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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ㅣ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6년 연애하다가 결혼에 골인하여 16년째 무난하게 살고 있지만, 난 결혼허락을 좀 힘들게 받았다.
우리집에선 시골 종가집 맏며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말렸었고,
그쪽 집에선 내가 직업을 갖게 되면 남편 뒷바라지, 소위 말하는 내조에 소홀할 거라는 이유에서 였다.
어떻게 어떻게 결혼하여 살아온 16년을 돌이켜보면 내가 내조를 한 것도,남편이 외조를 한것도 없이...그냥 각자 독립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 각자 독립된 삶이 어떤 때는 플러스, 어떤 때는 마이너스 였겠지만...남편이 사업 실패로 허우적거릴 때 같이 침몰하지 않은 걸로 난 플러스라고 굳게 믿고 있다.
장황하게 '내조'에 대해서 늘어놓은 이유는,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아직도 내조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는 듯 느껴져서이고,
하지만 내조,외조를 떠나서 독립된 자아를 가진 삶이 반짝일 수 있다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이다.
배려라는 건 상호 간의 일이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서른다섯 정도된 의사인 남편인데,
남편은 아내와의 1주년 결혼기념일도 못 챙길 정도로 바쁜데,
아내인 하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제대로 내조하고 있다.
"일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내가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생긋 미소 지었다.
순간 어두침침한 방의 형광등이 갑자기 밝아지고,완전히 차가워진 복도 공기가 섭씨 2도 정도 따뜻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오감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증명하는 것 같다.(93쪽)
생기 넘치는 명랑한 목소리가 가슴에 상쾌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좌식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94쪽)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드럽고 투명한, 아름다운 목소리이다.
"하지만."
나를 향해 뒤돌아 온 아내가 갑자기 내 가슴에 달려들었다.
"난 여기서 이치 씨와 올려다보는 이 마을의 하늘이 제일 좋아요.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함께 산보할 수 있는 날이 있으면 좋겠어요."(97쪽)
아내인 하루는 전문 사진사이지만,
남편이 커피를 원하면 (여러사람이 함께 쓰는 1층의 공용주방에서 물을 담아다 놨다가) 커피를 딱 맞춤으로 대령하고,
남편이 환자 때문에 다른 지방 제과점 카스테라가 필요하다고 하면 백화점까지 가서 사다 대령한다.
눈치가 9단이어서 남편 찬구들의 일에도 적당히 간여한다.
물론 이쯤되면 나도 하루 같은 아내를 갖고 싶으니, 내 남편도 이런 아내가 부러울 것 같기는 하지만...
(6년 연애에, 15년을 살아오면서 협동심보다는 자립심을 불어넣어준 고로 남편은 이제 스스로 참 잘한다.)
때문에 이 책 소소하게 재미있지만, 우리 남편을 비롯한 이땅의 권위주의자들에게는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ㅋ~.
내가 의사 이치를 향하여 이렇게 툴툴거리는 이유는,
자신이 맡은 일은 엄청 잘하고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배려하고는 있다지만)아내는 안중에도 없고,
쉬는 날이나 모처럼 집에 들어오게 되면 세들어 같이 사는 사람들과 곤드레만드레가 된다.
의사 이치를 간호사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선생님은 입이 험하고, 차림새도 허술하고, 말을 이상하게 하고, 뭔가 어려운 말만 써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지만, 환자에 관해서 만큼은 아주 진지하다고 했어요."(114쪽)
그가 술을 얼마나 즐기는지 느낄 수 있는 단적인 예도 등장하는데,
"그럼 선생님은 누가 술을 끊으라고 하면 끊으실 겁니까?"
"......물론입니다."
"선생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의사가 있습니다."
"술을 미워하는 의사와 술을 사랑하는 의사입니다."
"술을 미워하는 의사는 그런 타이밍으로 대답하지 않지요."
"선생님도 몸조심하시길."(135쪽)
그의 직업적 소신은 이 한마디로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사진 속 암세포 덩어리를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본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하는 거야."
나는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다.(106쪽)
이쯤에서 이 책의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을 듯 한데,
우리의 주인공 이치 같은 경우는 자나깨나 소세키를 읊어내는, 좀 올드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번역에서는 어떤 이치만의 특별한 어조나 단어 따위를 느낄 수는 없다.
어조를 바꾼다던가 자주 쓰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살릴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한가지,
가족이 아니라면 멋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법은 환자를 지키기 위한 도구이다. 법을 지켜 환자를 고립시킨다면 의미가 없다. 그걸 판단할 재량 정도는 의료현장에 있는 의사에게 있어야 마땅하다.(141쪽)
요즘 세상에 의사에게 이런 판단을 맡길 수는 없다.
나부터가 제대로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나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치라면 그럴 듯 하다.
요즘 문제가 되는 존엄사 관련 이치의 견해를 엿볼 수도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능한 한 모든 의료 행위를 행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사람들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전부 해 달라."라고 울면서 소리치는 게 미덕이라는 식의 생각은 슬슬 버려야 한다.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의사는 가족의 요구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햐 치료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살아나지 않을 사람, 즉 노환으로 누워 있는 고령자나 말기암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이다.
결국은 아즈미 씨 같은 사람에게 행하는 의료인 것이다.
경이로운 현대 기술을 사용하여 모든 의료를 시도하면 멈춰가던 심장도 일시적으로는 움직일 것이고, 호흡이 멈췄어도 산소를 투여할 수 잇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심장 마사지로 늑골은 전부 부러지고, 인공호흡 기계로 무리하게 산소를 집어넣고, 수많은 튜브에 연결하여 회복할 가망이 없는 사람에게 대량의 약을 투여한다.
이런 행위를 한 결과, 심장이 움직이는 시기가 며칠 연장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게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고독한 병실에서 기게투성이가 되어 호흡을 계속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고도 의료 수준의 세게에서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생명의 의미를 생가하지 않고, 그저 감상적으로 "모든 치료를?"하고 외치는 것은 이기적이다. 그렇게 외치는 마음에 동정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기적이다. 환자 본인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가족이나 의료 담당자들의 자의적인 이기심만이 존재한다. 누구나 이 이기심을 갖고 있다.(223쪽)
이 책이 의미있는것은...이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존재하기 힘든 의사상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공상소설을 읽는 것 같았고, 이 시대에 만약 이치 같은, 이치의 아내 하루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난 기꺼이 천연기념물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암튼 일본 소설을 연달아 읽었고, 좌절의 연속이었는데...모처럼 감정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표지가 어떻다고 얘기하는 건 아닌데, 표지가 약간 아쉽다.
읽기전엔 그저 로맨스소설이나 그런 류로 알았다.
마음 따뜻해지는 책을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이 리뷰는 사실 부부간의 호칭으로 시작하려 하였다.
얼마전 부부 위기 탈출 프로그램을 봤었는데 그들의 호칭은 정말 위기스러웠다.
남편은 한참 생각하다 '계륵=닭뼉다귀'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고, 나는 뒤질새라 '개뼉다구'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뼈다귀라고 쓰면 좀 순화된느낌이 든다.)
계륵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뉘앙스지만, 개뼉다구는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단어는 아니다.
내겐 허니나 꿀물에 버금간다.
암튼 제대로 된 의사는 본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주위사람들과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이 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