미우면 막 싸워야 해요. 살아 있으면 싸워야 해요.

  죽을 때까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나이 든' 사람들을 싫어해요. 그건 원숙함이 아니에요. 지침의 표현이죠.ㆍㆍㆍㆍㆍㆍ(105쪽)

 

몇몇 멘토나 지식인들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주의적 혁명 같은 것, 공산당이 중심이 되는 혁명 자체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느리게 느리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돌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 가는 것, 그리고 스스로 못 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서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김수영이 꿈꿨던 혁명이에요. 인문주의자죠. 진짜인문주의자.(153쪽)

 

제일 중요한 것은 직접 경험이예요. 직접 경험은 진짜 중요한 거예요. 감정이 일어나는 것, 이게 인문학의 핵심 정신이죠. 분노의 감정이 안 일어나는데 분노에 대한 글을 쓰면 안 돼요. 이눈학 책은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을으켜야 해요. 그 감정이 분도든 뭐든. 사회과학이 인문학은 아니지만, 좋은 사회과학 서저은 분노도 일으켜야 해요. 요즘 사회과학 서적들은 너무 건조해요. 사람은 감정이 움직여야 움직이거든요. 철학은 멀리로 들어와서 마음까지 흔들어야 좋은 철학이에요. 시는 마음으로 들어와서 머리를 흔들어야 하고요.

  좋은 철학책은 지적인 이해와 분석을 요구하는데, 책이 딱 끝나면 마음 속에 확 들어와요. 후배들이랑 원전 강독할 때 '책이 네 마음을 울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에 대한 논문을 써야 한다. 그걸 써나가는 과정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과정이고 그 사람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논문을 써야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 독립된 저자로서 살 수 있다'라고 조언해줘요. 하지만 대개 안 지키고 중요하다는 텍스트가 있으면 인용하고 요약해서 논문을 쓰죠.안타까워요.ㆍㆍㆍㆍㆍㆍ(186쪽)

 

 

 

실은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이런 어렵고 힘든 철학과 인문학의 얘기들을 독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듯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그걸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독자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책을 사서 읽을 사람들의 타겟을 잘 잡았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사랑에 빚대어,

김수영과 김수영의 아내,

제대로된 인문정신에 대해서,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보수와 진보와 개혁의 정의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게 만든다.

 

 

거기다가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쯤이면 '적중'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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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31 22:36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마음으로 스며든
좋은 책 하나
곱다시 품으며
밝은 달과 별 노래하는
밤 누리셔요
 

내가 상대하는 이들 중엔 정신이 잠깐씩 출타하여 호칭에 혼란을 느낄 연세의 분들이 있기는 하다.

얼마전의 일이었다.

우리 대장을 향하여,

"아저씨 밥 잘먹는 약 좀 없어?"

하는 소리와,

"아저씨라고 그러면 대답 안해줘."

하는 소리,

"내가 우리집 아저씨 물어봤지, 은제 의사 슨생한테 아저씨라고 그랬어?"

하는 소리가 오락가락하여 나가보니,

"그리고 으사 슨생도...나 만치로 나이들어봐. 그나마 아줌마라고 성별 안바꿔 부른걸 감사하게 될걸~?"

하시면서,

내심,

'호칭의 혼란쯤이야 나이듦의 현상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지,뭐 그리 유난이냐?'

말이 더하고 싶으신 표정으로 날 쳐다보신다.

나까지 구경을 나가자이번엔 현장에 계셨으나 귀가 먹통이어서 상황을 관망만 하던 올해 아흔의 쉰떡 할머니가  끼어든다.

"아줌니 올해 몇이여?"

"먹을멘치로 먹었어요."

쉰떡 할머니가 엉덩이를 떨고 일어나며 재촉을 하자, 마지못해,

"......여든이여."

라고 하며 창피한듯 '나이만 먹었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귀가 먹통인 쉰떡 할머니는 진짜 알아들으신 건지,

입모양을 보고 미루어 짐작을 하신건지,

용케 알아들으시고는...

"얼마 안 먹었구만, 아직 젊구만, 뭐~."

마냥 부러워 하시는 눈치다.

그동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던 예순의 대장와 마흔 몇 살의 나는 명함도 못내밀어보고 깨갱거리 수밖에 없었다.

 

모든게 그런것 같다.

기준을 정해놓고 보면, 기준의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입장은 바뀔 수 있는거다.

 

'산사나무 아래'라는 로맨스소설을 읽어주셨다.

내 또래 다른 애들이 로맨스소설을 읽을 때 난 무협지를 읽었었다고는 벌써 여러 차례 얘기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난 로맨스 소설은 금세 심드렁해지는 경향이 있다.

갈등 구조가 단조로운 것이,

쉽게 말하면 밀고 당기는 '밀.당.'이 맘에 들지 않는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아닌 거지,

좋아도 좋아한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해서 이런 저런 오해가 생기고 하는 것,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나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답답하다.

섣불리, 경솔하게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일도 아니지만,

한번 사는 인생이고,

그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사랑한다면,

마음을 표현하는데,

감정을 전달하는데,

인색해서도 안되겠다.

 

나는 상대방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게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묘한 기술이란 것이,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뿐인데,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인데,

촉이 좋아 짐작이 맞을 수도 있지만, 착각은 자유일 확률도 반이나 된다.

 

말 그대로 착각은 자유이고, 콩깍지가 씌어도 내눈에 씌는건데 웬 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큐피트의 화살이 제대로 들어맞았을때 애기이고,

어긋났을때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 일례가 요번에 생긴 스토커의 법적 기준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암튼,

이 모두가 풋풋한 젊은 이들의 얘기니까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ㅋ~.

지금 마흔을 훨씬 넘어선 내가,

처음 읽는 로맨스소설이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어서  징치우처럼 철떡서니 없이 굴면...

그땐 고도의 주책이 되는 거다.

 

분위기를 바꾸어,

난 이 '산사나무 아래'를 영화로 봤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페이퍼로도 남겼다고 생각했었는데,

(부산에 가고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링크)

되짚어 보니, 같은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산사나무 아래'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책을 보고나니, 영화도 필히 찾아보고 싶어졌다.

책 속의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 속에서 징치우가 본인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아주 괜찮은 외모로 묘사되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맞춤한 캐스팅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져서이다.

하긴,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닮았다고 느낀 것도 이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 뿐이고,

난 배구도, 탁구도 실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신통치 않고,

밥을 빌어서 죽을 쒀먹진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닥 살림도 야무지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로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징치우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손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모든 신경을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오랫동안 연습한 특기를 발휘하여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을 잊기로 했다. 바로 잡념에 빠지는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지면 종종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자신은 상상 속 인물이 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징치우는 산사나무를 생각했다.(19쪽)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지금도 중국은 침술과 민간의학이 발달하여 아무곳에서나 구급약과 침, 뜸을 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때에도 제대로된 의학은 불모지에 가까웠고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이 발달하여,

그걸 널리 전파하였나 보다.

사람을 묘사하는데도 그래서 그런가...은연 중에 그런 식의 관찰과 묘사가 눈에 띈다.

 

웃을때 입은 웃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아 차가운 눈빛을 띠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사람은 웃을 때 코 양옆으로 주름이 잡히며 눈도 가늘어졌다.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며 조소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웃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만 사탕 먹으라는 법 있나요." 그가 다시 사탕을 내밀었다.(30쪽)

이 책이 나한테 놀라웠던 것은,

지금 마흔을 넘은 나보다도 훨씬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날텐데, 대화를 가만 들어보고 있을라치면 파파할머니, 할아버지의 대화 같다.

 "겸손이 사람을 키운다고, 이렇게 겸손한 걸 보니 금세 성장하겠는데요." 그가 멈춰 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착한 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아요. 아코디언 연주할 줄 알죠? 가져왔어요?"(31쪽)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그때는 사람의 교통편이나 운송 수단도 발달하지 않았을때여서,

특히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하룻밤 제대로 묵을 수 있는 방조차 구하기 힘들었는데...

자신의 짐조차 자기가 짊어질 수 잇는 만큼이 고작이었을텐데,

아코디언을 가지고 왔냐고 묻는 게...참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낭만이라든가, 음악적 감수성 같은게 로맨스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겠지만...

들고다니는 손풍금이라고 불리우는 아코디언의 소리는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처량 내지는 청승 맞다고 하는게 낫지 않겠나, ㅋ~.

 

그래도 로맨스소설답게 아슴아슴한 문장은 나와주신다.

참 바보같지만, 저런게 사랑일 것이다.

한참 나이 먹어선 부러운 마음에, '바보같다'는 소리나 하고...

어쩜, 되돌릴 아스라한 기억 따위조차 없는 내가 진정 '바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람이 떠난 뒤에야 사랑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갑자기 그 사람을 볼 수 없게 돼서야 바로소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징치우는 두려웠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심장을 그의 손에 건네줬고, 지금은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징치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다면, 손 안의 심장을 한 번 꽉 쥐기만 하면 되고, 징치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저 미소를 한 번 짓기만 하면 된다. 징치우는 자신이 왜 그렇게 경솔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됐다니.(47쪽)

 

 

산사나무 아래
 아이미 지음, 이원주 옮김 /

 포레 / 2013년 4월

 

 

 

 

 

 

 

 

그리고 연결해서 읽은 책이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이다.

'산사나무 아래'를 읽으며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두 소설에서 모두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기가 언급되고 있어서 인것 같다.

그리고 '산사나무'의 그것보다는 다소 나이가 든 이'쑨위에'와 '허징후'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나이가 다소 있다고 하여,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사랑마저 애틋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사상이나 이념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역자가 '신영복'이라는 사실은 예전엔  깨닫지 못했던 흥미유발의 원인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 호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호 젠후의 태도는 대단히 훌륭하지 않으냐. 하지만 사물을 모두 정반(正反) 양면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그에 대해서 지나쳤다, 이것이 한 면이다. 반면, 그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도 확실하다. 사상의 과격성, 감정의 불건정성. 그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지. 우리 당은 일관해서, 과거의 잘못을 장래의 교훈으로 삼고 병을 고쳐서 사람을 구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까......."(106쪽)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가 없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우 영원히 말뿐이고 개념뿐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165쪽)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367쪽)

 

페이퍼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려던 차에,

내가 좋다고 설레발을 치는 번역가 한분이 신변 잡기적인 책을 내셨다는 얘길 며칠 전에 들었었는데,

알라딘 신간 알리미가 '띵똥'거린다.

알라딘 신간 알리미, 땡큐다.

일빠로  구입해야쥐, ㅋ~.

 

 

 

 

 

 

 

 

 하찌의 육아일기
 이창식 지음 / 터치아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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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5-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던 그 감동이 생각나네요..
댓글저장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 - '빠삐봉' 정봉주의 맨손 헬스
정봉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난 사춘기때도 하지 않던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사춘기때 아이돌 스타들을 따라 다니며 '악~'소리 한번 질러보지 않았고, 그들의 사진을 코팅하여 책받침이나 부채로 써보지도 않았다.

하긴 애들이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빠졌을때, 난 무협지를 탐독한걸 보면...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분명 늦된 거였는데,

그때 애들의 눈에는 '쫌' 유니크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가 지금 하려는 얘기는 내가 늦되고 덜떨어졌었다는게 아니라,

(난 책 사는데 들이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워 하는데,

 브로마이드 화보집을 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연예인 얼굴이 실린 사진집을 사는 걸 이해 못하는 부류였다~--;)

내가 브로마이드 화보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게 없는 이 책을 내돈 주고,

게다가 리뷰나 페이퍼 안내글조차 없어서 '땡스투'조차 못 눌러  적립금마저 포기하며 샀다는 거다.

 

나는 깔때기 정봉주의 그것이라는 사실 하나면,

그렇고 그런 브로마이드 화보집이었어도 과감하게 구입해 주셨겠지만,

20여년을 사람 뼈다귀랑 살, 지방 덩어리 등을 공부하고 지낸 내가 보기에도,

책 안의 내용이 사실적이고 책이 주는 파급 효과는 컸다.

무엇보다 이 책의 모델이 '정봉주'라는 사실이 그러했는데,

내가 맨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 대장보다 겨우 한살 적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장 또한 머리는 둘째 가라면 서럽고,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꼭 끝을 봐야 하고,

건강과 몸매 가꾸기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봉주에는 미치지 못했다.

 

우리 대장이 가지지 못한, 오늘 날의 빠삐봉 정봉주를 있게 한 그 하나는 '긍정에너지'이다.

그의 말마따나 억울하게 간 감옥이라고 하여 요즘 유행하는 '힐링서적(?)'을 읽고 읽는다고 한들,

모든 얘기가 결국엔 자기 잘났다로 귀결되는 깔때기 정봉주의 성격 상 얼마나 힐링이 되겠는가 말이다.

차라리 감옥에서 나갈 그날, 보여줄 몸을 만들며 기다리는게 한결 수월하였을 것이다.

그니까 가능한 일이다.

'긍정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꾸준히 하여 조금씩 나아지는데서 희열과 만족을 느끼고,

누군가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면 신 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그니까 가능한 일이었지...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보기 전에 지레 겁먹을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옛날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옛날이 아니고 1년전, 감옥에 들어가기 바로 전의 '정봉주'의 몸매되시겠기 때문이다, ㅋ~.

 

암튼, 내가 설레발을 치면서 이 책을 리뷰를 써주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서 '긍정에너지'를 전수받고 싶어서라고 위에서 애기했었고...

또 하나는 '운동을 하자'는 흔한 얘기나, 정봉주처럼 빠삐봉이 되자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운동을 하기는 하되,

오랫만에 한번씩 먹는 특식 먹듯 하지 말고,

매일 밥을 먹었으면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가듯 일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다.

아무리 진수성찬 맛난 것이라도 매일 먹으면 물리니까 말이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출근 안하는 날 세수를 거르기도 하고,

저녁에 음주가무로 정신없이 널브러져 잠이 들면 이 닦는걸 까먹을 수도 있듯이,

그렇게 가끔 까먹을 수 있게 운동을 습관을 들이자는 거다.

 

일단 준비물이 거창하거나, 날씨에 좌우되는 운동은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적당하지 않겠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ㆍㆍㆍㆍㆍㆍ

"정 의원님. LSD( Long Stead Distance)를 할때 어느 구간이 가장 힘든지 아세요?"

"언제가 가장 힘들어요? 몸 속 에너지가 다 고갈되는 30km지점인가? 그쯤에서 죽을 것처럼 힘들다고 하던데."

"큭큭, 그렇지 않아요. 제일 힘든 구간은요ㆍㆍㆍㆍㆍㆍ.신발 신고 현관을 나서는 그 구간이에요."

 

깔때기 정봉주가 책의 첫머리에서 힐링서적을 읽는다고 무슨 힐링이 되겠나 해서...

책은 전혀 읽지도 않았나보다 했더니 그건 또 아닌가 보다.

그럼 그렇지...

힐링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의 깊이는 읽는 책의 양이랑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설정이겠지만, 책 제목들도 궁금해 죽겠다~--;

책 곳곳을 이 잡듯이 뒤져 몇권의 제목은 확보했다, ㅋ~.

책 제목은 알아서 뭐할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말이다.

나도 정봉주처럼 운동할때 벽돌 대용으로 쓸려고...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목을 확보한 '중용한글역주'와 '논어한글역주'는 비슷한 건 본적이 있어도 같은 것은 못봤고,

'공감의 시대'와 '3차 산업 혁명'은 전혀 보지도 못한 책이다~--;

 

내가 이러고 앉아 있으면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책에 욕심내지 말고, 차라리 트레이닝복 메이커가 어디 것인지 쳐다보고,

옷이라도 걸쳐입고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하라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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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06 10:00   좋아요 0 | URL
어디에서나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저도 집에서 두 돼지(두 아이)를 다리에 얹고 올렸다 내렸다 비행기를 태운다든지,
두 팔로 안아서 비행기를 태운다든지 하면
근육마다 펄떡펄떡 뛴다고 느껴요.

집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불 털고 뭐 하고 그러면...
저절로 생활근육 붙지요.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누구나 생각 잘 가다듬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저도 학교에서 수험생으로 있을 때
수업을 들으면서
걸상에 엉덩이 안 걸치고
두 팔로 버티며 팔근육 늘리기를 하기도 했어요.
쏟아지는 졸음 참으려고 하던 건데
해 보니 평행봉 선수처럼 팔근육 늘리기에도 좋더라구요 ^^;;;

세실 2013-05-06 10:04   좋아요 0 | URL
진정한 몸짱, 정봉주!!
전 요즘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온몸이 아파요.
어제도 집에서 끙끙 앓았네요.
무언가 당장 시작해야 할텐데.....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잘잘라 2013-05-06 16:32   좋아요 0 | URL
와우~ 1년 동안의 변화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네요. 1평 독방에서 저라면.. 으아~ 단 하루, 아니 한나절, 아니 한시간, 아니 아니 단 10분도 못 버티고 정신줄 놨을거예요. 아마도. ㅠㅠ 목숨 걸었다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정봉주.. 제 스타일이 아니라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돌아온 그를 환영하는 의미루다가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

프레이야 2013-05-06 22:41   좋아요 0 | URL
우와! 정봉주 대단하네요. 다시 보여요. 몸은 정직한 거 같아요.

같은하늘 2013-05-08 19: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렸다 정봉주의 책이라는데 눈이 확~~해서 보고갑니다.ㅎㅎ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시지요?
 
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예수나 기독교를 인식하게 된 것은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가 시작이었나 보다.

시 속에서,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라고 읊조리고 있는데...

나는 어린 나이에, 모든 예수나 기독교는 저 시 속에 등장하는 예수 같은 줄 알았나 보다.

그랬으니 종교로서의 기독교,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지지고 볶는 삶 자체로, 내지는 연장선 상에서 받아들이려 했었을 테고 말이다.

암튼, 내가 정호승의 저 시집을 읽었을 때가 스물 언저리였고,

그로부터 그때 그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고,

저 시 속에 등장하는 예수가 이제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걸 믿어가려던 찰나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을 희망해도 좋으려나?

부질없는 희망,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수가 있었으니 반드시 '(당신들의) 기독교'가 필요치 않으나, 굳이 기독교인으로 남고자 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에 불과한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 그러니까 어렵사리 몸을 끄-을-고 남을 따르려는 삶의 양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제자란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입니다. 쉽게,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고쳐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루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쓰레기통의 파리 떼처럼 번성합니다. 이제 '신자'의 파리 떼와 그 파리대왕들의 틈 속에서 유일한 가능성은 '제자'이지만, 아,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그 스승을 '믿지' 않은 채 그보다 앞서 '걸어가는' 공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처럼, 다만 불가능한 꿈을 지피면서, 걷고 걷다가, 죽어버리십시오.(5쪽,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그동안 김영민의 전작들을 읽어 김영민의 논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커다란 제목 '당신들의 기독교'와 목차, 소제목들만을 훑어보고 책의 내용을 대충 미루어 짐작하는 사람들은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

물론, 큰 제목과 목차, 소제목 등 모두 다 잘 뽑은 것은 맞지만,

큰 제목 '당신들의 기독교' 아래 엮인 10개의 소제목이 어떤 서술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내용이겠거니 하다가는 허를 찔리는 꼴이 되고 만다.

 

이책을 끝까지 차근차근 읽고 나야,

비단 '예수'나 '기독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쪽으로 시야를 확장시킬 수도 있고,

'기독교' 대신에 여타 다른 종교나 각자가 맹목하는 '철학적 신념'을 대입시켜 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10개의 예시 중에 난 저 시집에 나왔던 예수의 실재(實在)를 본 것도 같다.

그러니 이 책 '당신들의 기독교'를 읽고,

'사람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잠시 모닥 불을 피우면 따뜻해지는 것'을 희망해 보게도 된다.

 

좀 길지만 부분, 옮겨 보겠다.

j는 기독교인이다. 스스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그리 밝힌 까닭에 그를 기독교인(개신교인)이라 여기긴 해도, 체계가 승인하는 '사회적 동화(social assimilation)'의 지표에서 보자면 j를 굳이 종교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좌표는 희미하다. 우선 그는 정한 교회를 두고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다. 전라도의 외진 향리에 거처하는 j는 전형적인 농사꾼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눈매가 맵고 말씨가 담담해서 선비풍을 짐작할 수 있는 데다가 일없는 날에는 정갈한 한복을 입은 채 매양 책을 읽고 앉았으니 마을에서는 그를 일러 '농사(農士)'라고 추켜주곤 하였다. ㆍㆍㆍㆍㆍㆍ그가 유독 골독하는 책은 신약성서인데,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지만, 마치 신약성서의 원어가 한글이기라도 한 듯이 ㆍㆍㆍㆍㆍㆍ일견 다석 일파를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언젠가 나는 j의 글과 그 필체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얼핏 초등학생의 글씨를 방불케 해, 비록 잠깐이었지만 지역의 근면하고 학식 있는 처사로 고명한 그에 대한 기대가 일순간 허물어지는 듯도 하였다. 물론 '박필이 천재'라고도 하고, 심지가 곧고 깊으면 오히려 그 겉가량이 어렵기도 하다.

ㆍㆍㆍㆍㆍㆍ

덕망과 재식을 갖춘 지역의 처사인 j는 유능한 지관으로도 이름을 얻었는데, 특히 동기감응설에 근거한 음덕풍수는 기독교의 교리와 양립할 수 앖는 이치를 지녀, 인근 주민들의 상사(喪事)에 도움을 주고자 한 데서 비롯한 선의가 그가 충실히 섬기는 교회의 적의로 되갚음을 당하는 꼴이 몇 차례 있었다. 이웃의 요청에 응해 그가 지관 행세를 할 적마다 손바닥만 한 마을에 소문이 흐르는 게 당연해서 그가 종종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거나 징벌적 교도의 메시지를 보내곤 하였다.

 

j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살이'인데, 거기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풍수를 비롯하여 지역의 민속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더러 과감하게 지원하는 이유도 '지금-이곳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는 그의 일관된 '세속적'관심 - 이것은 가히 사이드(E.Said)를 따라 '세속적 관심'이라고 할 만하다-때문이다. 대개의 종교가 '어느 먼 곳'이나 '어느 다른 때'의 유토피아를 명분으로 내거는 대신 지상의 삶을 부차적으로 폄하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j의 개신교는 차라리 일종의 '삶의 종교'-니체가 기독교를 '삶을 고사시키는 종교'로 타매한 점에 착안한다면-로서 그의 일탈적인 행위 속에서 역설적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j가 기성교회와 불화하는 부분은 교리적 각론이라기보다 사실 어떤 총체적인 '분위기'에서 더 깊어진다. 한결같이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인간들 사이에서 강기갑 의원이나 처음 등단한 유시민의원의 입성이 되려 낯설게 보이듯이, 일할 때가 아니면 늘 정갈한 한복을 챙겨 입고 입을 열면 동아시아의 고전에다 한시를 주워섬기며 좀처럼 개신교회에서 통용되는 어휘들에 마음을 열지 않는 j의 동태에는 마치 눈엣가시처럼 여타의 교인들과는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이물감이 있었다.

 

나는 종교의 완성-종교는 결국 믿는 자의 일생에 근거한 한시성과 실존성에 제한적으로 유효하므로 '완성'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긴 하지만-이 어떤 정서와 분위기에 젖어 있는 생활양식, 그리고 그 생활양식에 의해 검질기게 몸을 끄-을-고 다가서려는 어떤 희망에 의해서만 가능해지리라고 전망한다.ㆍㆍㆍㆍㆍㆍ마치 못난 인간들이 못난 신을 제 꼴처럼 품은 채로 역시 못난 생활과 못난 욕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거꾸로 좋은 사람들의 좋은 생활과 좋은 희망은 종교를 완성하고, 그 속의 신을 아름답게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26~133쪽.'j혹은 창의적 스캔들'부분 인용)

 

또 다시 5월이다.

이땅의 꽃들이 피고 지는,

이 땅의 숨은 넋들이 피어나고 스러지는 5월이다.

'예수'나 '기독교' 자리에는 어떨지 몰라도,

저 시의 '예수'나 '기독교'에는 '사람'또는 '삶'을 대입시켜도 좋겠을 5월이다.

 

적어도,

나는 '신'이나 '신성' 대신에 '지금-이곳의 삶'을 대입시키겠다.

때문에 가장 신적인 것은 가장 육체적인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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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01 21:56   좋아요 1 | URL
5월 한 달도 즐겁게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