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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5월이다.
그리고 다시 그날이다.
잊고 지냈는데...얼마전 들른 G도시 곳곳에서 이런 현수막을 만났었다.
그가 생각나서, 노란 손수건이 생각나서, 한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김현의 '독서일기'를보면, 수많은 작가들이 나오는데...그 평이 혹독하다.
하지만,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향해서는,'...그의 글은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을 때에도 화려하다...소박도 그때에는 하나의 수사이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암튼, '자전거여행'시절부터 김훈이 부러웠던 난, <남한산성>을 읽고는 그 부러움이 극에 달했는데...봄빛이 '자.글.거.리.는' 그곳에서 만날 놀았다면서, 글은 언제 써낼 수 있는 것인지...참.
'백조가 겉으로 유유히 물살을 가르기 위해선, 밑으로 엄청난 발길질을 하는 거겠지'하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책의 첫머리에,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나는 다만 고통 받는자들의 편이다.'라고 김훈은 얘기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최명길 속에 김 훈이 들어있는 줄 착각하였다.
소설 속에 나오는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 최명길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을 먹지만...직접 움직이고 행동하고 몸소 보여준 사람 또한 최명길 밖에 없다.
김훈이 일러두기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한 부분을 간과하고 겉으로만 읽었다면, 남한산성에 47일동안 갇혀 번민하는 임금을 두고, 결사항쟁을 고집하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말싸움으로 밖에 안 읽힌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읽어간다면, 이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게 비단 대책없는 말싸움은 아닌 것 같다.
그래야 '삶과 죽음'사이에서 번민하던 임금 인조도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장님이 벽을 더듬는 것 같다고 표현되어 나름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임금의 말투 또한,수도를 잃고 파천당하는 자의 그것이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뾰족한 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쪽이 잘 다듬고 벼리는 칼등이라면, 한쪽은 피흘려야 하는 칼날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산문집에서,
수학문제 한문제 못 푸는 건 부끄럽게 생각했었으면서, 몸을 움직여 하는 일이 서툰 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그게 부끄럽다고 했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임금이 자기 백성이나 나라를 간수해 내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워 할 일이고,
조정신료들이 임금을 보필하지 못하고 백성을 굽어살피지 못함도 부끄러워 할일이다.
반면,대장장이 서날쇠나, 송파나루 뱃사공, 그의 딸 나루, 정명수의 삶은...
그들의 입장에서보면 순간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절절하고 치열하게 살아낸 당당한 것이 된다.
단적인 예가,김상헌이 만난 송파 나루의 뱃사공이다.
뱃사공은 전날 어가행렬을 얼음 위로 제대로 이끌었고, 당시 김상헌을 제대로 이끌었음에도, 언제 또 청병을 건너주고 곡식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김상헌에게 목을 베이고 만다.
김상헌의 대의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뱃사공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다.
서날쇠라는 대장장이에게선 삶의 치열함을 넘어 神인의 경지까지 느껴진다.
그는 눈썰미가 매서운 대장장이로 묘사되고 있는데...
연장을 구하러 온 사람의 몸매와 근력, 팔다리의 길이와 허리의 곧고 굽음을 잘 살펴서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 키작은 자와 키 큰자의 연장을 달리 만들어주었다고 표현되는 게...장자의 소각뜨는 신인을 생각나게 하였다.
서날쇠는 대장장이로만 신인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니라,
임금이 피난오는 상황을 보고 가족을 재빨리 피난시키고 자신의 농기구들과 곡식들을 땅 속에 묻을 정도로 선견지명을 갖고 있으며,
행상을 하며 성 밖의 지리를 눈여겨 보아놨던 덕에 왕의 특명으로 밀서를 성밖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성안의 시간이 다했으므로 성밖의살 곳을 봐두어야 겠다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다.
정명수의 삶도, 자신에게 주어진 살믈 치열하게 살아간 건 마찬가지이다.
은산관아의 노비였던 그가, 부모와 여동생이 얼어죽고, 해산뒤에 죽고, 소달구지에 치여죽자...혈육과의 관계에서 놓여나 홀가분하다며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다.
결국 투항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처음부터 투항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칸의 사신으로 오는 용골대가 성안을 보고 정명수와 나누는 얘기는, 성안 사람들의 체념을 헤집고 들여다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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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하구나.저것이 싸우려는 성이냐?
-견디자는 것이지요
-견디어?견딜수가 있겠는가?
-견들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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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지키고 견디어 내자는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어긋나가며 아랫돌을 빼 윗돌을 얹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은 '내 한몸 불살라서...나라와 조국, 내 자식을 구하겠다.'할 수는 없었을까?
주화파와 척화파들도 말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구하나 창칼들고 나서 '나를 따르라' 앞장 서 선동할 수는 없었을까?
임금이 성 밖으로 내보내는 격서를 위해 최명길을 불렀을때...최명길의 마음을 김훈은,
'바람이 길게 모아가서 행전마당 나무들이 울었다.'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최명길은 품계높은 사대부 중 몸소 실천하려는 의지는 가지고 있었지만,
밥벌이의 지겨움에서의 김훈처럼, 몸을 움직여 하는 일에 서툰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죽고,굶어죽은 말들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죽는 순환의 고리'라는 부분에서 누구 하나 그 고리를 끊어주는 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했었다.
군병들이 입을 옷도 없는데 성첩의 빈자리를 허수아비로 채우나는 얘기나, 허수아비에게 군복과 벙거지를 씌워냐 한다는 부분에선 어이없는 눈물이 흘렀다.
병조판서 이성구의,
"지금 사대부들이 성첩에 올라와서 한가지를 보면 열가지를 말하고, 문자를 써서 무식한 군병들을 꾸짖고 조롱하며, 주역을 끌어대며 군의 길흉을 입에 올려 군심을 불안케히니..."
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시대를 초월한...말만 앞서는 지식인들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언젠가 문국현이란 분이 한 말이 생각난다.
"지방에 가서 악수하는 장면만 있을 뿐,...심청이 아버지 눈뜨듯 변화를 보게 하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칸은,
"말을 접지말라. 말을 구기지 마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하는 말들로 결연하고 단호한 실행력을 보여준다.
내가 아쉬웠던 건,
남한산성에 있는 동안은 글만 익힌 그들이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남한산성에서 걸어나왔을 땐, 말이나 글에서 걸어나왔을 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다.
임금이 투항하고 세자가 볼모로 잡혀갔다는 얘기는 있지만,
누구 하나 칼을 갈았다는 얘기나 칼을 벼리고 칼자루를 쥐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서날쇠만 돌아와,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절기상 한참 지났지만, 경험상 봄농사를 시작하기 너무 늦지 않았다고 희망을 얘기한다.
이 소설이 슬픈 것은,
몰라서 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만 무성하고 행하지 않으려는 그들이...우리 주변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