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영민'은 사람들이 흔히'동무론'이라고 하는, '동무와 연인'이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었다.

그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것을 한권으로 묶어 책으로 낸 것이라는데,

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품과 '수식어'라 불리우는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을 남발하지 않아서 글이 소박하면서도 투박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봄날은 간다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요번에 책을 내셨다는 걸 좀 지나서 알게 되었고,

그랬던 터라 책의 내용까지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하고 일단 책을 구하고 봤다,'봄날은 간다'

어째 제목부터가 그동안 접해왔던 철학서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딱딱한 것보단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게 낫지, 뭐~...

이런 말로 내 자신을 위로하기엔 제목부터가 너무 신변잡기적이었다.

앞의 몇 장을 들추다가 문체가 너무 낯설어, 내가 아는 그 '김영민'이 맞나 책 겉장 앞날개의 프로필을 한참 들여다 봤다.

철학자가 '봄날' 운운하며 날씨나 자연을 들먹이는 것부터가 생경하기만 했는데,

내용이 신변잡기 위주인 걸로도 부족해서 길이까지 짧은 것들이 많아...

그런 길이의 글로는 철학자 아니라, 철학자 할아버지라도 생각을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펼쳐나가기 힘들것 같았다.

과연 글들이 날 것은 아닌지, 풋내가 나는건 아닌지, 뜸이나 들었는지, 상상력이 이리저리 널뛰기를 하는건 아닌지, 지나친 생략으로 심한 비약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익기를 놔두었다가 물러버린건 아닌지, 나의 걱정이 기우가 되길 바랄 뿐이었지만 솔직히 그마저도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수필집을 읽는 기분이었다.

어느 부분까지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설렁설렁 넘기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고,

두번, 세번 거푸 읽고는 '서문'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내 곁의, 치자꽃에 물드는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을 값싼 낭만주의로 벗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허영이다. 그러므로 내 물듦을 가장 낮게 예찬하는 것은 (R.지라르의 말이 아니라도) 겸허한 개종이다. 오직 그 개종에서야 치자꽃의 진정한 향기는 다시 피어오른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그 말은 다시 허영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오직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만이 유일한 개종이다.

 

내 선물은, 마치 내 편지처럼, 네게 너무 쉽게 전달되거나 영영 전달되지 않는다. 그 사이 선물은 온통 오해이거나 허영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전체가 하나의 선물로서 (어느 순간, 휘영청!) 떠오를 때에만, 그 선물은 자신을 잊은 채 고스란히 네게 도착한다.                                                          ('치자꽃'  전문)

내가 두번, 세번 거푸 읽고 자세까지 고쳐 앉아 가며 다시 읽은 글은 '치자꽃'이다.

이 말은 곧 행동이나 실천이 동반되지 않은 말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고, 그걸 여기서 '허영'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그럭저럭 너 없이 살아간다는 거다.

결국 빠다 발린 말(= 감언이설)이었고, 위 문단의 표현을 따르자면 '허영' 또는 '오해'이다.

행동이나 실천이 하나도 약속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저렇게 위험한 일인데,

그래도 한번쯤 감언이설을 꿈꾸는 걸 보니, 내 운명은 치자꽃에 물드는 것이든지 값싼 낭만주의 쯤은 두눈 질끈 감고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배포인가 보다~--;

 

3. 산책은 술보다는 차(茶)와 같아, 혼자 걷는 게 좋다. 물론 혼자 걸으면서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생각은 대개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종종 자익적(自溺的)이다. '공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오히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책의 요체는 오히려 생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거울의 바깥으로 몸을 끄-을-며 외출한다.

동무들과 나누는 산책의 기쁨도 결코 적지 않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에다가, 다정하고 서늘한 대화까지 섞인다면 인생의 천국을 따로 구할 노릇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요체는 중용인데, 말이 걸음을 죽여도 곤란하고, 걸음이 말을 놓쳐도 안 된다. 다변(多辯)인 자는 말수를 줄여야 하고, 눌변인 자는 걸음에 의지해서 입을 벌릴 수 있다.

  

3-1. 그러면 동무가 아니라, 연인과 산책할 수 있는가? 내 답변은 '노'(努)! 즉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연인과 더불어 산책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연정은 욕심이지만 산책은 의욕이기 때문이다. 양보, 눈치 보기, 그리고 들뜸은 모두 산책에는 치명적이고, 연정이란 무릇 의도의 옹두리에 얹혀 근근이 성립하는 것이니, 산책이라는 그 허소의 길과 어긋난다.                                     ('산책, 극히 실용적인 지침들' 중 부분)

그가 '봄날은 간다'며 우리에게 무덤덤하게 들려주고 있는 얘기는 언뜻 보기에는 붓 가는대로 쓰여진 신변잡기 위주의 글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런 글에서도 자연의 이치는 배어나오고 있다.

방심하고 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극도로 절제된 문장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인생과 인간이라 불리우는 것들의 존재의 의의를, 다시말해 자연의 이치를, 소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흔히 철학자들이라고 하면,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 들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여삐여겨서 쉬운 한글을 만들었다지만,

철학자는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을 일부러 어려운 철학용어를 써서 구사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원어로 된 철학 사상이나 사람이름을 따라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난,

철학용어를 쉬운 우리 말로 풀어쓰는 건 엄두 내기 힘들더라도,

예를 일상 생활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적당한 쉬운 말이 없다면 자연에서 일례를 찾아 연관시켜서 생활에서 터득하게 하려 노력한다.

일상에서 깨닫게 되고, 깨달은 연후에야 비워내게 되는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일상, 자연과 철학을 연결하는 그 비워냄의 매개가 그에게는 걷기로 대표되는 '소풍'또는 '산책'이다.

 

ㆍㆍㆍㆍㆍㆍ

인문은 한 치 타인을 포섭하지 못한 채 제 그림자 주위를 실없이 돈다. 볼테르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식은 심오한 방식으로 도덕을 불러오지 못하며, 선의와 계몽은 심오한 방식으로 동무를 불러오지 못한다.

 

'동무'는 무엇보다도 그 '폐허'를 피하는 길이었지만, 적조했던 동무 셋을 만나 맥주를 마시는 오늘, 다시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의 속도를 무력하게 바라볼 뿐.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 중 부분)

 

계속 신변잡기 위주의 일상, 또는 자연만을 얘기하나 보다 했는데...어느 순간에 홀연히 본심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그는 '인문'이 타인을 포섭하고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듯 하고,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어 일상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오려 한다.

그 일련의 노력 과정이 '산책'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무는 그 '비워냄'의 노력이 '산책'이 될 수 있는 연유이다.

 

그녀가 내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였다. 차가운 달을 보면서 먼 길을 홀로 걸었다. 길은 무서운 곳이다. 길 위에 놓인 몸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길의 기하학 위로 좌표 속의 사랑이 증명될수록 그녀는 점점 멀어진다. 식(蝕)이다! 증명하고 죽을 텐가? 아니면 길이 되시려는가?   (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1)' 전문)

연정은 욕심이기 때문에, 연인과의 산책은 그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는데...

노력은 시간이 개입된 일이고, 연정이 그렇듯이 사랑도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 인지상정인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을 증명하라는 그녀 너머로 차가운 달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생각나고,

'시간이 좀 먹느냐?' 던 말도 생각난다.

시간을 좀 먹듯, 차고 이우는 달을 바라보며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4)' 에서 시간의 벌레(蝕)와 함께 과거 속에 기억을 양도하거나, 부지런히 욕망하다가 벌레처럼 죽는 길...둘 중 하나라고 하였고 난 부지런히 욕망하는 '버러지(蝕) 과'인가 보다~--;

왜? 나의 사랑은 머리나 마음이 아닌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걸 보면 말이다.

적어도 나의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인가 보다.

 

암튼 나는 이 책의 저자 '김영민'의 가는 봄날을 스토킹 하였나 보다.

그는 오전 11시쯤 일어나 저녁 해질 무렵에 산책을 나갔다가 하루 일식을 한다.

일식의 반려로 차를 한다.

독신이다.

(여기서 독신은 제도로서의 혼인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일종의 장소이므로 장소를 대하는 방식에 의해 독신의 질이 결정된다고 한다.)

 

나는 나의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 하진 않는다.

다만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고 비워내지 못한건,

그리하여 늘 욕심내고 더 많이 사랑하려 한건 후회하여야 한단다.

왜 증명하고 죽어야 하는가?

사랑하다가 죽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다.

 

오랫만에 읽는동안 우아하게 말하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책이고,

솔직히 말하면 변덕이 죽끓듯하며 읽었던 책이다.

 

 

언젠가 썼던 '동무와 연인'의 리뷰도 있어서 옮겨 본다.

 

 

 

 

 

 

 

 

 동무와 연인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류종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도록 그노력을 함께 하는 사람을 '동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의 제목 <동무와 연인>을 놓고 한참 생각을 했다.

 

'서문'의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히려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진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도움의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구하고 연인을 사귀며 가족을 얻어 다시 세속에 보은한다.'

를 보고,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나는...

뭘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히 얘기해 놓았나 싶었으나,

<한겨레21>에 한동안 실렸던 글들이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들을 요약해 보면,

  • 동지:이성적 일체감(말)
  • 친구:정서적 일체감(몸)
  • 동무:이성적 일체감 + 정서적일체감(말+몸)

동지나 친구라면 몰라도, 동무가 되기위해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갖곤 충족시킬 수가 없는데...

몸으로 맺어진다는 게, (어릴 적 부터 친구가 아니구선)...

동성 간이라면 좀 힘들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동성애자가 되니까.

→그래서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라고 서문에서 얘기한다.

그리고, 이성의 경우는 연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데...

영원을 맹세하지만, 영원한 경우는 거의 없는고로...결혼 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륜'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이 되는 것 같다.

 

결국,저자는 문장화하지 못하지만,최선은 동무,차선은 연인이라는 얘기다.

 

이러면서 여러가지 관계설정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이성관계'에서 여자들은 육체로만 승부하려 했기에 '연인'밖에 될 수 없었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경우

'보부아르가 두려워 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여자가 아니라,'지적반려의 자리'였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몸으로 맺어진 관계'즉 성욕 이후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지적반려'에까지 이르렀으므로 동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책에서는,

<볼테르와 에밀리 샤틀레>의 경우도 동무의 범주에 집어넣었는데...그들의 말년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나로선 찬성하기 힘든 부분이다.

 

동성의 관계에서도,

<부처님과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나,

<유영모와 김흥호>의 관계처럼,

동성애가 아니고도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사제 관계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극복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기에,

'동무'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처럼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무릇 아버지는 죽여야 하고,스승은 능가해야 제맛이다-

이걸 동무론 제1義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동무와 연인의 구별과 나열에 끝나지 않고 이상향을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타성에 젖어,

'연인의 살이 고기肉로 느껴질 때에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

라고 얘기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 통하게 되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고 하는 배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기다려 달라고 목놓아 부르짓는 김광석을 한번 떠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책을 읽은 느낌은...이정도로 정리하여야 하겠다.

'동무'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 불가능함을 뛰어넘어 '동무'가 된 경우엔 박수를 쳐주어야 하지만,

그외 경우에는 그냥 적당히 몸과 마음을 보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자라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이 책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중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구절이 인용되고 있어 옮겨본다.

 

언어는 살갗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그 사람(연인)을 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김광석 - 다시 부르기 1,2 [재발매] [2CD]
 김광석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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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16 03:13   좋아요 0 | URL
사람 몸을 빌어 태어났을 때에는 즐겁게 살고,
몸이 기운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면 넋으로 예쁘게 사는 길도 있겠지요..

하늘바람 2012-06-17 10:49   좋아요 0 | URL
봄날은 간다 영화가 생각나네요.
그 영화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봐도 마음에 여러가지가 남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왔네요.
그러게요 이제 우리 봄은 아니죠
하지만 언제나 봄처럼 싱그럽게 살아요 님.

2012-06-20 23:46   좋아요 0 | URL
흠. 그러고보면 양철님은 어디서 이렇게 양질의 책들을 잘도 찾아내어 읽으시는지! 김영민님의 이 책, 예기치 않게 참 좋군요. 철학자의 수필인데, 여느 시보다 더 시예요.!
+ 이 페이퍼의 양철님 글도 좋아요. 기분이 상큼해졌습니다.
 

가계부는 쓴 적 없다.

직업과 관련된 업무 일지는 간간히, 케이스 스터디 노트는 맘 내킬때...

하지만, 낙서 식의 그림일기는 자주, 거의 매일 쓰다시피 한다.

 

배우 유준상의 유쾌하고 엉뚱한 일상 모험.

유쾌하고 엉뚱하면서도 일상을 벗어나지 않은 모험이라는 구절,

이게 유준상이 쓴 '행복의 발명'이란 책을 보게 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유준상은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었을까?

 

 

 

 

 

 

 

 

 행복의 발명
 유준상 지음 / 열림원 /

 2012년 5월

 

 

'배우는 일지를 써야 돼.'

유준상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안민수 동국대 석좌 교수의 이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배우 일지'를 써왔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복의 발명'이라니...ㅎ,ㅎ~.

 

발명-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 냄

발견-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

 

한때, 발명과 발견의 단어 차이를 놓고 고민을 했었으니, 이들 단어를 놓고 착각했을리는 없고...

내가 행복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되짚어 보았다.

 

행복:1.복된 좋은 운수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우리는 해가 바뀌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네게 되는데, 이때 '복 많이 지으라'는 말이 생략 됐다.

새해 복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복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것과 마찬가지로 잉과응보의 개념이다.

 

다시말해, 유준상은 행복을 길 가다가 어느날 그냥 우연히 얻어지는 소극적 개념의 것, 발견으로 보지않고,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능동적이고 적극적 개념의 것으로 보았다.

거창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행복은 노력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면,

새벽은 새벽에 눈 뜨는 자만이 볼 수 있듯이, 행복은 발견이 아닌 발명하는 것이다.

 

<이 책의 판매에 따른 인세 수입은 지은이의 뜻에 따라 전액 소외된 어린이를 돕는 일에 기부됩니다>

 

솔직히 책에서 위의 저런 구절을 보지 않았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내는 세상이라며 툴툴거리고 읽으려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준상의 '배우 일지'가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아마추어적인 신변잡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생각이란 것이 하나로 고착되지 않고 이리저리로 넘나드는 것이, 유쾌하고 엉뚱하고 대책없어보여 좀 멋있어 보였지만...

그걸 배우의 그것이라고 놓고 봤을땐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하다 못해 소박하다 싶었고,

그의 글과 그림은 심지어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책을 낸게, 어떤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란게 보라색 문장으로 밝혀지는 순간...

(뭐,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낼 수 있다...이런 교훈을 얻자는게 아니라,)

'일기 또는 일지'라는 건 어느 누구나 쓸 수 있는거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사는 배우라고 하여 꼭 '배우 일지'라는 삶의 기록조차 휘황찬란하지는 않다는 거다.

다만, '일기나 일지'를 통하여 그날 그날 삶을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유준상은 '발명'이라고 본 듯 하다~^^)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책의 키워드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사람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일기나 일지를 쓰는 삶'으로 보고싶은거다.

그가 그린 뼈다귀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은 너무 단순하여 누구든 따라 그릴 수 있겠지만,

사물을 몇 개의 선이나 단어로 요약해 내는걸 보고 있노라면, 신선이나 禪의 대가를 보는 듯 하다.

산다는 건 가끔 너무 어렵고 철학적이다가도 또 어떨 땐 너무 단순하고 쉽게 풀린다.

아마 그 가운데에서 저울질하다가 나 스스로 그 무게를 잘라내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그 삶 속에서 나는 자연을 보게 되었고,

삶은 자연 속에서 아주 커다란 진리를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14쪽)

너무나 놀라웠던건 '초긍정자아'라고 생각했던 그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다.

생일이 얼마 전에 지났다.

생일은 꼭 우울하거나 아프거나 쓸쓸하거나 아쉽다.(28쪽)

 

생일이 얼마전에 지났다.

생일은 꼭 바빠 정신 없어서 미역국도 못먹고 지나간다.

처음 일기나 일지를 쓰기 힘든 사람들은 이런 놀이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밑줄 친 부분에 적당한 단어들을 넣는 걸 연습하다 보면, 자연 일기나 일지 쓰기나 수월해 지지 않을까?

 

이렇게 바꿔 보는 또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사람이다.(46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있어야 할게 제 자리에 있는 거다.

 

불꽃이 디즈니(Disney) 하늘 위를 새하얗게 수놓고 있었다. 나는열심히 촬영을 했고 아내는 분수대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모양의 불꽃이 퍼졌다 사라지고 하늘에는 온통 불꽃의 수가 놓였고 쿵쿵쾅 소리는 모든 이의 숨소리를 멈추게 했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 아내가 내게 다정스레 한마디를 했다.

 

"바보, 계속 찍기만 하면 뭐해. 이런 건 같이 봐야지."

순간 얼굴이 빨개지려 했지만 꾹 참고 모른 척했다.

다음엔 꼭 같이 봐야지.(59쪽)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이다.

가끔 너무 아름답거나 장엄한 광경을 보면, 누군가와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카메라나 동영상에 담느라고 정작 그 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어쩜 가장 아름답거나 장엄한 광경은 카메라나 동영상에는 담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답거나 장엄하거나 멋진 광경이 따로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과 같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마법의 금가루를 뿌린 듯 가장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멋지기도 한 광경이 되기도 하는 걸 여러번 보아 왔기 때문이다.

 

허름하고 소박한 일상이라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을 허락해 주신 그 분,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모두에게 감사하게 된다.

 

그 연장선 상에서, 일상의 매 순간순간에 감사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유준상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안민수 동국대 석좌교수님이, 당신의 병환이 일조하였다.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이 누구시지" 물으시고 "OO스님 맞지! 그래, 대단하신 거야! 아픈 몸으로 앉아만 있어도 몸이 부서질 듯할 텐데 그걸 견디시니 말이야. 그래, 수련을 해야 해. 내 생명을 더 주셨으니 이제 병원에서 나가면 수련을 해야지. 인생은 극복하는 수련의 과정이야. 야, 괜찮다, 적어둬야지. 극복하는 수련의 과정!" 다시 눈을 감으신다. 똑바로 앉으신 모습 속에서, 우리는 스승님이자 어른이신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의 퍼짐을 막느라 입술을 꼭 깨물었다.

 

PS."숨을 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숨을 쉴 수 잇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모두들 모르고 있어. 우린 바보들이야."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게 행복해. 모두 다 기쁜 일만 있으면 재미없잖아. 이렇게 아프기도 하고 그걸 또 이겨내기도 하고. 아프지만 이렇게 또 가족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야."(64쪽)

 

끝없이 달려가다 멈춰본 사람은

멈춘 만큼의 깊이를,상처를,

껴안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꿈의 동반'중에서(119쪽)

'꿈의 동반'이 뭔가 했는데, 유준상이 시나리오도 쓰고 아들을 위한 동화도 쓰고 했는데...그 중 하나의 제목인가 보다.

이 구절은 내가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표면적인 것만큼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도 않았고, 멋진 얘기도 아닌 것 같았다.

 

끝없이 달려가는 것은 달려가는 것이고,

달려가다가 멈추는 순간, 더 이상 끝없이 달리는 게 아닌게 된다.

멈추는 순간, 땅과 수직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될테고,

그걸 깊이와 상처라고 표현했나 보다.

깊이와 상처를 껴안는게 감수해야 하는 '수고로움'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이 말 속에는 멈추어선 이후의

땅이 보여주는 기다림과 인내라는 치유의 힘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은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누구의 말마따나,

상처라는 건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때론 살아있다는 명징한 증거이니까 말이다.

 

다시 곱씹어 읽어보니,

어쩜 이말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류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장애물도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하던 사람들은 내달릴것이다.

달리다가 넘어져 본 사람만이 비로소 깨져 피가 날수도 있고,

상처 입을 수도 있고,

흔적도 없이 아물기도 하지만,

때론 옹이를 남기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또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는 말이지 싶기도 하다.

 

사람과 나무의 닮은 점은,

어디든 땅과 수직인 곳에 잠시라도 멈추게 되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 든다는 것이고,

우리는 사람들의 그것을 '깊이'와 '상처'라고도 부르지만...대부분의 경우'삶'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내 나이가 늙어가는 거지

영화가 늙어가는 건 아니야.

-강우석 감독님

 

 

내가 나이를 늘려가는 거지

그 감성마저 늙는건 아니다.

배우의 삶이라고 하기엔 다소 소박한 일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놓고 책의 값어치를 매겼을땐 아까운 생각마저 드는 이 책이 아깝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의 발명'이라는 책의 제목을 이해하고,

보라색으로 썼던 인세수입 전액 기부 부분,

안민수 교수님에 대한 간접 가르침,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나이를 늘려가는 거'라고 담담히 말하는 저 부분,

내 한번 뿐인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나자신'이니까,

잘사는 것(be rich)이기 전에 잘 살아야겠다(be good) 마음먹게 해주는 저 구절 때문이 아닐까 싶다.

happily ever after~.

 

 

 

 

 

데이브레이크 - 3집 SPACEenSUM
데이브레이크 (Daybreak) 노래 /

해피로봇레코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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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브레이크(Daybreak) - sunny sunny

 

sunny sunny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어
바보처럼 웃음만 나고
사랑 이런 기분일까
햇님도 날 보고 웃네

baby 한번만 만나줄래 두 두 두루두
baby 대책없이 너의 집앞에서 매일 기다려
baby 운명이 장난치나 두 두 두루두
baby 보고또보고 또 봐도 보고싶은걸

한발 두발 세발 니가 가까워질 때면
두근 두근 두근 촌스럽게 왜이래 no no no

sunny sunny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어
바보처럼 웃음만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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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6-13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1등이에요(으쓱으쓱) 이런 거라도 1등 해야죠. (인생에 1등이 없어요 없어 ㅜㅜ)
배우가 좋을 때는 자기가 재밌게 본 작품 얘기해줄 때인데요, 그것도 속이 꽉 차야 나오는 것 같아요.
밤도 밤에 깨어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데(ㅋㅋㅋ) 제목을 보면서 뜨끔한 게 새벽을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근데 왜 댓글이 없지?!

저도 눈팅 좋아하는데 안쓸 수가 없었어요ㅎㅎㅎ

숲노래 2012-06-1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면,
풀도 먹어 본 놈이 먹겠지요... ㅋㅋㅋ

참말 그런 듯해요.

글샘 2012-06-1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내는 일도, 행복을 발명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네요. ^^

내가 나이를 늘려가는... 그런 거도 좋겠지만... ㅋ
바보처럼 웃음만 나고... 이런 거도 좋지 않겠나요?

하늘바람 2012-06-1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쟁이인 저는 저런 책을 보면 예쁜 노트나 수첩을 먼저 준비하고 하루 이틀 만지작거리며 쓸거리 고민하다 막상 일주일 쓰면 잘 쓴 거라는~
그걸 알면서도 꼭 따라하고 싶어지네요
아들을 위한 동화도 쓴다니 멋지네요
하긴 노력하고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다 멋져요
 

옛날에 전도연과 박신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약속'을 보면서 이런 대사들에 감동 받았었다.

男 - 박신양의 대사 ;

 "당신께서 저한테... '니 죄가 무엇이냐' 고 물으셨을때...

  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女 - 전도연의 대사 ;

"다른여자 만나는 것만이 배신이 아니야. 니 맘속에서 날 재껴놓는것도 나한텐 배신이야."

 

그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었고...

생각이 이리저리로 튀는 게 꼭 짬뽕공 같은 나답게, '남자랑 여자랑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도 참 다르구나'하는 생각도 했었다.

남자는 직접적인 만남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걸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하는 반면,

여자(라고 해서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는 직접적인 만남(뿐)이 아니라,

맘속이라고 표현되는 정신적인 것- 이를테면 우선 순위에서 재껴놓음도 사랑에 포함시킨다.

 

나도 여자인지라, 남편이랑 이런 문제로 가끔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곤 하는데...

남편은 내 몸이 자기 시야 사정권 안에 있으면 마음이 어느 하늘 밑의 누군가를 절절하고 진하게 찾아 다녀도 개의치 않는 반면에,

난 남편이 아침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내 남편이 아니라는 마인드로 살아서,

몸은 방치하는 대신(방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관리하기엔 내가 너무 게으르기 때문에) 마음은 한번씩 확인사살하고 단속 들어가 주신다.

유럽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고딩 때의 첫사랑과의 안부메일을 갖고 난리블루스를 췄던 기억이 있다.

 

 

 

 

 

 

 

 

 

 

 

 애도예찬
 왕은철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5월

 

난 그동안의 예찬 시리즈를 김화영님이 번역하셔서 접하게 되었고,

이 책도 그 연장선 상에서 구색맞추기로 갖추게 되었다.

손에 넣고 보니 이번엔 번역본이 아니라 왕은철님이 직접 쓰셨는데,

이 분을 난 '천개의 찬란한 태양','연을 쫒는 아이','위대한 유산'등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번역하신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번역 말고 당신의 필력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나를 이 책 '애도 예찬'으로 이끌었는데,

작가로서의 필력 또한 역자로서의 그것 못지 않아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을 분더러 깊이 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애도(哀悼)'라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고, 그렇다면 언젠가 때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

저자 왕은철님의 경우,

어머니가 조금씩 편찮으시게 되면서,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애도하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애도의 관점에서 볼때 문학은 풍요로운 창고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애도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문학작품에 형상화된 슬픔과 애도의 방식을 살피는 건 어쩜 당연한 수순이지 싶다.

(물론 이런 분들 덕에, 우리 같은 凡人들은 숟가락 하나만 갖고 달려 들면 되는 거겠지만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성 같은 속성을 지녔지만, 애도 또한 그렇다.

떠나간 사람을 잊고 극복함으로써 새 삶을 사는 것이니까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떠나고 없는 사람을 마음이나 기억 속에서까지 말끔히 비워내는 것이니 어찌보면 '비정한' 것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저자는 은근 애도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낭만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데리다의  '애도'를 힘주어 인용하는가 하면,

데리다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때, 그에 대한 애도도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애도는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고, 그래서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는 것이며 애도는 실패해야, 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거기 나오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으로 장식한다.

히스클리프를 자기 몸처럼 생각하는 캐서린("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늘 내 마음속에 있어. 내 자신이 늘 나를 기쁘게 하지만은 않듯 그가 꼭 기쁨이 되지는 않아도, 그는 나 자신으로서 존재해")에게는 그와 같이 놀지 말라고 하고,ㆍㆍㆍㆍㆍㆍ'정상적인' 연인들이라면 복수심에서 비롯된 죽음으로 서로와 작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용서하는 자못 감상적인 장면이 연출되겠지만, 히스클리프와 개서린이 헤어지는 장면을 보면 마치 서로를 물어뜯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임박한 죽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서로가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선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물어뜯어서라도 죽음에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데리다와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히스클리프', 모두 애도가 실패해야 성공한다고 하거나, 죽어가는 사람은 애도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애도하기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애도를 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겪은 애도 중 가장 최근의 것은, 시어머니의 그것이었는데 1년이 채 못된 일이고,

내가 애도에 실패할 뻔 하여 좀 고생을 했던 건 친할머니였는데,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 되었다.

 

내가 좀 감성적이란 걸 아는 사람들은...

이런 일련의 애도를 겪으면서 내가 애도에 실패할까봐 노심초사했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음, 내가 어느 정도로 감성적이냐 하면...

 어떤 사람은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 다닌다고 했었고,-->그럼 '양철나무꾼'이 아니라 '허수아비'로 닉을 바꿔야 하나?--;

 너무 울어, 일이 진척 안돼...울때마다 벌금을 내기로 했었다.

 우는 걸 자제해 벌금을 줄여야 하는 데,

 더 울어대서 벌금 내려면 집이라도 팔아야 할 지경이어서 '집.파.녀'란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

 

근데, 의외로 난 쿨하게 애도에 성공하였다.

이쯤되면 혹자는 사랑의 농도를 의심할 수 있을텐데, 

시어머니고, 할머니고, 내겐 최상급의 수식어로 대치될 수 있는 분들이었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슬픔이 끝없이 지속될 것 같았고,

영원히 못잊고 한결같이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가 겪어보니, 애도에 성공하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성공을 할 수는 있었다.

 

끝없이 지속될 것 같았던 슬픔도,

영원하고 한결같을 것 같았던 그리움도,

어느샌가 희미해지고 잊혀지게 마련이었다.

기억력은 최고라고 자부하던 내게도 그렇게 되더라.

 

바꾸어 말하면,

끝없이 지속되는 슬픔을 간직한다는 거나,

한결같은 그리움을 간직한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일상적인 삶을 제대로 산다는 애기는 아니다.

데리다의 경우도 그렇고, 히스클리프의 경우도 그렇고 책속에서 걸어나오면 '미치광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애도 예찬>은 '살아있는 사람' 즉,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어찌보면 비정한 것 같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동안이나 애도하면 되느냐 따위를 정리해 놓기 위해...

살아있는,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의 안위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죽은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형식이 아닌 '마음의 지극함'을 다한 후에는 쿨하게 훌훌 떨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단정지어버리기에는 이 페이퍼의 처음에서 얘기했듯이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이가 있긴 하다.

남자와 여자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입장 차이라고 하는게 낫겠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주제를 '이별의 정한'이 아니라, '사별의 한'이라고 한 독특한 해석을 어디선가 봤었다.

그는 이미 이런 애도의 경지를 터득하였으니 이 책이 무용지물이겠다,ㅋ~.

그렇지 않아도 헤어지는 사이에서 소금이나 물을 끼얹는 것도 아니고 꽃을 뿌려준다는 거, 그거 참 이해가 안 됐었다.

애이불비(哀而不悲)가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는다'로 해석되어도 그렇고, '슬프기는 하나 비참하지는 아니함'으로 해석되어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애도와 관련하여 제일 생각에 남는 건 '유령과의 사랑(원제 truly,madly, deeply)'이란 영화이다.

내가 좋아하는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만든 작품인데,

애도와 관련하여(아니, 참된 사랑과 이별과 관련하여)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유령과의 사랑(원제 truly,madly, deeply)>영화의 예고편(한글 자막 첨부)

 

 

'Truly, madly, deeply'

 

'진짜, 미치게,깊이' - 번역하면 이쯤 될까?

하지만 영화의우리말 제목은, '유령과의 사랑'이라는 줄거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면서도 좀 촌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는지'의 수식어를 대보라고 한다면,

저 'Truly, madly, deeply'에서 크게 비껴 갈 것도 없을 뿐더러 저 'Truly,madly, deeply'이면 부러울 것도 없지 않을까?

딱 하나 남아있는 표현이 있기는 하다, '죽도록, 죽을 만큼'

하지만 사랑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살아있어야만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내가 쓰는 안 좋은 말버릇이 하나 있는데...동사나 형용사 뒤에 '죽겠어'를 붙여 극단의 상황, 최상급을 만들어 버리는 거다.

이를테면 '보고싶어 죽겠어.' 또는 '졸리워 죽겠어.'

죽은 사람을 위한 사랑을 우리는 '애도'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니,

결국 내가 만들어 쓰는 최상급은 안 좋은 극단의 최상급이니 사용하지 말아야 되겠다.

 

 

 

 

 

 

 

 

 

wishing you to be so near to me
finding only my loneliness
waiting for the sun to shine again
finding that it's gone to far away
to die
to sleep
may be to dream
to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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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11 08:04   좋아요 0 | URL
애절한 영화대사로 시작하셔서 저도 박신양 목소리가 절절히 환청으로 다가오네요
유령과의 사랑이란 영화는 못 보았는데~
요즘은 사랑 타령이 허무한 것만 같아서리
그냥 신사의 품격이란 드라마의 김하늘로 빙의되어 장동건 짝사랑을 받아보며(상상에서만)
사네요.
 

               늙은 산벚나무

                                    - 송 찬 호 -      

앞으로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 기라

동굴에서 발톱이나 깎으며 뒹굴다가

여생을 마치기로 했는 기라

 

그런데 또 몸이 근질거리는 기라

등이며 어깨며 발긋발긋해 지는 기라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나는 기라

 

그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 기라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 기라

중동이 썩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곰 발바닥처럼 뭉툭하게 남아 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우리 앞에 슬며시 내미는 기라

 

친구가 저 시를 보내줄 무렵의 난, 이러저러한 일들로 꿀꿀함의 연속이었다.

외부는 차치하고라도 알라딘 이 동네에서도 그러하였는데,

명쾌하게 금을 그을 수는 없지만,

이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에 대하여...

난 피해 의식과 가해 의식- 일종의 '양가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날 눈치챘는지, 고맙게도 친구가 재밌는 시라면서 저 시를 보내주었는데,

문제는 저 시가 좀 난해해서였는지, 내 마음이 폭폭해 시를 이해할 마음의 여력이 없었는지,

도무지 어느 대목에서 재밌어 해줘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서 난감했었다.

 

속깊은 친구는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저 시를 멋들어지게 해석해 줬는데...

 

 

화자가 산을 가는데 말이야.

틀어지고 휘어진 산벚나무 고목이 늘어져 있었겠지,

특이하게 산벚나무 둥치에서 툭 튀어나온 부분이 꼭 곰 발바닥처럼 뭉툭하게 생긴 거야.

그래서 그 고목의 둥치에서도 톡톡 피어나오는 산벚나무 꽃을 바라보면서,

눈부신 상상을 하는 거지.

 

살다 보면, 그런 일을 겪을 때가 있는 법인 모양이야.

이제 다시 사랑따윈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나이에도 말이지.

그게 늙은 산벚나무와 늙은 곰의 그것이지만, 얼마나 풋풋하게 꽃피우는 장면이 아름답냐구~ ㅋ

그들의 사랑은 우정이라고 말해도 좋고, 소통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잖아.

 

이 시를 읽는데, 이런 생각이 났어.

벚나무는 가로로 숨구멍이 나 있어서

똑 살이 튼 것 같은 무늬가 있거든.

그리고 나무 껍질이 짙은 고동이어서 검정에 가깝잖아. ^^

그게 늙었으니 얼마나 굵고, 얼마나 숨구멍이 많이 터져 있겠냐구.

 

그 나무에 등허리를 문지르며 비비고 놀던 늙은 곰과 벚나무의 우정.

남들은 바라보지 못할 그 우정이 재미있더라고... ^^

 

그리하여 '송찬호'의 '늙은 산벚나무'는 내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한편의 시가 되었다.

 

 

 

 

 

 

 

 

 

 

 

 북항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그런 심사였을때 또 다른 시집 '안도현'의 <북항>을 펼쳐 들었다.

그랬다.

안도현은 잘 알려진 시인이지만, '황현산'이 쓴 발문 격인 '해설'의 한 구절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겐 너무 평범하다 못해 밍밍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안도현은 문단 안팎으로 가장 잘 알려진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적잖은 성공을 거둬온 그의 시가 진지하고 적절한 비평의 대상이 된 적은 드물다. 시인의 명성이 평가를 대신하고 시의 호소력이 설명을 대신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 자족하는 한 세계가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그 밑바닥을 뒤집어 제 말을 덧붙이려는 것처럼 보이는 비평의 인위적 체계를 암암리에 거부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고, 비평이 먼저 거기에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물러섰을 수도 있다. 결국은 같은 말이다.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것이 모범생의 그것을 보는 듯 했지만,

인생의 밑바닥을 쳐본 자만이 얘기할 수 있는 어떤 치열함, 삶의 호소력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말해, 그가 구사하는 '은유'라는 것이 내게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졌던 지라,

황현산이 쓴 시집의 발문 격인 '해설'을 읽다가...나도 모르게 '꺼이 꺼이~' 울고 말았었다.

어떻게보면 '안도현'에게 무서우리 만치 매정했지만, 진짜 매정한 사람은 무관심한 사람이 아닐까?

글의 마디 마디, 구비 구비 마다에서 숨은 애정이 느껴져 그게 내 일인듯 느껴져 고맙고 눈물 났다.

 

같은 의미로, 알라딘 이 동네에서 진짜 매정했던 사람은,

나처럼 입 다물고 함구했던, 함구했었어야만 했던 비겁한 사람인데...

그 비겁함이 때론 그들에게 무관심으로 보이기도 했을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다가 떠나갔거나 떠나갈' 누군가와 의견이 같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의 알라딘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이, 삶에 대한 정열이 눈물나게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 '황현산'이 발문을 쓴 '안도현'의 시집 '북항'은 당근 설렁설렁 넘길 수밖에 없는 기라.

설렁설렁 넘기는데, '송찬호 형네 풀밭에서'란 시가 딱, 걸렸는 기라.

설렁설렁 넘기던 걸 멈추고, 정색을 하고 앉아서 바라보았는 기라.

그러자 '송찬호'의 저 시 '늙은 산벚나무'가 생각나고,

'늙은 산벚나무'는 '늙은 산벚나무'의 해석을 불러오고,

그러자, '안도현'의 시집 '북항'도 다시 읽히는 기라.

 

결국 시는 거기 그렇게 그대로 있는데, 시를 읽는 나의 마음이 바뀐거다.

황현산이 발문 마지막에 쓴 한구절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시인이여, 늘 잘 쓰지 말라. 저 빛의 손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간절한 것은 통증이 있어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고 나면

이 쟁반 위 사과 한 알에 세 들어 사는 곪은 자국이

당신하고 눈 맞추려는 내 눈동자인 것 같아서

 

혀 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왔네

 

나 여기 있고, 당신 거기 있으므로

                                  

                                                                                  (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부분)

 

화자의 은유가 어떠했던지 간에,

독자가 감정이입을 하기 나름이라면, 이 시는 간절한 것이 내 마음 같다.

벌레 먹은 사과는 맛있다고 설레발이라도 칠 수 있지만,

멍들어 곪은 사과는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한다.

아프다고 하는 순간 제 살 무수히 잘리워 나가는 건 물론이거니와,

다시는 못 볼 이별일 수도 있다.

 

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이오 저물 무렵 말발굽 소리가 서해에 닿을 것이니 나는 비명을 한 올 한 올 풀어 늘어뜨린 뒤에 뜨거운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려 주름을 지우고 수평선 위에 걸쳐놓을 것이오 그때 천지간에 북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내기를 해도 좋소 나는 기꺼이 하늘에 걸어둔 하현달을 걸겠소

                                                                                                        ('직소폭포' 부분)

난 '직소'를 형상화 저 부분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늘의 하현달'을 내기에 건 배포를 부러워 하기엔,

직소폭포의 주름한점 없는 완전 무결은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린 때문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하늘의 하현달'을 내기에 건 배포로 봤을땐,달도 차면기울고...같은 의미에서 삶은 영원한 도돌이표다.

 

   폭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귀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직소폭포'도 그렇지만, '폭'도 이미지의 형상화에 성공한 시 같다.

내가 보기엔,

자로 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잔잔할 때의 바다는 잔잔한 채로,

격정적일 때는 격정적인 입맞춤이 가능한 것이 바다의 폭, 다른 말로 수평선이 아닌가 싶다.

 

 

노숙(露宿)

 

양말 한 켤레를 빨아

빨랫줄에 널었다 양명한 날이다

발랫줄은 두말없이 양말을 반으로 접었다

쪽쪽 빨아 먹어도 좋을 것을

허기진 바람이 아, 하고 입을 벌려

양말 끝으로 똑똑 듣는 젖을 받아먹었다

양말 속 젖은 허공 한 켤레가

발름발름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바지랑대 끝에 앉아 있던 구름이

양말 속에 발목을 집어넣어보겠다고 했다

구름이 무슨 발목이 있느냐고 꾸짖었더니

원래 양말은 구름이 신던 것이라 했다

아아, 그동안 구름의 양말이나 빌려 신고 다니던 나는

차마 허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를 읽는데, 왜 차마고도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차마고도'가 '차와 말의 길'이라면,

'허공'은 '허기지 바람의 길' 또는 '허기진 영혼의 길'이라고 하면 되겠다.

 

쪽쪽 빨아 먹어도 좋은 날이거나,

발름거리며 호흡을 하고 싶은 날에는,

구름을 신고 허공으로 마중을 나가봐야 겠다.

누구를?

그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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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0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이라는 시를 읽으니
<소금인형>이라는 시가 떠오르네요.
그리고, 이 시에 가락을 붙인 안치환 님 노래도 생각나고요.

요사이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그동안 <소금인형>을 몇 천, 몇 만 번쯤 불렀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반딧불이 2012-06-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와 삶이 함께하시는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은 따듯합니다. 땡스투

하늘바람 2012-06-0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겁한 사람 중 하나예요
다 말리고 싶어요 제발 이제 그만하라고 자기 생각이 있을 수 있으니 서로 다 그냥 인정해주고 넘어가자고
타인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그 사람을 바꾸고 메도하고 깨우쳐 주려하는 건 아니라고
것도 인터넷 세상에선 더더욱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가서 정말 뜯어말리고 파요
사람들이 떠나가서 너무 속상하고 슬픈데 오늘 또 논쟁의 씨앗들이 벌어졌더군요
제발 그만헀으면 하는데 그만하질 않네요.
마고님 떠난 거 넘 슬픈데 말이에요.
이러다 다 진저리치며 다 떠날까 넘 겁나는데 말이에요
 
사랑의 기초 세트 - 전2권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정이현 지음 / 톨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영어 제목은 'The foundation Of Love'이다.

내가 영어 제목을 들먹이는 이유는 우리말 제목 '사랑의 기초'라고 했을때, 그 기초가 basic인지 foundation인지 명확하지 않은 감이 있어서이다. 

basic이라고 했을때는 시작, 초급이라는 느낌이라면, foundation이라고 했을때는 일의 바탕이 되는 토대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 혼자만의 주관적 느낌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고~--;)

 

두 권으로 이루어진,

각기 다른 설정의,

두 편의 소설을 통하여,

두 명의 작가 - 그들이 보여주려한 것은 '사랑의 기초;The foundation Of Love'의 제각각 다른 형태들(하지만, 어쩜 결국은 하나가 아닐까 싶은 그 어떤 것?)이다.

 

여기서 '기초'는 '시작'이 아니라 '근간'이고 '토대'다.

사실, 정이현이 쓴 <사랑의 기초, 연인들>편에서는 이 '기초'가 '시작'이어도 좋고 '근간'이나 '토대'여도 상관없는 듯 보이기도 했었다.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그 작품에서,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onthroad(온 더 로드)라는 메일 계정을 쓰던 익명의 남자에게 마음 쓰였었다.

이 작품, <사랑의 기초, 연인들>에서도 같은 이유로 준호에게 마음이 쓰였다.

 

이건 어쩜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어서,

또는 두 작품 사이에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아 작가의 가치관이나 개성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이라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민아와 준호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의 과정을 보면서 마음 쓰였었다. 

우리가 사실과 진실을 놓고 함부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되듯이,

이들의 사랑을 놓고도 함부로 가치판단을 하거나 단정 지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건 '달콤한 나의 도시'의 그남자에게 익명 아니 불명이라는 이유 만으로 돌을 던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여기서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살짝 짚어보면,


내가 창밖을 보니 비가 오는것을 보았다.

(이때까지는, 사실이며 진실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니 옥상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이때는, 비를 보았던것은 사실이며 

           옥상에서 물을 뿌린것은 진실.)

 

그래서 내가 비가 온다고 착각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는, 비를 본것은 거짓이며

           비라고 생각했다는것이 사실이며

           옥상에서 물을 뿌린것이 진실.)

 

이처럼 사실은 과정으로는 명백한것 같으나 결과를 놓고 보니 그것이 아닐수도 있으며,

진실은 항상 명백한 사실이지만 사실은 명백한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

 

그걸  <사랑의 기초, 연인들>의 처음과 끝에서, 미용사의 목소리로 강조하듯 짚어낸다. 

 

"아휴, 좋을때다. 근데 젊은 아가씨들은 잘 모르겠지만 착한 남자가 최고예요. 언뜻 봐서는 별 매력 없더라도 알수록 진국인 남자, 딱 한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 요즘 아가씨들 겉으론 똑똑한 거 같아도 그 당연한 걸 잘 놓치더라고요."(19쪽)

 

"내가 겪어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자는 역시 자상하고 다정한 남자가 최고예요. 지 혼자 속으로 진국이면 뭐해. 표현 안 하면 그걸 누가 아나."

 미용사가 언젠가 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았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였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204쪽)

이건 사람이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

내겐, 사람이 그러하듯 사랑도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서...함부로 가치판단을 하거나 단정 지으면 안된다는 의미로 돌출되어 다가왔다.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다.

난  <사랑의 기초, 연인들>의 여주인공 민아처럼 "나는 그냥 착한 사람이면 돼"과는 아니어서, 좀 까칠하고 유별나게 고르는 편이다.

한때는 '글쎄,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사람? 부드러운 성격에 나랑 취향이 비슷하면 더 좋겠지. 음악도 좋아하고 서점 가는 것도 좋아하고.(20쪽)'라고 말하는 민아처럼 나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 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빵빵하게 살이 쩌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렇기때문에' 골라내는 OX문제나 사지선다형 문제 처럼  쉽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곤란한 상황에서 기꺼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지 마음의 평수를 시험하는 그런 문제로 바뀐 느낌이다.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78쪽)

말은 언제나 흘러넘쳤다. 그들은 말하고 또 말했다. 사랑할 사람을 찾아 헤매었던 유일한 이유가 마치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였다는 듯.(113쪽)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사람인 당사자와 상대방 말고 왜 다른 것들이 요구되는건지,

왜 '그 사람의 세계'라고 표현되는 '배경'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저렇게 얘기가 잘 통하는 이들이,

배경이 구차하거나 누추한게 뭐, 그리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어야 할 일이기까지 하며...

용기를 갖고 고백을 하거나 못한게 헤어짐의 원인까지 되어야 하나 싶지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은지...

다시말해, 나의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는지,

어제 어느 인터넷 자료를 보니, 배우자 선택시 가장 고려하는 게 '가정환경'이란다.

 

콩깎지가 씌웠을때 장점으로 보이던 것들이, 사랑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단다.

 

그래서였을까, 이 구절이 더 가슴 아프게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준호의 가슴 속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이 한 톨 피어 올랐다. 이 사람에게라면, 곧 더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있을지 몰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달콤한 케이크 위에 사뿐 올라앉은 체리뿐만 아니라 오븐에서 너무 늦게 꺼낸 식빵의 가장자리처럼 누추한 삶의 모서리까지도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행운아인지도 모른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했다.(117쪽)

 

이들에게 부족한 '사랑의 기초', 다시 말해 '사랑의 근간'은 믿음과 신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런 얘기를 듣게 되었을때, 내가 민아였다면 '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는 건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하는 건 '그 사람이니까' 다시말해, '준호니까' 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하고 믿고 보는거다.

 

하지만, 작가는 민아와 준호에게 아직까지 그런 믿음과 신뢰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그것을, 인연이나 운명으로 몰아가려 하지도 않는다.

그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게,

준호가 어렸을때, 준호 담임선생님의 딸이 점심시간마다 엄마와 점심을 먹으러 오면서,

준호는 민아와 같은 공간에서 '따로'이면서 '같이' 점심을 먹는다.

하지만, 그건 전지적 작가만 알뿐이지, 준호도 민아도 모른다.

그의 담임은 삼십대 후반으로 평소에 늘 기운 없는 눈빛과 웃음기 없는 표정을 하고 다니는 여자였다. 누구를 특히 차별하는 법 없이 반 애들에게 골고루 무심했기 때문에 그는 선생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혹시 내가 자기 반 학생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가끔 의심스럽기는 했지만.(50쪽)

 

그에 비하면,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한 남자>편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에 성공한 부부인 벤과 엘로이즈를 중심으로,

그들의 가정생활, 자녀양육, 사랑과 섹스 등에 관한 고민을 그린 작품이다.

이때의 '기초'는 '시작'이 아니라, 사랑을 이루는 '근간'이나 '토대'정도가 되어야 된다.

 

그는 서양작가답게,

그리고 그동안 철학서인지 소설인지 불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책을 쓰던 사람답게,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의 시도를 하고...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철학적 교훈을 주려한다.

솔직히 고백컨데, 난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쓴 <메이팅마인드>(=연애)라는 책을 읽지 못했다면 겉으론 쿨하게 이해하는 척하면서...속으론 툴툴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표리부동하게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듯~!

 

우리는 섣불리 말하지 못했던 결혼의 일상성과 그 허상을 날카롭게 탐구하는 걸 지켜볼 의사가 있으며,

인간 각자는 떼어놓고 봤을때 불완전한 존재라는걸 인정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연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만이 결혼한 부부로 잘 사는 길이라는 그의 충고도 귀담아 듣겠다.

(여기서도 사랑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도 사랑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글로 쓸 수 있다는 '알랭드 보통'의 글쓰기 경험 상, 그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인 듯 느껴져 살짝 꺼림칙하긴 하지만, 뭐~--;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권리긴 하지만, 인류 대다수에게, 특히 우리가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라면 가급적 그런 끔찍한 특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충고가 늘 따라 붙는다.(71쪽)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이긴 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내 자신에게 편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그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고자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오래'라는 기간이 중요할 것 같은데...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그 정도 노력도 못하냐고?

뭐, 그럼...할 말 없는 거고~--;

 

암튼, 정이현에 비하여 알랭 드 보통이 특별히 좋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랑의 기초-한 남자>편이 내겐 더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그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닌,

모든 사랑의 근간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바램인데,

알랭 드 보통이 그려낸 소설 속의 그들은 어떤 겉모습을 보이더라도,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듯 느껴져서이다.

 

때론 내 자신이지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왜 그러는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남의 마음이니까 내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그러니, '뭐 그럴만한...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생각하기 쉬운 일인데,

왜 인색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오늘부터, 지금부터...라도 넉넉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되겠다.

 

Pink Martini는 그걸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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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04 10:39   좋아요 0 | URL
아침 기분이 환기 되는 음악이네요.
정이현은 젊은데도 참 많은 생각이 오고가는 글을 써요.
정이현이 젊은게 아니라 내가 늙었나 싶네요 문득

sslmo 2012-06-04 11:16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좋은 소식 축하드려요.
뭐, 드시고 싶은거 없어요? 헤에~^______^

더 기분이 전환되는 음악, 필요하심 말씀만 하세요.
재깍 대령할게요, ㅋ~.

하늘바람 2012-06-04 12:51   좋아요 0 | URL
저 음악듣고 싶을 때 양철나무꾼님 서재와서 들었어요
좋은 음악이 넘 많아서요

2012-06-04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6-04 20:35   좋아요 0 | URL
사랑에도 연습이...이점 저는 약하게 동의하는 편,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하므로...^^)
사랑에도 노력이...이건 매우 동감...^^

첫사랑의 실패는 경험이 부족한 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개인 적인 생각이랍니다.
깨달음은 경험에서 나올 수 있는 부분이기도하고
잘 생각해보면 가능한 부분이기도하고..

신뢰, 믿음, 이걸 얻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적극 동감이구요. 물론 그 노력의 일관성이 더 중요...일시적 신뢰는 쩜...^^

많은 생각의 기회를 주는 페이퍼~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2-06-04 21:13   좋아요 0 | URL
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그 정도 노력도 못하냐고?

뭐, 그럼...할 말 없는 거고~--;


에서 빵터졌어요.. ㅋㅋ
첫 음악은 .. 흥겹네요..
오늘 같은 월요일 밤 듣기 참 좋아요.. 양철나무꾼님..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왜 그러는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남의 마음이니까 내가 모르는게 당연한 거다.

그러니, '뭐 그럴만한...말못할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 생각하기 쉬운 일인데,

왜 인색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네..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더 따져들고 싶고 그래져요..
사랑하는데 넌 왜이래.. ㅠㅠ
암튼 저도 그렇습니다..


blanca 2012-06-05 09:30   좋아요 0 | URL
이 책이 궁금했었는데 나무꾼님 리뷰가 좋아요. <냉정과 열정> 방식이랑은 다르게 그냥 아예 서로 다른 이야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