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로티를 보았다.

좀 진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걸 감안하고서도 참 좋았다.

이제훈(장호 역)은 자기의 맞춤 배역이라고 할 정도로,건달과 천재 성악가 역할을,

한석규 역시 음악 선생님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냈다.

개인적으로 조진웅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웃음을 줄거라고 기대했었는데,

그와는 달리, 이제훈(장호 역)을 거둬 주는 건달로 분해 화려한 액션과 멋진 대사 몇마디 날려 주신다.

역시나 교장선생님 오달수가 크고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감동'을 의도적으로 전달하려 해서 좀 진부하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나름 감동을 받았고, 나중엔 눈물과 콧물을 섞어가며 '엉엉'울기까지 한 것이 제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영화였다.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면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조진웅이 자신은 꿈이 없어서 가장 불쌍하다고 하는 장면과,

이제훈이 한석규를 향하여,

"언젠가는 사흘동안 말을 안한 적도 있습니다. 누가 말을 걸어줘야 지껄이지요." 하는 장면,

한석규가 건달 두목을 찾아가서,

"장호 보내주십시오. 손목아지는 피아노라도 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안되고, 발목아지라도 끊으십시오."하는 장면에서 흘린 눈물을 합하면 손수건 하나는 적시고도 남겠다.

 

난, 친구나 동료도 그렇고, 스승도 그렇고, 한참 나이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내가 그들로부터 무엇 하나라도 배울게 있는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입장 바꾸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만큼의 실력과 내공을 쌓았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올시다'이다.

예전에 지방 대학에서 한학기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물론 자질을 놓고 봤을 때도 많이 부족해서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도 내가 못마땅했었겠지만,

무엇보다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어 놓고 나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한시간 떠들고 나면 허기가 져 음식을 주워 삼키듯 부족한 밑천을 보충할 요량으로 책이고 자료를 들입다 팠다. 

 

음악 선생님 상진(한석규)은 제자를 위하여 건달 두목을 찾아가서 발목아지를 내놓는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진부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 실상을 읽으면서는,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싶어, 뒤늦게 목이 메었다.

 

나에게 힘들고 불가능하게 보인다고, 세상 모두가 나 같으란 법은 없다.

새학년 새학기가 되어 다 새롭겠지만,

대입을 준비하는 인문계 고등학생은 새로움에,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한 학교에서 얼마 전에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이 나오자,

시험을 망친 한 학생이 좌절하여 선생님을 찾아가서는 철퍼덕 넘어져 눈물바람을 하였단다.

선생님은 울고 있는 학생에게,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있는 날, 니가 와줘서 다행이다, 고맙다."

하며 달랬단다.

 

어쩜, 요즘 울 아들의 장래를 놓고 고민 중이어서 이 영화가 남달랐는지도 모르겠다.

울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동안 무엇 하나 특별하게 빼어나게 잘하지는 못할지라도, 두루뭉술하게 잘하며 큰 말썽없이 지내왔다.

그리하여 자율고라는 곳을 단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주변 아이들이 다 자기만큼은 공부를 하더란다.

게다가 아들은 그 엄마의 오지랖을 닮았는지,

이것저것 두루두루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과 호기심도 많았다.

중3 무렵엔 맛을 탁월하게 구별해내서 그게 '맛 감별' 쪽으로 반짝하더니,

지금은 나이 또래의 '악동뮤지션'을 보고, 그애들처럼 기타 치고 작곡을 하고 싶으시단다.

문제는 자기 아들에 대해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봤을때,

그런 콩깎지가 씐 엄마의 눈으로 봤을 때도, 아들이 기타치고 작곡을 해서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것들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데, 외동이어서 경쟁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녀석은...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그 상황이 싫으시단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성화에도,

밥 몇끼 굶는게 낫지, 평생 하고 싶은 걸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게 낫겠냐며...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에효~--;

 

 

 파파로티 O.S.T.
 한석규 외 노래, 강요셉 테너 /

 열린음악 / 2013년 3월

 

 파파로티
 유영아 원작, 김현정 소설 /

 탐 / 2013년 3월

 

그리고 오늘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정치인 유시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너무 가볍게 시류에 움직이는, 말과 행동이 다른 그가 보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정치색을 최대한 배격한 그의 글은 너무 괜찮다.

아니 그는 지식소매상이라고 표현하지만, 난충분히 마음에서 우러나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그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지음 / 아포리아 /

 2013년 3월

 

 

 

결론을 말하자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10쪽)

  ㆍㆍㆍㆍㆍㆍ어떻게 살 것인가? 크라잉넛은 자기네 생각을 이야기했다.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 거 부딪쳐!' 훌륭한 대답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좋아하는 펑크록 음악을 들고 세상과 부딪쳐 나름 성공했다.인생에서 성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포기하고 산다면, 그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23쪽)

ㆍㆍㆍㆍㆍㆍ그러나 크라잉넛 멤버들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물질이나 지위,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갔다.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부딪쳤다. 인생이 성공했으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들은 좋아하는 놀이를 직업으로 삼았다. 이것만으로도 '절반'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인생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일과 놀이가 인생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사랑과 연대solidarity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크라잉넛 멤버들이 이 나머지 '절반'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절반' 성공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크라잉넛의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크게 빚졌다고 생각한다. 그 빚을 갚고 싶다. 그래서 그들도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인생의 나머지 절반도 소신대로 하기를 기대한다.(27~28쪽)

이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그는 힐링에 관해서 강신주와 같은 의견을 펼친다.

그리고, 이렇게 돌려서 얘기한다.

그런데 이 얘기가 그가 하는 말들이어서 설득력이 있고 아름답다.

미사여구보다 아름다운 말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의 소신이 담긴 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살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ㆍㆍㆍ.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

그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들여다 보기라도 한 듯 이렇게 담담하게 적고 있다.

'지금' 바로 '여기'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꿈'을 얘기하는 것이고,

이것들이야 말로, 가장 소박하면서도 소신이 담긴, 설렘과 황홀과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빠르고 쉬운 방법이 아닐까?

 

그러면서, 카뮈의 스승 '루이 제르맹'을 언급한다.

그러고 보면, 유시민 그도 지식소매상 어쩌고 하지만, 선생님(즉, 교사가)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알고 있는 듯하며,

이제 그가 그러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그가 여지껏 해오던 정치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조차 없는 멋지고 위대한 직업일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라면 훌륭한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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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3-25 23:26   좋아요 0 | URL
응, 저도 유시민 읽어볼래요, 라고 쓰고 양철나무꾼님 안녕, 오랜만, 이라고 인사도 하고.
보고싶었어요. 진짜진짜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글은 잘 읽고 있었고요. 댓글 없어서 서운했어요? 안서운했어요?

숲노래 2013-03-26 05:32   좋아요 0 | URL
오늘도 좋은 하루 마음껏 누리셔요.
저는 지난 한 주 서울 인천 떠돌며 강의하고 뭐 하느라
시골마을 봄꽃을 '한 주치 놓쳤'더니
아주아주 서운하더라고요.
참말 봄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시골에서만 지내야지 싶어요.

아이와 함께 봄꽃 봄나무 즐기러
느긋하게 마실해 보셔요.
서로서로 마음에 걱정 아닌 즐거움을 놓아 보셔요.

북극곰 2013-03-26 09:54   좋아요 0 | URL
파파로티, 저도 진부할거라 생각했는데, 절친도 보고나서 한없이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영화 보러 갈 형편은 안 돼서 전 천천히 봐야겠어요.
유시민이 이젠 글쟁이로만 살아갈거라는데, 왠지 짠하고 씁쓸하고... 복잡하더라고요.
독자로서는 반길 일이지만.

그나저나 나무꾼님~ 저도 간만에 댓글 달아요.
봄이 되니 좋네요!

하늘바람 2013-03-26 11:18   좋아요 0 | URL
아 카뮈 질문에 대한 답 어디 적어 놓아야겠어요 멋지네요 님따라쟁이 픈!

알케 2013-03-26 13:50   좋아요 0 | URL
유시민..이번 책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무엇보다 '훈장질'안해서 좋아요.저는 일주일 째 점심시간에만 읽습니다.
파바로티는 (제가 영화관에서 본 마지막 영화가 '아바타'이니 한 3년을 영화관에 안갔네요.)언제나 볼 수 있을지 ㅎㅎ
우리 아들놈의 장래 희망은 한국야구위원회 (KBO)기록원입니다. ㅎㅎ
 

1.

그동안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책을 처분하는 차원에서,

다시말하면 '책.탑.타.파'차원에서 읽은 책이나 두권 가지고 있는 책, 또는 같이 읽었으면 싶은 책들을...

알라딘 서재 지인들에게 곧잘 선물했었지만,

정작 나는 그들이 읽고 보내주는 책을 쉽게 받아 읽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책을 보내주겠다고 할 때, 거절하느라 참 힘들고 난감했었다.

그러던 차에 한 친구를 알게 됐고,

그 친구가 너무 좋았던 터라 그 친구가 읽으면서 남겨놓은 흔적과 표시가 참 좋아서 쓸어보고 만져보고 보듬어 안아보고 하였다.

그 친구 덕에, 손 때 묻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이제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책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며칠 전,

이곳에서 모두의 애정을 받는 OO님께서 내게 노란 종이에 눌러쓴 이쁜 손글씨 편지와 함께 책을 한아름 보내주셨다.

어머니가 아프신 뒤라 정신 없으실텐데...

내가 언젠가 이곳에서 '번역가의 꿈을 키운다고 설레발'을 쳤던 걸 기억하고 계신다.

아흑, 창피해라~--;

OO님, 제겐 취미로 설레발을 쳤던 그것들이...누군가에겐 치열한 현실이고 삶이어서...

그리고 그쪽으로 자질이 없는 걸 뒤늦게 깨닫고 접었습니다여~ㅠ.ㅠ

잊지않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여~(__)

 

 

(왼쪽 엄지발가락이 찬조 출연했네, ㅋ~.)

 

 

 

 

2.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을 '농담'이라고 한단다.

이문재의 시<농담>은 한때 좋아 외우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그렇게 잊혀졌었는데,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96쪽)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었다.

 

            농      담

                       - 이 문 재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로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한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 '농담'의 의미를 놓고 궁금해 했었다.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에서 이 시를 인용했을 때는,

이렇게 멋진 시 내용을 읊고나서 쑥스러워서 머리 긁적이며 '농담'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짙지 싶다.

하지만 난 이 시의 '농담'을 반어법으로 해석하고 싶다.

종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종은 지금도 충분히 아픈데,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해 더 아파야 한다는 말은 '반어법'이거나 '농담'이어도 좋겠다.

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아프면 아플수록 지금 더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지금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하고 있지 않을 확률은 1/2,

사랑하지만 떠올리지 않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이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은 차치하고,

여기서 경계하여야 할 것은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제 몸을 더 세게 때려 소리를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하거나,

제 자신을 말끔하게 비워내 더 큰 울림을 만들어야 한다.

때리는 것도,

깎고 비워내는 것도,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그 강한 사람도 어쩌면,

한번 무너지면 연달아 무너지는 도미노마냥 속수무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농담'으로라도...

치열하게 사랑하고,

진짜 외롭고,

더 아파하고 싶지는 않다.

난 아름답지 않고 사소한 풍경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이 아니라 단사표음이라도 좋으니,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저런 삶을 꿈꾸는 시인이나 작가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삶을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카피는 거시기다
 윤제림 지음 / 난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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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9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3-20 07:37   좋아요 1 | URL
오늘 하루도 고운 봄볕과 함께 아름다운 이야기 누리셔요

2013-03-20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3-20 17:09   좋아요 1 | URL
호호호 저두 잘 아는 분이 보내셨군요^^
뭐야 제가 책 선물 한다고 하니 싫다 하시고는 흥흥흥!! ㅎㅎ 벌써 오래전 이야기죠~~~

mira 2013-03-20 17:33   좋아요 1 | URL
공감가는 이야기가 가득한데요. 누가 보내셨는지 저두 어렴풋알겠네요 . ㅎㅎ

cyrus 2013-03-20 19:59   좋아요 1 | URL
2년 전에 나무꾼님이 선물한 책 잘 읽었습니다. 그 해 복학하느라 책에 대한 글 한 토막 못 썼지만...^^;;
저도 선물 보내줄 수 있었는데 답글 안 달아주셔서 기다리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ㅎㅎㅎ

2013-03-20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석원의 서울연가
사석원 지음 / 샘터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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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드셨는데요?"

"아침엔 빵 먹고요, 점심엔 김치찌개 먹었는데요."

'에엥~?@@'  애써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내 허벅지를 꼬집어서 분명 보랏빛 멍이 들었을게다.

"아니, 뭘 먹었는지가 아니고요, 뭘 드셔서 허리가 아프시다면서요?"

"아하~? 네에..."

같은 한국어를 쓰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요즘은 어려운 의학용어를 사용하는게 아니라 일상용어를 사용하는데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소위 서울 토박이.

부모님도 서울 분이시고, 친가 ㆍ외가 다 서울이어서 사투리가 섞일래야 섞일 새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쓰는 말이 표준어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는데 '서울 사투리'라는 것도 있다고 해서이다.

암튼 서울 사람이면서도 서울 말씨의 특징이랄까, 속성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사석원은 그걸 이렇게 정리해주는데 제법 명쾌하다.

 50년 전쯤의 한국영화를 보면 배경이 되는 풍경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고 말투도 확연히 달라 매우 생경한 느낌이 든다. 특히 여인들의 말씨가 그렇다.

  원래 서울 여인들은 수더분하기보다는 깔끔하고, 푸짐하기보다는 야무진 느낌이 풍겼다. 꼭 조여진 버선발의 사뿐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잘 씻어서 껍질을 깎아놓은 생밤알 같다고나 할까. 곱고 사근사근한 말씨에 깍듯한 예의범절을 갖춘 서울 여인들. 알뜰하면서도 부지런하고 때론 지나치게 경우가 밝아 다소 차가운 인상을 풍기기도 했던 서울 아낙네들. 그녀들의 말은 졸졸졸 물소리같이 맑고 명랑했다. 서울 여인들은 비교적 말이 많고 빨라 받아 적기가 힘들고 힘을 빼서 발음해 억양에 변화가 적어 타지인들은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도란거려 무슨 재미난 소설 읽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랬던 서울 여인들의 토박이 말투가 지금은 오래된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말투는 전국 팔도가 비슷비슷해졌다. 모두 같은 고향 출신인 듯 엇비슷한 음색으로 말을 한다(260쪽)

그의 이 글을 읽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었는데,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난 목소리가 엄청 컴플렉스이다.

이젠 아들이 제법 커 그런 일은 없지만, 환자를 앞에 두고 어린 아들과 응급 상황일지도 모르는 전화 통화라도 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 환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애인'이랑 통화하냐며 관심을 보인다.

내 말씨가 곱고 사근사근하다 못해, 다정다감해서 애교가 뚝뚝 떨어진단다는 거다.

이런 목소리의 컴플렉스가 내게 주도적으로 나서서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습관을 만들어주어, 그나마 일을 하는데 있어서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자위하곤 했었는데...사석원의 글을 읽고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고 전반적인 서울 여인들 말씨의 특징인가 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컴플렉스'로 여길 것까지는 없었을텐데 말이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사석원이 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겐 의의가 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가 40년이 넘게 몸 담고 살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서울을 좀 자세히 알아보자는데에도 의의가 있다.

 

사석원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최북'과 마찬가지로 손철주를 통해서였다.

그 후 사석원의 그림과 글들을 꾸준히 접했다.

그림이야 내가 좋다고 설레발을 치던 그런 풍의 그림인 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글은 조각글로만 접했던게 고작이었기에 그의 문체나 작풍에 대해서 느낄 사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쓰는 줄 미처 몰랐다.

그림이 단정하고 깔끔하지만, 다정하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여운을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인데 반해,

글은 이렇게 저렇게 눙치고 엉너리 치며 수작을 부리는 품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요번의 것은 그림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뭐랄까, 질펀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의 책에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화류계에서 '쫌' 놀아본 한량의 냄새가 풍긴다고 해야 할까, ㅋ~.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은 이제 옛말인가 보다.

이 책은 처음 맛집 소개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는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듯 하다가,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음악이면 음악, 두루두루 출중하여 나같은 凡人의 입장에선 마냥 부러워만 하다가 날 새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낱말로 '인복'쯤을 들 수 있겠는데, 그 인복이란 건 이 밑의 글에도 나오지만 상호적인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많이 지어야 나도 복을 많이 받는 것이고, 같은 상황을 놓고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면서 한번 더 미소 지으면 행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행복이나 불행은 쪼개진 사과처럼 확연히 나눌 수 있는 별개의 것도 아니지만, 혼자서 다니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 또는 불행의 정점을 치는 순간 방심한 틈을 노린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아마도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나 봐요!" 내 인생이 남들에겐 부러울 정도로 얘깃거리가 많고 재밌게 비쳐진 것 같다.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다. 삶이란 게 뚜렷한 경계가 있어 행복과 불행이 쪼개진 사과처럼 확연히 나누어져 다른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같은 상황이라도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고 회한이 될 수도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겐 사랑의 도시고 누군가에겐 끔찍한 비정의 도시가 될 것이다. 그것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9쪽, 서문 중에서)

그렇다면...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불행 대신 행복을, 회한 대신 추억을, 비정함 대신 사랑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불끈~! 

 

인복이 상호적인 것이니까 복을 많이 받으려면 복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했는데, 이 사람의 그림 재주야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어렸을때 고흐 도록을 보고 꾸준히 모사를 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글도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꾸준히 독서를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종묘'를 언급하면서 최근에 쓰인 소설인 '은교'를 언급하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음악 또한 중학교때 클래식 연주회를 쫒아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런 모든 감성이 쌓이고 쌓여 오늘 날의 사석원이란 사람이 만들어 지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오감을 열고 열정적으로 공감하려 하는 노력, 물론 본인 나름대로는 치열했겠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충분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삶은 제대로 즐기는 자의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사춘기의 지적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겉멋이 들어서인지 고전음악엔 문외한이었던 중학생의 나는 국립교향악단의 연주회를 6개월간이나 정기권을 끊어 빠짐없이 남산 국립극장에 가서 관람한 경험이 있다. 당시 지휘자는 홍연택이란 분이었고 작은 망원경을 준비해 열심히 연주와 지휘하는 모습을 관찰했었다. 그 덕인지 지금도 틈만 나면 고전음악의 향기에 푹 빠져 지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222쪽)

('커피, 치명적 유혹'의 '홍연택 커피-블랙 앤 스위트 블랙'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참 재밌는 분이다.)

 

암튼, 사람을 기죽게 하는 그의 내공은 음식으로 시작해, 그림, 글씨, 음악에만 국한 되지 않고 급기야 건축에까지 팔을 뻗친다.

샘터는 본래 서울대 도서관 자리. 그 앞으론 개천도 흘렀고 일명 미라보다리도 있었다. 샘터 사옥은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 선생의 명성답게 명작이다. 담쟁이가 건물 전체를 덮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현재는 선생의 제자인 승효상 선생이 부분적으로 개축을 하고 있다.(119쪽)

난, 불광동 성당을 보고 자랐다. '기도하는 손'모양의 건물은 김수근이 누군지 모르던 그 어린 시절에도 충분히 나에게 영감과 은총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작품은 명성이나 이름으로 얘기하는게 아닌거다.

그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의도하는 바가 충분히 나에게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

난 '불광동 성당'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춘천 어린이 회관'을 사랑하여 날 따뜻한 날 걷기를 즐긴다.

 

나는 사석원의 그림들을 애정해 마지 않지만,

혹자들은 그의 그림을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라며...다시말해, 시류나 인기에 너무 편승한다고 폄하한단다.

그 혹자들을 향하여 축하카드가 됐건 땡큐카드가 됐건 마음이 담긴 카드를 보내거나 받고 감동 받아 본적이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마음이 담긴 카드를 보내거나 받고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이 춥고 모진 세상을 건너갈 수 있는  따뜻한 힘과 위로라는 걸 말로 설명해서는 느끼지 못할테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의 그림에서 따뜻함과 위로를 읽고 two thumb up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그의 그림 자체가 얽매임 없이 자유로워 맘껏 상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광의 그림을 향하여 저속하다며 평가절하하는 이들로부터 그림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가 제도권미술 같은데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을만큼 기초가 탄탄하고 떳떳하며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인연을 바라보는 중광의 시각을 나름 해석한 그의 시선도 재미있다.

ㆍㆍㆍㆍㆍㆍ그의 그림은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웠다. 경계를 태연하게 넘나드는 경이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무아지경에서 일사천리로 그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제도권 미술계에선 중광의 작품을 저속하다며 평가절하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중광은 2000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제목은 '괜히 왔다 간다'였다. 그리고 2년 후 입적했다.

  '인연이 있어 괴롭고, 인연이 없어 괴롭고, 만나도 괴롭고, 헤어져도 괴로우니 인연이란 괴로움이 얽힌 그물인가?'(137쪽)

인복과 노력과 실력과 더불어 그를 남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자유로운 상상력.

며칠전에 일본에 놀러갔다온 친구가 기념품이라며 젓가락을 보내줬길래,

내가 '머리에 비녀 대용으로 꽂고 다니다가, 국수나 라멘을 만나면 후루룩, 찝짭~먹으라고?'해서 웃었었는데,

사석원은 비녀를 이렇게 멋드러지게 해석한다. 비녀를 가지고 함부로 농담을 하면 안되겠다, ㅋ~.

  비녀는 순결과 절제의 상징이랄까, '나는 임자 있는 몸이니 넘보지 말라'는 듯 육체의 문에 빗장을 지른 것이다. 단호하고 애틋한 의미다.(149쪽)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글이 상상력 만으로 쓰여지진 않았다.

기본기 또한 탄탄하며, 시어를 잘 벼리는 여느 시인이 쓴 시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더불어 웅숭깊다.

생각이 넓다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같은 것으로, 멍석을 넓게 깔아 상대가 그 멍석 안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이 깊다는 건 자기 안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속 깊음을 얘기하는 거란 얘기를 들었다.

 

그의 실물을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나도 사석원처럼 나이 먹을수록 사물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웅숭깊은 눈을 닮고 싶다.

종로②

종묘

ㆍㆍㆍㆍㆍㆍ이곳은 노인들을 위한 욕망의 공간이다. 박범신이 소설 《은교》에서 말했지. "젊음이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늙음도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맞다! 노인의 욕망은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그냥 자연일 뿐이다. 종묘공원은 어쩌면 젊은이들보다도 더 뜨거운 노인들의 욕망이 몸부림치며 몸살을 앓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절망할 정도로 외롭기에.(196~197쪽)

마지막으로, 서울에 40년을 넘게 살았으면서도 서울의 지리를 몰라 누군가를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길을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이다.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나 해외에서 온 친구들에게 서울 안내를 하기 위해 내가 외운 레파토리는 한 곳이다.

인사동. 장소가 그리운건 그곳의 사람이 그립다는 그의 논리대로라면, 난 누군가 그리울때면 여러곳을 기웃거릴 것 없다. 무조건 인사동 한곳이면 충분하겠다.

  장소가 그리운 건 그곳의 사람이 그립다는 것.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지금 바람 부는 고은초등학교 담장엔 후배들이 그린 그림들이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ㆍㆍㆍㆍㆍㆍ학교 앞엔 벽화도 있다.《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타일로 만든 작품이다. 그래 맞다. 진실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지.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지. 지금 서대문도서관 자리는 얼룩 젖소가 풀을 뜯던 목장이었다. 여긴 우리의 영토였는데. 수풀 무성한 언덕엔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친구들은 없다. 여름이면 무악재에서 아카시아꽃 따 먹던 동무들, 그 순수한 눈망울들, 우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갑자기 몰아친 바람에 내 우산이 힘없이 젖혀졌다.(212~213쪽)

 

이제 봄이다.

태어나고 40여년을 자란 서울을, 이리저리 산책이라도 다니며 맘껏 즐겨야 겠다.

만끽하여야겠다.

MP3에 이런 음악 한곡 정도 담아서 귀에 꽂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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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14 04:32   좋아요 0 | URL
서울은 전국에서 재개발 아주 많이 하는 손꼽히는 곳이니
길이 늘 달라져서
길을 헤맬 때가 잦을밖에 없지 싶어요.
그래도 봄마실 즐거이 다니셔요~

mira 2013-03-14 15:37   좋아요 0 | URL
요즘 인사동은 너무 원색적이예요. 예전 인사동이 더 좋았었는데 말이죠 ㅎㅎ
 

내가 최북을 알게 된건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통해서였던것 같다.

 

최북과 반 고흐는 둘 다 '미치광이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반 고흐는 "새로운 화가를 세상은 광인 취급한다. 내가 돌아버릴수록 더욱 진정한ㆍㆍㆍㆍㆍㆍ"라고 했다. 칠칠이 치북도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돈 보따리 싸들고 와 거드름 피우는 고관에게는 엉터리 그림을 던져줘 희롱하고 득의작을 몰라주면 박박 찢었다. 두 화가는 자신의 미친 짓이 곧 "지독하도록 말짱한 세상 때문"이라 했다.

거기서 최북을 조선의 반 고흐라고 설명해 놓았었지만, 고흐에 대한 자료가 넘쳐나는 것에 반해 최북에 대해서는 너무 알려진게 없었고, 이런 저런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심지어 생몰연도 또한 '칠칠은 사십구'해서 사십구 세라고  알려진 곳도 있지만

이 또한 미스테리라고 하였다.

 

 

 <'최북'의 '풍설야귀인도'>

저 그림을 보고는 마음이 묘하게 움직여 그때부터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 이유가 그가 중인 출신이어서 일생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거의 없고,

다만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던 문인들의 문집 속에 조금씩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칠칠 최북
 민병삼 지음 / 도서출판 선 /

 2012년 8월

그러던 차에 만나게 된 이 책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방점을 찍지 않았었다.

소설은 재미로 읽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듯 하기만 하면 그 진위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읽는 내내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던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일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혹시~?'하다가 '흡~!'하고 허를 찔린 기분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내용의 '진위'가 아니라 '개연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말해 내가 이전에 들춰본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 몇 권의 내용이랑 묘하게 겹쳤기 때문 인지, 장르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다보니 개연성이 무너진게 유독 내 눈에만 띄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이 시대를 배경으로한 작품들, 예를 들면 이옥, 김려, 심노숭, 이광사, 심지어는 연암 박지원을 배경으로 쓰여진 김탁환의 소설들에 나왔던 내용들이 짜깁기 되어 있었다.

개연성이 무너진 예는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개연성이 무너지다 보니, 작가가 아무리 멋진 문체를 구사하고 있거나 중국의 한시, 우리나라의 옛시조들을 인용하는 등 박학다식함을 자랑해도, 내겐 진부하고 구태의연하게 느껴졌다.

암튼, 난 이 소설의 주제를 모르겠다.

최북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쓰여졌는지 모호하다.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과 작품 세계를 가졌던 화가이니만큼, 그만의 두드러지고 독특한 무엇인가를 엿보고자 했었던 나로서는, 참 아쉽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2012)에 개관된 '무주 최북 미술관'에서는 최북 탄생 300주년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었다.

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그의 생몰 연대를 1712년에서 1786년으로 통일하여 적고 있었으며, 여러 곳에 교집합이 되는 숙종 46년인 1720년부터 1786년까지는 적어도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다.

개연성과 관련해 크게 문제가 되는 곳 몇 군데만 짚어 보겠다.

 

먼저,

여러 해 계속되고 있는 가믐이(132쪽, 밑에서 8th줄)

오랜 가믐과, 가믐(133쪽, 2nd줄)

등 이 소설에 나오는 '가뭄'은 모두 '가믐'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건 '원순모음화' 라는 음운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양순음 ‘ㅂ·ㅃ·ㅍ·ㅁ’ 다음에서 비원순모음 ‘ㅡ(丶)’가 원순모음 ‘ㅜ(ㅗ)’로 바뀌는 음운현상을 뜻한다. 중세국어 ‘믈

[水]·블[火]·플[草]’이 근대국어 특히 17세기 말엽 이후 ‘물·불·풀’로 원순모음화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혼란스럽던 음운현상이 17세기 말엽이후에는 원순모음화가 이루어졌다는 거다.

시대상을 반영하고 싶고, 고어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면 적어도 17세기 이전이 무대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서나 가능하겠다.

따라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최북의 일대기 동안은 '가믐'은 모두 '가뭄'으로 적혀야 맞겠다 .

 

또 한군데,

 

 

ㆍㆍㆍㆍㆍㆍ, 전혀 본 적이 없는 중늙은이 둘이 앉아 있었다.

ㆍㆍㆍㆍㆍㆍ

어이 달관이 한진사에게 물었다.

"이 치가 대체 누구요?"

"대감. 이자가 바로 최칠칠이라는 망나니 환쟁이 올습니다."(255쪽)

 

'올습니다'는 '올시다'가 잘못 쓰인 예이다.

'올시다'는

('이다', '아니다'의 어간 뒤에 붙어) 합쇼할 자리에 쓰여, 어떠한 사실을 평범하게 서술하는 종결 어미.

화자가 나이가 꽤 들어야 쓴다.

‘-올시다’의 의미로 ‘-올습니다’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올시다’만 표준어로 삼는다.

관련조항 : 한글 맞춤법 6장 1절 53항, 표준어규정 2장 4절 17항, 표준어규정 3장 4절 25항

 

 

또 한군데,

이 책에는 금주령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금주령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

혜원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같은 그림을 미루어 알 수 있지만, 이 시대에는 우리가 텔레비젼에서 보는 것 같은 주막은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영조가 워낙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예외도 있었는데,

이 책에 언급된 초상이나 제사때 말고도, 농부나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마저도, 정조는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까 영조 사후 왕이 되자마자 없앴다고 한다.

(조선 왕조 실록 참조)

원교 이광사는 1777년인, 정조 1년에 사망하였는데,

이 책에는 원교 이광사가 죽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금주령 얘기가 또 나온다.

 

거기다가 책의 말미에 이르면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화서 출신의 화공들이 최북 같은 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찾아뵙고 하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따라서, 한번 개연성이 무너져 버리면 줄줄이 도미노가 무너져 버리듯이 신뢰를 잃게 되어 소설에서 최북이 이야기와 인물들 속으로 엮여 들어가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이다.

 

작가가 아무리 멋진 문체를 구사하고 있거나 중국의 한시, 우리나라의 옛시조들을 인용하는 등 박학다식함을 자랑해도,

작가는 작중 화자나 주인공에게 애정을 갖고 감정이입을 해야 하나 보다.

이 소설에선 그 조절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생명력이 아예 없거나 괴력이 넘쳐나는 괴물일 수밖에 없다.

 

"신분이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제 편하자고 만든 것 아니겠소. 한비자가 말하기를, 예의가 많은 자는 속마음이 쇠(衰)한다 하였소.예의도 지나치면 아첨이 된다는 말이오. ㆍㆍㆍㆍㆍㆍ"(54쪽)

사실 작가가 작중화자를 통해서라도 이런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지만, 위에서 애기했듯이 개연성이 무너지니 모두가 다 시큰둥이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도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고 있어 성기 마음이 매우 심란했다. 나뭇가지가 마치 춤을 추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지와 가지, 잎과 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꼭 교태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무도 생명이 있는 것이니 정말 교태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도 남녀가 통정을 하면 잉태를 하듯이, 그래서 나무도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 것일 수도 잇다. 그렇지 않고는 마치 애무하듯이 저토록 부드럽게 비벼댈 수가 없는 것이다.

한낱 나무도 고적할 새가 없구나!

ㆍㆍㆍㆍㆍㆍ"일찍이 고애자가 된데다가 스승마저 타계하신 탓에, 성기가 형영상조에 빠진 것이오. 그러나 학문과 예술을 하는 사람 치고,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소. 특히 예술은 영감(靈感)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영감이란 것이 고독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게 아니지 않소."(80~81쪽)

위 문장도 인간의 고독한 심사를 나무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수려하기 그지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교 이광사야 집안 대대로 양명학을 공부한 유서깊은 집안이니까 한자와 사자성어를 남발했다손 쳐도 최북 또한 아무 개성 없이 저런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독이 꼭 나쁜 것이 아니란 것을, 예술가에게 고독은 필수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고 해야 할까?

최북의 경우 고독을 즐기며 시서화와 술로 위안을 삼았고,

마찬가지로, 고흐도 고독과 벗하며 그림과 동생에게 쓰는 편지와 커피에서 위안을 삼았다.

참, 가난은 이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렇게 외로운 신세라도 자유가 없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예술가는 그래야 한다고 못 박고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란 고독하고 혼자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최북이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이다.(319쪽)

암튼, 내가 작가를 향하여 이러쿵 저러쿵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작가를 향한 분홍분홍한 애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작가의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의 따뜻함, 다시말해 비록 작품 속에서일지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였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고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원동력이니까 말이다.

원교는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고 멀리 산등성에다 눈길을 걸었다. 그윽하게 들어앉은 그의 눈에서 햇살이 무수히 부서져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어느덧 이순(耳順)이 되었다. 눈에서 부서지는 햇살의 양만큼, 그의 인생도 그렇게 부서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유배생활을 학문에 전념하는 기회로 삼을 각오가 있을지는 몰라도, 유형지의 생활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생활이 이십여 년이나 더 계속된다면, 학문은커녕 심신이 먼저 피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걸 생각하면 최북의 마음이 벌써부터 내려앉는 것이었다.(241쪽)

 

최북이나 고흐 등 예술가를 놓고 볼때 고독이 꼭 고통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화가로 만든 바로 그것이 '고독'일지도 모르고, 거기에 최북에게는 술이, 고흐에게는 커피가 옵션으로 더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때, 그감정을 마냥 비껴갈 궁리만 할 것이 아니라...한번쯤 그 감정에 흠뻑 빠져 누려보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김소영 지음 / 소울메이트 / 2013년 2월

 

2013년부터 MBC 주말 뉴스데스크 부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김소영 기자가 쓴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정치는 생활을 바꾸고, 예술은 삶을 바꾼다.'가 취재 신조란다. 너무 멋지구리하다, 이를 어쩔 것인가 말이다,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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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10 02:36   좋아요 0 | URL
'가뭄'을 그즈음에 '가믐'으로 적었으니 문학에서 그렇게 적을 수도 있을 테지만, '가뭄'을 '가믐'으로 적으려면, 그무렵에 쓰던 다른 말투도 고스란히 살려서 적어야 옳겠지요. 게다가, 옛날 사람들 말투에는 '-에게'가 나올 수 없고, '-고 있다' 꼴이 나올 수도 없으며, 옛날 사람들은 '감히'라는 일본 외마디 한자말을 쓸 턱도 없어요.

문학을 읽을 때에는 문학자가 쓴 말투를 따지는 일은 거의 부질없으리라 느껴요. 그 옛날 시대를 살지 않고서 그 옛날 시대 말투를 되살릴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그저 좋은 이야기, 좋은 줄거리, 좋은 삶을 문학에서 읽으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sslmo 2013-03-10 03:09   좋아요 0 | URL
최북의 생몰 연대를 1712년에서 1786년으로 통일했으니, 18세기를 살았던 사람이죠.
원순모음화는 17세기 말엽에 이미 정착되었구요, ㅋ~.

뭐, 저도 문학, 아니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외적인 것으로 딴지를 걸 생각 따위는 없는데 말이죠.
저렇게 되면 개연성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서 얘기가 넘 재미없어져 버리거든요~--;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꾸벅(__)

2013-03-10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0 0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03-11 10:49   좋아요 0 | URL
원순 모음화에 종결어미까지
와우 님의 국어 내공이 장난아니네요
깨갱 언제나 깨갱
그나저나 최북이란 인물이 무지 땡겨서 저도 저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갑자기 저 새로운 인물이 저를 두드리게 하는 힘을 가지셨네요
그림속에 작은 인물 둘이 가는 길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에요
 

그녀는 너무 예뻤다.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이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넉넉하게 웃다가 간, 무한 긍정 에너지 한자락이라도 좋으니...

내가 주워다가 옵션으로 장착하고 '준비 완료' 하고 있고 싶었다.

 

얼마전에 커피메이커에 딸린 컵을 해먹고, 새로 포트를 장만하였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한가해진 기념이라며 이런 선물을 보내주었다.

갓 로스팅한 '케냐 AA'를 세련된 투명용기에 넣어보내주었는데, 내가 새로 장만한 유리 포트를 보고 갔나 싶게 맞춤이다, ㅋ~.

게다가 김훈이 가장 좋아한다는 '케냐 AA'는 발설한 적은 없지만, 나도 가장 좋아하는 커피 종류 중의 하나다.

완전 센스쟁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예쁜 것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무한긍정 에너지를 마구 발산하는 사람은 가만 있어도 자체 발광일테니 당연 군계일학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는 것과 실천으로 옮기는것과는...또 다른 얘기인가 보다.

미소 한번 짓고, 웃음 한번 웃는걸 배운겠다는건데 왜 그리 힘든지, 원~--;

 

암튼, 요즘 내가 읽고 있던 책은 '한귀은'의 '이별 리뷰'였고,

 

 

 

 

 

 

 

 

 

 

 

 이별 리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마침, 거기에 '김훈'의 글들이 여러 편 나와 주었는데,

내가 한 번쯤은 읽었던 것인 듯 싶은 것도 있었고 했는데...유독 내 마음을 붙잡은건 '공무도하'라는 소설의 인용부분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몸에서 '새벽안개 냄새'를 느낀다. 그 냄새가 조바심을 불러온다. 여자의 몸 깊은 곳에는 흐린 등불 하나 켜진 것 같다.ㆍㆍㆍㆍㆍㆍ그런데 남자는 여자의 그 느낌을 안다. 두사람, 똑같았다고 말한다.

ㆍㆍㆍㆍㆍㆍ

  '공무도하'의 작가 김훈은 자신의 세설에서 섹스 행위에서 상대가 느끼는 바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섹스에서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정수는 "둘이 똑같았구나"라고 말했다. 문정수는 노목희가 느끼는 바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노목희가 느끼는 바를 알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문정수가 둘이 똑같았다고 말할때, 그것은 노목희의 말을 통해 추정한 것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둘이 똑같았다고 문정수가 생각한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노목희에게 전한데에 있다. 느낌 자체의 전달이 아니라, 느낌에 대한 전달이다. 소통은 아니지만, 소통에 대한 소통이다. 그리고 그 소통에 대한 소통은 모호하지만, 이 모호를 둘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모호함을 이해한다.(231~232쪽)

해석 불가능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부분을 이해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뭐, 이렇게 어렵게 살거 있나?

내 경우는 이렇게 어려울때는 두눈 질끈 감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르면 오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뒤늦은 후회는 비껴가던데 말이다. 끙~(,.)

 

그리하여 당장 김훈의 '공무도하'를 장만해 주셨고,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이라는 책도 책탑에서 살짝 집어내렸다.

 

'이영광'의 시집에서도 소개된 일이 있는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를 발견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무엇보다 '이상'의 '산촌여정'에 나왔던 MJB커피를 보게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거기에는 MJB알라딘 커피라는 것도 있다, ㅋ~.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
 김용범 지음, 김윤아 그림 /

 채륜서 / 2012년 10월

 

아, 그러고보니...

그녀도,

내가 요즘 읽은 책들의 문체도,

이곳 알라딘 서재도,

커피의 그것을 닮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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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3-08 10:22   좋아요 1 | URL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는 감미로운 음악도 좋고, 오늘이 주말 전날 이라는 것도 좋아요.
왠지 휴일이 시작되는 느낌? ㅎ
케냐AA는 진한 느낌이라, 커피 매니아들이 좋아하죠~~~

2013-03-08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3-08 13:51   좋아요 1 | URL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을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주변에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요.
개인적으로 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그들과 소통하려면 커피에 대해 최소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어야겠다 싶네요.
통 관심없던 분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는 일도 재밌을거라 생각됩니다.

금요일 오후, 저는 커피가 아니라 술 한잔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

2013-03-08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8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03-11 10:52   좋아요 1 | URL
와 저도 커피 생각이 간절 게다가 넘 이쁜 커피포스팅이네요
아 커피 마시고파라
당장 달려가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