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와 '칠칠 최북'을 번갈아 가면서 읽는다.

화두는 어제가 좋은 서평, 좋은 글이었다면...오늘은 그 연장선 상에서 '좋은 그림'이다.

글은 쓰레기 같이라도 내 감정을 표현해 내지만,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림도 서평이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화단에서 얘기하는 진짜 좋은 그림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경험과 삶을 얼마간 반영한 그림이 난 좋다.

 

최북의 이 그림 '공산무인도'를 놓고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무성의하다고 하고,

내가 애정하는 손철주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최북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가 있다는 걸 주목할만 하다.

이유는 다름아닌, 그림 속의 시 한수 때문이란다.

 

최북이 인용한 '空山無人  水流花開'는 어떻습니까? 빈산에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핍니다.ㆍㆍㆍㆍㆍㆍ'공산무인 수류화개'가 가지고 있는 속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은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인가니작위적으로 그 자연의 섭리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이다.' 보십시오. 물이 흐르고 꽃이 지는 것은 자연이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빈산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필 때 알아서 피며, 떨어질 때 알아서 떨어진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가 최북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원래 그러한 이치를 그림 속에 표현해 본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물이 흐로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제 가끔의 흥에 겨워 그렇게 탄성을 지르거나 한숨을 쉬는데, 최북은 그렇지 않은 자연의 딴 마음을 그려 보고 싶었던 겁니다. 물은 저절로 흐르고, 꽃은 필 때면 저절로 피는 것이다. 인간이 피어라 한다고 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슬프다고 떨어질 꽃잎이 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심상을 이 그림에 드러낸 것이죠. 그래서 최북의 이 그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획득한 겁니다. 어떤가요, 결코 만만한 산수화가 아니지요.

 

실은 '서서비행'과 관련한 페이퍼의 어울리는 음악으로 내가 골랐던 음악은 '임재범'의 '비상'이었다.

 

 

 

 

 

 임재범 - 2집 비상
 임재범 노래 / 새한(km culture)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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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상

                                                            작사/채정은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 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고독이 꼭 나쁜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걸 깨닫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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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페이퍼를 쓰는 동안 마음이 바뀌어 내가 요즘 끼고 듣는 'The one'의 '그남자'를 페이퍼에 올려 같이 듣고 싶어졌다.

이 노래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OST로 남자 버전 '그남자'와 여자 버전 '그여자'가 있다.

아마, 백지영이 '그여자'로 부른걸,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남자 주인공이 '그남자'로 바꿔 불렀었나 보다.

그때도 분명 같은 가사였을텐데,

미처 그렇게 아슴아슴하고 절절한 줄 모르다가,

The one이 부른 버전을 듣는데...제대로 몰입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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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남/여)자

 

 

한 (남/여)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 (남/여)자는 열심히 사랑합니다

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남/여)자는 웃으며 울고 있네요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네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여)잔 웁니다

그 (남/여)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상처투성이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네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여)잔 웁니다

그 (남/여)자가 나라는 걸 아나요
알면서도 이러는 건 아니죠
모를 거야 그댄 바보니까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여)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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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노래에 제대로 몰입한 이유는,

그 (남/여)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라는 구절 때문이다.

주변에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을 간혹 보고 듣기는 하지만,

오랜 사회생활에 닳고 닳아서 (좋게 말하면 둥글려져서) 그런지,

'성격이 아무리 소심하기로 웃는 법을 배워야 할 사람이 있을라고~'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때 나는 사람들의 웃음을 부러워 했었다.

사람들이 흩뿌리는 웃음을,

내리쬐는 햇살이랑 동격으로 여겼고,

그들이 흩날리고 가는 웃음의 조각들만을 모아서라도 좋으니...

나도 밝고 (넉넉하지 못하면) 잔잔하게라도 웃어보고 싶었었다.

나의 웃는 모양새는 '배시시 해시시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억지로 마지못해 웃는 흉내를 내는 꼴이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상처투성이가 아니라,

친구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 얘기를 한 친구가 없었다.

 

그러면서 내게 다가오는 이를 향하여 난 도리어,

이를 드러내 놓고 얼굴을 터트려가면서 웃지 못한다고 툴툴거렸었다.

 

그대도 나도 성격이 소심한가 보다.

그래서, 그대도 나도 웃는 법을 배워야 하나 보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대도 나도 성격이 소심하다는 걸 수긍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배우기만 하면 제대로 웃을 수 있게 될테니 다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행인건,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상처로 얼룩진 그 얘기들을,

그대에게는 버선목 뒤집어 보이듯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거다.

 

암튼,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이 책은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의 강의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강의실에 가서 그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보고 싶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랑 달리 추가된 내용은, 초승달과 그믐달의 구별법 정도인것 같다.

손철주가 공개한 특별 구분법을 살짝 공개하면 이렇다, ㅋ~.

"초승달을 모르는 사람은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초승달은 'ㄱ'자 형태거든요. 그믐달은 'ㄴ'자 쪽입니다. ㆍㆍㆍㆍㆍㆍ초승달은 해가 지고 난 뒤에 저 서쪽 하늘에 뜬 것을 잠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가 지고 나면 얼마 안 있어서 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에 해가 뜰 무렵에 뜨는 것이 초승달입니다.

 

 

어제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하늘에 떠 있던 조각달.

손철주의 초승달ㆍ그믐달 구별법 특강을 참조하여 달의 이름과 시간대를 가늠해 보시기 바란다.

퀴즈로 내볼까?^^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체험판) : 팸플릿 1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칠칠 최북
 민병삼 지음 /

 도서출판 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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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비행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금정연의 서서비행(書書飛行)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난 왜 리뷰를 쓰나?'내지는 '난 왜 페이퍼를 쓰나'하는 자문에 시달렸다.

왜냐하면 책 겉표지의 '생계 독서가 금정연 매문기'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난 서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서평자는 아니다.

내가 쓰는 글들이 '서평'이라는 대접을 받을 정도의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럼, 내가 쓰레기 같은 글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김경민이 쓴, '시 읽기 좋은 날'의 프롤로그를 인용해야 할 것 같다.

 

 

 

 시 읽기 좋은 날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아홉 살 때 <플란다스의 개>를 읽은 후 한 동안 힘들었다. 이건 그 전에 읽었던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이야기, 혹은 예쁘고 착한 여자가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따위의 해피엔딩 동화와는 뭔가 질적으로 다르게 느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플란다스의 개>는 나에게 최초의 문학적 정서체험을 선사했던 셈인데, 그 체험의 강렬함이 아홉 살꼬마가 감당하기에는 좀 컸다.

이 동화는 나에게 세상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걸, 문학은 그걸 감추지 않고 기어이 드러내기에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때때로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프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그 아픔엔 슬픔뿐 아니라 마약 같은 중독성과 모종의 희열과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도 함께 들어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주었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것이고, 당시의 난 그저 네로와 파트라슈가 너무 불쌍해 마냥 눈물이 났다).

 

읽은 뒤에 밀려오는 감정의 압도성과 그 감정을 제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언어의 빈곤함 말고도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아홉 살 아이의 눈치로도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너무 바빠 보였고, 내가 기대하는 만큼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감정의 공유와 좀 비슷하면서 다른 감정일 수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의 감동, 기억하거나 붙잡아두고 싶었던 순간의 느낌을...

읽는 순간 만큼 생생하게는 아니어도 가끔 되새기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억력이 감퇴해가자, 그걸 기록해보겠다고 시작하였다.

때문에, 책소개나 줄거리 따위 클릭질 한두번하는 수고로 알아낼 수 있는 걸 적는게 아니라,

감동이나 느낌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럼 알라딘 서재에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평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전정기관과 반고리관쯤 되겠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을 쉬이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곳이고,

같은 책을 읽고도 각자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도 이 곳이다.

이곳에서 난 사람사는 세상 지지고 볶고 다 똑같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하고,

제각각 개성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독선과 아집에 빠지거나,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이중적인 잣대가 되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서평자 대접을 받을 정도도 아니지만,

굳이 서평자로 불리우길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책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난 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직업이지만,

 직장이 출판사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보니...책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지는지 어렴풋이 안다.

 아니, 객관적이고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오히려 잘 안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 책들을 한마디 말로 쉽게 평가하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좋지않은 책을 그저 좋다고 하는 건 또 베어넘겨진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이런 내가 금정연을 서평자로 '아흐~, 멋져.'하고 생각하게 된건,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진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과,

'좋아하는 책에 사랑을 고백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책에 불평하기를 망설이지 않으며 쓸데없이 공정한 체하지 않는 것' 이란 내용을 볼드체로 돌출시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정연은 좋은 서평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다독이나 정독, 사람을 홀리는 글빨이나 말빨을 꼽지 않고...

정직함(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정직할 것)을 꼽고 있는데, 나는 솔직함으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알라딘은 이익기업이고,

그런 알라딘으로부터 내가 블로그를 빌려쓰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책팔이 노릇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읽는 노력을 기울인 책에 대하여 '나쁜 말을 조심하는 것'이 알라딘서재를 빌려쓰는 대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금정연은 좋은 서평자라는 게 나의 견해이다.

금정연은 '좋은 '서평'이전에 좋은 '글'이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그의 서평은 좋은 글이라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겠다.

 

그의 글은 좀 가벼운 듯 하지만, 폼 잡지않아서 좋다.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것이 좀 대책 없는 듯 하지만,

그의 경험과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어서 좋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일갈하는,

 물론 그들 입장에서야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독서에 맞춤한 계절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건강한 영혼이라면 이런 날 방구석에 앉아 책이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법이다. 낮이면 문득 떠나고픈 마음을 주체할 길 없고, 밤이면 살갗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에 술 생각 간절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세상엔 책보다 아름답고 또 즐거운 것들이 존재한다. 출판 관계자들이 독서의 계절이란 문구를 떠올린 것도 어느 나들이나 술자리에서였을 거라는데에 소주 두 병과 오뎅탕을 걸 수도 있다.(52~53쪽)

 

이프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독서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문장도, 힘차거나 화려한 서사도, 유쾌한 말장난과 온갖 지식의 나열도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은 개미 같은 활자들은 나의 시선을 벗어나 저마다의 세상으로, 아마도 건강할 그들만의 세상으로 유유히 걸아간다. 나는 그들의 생기를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은 나의 병약함에 신경 쓰지 않는다.

ㆍㆍㆍㆍㆍㆍ

 지난 주말 나는 내가 언제나 사랑하는 도시인 부산에 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집에 돌아왔고, 아팠다. 아무래도 아무 생각 없이 나이만 먹다 체해버린 것만 같아 마음이 더 아팠다.(75~76쪽)

 

이 책을 읽으면서 직ㆍ간접적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나의 책탑 행각과 관련하여 에코의,

"아니요. 저 가운데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이미 읽은 책을 무엇 하러 여기에 놔두겠어요?" 정답!(24쪽)

이 그 하나이고,

그의 가벼움을 젊음의 그것이라 치부하고,

나의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대책 없는 짬뽕공 같은 행각과 감히 동격으로 놓는 것이 그 하나이다.

 

서평집을 읽는 이유는 이쯤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시평집, 내지는 시 해석집을 읽는 이유도 별다르지 않다.

'김경민'의 '시읽기 좋은 날'을 통하여, '이성복'의 '서해'를 처음 만났는데,

그니의 해석도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나중에 사별을 하고 쓴 시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뭐 어쩔 것인가?

내가 필 받았으면 그 뿐, 난 그 순간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을 따름이다.

 

      서   해

                                       -이 성 복 -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이란 결국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엇던 곳,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었던 곳은 나에게도 특별한 곳이 된다. '서해'는 그런 곳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추억이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말하고 있지 않으나, 어쨌든 서해는 특별한 곳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가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유를 밝혔는데 그 이유란 것이 사람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나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

나는 당신이 너무나도 그립기에 지금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프고, 영영 당신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무섭다. 나는 당신이 서해에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찾아갔는데 만약 그곳에 당신이 없다면, 나는 당신의 부재를 실감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당신을 찾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당신이 그곳에 계시리라고 믿고 있는 편이 나에겐 더 위안이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과잉된 슬픔을 표현하는 연기나 노래에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직 그 슬픔에 공명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건만 먼저 대성통곡을 해버리면 당황스러워 오히려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교요한 눈빛 뒤에 숨겨진 '진펄' 같은 속마음을 엿보게 될때,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애써 누르고 나오는 담담한 목소리를 엿듣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은 심하게 동요한다. 그리곤 문득 궁금해진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도리어 나는 '서해'에 가보고 싶어진다. 나만의 서해에. '여느 바다와 다를'바 없는 그곳에 말이다.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볕이 좋다.

인간이 아무리 책을 읽고 애를 쓰고 소리 높여 자신의 철학을 늘어놓아 본댔자 하늘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금정연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여, 이런 말이 하고 싶다.

하늘이 높건 말건, 볕이 좋건 말건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책을 읽어야 할텐데~--;

 

책의 내용이나, 이 페이퍼랑은 전혀 상관없는...내가 요즘 푹 빠져있는 The one.

(짬뽕공 마인드를 십분 발휘하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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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9-20 15:21   좋아요 1 | URL
'서서비행' 책의 교정, 편집상태가 좋아...딴지를 걸자면,
102쪽의'미치오 카쿠'가 103쪽엔 '미치오 가쿠'가 되어 있다.
한쪽으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책읽는나무 2012-09-20 18:21   좋아요 1 | URL
좋.다.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고,님이 이글을 쓸 수 있게 만든 작가도 좋고,
거기다 노래도 좋군요.
좋은 가을이에요.

프레이야 2012-09-21 09:14   좋아요 1 | URL
님, 아침부터 마음을 울리는 노래^^ 좋아요~~~
남자의 사랑은 뿌리 같아요. 여자의 사랑이 잎사귀 같다면요.
가을하늘 만끽하며 마음에 평화가 늘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님에게도 저에게도^^

서평이든 어떤 글이든 기본, 즉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이에요.
문제는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너무 의식하다보면 좋은 글이 안 나올 우려가 많다는 점이겠지요.
 

우려했던 대로 건강이 안 좋으셨군요.
십 수년 전에도 고생을 한 적이 있으신데,

비슷한 상황의 반복이라면, 혼나셔야 해요.

관리 소홀의 책임이 커요, ㅋ~.

 

전 요즘 김영민의 '공부론'을 다시 보고 있어요.

 

 

 

 

 

 

 

 

 

 김영민의 공부론
 김영민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인이불발(引而不發)이라고 하여,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 일,

즉 '알면서 모른 체하기'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것,

가려운 곳을 긁는 것,

기침을 하는 것 등은 결코 숨길 수 없다죠.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아프면서 아프지 않은 척 하는 것이요.

왜 그러셨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心身으로다가 잘 조절하셔서 쾌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불교의 '자'와 '비'의 의미와 '내려 놓음'을 약간은 깨달은 바 있어
그동안의 님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한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어서 치마폭 자랑을 해보려구요.

'내려놓음'은 님을 반성하는 의미가 아니라 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의미로 챙겨가지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려 놓을려고 해서가 아니라 내려놓지 않으면 연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가슴에 '콕~!'하고 와서 박혀 버려서말이지요.

 

그래서 반야심경보다는 태허의 개념으로 접근하는게 좀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욕심의 반대 개념이라도고 볼 수 있는, 자기애는 챙겨가져야 한다는 것일테니까요.


시간은 쏜살 같이 흐른다고 하셔서 생각난건데요,

활을 당기는 것과,

잠시 숨조차 멈추는 그 '사이'와,

화살을 쏘는 것, 이 하나의 연결 동작 같지만...

잘게 나누다보면 경계가 있는 일이지요.

 

활 시위를 힘껏 당긴 후,

화살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한 잠깐의 쉼, 멈춤(止)이라고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냥 내려놓는다고 하기엔,

님의 그간 이곳에 들인 공과 애정을 부정해 버리는 꼴이 되잖아요.

또 한가지,

갑자기 생기게 된 여유라고 하여,

너무 생각에 연연해 하지 마시라는 거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생각에 연연하다가 공상으로 사상누각을 쌓지 마시고,

그저 말끄러미 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들도 읽으시되,

그냥 본다는 느낌으로 하시구요,

컴퓨터나 텔레비젼이나 그 밖의 것들도 그냥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맑은 날엔 해님의 고마움을 모르게 마련이지요.

가끔 해님을 향하여 땡큐도 날려주시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광합성도 한번씩 해주시구요.

 

이런 말이 님을 이곳 알라딘 서재에 마냥 잡아두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님이 계셔서 이곳이 조금 더 환하고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제겐.


소식 남겨 주셔서 반가운 마음에 몇 자 적는다는 게 길어졌습니다.

생각날때마다 한번씩  염력을 날려드릴테니,

어서 쾌차하셔서 이곳에서 웃으며 뵐 수 있기 고대하겠습니다.

요즘 제가 아껴 읽는 시 한편은 덤으로요.

               산등성이를 건너다보며

 

                                 - 이  건 청 -

 


 

지난 겨울 나는 어느 절간 요사채에

방 하나를 빌려 빈둥빈둥 놀면서

절간 건너편 산등성이를 바라보곤 하였다.

어떤 땐 하루 종일 산등성이만 건너다보기도 하였다.

산등성이 위로 구름이 흐르고,

황조롱이 같은 놈이

자작나무 가지에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별안간 긴한 볼일이라도 생긴 듯 펄쩍 날아

옆 골짝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밤이 되면 산비탈 모두가

깜장이 되어 초롱초롱한 별을 띄워 올리곤 하였는데

어느 날 나는 산등성이 풀덤불에 무덤 하나가

버려져 있는 걸 창자내었다.

죽은 자를 거기 묻었던 사람들도

모두 늙어 죽었는지, 무덤은 잊혀지고

지워지면서 낮은 흙더미만 남아 있었다.

조그만 흙더미가 삭은 뼈를 보듬고 있는 거기서

절간 요사채에 빈둥거리는 나 사이는

영겁인 것도 같고 지척인 것도 같았는데

창 너머로 산등성이를 자세히 보면서

그 무덤이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닌 걸 알게 되었다.

가끔은 이 산에 사는 고라니가 와서 쉬다 가고

숱하게 많은 새들도 들렀다 가곤 하였는데

한낮의 고라니도, 흰 구름도 황조롱이도,

한밤 초롱초롱한 별떨기까지도 사람들이 잊어버린 삭은 뼈와 막역해져서

각각의 몸짓으로 적멸 속을 넘나들고 있음을 알았다.

 

그냥 산등성이처럼 건너다보이는 거기가

피안이고 화엄인 걸 알게 되었다.

 

 


왠지 이 책도 觀하는 데는 좋을 것 같아서 골라봤어요.

 

 

 

 

 

 

 

 

 

 

 영원에서 영원으로
 불필 지음 / 김영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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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9-20 10:35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 보내시는 글인지 알겠어요 언니의 마음이 그분께 닿길
더불어 저도 참 좋네요
제게도 와닿는 구절이 참 많아서
이건청 시인의 시를 읽다 26살의 저를 만났어요
그 때 이건청 교수님 시창작 수업에 시를 내고 칭찬에 한껏 으쓱해했거든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지만 오래오래 곱씹어 즐기게도 하네요
덕분에 좋은 시 덩달아 감상합니다

sslmo 2012-09-20 15:28   좋아요 0 | URL
이건청 시인은 되게 로멘티스트일 것 같아요, ㅋ~.
이제 정년퇴직하셔서 다작이시라는데...
무색케할 정도로 깊이가 느껴지더라구여~^^

우린 카카오 스토리에서 종종 만나 오랫만 아니죠? ㅋ~.
그래도 이렇게 보는 것도 반갑당~!

북극곰 2012-09-20 13:57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읽으시면 곧 쾌차하실테지요.
저까지 덩달아
(혼나는 듯도 하면서도,) 힘도 나고, 가슴도 따땃해지고, 애정도 담뿍 느끼고 갑니다.


sslmo 2012-09-20 15:29   좋아요 0 | URL
잘 지내세요, 북극곰님?
오랫만이에요.
반갑다~~~~~
부비 부비*^^*

책읽는나무 2012-09-20 18:15   좋아요 0 | URL
모두 다 건강관리 잘해야 합니다.그죠?
님의 글을 읽으면서 연륜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고 가네요.^^
전 A형 성격 그대로 반응이 나오더라구요.ㅋ
암튼...그분도 어서 쾌차하시어 벌떡 일어나셨음 하구요.
또한 님도 건강하세요.
요즘은 건강이란 단어로 자꾸 인사를 하게 되네요.앞으로 점점 더 그러하겠죠.^^;;

hnine 2012-09-20 21:5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따뜻한 이 마음이 그분께 잘 전달되어 건강이 나아지셨으면 좋겠어요.

2012-10-0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낙서 - 박병철 단상집 우드앤북 단상집 2
박병철 지음 / 우드앤북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을 선택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눈에 반해서,

또는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겨서,

어찌하다보니 미운정ㆍ고운정 다 들어서,

등등등...각양각색의 이유가 있지만,

나처럼 남편을, 연습장에 흘려쓴 글씨가 넘 맘에 들어서라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암튼 난 남편의 글씨체가 정말 맘에 든다.

누군가는 글씨를 뜯어먹고 살것도 아닌데,

왜 그리 글씨체에 환장하냐고 하지만...

글씨체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난 잘 알기 때문이다.

 

나랑 제법 많은 시간을 놀아주던 애인이...시험을 앞두고 공부에 용왕매진하겠단다.

어둠 속에서,

'너는 글씨를 쓰거라, 에민 떡을 썰테니...' 하는 석봉 모친을 닮아,

'시험에 붙을 때까지 절대 집에 드어올 생각 말아라~!'라고 할 재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고,

한가하고 심심한 내 시간들을 떼울 떡을 썰 기술을 전수 받아야겠다.

 

어둠 속에서 떡을 써는 기술은 옛 말이고,

요즘은 글씨 잘 쓰는 자식을 원하면, 서체 정도는 연구해 주시는게 기본이란다.

 

그래서 석봉이처럼 글씨를 써볼까,

공부에 용왕매진한다고 하니 나도 공부라는걸 해볼까,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몰라서 그랬지,

내가 엄청 흥미로워하는 분야이고,

또 조금만 노력하면 잘 할 자신도 있다.

 

한가하고 심심한 자투리 시간들을 떼울 떡 써는 기술로 이보다 더 딱 맞춤한게 없지 싶을 정도로...

내가 흥미로워 하는 분야다.

 

책 겉날개 앞쪽에,

마음 박병철

캘리그라피스트(Calligraphist, 글씨예술가)라고 되어있다.

 

이 책을 보면서 사석원이 생각났는데,

그림이나 글씨가 예술인건 공통점이지만,

한명은 그림을, 한명은 글씨를 주로 하는,

화풍이나 필체가 각자 다른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상이 된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미친 색감이라고 표현하는 색감 때문인 것 같다.

색감은 내가 이들에 비해서 쫌(very much) 떨어진다~--;

 

암튼,

캘리그라피를 하든, 흉내를 내든...

내가 좋아하는 꼼지락거리는 걸 하게되는거여서...

심심한데 맞춤인...염전이나 소금밭은 공수받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내가 이 책에, 그리고 캘리그라피라는데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예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심미안은 갖고 있지 않은고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보고 즐기는게, 나의 감상법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마음낙서>이고,

이 사람 이름 앞에 붙는 호가 '마음'인가보다.

그리고 '마음을 글씨에 담은 작가'라는 수식어가 보이는데,

그 호와 수식어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일곱번째 낙서라는 마지막 꼭지는 '글씨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의 캘리그라피에 관한 철학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글씨이야기7.

 

있는 그대로.

나의 글씨는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한글로 우리의 마음을 말했으면 좋겠어요.

글씨에 학문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고 웃고 울리게 한다면

그것으로 예술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위대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나의 글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분이 맘에 든 또 하나의 이유는 '돌맹이'를 가지고 논다는 건데,

나랑 닮아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애틋하게>리뷰 ;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

 

 

 

그의 단상들은 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시는 문장부호가 없는데,

그의 글들은 문장부호가 단정히 들어가 박혔다는 거다.

 

요즘은 만능엔터테이너라고 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도...자신의 전문분야 뿐 아니라, 넘나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서체를 갖고 있는 캘리그라피스트라는 사람이 그림과 색감도 수준급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글들도 하나같이 훌륭하였다.

 

나의 경우,

그의 글들이 좋은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나 틀을 정해놓고 절대불변의 가치인양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입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다보니,

변해야 할게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그 경계와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나름 소신이 요구되는 일이고,

그걸 자신만의 색이나 스타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041 용서

 

 

 

ㆍㆍㆍㆍㆍㆍ

용서가 아닌 용서를 하는 것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내가

쓰레기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감춰질 것이라는 착각은

그대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손바닥 뒤집기 차이입니다

그대가 피해자 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044 이런 사람', '045 막걸리 같은 사람'은 자연 사석원의 '막걸리연가'를 연상시켰다.

사석원은 거의 술을 혼자 마신다는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술이 독이 아니라 약인듯 여겨지는 것이 주선(酒仙)이 따로 없지 싶은데,

이분도 만만치 않다.

'162 아무도 없는 날'이 그 절정이다.

아무도 없는 날

 

혼자 술마시지 않는 방법,

술병과 건배하기

 

 

 

 

'월하독작'을 읊은 이백이 울고 갈 것 같다.

 

글씨체를 가지고 논할 깜냥은 안되고,

그림과 글 들 다 맘에 들었는데,

유독 좋았던 그림은 이거다.

 

해님은 쨍쨍한데,

마음에 비가 와 우산을 받쳐든 그림.

 

 

 

'그 사람이 웃었어요'도 좋았다.

 

 

반면, 딴지를 걸고 싶었던 글과 그림도 있는데,

 

059 멍멍!

 

나의 힘든 이야기를

너와 나누고 싶은 건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야.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위로일 뿐,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쥐꼬리만한 마음이 필요할 뿐.

 

 

 

제목과 글과 그림이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싶은건 나만의 생각일까?

 

제목은 '멍멍'이고,

마음을 '쥐꼬리'에 비유했다.

 

086 중이염

 

내 귀에 번개,

스르륵 스르륵 파도가 밀려온다.

불편하다. 괴롭다. 집중이 무너진다.

당연한 것들이 깨지고 저항을 한다.

생활에 파고들어 거추장스럽게 한다.

아. 모든 아픔은 당사자만 아는 것,

이 작은 고통도 당해봐야 아는 것이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아픔들에게 미안하다.(140쪽)

 

 

095 환하게

 

겉으로만 웃지 마요.

진짜 웃음은 자기 안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것.

마음까지 마저 웃어요. 그러면 좋잖아요.

그대가 더 아름답잖아요.(152쪽)

 

 

097 오직 그대를

 

나는 그대의

질투를 알고

낭비를 알고

위선을 알아도

그래도 그대 곁에 있겠습니다.

 

사랑하니까.(154쪽)

 

106 하하하

 

오, 자네의 얼굴이

분홍빛이네.

사랑이 시작됐군.

아름다워.

 

 

 

183쪽의 '삐짐'은 문맥 상 맞춤법이 틀린 것 같다.

153 마음의 여백

 

여백이란 비움과 같아.

사람을 대할 때도

한 번에 많은 걸 원하기보다는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해.

그것이 사람에 대한 비움이야.

사람에게 거는 큰 기대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것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지.

믿고 기다리는 마음의 여백이 필요해.

그것이 곧 너를 풍요롭게 하는 거야.

여백과 비움이 이와 같다면,

적당한 여백과 비움은 필수불가결이다.

어쩜,

여백은 여유와 동의어인지도,

비움은 넉넉함이랑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라면에서 인생으로 발상전환도 신선하다.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짬뽕공 같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라면 봉지에 적혀있는 끓이는 방법을 정확하게 잘 지켜서 끓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플 때 끓여 먹는 라면'이란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난 '자다가도 번쩍'이라고 할 정도로 과일이 좋다.

눈 감고 골라도 맛난 과일을 고를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오늘 아침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가 장만한 과일은,

물에서 건져낸 것 마냥 깨지고 상하고 멍들고

게다가 맛이 없었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이쁘기도 하지요'라는 노래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며 스스로 자위를 해야 할지,

아님, 배가 고프지 않을때 먹는 라면 같은 것이어서 그런거라며 '거봐라, 쌤통~!'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병철은 글씨는 마음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글씨로 미루어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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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2 20:59   좋아요 0 | URL
글씨로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믿음, 어느 정도 수긍돼요. 제 글씨체의 변천사도 그려지고요. 페이퍼로 쓸 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아요. 나무꾼님의 글씨체가 오롯이 담겨 있는 메모는 제 책상 유리판 아래 자리하고 있지요.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순오기 2012-09-12 22:59   좋아요 0 | URL
아주아주 오랜만에 양철나무꾼님 리뷰를 꼼꼼하게 두 편 읽었어요.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얘기고요.^^
벌써 가을이 코앞에 왔어요!!

2012-09-1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9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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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언어유희를 즐기지 않더라도,

'무봤나?'의 대답으로는 '봤다' 또는 '못 봤다'가 나와주는 게 일반적이지 않겠는가?

근데 대답으로 '맛나더라'가 나와주시면,

나처럼 오지랖 넓은 아줌은 정정 들어가고 싶어진다.

'맛나 보이더라'가 맞겠지~--;

 

근데, '무'는 '먹어'의 사투리였던 것이었다.

해석을 하자면 '무봤나?'는 '먹어봤나?'의 뜻이었고,

그 메뉴는 '안동 간고등어'였다.

 

같은 언어유희를 이 책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싸안고 뽀뽀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안동 간고등어'가 맛났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는데,

글쎄~, 메뉴까지 일치한다.

"고등어자반하고 문어 무봤나? 무봤다고? 맛있제?"

 

난 좀 독특한 체질이어서,

등푸른 생선을 먹으면 온 몸에 뻘겋게 두드러기가 나 주신다.

하지만, 안동 간고등어를 한번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맛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고,

목숨을 걸고라도 먹어주시는 맛의 향연에 빠져 주시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들녀석은 다른 많은 장점들은 놔두고,

까칠한 나의 혀만 닮았는지 어찌되었는지,

갑자기 갑자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크러스트 에그가 먹고싶다는 둥 어려운 주문을 하여 나를 곤란에 빠트린다.

(손목 부위의 세컨드 스킨은 크러스트 에그를 만들다가 팬 가장자리에 데인 자국,

 그 아래 두드러기는 안동 간고등어(소위, 고등어 자반)를 먹고 두드러기가 난데 약을 발라 좀 가라앉은 후~.)

 

 그때 볶음밥은 짜장 같은 건 곁들여주지 않았다. 불땀이 바싹바싹 입혀진 진짜 볶음밥이었다. 대충 부실하게 기름에 버무린 볶음밥을 짜장에 비벼 먹도록 하는 요즘 유행과는 달랐다. 주문을 하면 쇠 국자로 웍을 긁고 치면서 센불에 밥을 볶는 소리가 들렸다. 숙달된 요리사일수록 그 소리는 아름다운 박자를 가졌다. 다 볶은 밥을 국자로 긁어 그릇에 탁탁,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면 행복했다. 무엇보다, 높은 온도에 튀기듯 만든 계란 프라이가 올라갔다. 흰자는 바삭하게 튀겨지고, 노른자 속은 주르륵, 흐를 정도로 익힌 완벽한 계란. 서양에서는 이걸 '크러스트 에그'라고 부른다. 얌전하게 지진 '후라이'가 아니라 흰자가 기름에 튀겨져서 부정형으로 날카로운 각도를 만들며 익은 걸 뜻한다.(217쪽)

가스불을 약불로 해서 자반 한 토막을 석쇠에 얹으시라. 이왕이면 고등어에 석쇠 자국이 나도록 꾹 눌러서 구우시라. 배기 팬을 크게 틀고 인내심을 갖고 석쇠를 돌린다. 껍질이 바삭하고 갈색으로 부풀어 오를 때까지 구워야 한다. 자글자글한 기름이라도 떨어져 불꽃이 올라오면 더 맛있는 고등어구이가 된다. 이렇게 고등어를 구워 놓으면 뱃살 쪽은 기름기가 남아 있어 촉촉하고 등살은 살집이 넉넉하다. 뭐,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한가?

ㆍㆍㆍㆍㆍㆍ

 내가 즐겨 가는 시장의 고등어 상인은 한자리에서 오직 고등어만 파신다. 고등어 전문답게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시는데, 간혹 바깥양반 되시는 분도 한마디씩 거든다. 이게 압권이다.

 "찬물 고등어랑 더운물 고등어랑 달라요. 찬물 것이 훨씬 좋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수? 더운 데서 음식 잔뜩 먹고 배 늘어지게 있으면 좋지 않잖수? 또 먹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갱이랑 오징어 먹은 녀석들이 맛이 좋아요. 새우랑 메루치 먹은 건 살이 푹푹 물러요. 사람도 그렇잖수. 멸치젓, 새우젖 먹고 늘어져 있는 모양을 상상해보슈."(142~143쪽)

이런 글을 읽고도 안동 간고등어(=고등어자반)를 탐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의 저자 박찬일이 멸치손질을 하듯 고등어자반의포를 물리도록 뜬 사람이거나,

필시, 미각과 후각 내지는 공감각이라 불리우는 그 둘을 동시에 상실한 사람일게다.

 

 

 

암튼, 우리의 박 쉐프 님은 병어의 맛을 

"으음ㆍㆍㆍㆍㆍㆍ구름 맛이죠."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솜사탕 맛'이라고 한단다.(19쪽)"

음~, 나는 병어를 안 먹어봤기 때문에 함구하여야 하겠지만,

내가 먹어본 것 중 무엇을 구름에 비견할 수 있을지 알겠기 때문에,

내게 구름은 '구름의 맛' 이다.

솜사탕의 폭신함, 입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그런 부드러움인줄은 알겠는데,

내 구름은 솜사탕처럼 단 맛이 아니라, 비 냄새를 닮아 약간 비릿하다.

 

감정이나 정서 상태도 맛이나 냄새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난 좀 까칠하다고 할 정도로 음식의 맛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좋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 또한 섬세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의 연장선 상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동시에,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난, 감정이나 정서 상태를 맛이나 냄새로 표현하는 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늘 블루 스카이에 보송보송한 솜사탕같은 흰 구름이 배경이고,

배경 음악으론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오늘은 그녈 만나는 날~ ' 이러고 있걸랑.

음... 맛으로 치자면,

달콤하고 고소한 감자전에 생무를 조금 곁들인 말랑한 포근함의 질감에,

새콤한 식초를 가미한 양념장하고 찍어먹는 달콤함을 곁들인 고소함... ^^

 

이런 거였다면,

어제는...

비가 올듯말듯 구름이 꾸무리~~(꾸무리는 구름낀 날씨의 일본어~ ㅋ)

바람도 제법 설렁설렁 풀들을 흔들고,

괜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그게 걱정이 앞서서 그랬던 거 같아.

 

암튼, 박 쉐프 님의 책을 읽으면서도,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게 아니라...

글에도 맛깔스러움이 배어있어서,

오감에 육감으로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며,

공감각이나 복합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아이스커피나 얼음을 쓰는 무엇을 할 때면 얼음에 신경을 집중한다. 마치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처럼 날카로운 예각의 얼음이, 비수 같은 날이 들어 있어야 제맛이 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른다고 다 떡이 아니고, 안친다고 다 밥이 아니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운 얼음 비수를 가져야 진짜 얼음의 맛이 난다.(47쪽)

이쯤되면, 아이스커피의 얼음은 날카로운 예각에 신경을 쓰며 잘라줄 수밖에 없겠다.

남도의 한상 차림 밥상을 한정식으로 부르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있다.한정식이란 여러 가지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 그러니까 시간 전개형 밥상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남도식으로 한상에 가득 차려 나오는 음식은 한정식으로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맞든 틀리든 나는 남도의 그 한상 차림 밥상에 주목한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공간의 배열이야말로 한식의 찬란한 창조성을 드러내는 매개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리가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요리를 먹게 된다. 그러나 한상 차림은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요리를 먹게 된다.ㆍㆍㆍㆍㆍㆍ끝도 없는 순열 조합이 각자의 입안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01쪽)

이런 걸 두고 글의 맛이라고 하는 걸게다.

이런 말과 글의 성찬과 향연은 또 다시 맛보기 힘들지 싶다.

그렇다고 화려하고 강한 맛을 자랑하는 그런 글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여 맛을 내는 품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나오는 남도의 한상 차림이나 한정식 같지 않고,

솜씨 좋은 아낙이 뜰에 정성껏 키운 재료를 갖고,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원형의 맛을 최대한 살려...

좋은 사람과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먹기 위한 것처럼

정갈하고 소박하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글의 벼리는 솜씨로 미루어,

아직 그의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요리솜씨를 짐작하고도 남겠다.

호남의 한식 기행은 수직적인 변화를 가진다. 저 남도의 끝이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이라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맛은 유순해지고 슴슴한 재료의 맛을 강조한다. 담양의 밥상에서는 그 온후하고 웅숭깊은 자연을 보여준다. 갯것과 들과 산의 물산이 고루 섞인 밥상은 천천히 당신의 혀를 어루만진다. 그 넉넉한 밥상을 받아 든 고가의 사랑채 바깥으로 바람이 건들 불어 대나무 잎새가 흔들리는 광경이라도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102쪽)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이, 아슬아슬하여 묘한 쾌감을 불러온다.

 

부두에 매어둔 배들이 심상치 않은 밤바람에 쓸리며 우드득 삐걱,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105쪽)

이런 문장은 유순하고 슴슴하고 온후하고 웅숭깊다.

"양양 사람들은 김치를 산에 묻어. 김치를 꺼내려면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산에 가는 거야. 두어 해 이상 묵은 김치가 그 산에 있어. 산이 김치를 익혀. 여름을 여러번 넘겨도 김치는 짱짱해. 코가빨갛게 얼어서 꺼내온 김치를 썰어 먹는거야. 한 겨울에는 김치에 살얼음이 얼어서 엄마가 부엌칼을 대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 아버진 김치도 나오기 전에 그 김치 써는 소리에 벌써 소주를 한병 마셨을 테고."(108쪽)

이런 문단은 또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런 문단을 보고 있으면, 글 만큼 말도 맛깔나게 하리라 내가 보증할 수 있겠다.

귀신 같은 글맛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다.

기막힌 김치 맛을 아는귀신이 어쩌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듯,

난 꿈에서라도 양양 땅의 김치가 묻혔을 산들을 누벼보련다, ㅋ~.

 

날은 따스해서 바다에 군불이라도 지핀 양 가물가물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그야말로 술 욕심이 도도한 늦은 봄이었다.(127쪽)

그의 글이나 음식도 충분히 도도해도 좋을 것 같은데,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아슬아슬 하지만 경계 넘지 않는다.

 

말도 살찌는 계절이다.

나는 박쉐프 님처럼 맞춤할 재주는 없으니,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넘치는 것을 택할 것 같다.

넘치면 덜어내고 나누면 될테니까 말이다.

 

옛날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보고 싶어,

부산에 가고 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

이런 페이퍼를 썼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박 쉐프 님은,

그리하여, 부산에 조르지 않는 애인이나 묵은 친구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빌게 되는 것이다. 우울할 때면 기차를 타고 훌쩍 들르고 싶도록ㆍㆍㆍㆍㆍㆍ.(148쪽)

이러고 제대로 염장을 질러주신다.

박 쉐프 님이 염장을 질러주신 음식 중 제일 혹하는 건 이것이다.

앞서의 음식들은 정말 맛있다기보다 부산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는 기본적인 성지순례에 가깝다. 진짜 맛은 복국이나 돼지국밥 같은 국물 요리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이 좀 든, 그래서 부산의 맛에 산전수전이 밴 어른들은 - 특히 남자들은 - 열에 일고여덟은 복국을 거론한다. 술 좋아하고 거친 부산 사내들의 호쾌한 음식이 복국이 아닐까 싶다. 해장으로 한 그릇, 그리고 다시 소주에 한 그릇. 그러고 보면 부산은 해장국이 유독 발달했는데, 해운대 시래기 해장국이나 대구탕은 이미 서울내기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147쪽)

그렇다고 박쉐프님이의 글과 음식을 '맛깔스럽다'라고만 표현하긴 약간 아쉽다.

왜냐하면 나름대로의 소신과 철학이 엿보이는 이런 글들 때문이다.

그들은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오직 랍스터를 잡기 위해 수심 40미터의 심해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잠수병으로 장애를 얻는다. 그들이 랍스터 한 마리를 건져 올릴 때마다 받는 돈은 고작 3천원. 달의 뒤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궁금해하는 감상적인 이는 많아도 지구의 뒤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들 모른다. 제비집을 채취하기 위해 바닷가 벼랑을 기어오르는 중국 남부 해안가의 초라한 어부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하루 벌이가 랍스터 하나 값이 안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지구 뒤편에서는 늘 그런 식이니까.ㆍㆍㆍㆍㆍㆍ

내가 아는 한, 랍스터를 처리하는 칼잡이들은 그 회를 먹지 않을 것 같다. 때로 요리사들도 그럴 때가 있다. 재료가 생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달의 뒤편 대신 지구의 뒤편을 생각학도 하는 것이다.(181쪽)

그의 마을에서 팔리는 소박한 초콜릿은 모두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카카오와 설탕, 부재료를 쓰고 있다. 비록 전체 시장에서 매우 미미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런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 소비자들을 각성시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래, 낙관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긍정의 힘으로 믿는 것이다.(195쪽)

내가 삶은 실재라는 둥, 그만큼 가열찬 거라는 둥,

해도 맨날 '메리 베리 해피'해가며 긍정 마인드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내게 이 문장을 돌출시켜 들이댈 것이 틀림없다.

그래, 낙관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긍정의 힘으로 믿는 것이다.

 

 

책의 편집, 교정 상태가 좋다.

그래서 흠 잡자면~,

 

290쪽 밑에서 다섯째 줄-

달콤한 향 내신 비린내가(X),

달콤한 향 대신 비린내가(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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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15:12   좋아요 1 | URL
훗 이렇게나 꼼꼼하게, 박셰프님 명문장 진열이라니,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어찌 이 책을 안 사고 배기겠어요..ㅎㅎ
물론 저는 이미 읽고 있습니다만!
오랜만에 댓글 남겨요. 양철나무꾼님...^^

sslmo 2012-09-11 11:18   좋아요 1 | URL
ㅎ,ㅎ...넘 꼼꼼해서 좀 지루하죠?

안 사도 배길 수는 있죠, 안 읽고는 배기기 힘들겠지만...ㅋ~.
선물 받는다던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다던가,
함 말이죠, ㅋ~.

섬님이 읽으시니까 어떻던가요?
제가 리뷰를 안 읽고 못 배기게 쓴게 아니라,
우리의 박쉐프 님이 안 읽을 수 없도록 맛깔스럽게 쓴거죠?^^

감은빛 2012-09-11 11:42   좋아요 1 | URL
무봤나? 지기제(죽여주게 맛있지)?

아, 갑자기 고향말을 들으니,
어린 시절 뛰놀던 산과 계곡이 떠오르네요.
어릴 때,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 구워 먹었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맛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딱 그 맛이 떠오르네요.

sslmo 2012-09-11 11:54   좋아요 1 | URL
언제 감은빛님 본토 발음으로 함 들려주세요, ㅋ~.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