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텔레비전 월드 뉴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부마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렸다는 내용을 봤었다.
탄핵 안이 가결되고 부결되고, 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들이 부정부패에 연류되어 회자되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인데,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다보니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씁쓸하였다.
하얀 암사자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하여 얼마전 읽은 '헤닝만켈'의 이 책 '하얀 암사자'가 생각난 것인지,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흘려듣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헤닝만켈'의 '이탈리아 구두'를 먼저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방대한 스케일에 혀를 내둘렀다.
빈스플린과도 좀 닮았고, 넬슨 드밀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닮은 구석은 정치스릴러 물이라는 것이고,
다른 점은 주인공 쿠르트 발란더가 겉으로 강해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유약하고 안으로 움추러드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또 하나 스웨덴은 우리랑 다를지 몰라도,
그가 아무리 유능한 경찰일지라도,
국가를 넘나드는 정치적인 사안들은 일개 경찰인 그가 다룰 분야가 아닌데,
한 여인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는 품도 훌륭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델라라는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려 하는데,
그걸 기득권자인 보어인이 막으려 한다는 게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다.
내가 국사는 구멍이고, 세계사는 더 약한지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보어인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1780년대 고향을 떠나 남아프리카로 대거 이주했던 네덜란드계 위그너 교도의 후손이란다.
영국인들이야 남아프리타가 마음에 안 들면 고향으로 되돌아가든지, 무한히 넓어보이는 영연방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 되었다. 그러나 보어인들에게는 남아프리카밖에 없었다. 그들은 250여 년 전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종교적 박해를 피해 남아프리카로 이주했으며, 이곳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발견했다. 그들이 겪었던 고초들은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다.(13쪽)
보어인들이 그렇게 핍박받아 봤으면서,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흑인들을 지배한다.
헤닝만켈은 그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집어내어 이 책 속에 버무려 넣는다.
비교를 통해 두드러지게 하고,
덕분에 이 책은 개연성 있어지고 두껍고 튼실해진다.
이 책의 곳곳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굴종에 대해서 얘기한다.
보어인의 목소리, 또 흑인의 목소리로.
ㆍㆍㆍㆍㆍㆍ인간이 자신의 주인이 아닌 상황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상황은 없다. 내 혈족, 내 민족이 영국인들이 정한 법률, 영국인들의 오만불손과 천대 아래서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보어족의 문화는 도처에서 위협을 받고 조직적으로 굴욕을 당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앞으로도 보어인들을 완벽하게 굴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죄어올 것이다.
이러한 굴종이 정말 위험한 것은 그 굴종이 습관화되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신을 마비시키는 독처럼 피로 스며들어 체념하게 된다. 또 이 모든 것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이 정도면 완벽한 굴종이다.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마침내 서서히 고사(枯死)한다.(12쪽)
늘 자신들을 비하시키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는데 익숙해 있는 흑인들은 자신들의 그런 습관의 족쇄를 벗어던져야 해. 아마 굴종은 인간의 병 중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병일거야. 굴종의 경험은 깊이 자리하고, 인간 사고 자체를 기형화시키고, 모든 신체 부분에 스며들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존재가 되는 여로는 인간에게 가장 긴 여로일 거야. 일단 굴종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굴종이 그의 전 존재를 지배하는 습관이 되지.(364쪽)
목소리의 주체에 따라 다른 얘기를 하는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결국 굴종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고를 못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타인의 명령에 의지하게 된다.
쿠르트 발란더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줄 알고,
자신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감에 의지할 줄도 알고,
그러면서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행간을 읽어낼 줄도 안다.
이 책에 나오는 쿠르트 발란더는 감성과 필 충만하고, 아내와 이혼을 했지만 딸은 엄청 사랑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딸이 자는 모습을 보려고 문쪽으로 갔다. 문득 저 아득한 곳에서부터 생의 충만한 행복이 솟아올랐다. 결국 삶의 의미란 별다른 게 아니라 이렇듯 자식들을 돌보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334쪽)
스테레오 전축과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면서 늘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하여 이런 얘길 한다.
아무리 큰 증오심이나 극단적인 절망감에서 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영혼에 결코 치유할 수 없는 균열을 남긴다.(610쪽)
쿠르트 발란더는 범죄와의 전쟁이나 사회 정의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유능한 경찰인듯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사람과의 '관계'를 갈구하는 외로운 영혼이지 싶기도 하다.
그를 그런 경찰이자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낸게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그에게 감정이입하여 대신 정의로운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철저히 고독의 늪에 침잠해 버리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계속 침잠하여 늪의 바닥을 치거나 허우적거리게 되어도 염려할 필요는 없다,
떠오르고 급 부상할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까닭없이 한용운의 시 '복종'이 생각난다.
복종(服從)
- 한용운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어젠 너무 바빠 '1일1그림'을 건너 뛰었다.
빼먹어보니 빼먹고도 살겠는데,
하루 마무리를 제대로 안 한 기분이더라.
그날 그날 일기쓰며 반성하듯 날림으로라도 그려줘야 겠다.
오늘 '1일 1그림'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바빠서 허락 받을 새가 없었다~--;
(혹시 그림의 소재 또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실 분들 계시다면, 메리 베리 땡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