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툰 목수만이 연장을 탓한다고 술꾼들은 안주를 개의치 않아 깡술도 불사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술꾼의 미각도 안주 아닌 음식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그래서 말인데 옛날 허름한 술집 문이나 벽에 붙어 있던 '안주 일체'라는 손글씨는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그 얼마나 간결한 진리의 메뉴였던가.(10쪽)

 

어떤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하다고 하는데,

맛있는 걸 먹을때를 받고, 읽는 책이 재밌을때를 얹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글이 완전 맛깔스러운 지라 이런 게 글을 읽는 맛이지 싶어 '헤헤~' 거렸다.

적당한 어조와 운율, 마침한 곳에 걸린 쉼표나 마침표 따위의 문장 부호, 의성어와 의태어를 넘나들며 언어를 구사하는데,

합이 잘 맞는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기분이었다.

조화가 잘 맞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듣는 기분이었다.

입이나 귀만이 아닌, 눈을 콩해서도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한달까.

 

권여선 님은 안동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서울 사람이고 아버지는 부산 사람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졌을테고,

그래서 서울 토박이인데다가 편식도 심한 내가 이물감 없이 하나 같이 입맛 다시며 읽을 수 있었다.

시작은 만두였다.

왕짱구 분식의 주인 부부는 역할을 나누어, 아저씨는 만두를 빚고 아주머니는 만두를 쩠다. 아저씨는 밀가루 반죽을 가래떡처럼 길게 만들어 칼로 적당하게 토막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 토막의 반죽을 작은 밀대로 슬쩍 밀어 동그랗고 얇게 만든 다음 숟가락으로 만두소를 떠넣고 어물쩍 주름을 잡아 만두를 빚었는데 그 시간이 이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슬쩍 쓱 어물쩍, 그러면 끝이었다. 불필요한 손놀림은 전혀 없었다. (32쪽)

 

양배추쌈에 고추장물이 뭐라고 이런 구절은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달착지근한 양배추쌈 위에 푸릇푸릇하게 매운 고추장물과 밥을 얹어 한 쌈 싸 먹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맵다가 이내 머릿속이 시원하고 개운해진다. 된장이 줄 수 없는 깨끗한 짠맛과 땡초의 번쩍 깨는 매운맛이 별안간 내 존재를 순수하게 텅 비운다. 심심한 열무김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낯설고 허무한 생각마저 든다.(110쪽)

 

난 권여선 님의 글들을 읽으며 같은 생각들을 하였으니 쌤쌤이다, ㅋ~.

 

밥 한 숟가락에 자르지 않은 긴 시래기 한 줄기를 둘둘 얹어 먹기도 한다. 바삭한 가을 햇빛과 씁쓸한 땅의 맛을 은은하게 간직한 시래기 나물의 독특한 맛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123쪽)

이 구절에선 '씁쓸한 땅의 맛'이란 구절이 좋았다.

'바삭한 가을 햇빛'이라는 하늘의 기운과,

씁쓸한 땅의 맛과,

그걸 밥 한 숟가락에 둘둘 얹어먹는 권여선 님과,

뭐랄까, 천지인 물아일체를 경험하신다고 해야 할까.

그걸 엿보는 나도 자연스레 천상의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생선 비늘을 비닐이라고 발음하시는 생선가게 남자에게선 이런 헤프닝을 떠올린다.

어느 날 귀엽게 생기고 패션에 민감한 어린 게이머가 진회색 니트로 된 비니를 쓰고 나왔다. 젊은 해설자가 "아, 저 선수, 오늘은 비니를 쓰고 나왔네요."라고 말하자 나이 든 해설자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비닐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네?"

"암만 봐도 비니루 같지는 않다고요."

그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화면에 입을 가리고 끅끅 숨넘어가게 웃는 젊은 해설자와,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찌푸린 나이 든 해설자의 모습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166쪽)

 

아, 좋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였다.

사는 게 폭폭하여 목이 막히거나 메일때,

고인 침을 눌러 삼키듯 눈물도 그렇게 눌러삼키면 그만이라고 알고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좀 빨리 끝나버리는 건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길면 또 물릴 것도 같다.

아직은 못 읽은 님의 작품들이 남아 있으니, '안녕, 주정뱅이'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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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18 11:55   좋아요 1 | URL
소주 석잔이면 만취하는 저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애기인데,
또 남자들 중에, 개중에는 술이 들어가면 밥이고 안주고 입에 안대는 사람들도 있죠.

술을 드시더라도 안주도 같이,
배 고프면 밥을 드신 후에 술은 천천히 드시길 강권합니다~ㅅ!^^

잠자냥 2018-06-18 11:52   좋아요 1 | URL
예문만 읽어도 침이 고이네요. 하하하하.

양철나무꾼 2018-06-18 11:57   좋아요 0 | URL
권여선 님 글 처음 읽었는데, 맛깔 나네요.
글이 맛있을 뿐더러 정갈해요~^^

지금행복하자 2018-06-18 14:11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맛갈나는 표현에 침이 스르르~

양철나무꾼 2018-06-18 18:10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맛있는 책의 말견이었어요~!^^

겨울호랑이 2018-06-18 17:57   좋아요 1 | URL
비니루, 공구리 등등 표현은 멋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지네요^^:)

양철나무꾼 2018-06-18 18:12   좋아요 1 | URL
이게 입말을 옮기는 과정이어서 멋은 없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ㅎ,ㅎ.

moonnight 2018-06-18 18:27   좋아요 1 | URL
저도 방금 행복하게 다 읽었어요. 배고프네요^^;

양철나무꾼 2018-06-18 18:30   좋아요 0 | URL
정말 맛있는 책 아닌가요?^^

오늘은 야구를 하지 않아서 좀 우울할라 그랬는데,
축구가 기다리고 있네요.
축구를 보면서 먹을 주전부리를 궁리해봐야겠어요~^^
 
그림자 밟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언젠가 읽었던 '사랑의 묘약'(<==링크)이 너무 좋았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사랑의 묘약'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작가들이란 그게 그림이 됐건, 글이 됐건, 그밖의 다른 창작물의 형태가 됐건 간에,

'첫'이란 걸 훈장이나 멍에처럼 가지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비교하고 얽어매고 그리하여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피폐해지게 만들 수도 있을테니 조심 또 조심하여야 겠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그림자밟기'라는 제목부터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사람의 다른 면을 보고 비출 수 있듯이,

그림자라는 것도 빛이 비추는 방향이나 각도, 또는 형태가 만들어내는 운동성 등에 따라 다른 크기와 농도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가족이 습기를 머금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면 그건 좀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 화가였다. 결코 시시한 재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감과 자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23쪽)

 

이 그림자는 때로 그림의 음영으로 나타난다.

이 음영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즉각 초자연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ㆍㆍㆍㆍㆍㆍ드리하여 음영이 정말로 주체를 훔쳤고, 나머지 세상에서는 음영이 더욱 리얼해져 마침내 남은 것은 음영뿐인 것처럼 보였다.(184~185쪽)

빛의 형태로 얘기되어지기도 한다.

빛은 신기해. 만질 수도 없고 질량도 없지만 중력에 의해 구부러지거든. 마치 파도처럼 움직여. 또한 입자처럼 움직이지. 이 둘을 하나로 이해하는 건 사람의 머리로는 어려워. 그러니 너만 모르는 게 아냐. 외로워할 필요 없어. 딱딱한 물체에 빛이 부딪칠 때 그 물체를 뚫고 지나가는 건 빛이 아니라 빛의 에너지야. 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 거라고 생각하니?ㆍㆍㆍㆍㆍㆍ하지만 엄마는 빛이고 아빠는 중성자별이야.(239쪽)

 

사실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잠식하고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둘은 화가와 모델 관계로 만났는데,

화가는 선정적이고 어두운 그림들을 그린다.

모델인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일 것이다.

아들인 플로리언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을,

엄마인 아일린는 포르노를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로 선정적이다.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했거든요. 삶이 침해받는 기분이었어요.(95쪽)

 

또 하나 불편하였던 것은 부모의 자격이 없지 싶어서 였다.

길도, 아이린도, 자기 부모에게 효자, 효녀 자식이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음은 물론,

그냥 부모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겠죠. 아마 안심하고 싶어서 그럴 거예요.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전쟁, 살인, 유기, 납치 같은 일들이 자기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서요. 홀로 남아서 스스로 살아가거나 남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거라 믿고 싶은 거예요.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플로리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제가 어머님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168쪽)

플로리언의 선생님이 아이린에게 한 이 말은 많은 걸 짐작케 한다.

 

책의 곳곳에서 부부는 서로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 사랑을 하고 의지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다면,

속으로만 사랑할 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 그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사랑은 다른 과정을 거치고 다른 형태로 변해져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길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잠든 그녀의 구부러진 벽 같은 등에 살짝 등을 대고 누웠다. 습관이 위안을 주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잠든 아이린의 존재는 그를 안심시켰다.(43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결말을 얘기할 수 없지만, 나는 이 책의 결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정적으로든, 현실에서의 삶의 형태로든,

더하거나 덜하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보면 잠식당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하게 그림자를 밟고 드리우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여기서 상관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안되면,

관계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어서,

부모나 자식,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자라거나 어긋나고 틀어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게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삶도 기꺼이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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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15 18:23   좋아요 2 | URL
자기의 모습,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려면 스스로를 긍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만들기 위한 ‘힘 기르기’, 즉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

양철나무꾼 2018-06-16 10:51   좋아요 1 | URL
이 책이랑, 님의 댓글이랑 좀 어긋난 내용일지 모르는데,
전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자기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술적인 문제랑 결부되어 내용이 좀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발설할 수는 없고~--;
상처받고 피 흘리고 넘어져 본 사람들은 상처받는게 견딜만하다고 여길 것이고,
상처받는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소심하게 말씀드려봅니다.
페미니즘에 요즘 관심 많으신 cyrus님이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긴 합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늘 내가 1등이다.

남편과 아들이 도착하기 전의 적막강산이 싫어서 텔레비전을 배경으로 틀어놓고 멍때리고 앉아 있는다. 

내 나름대로의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다.

어제도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디에선가 해주는 '인간극장-인어할머니와 선장'편을 봤다.

처음엔 울릉도의 바다와 풍광이 좋아서 시선을을 주었는데,

어느 순간에 이르러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2011년 방송된것 같은데, 그때 할머니 나이가 91세였고 선장님의 나이는 65세였다.

같이 물일을 하신지는 10년이 되셨다는데, 가족이나 혈연 관계는 아니다.

방송을 보면서 할머니에게도 애잔함을 느꼈지만,

날 울게 만든건 선장님이셨다.

만나셨을 당시 할머니도 81세셨겠지만, 선장님도 55세였을 것이다.

65세를 노년이라고,

그리하여 욕심을 줄여야할 나이라고, 

백번 양보하여 그렇게 애기한다손쳐도,

55세는 무엇엔가 욕심을 좀 부려도 좋을 나이인데 말이다.

 

 

선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멍때리기와 닮았다, ㅋ~.

 

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이런 게 있다.

 

 

 

 

 

 

 

 

 

 KBS 다큐멘터리 기획전 自然+人 : 인어할머니와 선장
 임원순 감독 / 이오스엔터 / 2012년 7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나 보다.

 

문득 2011년의 91세이시던 인어할머니는 지금 어찌되었을까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티가 제법 날 선장님도 궁금하고 말이다.

아무리 뒤져봐도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상상대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들은 그러한 것 같다.

자욱한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미스테리로 남겨두었을때 더 오랜 여운으로 남는 그런 것들이 있나 보다.

 

선장님은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울릉도에 계시지 않고 떠도셨을 거라 하셨다.

지금은 어느 섬, 어느 바다 위에서 저런 멋진 멘트를 날리고 계실지 모르지만,

나는 무한 위로를 받았었고,

집으로 돌아가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멍때리고 휴식을 취할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데,

숨과 쉼은 묘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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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13 17:19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왜 인어할머니지? 했는데, 91세에도 해녀로 일하시는 분이었네요.
아마도 선장님에게는 인어할머니가 생의 구심점 같은 사람이었나봅니다.
저는 이 방송을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어쩐지 외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별 생각없이 사는 날이 좋은데, 생각 많은 날도 있고,
실은 어느 때를 좋아하는지 그런 것들도 계속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일찍 오셔서 텔레비전 보고 계실까요.
저녁이 되니 살짝 비올 것 같은 느낌이예요.
양철나무꾼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8-06-14 09:40   좋아요 1 | URL
네, 폐활량도 좋으시고 물질도 잘 하시고 물속에선 완전 인어 같으시더라구요.
근데 물밖으로 나오면 연세 높으시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
2011년 촬영 당시에도 보니까 깜빡 깜빡 하시는게 치매 증세가 있으시던데,
그 점이 염려스럽더라구요.

나이를 먹는다는건 외로움을 감내할 일이 많아진다는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비가 와서 그런가 왠지 센치해지네요, ㅋ~.
서니데이 님의 비 예보 맞으셨어요~^^
 

하루종일 컴퓨터를 켠 상태로 (놀다보니) 일을 하다보니,

심심하면 여기저기 마실을 다닌다.

마실을 다니는 특별한 기준은 없고,

필요한 물건도 없으면서 소셜커머스를 들락거리는 건 기본이고, ㅋ~.

요즘 대세라는 먹블로그도 한번 들어가 봤다가,

궁금한 정보도 한번 찾아봤다가,

알라딘 서재 이웃의 글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분은 언젠가 먹갈치와 은갈치의 차이점이 궁금하여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됐는데,

알고보니 이런 책을 내신대다가 다큐 방송에도 소개되는 등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분이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정성기 지음 / 헤이북스 /

 2016년 12월

 

스머프 할배의 사랑방(==>바로가기)

 

먹갈치와 은갈치, 궁금증을 해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실을 다니는 이유는,

이 분이 하루하루 노모를 모시는 걸 보면서,

뭐랄까, 나를 반성하고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다큐 방송이나  다른 책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현실적인 깨달음.

난 만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다.

평상심을 유지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그분들과 어울려 지내다보면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어떤 때는 제 풀에 지쳐서 기운이 빠지곤 한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전에 기공소 알바를 하신다고 하는데,

그러고도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들어 가서 대접한다.

기꺼이 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긴거다.

 

이분과 이책에서 자극을 받아 읽게 된 책은 '장모님의 예쁜 치매'라는 책이었다.

 

 

 

 장모님의 예쁜 치매
 김철수 지음 / 공감 /

 2014년 5월

 

이 책은 치매에 대해서 알기 쉽게, 접근하기 쉽게 쓰여있다.

치매에 걸린 사람에 대해서, 가 아니라,

치매 가족들의 대처법이나,

어떻게 예방을 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살짝 실망을 한건 '치매 예방 한약'이라는 것을 너무 홍보하는 경향이 있고,

'치매 걸린 장모님'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일반화시켜 얘기하고 있다.

 

치매 걸린 장모님에 대한 그런 대접은 형편과 여유에 따른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요양센터나 요양 병원에 모시는 것도 평범한 가정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저 위의 정성기라는 스머프 할배 같은 경우, 적지않은  연세에 기공소 알바를 하고 계시다.

간병인 아주머니를 들이고,

1대1 간병을 한다는 건 보통 가정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때에는 개인의 빽을 이용하여 우선 수술을 한 것이나,

개인 간병인을 고용한다던가 하는 얘기 말고,

정부나 국가 차원에서의 노인 복지라던가 노인 요양 쪽에서 접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이 책은 장모님을 모시고 몇 개월 사이의 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치매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얘기를 할 때의 그 '긴 병'이다.

그 이후에 어찌 되었는지, 현재 진행형인지 한번쯤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치매 관련 이런 책도 있다.

 

 

 

 치매 걸린 거북이는 없다
 손문호 지음 / 그리심어소시에이츠 /

 2018년 4월

 

이 책이 궁금한 이유는 치매가 걸린 사람이 친구의 아버지인데 닥터였고,

치료를 하는 사람이 정형외과 닥터여서 이다.

넘나들며 아우르지 않는 것은 없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거북목과 치매, 상관 관계가 적어보인다.

 

또 한권, 이 책은 치매 관련 책은 아니다.

몇 년전 시어머니가 이 무렵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를 추억하며 감상에 젖어본다.

 

 

 

 

 '숨' 쉴 때마다 네가 '필요해'
 진성림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4월

 

늘 숨을 쉬고 살아가지만,

숨 쉬는데 필요한 공기 말고,

다른 것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엔 남편이, 그 다음엔 아들이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시적이고 찰나적이다, ㅋㅋㅋ~.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숨만 쉬고도 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날 살아가게 하는 건 오직 '책'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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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6-13 07:43   좋아요 1 | URL
일시적이고 찰나적...
저도 동감해요~~
오직 책뿐! ㅎㅎ

양철나무꾼 2018-06-13 09:15   좋아요 1 | URL
세실 님 아드님 사진 언젠가 본거 같아요.
완전 잘 생겼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세실 님부터 시작해서 따님, 아드님...완전 미모로운 집안이네요~^^

아들에게 여친이 생기니 꼬빼기도 보기 힘들답니다~--;
오직 책뿐이요~!^^
 
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한때 똑부러지고 야무진 부류였다.

아니 야무진 과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얘기는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었다.

금전적이나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손해보는게 싫었었다.

헤플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자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고보니 '중도' 내지 '중간', '중용'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그리 먹는다고 하여 내 입맛에 맞게 그렇게 '중간'을 지키게 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묻기 위해선 목소리를 과하게 높여 크게 말해야 하고,

대답으로 듣는 목소리 또한 그렇게 큰 목소리들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면,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정적이 그립다.

감히 정적을 '중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앨런 로퍼는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보스톤에 위치한 브리검 여성 병원의 신경과학부의 최고 임상의이다.

이 책을 시도하는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두뇌나 신경,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주변에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기에 좋겠다.

 

책엔 앨런 로퍼 말고도 브라이언 러셀이라는 사람이 지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기획자 정도 되는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여러 가지 교훈과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이 책이 깔끔하게 읽히진 않았다.

읽으면서 좀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래서 번역의 문제인가 했었는데,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두 명이어서인듯 하다.

 

한 꼭지에서 한 사람의 얘기가 명확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친절한 설명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뒤섞여 버린다.

없어졌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두뇌와 신경 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것 마냥 (원제가 Reaching down the rabbit hole이다) 너무 깊숙해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가볍게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고 존경하는 마음이 샘솟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였다.

 

데니스,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병동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한 시간, 두 시간, 심지어 세 시간이나 차를 달려 우주의 중심(보스턴이 그렇게 자칭한다)으로 왔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들어야 할 것들이다.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치료다. 제대로 들을 때 우리는 자세한 사항을 알아서 다음 환자에게 더 나은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다. 레지던트들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진단과 치료, 기술, 척도, 농도, 복용량, 비율, 증가와 감소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것들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잊지 마라.(19쪽)

 

여기서 듣는 다는 것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듣는다는 의미 이상의 좀 복잡한 의미일 것이다.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는 의미 외에,

말하는 장단이나 어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능력,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 의 여부는 두뇌의 영역과 관련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환자가 하는 말을 그냥 주의깊게 들어도 좋겠다.

사이 사이 적당한 추임새는 덤이다.

 

히스테리 증상 대다수는 진짜 신경에 질병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증상으로는 마비, 걷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것, 발작, 힘이 빠져 약해지는 것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때로 문제를 조작해내는 한 기관(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증상은 더욱 얼토당토않게 될 수 있다. 몸의 오른 쪽이나 왼쪽, 즉 한쪽 부분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해당 쪽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든가 눈이 보이지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신경계는 이러한 결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질병이 신경계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뇌가 뇌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위장은 위장의 문제를 만들어낼 자체의 정신이 없다. 결장도 그렇고 폐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다.(129쪽)

 

이 부분은 내가 만나는 환자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뇌나 신경 분포 영역대로 공식에 대입하듯 아픈 사람들도 있지만,

그 패턴에서 벗어나서 전혀 상관 없는 부위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가치 판단이나 조언, 진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어줄 귀'가 절실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두뇌나 신경과 관련된 지침서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나이 먹어가고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ㆍㆍㆍㆍㆍㆍ조지,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지난 10년 동안 나는 100퍼센트 현재에서 살았어요. 나는 4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3년 전에는 갑상선암을 진단받았고, 지금은 조지가 병을 앓고 있어요. 우리 삶이 이제 평온해졌고,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주 분명해요. 최우선순위는 도덕적, 정신적 나침반을 유지하는 것, 우리의 건강과 웰빙 그리고 우리 딸의 건강과 웰빙, 나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일 년 후, 혹은 24개월 후, 혹은 48개월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 걱정하지 않아요. 그때 우리가 괜찮을까, 혹은 그때 괜찮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있는가? 그건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여기에 살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것이니까요. 나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요. 조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ㆍㆍㆍ."(261쪽)

 

이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무릇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지기 위해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줄여,

그리하여 더 단순하고 소박해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때때로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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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08 18:11   좋아요 2 | URL
지나간 것과 오지 않은 것들에 마음 쓰일 때가 있어요.
그건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을 잘 찾고 잘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잘 되지 않는 걸 알지만, 생각나면 그 때만이라도요.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저녁도 맛있게 드시고요.^^

양철나무꾼 2018-06-09 10:37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의미에선 좋은 것 같아요.
지나간 과거는 잘 기억나지 않고,
얼마남지 않은 미래의 일들은 미루어 짐작하겠는지라 두근거리거나 설레일 일이 별로 없어요.
매일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평상심이 무심이 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 내공에는 이르지 못했네요~--;

아침부터 날씨가 훅훅 거려요.
얼마나 대단하려고 그러는지...
시원하고 맛난 점심 드세요~^^

페크pek0501 2018-06-08 19:16   좋아요 3 | URL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준다는 건 그의 얘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집중하며 편견이나 선입감 없이 제대로 들어 주려는
의지의 영역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것도 일종의 습관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양철나무꾼 2018-06-09 10: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누군가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건 쉽지않아요.
게다가 저분처럼 얘기에서 의학적 정보들을 캐치해 내려할때는,
그 얘기가 증상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해내야하니 좀 더 어려울 수 있을 거예요.

알라딘 서재에서의 패크님을 보면,
꾸준히 마실도 다니시고,
댓글도 교환하고,
좋은 습관이 형성되신것 같아서,
전 마냥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