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의 '취향'이란 지난번 글을 보더니,
'아무거나','아무데나'를 남발하는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냐고...한마디 한다.
나는 그저 '헤헤~'거리며 웃고 말았다.
내가 그 누군가 앞에서 '아무거나', '아무데나'를 남발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이미 내 취향이라는 얘기지만,
대놓고 '당신이 이미 내 취향이다, 고로 당신은 이미 내게 특별한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거나', '아무데나' 를 남발하여 날 수더분한 줄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글쎄...실은 좀 까칠하다.
단지 내가 까칠함을 발휘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나의 까칠함을 아는 이들의 분석에 의하면, 알아서 협조하고 더러워서 피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의 경우 수더분한 걸 좋아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는거다.
똑 부러지게 자기 취향을 얘기하는 쪽이 좋다.
야무지고 맛깔스럽게 얘기했는데 그 취향이 나랑 같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거지,
뜨뜻미지근하게 이래도 저래도 '흥~' 천안삼거리에 걸린 능수버들처럼 다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사람도 싫다.
나도 독특하고 유니크한걸로는 한 몫하기 때문에, 다른사람까지 과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1.
내가 일하는 곳은 2층이다.
며칠 전 퇴근 무렵 한 남자가 다리를 절며 들어 왔다.
오기 전날부터 다리 바깥쪽이 심하게 아파 발을 땅에 딛을 수가 없었단다.
"왜 아프세요?"
"그걸 알면 내가 이 다리로 2층까지 기어올라왔겠어요?"
"다치거나 삐끗하신 기억이 없으시냐는 얘기죠?"
"없어요."
"여기 이 멍은 뭐예요?"
"그거 별거 아녜요."
"ㆍㆍㆍㆍㆍㆍ?"
"아픈 거랑 상관없는 거예요."
"상관 있고, 없고는 제가 판단할 문제고요."
"걸어가다가 골프공에 맞았어요."
"걷다가요, 뛰다가요?"
"그딴게 왜 중요합니까?"
"걷는데 사용되는 근육이랑 뛰는데 사용되는 근육이랑 약간 달라요."
"살살 뛴거 같아요, 몸 풀기 정도로ㆍㆍㆍㆍㆍㆍ.
 근데 골프공에 맞은 건 무릎 안쪽 윗부분인데, 내가 지금 아픈 건 무릎 바깥쪽 아랫부분이라구요."
"골프공 맞는 순간 무릎관절을 축으로 지렛대 원리에 의해서 충격을 받은 부분이 생겨났어요.
 골프공 맞은 부위는 위 무릎 안쪽이지만,
 무릎관절 대칭으로 본인 몸무게가 힘으로 작용을 해서 아킬레스건에 무리를 줬다고 보시면 돼요."
인체와 그 주변에 힘이 작용하는 원리를 그에게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achilles tendon, iliosacrum, T-M joint 등을 건드리자 자지러진다.
"어제부터 아프신거라는 거짓말, 정말이예요?"
"골프공에 맞은 건 일주일 됐어요~ㅠ.ㅠ"
partial rupture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고는 테이핑과 E.B.로 둘둘 말아서 고정시켜 보냈더니,
못 믿고 가서 MRI까지 찍어 확인을 한 모양이다. 

그 후 180도 태도 돌변, 내 말을 무조건 믿는 순한 양 같은 남자가 되어버렸지만, 통통 거리는 맛이 없어 재미는 없다. 

 

2.
어제 집에 갔더니 택배가 와 있었다.
정말 이렇고 저런 책들이랑 음반들이 너무 쌓여...
다 못읽고 다 못듣고 헤쳐만 놓고 해를 넘기고 말것 같아 정중히 사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어떤 이들에게는 서운했었나 보다.
책이면 어쩌나 하고 열어보니,
예쁜 플라스틱 폴더 속에 볼펜과 수첩과 포스트잇과 각종 스티커 등의 문구 류와 다이어리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학창시절엔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후론, 판촉물로 나와 굴러 다니는 걸 주워 썼었던지라...
내 기호나 취향이랑은 전혀 관계없었다.

하나 하나 쓸어 보고 만져 보면서 '어머, 어머, 어머머~'를 연발했었는데...
세상에 내 안에 들어와 보고, 나를 훔쳐본 것처럼...하나같이 다 맘에 드는거다.
가만 있어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고  해시시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눈치 채고 이런 걸 보내준 것일까?
난 분명,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 못할테지만 이런 그가 한없이 고맙다.

 

3.

 

 

 

 

 

 

 

 

 칼과 황홀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그런 의미에서 음식에 관한 얘기는 성석제가, 요리는 산당 임지호가 등장 했으면 좋겠다.

 

한때 성석제를 엄청 좋아했었다.

'이야기 박물지' 때도 느낀거지만, 잡다한 지식이 거의 만물박사 수준인데다가,
게다가 적당히 배부르고 술기운 오르면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맛깔나기도 하다.

 

그래서 '칼과 황홀'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그의 문장 벼리는 재주만큼 음식 벼리는 재주도 남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 문장 벼리는 재주와 음식 먹는 재주는 몰라도 음식 벼리는 재주는 영 신통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음식을 벼리는 '음식 철학'은 산당 임지호의 그것쯤이라야 겠다.

 

하긴, 음식을 먹는 재주도 옛날엔 별 볼 일 없었는지...돼지고기도 못먹는 채식주의자단다.
엄마가 해주시는 김치볶음밥을 아주 맛있게 먹던 그가,
김치볶음밥을 만드는데 돼지기름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기겁을 하는데, 그게 내 어릴 때의 모습이랑 흡사하다.

그와 밥 한끼 같이 안먹어 본 내가,
그가 문장을 벼리는 재주만큼이나 음식을 먹는 재주도 남다를 거라고 미루어 짐작을 하게 한 문장은 다음 문장이다.

원하는 게 많던 시절이었으나 채워지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게 훨씬 더 많던 때였다. 그 냉면은 세끼 밥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정신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평양이나 함흥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비밀스러운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주인의 손맛과 기분에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그 냉면이 내 냉면 이력의 첫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는 게 무척이나 기껍다. 그 냉면이 뒤이어 내가 섭렵하게 되는 모든 냉면의 기준이 된 것은 물론이다.(88쪽)

'의인화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고 하려다가,
나도 아스팔트가 벌러덩 일어나고, 전봇대가 내게 걸어와 입맞추었던 경험이 있는지라...글을 쓴 성석제와 내 욕구가 겹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 간신히 지하철역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지하철에 타자 더럽기 짝이 없는 전동차 바닥이 벌떡 일어나 그날 저녁 귀한 음식을 연속으로 먹은 내입에 제 입을 쩍 하고 맞추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깨보니 종착역도 아닌 차량기지였다. 차량 한 칸에 한두 명씩 나 같은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샛별을 바라보며 철로를 따라 걸어 나왔다. 자갈이 밟히며 서로 몸을 비비는 소리에 이제 나도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다.(115쪽)

그는 의인화로는 부족했는지, 이것저것 이름 붙여 중독자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난 라면이나 MSG는 좋아하지 않는고로 글루탐산중독자는 아닌 것 같고, 엔도르핀 중독자는 비껴갈 수 없겠다.
매운걸 먹으면 속뿐 아니라 얼굴까지 뒤집어지는데도, 가끔 매운 걸 의무적(?)으로 먹는다.

"아주 간단해. 이건 고추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 효과를 이용한 것뿐이야. 매운 걸 먹으면 땀이 나고 눈물 나고 재채기 나고 하면서 몸에 안 좋은 게 배출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거든. 땀 흘리고 나면 시원하고 눈물 흘리면 기분이 맑아지는 것 같은 거야. 매운맛은 맛이 아니고 통증이거든. 아프다고 하는 느낌이 뇌에 전달이 되면 안 아프게 천연 진총제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되고 엔도르핀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면 기분이 그 전보다 좋아지게 되어 있다고. 매운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엔도르핀 중독자란 말이지."(178쪽)

암튼, 그의 문장을 벼리는 재주로 미루어 음식을 먹는 재주를 짐작할 수 있고, 음식을 먹는 재주를 짐작하는 것 만으로는 요리를 잘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다음 문장으로 미루어 영혼을 벼리는 재주도 지녔을 것 같다.

들끓는 젊음은 해장국집에서 언제나 평온을 찾았다.ㆍㆍㆍㆍㆍㆍ시래기와 된장, 제철에 나는 채소들을 넣어 전날 밤부터 오래도록 끓여내는 해장국의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 들어가 편히 누울 수 있는 맛이다. (208쪽)

그를 보면서 음식과 관련한 취향은 식성을 가지고 얘기하는게 아니라,
인간과 삶의 근간을 이루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얘기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방랑식객
 SBS 스페셜 방랑식객 제작팀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식성에서, 아니 음식에 대한 취향에서 확장시켜,
음식에 대한 예의, 인간과 삶에 대한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으로는 임지호를 들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그 감이 떨어지면 고양이부터 개미까지 모두가 골고루 그 맛을 보았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햇볕과 바람이 만들어낸 우리 모두의 감이었다.(40쪽)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던 감 하나에서 햇볕과 바람을 만들어내고 우리를 결속시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갯벌요리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을 거쳐 켜켜이 쌓여온 생명의 역사, 바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소금과 갯벌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를 맛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귀하다, 천하다 이름을 지어 생각의 벽을 만들어서 보니까 못 보는 것이다. 그 벽만 없애면 갯벌은 얼마든지 식재료로 쓸 수 있다. 우주의 별을 구성하는 성분과 내 몸을 이루는 성분이 같듯이, 갯벌을 이루는 성분도 내 몸을 이루는 성분과 같다. 그렇게 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59쪽)

소금에서 갯벌을 불러들이고, 갯벌에서 貴賤을 분별하고, 우주와 별들과 갯벌과 내 몸의 성분을 아우르는 것도 대단했으며,
산을 올라 산의 기운을 받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옮겨놓는 일을 한다고 하는 호기도 멋졌다.

 

ㆍㆍㆍㆍㆍㆍ산에 있으면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내겐 숲속이 놀이터이자 침대였다. 요즘도 생활에 지쳐 맥이 빠질 때 산에 오르면 힘이 솟는다. 방전된 힘이 충전되고 다시 아이처럼 생기발랄해진다. 그게 산, 자연이 주는 에너지다. 그렇게 산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나면, 그 좋은 기운을 마음에 실어와 다시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곤 한다. 그러면 그이는 산에 올라가지 않았어도 그 기운을 그대로 먹을 수 있다. 나는 자연을 옮겨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65쪽)

맛을 보지 않고 요리를 한다는 부분은,
환자가 하는 말과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라, 환자가 하는 말과 말 사이의 행간과 동작과 동작의 연결 부위 사이에서, 또는 미묘한 손 끝의 palpation만으로 환자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읽어내야 하는 상황을 닮았다.

"왜 맛을 보지 않고 요리를 하는 거요?"
"원래 맛의 수행은 맛보지 않고 하는 거예요."
기분에 의해, 몸의 상태에 따라 혀로 느끼는 맛은 기복이 심하다. 혀에 의존하지 않고 냄새와 색, 질감과 같은 다른 감각으로 맛을 보는 것 또한 훈련이다. 몰입할수록 맛보지 않고도 제 맛에 근접해간다. 수행하듯이 맛있다, 맛있다는 생각을 심으면 그 생각이 음식에 녹아든다.(95쪽)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 해보고 싶었던 레시피는 '낙엽소스, 낙엽차 만들기'이다.
하긴 기분이 우울할 때 은박 도시락에 낙엽을 모아놓고 태우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이다.

 

커다란 통에 낙엽과 물을 넣은 다음 물의 양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끓인다. 끓인 낙엽 국물에서 낙엽을 걸러낸 다음 조선간장과 요리술을 넣고 끈적끈적한 소스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조린다. 이 낙엽 소스를 나물 무칠 때나 떡이나 과자를 만들 때 쓰면 좋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맛이 위장을 편안하게 해준다. 나는 낙엽을 끓여 차를 마시기도 한다. 낙엽만으로 끓인 차는 가슴을 뻥 뚫어주면서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낙엽차만한 게 없다.(222쪽)

 

음식이 맛있어서만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마음이 있어서 더욱 감동적이고 맛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음식이 가진 사랑의 힘이고 치유의 힘이란다.(156쪽)
이것이 내가 식성을 취향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과 삶으로까지 확장시켜 넘나들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냅 둬, 이렇게 살다 죽게." 하는 자조인지...
"내버려 둬, 저렇게 살다 죽으라고..."하는 타성의 꾸짖는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연에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수록 취향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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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1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2 10:31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장,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인데,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권 다 땡기네요. 이래서 서재글들을 읽기가 무서운 겁니다. ㅎㅎ 마음 속으로 체크만 해 두고~
그 환자, 진짜 재밌어요. -순해지니까 오히려 재미없다는 양철님도 재밌구요.

2011-12-22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림은 그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드러난 자취지요. 그린 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보는 이도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그립습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공감은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9쪽)


감상이란 공감이나 소통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글, 음악, 춤 그 밖에 사소하게 보이지만 마음을 담아내는 창작활동이라면 그림과 마찬가지 아닐까?
(자연의 이치나 과학적 언어로 얘기하는 글을 제외하고)
서로 그리운 거,
그래서 공감하는 거,
이건, 손철주 식으로 얘기하자면...
그림을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글을 쓴 이와 읽는 이의 욕구가 겹칠때,
노래를 부르는 이와 듣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춤을 추는 이와 즐기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서로 그리워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손철주 식으로 얘기하자면,
그림, 글, 음악, 춤 그 밖의 창작활동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리움이 걷히고 욕구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욕구가 겹치는 누군가를 만났을때,
서로 그리워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用, 女爲悅己者容)`는 말이 나온게 아닌가? 아님, 말고~ㅠ.ㅠ
암튼, 나는 내 리뷰나 페이퍼에 공감과 추천과 댓글을 남겨주는 이들 덕에...내 허름한 일상을 끄적거릴 수 있는거다.
그게 눈물나게 고마운거다, Thank you.

 

 

 

 

 

 

 

 

 다, 그림이다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다, 그림이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삶과 개성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 씌여지다 보니,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갖고 있는데도,
글에서 느껴지는 공감과 욕구의 정도, 즉 몰입할 수 있는 정도가 달랐다.


한사람은 모두 비워내고 공허하게 웃고 넉넉하게 풀어낸다.
`색즉시공(色即是空)`과 `빙심(冰心)`을 넘나든다.


다른 한사람은 새침떨며 움켜쥐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돈과, 아이와 남편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독립된 방`을 얘기한 `버지니아 울프`를 예로 드는가 싶다가는,
그녀의 불우한 결론을 정당화시키지 못하고,
`영혼의 자유를 위해 사람들은 또 다른 구속을 끊임없이 선택합니다.`라며 얼버무리는 듯 하다가,
이내 `현실에서 보헤미안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하며 그 선택마저 다른 이에게 넘겨버리고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인용하는데,

누구라도 알 수 있지, 내게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어쨌든 바람이 부니까요.

Anyone can see,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Anyway the wind blows.

 

내가 한마디만 하자면, anyone은 everyone이 아니라는 거다.


처음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너무 다르게 얘기해서,
내가 그 둘을 한꺼번에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했을때는 버거웠었는데,
(감상은 공감이나 소통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는 위에서 얘기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행인것 같다.
공감이나 소통이라는 건, 다시 말해 감상이라는 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둘의 것이 서로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 둘의 것이 모범 답안이어서 우리의 것이 그것에 일치여부에 따라서 O나, X가 매겨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냈는데,
그게 어떤 이의 욕구와 마침 겹쳐 공감과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고 어떤 이의 욕구와는 어긋날 뿐인 것이다.
감상이란, 공감이나 소통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다.

 
먼저 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한사람은,
`전부를 볼 수 있는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눈과 다름없어요.`라고도 하고,

`삶인가 싶은데 죽음 같기도 하고, 이것인가 했는데 저것을 말하기도 하는 그림들에, 또 그러한 삶의 모습에 저의 눈길이 머뭅니다.`라고도 한다.
어찌보면 이건 경계 없음, 즉 초월이나 해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지 못한 자의 그것은 혼돈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사람은, `이인상`의 `와운`을 혹애한다며 예로 든다.
화가는 취필이라며 얼버무리는 그림에서,
비길 데 없는 생애의 고통을 읽어내고는,
슬픔을 노골화하지 않고 눌러담는 화가의 심정을 못내 애처롭고 아름다워 한다.
먹구름은 잔뜩 물방울을 머금고 있다가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햇살을 보려면, 먹구름을 참고 견뎌야 한다.
비장미(억눌러서 장한 아름다움)-이것이 그가 삶을,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리움이 되면 시선과 입장의 차이가 좀더 명확해진다.

한사람의 그리움은 기다림이 되고,
그게 깊어지면 怨이 되거나 恨이 된다.
원한, 원망으로 뭉친 그리움은 서글프고 안쓰럽다.
당연 가슴 설레는 그리움도 있고, 헛된 기다림도 있다.
모진 기다림 끝에 병을 앓기도 한다.

 

다른 한사람의 기다림은 가녀린 달빛이거나 야윈 달이다.
잡을 수 없는 꽃잎, 텅빈 풍경이기도 하다.

`트로이 전쟁`의 전설과 관련된 고흐의 `아몬드꽃`,
어느날 아침 신문에서 보았던 어느 부녀의 어릴 적 사진,
첫사랑을 찾으러다니는 영화 `김종욱 찾기` 등
설렘과 떨림과 오랜 기다림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하고,
더 이상 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애틋한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다시말해,
한사람의 그것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고 앓아본 사람의 그것이어서 쉽게 와 닿았다면,
다른 한사람의 그것들은 자신도 경험해본적 없어 책이나 신문이나 영화를 인용하는 간접 경험이다.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데요? 끝을 내지 않으면 좋은 느낌 그대로 두고두고 남잖아요. 그래야 마음이 놓여요." 언젠가는 빛바래질까 봐, 또 행여 끝이 보일까 봐 두려워서, 도저히 사랑을 지속할 용기가 없는 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사랑하기를 멈추어요. 마치 벚꽃이 가장 찬란한 순간에 꽃잎을 모두 떨어뜨려 흔적더 없이 공중에 흩어 버리듯 말입니다. 시꺼멓게 시들어가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으려고 생살을 잘라내듯 아까운 꽃잎들을 바람에 내맡겨 버리는 것이지요. 더 이상의 머뭇거림은 상처가 될 지도 모르니까 떠나는 거예요. 이 얼마나 비겁한가요.(48쪽)

 

사랑과 마찬가지로 상처란건 직접 겪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도, 무뎌질 수 없음을 아마 모르나 보다.

 

유혹에서도 두사람의 입장은 차이가 난다.

한사람은 유혹을 치명적이나 너그럽고 또 슬픈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사람은 아예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빗대어서 시작한다.
`가끔, 특히, 정말, 문득, 아주, 바로, 늘, 모든, 너무` 등의 부사를 남발하여,
(부사가 하는 일은 주로 용언을 수식하는거지, 주어를 수식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용언으로 표현되는 감정들이 아니라, 주어인 그를 과장되게 수식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나마 그 부사의 남발로도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했는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편지를 쓸 때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꽃이나 풀을 말려 편지지에 붙이곤 했는데, 편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라도 집집마다 꽃말사전 하나쯤은 기본으로 있어야 했다`고 얼버무리는 겁쟁이다.
꽃보다는 과일이 좀 더 농염한 성적 유혹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고,
바쿠스의 포도주를 권하며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말고 본능대로, 감정가는대로 살라고 얘기는 하지만, 글쎄...
실천하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말뿐이다.

 

성공과 좌절 부분부터 다른 한사람이 하는 얘기도 들리기 시작한다.
성공이나 좌절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고서라도,
나도 넘어질 수도  있고, 또 넘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성실함으로 답이 찾아지지 않는데도, 계속 성실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황은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감상이 공감이나 소통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전제에서,
공감이나 소통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내면에 묻고 답할 수 있는 것이리라.
한사람은 자화상과 초상화를 보면 그 인물의 마음 밑바닥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걸로 미루어,
자신 또한 내면의 밑바닥에 이미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한사람은 `아직 제 마음속의 자화상을 찾지 못했다`고 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얘기가 뜬구름 잡는 식이다.

나이 관련하여,
한사람은 사람의 한평생을 70쪽으로 나누고 앞 40쪽은 본문, 뒤 30쪽은 `주석`이라고 얘기한다.
이 부분에서 강윤후의 시 `불혹 혹은 부록`이 생각났다.
한사람은 나이 듦의 씁쓸함을 넘어 해학 또는 해탈을 얘기한다.
신선놀음쯤으로 승화시킨 것 같다.
다른 한사람은 노인의 탐욕과 추함을 앞에 내세운다.
이쯤되면 나이 듦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는 젊음과 나이듦, 삶과 죽음,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대조를 통하여...
젊음의 발산과 늙음의 그냥 다 써버리고 모두 내어주는 순수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어찌 좀 억지스럽다.

 

일탈취미와 취향 묶어서 얘기할 수 있겠다.
옛사람의 일탈은 일탈이라기보다는 유머감각에 가까웠나 보다.
기껏해야 술을 빙자한 술탈 정도.

하지만, 예술이 일탈에서 태어난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고치기 힘든 취미를 `벽癖`이라고 하는데, 일탈의 연장선 상에서 얘기할 수 있겠다.
옛글을 보면 `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벽이 많다`고 해서 이 벽을 기특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단다.  
중국의 문인 장대張岱는 이런 글도 남겼단다.

 `사람이 벽이 없으면 사귈 수 없다. 깊은 정이 없기에 그렇다. 사람이 흠이 없으면 사귈 수 없다. 참된 정이 없기에 그렇다.`  (207쪽)

그동안 벽이 있다거나  취향이 독특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공감하거나 소통하기 힘들다는 얘기처럼 들려서 좀 그랬는데...
이제는 옛글과 장대의 문장을 들이밀어야겠다, ㅋ~.

하루종일 주워담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하고 또 들어야 하지만, 그 말들은 어느 하나 내 안에 머물지 못하고 허공을 빙빙 맴돈다.
말은  하면서도 마음은 주고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춥고 등이 시려운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가 혹시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혹시 내가 편견이나 원칙을 사람보다 앞에 두고, 의심과 이기심으로 소통을 방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화가가 그려놓은 동그라미를 가지고,

"원이요."
"해님이요."
"無요."
"마음이요."
답도 없는 해석에 연연하여 소통을 방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 김훈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젊은 날엔 말이 많았다.
 말과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았고 말과 삶을 분간하지 못했다.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기의 위태로움과
 말하기의 허망함을 알지 못했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언어의 외형적 질서에 하자가 없으면 다 말인줄 알았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강허달림 1집 - 기다림, 설레임
 강허달림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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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12-17 13:04   좋아요 0 | URL
두 사람의 수준이 좀 비슷했다면 더 감동을 얻을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죠.
그래도 선물받은 책이었어서, 설레어 가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숲노래 2011-12-17 16:28   좋아요 0 | URL
내가 좋아하는 대로 그림을 좋아할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누구든 내 삶에 따라
그림을 읽을 테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며
그림을 받아들이면 되겠지요...

2011-12-1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dsky 2011-12-18 15:51   좋아요 0 | URL
처음엔 상당히 흥미롭게 봤었죠. 특히 글의 구조쪽 측면에서요. 하지만 갈 수록 뭔가 두분의 글이 안맞아 간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쉽게말하면 동문서답같은.. 그래도 뭐 괜찮은 책이었던듯..

비로그인 2011-12-18 22:40   좋아요 0 | URL
아..저도 이책 읽었는데..다시 새록 새록 생각이 나는구요.. 잘봤어요 ^^

마녀고양이 2011-12-19 17:55   좋아요 0 | URL
말과 삶이 구별되지 않았다는, 김훈님의 글이 더 와닿네...

자기의 리뷰를 볼 때, 나도 자기랑 똑같이 느끼지 싶네, 한분은 맘에 와닿고 한분은 허공에 날리고, 머 그런.
고로............ 나는 안 읽겠다눈... ㅋ
아, 춥다 추워. 넘 춥다... 글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고 치료해야한다는 문구의 말, 난 참 좋아. 그렇게 살고싶어.
 

 














이 책은 나랑 책 읽는 취향이 거의 비슷한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주문하였다.
책의 앞표지엔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라는 문구가,
책의 뒷표지엔 `올리버 색스의 풍부한 일화와 말콤 글래드웰의 대중성을 갖췄다.`라는 문구가 유혹적으로 박혀 있었다.
`주기율표`라는 문구에서 `프리모 레비`를 떠올렸고,
`올리버 색스`라는 이름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편두통`의 자상한 예제를,
`말콤 글래드웰`에서 `1만시간의 법칙`을 얘기했던 그 필력을 기대했었나 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대에 한참 못 미쳤으나 재미없는 책은 아니었다.
난, 프리모 레비를 알고 좋아했던 터라 `주기율표`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그의 책 `주기율표`에서 21가지 원소들을 삶에 대입시켜 회상하고 어루만지고 가다듬어,
화학적 연금술사 마냥 반짝이는 문장으로 만들어냈던 게 기억났었을 뿐이다, 아웅~ㅠ.ㅠ

암튼, 이 책 `사라진 스푼`의 저자 `샘 킨`은 어떻게 보면 `프리모 레비`를 닮았다.
`프리모 레비`가 화학자이면서 글을 썼듯이, 물리학도이면서 글을 쓰겠다는 열정은 높이 살만하지만,
그의 그것이 아무리 반짝거리더라도, 프리모 레비의 그것처럼 두루 골고루 넉넉하며 적당한 온기까지 갖고 비추지는 못했다.

`사라진 스푼`의  재료가 되는 원소는 `갈륨`이다.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지만 29.`C에서 녹기 때문에, 화학 전문가들이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고 싶을 때 선호하는 물질이란다.
갈륨으로 찻숟가락을 만들어 내놓고는, 찻잔에 담근 찻숟가락이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실은, 갈륨이라는 원소를 나는 다른 의미로 알고 있었다.
갈륨 결핍이 뇌암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어디서 보았었다.
이것은 운동을 과다하게 열심히 하는 것은 뇌암을 예방하기는 커녕 위험도를 높인다는 얘기이다.
그 이유로 땀을 흘릴때 60여 가지의 필수 미네랄을 모두 함께 내보내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80년 동안 흘릴 땀을 운동 선수들은 30년만에 다 흘려 버린다.
이때 갈륨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셀레늄이나 기타 다른 미네랄도 함께 내보내게 된다.
요즘 나오는 영양제 중 발빠른 몇몇 실버 제품들은, 이렇게 부족하기 쉬운 미네랄을 보충해주고 있다.
 
얼마전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맞을때 눈물이 나고 살이 찢어질 듯 아팠던게 생각이 났다.
이 책엔, 최루액의 성분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듯 자세히 나와 있었다.
처음 브롬(브롬민)으로 시작한 이 최루가스는 프리츠 하버에 이르러 질소를 이용하게 된다.
질소를 암모니아로 만들게 되면서,
퇴비 대신 인공 비료의 선구자가 되어  세계 인구가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공이지만, 
독가스, 질소 폭발물 등을 만들어 위력적인 살상무기로 만든것도 바로 그 `프리츠 하버`이다.
결국 그는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수십만 명을 살상케하고 수백만 명을 공포로 몰아넣은, 화학전을 주도한 혐의로 국제전범으로 기소되기도 했었다.

그런 `질소`를 프리모 레비는 `주기율표`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여인의 입술을 치장하게 될 알록산이 닭이나 뱀의 분비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화학자라는 직업은 불필요하거나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혐오감들을 극복하라고, 아니 무시해버리라고 가르친다(내 경우 이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으로 더욱 굳건해졌다). 재료는 재료일 뿐, 귀할 것도 불쾌감을 줄 것도 없으며,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그것의 처음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질소는 질소다. 그것은 공기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우리 인간에게로 기적적일 정도로 순환된다. 우리 몸속에서 질소가 그 기능을 다하면 우리는 그것을 배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질소는 무균상태로 무해하게 남아 있다.

1981년 NASA에서 우주선 모의실험을 하던 기술자들이 질소에 질식사를 하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질소에 의한 질식사가 보고 되고 있다.
이걸 프리모 레비가 알게 되었더라도 `무해하게 남아있다`고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모든 유해함을 뒤로 하고 질소는 우리생활의 곳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웃음가스라고도 불리우는 `이산화질소`는 `마취제`로,
이산화질소는 강력한 산화제와 로켓연료로,  
질소 기체는 식품의 선도 유지 - 과자봉지의 충전제로,
액체 질소(-196℃)는 식품의 냉동제와 시료의 동결 보관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원소가 있는데, 그게 `베릴륨`이다.
베릴륨은 설탕맛이 나서 `미각을 속이는 원소`라고 불리운다.
나는 베릴륨을 스피커의 떨림판이나, 방진 마스크에 사용되는 재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치과 크라운으로 한때 사용되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설탕맛이 나면 오히려 좋을텐데 왜 지금은 사용되지 않을까 궁금하던 차에,
베릴륨 가루에 노출되면 폐질환이 치명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치과 크라운 뿐만 아니라 고급 스피커의 떨림판과 방진 마스크 용도로 다 사용 금지되어야 하겠다.

하숙집에서 음식을 재활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방사성 납을 살포했다가, 이튿날 `굴라쉬`라는 수프에 방사능 탐지기를 갖다대본 기지도 재미있다.


납이야말로 죽음의 금속으로 제격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납은 죽음을 가져다주고, 그 무거운 성질은 추락하려 함인데 추락은 바로 죽은 자가 하는 것이고, 그 색깔도 핏기 없는 죽음의 색이며, 이 모든 것은 납이 행성들 중에서 가장 느린 죽음의 행성인 `투이스토`의 금속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ㆍㆍㆍㆍㆍㆍ
암튼 주기율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방사성원소처럼 지극히 정치적 잇속이 개입되어 있는 원소들도 있고,
돈으로 쓰이는 지독히 자본주의적인 원소들도 있다.
돈과 얽힌 원소들이 더 오래되고 긴밀한 것 같다.

과학에서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주기율표에서 발견하는 대칭성과 반복성에 환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기율표의 아름다움에는 추상적인 것만 있는게 아니란단다.
예술적인 원소들은 온갖 형태로 변장하여 예술에도 영감을 준다.
금과 은과 백금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우며,
카드뮴이나 비스무트 같은 원소는 물감의 안료로 나타난다.
새로운 원소 합금으로 강도나 유연성을 높임으로서 디자인을 기능적인 것에서 경이로운 것으로 변화시킨 예로 휴대용 라이터, 만년필, 타자기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리튬처럼 다른 의미로 예술적인 영향을 미친 원소들도 있다.

리튬은 뇌에서 기분을 변화시키는 많은 화학 물질에 영향을 미치며, 그 효과는 복잡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리튬이 신체의 일주기 리듬, 즉 생체 시계를 재설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리튬을 복용하게 되면 활력을 잃거나 마음이 착 가라앉는 걸 느꼈다고 얘기한다.
다시말해, 리튬은 예술가에게 건강을 준 대신 예술을 위축시킨다.
광기 어린 천재를 평범한 인간으로 만드는 원소인지도 모르겠다.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예술을 위축시키는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이라고 보아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 탄소 ;
탄소가 우리들 속에 들어 있다.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신경세포의 문을 두드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세포의 일부분인 또 다른 탄소의 자리를 빼앗는다. 이 세포는 뇌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뇌,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뇌다. 문제가 된 세포,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문제의 원자는, 아무도 묘사하지 않았던 엄청나게 섬세한 놀이인 내 글쓰기에 속해 있다. 지금 이 순간 미궁처럼 목잡한 줄거리를 벗어나 내 손으로 하여금 종이 위의 어떤 여정을 따라 달려가며 기호들의 소용돌이를 그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세포다: 위로, 아래로, 두 차원의 에너지 사이로 이중 도약을 한 이 세포는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


* 아연 ;
부드럽고 예민하며 산에 고분고분해서 한 입에 먹히는 아연도 불순물 없이 아주 순수한 경우에는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럴 경우 아연은 어떤 결합도 완강히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충동하는 두 가지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악에서 지켜주는 보호막 같은 순수함에 대한 찬미와, 변화를 일으켜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불순함에 대한 찬미가 그 둘이다.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 인 ; 인은 감정적으로 중성이 될 수 없었다.

* 금 ;
그것의 토대는 노동자를 억압하고, 다른 이의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들의 배를 불리고, 생각할 줄 알고 파시즘에 굴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었고, 체계적이고 계산적인 거짓말이었다.

* 바나듐 ;
이 이야기는 꾸며낸 게 아니다. 현실은 허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덜 정돈되어 있으며, 더 거칠고 덜 원만하다. 그것이 같은 차원에 놓여 있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암튼 똑같은 주기율표에서 출발하지만,
프리모 레비의 그것이 자신이 경험했던 비극의 역사가 세상을 향한 외침이 되도록,
자신의 인생을 관통했던 사건들을 원소와 더불어 끄집어 냈다면,
샘 킨의 이 책 `사라진 스푼`은,
프리모 레비 이후로도 발견되고 발전되어온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워가는 현대과학의 나머지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들려주고 있다.
프리모 레비의 그것이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면,
샘 킨의 그것은 무한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미래를 꿈꾸며 열려 있다.
우리가 간과한 칸을 찾아보는 정도를 지나서, 주기율표의 한계를 벗어나는 확장에 대해서도 얘기하다.
그러면서 주기율표의 변화를 주어 류트처럼 생긴 것, 프레첼처럼 생긴 것, 피라미드처럼 생긴 것, 뫼비우스의 띠 모양 등을 애기하고 있다.
세상에나~!
삼차원 팝업 주기율표도 얘기한다.

암튼, 과학은 인간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주기 의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모 레비가 되었건 샘 킨이 되었건 간에, 풍요와 편리를 앞세우다가 `인간`이 간과되어서는 안되겠다.

난 아무래도 미래를 내다보기 보다는 과거에 연연해 하는 사람인가 보다.
프리모 레비의 이런 표현들을 아직 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을에는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냄새가 난다. 낙엽, 휴식하는 대지, 불타는 나뭇가지 더미, 즉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끝나가는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 말이다" 
하늘에서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 아침, 쌓이기도 전에 녹는 눈을 보며 무슨 청승인가 모르겠다.

오래전 나에게 프리모 레비를 권했던 그대여,
그러니 내가 그 책을 거절했다고 하여 그대의 마음을 거절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쯤에서 충분히 알아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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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12-09 11:44   좋아요 0 | URL

 

 


pjy 2011-12-09 14:40   좋아요 0 | URL
오~~~~~~홋, 한참 내용을 읽고, 알고보는대로 완젼 신기합니다^^

마녀고양이 2011-12-09 12:56   좋아요 0 | URL
헉, 이 책 기대에 못 미쳐?
그런데 리뷰는 왜이리 유혹적이야? 아우, 이거 읽으려고 사놨는데 먼저 읽었군... 에휴휴.
난 언제쯤 책을 읽을건지, 지금은 페인트칠이나 잘 해야징, 끙.

2011-12-09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1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4 00:17   좋아요 0 | URL
흠. 이 책과 함께 `그대의 마음`은 양철님에게 머물러 있군요.
+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매력적입니다.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넋 놓고 앉아서 듣다가,
(역쉬~깔때기 정봉주답게 얘기가 귀에 착착 달라붙는다.)
다른 날보다 한 10분쯤 늦게 출발했는데 한 시간가량 늦어버렸다. 

친구에게 툴툴거리며 문자를 보냈더니,
위로랍시고 이런 난해한 시를 보내왔다~ㅠ.ㅠ  

         차가 막힌다고 함은 
                               -  김 연 신 -

차가 막힌다고 함은, 도로에 차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수용능력보다 차의 대수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표면적보다 차의 표면적이 많아서, 이제는 분명하다.
일정한 구간에서 차들의 표면적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에 가까이 도달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차들의 표면적의 합과 차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필수 여유 공간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을 초과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김장을 하러 다녀왔다.
말이 좋아 '김장을 하러'이고,
내가 한 일은 일종의 '기쁨조~!'
읍내에서 돼지고기 수육감으로 넉넉히 사고,
쌍화탕 달여 레토르트파우치에 담고,
OO댁 큰며느리를 강조해가며 함박웃음을 웃어주고,
밭에서 배추 뽑고 절이고 하느라 고생하신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해수찜 가는 게 '하이라이트'
이 분 저 분, 마른 등을 밀다가...병 중에 여위셨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도 찔끔~ㅠ.ㅠ
동네로 돌아가는 길,
까만 밤하늘에 반달이 걸렸더라.
 

             반  달
                    - 함 민 복 -

그대도 달을 보고 있는가

반쪽을 그대가 보고 있는 달로 채워본다
어이 웃는가, 내 혹 그대 마음 베꼈는가?

가을벌레 울음 여울에
몸이 다 젖었을

그대도 나도
반달 

하늘에 뜬 반달 
바다에 뜬 반달

합하면 만월滿月이라고 말하지 말게
그냥 어깨에 슬며시 손을 얹어주시게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꽃봇대
  함민복 지음, 황중환 그림 /
  대상미디어 / 2011년 11월 

 
 

 

  아키버드 (Aquibird) - 오소소
  아키버드 (Aquibird) 노래 /
  Beatball(비트볼뮤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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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05 15:58   좋아요 0 | URL
좋은 시 보고 가요. 오랜만에 ^^ 책도 보관함에 넣고..보관함에 책이 삼천만원이 넘었네요. 헉.

sslmo 2011-12-09 12:38   좋아요 0 | URL
어머~반가워요!
즐찾해 놓고 몰래 엿보기만 했었는데...
섬세하고 결 고운 시를 쓰시던 시인 `OO`님이시군요.

자주 뵈요~^^

전호인 2011-12-05 16:01   좋아요 0 | URL
반달을 여러번 낭송해봅니다.
시가 상념에 들게 하는군요.^^

sslmo 2011-12-09 12:36   좋아요 0 | URL
함민복 님, 이 시도 좋죠~^^
요번 시집, 시화집인데 그림도 이쁘더군요!

하늘바람 2011-12-05 18:37   좋아요 0 | URL
저도 님 덕분에 좋은 시 읽고 가요,
김장 담그고 오셨는데 안 힘드세요? 그런데 툴툴대는 모습은 없으시니
참 본받고 싶어요

sslmo 2011-12-09 12:34   좋아요 0 | URL
저라고 왜 안 툴툴거리겠어요?
저 하도 툴툴거려서 `대나무 숲` 제대로 키우는 거 모르셨구나~^^
전 하늘바람님이 본 받고싶어요~!

2011-12-06 00:13   좋아요 0 | URL
수육 맛있겠다. 김장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양철님의 발랄한 모습이 그려지네요.
노래도 잘 들었어요.^^

sslmo 2011-12-09 12:32   좋아요 0 | URL
수육 직접 안 삶고, 맞춰버렸다고 혼났어요~ㅠ.ㅠ
하지만,내가 삶았으면 아무도 못 먹었을거라는~^^

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발랄하다고 표현해 주시고...보신듯~^^
그쵸, 한마리의 아기곰이 뒤뚱거리는 것 같았죠, ㅋ~^^

잉크냄새 2011-12-06 15:26   좋아요 0 | URL
저 <쨍한 사랑 노래>는 문학과 지성 300번째 기념 시집이군요.
시를 읽지 않은지 오래되어 다 가물가물...

sslmo 2011-12-09 12:28   좋아요 0 | URL
아, 잉크냄새님...오랫만이시네요.
왠지 님의 닉은 시를 읽는것보다는 노트에 곱게 베껴쓰는거랑 더 잘 어울릴것 같다는~^^
참, 여행기랑 여행 사진 업글하셨어요?
마실가야겠당~!

2011-12-0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2-09 12:58   좋아요 0 | URL
맞아, 저번에 이 페이퍼를 읽을 때
그때도 생각한건데, 이 구절 딱 좋아.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의심없이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연습 중이랍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내 눈에 남들은 두개, 세개를 다 가진 듯 보이기도 했다.
하날 포기해야 다른 하날 얻어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지는 얼마 안됐다.
두 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져서 코가 깨져보고 나서야 얻은 깨달음이다. 

지난 주말 지독한 고뿔을 핑계로 시댁 김장을 한주 늦추고 김광진 콘서트도 포기하고, ㅅ님을 만났다.
처음, 보디 가드를 두 분씩이나 대동하고 나오셔서 나를 살짝 놀라게 하셨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매력적인,
게다가 경쾌한 목소리와 씩씩한 걸음걸이를 가진 분이셨다.

ㅅ님의 매력에 흠뻑 취한 난, 뾰족굽 롱부츠 신은 것도 잊은채 팔짱을 끼고 골목골목을 팔랑거리며 꿈꾸듯 춤추듯 날라 다니고 뛰어 다녔다. (마음만~^^)
종로3가에서 만나, 인사동 거리를 누비고, 쌈짓길을 배회하고, 조계사를 안내하고,
다시 인사동 거리를 누비고, 찻집에서 수제 빙수를 먹고, 다시 종로3가까지.

실은 ㅅ님을 보자 생각난 단어가 바로, '과사상비(過思傷脾)'였다.
'과사상비'란,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비위를 상한다"는 뜻으로...
생각을 줄이기 위해서는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면 걷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다.
'수족사말주비위(手足四末主脾胃)'이다.
팔 다리는 비위가 주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비위를 움직이고자 할 때 손 발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데,
걷는 것이 손 발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겠다.
 
왜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아파하면 안 되나?
남들보다 먼저 아파해서 세상이 병들었음을, 썪어빠졌음을...고통이 오기전에 미리 예언하면 안 되나?

     
        파리와 더불어
                  
                      - 김수영 -

다병(多病)한 나에게는
파리도 이미 어제의 파리는 아니다

이미 오랜전에 일과를 전폐해야 할
문명이
오늘도 또 나를 이렇게 괴롭힌다

싸늘한 가을바람 소리에
전통은
새처럼 겨우 나무그늘 같은 곳에
정처(定處)를 찾았나 보다

병을 생각하는 것은
병에 매어달리는 것은
필경 내가 아직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비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 광막한 양지 쪽에 반짝거리는
파리의 소리 없는 소리처럼
나는 죽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나도 잘,,,못하는 일이지만,
나는 ㅅ님이 간혹 고통이 오기 전에 미리 아파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보내주셨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
  최규석 지음 /
  사계절출판사 /
  2011년 11월

세상은, 불평불만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이야기들로 차고 넘친다. 그래도 예전에는 삶의 고통을 견디는 굳건한 의지, 앙다문 이빨 정도는 허용해 줬지만 요즘에는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요새 떠도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고통조차 웃으며 견뎌야 한다. 아니 애초에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고통을 고통이라 여기는 부정적 태도를 갖는 순간 우주의 에너지는 당신을 못 보고 지나칠 것이다. (4쪽, 작가의 말 中) 

고통조차 웃으며 견디라신다.
아니,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단다~ㅠ.ㅠ

"요 근래에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했어.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단순한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고통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지. 또한 이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한한 용기가 샘솟아 더 이상 무엇도 괴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지. 이 고통은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야."
 개구리들은 모두 그를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고통을 선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민한 개구리는 고통을 참을 수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냄비 속의 개구리 中)

'우물 안 개구리' 와 '냄비 속 개구리'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한참 다르다.
우물과 냄비라는 주어진 환경부터가 그렇다.
우물은 쉽게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것이고,
냄비는 마음만 먹으면 폴짝 뛰쳐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나도 쿨하게 인정할 수 있었음 좋겠다. 

ㅅ언니를 따라 팔랑거리며 걸은 나도, 過思傷脾 手足四末主脾胃이다.

오늘(12월 3일)은 지난 주에 미뤄둔 김장을 하러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데, 광화문 광장에 10만 인파가 모인단다. 
내가 서유기에 나오는 오공이여서 뽑은 털의 개수만큼 둔갑이 가능했음 좋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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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1-12-03 11:34   좋아요 0 | URL
문득 ㅅ언니가 나에게도 친숙한 언니로 다가옵니다. ㅎ
저도 님이랑 팔랑거리며 춤추듯 꿈꾸듯 인사동 거리를 날아 다니고 싶어요~~~
평일엔 언제 가능하신거예요?

2011-12-04 22:30   좋아요 0 | URL
흠 손과 발을 휘두르며 많이 뛰고 걸어야겠군요. 후후
ㅅ언니를 생각하던 차에, ㅅ언니로부터 책이 왔다는 대목이 왠지 좋아요. 그리고 이 대목에서, 양철님은 참 정이 많으시지 하는 생각을 또 하고..

프레이야 2011-12-03 21:33   좋아요 0 | URL
몸은 다 나으신거에요? 오늘 김장하러 가셨겠네요.
김장을 해도 되실 정도로 나으신거에요?
그나저나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이거만 되어도 마음속 소란스러움이 많이 사라지겠지요?^^

cyrus 2011-12-03 21:43   좋아요 0 | URL
김장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실거 같아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몸 건강에 유의하셨으면 좋겠어요. ^^

하늘바람 2011-12-04 10:11   좋아요 0 | URL
ㅅ언니가 누군지 알것같아요.
^^
지독한 고뿔은 좀 어떠세요?
인사동을 팔짱끼고 다니셨다니 넘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