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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동네에서 마당이나 마당에 나무를 가진 집을 만나기 어렵다.
엊그제는 헐벗은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은 주황색 감 몇 알을 보았었는데, 오늘 지나다 보니 그 옆 목련 나무에 봉오리가 맺혔다.
"꽃은 어차피 지려고 피는 거잖아."
하고 웅얼거리지만 서도 채 피기도 전에 얼어버릴 봉오리에 마음이 아프다.
4월 초에,벌어진 겨울눈 사이로 터져 나오는 목련의 밞음을 그려서 안실장에게 제출했다. 그 밝음은 이 세상에 근거를 두지 않는 밝음인 것이어서 색깔의 기조를 잡기 어려웠다. 연필로는 밝음의 밑그림을 그리기가 불가능했다. 밑그림 없이 수채물감을 포개서 칠했고, 마른 다음에 덧칠했다. 물감이 아니라, 종이에서 밝음이 배어나오기를 나는 기다렸다.(122쪽)
흰종이 위에 흰 꽃을 그리려면 검은 물감을 쓸 수밖에 없다. 작약의 흰 꽃잎을 들여다보면 깊은 곳에서 검은색이 배어나온다.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색이었다. 물감을 풀어서 그 먼 색을 드러내려면 여러 번 덧칠할 수밖에 없다. 붓이 스치고 지나가는 결들이 겹쳐지면서, 그 안쪽에서 검은색이 흰색을 끌어낼 것이다.(132쪽)
ㆍㆍㆍ작약꽃은 피면서 동시에 졌고, 지면서 또 피었다. 검은색만이 흰색을 표현할 수 있었는데, 검은 수채물감을 풀어서 검은색이 사위는 자리에 흰색을 드러내는 것은 흰색 물감을 풀어서 새카만 꽃잎을 그리는 일과 같았다.(142쪽)
이 책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겐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려내는 검은색이었다.
내 아버지의 지난한 일생을 얘기하기 위해 빗대어지는 '내 젊은날' 이었고,
숲 바깥에서의 삶을 대조하기 위한 '숲' 이었다.
주인공을 그려 넣어 배경을 흐리게 하는 것이 하나의 표현기법이듯이,
배경만을 그려 넣어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물아홉의 조연주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것이,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신 이 땅의 남자들, 우리 아버지들 인듯하여 처연하고 눈물이 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아버지가 떠올라서 힘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풍요인 동시에 결핍이었다.
조연주의 아버지가 조연주를 키우신 그 방법으로 아버지가 나를 키우셨다.
ㆍㆍㆍㆍㆍㆍ혹시 남자 생기면 내 얘기 하지 마라.하더라도 나중에 해.
ㆍㆍㆍㆍㆍㆍ미안하다는 게 뭔지 아니?나는 이제 알 것 같다.미안하다,미안해.정말 미안해.미안해.(8쪽)
아버지의 범죄사건에 함께 엮여들어갔던 전직 공무원 동료들과 아버지의 상관들, 그리고 아버지에게 뇌물을 바치고 잡혀들어갔던 특수유흥업소 주인, 무도장 주인,매춘업소 포주들도 일신상조회 회원 자격으로 문상을 왔다.(328쪽)
살아 남은 사람은 불쌍하고, 죽은 사람은 쓸쓸하다.
그것이 사는 일이며, 그리고 죽는 일이다.
이 책이 힘들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조연주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아,감정이입을 하기 힘들었다.
부모를 거부하고 숲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 그녀는 난생을 꿈꾸는 것으로 정당화하려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스물아홉된 여자의 일상에 로맨스가(작가가 말하는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아버지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두세달에 한번씩 감옥으로 찾아가는 것은,일종의 자기위안이었지 아버지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그녀를 이해하고 못하고는 내 몫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아버지를 향한 적절한 마음가짐을 깨달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다행이 아버지는 살아계시고 난 내 아버지를 향하여 그녀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안실장과 그의 아들만이 자폐가 아니라,
숲으로 들어간 누구나 자폐가 되는 것 같다.
자기를 닫아걸고 안으로 움추러 들기 쉬운 곳이 그 숲이까 말이다.
이제 그녀가 숲에서 걸어나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살아간다는 것은,어쩜 한걸음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리라.
부재에서 존재를 보고,빈자리에서 그를 느끼다.
이 책에는 그런 논리들로 가득하다.
- 이 큰 나무가 새파란 잎을 달고 있으니, 이 나무는 젊은 나무요, 늙은 나무요?
-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212쪽)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에 배웠던 소설의 3요소를 떠올려 봤다.
주제,구성,문체...이 셋을 소설의 3요소라고 했던 것 같은데,
주제도 있고,김훈만의 수사라고 할 수 있는 문체도 있는데,
이야기를 개연성 있게 끌어나가는 힘,서사라고 해야하는 것들이 한참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어쩜 이것이 작가 나름대로의 길들여진 것을 낯설게 하여,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 건 소설을 다읽은 후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이다.
그녀가 숲에 머물던 기간이 10개월이다.
열달이라는 기간동안 그녀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열달이란 기간은 다시 얘기하면 잉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젊은 날의 숲은 그래서 상실의 숲이 아니라,새로움을 잉태하는 숲이 아닐까?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얘기는 차치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땅의 남자들, 우리 아버지들 뿐만 아니라...
늙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외롭고 서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늙어도 서럽지 않으려면 제 스스로 도를 닦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보니,내게는 외로움의 도를 닦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아직은 바느질을 할 시력은 되는 데,눈이 나빠지면 손의 감각으로도 할 수 있는 뜨개질을 해야 겠다.
화초를 키우고 동물을 키우기는 힘들겠다.
마음은 있지만,난 이들과 다른 음역대, 다른 파장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큰 글자 성경을 돋보기를 끼고 필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불경을 읽고 또 읽어 또랑또랑하게 암송을 해내는 방법도 있겠다.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 무엇을 하게 되든, '
서럽고 외롭게 늙어가는 누군가 있을 것이고, '외롭게 따로' 지만 그러면서 '함께' 일 것이다.

이 책은 내용도 한참 들여다 봤지만, 책 자체를 한참 들여다 봤다.
겉표지를 벗기자, 김훈님의 원고지 글씨가 인쇄된 회색 하드커버가 나타났다.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다.
책의 여주인공 이름이 '조연주'였는데, 이 책의 책임 편집자 이름도 '조연주'라고 단정하게 박혀 있었다.
45쪽에 보면,
"...도살장 사람들이 와서 각을 떼갔어."
라고 나오는데, '각을 뜨다'가 기본형이니까 '각을 떠갔어.'가 돼야 하지 않을까?
김훈처럼 문장을 벼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의 일이다 보니, 뭐 대수인양 수선을 떨게 된다,ㅋ~.
각을 뜨다
- 윤문자 -
마음에도 결이 있다
서툴러서 자칫 뼈를 다치게 할 때도 있지만
결 따라 잘만 다루면
치욕의 뼈들로부터
살을 잘 발라낼 수도 있다
너무 날이 선 것도,
이가 빠진 날도 안 된다
잘 벼려진 칼날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
조그마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말 것!
생각의 삐죽한 각을 떠내면
그대로 꿀떡 삼킬 것!
- '현대시학' 2010년 10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