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컴퓨터를 켠 상태로 (놀다보니) 일을 하다보니,

심심하면 여기저기 마실을 다닌다.

마실을 다니는 특별한 기준은 없고,

필요한 물건도 없으면서 소셜커머스를 들락거리는 건 기본이고, ㅋ~.

요즘 대세라는 먹블로그도 한번 들어가 봤다가,

궁금한 정보도 한번 찾아봤다가,

알라딘 서재 이웃의 글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분은 언젠가 먹갈치와 은갈치의 차이점이 궁금하여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됐는데,

알고보니 이런 책을 내신대다가 다큐 방송에도 소개되는 등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분이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정성기 지음 / 헤이북스 /

 2016년 12월

 

스머프 할배의 사랑방(==>바로가기)

 

먹갈치와 은갈치, 궁금증을 해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실을 다니는 이유는,

이 분이 하루하루 노모를 모시는 걸 보면서,

뭐랄까, 나를 반성하고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다큐 방송이나  다른 책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현실적인 깨달음.

난 만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다.

평상심을 유지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그분들과 어울려 지내다보면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어떤 때는 제 풀에 지쳐서 기운이 빠지곤 한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전에 기공소 알바를 하신다고 하는데,

그러고도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들어 가서 대접한다.

기꺼이 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긴거다.

 

이분과 이책에서 자극을 받아 읽게 된 책은 '장모님의 예쁜 치매'라는 책이었다.

 

 

 

 장모님의 예쁜 치매
 김철수 지음 / 공감 /

 2014년 5월

 

이 책은 치매에 대해서 알기 쉽게, 접근하기 쉽게 쓰여있다.

치매에 걸린 사람에 대해서, 가 아니라,

치매 가족들의 대처법이나,

어떻게 예방을 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살짝 실망을 한건 '치매 예방 한약'이라는 것을 너무 홍보하는 경향이 있고,

'치매 걸린 장모님'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일반화시켜 얘기하고 있다.

 

치매 걸린 장모님에 대한 그런 대접은 형편과 여유에 따른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요양센터나 요양 병원에 모시는 것도 평범한 가정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저 위의 정성기라는 스머프 할배 같은 경우, 적지않은  연세에 기공소 알바를 하고 계시다.

간병인 아주머니를 들이고,

1대1 간병을 한다는 건 보통 가정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때에는 개인의 빽을 이용하여 우선 수술을 한 것이나,

개인 간병인을 고용한다던가 하는 얘기 말고,

정부나 국가 차원에서의 노인 복지라던가 노인 요양 쪽에서 접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이 책은 장모님을 모시고 몇 개월 사이의 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치매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얘기를 할 때의 그 '긴 병'이다.

그 이후에 어찌 되었는지, 현재 진행형인지 한번쯤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치매 관련 이런 책도 있다.

 

 

 

 치매 걸린 거북이는 없다
 손문호 지음 / 그리심어소시에이츠 /

 2018년 4월

 

이 책이 궁금한 이유는 치매가 걸린 사람이 친구의 아버지인데 닥터였고,

치료를 하는 사람이 정형외과 닥터여서 이다.

넘나들며 아우르지 않는 것은 없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거북목과 치매, 상관 관계가 적어보인다.

 

또 한권, 이 책은 치매 관련 책은 아니다.

몇 년전 시어머니가 이 무렵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를 추억하며 감상에 젖어본다.

 

 

 

 

 '숨' 쉴 때마다 네가 '필요해'
 진성림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4월

 

늘 숨을 쉬고 살아가지만,

숨 쉬는데 필요한 공기 말고,

다른 것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엔 남편이, 그 다음엔 아들이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시적이고 찰나적이다, ㅋㅋㅋ~.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숨만 쉬고도 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날 살아가게 하는 건 오직 '책'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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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6-13 07:43   좋아요 1 | URL
일시적이고 찰나적...
저도 동감해요~~
오직 책뿐! ㅎㅎ

sslmo 2018-06-13 09:15   좋아요 1 | URL
세실 님 아드님 사진 언젠가 본거 같아요.
완전 잘 생겼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세실 님부터 시작해서 따님, 아드님...완전 미모로운 집안이네요~^^

아들에게 여친이 생기니 꼬빼기도 보기 힘들답니다~--;
오직 책뿐이요~!^^
 
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한때 똑부러지고 야무진 부류였다.

아니 야무진 과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얘기는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었다.

금전적이나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손해보는게 싫었었다.

헤플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자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고보니 '중도' 내지 '중간', '중용'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그리 먹는다고 하여 내 입맛에 맞게 그렇게 '중간'을 지키게 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묻기 위해선 목소리를 과하게 높여 크게 말해야 하고,

대답으로 듣는 목소리 또한 그렇게 큰 목소리들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면,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정적이 그립다.

감히 정적을 '중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앨런 로퍼는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보스톤에 위치한 브리검 여성 병원의 신경과학부의 최고 임상의이다.

이 책을 시도하는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두뇌나 신경,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주변에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기에 좋겠다.

 

책엔 앨런 로퍼 말고도 브라이언 러셀이라는 사람이 지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기획자 정도 되는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여러 가지 교훈과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이 책이 깔끔하게 읽히진 않았다.

읽으면서 좀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래서 번역의 문제인가 했었는데,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두 명이어서인듯 하다.

 

한 꼭지에서 한 사람의 얘기가 명확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친절한 설명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뒤섞여 버린다.

없어졌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두뇌와 신경 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것 마냥 (원제가 Reaching down the rabbit hole이다) 너무 깊숙해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가볍게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고 존경하는 마음이 샘솟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였다.

 

데니스,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병동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한 시간, 두 시간, 심지어 세 시간이나 차를 달려 우주의 중심(보스턴이 그렇게 자칭한다)으로 왔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들어야 할 것들이다.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치료다. 제대로 들을 때 우리는 자세한 사항을 알아서 다음 환자에게 더 나은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다. 레지던트들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진단과 치료, 기술, 척도, 농도, 복용량, 비율, 증가와 감소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것들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잊지 마라.(19쪽)

 

여기서 듣는 다는 것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듣는다는 의미 이상의 좀 복잡한 의미일 것이다.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는 의미 외에,

말하는 장단이나 어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능력,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 의 여부는 두뇌의 영역과 관련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환자가 하는 말을 그냥 주의깊게 들어도 좋겠다.

사이 사이 적당한 추임새는 덤이다.

 

히스테리 증상 대다수는 진짜 신경에 질병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증상으로는 마비, 걷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것, 발작, 힘이 빠져 약해지는 것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때로 문제를 조작해내는 한 기관(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증상은 더욱 얼토당토않게 될 수 있다. 몸의 오른 쪽이나 왼쪽, 즉 한쪽 부분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해당 쪽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든가 눈이 보이지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신경계는 이러한 결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질병이 신경계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뇌가 뇌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위장은 위장의 문제를 만들어낼 자체의 정신이 없다. 결장도 그렇고 폐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다.(129쪽)

 

이 부분은 내가 만나는 환자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뇌나 신경 분포 영역대로 공식에 대입하듯 아픈 사람들도 있지만,

그 패턴에서 벗어나서 전혀 상관 없는 부위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가치 판단이나 조언, 진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어줄 귀'가 절실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두뇌나 신경과 관련된 지침서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나이 먹어가고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ㆍㆍㆍㆍㆍㆍ조지,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지난 10년 동안 나는 100퍼센트 현재에서 살았어요. 나는 4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3년 전에는 갑상선암을 진단받았고, 지금은 조지가 병을 앓고 있어요. 우리 삶이 이제 평온해졌고,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주 분명해요. 최우선순위는 도덕적, 정신적 나침반을 유지하는 것, 우리의 건강과 웰빙 그리고 우리 딸의 건강과 웰빙, 나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일 년 후, 혹은 24개월 후, 혹은 48개월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 걱정하지 않아요. 그때 우리가 괜찮을까, 혹은 그때 괜찮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있는가? 그건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여기에 살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것이니까요. 나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요. 조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ㆍㆍㆍ."(261쪽)

 

이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무릇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지기 위해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줄여,

그리하여 더 단순하고 소박해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때때로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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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08 18:11   좋아요 2 | URL
지나간 것과 오지 않은 것들에 마음 쓰일 때가 있어요.
그건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을 잘 찾고 잘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잘 되지 않는 걸 알지만, 생각나면 그 때만이라도요.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저녁도 맛있게 드시고요.^^

sslmo 2018-06-09 10:37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의미에선 좋은 것 같아요.
지나간 과거는 잘 기억나지 않고,
얼마남지 않은 미래의 일들은 미루어 짐작하겠는지라 두근거리거나 설레일 일이 별로 없어요.
매일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평상심이 무심이 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 내공에는 이르지 못했네요~--;

아침부터 날씨가 훅훅 거려요.
얼마나 대단하려고 그러는지...
시원하고 맛난 점심 드세요~^^

페크pek0501 2018-06-08 19:16   좋아요 3 | URL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준다는 건 그의 얘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집중하며 편견이나 선입감 없이 제대로 들어 주려는
의지의 영역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것도 일종의 습관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sslmo 2018-06-09 10: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누군가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건 쉽지않아요.
게다가 저분처럼 얘기에서 의학적 정보들을 캐치해 내려할때는,
그 얘기가 증상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해내야하니 좀 더 어려울 수 있을 거예요.

알라딘 서재에서의 패크님을 보면,
꾸준히 마실도 다니시고,
댓글도 교환하고,
좋은 습관이 형성되신것 같아서,
전 마냥 부러워요~^^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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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던가,

저자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이런 느낌을 남겼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충격도 고스란히 내몫이었다."

 

소설집은 소설이라서 자신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아도 좋으니,

재기발랄하고 좀 파격적이기도 했었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복면가왕'에서 좀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가수들 마냥,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일, 있을 법한 일을 쓰는 것이니,

소설 속에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든 작가 자신일 필요는 없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망하게 펼쳐내는 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수필집은 수필집대로 좋았다.

수필집에선 그동안 내가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던 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글들도 있어서 그랬을테지만,

문장이 깔끔하고 단정한 것은 그대로이지만,

피격적이고 자유분망하다기보다는 감정을 많이 절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신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웅숭깊다. 

 

미니 에세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책은  사람, 생활, 책, 일상, 글과 관련된 것들이라는데,

가볍다기 보다는, 좀 학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신변잡기라고 하기엔 학구적인 고찰이 돋보인다.

영화나 책 따위에서 뻗어나가는 발상의 전환들이 그러하다.

 

암튼 이 책을 님의 조언대로 손길 가는 대로 편하게 펼쳐서 읽다가,

옳다구나 하고 학문하듯이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그게 '잔소리'라는 꼭지였다.

 

부모는 말하고 자식은 거부하는 것, 그것이 잔소리의 속성(28쪽)이라는데,

나도 요즘 '나의 두번째 애인'이었던 아들만 보면 잔소리를 시전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름이 깊게 패이고 늙는게 느껴진다.

 

아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맘에 안드는데,

힘들면 씹어보지도 않고 뱉으려 한다.

친구에게 하소연하였더니,

신세대라서 그렇다는데,

그렇다면 요즘 신세대는 무엇을 씹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빨이 약한가 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책의 곳곳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하여 하는 잔소리가 내게도 통용되는 것 같아서,

따뜻한 온기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말이다.

 

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긍정하도록. 나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타자의 시선도 나를 곡해하게 된다. 호의적인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껏 스스로를 옭아매고 몰아쳐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부터 버린다.(57쪽)

 

판단의 무능은 사고와 성찰이 부족할때 생겨난다.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을 경계할 수 있는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게 문제라는 말. 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철학적 사유의 반성으로 거듭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 그것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었을까.(129쪽)

 

'작가의 말'에서 님은 일천 글자 쓰기를 거의 매일 하셨단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작업이었다며 겸양을 부리신다.

말이니까 하기 쉽지 육백여편이면 2년이라는 세월이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일천 글자 쓰기'라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엄청 좋아서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가며 읽다가,

보이지 않는 밑줄을 계속 긋다가,

외워버렸다.

ㆍㆍㆍㆍㆍㆍ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이나 하고, 망원경으로 새나 관찰하는 독신녀 제인 마플. 별일 하지 않는 척,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는 그녀는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요란 없이 꿰차는 노파 탐정이었다.

  미스 마플이 될 수도, 그럴 마음도 없었던 나는 다만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무심해 보이는 그녀도 멜랑콜리에 젖은 옷소매를 말리기 위해 바람 드는 새벽 창가를 찾는 일이 잦았을 거라고. 단단해 보이는 한낮의 미스 마플일수록 울지 않는 새벽은 드물었을 것이다. 해결하지 못할 숱한 과제 앞에서 눈물짓는 미스 마플이야말로 내 오랜 친구였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수필은 소설과는 다르게 겸손하고 두루뭉술하다.

한낮에 단단해 보이는 미스 마플에겐 늘 울면서 맞이하는 새벽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일 앞쪽을 보면,

곱게 미소짓는 님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ㆍㆍㆍㆍㆍㆍ여전히 바닷가 소도시에서 좋은 사람들과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나누며 살아간다. 책장을 넘기는 횟수만큼 감사하고, 백스페이스나 딜리트 키를 누르는 횟수만큼 용서를 바라는 그러저러한 나날이다.'

라고 되어있다.

그렇게 그렇게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누리시길 기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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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1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6-01 17:54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거의 다 읽어가는데, 문장이 간결해서 좋던데요.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요.

오늘부터 6월 시작입니다.
6월엔 더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보내세요.^^

sslmo 2018-06-02 09:12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매력인것 같아요.
간결하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어디서 부터든지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님은 또 어떤 감상을 올려주실지 기대가 돼요.
요즘 손글씨로 올려주시는 거 잘 보고 있거든요~^^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진 열어놓은 창문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네요.
오늘도 힘내자구요~!^^

세실 2018-06-02 06:41   좋아요 1 | URL
아 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데 님은 벌써...
스마트폰 만지는 시간만 줄여도...그쵸?
팜므님 글 정갈하고, 사람내음이 나죠. 매일 일천자 쓰기... 참 대단하신, 멋지신 팜므님^^
그리고 훌륭한 애독자 양철나무꾼님!

sslmo 2018-06-02 09:20   좋아요 1 | URL
아마 님은 일로도 여러 가지 책을 접해서 더 그러실거예요.^^
요즘 나이가 드는건지 부쩍 책 읽기도, 음악 듣기도 버거운데,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서 한꼭지씩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팜므님 멋지신거야 웬만한 알라디너야 다 아는 것이고,
저에게까지 덕담을 날려주신 세실 님,
님은 분명 천사이십니다~!^^

2018-06-02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6-02 16:23   좋아요 0 | URL
ㅎ, ㅎ....잘 지내세요?
꼼꼼이 읽으시고 댓글 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폰에선 수정이 불가능해요. 월욜날 출근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꾸벅~(__)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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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들이 알고 지내던 스물네 살 짜리 청년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아들이 형이라고 부르던 그 청년은 키와 몸무게의 숫자가 막상막하여서 주변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였단다.

장례식장에 간 아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형의 부모가 이혼을 하여 살아 생전 엄마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단다.

위로 누나들이 있었으나 일찍 출가를 하였고,

그 청년 혼자 비만이라는 질병과 싸우다가 그렇게 세상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뭐, 내가 남의 가정사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고,

인생의 한창때를 의지하고 의논할 부모가 없이 산다는건 참 외롭고 불우한 일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냥 스릴러나 장르소설보다는 사람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런 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도 그런 류의 심리소설인줄 알고 시작하였으나,

열두 살 아이의 심리 상태를 왠지 어설프게표현한다.

어쩜 아이의 심리 상태가 어설픈게 아니라,

쉰 다섯이 넘었을 작가의 심리 상태가 자꾸 개입을 해서 아이가 애늙은이처럼 표현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시선으로 열두 살 아이의 마음을 개입하고 간섭하려 하니 좀 삐그덕거리는 것일까.

어쩜 프랑스 아이들은 우리보다 조숙한 것일 수도 있고,

이 책의 앙투안 또한 부모가 일찍 이혼을 한터라,

애늙은이 같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앙투안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내용이나 줄거리 따위는 책 소개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언급되니 차치하고,

(실상 줄거리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을 말해 보겠다.

 

열두살 짜리가 여섯살짜리 아이를 때려죽인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런 후에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런 과정이 작가라는 어른이 개입한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내가 여기서 속상했던 것은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이 겉늙어버려서가 아니라,

부부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자라는 외톨이 아이의 그것 때문이었다.

만약 이 아이가 누군든 어른과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적어도 어른과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 수 있었다면,

내지는 함께 얘기를 나눌 친구라도 있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엇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아이가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을 하거나 의견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어른들이 이 아이를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여기선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제하겠다.)

「앙투안, 네게 혹시 고민이 있다면 말이다ㆍㆍㆍㆍㆍㆍ」

의사는 나직하고도 억제되고도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ㆍㆍㆍㆍㆍㆍ

「만일 내가 널 입원시켰다면ㆍㆍㆍㆍㆍㆍ일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ㆍㆍㆍㆍㆍㆍ?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ㆍㆍㆍㆍㆍㆍ.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ㆍㆍㆍㆍㆍㆍ그러니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넌 날 찾으면 된다고, 날 부르면 된다고 네게 말해주려고 말이야ㆍㆍㆍㆍㆍㆍ언제든지 부르면 돼ㆍㆍㆍㆍㆍㆍ. 자, 그거야. 불러서 내게 얘기하면 돼ㆍㆍㆍㆍㆍㆍ. 언제든지.」

  앙투안도 그리고 이 마을의 그 누구도, 디윌라푸아 박사가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만일 앙투안이 자기 말을 듣고 있다면, 이 말의 메시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시간을 주기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다음 일어나서 아까 들어왔던 것처럼 방을 나갔다. 마치 어떤 초자연적 존재처럼.(158~159쪽)

앙투안을 돌보러왔던 의사의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그것처럼 비춰져 눈물겨웠다.

 

그리고 열두살의 나이로는 이해하기 버거운 어른들의 애정 관계도 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볼 수 있는,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지난한 삶의 과정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떠오른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삶의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때,

질병으로 고통받을때,

의지하고 의논할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가 없이 산다는건 참 외롭고 불우한 일이다.

그리고 이건 어린 나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외롭고 불우한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말이다.

 

어떻게 무게중심을 잡으며 살아나가야 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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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24 11:30   좋아요 1 | URL
가정이라는 그릇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발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발이 한 개여도 서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로 의존했을 때 보다 안정적으로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sslmo 2018-05-24 11:43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는 결국 어머니와 누군가 보이지않게 앙투안을 배려했다는걸 앙투안이 아주 오랜 후에 깨닫게 돼요.
하지만 사건을 저지르고 어쩌지 못해 할때 적절한 도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 위에 표현되는 의사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와 방법으로 위로와 도움을 주려하는데...

아이에게 적절한 부모의 역할이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심은 갖되 간섭은 않는,
아이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 속에 무럭무럭 크는 존재들인것 같습니다~^^
 
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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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고 해야겠지만, 솔직히 그리 재밌진 않았다.

그게 유홍준 님의 필력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너무 한문이 많이 나오다보니 맥이 끊기는 느낌이어서 그랬다.

완당 평전을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오래전 일이라서 내용은 까마득하고,

거기다가 완당평전은 다 거둬들이고 내용을 보완하여 나온 것이 이 책이라고 한다.

유홍준 님의 오랜 추사 연구의 결과물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의의가 있겠다.

 

내가 추사를 알고 있는 방법이 소박(?)하여 민망하지만, 

언젠기 김탁환이 쓴 '열하광인'이었나, 백탑파 시리즈에 박제가와 더불어 등장해서 알게 되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뒤에 참고문헌이 빽빽한 것이 만만히 볼 책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사 김정희에 관한 책이지만,

박제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솔직히 난 추사 김정희보다는 박제가에 더 열광했었고,

자연 박제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했지만,

박제가에 대한 책은 몇 권 안 되었는데,

이 책에 추사 김정희의 스승으로 비중있게 등장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더우기 청조학이라고 하여 중국의 사상들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궁금하였는데,

그런 시대적 배경이 나와있는 것이 좋았다.

추사 김정희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중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추사 김정희의 집안이 빵빵하여 그리 될 수 있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중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그 시대 내로라 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시서화 따위 선물을 주고받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옛 위인의 전기이니까 웬만하면 호의적으로 뭐든지 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을텐데,

그의 인간상을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까칠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미국 갔다 온 지식인들이 말끝마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며 남을 면박 주며 잘난 체하곤 했는데, 그런 오만과 치기가 추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추사는 그런 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고, 간혹 그것이 심하여 사람들도부터 미움도 받았다(73쪽)

 

어찌 되었건 그런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보다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에 의해서 활발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의 사후 과천 문화원에 기증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후반기 글씨를 일컬어 대교약졸이라고 하나 보다.

글씨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파격적인 글씨들이 몇 있었으나 졸렬해 보이지는 않는다.

 

글씨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부람난취'라는 이 글씨가 가장 좋았다.

가만히 넋을 놓고 쳐다보다 보면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봄날의 푸른 산'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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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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