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그 선의 향기
 노자 지음, 감산덕청 주석, 심재원 옮김 /

 정우서적 / 2010년 12월

 

요번 주에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서 그런가 책도 그 feel로 읽어주신다.

책 제목은 '노자 도덕경, 그 선의 향기'이다.

혹 제목만을 보고 '노자 도덕경'인데 부처님 오신날과 무슨 연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쓴 감산덕청이 스님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은 '능엄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노자라고 하면 무위자연을 떠 올리지만, 그게 노자의 정치 덕목이기도 하다.

다음주 선거랑 관련하여서 생각해볼 구절도 있고,두루두루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감산덕청은 명대의 4대 선승 중 한명인데 유불선 3교 일치를 주장하였단다.

노장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선불교는 송대, 명대 시대가 바뀔때마다 동일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차이점을 부각시키기도 하다가, 감산덕청에 이르러서는 차이점은 부정하고 일치점만 내세웠다고 한다.

 

감산덕청이 의의가 있는 것은 이 책의 주석 작업만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주석 작업을 하다가 이해가 되지 않아 막히면 좌선을 하면서 깨달음이 올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선사상과 노장 사상 간의 일치된 깨달음을 언어로 드러내려고 노력을 하였단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는데,

읽은 부분에서 그동안 내가 알던 내용과 달랐던 부분이 있었다.

보통 '풀강아지 인형'으로 해석하는 5장을 왕필처럼 '풀'과 '개'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풀과 개를 우주만물의 에코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존재자들로 보고 이러한 사물의 생성에 있어 도는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다는,

즉 스스로 그러할 뿐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설명하고 있다.(101쪽)

 

어찌되었건 5장에 내가 좋아하고 새기는 대목이 등장한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하게 되니, 중심을 지킴만 못하다.

 

또 한구절 7장의 '天長. 地久.' 또한 天과 地를 각각 따로 언급하였듯이 함부로 붙여서 '천지'라고 명명하면서 마치 하나의 단어인양 사용하면 안된다고 하고 있다.

天에 長을 地에 久를 서술어로 달리 붙여 설명한 것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노자의 우주론에서 天은 시간을, 地는 공간을 상징하는 개념이란다.

 

또 한구절 8장의 上善若水로 얘기되어지는 부분이다.

여기서 政善治, 정치할때는 물처럼 잘 다스려라 가 나온다.

아무래도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눈에 띈 대목같다.

 

책 곳곳에 잠깐씩 심재원의 역주가 등장하는데 새겨볼 만하다.

 

암튼 생각이 이리저리로 튀는 것이 짬뽕공에 버금가는 난,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천지는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마음속에 품은 이 한이야 길이 끊일 때가 없으리.

 

라고 하는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한대목이 떠올랐을 뿐이고~--;

오래간만에 영화 '천장지구'가 보고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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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5-02 12:30   좋아요 0 | URL
까만것은 글씨라는 것 밖에ㅡㅎ

sslmo 2017-05-02 13:37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자와 장자를 좋아해서 많이 보긴 했지만,
깊이 본건 아니라서 제 자신만의 주관을 갖지 못했습니다.
불교, 능엄경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다만 더듬이를 열어두고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책 쓰시느라 봄을 즐기실 새도 없는건 아니신지...
쉬엄 쉬엄, 빨랑 하세요.
다음 책도 기대만발입니다~^^

cyrus 2017-05-02 13:18   좋아요 0 | URL
감산대사가 노자를 풀이한 책이 새로 나온 적이 있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나온지 꽤 오래된 책을 샀어요. ^^;;

sslmo 2017-05-02 13:41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산대사 예전 것도 가지고 잇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먹지를 못해 집어던지기를 여러번,
요번 심재원 번역은 당신의 주관이 좀 개입되어 그렇지,
좀 좋더라구요~^^

전에 노자 공부하셨다는 글, 봤었는데,
감산덕청을 아시다니 동지를 만난듯 반가워요~^^

hnine 2017-05-02 14:11   좋아요 0 | URL
잘은 몰라도 노자 관련 글을 읽다보면 <무(無)> 자의 행진이라는 것은 알아요 ^^
마음 속 품은 한이 천장지구에 버금가는군요.

sslmo 2017-05-02 14:26   좋아요 0 | URL
없을 ‘무‘가 아니라 無라는 자리값이라는걸 깨닫기까지,
고정관념에 빠져 있어서 어려웠어요.^^

저는 한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아름다움이 천장지구에 버금간다고 하고 싶지만서도~--;

AgalmA 2017-05-04 23:11   좋아요 0 | URL
존 그레이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는 중국 제사에서 태우던 ˝지푸라기개˝가 이 책에서는 ˝풀강아지 인형˝으로 풀이되었네요. 어감이 덜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sslmo 2017-05-06 09: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존 그레이에서 본 것 같아요~^^
근데 감산덕청은 왕필을 따라서 풀 따로 강아지 따로 이렇게 놓고 접근해요.
뭐, 저야 토를 달 깜냥은 아니어주시고,
학설로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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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천 소재의 숄더백을 샀다.

천으로 만든 숄더백이 갖고 싶었던 터라 남편에게 설레발을 치며 자랑을 했더니,

남편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너를 피하지 않니?"

"왜?"

"도를 아십니까 인 줄 알고."

봄을 맞이하여 좀 걸어보겠다고 편안한 신발과 가벼운 숄더백을 장만한걸 가지고 놀려대는 남편이라니~--;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일뿐만 아니라, 산책의 계절인가 보다.

내가 참 좋아하는 김탁환 또한 고향인 진해를 걷고 책을 낸걸 보면 말이다.

혼자 걸은게 아니고 엄마와 함께 걷는데, 가끔 남동생이 식사자리에 합류하기도 한다.

그 여정을 글로 옮겼다.

아니 책으로 나올걸 계획한게 먼저이겠다.

매일 하모니카를 부는 엄마가 하모니카를 밟고 다치셔서 한번,

그리고 김탁환이 중간에 세월호 관련 책들을 만드는라 또 한번,

엄마와의 산책은 연기되기도 하고 중단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용은 뜨문뜨문하거나 단절된 기색이 없는 것이,

한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하나, 적당한 온기를 지닌 것이 따뜻했다.

책 겉표지 안쪽에 등장하는 지도는 동생의 찬조 작품이다.

엄마의 골목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 가족의 골목이라고 해야 할까, 가족의 거리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 자신의 일로는 입을 앙 다물고 눈물을 참지만, 책을 읽다가 우는 일은 흔하다.

보통은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상념이 몰려오고, 그런 상념들이 연결되어 눈물이 나올라치면 책을 빙자하여 울게 된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아름다워서 울때도 있다.

이 책의 경우, 처음엔 상념이 눈물을 불러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후자였다.

 

함께 골목들을 걸으며 엄마는 얘기를 하고 아들은 글을 쓴다.

그러니 글은 아들이 쓰지만 엄마의 인생을 대필하는 것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 가족의 인생을 대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가족의 인생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러웠고 약이 올랐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도를 아무리 근사하게 만들어도, 매일매일을 그대로 지키긴 어렵다. 몇 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후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가 들키기도 했다. 엄마는 나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벾에 세웠다. 창원군에 살 땐 집 앞에 나무들이 무성한 언덕이 있었다. 어둠이 깔린 숲을 혼자 보고 있노라면, 무서웠다. 먼저 낯선 소리들이 밀려왔고 뒤이어 알아보기 힘든 형체들이 일렁거렸다.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아도 그 소리와 형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벌을 설 때도 있었는데, 동생은 15분도 넘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ㆍㆍㆍㆍㆍㆍ나는 견뎠다. 겨울에는 추위와도 싸워야 했지만, 엄마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진 않았다. 차라리 숲으로 들어가서, 그 숲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엄마 대신 문을 열고 나와선 나란히 섰다. 내 눈길을 따라 어둠을 쳐다보며, 아버지는 짧게 물었다. 그럴 땐 이상하게도 평안도 사투리가 슬쩍 얹혔다.

"뭐이가 있나?"

니는 피하지 않고 견디는 중이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단정한 문장이 떠오르진 않았다. 아버지가 내 야윈 어깨를 감싸며 덧붙였다.

"담부턴 그러지 말라우."(35~36쪽)

 

그래서 때로 글들은 필자의 인생만큼이 아니라 화자의 인생만큼의 통찰이 담겨 있다.

 

엄마는 자신의 뜻을 밝히고 일을 만들어가는 대신, 말을 아끼고 일을 지우는 쪽을 택했다. 하모니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 외에 일흔 살을 넘긴 후 엄마가 벌인 일은 없었다.(59쪽)

나도 무언가를 사고 들이고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버리고 나눠주고 일을 줄이고 잉여로워지는 쪽을 택하고 싶다.

아무것도 없이 허허롭게 살고싶지만 현실적으론 힘들겠고, 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였으면 좋겠다.

언제고, 어디고 상관없으니 가벼운 산책 하듯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게 말이다.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만 살았어요?"

"하고픈 이야길 다 하고 살아, 그럼?"

"그건 아니지만ㆍㆍㆍㆍㆍㆍ"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ㆍㆍㆍㆍㆍㆍ"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단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ㆍㆍㆍㆍㆍㆍ그렇게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라. 그럼 이야길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거고."(156~157쪽)

 

나 또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 어른신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게, 직업이다 보니,

(엄밀하게 말하면 얘기의 행간을 파악하는 거지만~.)

어르신들을 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분들도 계시다니 놀랍다.

 

때론 어르신들의 얘기에 '네에~.', '그래서요~?' 따위의 추임새를 넣기만 할뿐,

제대로 된 문장을 발음해보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이야기를 품고 살고 싶지는 않다.

예전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상대방이 불편할 얘기는 하지 않고 말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상태에 집중한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일단 하고 본다.

대신 감정적으로 앙금을 남기진 않는다.

사람에게 할 수 없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숲에라도 털어놓는다.

 

여기서 나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농담 아닌 진담을 슬쩍 끼워넣었다.

"정글에서 자연사는 잡아먹히는 겁니다. 엄마는 절대 자연사하실 일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되니?"

"네, 그렇게 되니까, 살 만큼 살았으니 죽고 싶단 소린 하지 마세요."

"ㆍㆍㆍㆍㆍㆍ맘에 걸렸어?"

"살 만큼 살았단 엄마 이야길 듣고 맘 편한 아들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170쪽)

 

사실 나이로 따진다면 나는 엄마보다는 아들에 가깝다.

두살 정도 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보다는 엄마 신자 여사가 한 말들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겠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만나고 인연을 만드는 것 또한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아. 깃털처럼, 그래 깃털처럼. 만나긴 분명 만났는데, 만나고 나면 그의 표정도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떠오르질 않아. 만나 다행이지만 만나지 않았대도 불행하진 않다는 그런 느낌도 들고."

"곧 올게요, 정말."

"난 요즘 내가 꼭 낙엽이랑 비슷하단 생각을해. 특히 노란 은행잎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땐 참 고와서 눈을 뗄 수 없는데, 땅에 떨어진 노란 것들은 쳐다보기도 힘들어지더라고."(172쪽)

 

나이가 한살 더 먹을때마다 좀 더 홀가분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산책하듯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 산책은 걸어서 할 수도 있지만,

때론 이런 책 한권을 통해서 글 속을 누비듯 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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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4-26 16:03   좋아요 0 | URL
패브릭 소재 가방 편하고 좋아요. 일단 가벼워서 좋고요. 나중에 세탁도 가능해서 좋아요.^^
봄에 잘 어울리는 밝은 색 신발과 가방도 잘 어올릴것 같은데, 갑자기 도를 아시는 분(?)으로.^^;
책 표지가 벚꽃핀 날의 밤 같네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sslmo 2017-04-26 16:24   좋아요 1 | URL
리뷰 본문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지만,
제가 어릴때부터 엄마 없이 커서 그런가,
엄마와의 케미 그 부분이 완전 좋았고,
저도 아들이랑 그런 관계가 되어야지 ‘불끈~!‘했습니다.

서니데이 님표 가방들도 귀요미 조카가 잘 쓰고 있습니다~^^

yureka01 2017-04-26 16:3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양철나무꾼님도 이렇게 서재에 이야기를 풀어내시지 않습니까요..
이야기는 풀어야지 품어서 쌓이게 하면 답답해지잖아요.ㅎㅎㅎ
오늘도 잘 풀어 내셨습니다..휘리릭 읽었습니다..~~^^..

sslmo 2017-04-29 10:27   좋아요 0 | URL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게 맞죠.
그런데 자기안에 품어두지 않는다고,
품으면 병이 된다 싶어서,
자기 할 말만 마구 하면,
할때는 모르겠는데...나중에 괜히 공허해 지더라구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건,
어찌보면 사랑처럼 밀고 당기는 ‘밀.당.‘이 묘미인것 같아요~^^

서니데이 2017-04-26 16:46   좋아요 0 | URL
1.중간에 인용이 있는 글은 서재에 다시 와서 읽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느 부분이 인용인지 잘 모를 때도 있거든요.
2.리뷰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룽잉타이의 책이 생각납니다.
3.우리는 자연사하지 않는 사람들일거예요. 그러니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원하는 인생을 즐겁게 살면 좋겠습니다.^^


sslmo 2017-04-29 10:34   좋아요 0 | URL
1.그런 의미에서 북플도 서재에서처럼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힘들다면 인용문을 돌출시키는 방법을 쓰던지 말예요.^^
2.저도 룽잉타이 책 3권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읽어버지 못해서,
코멘트는 좀~--;
3.심장이 뛰는 방향이라는 말을 들으니,
‘바람 피기 좋은 날‘이란 영화가 생각났어요.
거기서 윤진서가 막 뛰던 장면 말예요. 저도 그렇게 심장 두근거리게 뛰어본 적이 언제던가 싶어서 말예요.
4. 날이 너무 좋아요.
다들 밖으로 소풍 나가 버려서,
조용한 것이...공부하기에 딱 좋은 날들입니다~^^


2017-05-01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2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 지내나요? -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친애하는 다락방 님의 새 책 '잘 지내나요?'를 읽었다.

지난 번 책 속에 언급된 책들은 나도 읽은 책들이 많았고 쉽게 교집합이 형성되고 공감이 쉬웠었던 반면,

요번엔 내가 읽은 책들이 거의 없다.

안 읽은 책들이라도 공감을 할 수는 있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가 울고 웃고 행복해하고 절망했던 모든 순간들이,

(여자라면 더 격하게 와닿았을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녀를 통해서 나오면 사랑이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글들이 담긴 책이 요번엔 힘들었다.

로맨스를 꿈꾸기엔 너무 나이들어 버린 것일까.

그럴싸한 로맨스를 꿈꾸기에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 소중하고 안정적이어서,

포기할 마음이 없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봄바람 가슴에 가득 든 처녀마냥,

설레이고 아슴아슴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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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2 10:43   좋아요 0 | URL
안 읽은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제가 안 읽어 본 책의 리뷰를 쓰는 분들의 글을 ‘좋아요‘만 누르고 가는 일이 그 글에 공감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다른 분들의 리뷰를 ‘좋아요‘ 많이 눌러도 그 리뷰에 소개된 책들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양철나무꾼님과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으면 리뷰에 소개된 책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두 분의 리뷰는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sslmo 2017-04-26 16:06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고 페이퍼에 ‘좋아요‘를 누를때 ‘잘 읽었습니다‘정도의 의미를 부여해요.
그 책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리뷰나 페이퍼 내용 만으로도 기억하고 담아두려면 과포화 상태 아닐까요?
저는 틀림없이 폭발하고 말거에요~ㅠ.ㅠ

다락방 님 책 리뷰여서 그렇겠지만 같이 묶여서 완전 영광입니다~^^

초딩 2017-04-24 17:19   좋아요 0 | URL
우앗 책 제목 보고 깜딱 반가워합니다~

sslmo 2017-04-26 16:07   좋아요 0 | URL
이게 얼마만인 겁니까?
잘 지내시는 겁니까?
이제 좀 자주 뵐 수 있는 겁니까요~ㅅ?^^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요리사 박찬일의 순수 본류의 맛 기행
박찬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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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저녁 밥상머리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이윤석이 나왔다.

저질체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혼 탈출한 좀비의 모습으로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입맛이 없다면서 밥 대신 알약 하나 먹고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걸 포기하겠다는 것일까 싶었었다.

아내가 얼르고 달래 한술 뜨는둥 마는둥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숨겨놓았던 과자를 한가득 꺼내,

'그래, 이 맛이 바로 천상의 맛이야'

하는 표정으로 먹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거리자 같이 보던 남편이,

"엊그제까지만 해도 편의점 신상 터는 재미로 살던 니가 그러면 안되지."

하는 바람에 화들짝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슴슴하고 음식의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좋다고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모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만 하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쿡방이니 먹방이라고 하여 재빨리 음식을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익숙했던 터라,

음식이 나는 산지의 취재에서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품과 정성이 영겁의 시간으로만 느껴져,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고행이고 수행이 아닐까 싶었었다.

 

암튼,

박찬일은 새 책이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들이고 보는 작가 중에 한명이다.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 녹아있는 사상도 건강하여,

그가 쓴 글을 읽을라치면 맛깔스런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니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박찬일이 아니라면 누가?'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니,

그에게 맞춤한 질문과 답이라는 걸 알겠다.

내 이런 생각을 들여다 본듯 '여는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시작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수도하는 이들에게 미각이 무엇이며 요리법의 고민이 무슨 사치냐고. 나도 그 말에 절반쯤 수긍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한참 본질에서 빗나간 것이다. 만물을 알뜰히 먹는 일은 수행의 고갱이다. 들과 산, 밭에서 얻은 것들을 다듬고 갈무리하고 불(火)과 장을 입혀 요리하는 일은 가장 숭고한 수도다. 그것을 맛있게 요리해서 수도하는 이들과 대중에게 내는 일보다 더 '수도승'다운 일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달라. 수행에는 각기 다른 방식이 있되, 일상의 수행은 하루 세 번의 끼니에서 출발한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종교 아니던가.(7쪽)

 

그러고보면 음식이라는건 여러 거창한 이유 이전에 뭔가를 살리고 제 목숨을 일구어야 하는데(17쪽),

난 이런저런 조리과정을 거친, 현란한 맛이나 뭔가 요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만을 음식과 동격으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한번 해주시고~--;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고 하여 조리과정마저 간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격식에 좀 자유로워서 그렇게 까다롭게 가리지않는 분파도 있겠지만,

일단 육류와 더불어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오신채를 먹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 설탕처럼 가공되거나 정제된 재료를 모두 배제하기도 한단다.

 

그러고보면 사찰의 스님들만 수행을 하고 도를 닦는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숭고한 경지에 이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박찬일 이분처럼 음식과 글, 양쪽으로 도를 닦고 경지에 이른 분들도 계실테고 말이다.

 

봄철 음식인 냉이를 얘기하면서,

뭐, 김훈의 남한산성을 (안 읽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가장 극적이고 진중한 표현으로 골라놓고선 '더 절실하고 아프다'고 한다.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ㆍㆍㆍㆍㆍㆍ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뿔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먼 끝을 적셨다.(17쪽)

 

봄철 명이 편에선 단식에 대해 얘기를 한다.

나와 대여섯 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안 나는데,

춘궁기와 보릿고개 따위를 아는지 단식에 대한 공포를 얘기한다.

나는 단식에서 공포를 떠올린다. 허기에 대해 무너지는 마음이 가엾고,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공황에 가까운 공포.(63쪽)

라는 글은 곧 이런 성찰로 이어진다.

비워서 얻는 것, 그것이 어디 단식뿐이랴. 사람들은 이 사바에서 비우지 못해 결국 죄짓고 상처입는다. 비우는 것에 대한 화두 하나를 얻는다.(64쪽)

 

이 책을 다 읽은 뒤 다시 여는 글로 가니,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박찬일 스스로 적어놓은게 보인다.

감자는 원래 하늘의 별이었다고 했던가. 그 감자가 밭에서 태어나는 순간은 여름의 초입이어야 가능하고, 토마토가 맛있는 건 미리 따지 않고 끝까지 열매에서 붉은색을 완벽하게 얻을 때이다. 맛있는 된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시절을 옹기 안에서 보내야 하며, 시금치의 뿌리는 대지의 마음과 동일하다는 것도 스님과 함께 걸으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뿐이랴.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었다.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일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식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5~6쪽)

 

절밥만 맛있는건 아닐 것이다.

제철,

원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그런 음식이라면 다 맛이 좋지 않을까?

 

그런대로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사찰음식레시피23'이라고 하는데 사진도 선명하지 않고 레시피가 중간 생략이 많아 친절하지 않다.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메주인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읽었던 한창훈은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원재료를 적절히 사용하여, 이 한가지를 추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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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0 16:54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아름답고, 맛있는 것이군요^^:

sslmo 2017-04-21 14:41   좋아요 1 | URL
그렇게 따지면,
세월이 가는 것도 그렇고,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겠죠.

아름다운게 멋있기도 하고, 그리고 맛있기도한 이유인가봐요~^^

cyrus 2017-04-20 17:29   좋아요 0 | URL
감자가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란 채소였군요.. ㅎㅎㅎㅎ

sslmo 2017-04-21 14:43   좋아요 0 | URL
감자가 하늘의 별이라네요.
은하수는 하늘을 흐르는 강이고 말예요.

근데 감자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라지 않나요?@@
쿨럭~--;

cyrus 2017-04-22 08:49   좋아요 1 | URL
네. ‘그네‘만 빼고요. ㅎㅎㅎ

sslmo 2017-04-26 16:01   좋아요 0 | URL
놀이터에선 그네 빼면 고무줄 끊긴 빤쭈인데요?ㅋㅋㅋ~.
 

난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선어와 활어를 따질 것도 없이 회는 물론이고 찜이나 조림, 구이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내가 게걸스럽게 먹는 건 날치알밥 뿐이다.

소박하게 맑은 조갯국물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없다.

날치알밥을 갯것에 넣기는 좀 민망하지만, 뭐~--;

작은 뚝배기를 불에 올리고, 거기에 밥과 김치를 쫑쫑 썰어넣고 날치알을 올린 뒤,

계란은 1인용 뚝배기엔 좀 과하니까,

메추리알을 하나 깨뜨려넣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메뉴 말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어류의 이름도 세세히 모르는건 당연지사,

이 책 '인생이 허기질때 바다로 가라'도 사진 속 물고기의 모습이 너무 리얼하다는 이유로 한쪽으로 치워놨었다가,

할일없이 아무렇게나 넘기다가 만난 글들이 좋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어도 좋고 안 읽고 이 책만을 읽어도 좋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것들 말이다.

나는 생선 손질을 할 때 지느러미를 잘라내지 않는다. 요리를 해놓으면 등과 꼬리 자느러미가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보기에도 좋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르다. 모두 잘라낸다. 그냥 두는 나를 보고 뭐라 한다. 짤라버려라, 싫소, 그것을 뭐하러 붙여놓냐, 그냥 두는 게 좋다니까요, 이렇게 투닥거린다.

한번은 전화가 와서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 내 것을 모두 잘라놓고서 모른 체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왜 잘랐어요? 아 글쎄, 먹지도 않을것을 왜 붙여놓냐고. 둘은 기가 막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합의를 본 게, 영자 것은 영자 맘대로, 순돌이 것은 순돌이 생각대로, 이다.. 그래서 냉동을 해놓아도 네 것, 내 것 구분이 쉽지만 지금도 탐탁지않게 여긴다.

지느러미를 잘라내버리면 단순한 고깃덩어리 같다. 제 모습을 유지해놓으면 생명체의 느낌이 든다. (시인들은 이때 이렇게 말한다. 한때 눈부신 생명이었던 것들이 어쩌고저쩌고).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108~109쪽)

이런 감각적인 글들도 좋지만,

내 시선을 끈건 내가 먹는 '알밥'의 생략된 앞 두글자에 들어가는 '날치',

알들의 엄마ㆍ아빠인  '날치'였다.

책 속의 사진들을 보면 리얼한 것이 바다를 품은 듯도 하고, 하늘을 품은 듯도 하고 생각이 달라지지만,

이 그림으로만 봐선 귀엽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날치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책 손택수가 지은 책'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들춰보게 되었다.

귀여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림체가 다른지라 그림이 한층 자세하다.

 

한창훈과 손택수, 둘다 글이 빠다를 발라놓은 듯 맨도로롬하고 고소하지만,

각자 개성 차이가 확실한지라 다르게 읽힌다.

 

날치 부분에서 손택수가 재미있었던건,

날치를 『산해경』을 인용해가며 '나는 물고기'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날으는 원더우먼'과 관련 '날으는'이라고 하지 않고 '나는 물고기'라고 한 것도 좋았다.)

 

『장자』라는 책을 인용하며 '곤'이 날치일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장자』에도 "북녘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 넓이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곤은 바다를 상징하는 물고기이고, 붕은 하늘을 상징하는 새다. 이들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은 새가 날아다닐 때, 물고기는 새의 몸을 빌려 입은 것이 된다. 그 새가 죽어 먼지가 된다면 물고기들은 또 그 유기물을 섭취하며 헤엄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물고기는 새가 빌려 입은 몸이 아닌가. 이 신화를 통해 동양 고대의 상상력이 얼마나 유기적인지를 알 수 있다.(92쪽)

 

내가 장자에도 인용되는 '곤'일지도 모르는 '날치'의 알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뭔가 영겁의 시간을 넘나들며 일어나는 우주의 계획과 질서에 간여하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니까 말이다.

 

한창훈의 책 뒷표지를 보면, 허영만은 한창훈의 글을 통해서 '한창훈의 자유로운 삶을 통해 대리만족한다'고 되어 있는데,

나도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대리만족하고 싶기도 한데,

막상 자유로운 삶이 주어지면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며 어떠지 못해 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자유로운 삶이란 자신이 헤쳐나가기 나름이지 싶다가도,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관조하는 '도깨비'의 명 대사처럼 사람으로선 어쩌지 못하는 신의 영역이 아닐까 싶어 체념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실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

땅이나 산은 가다가 협곡을 만나거나 바다를 만나면 끊기지만, 모든 바다는 하나로 통한다는 거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연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귀속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내일 모레면 3년인데, 아무것도 해결된게 없다.

북한에서는 어딘가 바다를 향하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모양이다.

 

봄이 한창이다.

어느 드라마속에선 '도깨비'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하는데,

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슬프고 눈물겹다.

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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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4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4 21:39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생선을 다 좋아해요. 그런데 유독 먹지 못하는 생선 부위가 있어요. 그게 생선의 눈알입니다.. ^^;;

sslmo 2017-04-20 15:50   좋아요 1 | URL
한창훈의 책엘 보면 말이죠.
한창훈의 아는 형님이, 생선 눈알을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해.
생선 눈알을 모은다는 얘기가 나와요.

저와 생선을 안 먹으니까 해당사항이 없고,
생선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완전 좋아하던데,
의외네요~^^

2017-04-17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