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동네에 이른바 '약장사'라고 하는 의료기 홍보관과 건강 보조식품 판매상, 포교원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이곳은 파리를 날리고 앉아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상황을 관망하며 모처럼 주어진 여유를 만끽하여야 겠지만,
현실은 우울해서 책도 안 읽힌다.
(눈이 침침해서라고는 곧 죽어도 하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사이먼 싱 외 지음, 한상연 옮김 / 윤출판 /
2015년 8월
책장을 둘러보다가 예전에 사두었던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부제-대체의학의 진실)이라는 책을 발견하였다.
예전 같으면 이런 책을 만나면 작정하고 달려들었을텐데,
이젠 시큰둥 설렁설렁 읽었다.
설렁설렁 읽은 이유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라는 우리말 제목이 맘에 안들어서,
이 제목과 관련하여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으나 이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원제는 'Trick or Treatment'인데 우리말로 옮기면 '사기(속임수)일까 치료일까' 정도 되겠다.
내가 설렁설렁 읽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에 언급되는 대체의학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정도까지는 주류 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런것들을 대체의학으로 싸잡아 '질병치료에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과학적 방법을 써서 공정하게 분석한 결과를 들려준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검증방법이라는 것들이 과연 공정한가?
침을 가지고 거칠게 예를 들어 보자면,
경혈과 경혈 아닌 부위에 놓는 것, 깊이, 진짜 침과 가짜 침을 사용하는 것 따위를 얘기하는데,
경혈만 하더라도 아시혈이다, 신혈이다 해서 계속 혈자리가 나오고 있는 추세이고,
깊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부위마다 피부 두께 따위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놓는 사람의 침을 장악하는 무게감에 따라서 다르게 영향력을 발휘할뿐더러,
기감이 발달한 사람들은 피부를 살짝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침을 놓는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는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혈자리인지 아닌지, 깊이 따위 만으로 검사 지표를 삼은 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또 설렁설렁 읽다보니 이런 부분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얘기하려는 의도와는 빗나가게 해석해 버린다.
WHO는 현대의학에서는 뛰어난 대응력을 발휘하지만, 대체의학 영역에서는 진실보다는 정치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 달리 말해 침을 비판하는 것은 중국, 고대의 지혜, 동양문화 전반을 비판하는 것으로 비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109쪽)
이후의 문장들로 미루어 논의의 여지가 있는데, 설렁설렁 읽어서는 진의를 놓치기 쉬우니까 말이다.
이 책은 또 한가지 내가 간과했던 사실을 명확히 집어준다.
그러나 철학과 실천이 황당무개하다는 것만으로 동종요법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임상시험은 치료법이 얼마나 기묘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검증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유효성을 판정하기 위해서는 근거중심의학의 믿을 만한 도구이자, 진짜 의학과 가짜 의학을 구별할 힘이 있는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150쪽)
암튼, 이 책을 읽은 내 입장을 얘기해보자면,
우리말 제목을 잘못 뽑았다...하는 개인적 느낌과 아울러,
지극히 영국 등 유럽중심적 사고로 똘똘 뭉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혈요법과 침을 얘기하면서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얘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유르베다에 대해선 관대해서 이상했었는데,
인도에서 이민한 사람의 아들이다.
동종요법에 대해서 길게 자세히 얘기하는데,
동종요법이 발달하게된 배경부터 재밌게 읽힌다.
카이로프랙틱만 하더라도 위험성에 비해 비싸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위험하고 무엇보다 비싼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카이로프랙틱이라고 하면 흔히 척추교정을 생각하기 쉬운데,
척추를 예로 들자면,
수술하는 것보다는 덜 위험할테고,
비용면에서도 수술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뇌졸중, 추골동맥 박리 등 무서운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것 때문인지 카이로프랙틱 단체와 소송도 있었던 것 같으니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이 책에서 얘기하는 대체의학의 종류들을 난 대체의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굳이 대체의학을 들라면, 저 약장사나 의료기 홍보관, 포교원(폰래 의미를 상실한) 따위를 들 수 있겠다.
이 책을 이렇게 꿀꿀하게 읽고 보니 언젠가 읽었던 이쪽 관련 장르소설이 두 권 생각난다.
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신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2008-7-23)
난 개인적으로 책의 "띠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이나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띠로 둘러 액센트를 주는 효과가 있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띠지는 내게 처치곤란이다.
이 책은 그런 내가 '띠지'의 내용을 읽고 혹해서 고른 첫 작품이다.
'장미의 이름'보다 지적이고,'살인의 해석'보다 재미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설정 자체나 책의 위상을 높인 점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하라면,
'장미의 이름'보다 지적이고 재밌는 것은 맞지만,
'살인의 해석'보다 지적이지만 재미는 덜 한 것 같다.
칸트가 등장하고 순수이성비판이 등장해서 이 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18세기 후반의 상황을 알면 내용은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이 시대는 미신을 믿는 시대였다.
지금도 세상은 목소리 큰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누가 뭐라 했다카더라'하는 설에 의해 움직이고 있지만...
이시대 처음으로 의학에 타진법이 도입되었고(1760),
미생물개념(1761),
감자가 독일에 알려지고(1765) 인간의 식량으로 적합한지 의견이 분분하고,
피뢰침이 최초로 설치되고(1769),
산소가 발견되고(1771),
질소가 발견되고(1772),
염소소독 실시되고(1775),
마지막 마녀처형이 벌어지는시대(1782)였다.
이 얘기는,
통치자들이 종교와 결탁하여 뭐든지 '통치자가 신이다', '종교의 힘으로', '신의 이름으로'...
이렇게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지배하던 시대였는데...
칸트라는 아저씨가 나타나 '신은 죽었다.'라고 얘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럼 통치자들은 자기의 위상과 입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칸트라는 아저씨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의 출판을 막기 위해 살인쯤은 서슴치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니콜라이로 말할 것 같으면,
'통치자=신'이어야 하는 이런 미신 같은 시대에 깨어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은 덕에,
다시 말해 오지랖이 넓고 궁금한 게 많은 탓에 많은 것들을 이성적으로 섭렵하였고,
그 덕에 새로운 의학설을 주장하다가 따돌림을 당하고 고향에서도 쫒겨난다.
몇 달간의 자숙기간을 거쳐 시골로 좌천당한 니콜라이는 시골 보건의 밑에서 일을 하며 최대한 몸을 사리게 된다.
어느날 밤 그 지역 유지인 백작집에 왕진을 갔다가,
백작의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기지를 발휘하나 그 바람에 계속되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백작의 하인들도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데,
그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막달레나라는 여자는 니콜라이가 보기에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이러한 죽음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니콜라이는 막달레나를 통하여 여러가지 것들을 알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은 여러 제후국과 종파로분리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중이었고,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대담하고 몰인정한 여러 비밀단체가 등장한다.
이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책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동안의 '통치자=신'에서 벗어나, 자연의 중심은 인간이라며, 그 도덕적 자유를 주장한다.
막달레나는 정말 종교적인 이유에서,
'이런 생각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위험해 질 수 있으므로, 그러한 사상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충분히 걸러져야 하며, 생각이 완전하지 못할 때는 침묵해야 한다.'
고 얘기한다.
하지만,제후국의 통치자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런 위험한 책이 세상에 나오면 자신의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책이 번역되어 일파 만파 퍼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아는 것으로 미루어, 막달레나의 종교관은 미신을 따르는 서투른 사람들의 그것이 되어 실패로 끝나고, 그녀는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겨 오랜 침묵에 들어간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해요. 생각은 행동을 통해서 비로소 실현된다는 것이죠. 그 전에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공기보다 못한거죠.'
세상이 한참 흐르고,
손녀와 기차여행을 갔다가 추억 속의 막달레나를 찾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말을 보게 되면 눈물나도록 아름답다 못해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막달레나의 업보이고,
난 니콜라이가 내내 가엾다.
따라서,이 책을 읽은 깨달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니콜라이처럼 깨어있는 이성을 갖고 생각대로 행동하고 살면...삶이 한없이 가여워질 수 있다는 거다, ㅋ~.
악은 악으로
에릭 나타프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5월
(2008-9-6)
우리가 흔히 '몸에 안 좋은 술 먹어 없애야지' 또는 '몸에 안 좋은 담배 피워 없애야지'하고 얘기하는데...
이게 동종요법에서 얘기하는 '악은 악으로'의 취지란다.
이 소설은 여기서 한단계 발전해,
자기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악을 택하는 법과 선을 희생시키는 방법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여기서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연쇄살인범이 나오고,
그 살인범이 잔혹한 방법으로 훼손하고,
무언가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듯 보이고,
이때 발견된 알약이 '동종요법'에서 쓰는 알약이라는 것이지,
'동종요법'이라는 것이,
범인을 밝혀내기 위한 '법의학'이나 '정신분석학'은 아니며,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범인을 치료할 수 있는지 '케이스 스터디'하는 치료의학이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동종요법'의 내용들이 이 책 전반에 걸쳐 나오고 있고,
그것이 얽히고 섥혀 얘기를 만들어가고는 있지만,
이것은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복선 쯤이고...
이것을 행여라도 '치료형태'나 '의학'의 개념으로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게 다 '동종요법'을 널리 알리고 보급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 밖에 안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종요법은 '감춰진 쌍동이 형제의 만남'>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그것도 '루도비치 블라우'라는 강사의 입을 통하여,
그렇게 빨리 얘기 할 수 있었을까?
함께 얘기를 이끌어가는 '뤼디빈'의 경우도 이미 23쪽에 언급이 있었는데,
54쪽에 처음 만나게 되는 것처럼 표현된다.
한때 동종요법이론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는 나는 이 책을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는데...
동종요법이라는 것은 19세기까지의 정통적인 치료(사혈요법 등)보다 덜 해롭기에 그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것이다.
(거칠게 얘기하면 의사보다도 덜 해롭기 때문이란다.-->'똑똑한 사람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요즘처럼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혹시 치료될지도 모르니까...'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가지고 케이스 스터드를 해볼 수는 없지 않나?
ABO식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나 사상의학으로 치료를 하는 것의 확률과 다를바가 없지 않나?
혹,현대의학으로 해결 안되는 '불치나 난치'를 만났을때 일종의 신앙이나 주술의 개념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하지만,'신앙'이나 '주술'에 관한 개념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동종요법'계에선 '마인드에 관한 루브릭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내가 생각했던 동종요법의 장점은,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처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책 속에서라지만 '실력있는 의사는 환자가 어떤 타입인지 첫 눈에 알아봐요.'라는 말은 섣불리 하면 안될 것이다.
결국 '동종요법'이 '비율'이나 '확률'을 얘기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것이,
'극도로 희석된 악은 선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나는 동종요법의 희석과 정반대 개념인 농축을 떠올렸다.'하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악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악을 택하는지, 선을 희생시키는지...이 책의 결말은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
절대로 환자가 가진 질병을 나름대로 해석하면 안되겠지만,
동종요법의 취지만은 가상하다.
-환자가 가진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가진 환자를 치료-에 맞는 환자,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 개개인에 맞춰 처방,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은 꿈꿔 본다.
웹서핑을 다니다 보니 이런 책이 눈에 띈다.
중년에도 운동을 하지 않는데, 나이 일흔에 운동이라니,
어쩜 주변의 어르신들이 갈곳은 '약장사'라고 하는 의료기 홍보관과 건강 보조식품 판매상, 포교원이 아니라,
이 책 한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흔에 운동을 시작했다
이순국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