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시골 살래요! -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딸의 편지
ana 지음 / 이야기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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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쩜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체험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엄마와의 편지글의 형태로 풀어나간,

그래서 내용도 엄마에게 설명하는 듯 자상할 뿐만 아니라,

눈높이도 잘맞추어져 있어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앞 날개를 펼치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본명 이아나.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2년을 보냈다.

분명 서울은 매력적인 도시지만,

내게 서울은 맞지않는 옷 같았다.

배운 대로,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도시 밖 삶을 찾아 농촌을 기웃거렸다.

현재는 아무 연고 없는 구례로 이사해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하루하루 기쁘게, '완벽한 날들'을 살고 있다.

 

닭장 속 같은 서울의 삶에 지쳐갈때 쯤이면 누구나 한번쯤 귀촌을 꿈꿀 것이다.

귀촌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원에서의 삶을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출신이고 서울 토박이로서의 삶을 살았다.

외국 물을 조금 먹었고,

농촌 출신의 남편을 만나 한번씩 다니러갈 농촌이 있지만,

그래도 남편의 시댁 마을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그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는데,

그런 의미에서 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중학생 농부 한태웅이나,

'서울 부부의 귀촌일기' 를 유튜브에 올리는 부부를 보면,

존경스럽기만 하다.

 

이 책을 통하여 지방 자치단체에서 '귀농, 귀촌'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프로그램에 자비를 들여 참여하여 교육을 받는 저자의 추친력이 놀랍기만 하였다.

 

내가 저자 정도의 조건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일들을 야물딱지게 헤쳐나가고,

곧은 생각은 잘 여물어 간다.

결혼 안한 여자가 귀촌을 계획하는 것도 그렇고,

농사를 안 지으면서 생태적으로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도 그렇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젠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시골 어르신들의 행동들,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맙지만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고,

쓰레기 무단 투기 같은 것도 어르신들의 오랜 생활습관과 법률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 일들 사이에서 자신의 소신을 정리하여 나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남편의 시골, 시댁 동네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 또한 이것과 비슷하다.

시골 어르신들에 나는 자연인이기 이전에 서울 여자이고,

그 전에 내 직업과 관련하여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아침잠과 관련하여서이다.

나이가 더 들어 잠이 없어지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잠이 너무 좋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죽음이다.

 

저자도 이것을 두고,

농사를 짓든, 짓지 않든 농촌 이웃들의 시간 패턴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여전히 올빼미형 신체를 타고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앞으론 자연의 시계에 맞춰 지내보고 시퍼요. 제 몸이 더 이상 자주 아프지 않고, 건강해지는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21쪽)

 

이 책은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6주동안 일어난 일과 느낌을 엄마에게 편지글 형태로 적어가고 있는데,

곳곳에서 '엄마 오늘 하루, 난 행복했어요. 엄마도 행복했길ㆍㆍㆍ.'이라고 적고 있는게 눈에 띈다.

그러게 누가 뭐라고 하든 건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한 법이니까.

 

'손길이 닿으니 바뀌었어요'꼭지의 이런 사진과 글들도 좋았다.

마침내 텃밭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봤어요. 물론 내 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들이 함께 이뤄낸 결과였죠.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농사는 더욱 그런 거 같아요 엄마. 가장 귀한 보물은 바로 나의 손이고, 사람들의 손이라는 것. 그 손이 만들어 내는 변화와 결과가 분명한 일이라서 농사를 정직하다고 하나 봐요.(55쪽)

저자가 귀촌을 결심한 이유와 귀촌의 목적은 이처럼 명확하다.

나처럼 추상적으로 꿈꾸는 사람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직접 해 볼 기회가 없었고, 그런 직업도 아니라서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은 게 당연해요. 하지만 나는 그동안 꽤 긴 시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며 살았는데도, 살아가는 데 직접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아는 게 거의 없어요. 뭐든지 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방법만 알고 있어서, 내가 먹는 것을 생산하는 방법도 전혀 모르고, 내가 살거나 사용하는 공간을 만들 줄도 몰라요. 학교교육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들이지만, 예전에는 가정이나 이웃 공동체를 통해서라도 배워오던 것들인데 이젠 그렇게도 배울 수 없게 되었으니ㆍㆍㆍ. 나와 이후 세대들은 어디에서 이런 삶의 기술들을 배워야 할까요?(64쪽)

 

이 책을 읽은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하면,

가볍게 체험하고 접할 수 있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잘 짜여 운용되는 것 같다.

일반적인 농촌 생활 외에도 비닐 하우스 만드는 법, 장담그기, 부의주라는 술 만드는법,

('백세'가 백번 씻으라는 백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ㅋ~, 술이 익을 때 항아리에 귀를 기울이면 술 익는 소리가 들린단다.) 화덕 만드는 법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이 책이 좋았던건 저자의 마음가짐이었는데,

저자는 배운 것들을 단순한 기술이라기 보다 하나의 가치, 철학 같은거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을 집약한 책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일부분을 인용하는데,

너무 좋았어서 나도 재인용해본다.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 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대중에 의한 생산 체계는 누구나 갖고 있는 아주 귀중한 자원, 즉 현명한 머리와 능숙한 손을 활용하며 여기에 일차적인 도구가 이용된다. 대량생산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산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며, 인성을 망쳐놓는다. 대중에 의한 생산기술은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101쪽)

 

조금은 번거롭고 또 제품이 완벽하진 않겠지만요. 문명의 편리함 대신 선택하는 자립의 자유로움. 앞으로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이걸 내 삶의 실천 과제 중 하나로 여기며 살래요. 문명으로부터의 자립이라고 해서 원시인처럼 살겠다는 뜻은 아니예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선은 내가 직접 하려고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걸 할 수 있는 이웃이나 친구를 찾아서 함께 궁리하고, 그래도 어려울 땐 당연히 전문가를 찾거나 기업의 문을 두드릴 거예요!(110쪽)

이런 구절도 맘에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골집에 살게 되면 현관문은 꼭 잠그고 밤에는 블라인드도 꼭 내릴 것만 같다.(꿀꺽)(194쪽)'고 하는데,

시골집에 가끔 다니러 가는 내 경험을 말하자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

현관문 비밀 번호를 온 동네가 공유할 정도가 되더라는거,

밤에 블라인드를 내리더라도,

(밤엔 일찍 잠이 드시니까 모르시고)

새벽이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난 이웃들이 해가 중천에 떴다면서 친절히 블라인드도 걷어내 주실 것이라는 거. ㅋ~.

 

트렉터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트렉터를 사용하는 농사를 자연농이라고 부르면 안되는 이유도 나온다.

 

이 책을 읽은 수확은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이땅, 이 하우스에서 짓는 토마토 농사만큼은 내가 젤로 잘 아는 사람일 수 있겄제. 하지만 다른 지역서 다른 작물 키우는 사람한테는 내 노하우가 틀릴 수도 있는겨.농사는 그래서 어려운거제~. 정답이 하나만 있는게 아닝게. 근디 나한테 교육 들었던 사람들은 자꾸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거여. 강진서 딸기 농사짓는 놈도 걸핏하믄 전화해서 이것저것 자꾸 물어데~. 내가 땅하고 물마다 다르다고 아무리 말해도 말여. 답답하니께, 답을 듣고 싶다기보담 같이 농사짓는 사람헌테 농사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전화를 해 보는 걸 거여~."(280쪽)

 

이 말을 누구보다 잘 알겠다.

내가 알라딘 서재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 또한 어떤 답을 듣고 싶어서라기 보다,

책 얘기를 하고 싶어서니까 말이다.

책 얘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싶어서니까 말이다.

 

반가운 책이었고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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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7-10 14:17   좋아요 1 | URL
네, 귀촌에 대한 책이 제법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책처럼 딱딱하지 않고,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반영하는 책은 처음인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적정기술이나 자연농에 대한 성찰이 좋아보였습니다.
님도 좋은 독서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박균호 2018-07-10 14:34   좋아요 1 | URL
한 사람의 인생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을 귀하게 여깁니다.

양철나무꾼 2018-07-10 15:01   좋아요 1 | URL
수집과 독서에 대한 인생 경험이 담긴 님의 책들도 그러하고, 그래서 전 그 책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 - 책바보 박 선생의 독서 글쓰기 비법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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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해 마지않는 박균호 님이 새 책을 내셨다.

기꺼이 사서 읽는데, 책에 이런 구절이 등장해 주신다.

 

 

언젠가 님의 '독서만담'을 두고 이런 리뷰를 남겼었는데,

그 중 한 구절이 인용된 것이니, 완전 반갑고 영광이라고 해야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인용된 부분이 '서평을 쓰는 7가지 방법'중 '생활언어로 쓰면 좋다'는 부분에서였다.

그렇다면 요번에는 어려운 용어를 섞어 폼나게 써봐야 겠다고 칼이 아니고 펜을 갈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원래 쉬운 사람, 어려운 용어는 한개도 생각나는 게 없다.

내 기존의 스타일 대로 가야겠다.

 

요번 책은 서평에 관한 책은 아니어서, 책에 관한 정보는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웬걸, '책바보 박 선생의 독서 글쓰기 비법'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꿀팁이 나온다.

앞 부분을 읽으면서 살짝 전작만큼 유머러스하지 않은 건가 싶었는데,

앞 부분은 정보를 전달하느라 그런 것이고,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냥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골계미라고 해야할까, 패이소스가 묻어난다.

서민적이라고 해야할까,

독서나 글쓰기가 어느 일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든 독서와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서 좋았다.

 

알라디너들 사이에서 이 책은 양가적으로 읽힐 수 있겠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이니, 맘껏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수다를 떨 수 있다고 좋아할 수도 있겠고,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얘기니, 누구보다 잘 아는 내용이라며 가볍게 접근할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 됐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쓸 욕심은 없는고로, 작법서로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유머러스 한듯 하면서 패이소스적인 문체가 좋았고,

글쓰기에 대한 이런 마음가짐이 좋았다.

특정한 목적을 두고 책을 읽지는 않았다. 독서를 숭고한 취미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후자가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취미가 다를 뿐이지 둘 사이에 우열이 있을 리 없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통찰력'과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을 정보'를 드리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나아가 책을 펴내고 싶은 이들과 함께 내가 경험했던 즐거운 에피소드와 유용하고도 무용한 정보를 나누고 싶다.(8~9쪽)

 

요번 책은 독서와 글쓰기에 고루 지면을 할애했는데,

독서 부분에서 잡지를 권해주는게 신선했다.

'보그'라는 패션잡지를 소개해주는 것은 정말로 의외였는데 그 이유를 읽고는 고개를 주억일 수 있었다.

깜짝 놀랄만한 꿀팁이다.

 

강원국 님과 윤태영 님의 책은 나도 읽었기에, 두분을 글쓰기 강사로 초청한 얘기도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가 은근 짓궂음이 발동하기도 한다.

난 사람의 손글씨를 유독 좋아한다.

울남편이 첫사랑인데,

신입생 시절, 연습장에 쓴 글씨가 좋아서 홀딱 반해버렸을 정도로 손글씨에 패티쉬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 박균호 님은 여러 장을 할애하여 악필임을 강조하시는데,

기필코 저자 사인을 받아봐야 겠다.

책에 보니, 남궁산 선생에게 장서표를 의뢰하신다고 하는데,

장서표도 좋지만 난 꼭 손글씨 사인을 받고 말테다, 불끈~!

 

헌책을 파는 기술에서 인터넷 책방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나와 있고,

저자라고 해서 꼭 책을 사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을 곰살맞게 안내하기도 한다.

 

독서보다는 장서를 좋아한다고 설레발을 쳤었던게 민망할 정도로,

이 책에는 책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언젠가 어느 칼럼에서 여자들은 수다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네트워킹을 좋아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읽고 굳이 남자와 여자를 편가를 필요가 있나 의아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수다와 네트워킹이 적절하게 섞인 이 책과 알라딘 서재 활동을 권하면 되겠다.

 

21쪽의 '일부'는 '일부러'의 오타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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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8-07-06 15:29   좋아요 1 | URL
악평이든 호평이든 제 책에 대한 리뷰는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내공을 갖추었다고 자부했는데,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단어 하나 , 문장 한 줄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가 쫄깃해지게 되네요. 편안하면서도 긴장감과 유머가 넘치는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읽고선 제 역량의 부족함을 통감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8-07-06 15:55   좋아요 1 | URL
과찬이세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님의 글이야말로 편안함과 긴장감, 유머와 패이소스를 적절히 갖춘 것이 훌륭하십니다.

암튼 제 장래희망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님께 저자 친필 사인을 받아서,
희귀할테니... 잘 보관하였다가,
나중에 고서로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사인 연습 해두셔요~^^

서니데이 2018-07-06 15:48   좋아요 1 | URL
독서만담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지난해 이른 봄이네요.
신간도 좋은 모양입니다.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7-06 16:0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독서만담에 열을 올렸던게 얼마 안된것 같은데,
벌써 지난 해의 일이네요.

이 책은 지난 번 책처럼 책 전체가 유머코드로 장착되진 않았지만,
유용한 정보도 가득 들어 있고,
적당히 재미도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만큼 덥지 않은 것 같아서 공부하시는데 좀 수월하시겠어요.
님도 남은 오후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박균호 2018-07-06 15:59   좋아요 1 | URL
제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고 번그럽게 생각하는 것이 제 책에 서명을 해서 택배로 보내는 것입니다 ^^ 언젠가 강연에서 양철나무꾼님의 생활언어로 쓴 리뷰를 모범 사례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필하세요 !! 주말 편안히 보내시고요.

양철나무꾼 2018-07-06 16:10   좋아요 1 | URL
저자 서명 부분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희귀할수록 값어치도 있을거라고 속마음을 소심하게 드러내 봅니다, 헤헷~^^

리뷰 부분은,
제가 무언가를 모범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서두,
제가 리뷰나 글쓰기 이쪽 부분으로 힘을 뺐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쉽지는 않았지만,
힘을 빼고나니까 부담스럽거나 신경쓰이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냥 제 독서기록 정도로 생각하니까 맘 편해요.
그러니 꼭 건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서도,
님의 책을 읽은 여파를 몰아서 주말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2018-07-06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6 21:59   좋아요 2 | URL
남자도 수다를 좋아해요. 수다를 너무 좋아하는 남자의 문제는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기보다는 본인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는 거예요. 솔직히 저도 하고 싶은 말 못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하지 못한 말을 글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박찬호가 ‘투 머치 토커‘라면, 저는 ‘투 머치 라이터‘입니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8-07-07 09:03   좋아요 0 | URL
ㅎ,ㅎ...‘투 머치 라이터‘라 재밌는걸요.
제가 아는 ‘투 머치 토커‘는 개그맨 김영철이요.
토커와 라이터,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결과적으론 완전 다르죠.
토크는 좋던 싫던 상대방과 주변 사람이 들어야 한다는 거,
토크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반면,
라이터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더의 의지가 개입해서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토커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그냥 토크보단 카.톡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카톡도 믿지 못할 것이 주머니에 넣어놓고 잠금 단추를 안 누르면,
움직일때마다 지 맘대로 외계어를 누르고 전송해 버리기도 합니다~--;

2018-07-09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0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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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친구에게 지루하다고 툴툴거렸더니,

친구는 '아일랜드 작가네'라고 하며,

'아일랜드는 아일랜드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였다.

난 아일랜드를 '비긴어게인'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처음봤는데,

윤도현이 버스킹으로 '나는 나비'를 불렀던 곳으로 알고 있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나서 보니,

이 작가의 기본적인 정서가 이해되면서,

'여름의 끝'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추천글에 언급된 '보스턴글로브'지의 '슬픔의 깊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한번 읽고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번 더 읽은 것은 책 뒷표지를 보고 따라한 것이라는 것은 안비밀이다, ㅋ~.

 

이 책은 그러니까 외롭고 고독한 소설이다.

이 책을 아일랜드와 영국의 일이라고 놓고 보면 설정이 과한 것도 같고,

골트 부부가 좀 오버하는 것도 같고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우리와 일본의 역사에도 대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것이고,

물론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서 그랬겠지만,

세상을 좀더 맑고 유연하게, 천진난만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책의 첫부분에서 골트 부부보다는 헨리에 힘주어 설명하는 부분이 의아했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사람은 낳은 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라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일정 부분 기른 사람을 닮게 되어 있다.

루시가 이 책에서 느리지만 분명하고 단호하게 묘사되는 것은,

책 내용의 흐름 상 당연한 결말이지만,

책의 첫 부분에 헨리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헨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런 때는 늘 최악을 가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 불행이 닥쳤을 때 엉뚱한 길로 가는 결과만 얻는다고 말했다.(19쪽)

 

이런 부분을 읽다보면 추천글에서 말한 '슬픔의 깊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나중에 루시는 바닷가를 따라 집으로 걸어갔다. 몰려오는 어둠 속에 혼자였다. 그녀 옆의 사나운 겨울 바다는 제멋대로 날뛰었다. 바닷가에 나오면 늘 그러듯 아이는 개가 돌어와 있기를, 비틀거리며 절벽을 따라 쏜살같이 달려 내려오기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짖기를 바랐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유일하게 들리는 건 바람의 쉼 없는 흐느낌과 파도 부서지는 소리뿐이었다. "가까이 오지마." 아까 <오렌지와 레몬>을 부르면서 놀이를 할 때 이디 호스퍼드는 아이와 닿는 것이 싫어 또 그렇게 말했다.(123쪽)

 

이런 표현도 재밌다.

라이알 씨는 키가 작고 콧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남자였으며 부인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와 대조를 이루었다. 급속히 붙는 살을 부주의하게방치한 그녀는 자신에게 너그러웠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너그러운 성정은 몸의 풍만함과 태도에 반영되어 있었다. 두 아들이 게으르다는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은 남편의 분야다. 그녀는 말버릇처럼 그렇게 말하여 걱정이 그가 즐기는 일임을 은근히 암시했다.(147쪽)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위스키를 마셨고 그녀는 막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음이 슬금슬금 다가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러 번, 죽음이 그렇게 다가오는 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연의 긴축을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웃음을 지었고, 그녀도 웃음을 지으며 아버지가 병적인 기대를 물리치는 과정을 함께했고, 아버지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느린 여정 동안 예전에 그가 어땠는지를 기억했으며, 아버지를 말없이 책망한 것을 용서받았다.(337쪽)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수선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내려 간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어떤 소설은 줄거리를 따라읽어야 하는 소설이 있지만,

이렇게 조용히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소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 바로 전에 정영목 님의 책 두 권을 읽으며 입장을 들었기에 좀 누그러졌지만,

솔직히 이 책의 번역이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때,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렵게 썼거나 작가의 문체가 그러할때는 작가를 그대로 번역해주는게 맞다'고 입장을 분명히 하셨었다.

이 책은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문장이나 단어들이 겉도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번역문의 문체가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들지 못한 느낌,

나만 까탈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정영목 님이니까 소심하게 소신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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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4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18-07-04 13:52   좋아요 1 | URL
분명히 아일랜드, 거기 터가 좋은 모양이예요.
천재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말입죠. @@

양철나무꾼 2018-07-04 14:06   좋아요 1 | URL
네, 터가 좋던지 내지는 물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냥 떠오르는 작가만 해도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등 좀 되네요.
제가 좋다고 힘주어 얘기하는 켄폴릿은 아이랜드 출신은 아닌 듯 한데,
아일랜드의 역사에 빠삭한 걸 보면 그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닌 것 같습니다, 헤헤~^^
 
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며 - 어느 천문학자의 지상 관측기
홍승수 지음 / 공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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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유시민이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필사하라고 권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한 사람이 쓴 조각글 모음이다.

편지글과 가벼운 수필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산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몰입할 수 없었다.

유시민 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시니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한데,

나는 잘 모르겠어서 원인을 나름 생각하느라 좀 골몰하였다.

처음에는 내 취향이 아닌건가,

또는 이분이 연세가 좀 있으시니 사고방식이 올드하여 그런건가...싶기도 했지만,

그래서가 아니라,

나도 좀 이분 같은 성향이 있는데다가,

유류상종이라고 주변에 있는 친구나 지인들도 좀 곧이곧대로 고지식한 면이 있는터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어쩜 구도자와 닮은 것 같다.

대상을 향한 경건하고 경이롭기까지한 연구과정은 구도자의 그것과 닮았다.

보기에 따라선 터무니 없이 무모해 보이는데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

 

이강환 님의 헌정사와 석웅치 님의 추천글을 보게 되면,

평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학생에게 공부하라고 하시는 그 원칙을 당신께서 엄격하게 지키며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적 색깔을 드러내는 글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의 글이라서 그런지,

저자가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하늘에, 그가 연구하는 우주에 다름 아님을 알겠다.

 

항상 꾸준히 연구하시고 노력하시며 그리하여 귀감이 되는 것 또한 본받을만 하다.

곳곳에서 꾸준히 독서를 하시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완당평전이나 박경리 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나 이영희, 윤오영, 김기림, 박칼린, 숨결이 바람될때 등등 많은 책들이 인용된다.

 

개인적으론 윤오영 님의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책에 들어있는 '감시를 무시하는 삶'이란 글이 좋았다.

 

30년 전 윤오영은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의기양양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나의 이 작업으로 말미암아 권위 있게 스톱당하고 만다. 지구조차 이속에서는 돌지 않는다. 외계에서 수소탄이 터지든 태양이 물구나무를 서든 나는 결코 개의하지 아니해도 좋다. 내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이런 무관심과 태만에 대해서도 아무도 문책하는 사람이 없다.(중략) 이 지상에서 자유 해탈의 시간은 이 시간뿐.(후략)

 

하지만 오늘의 과학과 기술은 측상에서의 樂(즐거움)을 苦(괴로움)로 바꾸어 놓고야 말았다. '지구조차 돌지 않는다'는 그곳에서까지 과학과 기술이라는 괴물은 감시의 눈길을 거두는 법이 없다. 이제는 사방이 나를 감시하고 문책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실은 꼭 드려야 할 말씀이 하나 있어서 얘기가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하느님의 감시'는 제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분의 감시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살아왔다는 저의 고백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65쪽)

 

윤오영 님의 글에 등장하고, 그리하여 홍승수 님에 재인용되는 이곳은 눈치채셨겠지만 '해우소'이다.

윤오영 님의 저력이야 '방망이 깎던 노인'이 교과서에 등장할 당시부터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고,

거기서 이렇게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는 홍승수 님의 발상 또한 놀라울 뿐이다.

 

그나저나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에고가 강해져서 그런지 수필을 읽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사유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읽다보면 나만의 호흡으로,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남아있는 나날,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나만의 리듬과 속도감을 가지고 나름대로 독서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읽는 양이나 책의 권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자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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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8-07-02 18:06   좋아요 1 | URL
너무 짧은 답글입니다.

이제 많이 읽은 사람, 또는 지적 호기심이 강한 사람보다는 그냥 자기 얘기하는 사람이 좋아집니다. 이제 막 한글을 익힌 아이들에게 말 건네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요.

양철나무꾼 2018-07-02 18:18   좋아요 1 | URL
저는 님의 말씀에 한마디를 보태자면,
무심한듯 한마디 툭 던지는 그런거요.

내가 하는 말들로 상대방이 상처를 받거나 연연해 할 수 있는 그런 무게를 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하는 말들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꽃을 피우거나 흐르는 땀을 식혀주거나 정도만 할 수 있는 그런 자연스러운 바람처럼요~^^

AgalmA 2018-07-03 02:46   좋아요 1 | URL
문장에 자신의 사유를 정제해 담는 것도 좋지만 단어 선택 등 너무 정형적으로 쓰셔서 독자가 공감하며 읽기는 좀 그런 문체네요^^; 얼핏 설교체-_-); 요즘은 재미나 감성 가득한 글들이 인기 있는데...

더운데 맛난 거 챙겨 드시고 계십니까. 전 바다 보러 갔다 왔지롱요~ㅎ

양철나무꾼 2018-07-03 10:01   좋아요 2 | URL
너무 정제해 담으면 그걸 내맘대로 펼쳐서 해석해 읽다보면 과부하가 걸리고,
또 너무 펼쳐놓으면 만연체로 흘러서 지루해져 버리고,
작가도 못할 노릇이지만,
독자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지 싶습니다, ㅋ~.

그나저나 님이 안 보이시면 철야나 야근 완전 바쁘신가 염려를 하게 됐었는데,
바다를 보고 오셨다구요?
완전 부러워라~.
한동안 숨통 트이고 살아가실 수 있겠네요.
 
바늘구멍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4
켄 폴릿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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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내가 옛날에 쓴 글들을 돌이켜보았다.

이곳 서재에서 활동을 한게 2010년 5월11일부터이니까 햇수론 9년, 꽉찬 8년이다.

그때 쓴 글들을 읽다보니 뭐랄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럴 것 같진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이 책을 켄폴릿이 썼을 때가 지금부터 40년 전인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때였다고 한다.

어떻게 나이 스물일곱 살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출간 40주년 기념 서문'에서 그는 폴 매카트니를 인용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초기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곡들에 귀기울이면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영리한 녀석."(9쪽)

 

비틀스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보기엔 켄 폴릿도 천재인것 같다.

하지만 천재이기만 했다면 난 켄폴릿을 가지고 설레발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쓰는 경험은 꼭 비탈길을 달려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이제 소설 한 편을 쓰려면 삼 년이 걸린다. '바늘구멍'은 삼 주 만에 거의 모든 것을 썼다.(11쪽)

4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쓴다는 것,

그 당시 삼 주만에 소설 한편을 썼었는데,

이젠 삼 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쓴다는게 내가 설레발을 치는 첫번째 요인이고,

또 하나는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게 또 하나의 요인이다.

 

나 자신이나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을 봐도 그렇고,

충전 없이 소진만 하는 것 같다.

천재로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계발이나 노력으로 천재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민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신의 건강, 심신의 균형잡힌 건강이 아닐까 싶다.

 

켄폴릿은 '대지의 기둥' 때도 그랬고, '20세기 3부작'때도 그랬고,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여성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남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캐릭터를 잘 그려내고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는 힘이 뛰어난 것 같다.

배경이 중세도 있었고, 20세기도 있었고, 먼 나라 영국의 일이고 하니,

나같은 독자는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 법도한데 흠뻑 빠져들었다.

 

이 책에선 여성 영웅을 등장시키면서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문학적인 이유에서라고 하지만,

영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일테고,

우리같은 입장에선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애기 아닐까 싶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을 내세워서 정치색을 흐려지게 하려는 고도의 트릭으로도 읽혔다, 내겐.

 

나는 켄폴릿이 다 좋지만,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아주 맘에 든다.

페이버 씨는 과묵한 남자였다-그것이 곤란한 점이었다. 그는 악행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술냄새를 풍긴 적도 없고, 매일 저녁 자기 방에만 머무르며 라디오로 클래식을 들었다. 그는 신문을 많이 읽었고 산책을 오래 했다. 직업은 변변치 않지만, 그녀는 그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리라 짐작했다. 식사할 때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어봐도 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이 깊었다. 노력하면 틀림없이 더 나은 직업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마땅히 누릴 만한데도 그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았다.(25쪽)

 

고들리먼의 속마음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게임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역시 그를 침울하게 했다. 거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요소도 있었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 영리함 자체의 가치, 세심함, 추측. 그러나 협박, 속임수, 필사적인 노력, 언제나 적의 등을 찌르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41쪽)

 

블로그스의 이런 속마음도 완전 맘에 든다.

"그럼 상실이 사람에게 증오를 안긴다는 걸 알겠군요."

"네." 블로그스가 말했다. "상실은 증오를 안기지요."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뒤쪽에서 문이 닫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ㆍㆍㆍㆍㆍㆍ

두려움 없는 사람. 그녀는 그렇게 불렸다. 그렇지만 블로그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두렵지만 애써 감춘다는 것을. 그가 일어나고 그녀가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아침이면, 그녀의 방어막이 걷히고 다만 몇 시간이라도 쉴 수 있을 때면 그는 그녀의 눈빛에서 마음을 읽었다. 그것이 두려움 없음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134~135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다른 애기는 조심하겠지만,

루시에게 엄마가 하는 이런 말은 옮겨도 좋을 것 같다.

"내 나이쯤 되면 인생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떠들어선 안돼. 하지만 내 인생은 견뎌내느냐 마느냐였고. 내가 아는 많은 여자가 그렇게 살았다. 변함없이 자리('자리'가 중복된것 같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희생처럼 취급되기 일쑤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어쨌든 난 너한테 조언을 하진 않겠다.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설사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가 생기면 내 탓으로 돌릴 테니까."

현명한 엄마 밑에 현명한 딸이 있다.

 

켄더베리대성당에 대한 깊이있는 언급은 훗날 '대지의 기둥'이 탄생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것을 고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좋았다.

 

천천히 아껴 읽으려고 했는데, 내처 읽었다.

파격적이고 야한 내용이 한 번씩 등장하는 것도 켄폴릿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 수 있겠다.

적재적소에 우리말을 잘 살려쓰시는, 깔끔하고 맛깔나는 번역도 한몫하는 것 같다.

역자가 김이선 님이다.

기억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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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8-06-30 12:07   좋아요 1 | URL
인용한 문구들도 맘에 들고
그걸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시는 양철나무꾼님 해설도 부럽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30 12:16   좋아요 1 | URL
‘해설‘이라고 표현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헤에~^^
켄폴릿은 제가 완전 좋아하는 작가라서 어느 부분을 들이대도 설레발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아이즈 님의 소설 또한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그냥 접대용 멘트가 아니라,
전 님의 소설들이 ‘완죤‘히 좋지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30 12:24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리뷰를 맛있게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30 12:42   좋아요 1 | URL
맛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 책 뿐 아니고 켄폴릿의 책은 다 강추합니다.
좀 길다는게 단점이 될수도 있지만,
완전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감정 이입하며 읽기 좋습니다~^^

2018-06-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30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6-30 20:11   좋아요 1 | URL
진짜 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한 권에 네 권의 소설인가가 축약
되서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바로 켄
폴릿의 <바늘구멍>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오래 전이었는데...
이제 제 모습으로 다시 나왔나 보네요.

도널드 서덜랜드가 주연한 영화도 있다고
하던데 보고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8-07-02 09:0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님의 100자평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땡스 투를 누르고 싶었지만,
비구매자 100자평엔 땡스투를 못하게 되어있더라구요~--;

역시 켄폴릿이지 싶었습니다.
저도 영화는 아직입니다.
영화에선 소설에서 공들여 묘사한 캐릭터들이 또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합니다.
다시 한번 좋은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꾸벅~(__)

cyrus 2018-07-01 14:02   좋아요 1 | URL
저는 2010년 5월 8일에 블로그에 첫 번째 글을 등록했어요. 옛날에 쓴 글을 읽는 것은 어린 시절 모습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8-07-02 09:08   좋아요 0 | URL
님과 저는 학교로 따지면 동기동창이네요.
그래서 그런가 전 이상하게 님이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모든 단체나 모둠이 그렇지만, 그때 활동하셨던 분들 중 몇몇 분들은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이곳에서도 맛보게 될 줄이야.
요즘은 야무 님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