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책을 통 읽지 못했었다.

전에 읽은 책들에 이어서 쭈욱 진도를 빼지 못 하고 맥이 끊겨버리자,

고비를 넘지 못 하고 계속 버퍼링 중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중에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다.

그가 쓴 '홍합'을 20대 후반에 접했었다.

책이 너무 비릿하여서 버거웠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다른 책들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망설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책의 원조 격인 '향연'이 좋다더라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꽃의 나라'를 읽기 전까지는 한창훈을 제대로 읽은게 아니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만 가지고 작법서쯤으로 생각, 못 읽고 넘어갈 뻔 했는데,

지금이라도 연이 닿아 읽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왜 이 책에 열광하고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살아야 하는지는 알겠다.

그는 글을 쓰는 것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아픈 이야기가 단 열두 줄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담겨 있는 거였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이게 문학의 언어이구나. 이런 말로 써야 되는구나.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언어. 견디는 자세가 아픔을 더 크게 보여주듯이,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는 자의 얼굴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듯이,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164쪽)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고, 문학의 언어라고 말들을 한다.

때로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미미하다 싶어,

말줄임표(ㆍㆍㆍㆍㆍㆍ)를 앞에 내세우고 공허한 웃음을 흩뿌리기도 하지만,

같은 단어를 두고 받아들이는 온도도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웃음의 표정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배우 부부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일부분을 본 것이라서 그 후 어떻게 펼쳐졌을지는 모르겠는데,

남자가 잔소리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여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으로 묵묵히 참고 그냥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희귀병을 앓았다니까 힘이 들때면 더 웃게 된다는 여자의 입장은 이해할 듯도 했지만,

화내지 않고 웃기만 하는 그녀에게 남편이 느꼈을 소외감과 답답함 또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충분히 전해졌다.

 

그 연장선상이 되려나.

이 책에선  '안현미 시인'이 등장한다.

여러 쪽에 걸쳐서 등장하는 그 꼭지의 제목이 '오죽하면 시를'이다.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면,

훌륭한 작가들이 여러명 나오고,

한창훈의 가족이나 친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소개되고는 있지만,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거나,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는 않는다.

그는 삶을 담담히 읊조리듯 써내려가고 있고, 그걸 우리는 문학작품이라고 부를 뿐이다.

 

"시란 한마디로 뭐나."

"ㆍㆍㆍㆍㆍㆍ"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상처를 가지고 노는 것. 상처를 확인하고 상처에 집착하며 상처로 명상하며 상처로 의미를 획득하고 상처로 지경에 이르는 것. 내가 창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지만 선생의 그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223쪽)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한창훈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진 않을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과 주인의 품격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자아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도 그 시절이었다.(123쪽)

 

입은 다물기 위해서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무심한 품위.(143쪽)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일일 것이다.

음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성의 본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 생활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왜 쓰는지 한구절도 알아차릴 수 없을지라도,

삶을 진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내 삶 또한 부풀어오르고 윤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겨울이 깊어가자 눈이 잦았고 호수는 얼음을 뒤집어쓰고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공사 현장 일을 다녔다. 탯속 같은 눈길을 걸어 새벽 첫차를 탔고 밤 깊어 귀가할 때 다시 눈이 내렸다. 지금은 눈 내리는 호숫가에 머물고 있지만 세상 어느 곳인들 춥지 않은 곳 있겠는가. 더 살고 골똘히 궁리하다보면 살아가는 방법 한구석쯤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나는 세상을 좀 앞당겨 살아버렸는데 어쨌거나 젊음이 끝나기도 전에 늙음을 기웃거려보는 것이 소설가의 팔자라고 생각하는 게 그 이유이다. 그런 시간대를 지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답게 늙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런 나는 찾았을까?(165~166쪽)

 

'개그콘서트'를 보면 '고집불통'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 유행어가 '그건 난 모르겠고~'였다.

그 버전으루다가 한창훈이 왜 쓰는지 그건 난 모르겠고,

'왜 사냐건 웃지요.' 할 도리밖에~.

 

이 책의 표지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책 중간에 나오는 따님 이름이 단하인걸로 봐서 그 '한단하'인가보다.

그림을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판단할 깜냥은 아니어 주시고,

그림이 따뜻한 것이 책과 잘 어울린다.

좋다.

 

이쯤에서 접어야 하는데, 구구절절 사설이 길다.

'정미조'의 '개여울'이 듣고 싶은데,

왜 그런지 '그건 난 모르겠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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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7-04-07 17:52   좋아요 2 | URL
이 산문집, 참 좋았어요^^

sslmo 2017-04-07 17:56   좋아요 1 | URL
네, 이 산문집도 참 좋았고,
님이 이 페이퍼에 댓글 달아주신 것도 참 좋아요~^^

cyrus 2017-04-07 18:46   좋아요 1 | URL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을 글로 정리하니까 안 잊어버리게 되고,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지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만 읽는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똑똑하게 산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그래도 저는 독서가 아름답게 늙으면서 지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sslmo 2017-04-11 13:44   좋아요 1 | URL
아핫~^^
그러고보면 cyrus님은 리뷰고 페이퍼고 정리력이 탁월하신 것 같아요.
정리하고, 안 잊어버리고, 잘못 알고 있던 지식을 바로 잡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쫌‘ 멋진 일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04-07 18:54   좋아요 1 | URL
^^: 자신이 가진 감성을 온전하게 언어라는 도구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섬세한 ‘줄‘ 또는 ‘사포‘로 자신의 감성을 조각한다면, 저는 그렇게 섬세하지 못해서 망치로 부수는 느낌(?)이 드네요.ㅋ ‘시‘를 정의한 글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sslmo 2017-04-11 13:55   좋아요 2 | URL
언어가 자신의 감성을 표출하는 도구이긴 하지만,
그래서 언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 하는 것 같아요.
말이나 글 말고도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말예요.

님처럼 어려운 내용들을 쉽게 정리해 글을 쓰시는 분이 이렇게 얘기하시다니...겸손이 지나치시군요.^^

섬세한 줄과 사포로 하는 조각도 좋지만,
때로는 서툴거나 거질거나 무뎌져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햇살이나 바람, 강 하류로 흘러가 굴러다니는 둥근 조약돌 따위의 자연은 서로 다투지 않으니까 말예요~^^

푸른희망 2017-04-07 21:32   좋아요 1 | URL
좋아요를 백번을 누르고싶네요.
저 책도 좋았고 나무꾼님 페이퍼도 좋아요.

sslmo 2017-04-11 13:57   좋아요 1 | URL
요 위의 겨울호랑이 님이 알려주셨는데,
100번은 짝수여서 ‘좋아요‘와 ‘좋아요 취소‘의 반복에서 ‘좋아요 취소‘로 끝난대요.
그러니까 저도 홀수로다가...ㅋ~.

저 책이 좋은 건 당연지사고,
제 페이퍼도 좋다고 해주셔서...좋아요~^^

[그장소] 2017-04-07 23:11   좋아요 0 | URL
음 .. 좋다 .
내 책 읽고 정리는 하나 못해도 , 이런 글 부대낌은 참 좋네요 .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
점점점 미소가 지어져요 . ^^

sslmo 2017-04-11 14:01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도 겸손이시네요~^^
님의 리뷰와 페이퍼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데...ㅋ~.

저는 너무 큰 부대낌은 사양하고요,
님이랑 처럼 가볍고 경쾌한 그런거요~.

그런데 잘 지내시는 겁니까?^^

[그장소] 2017-04-11 17:23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 양철나무꾼님 .
가볍고 경쾌하고 그런거 저도요!^^

잘 지내냐 물으니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못하겠네요 .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 지겠죠?
그러니 괜찮습니다.( 질문은 그게 아닌데..ㅎㅎ)

목나무 2017-04-08 14:4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따님인 한단하 양이 아빠의 책 표지를 만들었네요.
한창훈 작가님의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란 책에는 딸인 한단하 양이 책에 실린 일러스트도 그렸어요.
부녀 사이가 참 좋아보이더라요. ^^

sslmo 2017-04-11 14:03   좋아요 1 | URL
님 댓글 보고,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찾아봤어요.
소설집인가 봐요.
아직 못 읽었는데, 언젠가 찾아보고 싶네요.
좋은 추천, 고맙습니다, 꾸벅~(__)

단발머리 2017-04-11 10:39   좋아요 1 | URL
아, 양철나무꾸님~~~ 이 페이퍼 참 좋아요~~~~
저도 예전에 이 책 읽었는데, 전 정말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어떻게 읽어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저는, 이런 일화 있잖아요.
한작가님 옆학교던가, 옆교실의 여학생반의 칠판에 한작가님 욕이 찰지게 적혀 있을 정도로 유명하셨다는 이야기,
그런 게 기억이 나네요.

인용해주신 단락들이 참 좋아서, 혼자 앉아 맞아! 맞아!를 외치고 있는 아침입니다. ㅎㅎㅎ

sslmo 2017-04-11 14:05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 단발머리 님.
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인생이 허기질때 바다로 가라‘ 읽고 있는데,
이것도 왕 좋은 걸요.

책도 좋고,
님이 격하게 좋아해주시는 것도 좋고,
배가 빵빵한 것도 좋은,
좋은 봄날 오후입니다~^^

2017-04-12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성찰 시리즈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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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헤닝만켈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되었다.

강유원의 책들을 그동안 몇 권 읽은지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라면 반듯하지만 좀 지루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었다.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이나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철학자인 그가 '숨은 신을 찾아서'란 제목의 책을 들고 나왔으니,

얼핏 생경하였었다.

 

"1"장에서 그동안 그가 뜸했던 이유가 나오는데, 이같은 제목을 쓴 이유도 엿볼 수 있었다.

태평양과 이어지는 동해 바닷가 도시의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 복도 끝까지 걸어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좌절은 없었다. 삶을 손에 쥐지도 못했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운명이라든가, 믿음이라든가, 그런 말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을 서둘러 나왔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라는 허겁지겁만이 전부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밀려 들어왔다. 아니, 그 무기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옳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망絶望, 즉 희망을 끝는 일이다.

야욕과 절망 사이에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그 시간은 인간 존재의 하찮음을 가르쳐주었다.(7쪽)

 

10여년 정도 많이 아팠었나 보다.

많이 아프거나 나이 들어 죽음을 예비하게 될 때 삶을 돌아보게 마련인데,

그는 삶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책을 택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데카르트'의 '성찰' 따위,

위대한 사람들의 저서 속 삶을 엿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 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성찰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 키에르케고어 따위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펼쳐서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가 독서법을 가장하여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다.

 

논점이 명확하고,

그 명확한 논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예는 자상하게 들되, 중언부언 군더더기가 없다.

 

헤닝만켈'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꾸준히 내면에게 묻기를 강조했었는데,

강유원은 신앙의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얘기되는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을 언급한다.

신앙을 갖지 않아도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을 산다면 훌륭한 삶을 산 것이라는 상식도 있다. 참으로 논박하기 어렵다. 그들에게 초월적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유하거나 인간의 모든 행위는 헛된 집착에서 나온 것이니 적극적 행위를 포기하라고 설파하는 것은, 망동과 망언으로 간주된다. 그들에게 세계관의 전회를 요청할 수는 없다. 그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그들에게 물어볼 여지는 남아 있다. 자신들의 도덕적 신념은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면 우리는 물러나야 한다. 그러한 물음이 그들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잠깐의 회의라도 불러일으켜 그들을 더 깊은 의심에서 제기되는 물음들로 나아가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물어볼 수 있을 것인가.(30~31쪽)

 

헤닝만켈도 그랬고, 강유원도 그렇다.

인간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을 한다.

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주에 대해...끊임없이 묻는다.

헤닝만켈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다시 읽는다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입장을 표명하는 반면,

강유원은 '신'이라고 불리우고 신념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유명인들과 그들의 저서를 인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세계는 우주의 티끌들의 우연한 결합이라는 걸 그대는 알지 않는가, 그대의 몸은 언젠가는 티끌로 되돌아갈 것임을 그대는 알지 않는가, 그대의 정신이 탐욕스럽게 읽고 있는 책들이 모두 한순간의 응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만년필은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그대는 알지 않은가, 그대가 몹시도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이 찰라에 스러져버릴 것들임을 그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는 왜 그것들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대는 존재의 진상을 알면서도 왜 자신을 기독교도라 말하고 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가.(146~147쪽)

 

슬픔을 이기려면.

  내가 멈춰 선 곳에 신이 있다고 확신한다.(151쪽)

고 얘기한다.

 

그의 방식은 죽음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삶을 사는 방식을 통하여 죽음을 예비하자는 얘기가 아닐까.

 

그는 이렇게 얘기하며 이 책을 끝맺는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텍스트를 내재적으로 읽거나 삶의 배경 맥락을 읽거나, 증거를 찾아 구축하여서,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다 덧없는 것이라 여겨 놓아두거나.(157쪽)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제주 어디에서 그의 강의가 몇 번 있다.

제주라는 섬이 치유하기에 좋은 곳인가 보다.

덩달아 나도 제주에서 그의 강의나 찾아들으며 일 년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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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9 16:2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주제가 묵직한데도 불구하고, 꼭 한번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듯합니다..잘 읽었습니다...

sslmo 2017-03-31 15:01   좋아요 0 | URL
그동안 강유원의 글들은 체화한 글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요번엔 감정은 자신의 것인데 내용은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느낌이랄까요?
아픈게, 두려워 하는게 고스란히 들어나서 좀 안쓰러웠어요~--;

단발머리 2017-03-29 19:51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까지 읽었던 <슬픈 불멸주의자>가 떠오르네요. 그 책에서는 죽음과의 타협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죽음 앞에서 성숙하고 결연하기 보다는... 처음 겪는 일이니까요. 그 다음을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꼭 알아야하는 이야기지만 ‘죽음‘의 이야기는 참... 부담이 되기는 합니다.
강유원,이라는 작가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sslmo 2017-03-31 15:05   좋아요 0 | URL
저 님의 ‘슬픈 불멸주의자‘리뷰 봤어요.
좋았어요~^^

죽음도 그렇고, 죽음의 애도도 그렇고 ...껄끄럽지만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겠죠.
강유원은 님이 애정해 하시는 강신주와 더불어 제가 참 좋아하는 철학자예요.
강신주에 비해 탈렌트 기질이 좀 떨어지는 듯 하지만,
그간의 저작들을 봤을때, 전 애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님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9 19:59   좋아요 0 | URL
강유원이 이런 책도 썼군요.
덕분에 좋은 책 소개 받았습니다. ^^

sslmo 2017-03-31 15:07   좋아요 1 | URL
인문고전강의, 역사고전강의, 철학고전강의와 더불어 이 책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님도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불끈~!^^

잠자냥 2017-03-30 13:42   좋아요 0 | URL
아, 강유원 씨가 아픈 줄은 몰랐네요. 이 책 출간 소식 듣고 반가웠는데, 그런 일을 겪으며 나온 책이군요.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려 했는데, 왠지 사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sslmo 2017-03-31 15:12   좋아요 1 | URL
한 10여년 편찮으신 후인가 봐요.
당신의 글 같지 않고, 좀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는데,
힘내시라고, 응원하는 의미루다가,
별 다섯을 꽉꽉 눌렀습니다~^^헤헤~...

2017-03-3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1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5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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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6세에 암진단을 받고 67세에 타계하였다.

난 그의 죽음이 좀 놀라웠는데,

66세여도 그렇지만, 67세라고 해도 죽음을 맞이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옛날과 다르게 의학이 발달하였고 여러가지 치료방법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운명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 엄중하게 다가왔다.

진단은 아주 분명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불치 상태인 듯했다. 나는 허탈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집에 돌아가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냐고. 의사가 대답했다. "옛날 같으면 그랬겠죠. 하지만 요즘엔 여러 치료방법이 있습니다."(17쪽)

 

그의 소설들을 다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것은 읽은 것이었고,

어떤 것은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거나, 읽었으되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이순신이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했던 심정으로 그의 소설들을 아껴 읽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가졌지만,

소극적으로라도 미니멀 라이프에 동참하게 된 것은,

일본의 지진 같은 대참사를 만나게 된다든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죽을 병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건 순서가 없다고,

갑작스런 죽음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을때,

그때는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느라고 주변을 정리할 수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헤벌레 벌려놓은 채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2015년 헤닝만켈이 암진단을 받은 이후에 쓰여졌다는데,

그는 죽음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거 어린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돌아갈 추억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소설들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그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제 목소리를 낼 줄 안다.

 

개인적으로  박용하의 '오빈리 일기'나 '시인일기' 따위에 열광했던 이유가 시인적 감수성 때문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맨날 맥주나 까먹은 알콜리즘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러한 것들이 사회적 문제들을 향하여 섬세하게 깨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고,

그건 곧 소신이라고 읽혔다.

 

그는 암에게서 신경을 돌리기 위해 독서, 명화 감상, 음악 감상을 택한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암은 아니고 비교하기도 민망한 노안이지만, 책을 읽으면 눈이 쉬이 피로해져서 괴로웠었다.

가지고 있는 책의 몸집을 줄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내 책상 위에는 항상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항상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체의 새로운 것, 모르는 것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탐험을 하듯 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다. 한 쪽을 읽으면 거기에 쓰인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ㆍㆍㆍㆍㆍㆍ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을 펼지자 단어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내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이었다. 내가 예전에, 아마도 각각 다른 여러 상황에서 읽었던 글들은 여전히 언제나처럼 효과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었고 그렇게 암에게서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188쪽)

 

그는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지 못한 채 67세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사람으로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책 속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묻기를 포기하거나 중단하고, 마치 더이상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것이 없는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질문을 그만두고, 어떤 사람들은 늙어서까지 고집스럽게 묻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결국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며 철학적 사고를 포기하게 된다.이해가 된다. 지구상에 사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 대다수에게 사고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치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통탄스러운 불평등에 속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서 세계인권선언에 들어가야 한다.(285쪽)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울고나서는 카타르시스에 이른 것 마냥 훌훌 떨어내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버리거나 비우는게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작은 입자들로 변화해 자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경험이다.

이렇게 지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그런 것이라면,

죽음이 두렵기는 하지만 나이듦의 연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걸 헤닝 만켈은 '죽음을 감추면 결국엔 삶도 이해할 수 없다'(317쪽)는 말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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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3-28 21:1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죽음.. 소멸.. 생.. 삶.. 존재.. 에 대해서 민감하고 섬세하신 것 같아요..

sslmo 2017-03-29 15:49   좋아요 0 | URL
어르신들과 보대끼는 직업 탓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딴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다가오는 듯 여겨져요~^^

2017-03-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7-03-29 15:5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집착하는 제자신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집착도 물욕도 없으면 도통한거지 하고 자위해요~^^

‘부드럽게 잘~ 변하는 거‘...그게 미립이 나는게 아닐까요?^^

2017-03-28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7-03-29 16:02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힘드셨겠습니다.
다독 다독~((__))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거기에 하나 더 사람의 생명만이 소중한 건 아닐거예요.
무가치적으로 사람 말고 모든 생명있는 것은 소중할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연장선 상에서의 죽음도 그렇게 두렵진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이 순간을 재밌게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데, 우린 찌찌뽕~?^^

AgalmA 2017-03-28 23:31   좋아요 0 | URL
피나 바우쉬는 암선고 받은지 5일만에 사망하고 말았죠. 하루, 5일, 1년 6개월, 30년이라고 해도 우리에겐 모두 부족할 시간일 겁니다.
한순간이더라도 나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고 세상을 볼 때 이거로 된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용기도 얻게 되고요.

sslmo 2017-03-29 16:05   좋아요 0 | URL
피나 바우쉬는 저도 왕 애정하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Agalma님의 얘기이기도 하고 헤닝만켈의 얘기이기도 하고 강유원의 얘기이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소설인데 굳이 필명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었다.

다 읽은 지금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이,

老학자의 '젊은 날의 회고록' 정도, 자전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랬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남들은 참 좋았다고 하는데 난 힘들게 읽었다.

소설 한 권을 10여일에 걸쳐 읽는 건 안나 까레리나 이후 처음인것 같다.

안나 까레리나는 3권짜리이기라도 했지~--;

 

다 읽은 지금도 사람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만든 힘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인문학적, 지연과학적, 예술적 기지와 통찰을 뿜어내고 있는 듯 하지만,

너무 만연체로 늘어지다 보니 알아 먹을 수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사랑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내 관심사가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것이어서 그런가,

이렇게 넓은 분야를 전반적으로 두루 아우르고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스러움은 사랑받은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사랑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사랑받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배움은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한 종류이다. 많이 사랑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은 사랑스러움을 간직한다. 절제와 훈육이 함께한다면 사랑은 클수록 좋다. 어린아이는 자랄 때 그들이 본질적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유년 시절에는 그 사랑스러운 애교로 우리 보살핌에 보답하고 성인이 되었을때에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의해 우리 사랑에 보답한다.(147쪽)

 

이 책이 버거웠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우리말을 사용할 줄 아는 작가이긴 하지만,

영어권에서 오랜 시간 살다보니 그 문화와 정서, 어순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다.

 

인문학적, 지연과학적, 예술적 기지와 통찰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 백과사전 같은 박학다식한 책이지만,

기교적인 면에서 잘 쓰여진 소설은 아닌 듯 싶다.

 

소설의 기교나 작법적인 요소들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쭈욱 읽어온 소설들만큼 세련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힘은 소설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자전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포기와 관용은 한쌍의 상관적인 개념이 된다.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관용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용한다. 이제 많이 늙어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될 때 많은 것을 관용하게 된다. 이것이 구교가 개신교보다 더욱 인간적이고 미신적이고 관용적인 이유다. 개신교는 엄격하다. 언제라도 싸울 태세가 되어 있고, 용서할 수 없는 문제가 많고, 정립해야 하고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 너무도 많다.(107쪽)

처음에 개신교, 구교를 넘나들때는 오강남을 떠올렸다.

좀 더 읽다보니, 오강남은 아니다.

친구가 알려준 사람의 이력을 찾아보니 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읽으면서 여러 작가들이 떠올랐는데 '브로크백 마운틴'과 '시핑 뉴스'의 애니프루도 생각났고,

언젠가 읽었던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도 생각났다.

 

나도 작가처럼 20대 초반의 짧은 기간을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 생활이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돈독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외국 사람들 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으려 했었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그곳보다는 우리나라의 이름없는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갔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에 나오는 이런 문장들에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눈에 사랑의 콩깍지가 씐 그 인물이 등장하기 전이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멜리사, 그 책이나 논문은 어쩌면 내가 미혼이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을 거야.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어. 가정적 행복은 학자의 죽음이야. 멜리사, 아직은 더 써야 해. 당신과 행복한 채로 어떻게 책을 써? 나는 가족을 부양할 만큼 벌고 있지도 않아. 교수는 준실업자야. 테뉴어를 못 받으면 실업수당을 받아야 해.ㆍㆍㆍㆍㆍㆍ(152쪽)

 

이런 문장도 완전 멋지다.

그녀는 이곳에 살면서도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있다. 이곳은 외로움의 보상을 아름다움으로 한다. 외로움에도 중독될 수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 함께 한다면.ㆍㆍㆍㆍㆍㆍ(228쪽)

 

모르겠다, 저자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설레발치기에는 마음의 움직임이 미미하다.

그냥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정도로 일갈하는 수밖에.

 

나스타샤는 내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있다.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직감으로 느껴진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로 상대를 파악하지 않는다. 사랑은 분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감과 일치이다. 나스타샤의 마음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서 내 마음에 공감의 반향을 일으킨다. 이때 둘 사이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마음의 벽은 일거에 허물어진다. 언어는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부적절한 도구이다. 언어가 끝나는 데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보여지는 것이지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483쪽)

  우리는 점점 말을 잃어가고 있었다. 말은 유기적인 협조를 위해 요구된다. 그것은 문명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외에 다른 소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대화를 통해 요구하는 것은 어떤 목적의 달성은 아니다. 단지 소외와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자의 대화는 언어를 위한 언어일 뿐이다. 그녀들은 명제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스타샤와 나 사이에는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필요 없어져 가고 있다.

  여기 둘만의 세계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서로에게 속해 있다. 눈을 뜨는 순간 서로 바라보게 되고, 하루 종일 어깨와 등을 맞대고 있고, 머리를 맞대고 잠을 청하는 우리에게 언어는 필요없는 것이 된다. 나는 이 침묵이 편하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소외도 없고 어떠한 섭섭함도 남아 있지 않다. 미소와 침묵과 솔직함이 모든 단어를 대신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체 세계이다. 나스타샤는 내게 전체 우주이다.(502쪽)

 

언어말고도 다른 소통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나도 때때로 한다.

그동안 나는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이 아니고, 상대방이 내가 아닌 이상,

노력하여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소리내어 얘기하는 것이 소통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둘 사이에 어떠한 소외도 없고 어떠한 섭섭함도 없는 침묵이 뭔지 알 것도 같지만,

아직까진 그런 영혼의 쌍둥이를 만나지 못한 탓인지,

나는 때론 너무 수다스럽고 때론 너무 말을 아끼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틀어서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때로 억지로 웃는 사람, 눈만 웃는 사람, 얼굴까지 웃는 사람 따위를 만나지만,

전 인격을 통틀어 자기 자신이 되어 웃는다는 것은,

경험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말이다.

그녀는 웃음에 의해 한층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는 자기 자신이 될 줄 안다. 표정만 웃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미소에 의해 자신의 전 인격이 웃을 때 거기에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고결함까지 있다. 티 없는 웃음은 따뜻함과 친근함을 불러온다. 스스로가 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런 웃음을 짓는다. 그러한 사람은 순수하고 선량하고 솔직하다.(212쪽)

 

좋은 책인듯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을 깜냥이 아니어서 일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고,

때문에 누군가에게 용기있게 권하기 좀 애매한 책이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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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7 17:27   좋아요 0 | URL
그런말이 생각나네요..사랑을 책으로 배우든가 ..연애를 책으로 배우면 발생하는 그 온도차이를....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들 말이죠..

sslmo 2017-03-28 18:20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애정하고,
책을 통하여 배우는 걸 즐기는데,
다행히 사랑이나 연애는 아니었어요.

남편이 첫사랑이었으니까 남편을 잘 만난 덕이겠죠?^^

서니데이 2017-03-28 14:24   좋아요 0 | URL
어제 여긴 비가 오지 않았지만, 오후 네 시, 다섯 시 되는 그런 시간에 너무너무 추웠어요.
한밤엔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요즘처럼 일교차 큰 날에는 감기 조심하세요.
양철나무꾼님, 기운나는 오후 보내세요.^^

sslmo 2017-03-28 18:23   좋아요 1 | URL
저는 겨울이면 목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터틀넥을 즐기는데,
보통 3월 초면 벗었거든요.
올해도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찾아 입었어요.
한밤에 1도라면 아직 멀었네요~--;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셔야 합니다~!
따뜻한 저녁 드시구요~^^
 

봄볕이 따뜻하고, 봄바람이 살랑 불고, 아지랭이가 아른거린다.
매년 같은 봄이지만 나에겐 새 봄 같아서...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개미 한마리 없길래 좀 쉬어야 겠다고 친구에게 톡을 보냈더니,

개미나 세면서 쉬라고 하더라.

하긴 요즘 하루 하루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건 봄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젠가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내가 '세.젤.예'인가 묻는 망언을 하였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내 친구답게 '존.예.다'라는 답장을 보내줬다.

이 친구가 워낙 반듯하게 사는 유형이어서,

난 이 '존.예.'를 '세상에서 젤 이쁜'을 나타내는 '좋은 예'라고 알아듣고 희희덕 거렸는데,

알고보니 '존나 예쁘다'의 줄임말이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오늘도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는다.

어제까지는 최진석의 시선을 탁월하다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계속 용어를 정의하고 일반론을 되풀이 하는 것을,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니까 그렇게 산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한걸음 떨어져서 보니,

기본이 되는 용어를 정해놓고,

용어에 살을 붙이면서 개념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그냥 나열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대립이 공존하고, 서양에 의해 동양이 완전 패배하고 이딴 것을 明이니 敗니 하는 한자어를 사용하여 재정의 하는 식이다.

모두가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런 내용이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바꾸게 되면,

최진석이 연구한 노자ㆍ장자는 무위자연을 외치던 사상가 이전에 정치가 였다.

때문에 최진석도 단순히 노자ㆍ장자를 연구한 철학자나 사상가이기 이전에,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시키려던 정치가, 적어도 전략가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말 그대로 동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서양을 공부하고, 국제사회로 시야를 확장시키는 것 모두가 나라를 구하고 국가적 위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다산을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데 미숙해서 피상적인 판단을 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다산을 국외로는 눈을 돌리고 시야를 확장시키지 못했던 인물로 폄훼하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가 펼친 실학적 사유들을 유학적 도덕주의에서 비롯된 피상성 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렇기만 할까?

오랜 세월을 유배되어 귀양살이를 한 그가,

날개를 펴기는 커녕 움씬 하기조차 힘들었을 그가,

생각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펼쳐보일 수가 있었을까?

 

말은 유니크 하다는 표현을 써서 선진국 수준을 삶을 살려면 선도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가 묻고 나열하는 얘기는 일반론을 넘어서지 못 하니 아쉬울 뿐이다.

무엇보다 그가 나열하고 있는 선진국이란 나라와 선도력이란 것이 굴절되고 왜곡되고 있는 세태이다보니,

선진이기 이전에 도덕적으로 규격이나 함량 미달이라는 느낌이 강해져 버린다.

 

대교약졸이라고 했던가?

내 눈엔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게 아니라, 지식의 나열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니 하는 말이다.

 

 

 

 여자전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김서령의 책들을 좋아한다.

이 책의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구할 수 없었는데 다시 나왔다.

한국 현대사를 맨몸으로 헤쳐온 여자들의 이야기란다.

책 구입을 극도로 자제하고는 있지만, 들이지 않고 베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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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17 18:41   좋아요 1 | URL
^^: 양철나무꾼님 경우처럼 마음에 맞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삶의 기쁨인 것 같습니다

sslmo 2017-03-18 10:20   좋아요 1 | URL
연의 같이 ‘세.젤.예‘ 딸이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마음 맞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예요~^^

봄볕이 따뜻하고 봄벼이 싱그러워요.
연의랑 야외활동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

서니데이 2017-03-17 18:45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은 존예와 세젤예 중 어느쪽이 마음에 드시나요.^^
요즘 낮은 따뜻한데 오후가 지나면 다시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sslmo 2017-03-18 10:22   좋아요 0 | URL
전 존예가 좋아요.
세. 젤. 예.는 앞에 수식어가 들어 가줘야 하잖아요.
‘내눈에는‘이라는, ㅋㅋㅋ~.

그렇게혜윰 2017-03-19 06:54   좋아요 1 | URL
저도 뽐뿌질 당하는 중입니다 ㅠㅠ

sslmo 2017-03-21 10:09   좋아요 1 | URL
김서령은 집이야기랑 家 때문에 알게 됐는데,
그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힘들죠~--;

서니데이 2017-03-23 12:58   좋아요 1 | URL
1시가 가까워지는데, 점심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sslmo 2017-03-27 16:20   좋아요 2 | URL
아핫~^^
오늘은 3월 27일이고 오후 네시가 조금 지났네요.
북플로 읽다보면 이웃분들 글에 좋아요는 누르게 되는데,
며칠된 제 블로그에 달린 댓글에는 소홀하게 되네요.

비가 오는데, 우리 맘까지 흠뻑 젖지는 말자구요~^^

서니데이 2017-03-24 08:26   좋아요 1 | URL
오늘 금요일이예요. 봄이 다가와도 아침과 저녁의 바람이 차갑네요.
양철나무꾼님, 오늘도 기분 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sslmo 2017-03-27 16:26   좋아요 2 | URL
비 내리고 쓸쓸한 것도 같고, 쌀쌀한 것도 같고,
울적해요~ㅠ.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달래보려구요~.
우리 따뜻하게 차 한잔 해요.

생각하지 못했던 님의 댓글에 완전 기분 좋아지는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