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무 에 게
이시영
어느 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 하는구나
내가 네 발 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알은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무늬, 문학과지성사, 1994>
일부분을 전체인양 보고 헤프게 맘 주는 게 내 일상이다.
물론 책 속이나 넷 상에서의 일이다.
일상에서는 비겁할 정도로 감정 표현에 서툴고 그래서 곁을 안준다는 소리를 듣는다.
헤프게 맘을 주는 만큼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럴때 책 속이나 넷 상이어서 좋은 점은 피드백이 없다는 거다.
감정적으로 뒤 끝이 없다.

이옥도 그런 이 중의 한명이다.
뭐, 그나 그의 글이 좋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가 쓴 심생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의 글들을 부비고 만지고 침 발라 넘겨가며 더듬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심생전을 읽으면서 진부하다 싶었고, 그도 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이런 얘길 절절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를 읽기전에 김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리워하다 죽으리>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심생전의 내용이 그랬고, 김려가 유배지에서 연희라는 기생으로 하여금 수발을 들게 한 것도 '좀'그랬다.
후세에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조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일부분을 가지고 옛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상상력이 과하거나 덜하면 개연성에 실패한다.
섯부른 기대는 아쉬움이나 실망감을 낳기도 한다.
옛사람의 발자취는 그 자리에 그대로 말이 없다.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너무 많은 것을 캐내려한 내 스스로를 반성하는 수밖에 없다.
난 어릴 때부터 동성 친구가 별로 없었다.
어려선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다니며 하춘화의 강원도 아리랑 따위를 부르는 재롱을 부렸고,
할아버지 바지 가랭이를 잡고 다니며 장기판에서 훈수 두는 법을 배웠다.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심심하면 공부만 했다.
지금도 동성의 친한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물론 상대방이 생각하는 기준으론 가감이 있겠지만...)
그 친구들도 하나는 뉴질랜드에, 하나는 필리핀에, 하나는 결혼 15년 차 아이가 없어서, 또 다른 하나는 아이를 키우느라 자주 못 만난다.
다른 한 명은 이혼하고 아주 자유분망한 삶을 살고 계셔서 마음만 먹으면 애니타임, 애니웨이, 애니웨어 이건만...남편이 싫어한다.
반면 남편은 친구라는 말 앞에 '친한'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이다.
손가락, 발가락 아니 내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한 것보다 많다.
남편이 첫사랑이었던 나는 그게 이상하고 신기했었다.
남들은 남녀 사이의 사랑을 가지고 고민하던 그 시절, 난 남자들끼리의 우정, 여자들 끼리의 우정이 두께가 다른 것을 갖고 고민했었다.
그때 레코드 판으로 김민우의 '친구에게', '타버린 나무' 이런 음악을 들었었다.
그런 남편은 푸릇푸릇 하던 때, 친한 친구 하나와 사업을 했었다.
그리고 친구의 배신, 부도 등의 뻔한 수순을 밟았다.
10년 전인가, 도망을 다니던 남편의 친구는 아들 초등학교 입학을 시켜야 한다고 선처를 호소했었다.
남편은 그 친구를 용서했고 그 아들은 어디선가 학교에 다니고 있을거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를 읽는 동안 잊혀졌던 그 일이 떠올랐고, 한참 전에 읽고도 리뷰를 쓸 수가 없었다.
책의 내용은 좋았지만, 이옥과 김려와 저자 설흔의 문체가 뒤섞여 어느 하나 두드러지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어느 글이 이옥의 것이고, 어느 부분이 아들 우태의 목소리인지, 어디부터가 김려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떼어놓고 보면 하나 같이 멋진데 말이다.
<그리워하다 죽으리>에서도 그랬었기 때문에 수사가 화려한 작가 설흔의 문체를 김려의 문체인 줄 잠깐 착각했었다.
작가의 화려한 수사 때문에 잠깐 내가 방향을 잃었지만, 작가가 그려낸 김려는 제대로이다.
김려는 툭하면 입술을 감쳐무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웃어야 그를 따라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존재이다.
웃다가 입을 틀어막기도 한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는 척 고개를 살짝 위로 젖힐 뿐이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오랜 세월 이옥을 마음 속에 담아 둘 수 있었던 것이고 그를 추억하고 아로새겨 문집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이 청소년 용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들 우태가 등장하기 때문인듯 한데...
이팔 청춘을 갓 넘긴 나이로 묘사되는데...너무 조숙하다. 어투도 아버지를 빼닮았다.
"거듭 말하지만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외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방외인이라는 말입니다. 그 글이라는 게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에 다름 아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182쪽)
벗이라고 하지만, 김려가 이옥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다.
벗의 말이라 못을 박았지만 실은 이옥 자신의 마음이 담긴 말일터였다. 젊은 날의 이옥은 술을 즐기기는 하되,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 한 발 물러나는 게 이옥이라는 사람의 특징이었다. 뛰어들기보다는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이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의 이옥은 술에 탐닉하는 자의 모습이었다. 가슴 아픈 건 술에 탐닉하는 이유였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술 없이는 근심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마시고 또 마시는 것이었다.(109쪽)
김려는 그런 이옥의 술에 대한 탐닉을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한다.
하늘을 보았다.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입니까? 내게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늘은 대답 대신 거센 바람 한 줄기만을 보내 주었다.(128쪽)
이 책을 통틀어 이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고 하면, 이옥이나 김려에게 좀 미안한 일이 되려나?
때론 어떤 의미심장한 말이나 사건보다도 큰 울림을 주는 게 있게 마련이다.
무조건 글짓는 것은 경계해야 하네. 남들이 짓는 글이나 지어서는 안 되고 글 속의 사람이 되어야 하네.(191쪽)
이런 경계를 읽었지만, 나는 오늘도 무조건 글을 쓰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지만...누군가의 글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부분은 유사할 수도 있다.
글 속에 나를 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내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고 느낌을 붙들어 두기 위함이다.
나는 글 속의 사람 따위는 될 수도 없고 넘보지도 않지만, 읽기 쉽고 알아먹기 쉬운 따뜻한 글을 쓰고는 싶다.
내가 글을 문단 단위로 끊지 않고 내 호흡 대로 끊어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아껴 읽고 있는 <라인업>의 켄 브루언은 짱이다.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역시 멋지다. 날이 맑아도 멋지고 날이 흐려도 멋지다. 산도 멋지고 물도 멋지다.
...요컨대 그윽해서 멋진 것도 있고, 상쾌하여 멋진 것도 있고, 활달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아슬아슬하여 멋진 것도 있고, 담박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알록달록하여 멋진 것도 있다. 시끌시끌하여 멋진 것도 있고, 적막하여 멋진 것도 있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추억을 끌어안고 되새김질 하며 사는 삶은 멋진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남편이나 아들에게 이옥이나 김려 같은 삶을 살라고는 못하겠다.
나라면 추억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택하겠다.
사람 사이의 거리나 간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요즘은 이 정의가 옳지만은 않다.
인터넷과 각종 통신의 발달도 한 몫 하겠지만,
거리나 간격의 가까움이나 좁음 따위는 친밀함의 척도가 아니라, 습관적인 만남의 덧씌워짐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 있어도 서로를 더 이상 가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멀리 있어도 이미 멀어진 그 거리 이상 더 멀어지지도 않는다.
거리나 간격은 소통할 수 있고 없음에 따라 가까워지기도 하고 한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친구란, 또는 관계란 오래 입은 옷처럼 세월이 지나 몸에 익고 편안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해지고 낡으면 새로 장만해야 하는 그런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슬픈 이유는 헤프게 맘 주고픈 사람이나 대상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요즘 이 곡을 끼고 살았었다.
내게는 때때로 위안이 되던데...그댄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