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논리야 그렇다손 쳐도,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것으로 들먹이는 게 수사학이라니...
왠지 슬퍼지다 못해 눈물이 나려하지만...
이 책은 읽게 된 것도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게 좀 멋있어 보여서였고,
(언젠가 '책 읽는 남자는 섹쉬하다~'이런 페이퍼를 써서 뭇 알라디너의 원성을 들었었지, 아마~.)
이 책을 읽은 후의 소감을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것도...
어느 분의 서재에서 '돈 카밀로와 패포네'의 페이퍼를 보고 하종강의 추천사 속 한 구절이 떠올라서이다.
읽기는 읽었지만, 이 책은 그러니까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행동이나 사고의 변화도 아닌 '수사'라니 말이다.
수사라고 하면 일단 말장난이 생각난다.
이 부분을 그냥 접고 들어가게 되면 맞닥들이는 것이,
이 책의 겨냥 대상인 '활동가'와 '조직가'에게 '수사학'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행동이나 실천보다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 행동이나 실천만큼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마음으론 받아들이기 버거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촛불집회 때의 그 연대와 소통은 화려한 수사가 아닌 참여로 빛을 발을 발했었고...
요즘 회자되고 있는 쥐그림도 잘 그린 그림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그려지는 행위를 통해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한줄로 줄이자면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데,
나는 우리의 무기는 말이 아니라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난 느낌은 그런대로 괜찮았았는데...
이런 변신을 말 뿐인 또는 행동 뿐인 것으로 떼어내지 않고 '언행일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이다.
물론 나는 하종강님에게 홀릭하는 경향이 있어서...그의 추천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배시시 거렸고,
이 책의 윤곽을 잡는 것도 그의 추천사를 통하여 했다.
하종강님의 추천사 속에서 만나게 되는 김진숙은 황홀했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하나 사서 크레인 위로 올려 보냈다. 그가 트위터에 남긴 수많은 문장 중의 하나다.
"이누무 건 약도 빨리 떨어지구 충전시키기 바쁘이. 근데 갈아 낄 때마다 참 거석한 게 할딱 베낄 수밖에 없는 건지. 야도 굴욕감 만만찮을 텐데......'(6쪽)
돈 까밀로와 뻬뽀네를 언급하며 인용한 트위터의 짧은 글도 무한감동이었다.
'말하고 논쟁할 때 문법이나 단어의 잘못을 가지고 적을 공격하는 것은 가장 비열한 짓이다.'심하게 뜨끔했다.(8쪽)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하종강님 추천사 중의 백미는 이 문단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중이 활동가들의 언행과 글을 통해 운동 전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각종 매체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운동의 실체와 진정성을 대중에게 올바로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다. 활동가들에게는 자신이 바른 말을 했다는 만족감보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올바른 영향이 더욱 중요하지만 때로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7쪽)
나처럼 '수사학'이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이라면...하종강님으로 윤곽을 잡은 후, 살을 입히면 되겠다.
결국 이책에서 얘기하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게 하는 건, 수사가 아니라 소통이고,
소통의 방법으로 글 잘 쓰는 법, 말 잘 하는 법, 몸 잘 쓰는 법이라는 세 가지 뼈대를 제시하고 거기에 급진주의자에게 알맞은 새로운 살을 입혔다.
그가 말하는 수사가 소통으로 바뀌는 논리는 이렇다.
*수사를 바꾸면, 소통이 바뀐다.
*소통을 바꾸면, 경험이 바뀐다.
*경험을 바꾸면, 사람들의 성향이 바뀐다.
*성향을 바꾸면, 사회에 심대한 변화의 조건이 생긴다.(24쪽)
활동가가 수사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활동가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조건에 관심을 두며, 자신과 타인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따라서 세계를 바꾸는 것은 삶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중요하나, 놓치는 것이 너무나 많다. 활동가가 바꾸려 하는 이 세상에는, 물질적 조건 이상의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들은 게획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세상에는 물질적 조건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도 존재한다. 그 경험에는 언어, 지각, 이야기, 담론, 이데올로기, 심리, 사회 관계, 세계관이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물질적 조건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것을 둘러싼 비물질적 수사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활동가는 언제나 수사를 어느 정도 고려한다.그들은 시위와 직접행동의 형태 및 계획을 놓고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논의해 봤자 물리적 활동과 실질적 조건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자 나약한 짓이다. 수사를 얕잡아보면, 공공영역 전체와 소통하는 것도 막히고, 거기서 정치적 결과를 내는 것도 어렵다.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양쪽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 생각을 가능한 한 명쾌히 제시하겠다. 나는 물질적 사항을 내치거나 무시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안전하게 살 만한 집이 필요하고, 양질의 건강관리를 받는 것도 필요하고, 믿음직한 교통, 지속 가능한 환경에 있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의 불평등을 은페하고 생산하는 독재정권, 군부체제, 자본주의 하부구조, 거대한 관료체제와 싸우고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물질적 사항은 사람들의 살아 숨 쉬는 몸의 욕구, 필요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 이해, 지각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비물질적 문제다.(39~40쪽)
저자는 실제 활동가들이 수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알고, 지금 사회가 수사를 혐오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열가지 신화 벗기기'는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는데...
촘스키를 예로 들어, 그가 급진주의에 기여했던 것은 탁월한 분석 덕분이지, 능통한 연설 때문이 아니다.아무리 촘스키라도 조금이라도 연습하고 손질하면 더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75쪽)고 얘기한다.
그가 얘기하는 수사의 적절한 예는 피델 카스트로였다.
연설자와 청중은 그곳에서 하나가 되는 계기를 느낀다. 몸말, 눈맞춤, 억양, 말 빠르기, 손직, 끄덕임, 잠깐 멈춤, 침묵은 물론 헛기침과 안달하는 손놀림까지 게기를 창출한다.(95쪽)
다시말해, 이 책은 수사라는 비물질적 노동을 어떻게 읽어내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소통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다.
취지는 가상하나,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adele의 chasing pavements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