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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시골 살래요! -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딸의 편지
ana 지음 / 이야기나무 / 2018년 6월
평점 :
나는 어쩜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체험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엄마와의 편지글의 형태로 풀어나간,
그래서 내용도 엄마에게 설명하는 듯 자상할 뿐만 아니라,
눈높이도 잘맞추어져 있어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앞 날개를 펼치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본명 이아나.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2년을 보냈다.
분명 서울은 매력적인 도시지만,
내게 서울은 맞지않는 옷 같았다.
배운 대로,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도시 밖 삶을 찾아 농촌을 기웃거렸다.
현재는 아무 연고 없는 구례로 이사해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하루하루 기쁘게, '완벽한 날들'을 살고 있다.
닭장 속 같은 서울의 삶에 지쳐갈때 쯤이면 누구나 한번쯤 귀촌을 꿈꿀 것이다.
귀촌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원에서의 삶을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출신이고 서울 토박이로서의 삶을 살았다.
외국 물을 조금 먹었고,
농촌 출신의 남편을 만나 한번씩 다니러갈 농촌이 있지만,
그래도 남편의 시댁 마을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그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는데,
그런 의미에서 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중학생 농부 한태웅이나,
'서울 부부의 귀촌일기' 를 유튜브에 올리는 부부를 보면,
존경스럽기만 하다.
이 책을 통하여 지방 자치단체에서 '귀농, 귀촌'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프로그램에 자비를 들여 참여하여 교육을 받는 저자의 추친력이 놀랍기만 하였다.
내가 저자 정도의 조건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일들을 야물딱지게 헤쳐나가고,
곧은 생각은 잘 여물어 간다.
결혼 안한 여자가 귀촌을 계획하는 것도 그렇고,
농사를 안 지으면서 생태적으로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도 그렇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젠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시골 어르신들의 행동들,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맙지만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고,
쓰레기 무단 투기 같은 것도 어르신들의 오랜 생활습관과 법률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 일들 사이에서 자신의 소신을 정리하여 나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남편의 시골, 시댁 동네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 또한 이것과 비슷하다.
시골 어르신들에 나는 자연인이기 이전에 서울 여자이고,
그 전에 내 직업과 관련하여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아침잠과 관련하여서이다.
나이가 더 들어 잠이 없어지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잠이 너무 좋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죽음이다.
저자도 이것을 두고,
농사를 짓든, 짓지 않든 농촌 이웃들의 시간 패턴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여전히 올빼미형 신체를 타고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앞으론 자연의 시계에 맞춰 지내보고 시퍼요. 제 몸이 더 이상 자주 아프지 않고, 건강해지는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21쪽)
이 책은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6주동안 일어난 일과 느낌을 엄마에게 편지글 형태로 적어가고 있는데,
곳곳에서 '엄마 오늘 하루, 난 행복했어요. 엄마도 행복했길ㆍㆍㆍ.'이라고 적고 있는게 눈에 띈다.
그러게 누가 뭐라고 하든 건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한 법이니까.
'손길이 닿으니 바뀌었어요'꼭지의 이런 사진과 글들도 좋았다.
마침내 텃밭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봤어요. 물론 내 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들이 함께 이뤄낸 결과였죠.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농사는 더욱 그런 거 같아요 엄마. 가장 귀한 보물은 바로 나의 손이고, 사람들의 손이라는 것. 그 손이 만들어 내는 변화와 결과가 분명한 일이라서 농사를 정직하다고 하나 봐요.(55쪽)
저자가 귀촌을 결심한 이유와 귀촌의 목적은 이처럼 명확하다.
나처럼 추상적으로 꿈꾸는 사람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직접 해 볼 기회가 없었고, 그런 직업도 아니라서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은 게 당연해요. 하지만 나는 그동안 꽤 긴 시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며 살았는데도, 살아가는 데 직접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아는 게 거의 없어요. 뭐든지 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방법만 알고 있어서, 내가 먹는 것을 생산하는 방법도 전혀 모르고, 내가 살거나 사용하는 공간을 만들 줄도 몰라요. 학교교육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들이지만, 예전에는 가정이나 이웃 공동체를 통해서라도 배워오던 것들인데 이젠 그렇게도 배울 수 없게 되었으니ㆍㆍㆍ. 나와 이후 세대들은 어디에서 이런 삶의 기술들을 배워야 할까요?(64쪽)
이 책을 읽은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하면,
가볍게 체험하고 접할 수 있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잘 짜여 운용되는 것 같다.
일반적인 농촌 생활 외에도 비닐 하우스 만드는 법, 장담그기, 부의주라는 술 만드는법,
('백세'가 백번 씻으라는 백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ㅋ~, 술이 익을 때 항아리에 귀를 기울이면 술 익는 소리가 들린단다.) 화덕 만드는 법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이 책이 좋았던건 저자의 마음가짐이었는데,
저자는 배운 것들을 단순한 기술이라기 보다 하나의 가치, 철학 같은거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을 집약한 책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일부분을 인용하는데,
너무 좋았어서 나도 재인용해본다.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 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대중에 의한 생산 체계는 누구나 갖고 있는 아주 귀중한 자원, 즉 현명한 머리와 능숙한 손을 활용하며 여기에 일차적인 도구가 이용된다. 대량생산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산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며, 인성을 망쳐놓는다. 대중에 의한 생산기술은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101쪽)
조금은 번거롭고 또 제품이 완벽하진 않겠지만요. 문명의 편리함 대신 선택하는 자립의 자유로움. 앞으로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이걸 내 삶의 실천 과제 중 하나로 여기며 살래요. 문명으로부터의 자립이라고 해서 원시인처럼 살겠다는 뜻은 아니예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선은 내가 직접 하려고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걸 할 수 있는 이웃이나 친구를 찾아서 함께 궁리하고, 그래도 어려울 땐 당연히 전문가를 찾거나 기업의 문을 두드릴 거예요!(110쪽)
이런 구절도 맘에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골집에 살게 되면 현관문은 꼭 잠그고 밤에는 블라인드도 꼭 내릴 것만 같다.(꿀꺽)(194쪽)'고 하는데,
시골집에 가끔 다니러 가는 내 경험을 말하자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
현관문 비밀 번호를 온 동네가 공유할 정도가 되더라는거,
밤에 블라인드를 내리더라도,
(밤엔 일찍 잠이 드시니까 모르시고)
새벽이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난 이웃들이 해가 중천에 떴다면서 친절히 블라인드도 걷어내 주실 것이라는 거. ㅋ~.
트렉터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트렉터를 사용하는 농사를 자연농이라고 부르면 안되는 이유도 나온다.
이 책을 읽은 수확은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이땅, 이 하우스에서 짓는 토마토 농사만큼은 내가 젤로 잘 아는 사람일 수 있겄제. 하지만 다른 지역서 다른 작물 키우는 사람한테는 내 노하우가 틀릴 수도 있는겨.농사는 그래서 어려운거제~. 정답이 하나만 있는게 아닝게. 근디 나한테 교육 들었던 사람들은 자꾸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거여. 강진서 딸기 농사짓는 놈도 걸핏하믄 전화해서 이것저것 자꾸 물어데~. 내가 땅하고 물마다 다르다고 아무리 말해도 말여. 답답하니께, 답을 듣고 싶다기보담 같이 농사짓는 사람헌테 농사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전화를 해 보는 걸 거여~."(280쪽)
이 말을 누구보다 잘 알겠다.
내가 알라딘 서재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 또한 어떤 답을 듣고 싶어서라기 보다,
책 얘기를 하고 싶어서니까 말이다.
책 얘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싶어서니까 말이다.
반가운 책이었고 의미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