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평점 :
지적 언어유희를 즐기지 않더라도,
'무봤나?'의 대답으로는 '봤다' 또는 '못 봤다'가 나와주는 게 일반적이지 않겠는가?
근데 대답으로 '맛나더라'가 나와주시면,
나처럼 오지랖 넓은 아줌은 정정 들어가고 싶어진다.
'맛나 보이더라'가 맞겠지~--;
근데, '무'는 '먹어'의 사투리였던 것이었다.
해석을 하자면 '무봤나?'는 '먹어봤나?'의 뜻이었고,
그 메뉴는 '안동 간고등어'였다.
같은 언어유희를 이 책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싸안고 뽀뽀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안동 간고등어'가 맛났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는데,
글쎄~, 메뉴까지 일치한다.
"고등어자반하고 문어 무봤나? 무봤다고? 맛있제?"
난 좀 독특한 체질이어서,
등푸른 생선을 먹으면 온 몸에 뻘겋게 두드러기가 나 주신다.
하지만, 안동 간고등어를 한번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맛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고,
목숨을 걸고라도 먹어주시는 맛의 향연에 빠져 주시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들녀석은 다른 많은 장점들은 놔두고,
까칠한 나의 혀만 닮았는지 어찌되었는지,
갑자기 갑자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크러스트 에그가 먹고싶다는 둥 어려운 주문을 하여 나를 곤란에 빠트린다.
(손목 부위의 세컨드 스킨은 크러스트 에그를 만들다가 팬 가장자리에 데인 자국,
그 아래 두드러기는 안동 간고등어(소위, 고등어 자반)를 먹고 두드러기가 난데 약을 발라 좀 가라앉은 후~.)
그때 볶음밥은 짜장 같은 건 곁들여주지 않았다. 불땀이 바싹바싹 입혀진 진짜 볶음밥이었다. 대충 부실하게 기름에 버무린 볶음밥을 짜장에 비벼 먹도록 하는 요즘 유행과는 달랐다. 주문을 하면 쇠 국자로 웍을 긁고 치면서 센불에 밥을 볶는 소리가 들렸다. 숙달된 요리사일수록 그 소리는 아름다운 박자를 가졌다. 다 볶은 밥을 국자로 긁어 그릇에 탁탁,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면 행복했다. 무엇보다, 높은 온도에 튀기듯 만든 계란 프라이가 올라갔다. 흰자는 바삭하게 튀겨지고, 노른자 속은 주르륵, 흐를 정도로 익힌 완벽한 계란. 서양에서는 이걸 '크러스트 에그'라고 부른다. 얌전하게 지진 '후라이'가 아니라 흰자가 기름에 튀겨져서 부정형으로 날카로운 각도를 만들며 익은 걸 뜻한다.(217쪽)
가스불을 약불로 해서 자반 한 토막을 석쇠에 얹으시라. 이왕이면 고등어에 석쇠 자국이 나도록 꾹 눌러서 구우시라. 배기 팬을 크게 틀고 인내심을 갖고 석쇠를 돌린다. 껍질이 바삭하고 갈색으로 부풀어 오를 때까지 구워야 한다. 자글자글한 기름이라도 떨어져 불꽃이 올라오면 더 맛있는 고등어구이가 된다. 이렇게 고등어를 구워 놓으면 뱃살 쪽은 기름기가 남아 있어 촉촉하고 등살은 살집이 넉넉하다. 뭐,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한가?
ㆍㆍㆍㆍㆍㆍ
내가 즐겨 가는 시장의 고등어 상인은 한자리에서 오직 고등어만 파신다. 고등어 전문답게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시는데, 간혹 바깥양반 되시는 분도 한마디씩 거든다. 이게 압권이다.
"찬물 고등어랑 더운물 고등어랑 달라요. 찬물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수? 더운 데서 음식 잔뜩 먹고 배 늘어지게 있으면 좋지 않잖수? 또 먹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갱이랑 오징어 먹은 녀석들이 맛이 좋아요. 새우랑 메루치 먹은 건 살이 푹푹 물러요. 사람도 그렇잖수. 멸치젓, 새우젖 먹고 늘어져 있는 모양을 상상해보슈."(142~143쪽)
이런 글을 읽고도 안동 간고등어(=고등어자반)를 탐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의 저자 박찬일이 멸치손질을 하듯 고등어자반의포를 물리도록 뜬 사람이거나,
필시, 미각과 후각 내지는 공감각이라 불리우는 그 둘을 동시에 상실한 사람일게다.

암튼, 우리의 박 쉐프 님은 병어의 맛을
"으음ㆍㆍㆍㆍㆍㆍ구름 맛이죠."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솜사탕 맛'이라고 한단다.(19쪽)"
음~, 나는 병어를 안 먹어봤기 때문에 함구하여야 하겠지만,
내가 먹어본 것 중 무엇을 구름에 비견할 수 있을지 알겠기 때문에,
내게 구름은 '구름의 맛' 이다.
솜사탕의 폭신함, 입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그런 부드러움인줄은 알겠는데,
내 구름은 솜사탕처럼 단 맛이 아니라, 비 냄새를 닮아 약간 비릿하다.
감정이나 정서 상태도 맛이나 냄새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난 좀 까칠하다고 할 정도로 음식의 맛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좋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 또한 섬세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동시에,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난, 감정이나 정서 상태를 맛이나 냄새로 표현하는 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늘 블루 스카이에 보송보송한 솜사탕같은 흰 구름이 배경이고,
배경 음악으론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오늘은 그녈 만나는 날~ ' 이러고 있걸랑.
음... 맛으로 치자면,
달콤하고 고소한 감자전에 생무를 조금 곁들인 말랑한 포근함의 질감에,
새콤한 식초를 가미한 양념장하고 찍어먹는 달콤함을 곁들인 고소함... ^^
이런 거였다면,
어제는...
비가 올듯말듯 구름이 꾸무리~~(꾸무리는 구름낀 날씨의 일본어~ ㅋ)
바람도 제법 설렁설렁 풀들을 흔들고,
괜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그게 걱정이 앞서서 그랬던 거 같아.
암튼, 박 쉐프 님의 책을 읽으면서도,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게 아니라...
글에도 맛깔스러움이 배어있어서,
오감에 육감으로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며,
공감각이나 복합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아이스커피나 얼음을 쓰는 무엇을 할 때면 얼음에 신경을 집중한다. 마치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처럼 날카로운 예각의 얼음이, 비수 같은 날이 들어 있어야 제맛이 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른다고 다 떡이 아니고, 안친다고 다 밥이 아니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운 얼음 비수를 가져야 진짜 얼음의 맛이 난다.(47쪽)
이쯤되면, 아이스커피의 얼음은 날카로운 예각에 신경을 쓰며 잘라줄 수밖에 없겠다.
남도의 한상 차림 밥상을 한정식으로 부르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있다.한정식이란 여러 가지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 그러니까 시간 전개형 밥상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남도식으로 한상에 가득 차려 나오는 음식은 한정식으로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맞든 틀리든 나는 남도의 그 한상 차림 밥상에 주목한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공간의 배열이야말로 한식의 찬란한 창조성을 드러내는 매개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리가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요리를 먹게 된다. 그러나 한상 차림은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요리를 먹게 된다.ㆍㆍㆍㆍㆍㆍ끝도 없는 순열 조합이 각자의 입안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01쪽)
이런 걸 두고 글의 맛이라고 하는 걸게다.
이런 말과 글의 성찬과 향연은 또 다시 맛보기 힘들지 싶다.
그렇다고 화려하고 강한 맛을 자랑하는 그런 글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여 맛을 내는 품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나오는 남도의 한상 차림이나 한정식 같지 않고,
솜씨 좋은 아낙이 뜰에 정성껏 키운 재료를 갖고,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원형의 맛을 최대한 살려...
좋은 사람과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먹기 위한 것처럼
정갈하고 소박하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글의 벼리는 솜씨로 미루어,
아직 그의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요리솜씨를 짐작하고도 남겠다.
호남의 한식 기행은 수직적인 변화를 가진다. 저 남도의 끝이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이라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맛은 유순해지고 슴슴한 재료의 맛을 강조한다. 담양의 밥상에서는 그 온후하고 웅숭깊은 자연을 보여준다. 갯것과 들과 산의 물산이 고루 섞인 밥상은 천천히 당신의 혀를 어루만진다. 그 넉넉한 밥상을 받아 든 고가의 사랑채 바깥으로 바람이 건들 불어 대나무 잎새가 흔들리는 광경이라도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102쪽)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아슬아슬하여 묘한 쾌감을 불러온다.
부두에 매어둔 배들이 심상치 않은 밤바람에 쓸리며 우드득 삐걱,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105쪽)
이런 문장은 유순하고 슴슴하고 온후하고 웅숭깊다.
"양양 사람들은 김치를 산에 묻어. 김치를 꺼내려면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산에 가는 거야. 두어 해 이상 묵은 김치가 그 산에 있어. 산이 김치를 익혀. 여름을 여러번 넘겨도 김치는 짱짱해. 코가빨갛게 얼어서 꺼내온 김치를 썰어 먹는거야. 한 겨울에는 김치에 살얼음이 얼어서 엄마가 부엌칼을 대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 아버진 김치도 나오기 전에 그 김치 써는 소리에 벌써 소주를 한병 마셨을 테고."(108쪽)
이런 문단은 또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런 문단을 보고 있으면, 글 만큼 말도 맛깔나게 하리라 내가 보증할 수 있겠다.
귀신 같은 글맛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다.
기막힌 김치 맛을 아는귀신이 어쩌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듯,
난 꿈에서라도 양양 땅의 김치가 묻혔을 산들을 누벼보련다, ㅋ~.
날은 따스해서 바다에 군불이라도 지핀 양 가물가물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그야말로 술 욕심이 도도한 늦은 봄이었다.(127쪽)
그의 글이나 음식도 충분히 도도해도 좋을 것 같은데,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아슬아슬 하지만 경계 넘지 않는다.
말도 살찌는 계절이다.
나는 박쉐프 님처럼 맞춤할 재주는 없으니,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넘치는 것을 택할 것 같다.
넘치면 덜어내고 나누면 될테니까 말이다.
옛날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보고 싶어,
부산에 가고 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
이런 페이퍼를 썼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박 쉐프 님은,
그리하여, 부산에 조르지 않는 애인이나 묵은 친구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빌게 되는 것이다. 우울할 때면 기차를 타고 훌쩍 들르고 싶도록ㆍㆍㆍㆍㆍㆍ.(148쪽)
이러고 제대로 염장을 질러주신다.
박 쉐프 님이 염장을 질러주신 음식 중 제일 혹하는 건 이것이다.
앞서의 음식들은 정말 맛있다기보다 부산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는 기본적인 성지순례에 가깝다. 진짜 맛은 복국이나 돼지국밥 같은 국물 요리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이 좀 든, 그래서 부산의 맛에 산전수전이 밴 어른들은 - 특히 남자들은 - 열에 일고여덟은 복국을 거론한다. 술 좋아하고 거친 부산 사내들의 호쾌한 음식이 복국이 아닐까 싶다. 해장으로 한 그릇, 그리고 다시 소주에 한 그릇. 그러고 보면 부산은 해장국이 유독 발달했는데, 해운대 시래기 해장국이나 대구탕은 이미 서울내기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147쪽)
그렇다고 박쉐프님이의 글과 음식을 '맛깔스럽다'라고만 표현하긴 약간 아쉽다.
왜냐하면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이 엿보이는 이런 글들 때문이다.
그들은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오직 랍스터를 잡기 위해 수심 40미터의 심해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잠수병으로 장애를 얻는다. 그들이 랍스터 한 마리를 건져 올릴 때마다 받는 돈은 고작 3천원. 달의 뒤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궁금해하는 감상적인 이는 많아도 지구의 뒤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들 모른다. 제비집을 채취하기 위해 바닷가 벼랑을 기어오르는 중국 남부 해안가의 초라한 어부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하루 벌이가 랍스터 하나 값이 안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지구 뒤편에서는 늘 그런 식이니까.ㆍㆍㆍㆍㆍㆍ
내가 아는 한, 랍스터를 처리하는 칼잡이들은 그 회를 먹지 않을 것 같다. 때로 요리사들도 그럴 때가 있다. 재료가 생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달의 뒤편 대신 지구의 뒤편을 생각학도 하는 것이다.(181쪽)
그의 마을에서 팔리는 소박한 초콜릿은 모두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카카오와 설탕, 부재료를 쓰고 있다. 비록 전체 시장에서 매우 미미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런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 소비자들을 각성시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래, 낙관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긍정의 힘으로 믿는 것이다.(195쪽)
내가 삶은 실재라는 둥, 그만큼 가열찬 거라는 둥,
해도 맨날 '메리 베리 해피'해가며 긍정 마인드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내게 이 문장을 돌출시켜 들이댈 것이 틀림없다.
그래, 낙관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긍정의 힘으로 믿는 것이다.
책의 편집, 교정 상태가 좋다.
그래서 흠 잡자면~,
290쪽 밑에서 다섯째 줄-
달콤한 향 내신 비린내가(X),
달콤한 향 대신 비린내가(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