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명절 연휴 동안 뭔가를 하긴 했는데, 뭘 했는지는 모르겠다.

살살 헐어 야금야금 까먹다보면 어느새 바닥 나 버리는 과자봉지였다.

하루 날을 잡아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다.

호ㆍ불호가 제각각이겠지만, 내겐 지지리도 지루한 영화였다.

캐스팅도 완전 빵빵한 배우들이지만,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한 것이 미스캐스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을 뿐이고~--;

 

김훈의 '남한산성'이 생각나는 것이,

김훈이 참 글을 잘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내가 생각하던 김상헌, 최명길과 영화 속의 김윤석, 이병헌은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내 본위로 생각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는 고로,

내 속의 이미지들을 고착화시키고 싶어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는 수고도 하였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에 나오는 김상헌과 최명길은 이렇게 생기셨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당시에는 팽팽하게 대립을 했을테지만,

감옥에 갇혀서는 시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절 연휴동안 텔레비전에서 '1%의 우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봤다.

거기에 설민석이 김종민과 짝을 이뤄 나오더라.

설정인지 모르지만, 정말 가까이 하기에 공통분모가 1도 없어 보였다.

이 둘을 이어주는 1%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한명은 유명한 역사 선생님이고,

김종민은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둘이 '남한산성'에 오르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스치듯 봤을뿐인데 이 부분을 봐 버렸고,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http://tv.naver.com/v/2136800

 

삼전도비와 관련된 부분인데,

내가 의아해했던 부분을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고종이 치욕스럽다고 묻은 것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다시 파헤쳐지고,

이승만 정권 당시 다시 묻었단다.

이 부분과 관련, 내가 좋아하는 N 백과사전의 한꼭지를 볼 것 같으면,

 

이 비는 조선의 모일모화사상(侮日慕華思想: 일본을 멸시하고 중국의 문물과 사상을 흠모하여 따르려는 사상) 분위기를 우려한 일본에 의해 땅 속에 파묻혔다가 고종 32년(1895)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복구되었다. 그후 1956년 국치의 기록이라 하여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에 의해 다시 매몰되었다가 장마로 한강이 침식되면서 몸돌이 드러나자 원래의 위치에서 송파 쪽으로 조금 옮긴 지금의 자리에 되세워졌으며 1963년에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라고 적혀있다.

하나는 구술이고 하나는 글자이지만, 곧이 곧대로 해석을 했을땐 완전 뒤바뀐 내용인데,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모두가 내가 역사에 무지해서 비롯한 것이니 창피하기 이를 데가 없다~--;)

 

영화 '남한산성'은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치 상황이나 국내 정치 현실, 엊그제 보았던 축구 등 어느 것을 대입시켜도 비슷하게 들어 맞지만, 논쟁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니 생략하고,

칼보다 무서운 말의 위력을 알고,

말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지만,

너무 집착하여 안으로 감정을 키우진 말기로 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15년 개정판 세트 -

 전20권 (본책 20권 + 대형 브로마이드 + 조선왕실 가계도)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남한산성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 친구가 이런 자료를 보내주어 삼전도비 관련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나처럼 궁금해할 다른 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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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2 19:05   좋아요 0 | URL
저는 연휴 때 ‘킹스맨 2‘를 봤어요. 영화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설 연휴 방송은 기대한만큼 재미없었어요. 예전에 했던 방송 소재를 재탕하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sslmo 2017-10-13 10:24   좋아요 0 | URL
MBC도 그렇고, KBS도 그렇고, 파업 중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재탕에 삼탕의 느낌을 받았어요.

옛날 저 어렸을땐 티비에서 해주는 주말의 명화 기다리는 낙으로 살았던 거 같은데,
요즘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가,
예전만큼 감동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syo 2017-10-12 19:49   좋아요 0 | URL
만화 최명길 약간 이병헌 닮은 것 같지 않으세요?? 나만 그런가??

sslmo 2017-10-13 10:27   좋아요 0 | URL
님 말씀 듣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영화 속에서 둘의 설전 연기는 대단했는데 말이죠.

순오기 2017-10-13 01:14   좋아요 0 | URL
어제 jtbc 인터뷰에 김훈 작가님 나와서 궁금증도 해소해주고 좋았어요~^^

sslmo 2017-10-13 10:29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잘 지내시죠?^^
네, 저도 다시보기로 봤어요.
근황이 궁금했는데 반갑더군요.
차후엔 판타지를 쓰고 싶다시더라구요~^^

박균호 2017-10-13 21:39   좋아요 0 | URL
평소 동물의 왕국을 비롯한 다큐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ㅎㅎ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가 아닌 다큐로 본 걸 수도 있어요. 최명길과 김상헌이 임금 앞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논쟁을 하지만 단 둘이 있을 때는 허리를 굽혀 정중이 인사를 하고 격조있게 의견을 주고 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인조가 바닥에 이마를 댈 때 지금까지는 이마에 상처가 나도록 세게 부딪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살짝 대기만 했다는 것이 팩트라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여튼 저는 재미나게 봤어요...그리고 삼전도비에 관한 이야기는 이 포스팅 덕분에 처음 알았네요. 유익한 포스팅 재미나게 잘 읽고 가요.

sslmo 2017-10-14 09:20   좋아요 1 | URL
저는 책은 아무리 잔인하거나 잔혹해도 읽는데,
영상적 자극에는 무방비라, (밤 꿈에 나타날까봐 무서워서리~--;)
장면 곳곳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제가 재미없었던건 그래서 일수도~--;

영화에선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올때 김상현이 자살한 걸로 되어있지만,
실제론 김상현도, 최명길도 그후로도 오래오래 살았다죠.
김상현이 훨씬 더요.

명절 연휴는 잘 지내셨는지요.
그나저나 책 쓰시느라 바쁘시겠습니다.
제가 열렬히 응원하는걸 잊으시면 안됩니다~ㅅ!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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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들은 이야기의 전개방식이나 줄거리가 기발해서 흥미로운 반면,

어떤 소설들은 어떻게 펼쳐질지 알겠는데 담긴 내용이나 철학이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후자다.

내용이야 피아노 콩쿨에 대한 것이고,

그런 콩쿨이 3차의 예선을 거쳐, 본선에 이르기까지의 일정을 그린 것이니 다소 밋밋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다소 밋밋한 일정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는다.

 

이런 소설이 재밌기 위한 장치인,

콩쿨에서 흔히 나타나는 질투와 모함도 없고,

그렇다고 연주자들 사이에 특별한 러브라인이 형성되어 분홍분홍한 것도 없지만 말이다.

 

책을 사들이고 푹 빠져 읽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책만이 주는 묘한 설레임이 있다.

실은 언제부턴가 책을 사들여도 흥분되지 않아고,

재밌는 책을 읽어도 흥미롭지 않았었다.

그냥 잠자고 밥먹고 숨 쉬는 것 마냥,

책 읽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을, 마땅히 할만한 다른 일을 찾지 못하여 책을 읽는 나날이었다.

 

이 책도 처음엔 그럴줄 알았다.

하나의 콩쿨을 쭈욱 따라가는 단순한 구성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세를 고쳐앉았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고,

20여장을 남겨두고 퇴근을 할 수가 없어서 두꺼운 책을 들고 퇴근했다.

 

아, 좋은데,

너무 좋으니까 뭐라고 좋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책을 향하여선 늘 할 말이 많았던 나였기에,

나로서도 이런 내가 낯설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알라디너가 한명 있는데,

(옛날 닉네임이 이 책과 더 잘 어울리지만, 바뀐 닉네임도 나쁘진 않다.)

그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암튼,

여러명의 콩쿨 참가자가 등장하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네명 정도로 압축할 수가 있을텐데,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제각각의 사연으로 캐릭터를 구축하고,

그래서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이 소설은 피아노 콩쿨이니까 음악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지만,

그 음악의 자리에 문학이나 글쓰기, 책읽기, 인간 삶이나 관계를 넣어도,

얘기는 성립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카시의 소리는, 달랐다. 똑같은 피아노인데 방금 전 연주자와는 전혀 달랐다.

명쾌하고, 온화하고, 촉촉하다. 생동감이 넘치는 표정이 있다.

역시 음악은 곧 인간성을 나타낸다. 이 소리에는 내가 아는 아카시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카시라는 사람의 커다란 포용력이 소리에, 울림에 깃들어 있다. 무대 위 아카시 주변으로 광활한 풍경이 보였다.(164쪽)

그러니 음악만이 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음악으로,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또 어떤 사람은 글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낸다.

 

언젠가 '문제적 남자'던가?

그런 텔레비전 프로를 보게 됐는데,

천재 소년, 소녀가 나왔었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풀이를 설명할 일이 있었는데,

머리가 너무 핑핑 돌아가니까,

말도 같이 빨리 하는데,

하도 빨라 더듬더듬 뭐라고 하는데,

말이 머리를 못 따라간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ㅋ~.

 

소년이 피아노를 연주한다기보다 피아노가 소년을 연주로 이끄는 것 같았다. 그가 피아노를 부르면 피아노가 기꺼기 그에게 화답하는듯한.(220쪽)

이 부분은 문장의 호응 관계가 좀 이상하다.

피아노가 소년을 연주로 이끄는 것이라면,

피아노가 부르면 소년이 기꺼이 화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소년이 피아노를 부르면 피아노가 화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앞의 문장과는 호응이 안 맞는다~--;

 

어린 가자마 진의 목소리를 빌어 이런 깨달음을 표현한 게 좀 불만이었다.

 진은 그런 타입을 잘 알고 있었다. 농가나 원예가,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식물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강한 인내심이다. 자연계를 상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노력해도 어찌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은 반면, 매일 손을 움직여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 기약없는 일에 끝없이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들은 일종의 체념을 익히고, 자기만의 독특한 운명론을 갖게 된다.(373쪽)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원리를 깨닫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음악적으로 이끌어가는 선도자적 캐릭터라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아무런 시련도 없이 탄탄대로를 걷는건가 싶어서 완전 부러웠고 소심하게 딴지를 걸어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가자미 진처럼 '순수하고 이질적인 천재'는 말하자면 '알기 쉬운' 천재다. 하지만 마사루는 똑같은 천재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며칠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마사루는 무척 균형 잡힌 인격자였다.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보통' 사람의 감각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꼭 음악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분명 뛰어난 인물이 되겠구나 싶은 전방위적인 깊이가 있다.(632쪽)

 천재를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고 있다.

 

콩쿨이 끝나면 소설도 끝이 난다.

좀 밍숭맹숭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소설을, 아니 책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은게 되게 오래간만인 것 같다.

이 가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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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9-21 15:10   좋아요 0 | URL
요즘 헤르만헤세 전작읽기 중인데요.
이 포스팅의 제목을 보니 <싯다르타>를 읽고난 후의 느낌을 대변하는 문장이라 반가웠습니다.

<꿀벌과천둥> 꼭 기억할께요^^

sslmo 2017-09-21 15:49   좋아요 1 | URL
‘싯다르타‘를 전 고딩땐가 권장도서로 읽었었어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그렇게 꾸역꾸역 읽은 것인지, 원~--;
지금쯤은 님처럼 헤르만헤세 전작 읽기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꿀벌과 천둥‘ 웬만하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ㅅ!^^

서니데이 2017-09-21 17:24   좋아요 1 | URL
온다리쿠는 미스터리도 잘 쓰겠지만, 오디션, 콩쿠르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글도 잘 쓰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sslmo 2017-09-22 10:23   좋아요 1 | URL
제가 일본 소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서 온다 리쿠를 몇 권 읽었어도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예상 외로 좋았어요.
님도 함 읽어보세요.
시원한 바람이 살랑 부는 것이 책 읽기 딱 좋아요~^^

icaru 2017-09-21 21:24   좋아요 0 | URL
좋은데, 너무 좋으니까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는 그 마음,, 너무나 잘 알겠습니다! 하하!!

sslmo 2017-09-22 10:26   좋아요 0 | URL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감동이 머릿속에 물 밀듯 밀려오는데,
모든 말이 중언부언 쓸데없는 느낌.
icaru님이 잘 알았다고 동조해 주셔서 더 좋아요~^^
헤헤~^_____^

세실 2017-09-21 22:18   좋아요 1 | URL
이 가을 지인이라~~~
저두 기꺼이 추천 받을게요.
그렇게 재미있다는 말이지요^^

sslmo 2017-09-22 10:28   좋아요 0 | URL
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AgalmA 2017-09-21 23:29   좋아요 1 | URL
까달스러운(칭찬의 의미ㅎ) 양철나무꾼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안 읽을 수가.... 음악 얘기라 관심은 갔는데 너무 뻔할 거 같아서...그런데도 좋다고 하시니...흐음.

sslmo 2017-09-22 10:32   좋아요 0 | URL
줄거리는 뻔해요, 근데 내용이나 그 속에 담긴 철학은 안 뻔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 목록에 ‘신들의 봉우리‘랑 ‘심장 박동을 듣는 기술‘ 따위가 있거든요.
그것들 다음으로 좋았습니다.
‘신들의 봉우리‘보다 웃질로 치는 소설은 ‘유령이 쓴 책‘ 정도?
암튼 저의 완소 목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게다가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AgalmA님 같으신 경우엔 공감할 부분이 많으실듯~^^

비연 2017-09-22 08:43   좋아요 2 | URL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 싶어요. 양철나무꾼님의 리뷰까지 읽으니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는..
아 책 그만 사야 하는데 말이죠... 으으으으으.

clavis 2017-09-22 08:46   좋아요 0 | URL
아...저두요ㅠ

sslmo 2017-09-22 10:34   좋아요 1 | URL
비연님, 그간 비연 님의 리뷰 목록으로 미루어 충분히 좋아하실 만해요~^^

Clavis님, 님의 음악 코드를 제가 몇번 엿봤는데 말이죠~,
폭풍공감 할 수 있으실듯~^^
강력 추천 합니다~^^

2017-09-22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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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1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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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1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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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4: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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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5: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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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7: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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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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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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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8: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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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7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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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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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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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 1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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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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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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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어서 그런 건지,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어여쁜 여성이 실제 그의 아내처럼 느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이 등장하거나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건물이나 풍경만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란걸 알겠다.

그림들이 쭈욱 하나로 이어진다.

 

글은 17명의 다른 작가가 써서 그런 것이겠지만,

얘기가 하나의 주제나 기획 의도로 모이지 않는 것이 중구난방이다.

17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얘기를 하는데,

작품의 완성도도 다 다르고 하다보니,

시작하자 마자 맥이 빠져 버린다.

 

내가 아는 작가들의 작품은,

(실제론 그렇지 않겠지만,)

과거 어느 작품 속에서 봤던 것만 같다.

그리고 단편소설이야말로 열린 결말이 가능하다고 하고,

그게 단편소설의 묘미라고들 하지만,

무슨 얘길 어떻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장편소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장르소설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이걸 어떤 부류의 장르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속내를 들여다본것인지,

이 책의 기획자인 로런스 블록은 '서문'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이 단편소설들은 장르가 다양하거나 혹은 아예 장르가 없다. 어떤 이야기는 작가가 선택한 그림과 맞떨어져 캔버스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만 같다. 또 어떤 이야기는 그림이 어떤 식으로 계기가 되어, 캔버스에 모호한 각도로 맞고 튀어나온다. 내가 아는 한 이 소설들에는 단 두 가지 공통분모가 있을 뿐이다.- 작가들 개개인의 걸출함, 그리고 그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11쪽)

라고 하고 있다.

작가들이 걸출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작가들이 호퍼의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는 이 책을 꼼꼼이 다 읽은 후에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작가들의 경우,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작가들의 풍이랄까, 작가의 개성이 너무 두드러진채로 나타나서,

그림과, 또는 이 책의 기획의도와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하는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니콜라스 크리스토퍼'의 '바닷가 방'이었다.

그림도 알라디너의 서재 대문 그림으로 여러번 보았어서 친숙했고,

작가도 생소한 사람이라서 작풍이나 문체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던 터라 신선했다.

난 그동안 이 그림을 불때마다 바닷가 방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선상위의 방 정도로 생각했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낸 줄거리도 기발하다.

 

마이클 코널리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같은 경우는,

'해리 보슈'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어조도 에드워드 호퍼랑 잘 어울린다.

실제로 마이클 코널리의 '블랙 에코'에도 이 그림이 등장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일까, 얘기가 그림이랑 가장 잘 어울린것 같기는 했지만,

이 부분이 무슨 얘기인지 몰라 좀 애먹었다.

 

그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이 감시 업무를 하러 왔다. 옷을 껴입긴 했지만 지퍼로 연결하는 얇은 안감을 댄 LA의 트렌치코트가 시카고의 겨울 날씨로부터 시베리아허스키를 따뜻하게 지켜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시베리아허스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런 문장이 이어지는데,

금세 해리 보슈의 우울함에 전염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슈는 틀에 박힌 이야기 따위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문득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일을 하기에 난 너무 늙었어.(135쪽)

라든지,

그녀가 볼 수 없는데도 보슈는 고개를 끄덕였다.(148쪽)

위에서 시베리아허스키는 고독과 사랑에 민감한 해리보슈를 상징하는 매개이겠지만,

시베리아허스키는 추운 날씨에 잘 적응하는 개라고 알고 있었던 터라,

금방 이입이 안 됐다.

하지만 저 짧은 문장들로 알 수 있듯이,

선천적으로 고독하지만, ㅋ~,

타인을 향해 적당한 온기를 내어줄 수 있는 남자.

그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걸 아는 남자여서,

해리 보슈가 멋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이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인데 이 또한 로런스 블록 스타일이다.

하지만 좋았다.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기획 의도는 돋보이지만, (아무렴, 로런스 블록 아니겠나?)

하나로 묶이는 응집력 따위는 없었다.

작품의 수준도 일관되지 않고 천차만별인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해야 겠다.

 

다 읽고 띠지를 보니,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이 2017년 에드거상 수상작이다.

'역쉬~!'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전반적으로 고독하고 쓸쓸한 정서를 담은 것이 이 가을에 읽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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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9-15 16:58   좋아요 0 | URL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적극 추천해 주신 글만 날름 읽을까요? ㅋㅋㅋ

한 번 읽어 보려고 했었는데 고민이네요.

2017-09-15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7-09-15 18:43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 어색함을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그래서 표지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는지도...

sslmo 2017-09-16 09:22   좋아요 0 | URL
낭만인생 님, 댓글 보고 맘이 좀 놓입니다.
저는 한때 장르소설 매니아여서 이쪽으로 두루 섭렵해서 그런 거고,
다른 분들은 좋게 읽을 수도 있을텐데 했거든요.
일단 라인업만 봐도 빠방 하잖아요.
밑에 hnine님 댓글도 그렇고 어찌되었건 읽고 싶어지신다니 다행입니다~^^

hnine 2017-09-16 07:59   좋아요 0 | URL
예, 소문난 잔치 맞는 것 같아요. 소문에 부응하는 잔치였다면 좋았을텐데.
저도 얼마전에 서점 가서 이 책 거의 살뻔 했는데 마침 표지에 뭔가 끈적한게 묻어있어서 서점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그거 한권 밖에 없다고 해서 구입을 보류했었죠.
그런데 양철나무꾼님 리뷰 읽으니, 읽고 싶지 않다기 보다 오히려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건 무슨 청개구리 심사인지 모르겠어요 ^^ 저 시베리아허스키 대목은 정말 양철나무꾼님께서 해석을 해주셨으니 이해가 되었지만 저 같으면 모르고 그냥 넘어갔을거예요.

sslmo 2017-09-16 09:28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약속이 있다면 서점에서 만나게 되지만,
일부러 서점에 책을 사러가진 않게 돼요.
그리고 서점에선 둘러보고 메모만 했다가 집에 와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게 돼요.
그 이유가 다른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들춰보고 손 탄 책을 구입하긴 싫더라구요.
저도 그만큼 책을 깨끗이 보는 편이구요~^^

암튼 다행이예요.
다들 읽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래서 소신 리뷰를 쓰게 되는가 봅니다~^^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 - 사십대 가장과 세 여자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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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까지 읽었으니 순서 상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박균호 님이 내신 책은 다 읽은 셈이다.

뿌듯하다, 전작주의 목록에 1인을 추가할 수 있겠다.

새로운 책이 나오면 구입해 읽을 의사는 있지만,

혹여 빼놓고 못 읽은 책이 남아있다해도 일부러 사서 읽는 수고는 안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글쓰는 스타일은 이 책'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를 경계로 바뀐 것 같은데,

내가 '독서만담'을 읽고 완전 재밌다고 설레발을 쳤던 그 스타일이 이 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재미를 위해 지나친 과장을 한 것 같지만,

그 과장을 걷어내고 내면으로 파고 들어보자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말 그대로 일상적인 하루를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아저씨이다.

 

이 책의 '작가의 말'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이렇게 책으로까지 일상을 엮은 이유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내가 기록함으로써 특별한 역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상의 힘을, 기록의 힘을 그렇게 믿는다.(5쪽)

 

나는 글 뿐만 아니라 삶도 그런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님의 시'꽃'처럼,

평범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내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특별한 역사'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아내, 딸, 어머니 세 여자 중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하였다.

나도 몇 년전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모셨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것 같은데,

그런 아픔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는 것도 좋았다.

일상을 무덤덤히 얘기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도 큰 울림을 준다.

위트와 농담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어제 넷상에서 논란이 됐던 '최영미 시인'도 '네티즌들이 위트가 없다'와 '농담이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물론 '갑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빈민에 속하는 최영미 씨가 호텔에 언제 갑인 적이 있었던가'라며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황현산 님의 의중은 알겠다.)

 

최영미 시인이 욕을 먹는 이유는,

아니 적어도 내가 욕을 하는 이유는,

그녀가 갑질을 해서 욕을 하는게 아니라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다.

그녀는 '위트와 농담'이라고 하는데, 그 호텔에 보낸 메일을 보게 되면 진지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월세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을때,

호텔에 스폰서를 알아보는게 아니라, 형편에 맞춰 살아갈 방법을 궁리한다.

그 중 하나의 방법으로 호텔을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수영장'이 있는 '특급호텔'을 조건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암튼 삶의 간난신고를 시든, 소설이든, 글로 표현해내는 게 살아있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박균호 님의 그것이 다소 투박하지만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박균호 님의 이 책이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글이 뒤로 갈수록 짧고 힘이 없어진다.

그러니 힘 빠진 짬뽕공처럼 '통통~' 튀는 맛이 없다.

뒷 부분을 좀 보완해서 힘을 실어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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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12 19:5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이 인용한 책 5쪽의 문장을 보면서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생겼어요. 언제부터인가 글 쓰는 일에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그동안 기록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이 평범해보여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sslmo 2017-09-14 08:57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그래서 좀 뜸하셨군요~^^
님 편하신 대로 하면 되는거죠.
하지만,
But,
님의 것처럼 훌륭하고 좋은 글은 좀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ㅅ!
 

가을은 독서의 계절일까, 여행의 계절일까?

여름 내내 읽던 최명희 님의 '혼불'을 9권까지 읽었고 이제 마지막 10권만을 남겨놓고 있다.

바짝 당겨 읽고 끝낸 후에 어디 단풍 놀이라도 가볼까 했었는데,

마지막 권을 앞에 두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다.

10권짜리 소설에 9권까지 읽었는데 끝이 안보이는데,

이런 상태로라면 미완결의 소설이거나 완결이 되더라도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어 어설프게 끝나버릴텐데,

그렇다면 미완결이라고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미완결이라는 걸 알고도 장장 10권을 내달려왔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다.

 

두산 백과 사전에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된 직후부터 쓰기 시작해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2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제1부가 당선되었고,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제2∼5부를 연재한 뒤 1996년 17년 만에 전10권(5부)으로 완간된 최명희의 작품이다.

이라고 되어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한국민족문학대백과에는,

이후 작가는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투병하던 중에도 제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끝내 집필하지 못하고 타계하여, 1996년에 간행된 판이 최종본이 되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는,

1988년 9월부터 1995년 10월 사이에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고 1996년 한길사에서 10권의 결정본이 발간된 최명희의 미완성 대하소설.

이라고 되어 있다.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9권에선 얘기의 대부분을 사천왕상에 할애한다.

그냥 사천왕상 얘기를 할때는 어려운 얘기가 지루하게 펼쳐진다 정도였는데,

선운사의 사천왕상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는데,

알고나니(시댁이 선운사 근처라서),

더 아름답고 대단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면만 놓고 봤을때는 아쉽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소설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을 통해서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식이나 교양의 축적이나,

어떤 이데올로기 담론이 아니라,

그와 버무려진 이야기의 전개인데,

이야기의 전개는 완전 미미하고 더딘데다가 생략도 많았는데,

그 생략된 부분이 어디에선가 드러날테지 하고 기다렸는데,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랄까.

10권을 다 읽어도 '완결'을 봤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해결되지 못했다는 허무함이 남을 것 같다.
오히려 내 맘대로 그 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게 재미있겠다.

 

오늘 아침 대형포털을 둘러보니 최영미가 핫이슈이다.

어떻게 그렇게 저렴하고 발랄한 발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해명도 완전 궁색하다.

 

마침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을 겹쳐읽었다.

 

 

 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언제부턴가 '공지영'은 잘 안 읽게 되었다.

미려한 문장이야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삶이라는 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던가 말이다.

투박하더라도 삶으로 충만한 글들이 더 좋았다.

 

이 책은 '지리산 행복학교'의 곁가지쯤 되려나,

박남준 시인이 요리하고 공지영이 쓴 것이란다.

'지리산 행복학교' 이후로 끈질긴 방문객들에 의해 괴로움을 겪었던 지리산 시인들은 공지영과 소원해졌었단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 다시 뭉친 것은 찻잔에 매화 한 잎을 띄우는 박남준 시인의 사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눙을 치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박남준의 요리 솜씨는 먹어본 사람 모두가 엄지를 치켜세울만큼 좋다고 설레발을 치지만 그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장례비용 200만원( 요즘 물가를 고려하여 300만원으로 올렸단다)외엔 무소유한 삶을 사는 시인 아파서 큰 수술을 했기 때문이라는 걸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다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사연도 다 다르고 시기도 다르다. 그리고 물론 그 과정도 다 다르지만 나의 지리산 친구들의 기본 생각은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하여 삶의 대부분 시간을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노동을 하며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겠다. 긍정형으로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삶을 누리겠다'일 것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자라며 얻은 비본질적인 욕망을 버리고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가끔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투덜거리기도 하는데 그들의 말은 이렇다.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124~125쪽)

 

공지영은 한 대목에서,

고독은, 배가 오가지 못하는 이 망망대해의 고독은,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만 남은 고독은ㆍㆍㆍㆍㆍㆍ.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혼자 왕따가 되고 혼자 실직하고 혼자 비정규직이 되는 고독과 어떻게 다를까. 절망에 우열을 매길 수 있을까.(268쪽)

라고 하는데, 이 구절이야말로 아무것도 내려 놓지 못하는 자의 가식으로만 읽혔다.

진정 그것이 절실하다는 것은 흠뻑 담굼질해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이지,

말로 이러쿵 저러쿵 미사여구를 쓴다고 하여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써오면서 아무것도 바뀌는게 없다면,

글은 더 이상 울림이 없을 뿐더러,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박남준 시인의 시집과 편지글이 이렇게 저렇게 갈무리되어 나왔다.

공지영 님의 '시인의 밥상'이 박남준 님에게 어떻게 소용이 되었는 지는 모르겠고,

이렇게 두 권이 나온걸 안 이상 지체할 순 없겠다.

 박남준 시선집
박남준 지음 / 펄북스 / 2017년 8월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박남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사람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자기가 내보이고 광고한다고 해서 가치가 드러나는게 아닐거다.

조용히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걸 보고 저절로 느끼고 감동하는 사람도 있는게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오늘 시집 한권과 산문집 한권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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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7-09-11 16:21   좋아요 1 | URL
혼불. 저도 여름에 중고로 세트 들여놓고, 찬찬히 읽다가, 4편 쯤에서 잠시 멈춤 했는데 멈춤이 길어지네요.

sslmo 2017-09-11 18:23   좋아요 1 | URL
저는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대충 지루하게 읽고 있습니다.
‘찬찬히‘ 읽으신다는 문구가 돌출되어 들어옵니다.
나이 들어 찬찬히 다시 읽을 날이 와 줄런지~--;

cyrus 2017-09-11 19:17   좋아요 1 | URL
동아일보 소설 공모에 당선된 《혼불》 제1부가 레어템입니다. 구하기 힘든 책입니다.

sslmo 2017-09-12 18:1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아무리 레어템이어도 전 낡은 책은 책벌레 나올 것 같아 꺼려져요~--;

님의 책에 대한 무한애정에 또 한수 배웁니다, 꾸벅~(__)

munsun09 2017-09-25 12:16   좋아요 1 | URL
혼불에 대한 느낌이 저만 그런게 아니구나? 안도하고 갑니다^^
저는 3권쯤 읽다가 너무 힘이 빠져서 중도포기하고 책꽂이에 꽂혀있는게 불편해서 그냥 중고로 팔아버렸네요.
쫌 찜찜하고 뭔가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조금 놓여나도 되겠다 싶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sslmo 2017-09-25 17:13   좋아요 2 | URL
저도 좀 소심한 성격이어서, 그런 책이 있으면 연연해하게 되는데,
님 덕분에 제가 도리어 위안을 얻습니다.

님에게,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외쳐 봅니다.
세상은 넓고 책들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