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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평점 :
이 책 뒷표지를 보면, 마이크로는 다 나누지 못했던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첫번째 공감 에세이'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첫번째'라는 단어에 아무래도 집작하게 되는데,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어디선가 봤었던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봤었다고 하면 '다른 책에서 봤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책에서 본건 아니다.
종편에서 하는 '김제동의 톡 투 유'나,
'어록'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그의 트위터 글들이나,
인터넷에 나도는 각종 강연 내용을 갈무리한 동영상 내용을 접했다는 얘기다.
그럼 '책이 별로라는 거냐?' 라고 묻는다면,
'그런건 아니다, 아주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디선가 봤던 내용들로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길때마다, 얼싸안고 넓적한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는 느낌이 든다.
수줍어서 앞에 나서서 설레발을 치면서 호응 할 수는 없지만,
혼자 결의를 다지며 불끈 쥐었던 주먹에서 슬그머니 엄지손가락을 빼 하늘을 향하여 추켜 세울 수 있겠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과장하여 크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지만,
공감을 표시하는 작은 손짓 하나, 미소 한번 짓는 데도 아주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보통 한번 접했던 내용들을 리바이벌할 경우 감동이 반감하게 마련인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와 같이 울고 웃고 하여, 여러 편의 강연을 그와 함께한 느낌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도 예쁘고 따뜻해서 충분히 위로가 된다.
내가 이 책에 이토록 감동을 받은 이유가 뭔가 생각해보니, 그의 공감 능력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그는 사회를 보는 사회자나, 강연을 하는 강연자라기보다는,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춰가며...공감을 하려는 우리의 이웃이나 친구 같다.
높아만 있어 아우를 수도 없을뿐더러 범접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는 누나들을 독수리 오누나에 비유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쏜살같이 나타나는,
짜짜짜짜짜장가~♬ 같은 존재이다.
(부디 일본 에니메이션을 가지고 비유를 한다느니 따위의 딴지를 걸지는 말기 바란다.)
그렇게 다섯 누나들이 그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그는 그런 다섯 누나를 든든한 빽(?)을 삼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뭘까?'를 늘 고민한단다.
'내가 이등병이라면, 내가 대대장이라면, 내가 간호사라면?'
예를 들어 병원에서 행사가 있으면 예정 시간보다 일찍 가서 그곳 분위기를 살펴봅니다. 그러면 간호사 선생님들끼리 "니 오늘 오프가?"하는 소리가 들여요. 그런식으로 그들만의 용어를 듣고 머릿속에 넣어뒀다가 행사가 시작되면 써먹습니다.
"오늘 오프였으면 좋겠죠?"
그 한마디로 공감을 얻습니다.
어느 무대에 서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거나 제가 대신 하려고 한 게 통했던 것 같아요.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죠. 제 외모가 다행히도 너무 부담스럽게 잘생기진 않았달까요?(물론 조금 잘생기긴 했지만~)(24~25쪽)
김제동은 공인이니까 여러 사람을 대신하여 그들이 하고 싶어할만한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러 사람의 입장을 대신할만한 깜냥이 아니어 주시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별난 생각을 하고 별난 행동을 할때,
어느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나의 별난 생각이나 별난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니 많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때,
세상에 한명 정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야 하고 내버려두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었다.
그럴 때 있으시죠? 뭔가 말하고 싶은데, '에잇, 됐어. 나만 그렇겠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싶을 때. "너만 그러냐, 다 그렇게 사는거지" 이런 소리 들을까봐 '그냥 아무 말 말자' 싶을 때. 어디 가서 혼자 실컷 울면 좀 나을까 싶은데 막상 울려면 눈물도 잘 안 나올 때. "매일 그렇진 않다"고 쓱 변명도 해볼 때. 여기 그런 사람 한 명 추가합니다. 그냥 추가합니다.
- 2016. 6. 23. 페이스 북(31쪽)
사람들은 모든 삶이나 삶의 모든 행위에 대해, 원인에 따른 결과가 도래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세상의 그런 모든 삶과 관련하여, 원인에 따른 결과와 상관없는 '그냥'도 존재한다는 말이 하고 싶다.
원인에 따른 결과를 얘기할때 획일적이든 다양하든 시간의 추이를 무시할 수 없는데,
그 '시간의 추이'말고 또 한가지 나로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 하는 '관점'도 필요하다.
그럴땐 시간의 추이나 관점을 다 차치하고 '그냥'이라고하며 툴툴 털어버리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그럴 때 있으시죠? 가끔 골목길을 걸으며 누가 보든말든 펑펑 울고 싶을 때. 아니면 내가 우는지도 모르고 길을 걸을 때. 그런 아이를 며칠 전에 만났거든요. "무슨 일이냐"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방금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거예요.
어깨 드드리면서 "괜찮다, 너만할 때 한번씩 겪는일"이라고 말하려다가 입 꾹 다물고 오래 같이 울었어요. 울 만하다고 그랬어요. 울 만한 날이잖아요. 울 만한 날 울어줘야 사람이 사는 듯해요.
울 만한 사람들이 모두 맘껏 울 수 있기를, 웃으라고 강요받지 않기를, 그래서 진짜 싱긋 웃을 수 있기를. 오늘 비 올만한 날이네요. -2016.6.15. 페이스북(66쪽)
그런 의미에서, 때로 때때로 나는 내자신이 너무 사랑스러운데,
울 만한 일에도 맘껏 울지 못하고 감정을 아끼는 사람,
자기 자신에겐 모질게 대해야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인줄 착각하고 쿨내 진동하는 연기를 하는 사람,
김제동도 혼자 살면서 샤워부스에서 물을 틀어놓고 운다는데,
나는 웃고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내 자신의 감정엔 충실하기 때문이다.
때론 사랑스러운 것과는 또 별개로 이런 내가 창피하기도 한데,
바닥을 치고 울어본 사람만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며 자위한다~(,.)
언젠가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너무 행복한 순간 눈물이 난다던 사람이 있었다.
너무 행복한 순간이면,
'세상의 행복 총량은 일정하다'는 법칙에 따라,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 몫의 행복을 빼앗은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제동은 주변과 공감하는 능력은 뛰어난지 모르지만,
전에 '미.우.새'에서 소개팅 할때도 느낀건데,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뻐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정신 분석학적으로 짐작되는 부분은 있는데 개인적인 내용이고, 나의 분석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차치하기로 하자.
본인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는 하고 있는 듯,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껏 만났던 친구들에게 말은 늘 통이 큰 사람처럼 해놓고 바라는 것도 많고 고집도 셌던 것 같아요.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엄마 같은 사람, 힘들 때는 옆에 있어주는 사람, 그러다 제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기꺼이 떨어져 있어주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에 어떤 사람이 그런 걸 해주겠어요? 제가 못된 거죠. 오히려 제가 상대방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떨어져주고 그래야 하는데, 제가 그걸 못했던 거죠.(96쪽)
라고 얘기하는데,
철옹성이라고 해야 할까 러시아의 크렘린 궁이 연상됐을 뿐이고~(,.)
탄탄하게 높이 쌓아올릴수록 엿보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이렷다, ㅋ~.
난 트위터나 페이스북 따위를 하지 않아 관심 같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영어로 적힌 그의 트위터 계정은 '금강경'이다.
그럴듯 하다.
김제동을 개그맨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방송사 걔그맨 시험 따위를 통해 데뷔한게 아니라,
지역 축제 사회자를 하다가 방송인이 된 경우이다.
우리가 흔히 개그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전철을 밟았다.
개인적으론 개그맨보다는 광대가 적절한 표현 같은데,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약자가 강자를 조롱하는 것은 풍자이고 강자가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말과 근원을 같이 한다.
법이라는 글자와 관련하여, 물이 흘러가듯 그대로 두는 것이 법(法)이라고 한단다.(148쪽)
또 바다를 바다라고 하는 이유는 다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15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건
그러지 않으면 죽을 때 쪽팔릴 것 같아서예요.
'마이크 잡은 사람 중에 힘없는 사람들 편 들어주는 사람이 한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제가 정치적이어서가 아니에요. 쫄리고 주저하게 될 때마다 사람에 대한 도리를 생각하게 하는 분들이 세상에 많아서 입니다.(222쪽)
자기 자신과 화해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이뻐할 줄 모른다고 하여, 신념이 없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꾸준히 밀고 나갈 만큼의 신념은 있으니 그것으로 된거다, 그만하면 충분한 거다.
세상에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그리하여 신념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 새끼 왜 우냐"고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래습니다. 적어도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어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유가족의 슬픔이 멈추는 날, 그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해라"라는 얘기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ㆍㆍㆍㆍㆍㆍ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모아주는 것이고, 함께 아파하고, 절대로 그분들에게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걸 기도와 서명으로써 표시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그분들과 이땅에서 함께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힘들면 그때는 반드시 누군가가 와서 나를 도우리라는 믿음, 저는 그것을 심리적 복지라고 말하는데요. 슬플 때 혼자 있지 않다, 내가 힘들 때 혼자 있지 않다. 내가 그런 사람이면 내 옆에도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게 저는 진짜 복지라고 생각합니다.(315쪽)
함께 사는 사회가 무엇일까?
사람 사는 세상 어딘가에 불을 밝히면 환할 뿐만 아니라, 따뜻해진다는 걸 깨닫는게 아닐까?
심리적 복지라는 말, 어찌보면 억지로 끌어다 붙인 말 같지만,
그러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환하고 따뜻하면 그만 아닌가?
혼자면 환히 불 밝힐 필요가 없다.
혼자보단 둘이 더 따뜻하다.
밝다던가 따뜻함 따위의 말 따위가 어차피 심리적 속성을 지녔으니까 말이다.
환하거나 따뜻함 따위는 자신의 것을 덜어 나눠줄수록 손해보지 않고 넉넉해지는 것 같다.
김제동의 이 책 덕분에 나도 환하고 따뜻함을 나눠 가졌으니,
부디 그도 몸과 마음이 환하고 따뜻해지길, 건강하고 행복하길...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