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난 목숨을 걸고 하는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남편을 만났고,

6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 삶이 늘은 아니고 때때로 축복이라고 믿으며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어떤 환상이나 로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나 보다.

처음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가쁜 사랑' 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도 가슴이 설레였으며,

즐겨찾는 이들의 서재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책 소개와 리뷰를 보고서는 홀라당 반해,

당장 밤을 새워 읽을 것처럼, 친구를 졸라서 구해놓고는 여태 '홀라당 발라당~'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 또는 '숨가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운명의 장난'이나 '불장난' 또는 '숨가쁘기만한 열정'이라고 대치했을 때 하등 문제될게 없는 것으로 미루어...

해피엔딩과는 동떨어진 결말로 이어지게 마련인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난 어째서 이들의 숨가쁜 사랑을 마냥 부러워했던 것일까?

 

그들이 영화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다가 간것을 부럽다고 하기에는,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의 사생활마저도 여과없이 비춰냈으며,

심지어 어두운 단면들에 굴곡을 부여하여 심하게 굴절시키기까지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도록 운명지어진 이들이 있다지만,

운명의 신은 참으로 얄궂어 때와 장소 등 그밖의 모든 조건까지 맞춤하게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 둘의 경우가 그랬는데,

스물네 살의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40대 중반의 로맹가리야 그렇다고 쳐도,

스물 하나의 진 세버그도 이미 결혼을 한 후라는 것도 그렇다.

내가 진 세버그였다면 로맹가리가 아무리 멋있다고 해도,

중후한 매력을 가진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사랑이랑은 또 다른 것일 것 같은데 말이다.

 

백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이 둘의 삶은 어느 누구 하나 일반적이지는 못하다.

스물한 살에 이미 성공과 친근해진 진 세버그도 그렇지만,

유대계에 러시아에서 출생, 프랑스로 이주하는 등의 이력을 가진 로맹 가리가,

사회적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인, 외교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두루 섭렵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로맹가리는 다양한 직업편력만큼이나 여성편력도 구사한다.

 진은 연약했다. 가리는 당시 일시적 우울 증세를 보이며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온갖 일관성 없는 언행에 낙심했다. 그것은 전쟁 때문이었고, 그의 광적인 성생활 때문이었고, 또한 나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진을 길가에 핀 개양귀비처럼 꺾어서 웃옷 주머니에 꽂았을 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115쪽)

이 책은 문장이 참 좋은데, 그걸 번역하는 과정에선 십분 발휘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수식이 화려하거나 함축적인 문장의 경우,

수사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제한하는 정도가 달라지는데 말이다.

 

문장이 좋다는 건,

로맹 가리가 레슬리와 만나는 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가리는 레슬리에게서 분신같은 나그네의 영혼을 알아보고 춤이라도 추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ㆍ사실 두 사람은 존재와 사물의 영靈을 제 것으로 삼아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스스로 무대에 올라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바꿔놓으려는 자신들의 욕구에 응하려는 듯 했다.ㆍ레슬리는 그가 그 자신을 알게 하는 데도 분명 기여했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명 작용을 통해 그 역시 그녀가 최고의 자기 모습을 닮게 만들었다. 때로는 한쪽의 자아를, 때로는 상대 쪽의 '나'를 성가셔하며 레슬리와 가리는 미숙하거나 유감스런 행동의 한계를 일러주고 인도해주는 특별한 직감을 갖춘 관계를 유지했다. 은밀한 떨림이 적절한 때에 찰칵 하고 당신을 관용으로, 신중함으로,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관계 말이다.(68~70쪽)

우리는 흔히 같이 살면 닮는다는 말을 한다.

난 이 말을 '좋아하면'이나 '사랑하면'쯤으로 바꾸고 싶은데, '공명작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공명 작용'이라는 것이 상호간의 것이어야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때론 '존경한다'는 말로 이 방향성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존경이나 사랑은 고사하고 의사 소통도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얼마 전에 존경하는 분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멘.붕.임~--;"

전화가 곤란하여 매번 문자를 보내는 줄 알면서도, 대번에 전화가 걸려 왔다.

"멘홀(이 붕괴되어 속)에 빠졌다구?"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가 8년을 같이 살았고,헤어져서 12년을 그렇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책에는 숨가쁜 사랑이라고 사랑에 방점을 찍어가며 멋지게 표현하려 노력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비극적 결말은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도 가리도 육욕과 매력을 소유한 존재라는 자신들의 운명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운명이 마술을 부려 사랑의 제1계명, "달려들라.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를 강력히 부추길 때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누구도 행복을 거슬러 노를 젖지 못하는 법이다.

  정신적 품성이 끌림과 유혹의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품성에 감성과 매력과 아름다움까지 더해진다면 그 힘은 절정에 이른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그 모든 걸 팔고 남을 정도로 가졌으니 그들의 결합은 "행복의 비밀은 엉덩이와 마음에 있다."라고 한 자크 프레베르의 생각에 넉넉히 부합할만했다.(108쪽)

책에서는 이들의 헤어짐을 24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빚어내는 신체적 차이쯤으로 언급했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두 여자 사이에는 경쟁심까지 끼어들었는데, 그것은 소리 없이 진의 자존심을 긁었고 레슬리의 악의를 부추겼으며 가리를 괴롭혔다. 레슬리에게는 신체적 차원에서 불공정한 싸움이었다면, 진에게는 지적 차원에서 똑같이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요컨대 서로가 상대편은 가졌거나 숙달했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 것을 질투했다. 특히 진이 괴로워했다. 레슬리는 자신도 많은 연인을 가졌고, 누구보다 일탈적이고 모험적인 여행도 햇다고 자부하며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서 자신이 이젠 스무 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녀는 젊은 남자가 자기보다 진을 선택한 경우라면 훨씬 관대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늙은 부부의 정원에 웬 지각없는 여자가 끼어들어 논 것이라면 훨씬 관대했을 것이다ㆍ. 하지만 이 미국 여자의 침입은 레슬리에게 '그 자리에서 비켜. 내가 앉을 테야'를 의미했다.(112~113쪽)

 

 진 세버그는 왕성한 혈기로, 사회에서 소외 받은 약자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며 흑인 인권 운동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FBI는 그녀를 빨갱이로 간주해 사생활을 감시했고 '흑인들의 창녀'라고 부르며,그녀의 명예를 실추 시킬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언론에 공개했다. 악의적인 가십은 그녀의 사생활을 파괴했고 보수적이었던 진 세버그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급기야 영화 경력은 쇠퇴 일로였고, 알콜 중독에 걸렸다.

 로맹가리는 언제나 유보적이었고, 불의와 차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 세버그에게 행동하지 않는 소설가라고 매도당했다. 하지만, 그의 출생 이력을 안다면 그가 평생을 인종차별과 소외의 경계에서 줄다리기 했다는 것도 헤아리고도 남을텐데 말이다.

세상에는 끓는점 이상으로 움직여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낙숫물이 바위를 뚫기도 하더라, ㅋ~.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상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죠."(231쪽)

로맹가리의 죽음을 놓고서도,

이 책의 231쪽에선 그의 유서의 부분이 인용되어, 앞에서처럼 '사랑'에 방점을 찍으려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유서 전문을 보게 되면, 그의 문학적 작업의 연장선 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진 세버그와는 아무 관계없다.

상심한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데다 호소하도록 초대받는 법이다.

사람들은 아마 신경쇠약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신경쇠약이라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계속되어 왔으며,

내 문학적 작업을 완수하게 해 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인가?

아마도 『밤은 고요 할 것이다 ; La Nuit sera calm』라는 내 자서전적 작품의 제목과,

‘사람들이 달리 더 잘 말할 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 마지막 소설의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암튼, 목숨을 걸고 하는'운명적인 사랑'이나, '불같은 사랑' 또는 '숨가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의 기우를 살짝 얘기해 보자면,

사랑은 꼭 그런 설정이 아닐 수도 있으며,

유명작가와 이쁜 배우가 나와 죽여주는 그림이 되어야만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보통의, (어찌보면 어떤 점에서는 보통에도 못 미치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사는 일상이 사랑이지 뭐, 별거 있겠나 싶다.

아니, 죽여주는 그림 또는 순애보적인 이야기는 영화나 책 속에 나오는 것이고,

난 아주 보통의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사랑하며 살겠다.

그걸 이 책에선 멋지게 '공명작용'이라는 말로 표현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관한 유쾌한 실험과 흥미로운 이론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ㅋ~.

 

 

 

 

 

 

 

 

 사랑의 실험실
 김형자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신체적으로 좀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에겐 공식적인 사람과 만날 땐 상대와 나 사이에 평균 122센티미터를 유지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46센티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 나란히 앉았을 때 상대방을 향해 다리를 뻗는 것도 '친밀 거리'인 46센티미터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강한 호감의 표시다.
_ ‘46센티미터의 법칙’ 중에서

언젠가 친밀거리는 사정거리내로, 손뻗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말하고,

공식적인 거리는 양팔길이에서 어깨 넓이를 뺀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럼 내가 말하는 insure safety distance에서는 안이라는 건가, 밖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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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14 16:58   좋아요 1 | URL
얼마 전에 주말연속극 속 국민 딸 서영(별로 효녀는 아닌데)이가 온갖 역경 속에 어렵사리 판사가 됐는데(!) 자기가 살아온 처지와 위치, 가족들과의 관계를 돌이켜볼 때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형을 내리는' 행위로 인생을 좌지우지해도 되는 사람인지 고민하다 결국 판사를 관두고 변호사가 돼요. 반드시 어떤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행동가일까, 소극적으로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적극적 행동가보다 그들이 옳을 수 있는 게 아닐까..보이는 상처는 물론 보이지 않는 타인의 상처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맹 가리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니까 슬퍼서요..

그래서 결혼을 하면요, 불 같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나요? 더 심해지나요? 저는 어떡하나요..( 먼 산..)

sslmo 2012-11-21 03:22   좋아요 1 | URL
어쩌긴 뭘 어째요~?
아이리시스님은 지금처럼 알라딘 서재 이 동네를 잘 지키시면 되는 거예요, ㅋ~.
결혼을 하면 불같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지의 욕구는 말이죠~
비법 전수에 들어가니 맨입으론 곤란하죠, ㅋ~.

감은빛 2012-11-15 11:35   좋아요 1 | URL
저는 철없을 때, "이 사람이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 라거나,
"이건 운명이야!" 라는 태도로 불같은 사랑을 몇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정을 태우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나,
너무 한 사람에게 치우치다보니 생활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더라구요.

사랑은 사람 수만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단 욕망을 가지곤 합니다. ^^

sslmo 2012-11-21 03:28   좋아요 1 | URL
어허~~~~~!
이거 이거 아줌이 대답하기 좀 곤란한 댓글이다, ㅋ~.
패쓰하고,
날이 많이 추워요, 감기 안 걸리셨죠?
둘둘 말고 다니세요.

가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단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뿐 실천이 안되는 우리들은 둘둘 싸고 말고 다니는 수밖에 없어요, ㅋ~.

숲노래 2012-11-15 16:29   좋아요 1 | URL
'보통'이라는 사람은 없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보통 사랑' 또한 없이 모두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사랑을 말하는 글'을 쓸 수 없겠지요.

sslmo 2012-11-21 03:31   좋아요 1 | URL
된장님 말씀이 맞아요.
사람이나, 사랑 따위 보통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것들이 좀 있지요, ㅋ~.

루쉰P 2012-11-20 09:3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교주는 돌아왔습니다. ^^ 먼저 복귀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 했네요. 1년 총 결산의 리뷰를 어제 저녁에야 마무리해서 올렸어요.
근데 양철나무꾼님 페이퍼에 사랑이 올라와 있다니 ㅋㅋ 뭔가 역시나 우리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 주시고 또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T.T
교주 그만둘 뻔 했는데 역시나 광적인 신자가 있어야 교주도 할 수 있어요. 감사해요. 진심으로여 ^^

sslmo 2012-11-21 03:34   좋아요 1 | URL
교주님 돌아오신 기념으로다가, 신도가 잠수를 타 주셔야 하려나, ㅋ~.
저도 사는 게 변변치 못하여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워 (요즘은 새벽에 돌아다니는 티는 가급적 자제하는데)저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댓글을 달고 있네여, 헤에^________^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터키'속담도 있다지만,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진다.

사랑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것들에도 똑같이 열정적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단다.

 

그런데 가끔 열정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뜨뜻미지근한 태도, 성의없는 말투, 냉담한 눈길 같은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대방의 그것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도,

'애정이 식은거야~--;'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것이,

사랑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은 게 정석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뜨겁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온도가 높아야 뜨거운 것이 되는 것일까?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지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고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 사랑이고,

그렇지 않은 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아프게 읽었다.

너무 아프게 읽어서, 한동안...

리뷰를 쓸 수 있을까, 느낌이란 것이 나와줄 수 있을까 싶었었다.

뭔가 느낌이나 감상을 얘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법이니까.

구구절절, 사무치고 아팠다.

내내 울었고 앓았다.

 

사랑의 온도, 그것은 어쩜 누군가를 태우기도 하고

누군가를 아프게도 하지만, 누군가를 치유하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갈망하였고, 넉넉히 받았고, 그리하여 치유받았다.

다시 말해 울고 앓고 주저앉는데서 멈추지 않고,

책을 통하여 치유받고 훌훌 떨고 일어날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소설의 특징인 개연성을 확보하는데서 실패했고,

그래서 다소 진부하다 비춰질 수가 있겠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7쪽)

 

지금은  병ㆍ의원의 업태가 '서비스'라는 단어가 빠진 '의료업'이지만, 한때 '의료ㆍ서비스업'으로 분류되던 때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정이 많은 부류였지만 내 눈에는 계산적인 여자로 보였다. 상반된 두 단어는 오늘날 같은 말이다. 정이란 보이지 않게 계산된 이익의 가시적인 산출량인 것이다.(10쪽)

이 문장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보자면, 정(情)이란 것도 보이지않게 계산된 것이라는 얘기쯤 될테고,

그래서 '의료'에 '서비스'가 붙은 순간 지극히 계산적이 되어버리는 걸 눈치챈 사람들이,

야박함과 상술을 내세워 '서비스'라는 단어를 뺀 것일 테지만,

정(情)도 가시화하여 계산하는 사람들이 의료에 '서비스'를 붙이는 것 정도야 애교이지 싶다.

 

이 소설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쓴 그녀가 쓴 또 다른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하려나?

줄거리는 간단하다.

치매에 걸린 새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남기고 간 통장을 전해주기 위하여 남겨진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ㆍㆍㆍ ㆍㆍㆍ사람은 한 번에 하루씩 살아야 하고, 한 번에 한 끼씩 먹어야 하는 법이다. 새엄마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나는 것일까. 사람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깊은 우물에 종이배 하나가 까닥까닥 떠 있는 게 아닐까. 심연에서 심연으로 연결된 어느 부두에서 매일 자신이 접은 종이배에 홀로 승선하고 홀로 하선하는 당일 여객들ㆍㆍㆍ ㆍㆍㆍ. 한번에 하루를 사는 인생, 하루에 하나의 종이배를 접는 일은 살아가는 자체여서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16~17쪽)

작중화자는 어린시절 오빠와 작당을 하고 새엄마의 딸인 이복동생을 집에 들이는게 싫어 어딘가에 버려두고 도망친 과거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에 여러가지 업무수행이 가능한 '멀티테스킹'형이 있기는 하더라.

멀티테스킹이라고 하여, 어느 하나 소홀하지도 않은 걸 보면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과부하가 걸리거나 체하게 마련이고,

과부하나 체하는 걸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부모'라는 이름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부모도 이전에 사람이고, 모두가 과부하나 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과 자신의 미움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78쪽)

'사랑'을 지키는 것과 '미움'을 지키는 것은 어쩜 상반된 의미의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깊어져 미움이 된 것이지,

사랑이 없는 사람은, 미움도 없고...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 지킬 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과 어쩜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할 것은, 무심함이 아닐까?

(종교에서 무심해야 득도하고, 도통한다고 했는데...아웅~--;)

"난 사람에 대한 나름의 측도가 있어요.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 그게 사람의 의리지요."

 나는 은밀한 죄의식을 뱃속에 꿀꺽 삼켰다. 헛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유란의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런 일이었다. 허은경은 내 뱃속을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사랑을 못 지키는 사람은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내 엄마 같은 사람, 유란이 엄마 같은 사람요."(235쪽)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자기의 사랑을 지킬 수 있고 없고,가 자기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좀 심하지 싶다.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제 사랑을 못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제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에는 얼마든지 차갑고 냉정하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쪽 왕이 왜 아내에게 잠드는 약을 먹였느냐고 묻는데, 그들은 욕망의 휘황한 암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비극 뒤에 자초하는 고독의 엄정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슬픔의 깊고 쓴 달콤함과 우수의 가벼움과 평온을 모르는 사람이다. 상처에서 염증이 걷히며 단단하게 응결되는 비극의 자긍심을 모르는 사람이다.(100쪽)

이 책이 슬펐던 것은,

사랑의 정도를 자꾸만 온도와 비례해서 풀어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ㆍㆍㆍ ㆍㆍㆍ부엌이 없으면 몸이 마르는 느낌이 들어요. 마음도 그렇고요. 여자들은 다들 그렇지 않나요?"(138쪽)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방식은 뭘까?

사람이 사람을 머릿 속에 넣어 기억하는 방식 말고 다른 것들도 있는 것 같다.

몸에 밴 습관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방식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걸 두고 심장이 기억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심장에서 '찌릿~'하고 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엉뚱한 답이 될것 같다.

"이렇게 다른데도 내가 너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이건 눈으로 알아보는 게 아닐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식이 있는 거야. 심장이 발산한다는 자기장으로 서로 알아보는지도 몰라. 너 아니? 심장에 기억이 있다는 거. 심장이 발전기처럼 전기를 만든다는 거.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 이상이나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거."

  심장이 기억한다면 심장에도 뇌가 있다는 소린가. 심장도 생각을 하는 걸까.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나 보낼 수 있다니, 가슴에서 가슴으로, 같은 노래 가사가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209쪽)

이쯤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친구로 만들 수 있을 남자였다. 그러니까, 사랑할 여자 하나조차 남겨놓지 못하고 모두를 친구로 만들 남자였다. 예전에 내가 그를 거절했던 이유를 이제 알게 된 셈이었다. 그가 외로운 얼굴로 역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때 나는 왜 친구가 될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211쪽)

내가 경계하려던 것은 사랑의 온도가 아니라,

사랑의 밀도라고 해야할까, 순도라고 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밀도나 순도라는 것들은,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는 '믿음'과 관련된게 아닐까 싶다.

"ㆍㆍㆍ ㆍㆍㆍ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러더래요. 거짓말이면 어때? 넌 신화와 설화를 믿니? 다 지어낸 이야기인 거야. 불교의 핵심이 그거잖아. 인생도 그래. 다 지어내는 거지. 사랑도 다 지어내는 거야. 하지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일이지ㆍㆍㆍ ㆍㆍㆍ."(245쪽)

 

"그 사람은 자꾸만 확인하려고 해요.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아니면 자기만 나를 사랑하는 거냐고요. 전 그게 두려워요. 전 사람들이 말하는 뜨거운 사랑을 모르겠어요. 그냥 함께 생활하는 것이 사랑이면 좋겠어요. 그 사람도 그정도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열렬해요.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거 같아요. 나더러 차다고 해요. 그래서 난 상냥하게 대하려고 애를 써요. 전 혼자인 이 상태를 이제 견디기가 어려워요. 올겨울은 영하 15도까지 예사로 기온이 내려갔잖아요, 정말 얼어붙은 것처럼 춥고, 외롭고 무서워요. 올겨울이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요. 좀 의지할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명서는 조급하게 말했다.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하는 불가능한 모순을 명서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았다.

 "가끔 부딪칠 때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는 당황스러워요.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번번이 무마하기 위해 사과하지요. 그는 사실은 나를 전혀 몰라요. 나에 대한 무지를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버무리려 하죠. 그런데 사랑이 뭐죠? 그런 게 정말 있나요?"

  명서는 마치 소문으로만 들은 괴물에 대해 묻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이 본 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는 그것이 실제로는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서워요."

  명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딘가로 힘껏 던지려던 돌멩이를 제 싸늘한 가슴에 툭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명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차가워 보이는 새하얀 손이었다. 명서의 심장도 시리도록 차가울 것 같았다.(250쪽)

 

ㆍㆍㆍㆍㆍㆍ감정 없이, 감각 없이 살아야 하는 그게 의사 처방이었어요. ㆍㆍㆍㆍㆍㆍ마치 술이나 담배가 심장에 해로우니 끊으라는 처방처럼 사랑을 끊고 고독해지라고 처방한 거예요.((284~285쪽)

 "어릴 때 버림을 받아서 그러는 거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렵잖아요. 두려워서 더 엉겨붙게 되는 거죠. 유란은 그게 더 심해요.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하니까요. 아마도 가장 믿었던 엄마에게서 버림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288쪽)

 

 감정이나 감각 없이 사는 건...살아있어도 사는게 아닐 것이다.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건...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노력의 과정이 아닐까?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교훈은,

이 책이 깨닫게 해 주려고 한 교훈과는 좀 다른데...

사랑의 온도로 사랑의 정도를 판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랑의 방법이 서툴다고 해서 사랑의 순도를 의심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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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19:11   좋아요 1 | URL
오랜만예요. 양철나무꾼님.^^
인용하신 문장이 모두 굉장한 걸요? 전 왜 전경린을 한 권도 안 읽었었을까요?! /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함께 하는 게 사랑인데, 혼자서 그러는 것도 의미있는 건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sslmo 2012-11-14 16:35   좋아요 1 | URL
섬님~, 잘 지내시죠?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긴 하지만, 책은 더, 더, 더, 굉장해요. ㅋ~.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과 관련하여...
그래서 사랑을 혼자 하면 거짓말쟁이, 둘이하면 마법사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2 20:1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거기 온도는 어때요?
남쪽에서 북쪽의 온도를 떠올리는 건 잘 되지가 않아요..

sslmo 2012-11-14 16:37   좋아요 1 | URL
아이리시스님, 이 책 읽으셨어요?^^
댓글이 꼭 이 책 읽으신 분 같아요, ㅋ~.
오늘, 올들어 젤 춥대요.
전 추운 건 싫어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살고 싶어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4 17:06   좋아요 1 | URL
아니 이봐이봐, 양철나무꾼님은 천재예요!!
(저는 읽은 티 안낼라고 쓴 댓글인데요?!)

천재님, 남쪽나라 온기를 제가 계속 드리겠어요. 금방 따뜻해지실거예요!
 
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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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수성이 좀 촌스럽고 덜 아트스러운건지 모르지만,

아트로 분류되는 프랑스 영화나 소설이랑은 좀처럼 친하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에 '시작은 키스'라는 영화를 보고 (난해하여) 구해 두었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작가가 직접 연출을 했다는데,

제목을 '시작은 키스'라고 생각하고 봤을 때와,

원제 'La delicatesse'(델리카테스)와 연관시켰을 때, 느낌이 완전 달라졌다.

 

영화로 봤었을 때는 '델리카테스'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했었고,

그래서 '시작은 키스'라는 다소 감각적인 제목과는 안 어울리는 내용의 어설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영화를 '감성적 코미디'라고 분류해 내다니,

역시 내 감수성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서 좀 촌스럽고 덜 아트스러운가 보다 하고 체념하려던 차였다.

책으로 봤을때는 원제 'La delicatesse'(델리카테스)에 대해 장(章)을 따로 만들어 비중있게 언급을 해서,

적어도 내용을 함축하는 제목을 적절하게 뽑아냈다는 느낌이 들어 안도했다.

만약, 나에게 우리 정서대로의 제목을 뽑아보라면 '짚신도 짝이 있다' 내지는 '제 눈에 안경'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ㅋ~.

 

델리카테스를 이해하려면,

'델리카테스'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델리카'의 사전적 정의도 살펴보아야 한단다.

델리카 delicat

형용사

1. 아주 섬세한, 세련된, 그윽한.

ㆍ델리카한 얼굴, 델리카한 향기.

2. 허약한, 취약한.

ㆍ델리카한 건강상태.

3. 다루기 어려운, 위험한.

ㆍ델리카한 상황. 델리카한 조작.

4. 아주 민감한, 예민한, 세심한.

ㆍ델리카한 남자. 델리카한 주의력.          (67쪽)

 

내가 '시작은 키스'보다 차라리 '델리카테스'가 낫다고 한 것은...

예쁘고 능력있고 성격도 좋은 여자가,

잘 생기고 돈 많은 자신의 상사인 사장의 구애를 마다하고,

못생긴 파견업체 말단 직원과 잘 연결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제목으로써 비교적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 정서에 대입시켜 봤을때는 비현실적이고,

그러다 보면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되고,

여기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거나 방향을 혼동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예쁘고 능력있고 성격 좋은 여자여도 한번 결혼한 경력이 있고,

남자는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결혼은 커녕 이렇다할 데이트조차 못해본 걸로 그려지고 있다.  

샤를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어쨌거나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얘기할 권리가 있었다.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사실 그녀와는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의 처지 때문에 많은 일들이 복잡해졌다. 만약 프랑수아가 죽지 않았더라면 샤를은 훨씬 수월하게 그녀를 유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작자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네 부부의 사랑을 공고히 해놓았다. 자신들의 관계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엇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여자를,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를 무슨 수로 유혹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그 작자가 자신들의 사랑을 영속시키기 위해 일부러 죽어버린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떤 이들은 열렬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하니까.(74~75쪽)

책에서는 나탈리의 사장 샤를을, 그녀에게 추파나 던지고 찝쩍거리는 무뢰한인것처럼 묘사했지만...영화에선 나름 쿨하고 멋진 면모도 가지고 있다.

다만, 나탈리의 죽은 남편 프랑수아가 처음 나탈리에게 반하여 말을 거는 과정에서...

커피숍에서 복숭아주스를 시켰던 그런 '델리카테스'를 기억하고 있다면,

남편 프랑수아도 델리카테스한 사람이었고,

나탈리도 델리카테스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쿨한 사장을 택하기보다, 델리카테스한 마르퀴스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자연스런 이치가 아닐까?

  마르퀴스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탈리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아직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 복도로 나가자마자 주르륵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눈물을 참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탈리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아 보일 테니. 그러나 이제 뺨을 타고 흘러내리려 하는 그 눈물은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이번이 세번째였다.(113쪽)

 

ㆍㆍㆍ ㆍㆍㆍ 그는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는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리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 즉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탈리는 이 남자의 배려 하나하나가 델리카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에게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전등을 껐다.

 

두사람의 첫 저녁식사 후 나탈리가 마르퀴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 '그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로서는 좀더 독창적이고,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이고, 더 낭만적이고, 더 문학적이고, 더 러시아적이고, 더 연보랏빛을 띤 답변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 한마디가 그때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방금 꿈에서 깨어났는데 어떻게 또 꿈을 꿀 수 있겠는가?(142~143쪽)

다시 말해, 나탈리의 사람을 택하는 기준은 '델리카테스'인 것이다.

사별한 남편 프랑수아는 델리카테스한데다가, 얼굴까지 잘 생겼었던 것이고,

현재 마르퀴스는 델리카테스하지만, 얼굴은 아닌것이고...

나탈리의 사장님은 얼굴은 어떨지 모르지만,

성격이 델리카테스하지 않고 쿨하신 관계로다가...

나탈리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글쎄요.내가 아는 것은 당신과 함께 있는게 좋다는 것, 당신은 꾸밈없고ㆍㆍㆍ ㆍㆍㆍ친절하고ㆍㆍㆍ ㆍㆍㆍ나에게 델리카하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고요. 그래요."

"그게 다예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158쪽)

나탈리와 마르퀴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나,

마르퀴스는 개인의 과거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중, 나탈리와의 만남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

 

사랑이 뭘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이렇고 저런 점들은 나와 닮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상대방의 이렇고 저런 점들은 나와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나탈리, 당신한테 말한 그대로예요. 다른 의도는 없어요.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는 목에 쥐가 나지 않겠어요?"

"마음보다는 목이 아픈게 나아요.'(169쪽)

마르퀴스는 나탈리로부터 실수를 이해 받지 못할까 두려워 마음을 닫아 걸려고 한다.

'그래서' 좋거나 싫은건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거나 싫어야 하는데,

마르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좋아해 준 적이 없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나와 다른 점이나,

상대의 단점이 좋아 죽겠는걸 두고 '롤랑 바르트'도 뭐라고 했었는데,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씌는 수밖에 없다.

빗줄기가 나탈리의 얼굴을 따라 흘러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르퀴스에게는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그는 눈물을 읽을 줄 알았으니까. 나탈리의 눈물이라면 더더욱. 그는 나탈리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고통을 꽁꽁 묶으려는 듯이(258쪽)

그리고 이들은 제대로 콩깍지가 씌었다.

그런 이들을 두고,

'그래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지나 '그런가보다'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귀뜸하는건 좀 사악한가~--;

 

'델리카테스'하다는 걸 알고 읽는다면, 묘미가 느껴지는 예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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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친구가 문자로 "점심은?"하고 묻길래,

넘 힘들고 지쳐 "별로~--;"라고 대답을 했더니,

"허걱, 점심으로 별을?"하는 답문자가 돌아왔다.

발상의 전환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고,

그렇고 그런 일상에 통통 스카카토처럼 느껴져,

그 후 배시시 해시시 거리고 다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난 별★ 하면, 이 책이 생각난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이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이 만난 그 순간 들이, 한권의 책으로 결실을 거뒀는데 그게 '그림에도 불구하고'란다.

그중 '별'을 직접 언급한 '이원+윤종석'의 글과 그림을 조금만 옮겨보도록 하겠다.

ㆍㆍㆍㆍㆍㆍ매달려 있다는 것은, 움켜쥔 것이,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뜻. 애절해서 반짝인다. 별은 옷에 박혀있다. 대지처럼, 별이 거기 태생이라는 거다.

  별은 크지 않게, 많지도 않게 그러나 그곳에 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놓여 반짝인다. 별은 등에도 배에도 목에도 있지 않다. 별은 가슴에 있다. 심장이 뛰는 곳에 잇다. 별은 가슴에 있다. 심장이 뛰는 곳에 있다. 별은 심장의 다른 이름. 시간의 다른 이름. 별이 놓이는 곳에서 심장이 뛴다.

  별이 있는 옷은 정교하게 접을 수 있다. 정교하면 더없이 간명해진다. 어느 방향으로 접어도 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느 방향에도 시간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10~12쪽)

 

  별을 주머니에 키링처럼 넣고 다니며 아무도 모르게 만지작거리고 싶고, 별사탕을 입속에 놓고 살살 굴려가며 맛보다가 딱 깨물고 싶고, 대놓고 훈장처럼 달고도 싶은 순간이 있다. 누구도 그것이 별이라는 것을 몰라도 좋다. 그 순간 내가 알면 된다. 열정이 출렁거리고, 모험심이 생기고, 별을 갖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달게 치루겠다는 마음이 커지는 시간 - <가슴에 별을 달다> 선언하는 포즈에서 별은 나타나기 시작.(20쪽)

 

 

 

(윤종석, 작품명 'she'80X130cm,acrylic on canvas,2009)

 

윤종석의 옷은 말한다. 침묵으로 말한다. 소리 없이 말한다. 소리 없는 말로 말한다. 그러므로 옷은 입이다. 소리로 말하지 않고 입으로 말한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입 모양으로 말한다.

 

윤종석의 작품에서, 얼굴은 옷 속에 들어 있다. 입이 극단의 시간에 닿고 있어, 얼굴은 입에 삼켜진다. 사랑의 본질을 붙잡은 그것은 수줍지만 완강한 입이며(둘이 만나 완성되는 하트, 그것은 하나의 사랑이 아니라 <두개의 사랑>이다. 두 개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사랑은 게속된다), 꽃마이크(she)는 하고 싶었으나 참아온 말이 너무 많이 쌓여 쏟아내도 쏟아내도 계속 터져 나오는 입이며, 공격적인 색으로 웅크린 형상은 (<보호색을 입다>) 사실은 가장 연약한 입이다.

옷 속에 들어있는 얼굴에서는 극단의 시간에 닿고 있지만 고함, 비명, 통곡이 나오지 않는다. 얼굴은 입의 깊은 곳에 삼켜져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기억의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낸 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최소한의 것만 내려놓는다. 그것이 '입'이다.(30쪽)

 

'이원+윤종석'의 글과 그림, 별 또는 옷이 좋았던 것은,

그동안 내가 별에 대해서, 또는 옷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까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았었는데,

문정희 시인의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를 읽다가, '머풀러'라는 詩를 발견했는데...

웬걸... 내 마음 속에 들어왔었나 싶게, 내  마음을 나보다 더 맞춤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머  풀  러

                        - 문 정 희 -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녀의 상처를 덮는 날개입니다

쓰라린 불구를 가리는 붕대입니다

물푸레나무처럼 늘 당당한 그녀에게도

간혹 아랍 여자의 차도르 같은

보호벽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처음엔 보호이지만

결국엔 감옥

어쩌면 어서 던져버려도 좋을

허울인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바람 부는 날이 아니어도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

미친 황소 앞에 펄럭이는

투우사의 망토처럼

나는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거는

그녀의 깃발입니다

기억처럼 내려앉은 따스한 노을

잊지 못할 어떤 체온입니다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81쪽)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패션에 신경을 엄청 쓴다.

몸에 붙이는 악세서리를 주렁주렁 거는 건 피부 트러블이 있어서 못하는 대신,

패션에 엄청 신경을 쓴다.

그렇다고 엄청 비싼 부띠끄의 옷을 입거나 화려하고 현란한 의상을 입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옷은 단순하게 입되 디자인으로 파격을 준다든지,

무채색의 옷을 입되 길이를 초미니로 입는다든지,

또는 머풀러나 모자 등으로 액센트를 준다.

그게 나의 상처를 감추는 위장이고 보호색이고 하다는 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었는데,

문정희 시인은 '머풀러'에서 '별'과 등가로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왼다는 것은 마음에다 별 하나를 매다는 것이다. 이 산만한 세상에서 내가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자존을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여주는 것이다.(113쪽)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마음에 은하수 별길을 매달고 사는 사람이리라~.

 

난 마음에 은하수 별길을 매달고 사는 사람은 아니고,

가끔 시집을 사는 것으로 반짝이는 가짜 별이라도 매달려고 노력을 한다.

밥하늘에 반짝이는 것 중에는 인공위성도 있다더라, ㅋ~.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제목이 맘에 들어 구입한 시집.

외국 시인의 시는 아무래도 정서가 달라서 그런지, 겉도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아담 자가예프스키 지음, 최성은.이지원 옮김 /

 문학의숲 / 2012년 10월

 

 

 

 

몇 년이나 지난 후 너에게 돌아왔다.

회색빛의 아름다운 도시,

과거의 물속에 잠겨

변하지 않는 도시.

 

이제 나는

철학과 시와 호기심의 학생이 아니다

너무 많은 시를 써 대던

젊은 시인도 아니다

 

이제는좁은 골목과 환상의

미로에서 헤매고 잇다

시간과 그림자의 지배자가

내 이마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그러나 나를 인도하는 것은 아직도

밝은 별,

밝음만이 나를

잃거나 구원할 것이다.

 

얼굴

 

저녁 무렵의 광장에서 빛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게걸스럽게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저마다 다른,

각자 뭔가를 말하고, 설득하고,

웃고, 아파하는 얼굴들을.

 

나는 생각했다, 도시는 집을 짓는 게 아니구나,

광장이나 가로수길, 공원이나 넓은 도로를 짓는 게 아니라

등불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짓는구나,

늦은 밤, 구름처럼 피어나는 불꽃 속에서 땜질을 하는 용접공의 점화기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내용은 금방 파악이 안 되어도,

오랫동안 입속에서 둥글리며 읊조리다 보면,

뭔가 몽글몽글 마음 속 한가득 차오르는게 있다.

 

암튼, 시 한편 외지 못하더라도...

단지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은하수 별길은 아니어도,

졸졸졸 맑은 물 흐르는 물길 하나 열리는 느낌이다.

 

'★로'를 '★을'로 슬쩍 발상 전환했을 뿐인데,

그리하여 내 마음에 졸졸졸 맑은 물 흐르는 물길 하나 만들어준 친구에게,

이 페이퍼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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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 - 맑고 쉽게 살려 쓰는 한국말
최종규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쉽게 읽을 책은 아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쓰인 책을 이렇게 휘리릭 읽어 넘긴다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휘리릭 쉽게 읽어넘길 책은 아니어도,

참 좋은 책이라고 침 튀겨가며 칭찬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본다.

 

책의 취지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사자성어를 한국말로 번역하여 '맑고 쉽게 살려 쓰기 위해서'란다.

<교수신문>은 해마다 새 '사자성어'를 하나씩 내어놓습니다.ㆍㆍㆍㆍㆍㆍ그런데 대학 교수이든 지식인이든 기자이든, 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사자성어'는 뽑을 줄 알지만, 막상 새로운 '한겨레 말글'은 빚을 줄 모릅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알차고 아름다이 빚는 길을 열지 않습니다. "올해를 빛낼 한국말"을 빚어 널리 알리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책은 '한국말로 예쁘고 즐거이 꾸리는 빛나는 삶'을 생각하고 싶은 꿈을 담으려 합니다. 한국사람이기에 쓰는 한국말입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니까 쓰는 한국말이에요. 껍데기만 한글인 한국말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알맹이는 없으나 겉차림만 한글인 한국말로는 내 넋을 살찌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알맹이로부터 빛나고 아름다운 말이요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담는 줄거리가 빛나는 말이면서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자성어'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일 낱말이 더러 있을 테지만, 사자성어는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영어이지 한국말이 아니거든요. 영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일 낱말이 더러 있으나, 영어는 한국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영어 가운데 '한글'이나 '김치' 같은 낱말이 스며들 수 있어도, 영어는 영어여야지 한국말이 되지 않고, 될 수조차 없어요.  (6~7쪽, 부분 발췌)

그동안 그의 책들을 받아봐온 나로써는,

자동 번역기와 메뉴얼(헉~, 혼나겠다~--;)등 갖가지 편하고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 판치는 시대에,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했음이 엿보이는 노고를 이런 방법으로라도 광고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웬만한 정성과 열정으론 할 수 없는 일을 한 그를, 격려하고 응원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이런 방법을 택했다.

 

이 책에 사자성어가 124개 정도 나오는데, 예문이 되는 책이 사자성어 하나 당 세권 정도만 실린다고 잡아도 만만치 않은 책이 등장한다.

예문이 다양하고 풍성하게 실려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다방면 독서이력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암튼, 그의 소망대로 한국말을  곱게 보살피길,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바라며,

그리하여 "올해를 빛낼 한국말"도 빚어 널리 알리며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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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0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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