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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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장래희망이 번역가였다.

장래희망이라고 말을 하기엔 내 직업을 갖고 어느 정도 나이가 먹은 이후이고,

감히 번역가라고 갖추어 직업의 형태로 말하기 민망한 건,

나의 그것이 좀 치기어린 이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을 읽다가 보면,

(난 책을 좀 꼼꼼이 공부하듯 읽는 경향이 있는데,)

내용이 이어지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툴툴거릴 바에야 '내가 직접 번역을 해봐?'하고 기웃거렸지만,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님을 깨닫고,

일찌감치 그 꿈을 접었다.

(나이가 '일찌감치'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고 얼마 안있어 꿈을 접었다는 얘기다, ㅋ~.)

 

암튼 번역가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실력이나 능력과는 별개로 번역가는 구도자와는 맞먹는 수련과 정신세계가 필요한게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정영목 님의 올곧은 성실성에 대한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성실성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구도자의 경지를 느끼게 되었다.

 

정영목 님의 작품을 처음접한건 (내가 인식하기론) 주제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가 처음이었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없는 글들의 나열에 완전 당황하게 된다.

나는 우리말로 쓰여진 글을 읽는 것을 가지고도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호흡을 조절하기 버거워했던걸 보면,

역자 정영목 님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원래 포루투갈어였으니, 영어로 번역된걸 다시 번역햇을테니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은 '책도둑'이다.

 

이제 정영목 님이 번역한 작품은 망설이지 않고 그냥 읽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번역가나 번역 참고서에 나왔던 얘기랑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얘기도 있다.

조근조근 그의 말들을 따라가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앞부분의 김혜리 기자와의 이런 인터뷰가 실렸는데, 그의 번역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저는 기본적으로 번역가란 이방의 언어와 문화에 반한 사람들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요.

상상하셨던 번역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제 아랫세대를 만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나 제 윗세대가 외국문화에 대한 매혹을 번역가가 된 동기로 꼽는다면 전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것 같아요. 저희 세대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게 과연 정당하냐고 의문을 제기한 세대거든요. 영문과더러 제국주의학과라는 농담도 오가는 상황에서는 서구문화에 대한 매혹이 있다 해도 뒤틀려서 표현됐겠죠.(18쪽)

 

번역을 논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외국어도 잘 알아야 하지만 모국어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던데요.

소설은 번역의 결과 자체가 소설로서 읽혀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모국어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맞는 말인데, 문제는 그 능력이 어디서 오냐는 거죠. 예를 들어 글솜씨가 있으면 되느냐, 문장 구조가 정확하고 비문만 없으면 되느냐. 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우리말을 구사하는 법은 국어 실력뿐 아니라 번역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거든요. 번역은 저자의 스타일을 향해 가려고 애쓰는 것이기에 문제는 내가 우리말을 잘 쓰느냐보다 저자의 문체를 우리말로 잘 옮겼냐입니다.(23쪽)

 

여러가지 내용들이 다 좋아서 일일이 옮겨 적기는 힘들고 일독을 권한다.

다만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인간의 문제라고 하는 부분,

그리고 자동 번역기가 나왔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하는 부분은, 같이 새겨둘만 하다.

 

선생님은 유학도 간 적이 없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시지도 않는데요. 영어를 잘하기 위해 온갖 투자와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면 비결을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언어에는 끈적한 속성이 있고 해당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러나 영어든 한국어든 어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모두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게 핵심이라고 본다면 영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같은 의미일 수있죠.ㆍㆍㆍㆍㆍㆍ

 

자동번역기계가 등장했을 때는 감회가 어떠셨나요?

서류 양식의 번역이라면 모르지만 소설의 번역은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배우처럼 불가분의 육체성이 번역에 붙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교환하고 이해하는 영역에서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개입하거든요. 아닌 척하고 싶지만, 투명한 체하고 싶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번역가의 무엇인가가 책 속에 남을 겁니다.(35~36쪽)

 

이 인터뷰 부분 이후 딱딱하고 지루한 부분들을 꾸역꾸역 일독하였다.

뒷부분을 꾸역꾸역 읽을수록 그의 무미건조한 일상이 엿보이는듯 했고,

끝내 알수없는 감동으로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좀 딱딱하고 지루했지만,

나도 모르게 정영목 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차올랐고 그런 의미에서 별 다섯을 꽉꽉 채워도 부족함이 없겠다.

배우고 닮고싶다는 마음은 언감생심, 우러를 수는 있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이와 함께 체력이 쇠하고 집중의 지속이 짧아졌다는 정영목 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저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책이 점점 더 필요해진다'고 한다.

천하의 정영목 님도 그러한데,

나의 게으름은 어쩜 당연한 것인가 싶어 위로가 된다.

앞으로 얼마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꺼이 읽는 나날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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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6-20 09:45   좋아요 3 | URL
저는 글은 무조건 알아먹기 쉽게 써야한다는 주의였는데,
번역가 입장에서는 그렇지도 않다네요.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렵게 썼거나 작가의 문체가 그러할때는 작가를 그대로 번역해주는게 맞다는게 정영목 님 입장이셨습니다.
번역가라는게 엉덩이가 무겁고 꾸준해야 하는 직업이더라구요.
전 엉덩이 무겁고 꾸준한 걸로는 자신 있는데,
기본적인 실력이 많이 못 미치더라구요~--;

번역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번역가들이 꾸준히만 하면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런 거 말고, 처우개선이 시급하지 싶습니다~^^
 
동심언어사전
이정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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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하자면 이 책을 받아보고 놀랐다.

이게 사철 방식의 편집이라는데 난 파본인줄 알았다.

뭐, 여기 저기 물어 이게 요즘 유행하는 편집 방식이라는 건 알았는데,

그걸 알고 난 이후에도 나처럼 책에 물성을 부여하고 책신을 모시는 사람의 입장에선 대략난감이다.

실은 언제부턴가 문학동네 시집을 살때 표지는 파스텥 색상인 것이 예쁜데 몇 장 펼쳐서 넘기다보면 낱낱이 뜯어져서 힘들었었는데,

이 책도 그럴까봐 불안한 거라.

이런 방식의 편집이 책을 활짝 펼쳐놓고 필기를 하거나 무언가를 적어넣을때는 좋은 방식이라는데,

참고서도 수험서도 아닌,

(사전이란 이름을 달긴 했지만) 시집 한구퉁이에 뭘 적어넣는단 말인가~--;

 

제목은 '동심언어사전'이지만 이 책은 언어가 가진, 언어가 내포한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하는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짧아서 여운을 주는 것들이 더 좋았다.

내용이 길어지고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서술하려는 것들은 좀 지루했다.

보통 시집의 두께였고 그 정도 분량이었다면 황홀하다며 설레발 쳤을 시들이 수두룩한데,

사전 형태로 묶어 양이 방대해지다보니 지루해 하품이 난다.

 

그렇다고 시집이 별로였다는 애기는 아니다.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 시들을 응축시키고 추려냈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다는 얘기다.

시인의 저력을 알고 충분히 더 좋은 시들이 나와줄 수 있음을 아는데,

좀 널브러진 느낌이라서 아쉽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 몇 편을 옮겨본다.

 

굴뚝연기

 

굴뚝연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누군가의

차가운 등짝을

덥히고 왔기 때문이지

 

돌부리

 

땅속에 박혀 사는 새가 있지.

부리만 조금 내밀어

빗물과 눈송이를 받아먹지.

구둣발에 차일 때 많지.

괭이나 쟁기에 으깨지기도 하지.

울대가 없어서 삽날이 대신 울어주지.

발로 찬 사람이 울어주지.

눈을 감고 돌부리를 쓰다듬으면

내 어깨의 새부리뼈가 활개를 치지.

어깻죽지가 나른하지.

 

되새김질

 

내 것을 토해내야만

되새김질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일단 가득 채워야 한다.

먼저 저 바깥을 들여앉히고

속앓이부터 해야 한다.

지는 해가 긴 혀로 솔숲을 곱씹듯.

밤바다가 끝없이 트림을 하며

물방울별 하나하나를 새김질하듯.

너만을 생각할 때처럼.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혀의 춤사위만 미끄러질 때까지.

 

백합조개

 

깜짝이야.

개펄에서 아침 먹더가 혀를 깨물었어.

바삐 놀러 나가다가

문틈에 옷자락이나 손가락이 끼듯.

 

서두르지 마.

바다가 몽땅 밥그릇이듯

세상이 모두 놀이터니까.

모래 한 알도 친구니까.

바다놀이 나갈까.

 

붕어빵

 

붕어를 살려보려고

호호, 인공호흡을 했다.

끝내 살아나지 않아서

눈 딱 감고 해부를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죽은 이유가 밝혀졌다.

달콤한 팥만 편식한데다

과식했기 때문이었다.

호호, 내가 대신

소화시켜줬다.

 

산더미

 

맑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어야

 

하늘을 우러르고

바람을 만져보지.

 

밤과 낮이 있고

새싹과 낙엽 태우는 향이 있지.

 

사노라면, 일거리가

밤바다 눈보라처럼 몰려올 거야.

 

일머리를 깨치면

꽝꽝나무 이파리처럼 작고 눈부신 축복이지.

 

내 일이 산더미라야

내일이 반갑지.

 

손잡이

 

풀과

모든 열매는

자신이 손잡이가 되는 게 싫다.

 

내 귀를 비틀어

내 꿈을 내동대기친다면

그 누가 좋아할까.

 

그런데, 누가 나를 열고

깊은 방으로 들어간다면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그 누가 마다할까.

 

이 외에도 아침뜸, 앉은뱅이저울, 앞길,오색딱따구리,잔가시, 징소리, 짝사랑, 칠성무당벌레 등 좋은 시가 여럿이다.

 

여러 편의 시를 옮겨적으려니 좀 힘들지만,

되내며 옮겨 적는 한 호흡 한 호흡 행복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인의 시가 좋은 것은,

알아먹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들로 쓰여졌고,

그리하여 읽고 있노라면 어딘가 모를 곳이 따뜻해지는 것이, 적당한 온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온기를 품고 바라보는 세상은 시리거나 눈물 겨워도 견딜만하니까 말이다.

 

동시라고 하긴 힘들겠고,

맑고 순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폭폭할때,

그래서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시린 날에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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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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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목수만이 연장을 탓한다고 술꾼들은 안주를 개의치 않아 깡술도 불사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술꾼의 미각도 안주 아닌 음식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그래서 말인데 옛날 허름한 술집 문이나 벽에 붙어 있던 '안주 일체'라는 손글씨는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그 얼마나 간결한 진리의 메뉴였던가.(10쪽)

 

어떤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하다고 하는데,

맛있는 걸 먹을때를 받고, 읽는 책이 재밌을때를 얹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글이 완전 맛깔스러운 지라 이런 게 글을 읽는 맛이지 싶어 '헤헤~' 거렸다.

적당한 어조와 운율, 마침한 곳에 걸린 쉼표나 마침표 따위의 문장 부호, 의성어와 의태어를 넘나들며 언어를 구사하는데,

합이 잘 맞는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기분이었다.

조화가 잘 맞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듣는 기분이었다.

입이나 귀만이 아닌, 눈을 콩해서도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한달까.

 

권여선 님은 안동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서울 사람이고 아버지는 부산 사람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졌을테고,

그래서 서울 토박이인데다가 편식도 심한 내가 이물감 없이 하나 같이 입맛 다시며 읽을 수 있었다.

시작은 만두였다.

왕짱구 분식의 주인 부부는 역할을 나누어, 아저씨는 만두를 빚고 아주머니는 만두를 쩠다. 아저씨는 밀가루 반죽을 가래떡처럼 길게 만들어 칼로 적당하게 토막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 토막의 반죽을 작은 밀대로 슬쩍 밀어 동그랗고 얇게 만든 다음 숟가락으로 만두소를 떠넣고 어물쩍 주름을 잡아 만두를 빚었는데 그 시간이 이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슬쩍 쓱 어물쩍, 그러면 끝이었다. 불필요한 손놀림은 전혀 없었다. (32쪽)

 

양배추쌈에 고추장물이 뭐라고 이런 구절은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달착지근한 양배추쌈 위에 푸릇푸릇하게 매운 고추장물과 밥을 얹어 한 쌈 싸 먹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맵다가 이내 머릿속이 시원하고 개운해진다. 된장이 줄 수 없는 깨끗한 짠맛과 땡초의 번쩍 깨는 매운맛이 별안간 내 존재를 순수하게 텅 비운다. 심심한 열무김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낯설고 허무한 생각마저 든다.(110쪽)

 

난 권여선 님의 글들을 읽으며 같은 생각들을 하였으니 쌤쌤이다, ㅋ~.

 

밥 한 숟가락에 자르지 않은 긴 시래기 한 줄기를 둘둘 얹어 먹기도 한다. 바삭한 가을 햇빛과 씁쓸한 땅의 맛을 은은하게 간직한 시래기 나물의 독특한 맛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123쪽)

이 구절에선 '씁쓸한 땅의 맛'이란 구절이 좋았다.

'바삭한 가을 햇빛'이라는 하늘의 기운과,

씁쓸한 땅의 맛과,

그걸 밥 한 숟가락에 둘둘 얹어먹는 권여선 님과,

뭐랄까, 천지인 물아일체를 경험하신다고 해야 할까.

그걸 엿보는 나도 자연스레 천상의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생선 비늘을 비닐이라고 발음하시는 생선가게 남자에게선 이런 헤프닝을 떠올린다.

어느 날 귀엽게 생기고 패션에 민감한 어린 게이머가 진회색 니트로 된 비니를 쓰고 나왔다. 젊은 해설자가 "아, 저 선수, 오늘은 비니를 쓰고 나왔네요."라고 말하자 나이 든 해설자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비닐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네?"

"암만 봐도 비니루 같지는 않다고요."

그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화면에 입을 가리고 끅끅 숨넘어가게 웃는 젊은 해설자와,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찌푸린 나이 든 해설자의 모습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166쪽)

 

아, 좋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였다.

사는 게 폭폭하여 목이 막히거나 메일때,

고인 침을 눌러 삼키듯 눈물도 그렇게 눌러삼키면 그만이라고 알고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좀 빨리 끝나버리는 건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길면 또 물릴 것도 같다.

아직은 못 읽은 님의 작품들이 남아 있으니, '안녕, 주정뱅이'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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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6-18 11:55   좋아요 1 | URL
소주 석잔이면 만취하는 저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애기인데,
또 남자들 중에, 개중에는 술이 들어가면 밥이고 안주고 입에 안대는 사람들도 있죠.

술을 드시더라도 안주도 같이,
배 고프면 밥을 드신 후에 술은 천천히 드시길 강권합니다~ㅅ!^^

잠자냥 2018-06-18 11:52   좋아요 1 | URL
예문만 읽어도 침이 고이네요. 하하하하.

sslmo 2018-06-18 11:57   좋아요 0 | URL
권여선 님 글 처음 읽었는데, 맛깔 나네요.
글이 맛있을 뿐더러 정갈해요~^^

지금행복하자 2018-06-18 14:11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맛갈나는 표현에 침이 스르르~

sslmo 2018-06-18 18:10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맛있는 책의 말견이었어요~!^^

겨울호랑이 2018-06-18 17:57   좋아요 1 | URL
비니루, 공구리 등등 표현은 멋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지네요^^:)

sslmo 2018-06-18 18:12   좋아요 1 | URL
이게 입말을 옮기는 과정이어서 멋은 없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ㅎ,ㅎ.

moonnight 2018-06-18 18:27   좋아요 1 | URL
저도 방금 행복하게 다 읽었어요. 배고프네요^^;

sslmo 2018-06-18 18:30   좋아요 0 | URL
정말 맛있는 책 아닌가요?^^

오늘은 야구를 하지 않아서 좀 우울할라 그랬는데,
축구가 기다리고 있네요.
축구를 보면서 먹을 주전부리를 궁리해봐야겠어요~^^
 
그림자 밟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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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언젠가 읽었던 '사랑의 묘약'(<==링크)이 너무 좋았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사랑의 묘약'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작가들이란 그게 그림이 됐건, 글이 됐건, 그밖의 다른 창작물의 형태가 됐건 간에,

'첫'이란 걸 훈장이나 멍에처럼 가지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비교하고 얽어매고 그리하여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피폐해지게 만들 수도 있을테니 조심 또 조심하여야 겠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그림자밟기'라는 제목부터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사람의 다른 면을 보고 비출 수 있듯이,

그림자라는 것도 빛이 비추는 방향이나 각도, 또는 형태가 만들어내는 운동성 등에 따라 다른 크기와 농도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가족이 습기를 머금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면 그건 좀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 화가였다. 결코 시시한 재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감과 자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23쪽)

 

이 그림자는 때로 그림의 음영으로 나타난다.

이 음영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즉각 초자연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ㆍㆍㆍㆍㆍㆍ드리하여 음영이 정말로 주체를 훔쳤고, 나머지 세상에서는 음영이 더욱 리얼해져 마침내 남은 것은 음영뿐인 것처럼 보였다.(184~185쪽)

빛의 형태로 얘기되어지기도 한다.

빛은 신기해. 만질 수도 없고 질량도 없지만 중력에 의해 구부러지거든. 마치 파도처럼 움직여. 또한 입자처럼 움직이지. 이 둘을 하나로 이해하는 건 사람의 머리로는 어려워. 그러니 너만 모르는 게 아냐. 외로워할 필요 없어. 딱딱한 물체에 빛이 부딪칠 때 그 물체를 뚫고 지나가는 건 빛이 아니라 빛의 에너지야. 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 거라고 생각하니?ㆍㆍㆍㆍㆍㆍ하지만 엄마는 빛이고 아빠는 중성자별이야.(239쪽)

 

사실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잠식하고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둘은 화가와 모델 관계로 만났는데,

화가는 선정적이고 어두운 그림들을 그린다.

모델인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일 것이다.

아들인 플로리언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을,

엄마인 아일린는 포르노를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로 선정적이다.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했거든요. 삶이 침해받는 기분이었어요.(95쪽)

 

또 하나 불편하였던 것은 부모의 자격이 없지 싶어서 였다.

길도, 아이린도, 자기 부모에게 효자, 효녀 자식이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음은 물론,

그냥 부모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겠죠. 아마 안심하고 싶어서 그럴 거예요.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전쟁, 살인, 유기, 납치 같은 일들이 자기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서요. 홀로 남아서 스스로 살아가거나 남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거라 믿고 싶은 거예요.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플로리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제가 어머님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168쪽)

플로리언의 선생님이 아이린에게 한 이 말은 많은 걸 짐작케 한다.

 

책의 곳곳에서 부부는 서로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 사랑을 하고 의지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다면,

속으로만 사랑할 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 그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사랑은 다른 과정을 거치고 다른 형태로 변해져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길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잠든 그녀의 구부러진 벽 같은 등에 살짝 등을 대고 누웠다. 습관이 위안을 주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잠든 아이린의 존재는 그를 안심시켰다.(43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결말을 얘기할 수 없지만, 나는 이 책의 결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정적으로든, 현실에서의 삶의 형태로든,

더하거나 덜하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보면 잠식당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하게 그림자를 밟고 드리우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여기서 상관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안되면,

관계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어서,

부모나 자식,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자라거나 어긋나고 틀어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게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삶도 기꺼이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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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15 18:23   좋아요 2 | URL
자기의 모습,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려면 스스로를 긍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만들기 위한 ‘힘 기르기’, 즉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

sslmo 2018-06-16 10:51   좋아요 1 | URL
이 책이랑, 님의 댓글이랑 좀 어긋난 내용일지 모르는데,
전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자기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술적인 문제랑 결부되어 내용이 좀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발설할 수는 없고~--;
상처받고 피 흘리고 넘어져 본 사람들은 상처받는게 견딜만하다고 여길 것이고,
상처받는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소심하게 말씀드려봅니다.
페미니즘에 요즘 관심 많으신 cyrus님이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긴 합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늘 내가 1등이다.

남편과 아들이 도착하기 전의 적막강산이 싫어서 텔레비전을 배경으로 틀어놓고 멍때리고 앉아 있는다. 

내 나름대로의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다.

어제도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디에선가 해주는 '인간극장-인어할머니와 선장'편을 봤다.

처음엔 울릉도의 바다와 풍광이 좋아서 시선을을 주었는데,

어느 순간에 이르러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2011년 방송된것 같은데, 그때 할머니 나이가 91세였고 선장님의 나이는 65세였다.

같이 물일을 하신지는 10년이 되셨다는데, 가족이나 혈연 관계는 아니다.

방송을 보면서 할머니에게도 애잔함을 느꼈지만,

날 울게 만든건 선장님이셨다.

만나셨을 당시 할머니도 81세셨겠지만, 선장님도 55세였을 것이다.

65세를 노년이라고,

그리하여 욕심을 줄여야할 나이라고, 

백번 양보하여 그렇게 애기한다손쳐도,

55세는 무엇엔가 욕심을 좀 부려도 좋을 나이인데 말이다.

 

 

선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멍때리기와 닮았다, ㅋ~.

 

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이런 게 있다.

 

 

 

 

 

 

 

 

 

 KBS 다큐멘터리 기획전 自然+人 : 인어할머니와 선장
 임원순 감독 / 이오스엔터 / 2012년 7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나 보다.

 

문득 2011년의 91세이시던 인어할머니는 지금 어찌되었을까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티가 제법 날 선장님도 궁금하고 말이다.

아무리 뒤져봐도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상상대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들은 그러한 것 같다.

자욱한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미스테리로 남겨두었을때 더 오랜 여운으로 남는 그런 것들이 있나 보다.

 

선장님은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울릉도에 계시지 않고 떠도셨을 거라 하셨다.

지금은 어느 섬, 어느 바다 위에서 저런 멋진 멘트를 날리고 계실지 모르지만,

나는 무한 위로를 받았었고,

집으로 돌아가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멍때리고 휴식을 취할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데,

숨과 쉼은 묘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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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13 17:19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왜 인어할머니지? 했는데, 91세에도 해녀로 일하시는 분이었네요.
아마도 선장님에게는 인어할머니가 생의 구심점 같은 사람이었나봅니다.
저는 이 방송을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어쩐지 외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별 생각없이 사는 날이 좋은데, 생각 많은 날도 있고,
실은 어느 때를 좋아하는지 그런 것들도 계속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일찍 오셔서 텔레비전 보고 계실까요.
저녁이 되니 살짝 비올 것 같은 느낌이예요.
양철나무꾼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sslmo 2018-06-14 09:40   좋아요 1 | URL
네, 폐활량도 좋으시고 물질도 잘 하시고 물속에선 완전 인어 같으시더라구요.
근데 물밖으로 나오면 연세 높으시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
2011년 촬영 당시에도 보니까 깜빡 깜빡 하시는게 치매 증세가 있으시던데,
그 점이 염려스럽더라구요.

나이를 먹는다는건 외로움을 감내할 일이 많아진다는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비가 와서 그런가 왠지 센치해지네요, ㅋ~.
서니데이 님의 비 예보 맞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