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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운동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내가 이 책을 왜 집어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북플'의 '독보적'이라는 서비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 번 '하정우, 느낌있다' 때도 좋았기에, 이 책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플러스 되어서.
아무려나 읽다보니 참 좋아서 남편에게,
"이 책 좋다. 읽어볼래?"
하고 권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래서 걸어 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
였다.
나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며 얼버무렸더니 남편 왈,
"'좋다'는 느낌만으론 좀 약하지 않어?
행동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좋은 책이쥐~!"
라며 내심 나의 변화를 기대 종용했지만, 뭐~(,.)
이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
걷기를 좋아하게 될지 어떨지는 일단 걸어봐야 알테지만,
내가 말한 "이 책 좋다"의 원천은 하정우라고...
이 책을 읽는 내내,
하정우도 나와 같이 간난신고를 겪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그가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수선내지 않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참 좋았다.
걷기를 비롯한 모든 운동을 싫어하고, 여행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내가 너무 침체되었다며 운동이나 여행 등 훈수를 둔다.
내가 에너지를 소모하고 비축하는 방식이 달라서,
운동이나 여행따위로... 좋고 기분전환이 되고 삶의 재충전을 하질 않는다고 하면,
대게 게으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지는 '니가 그 정도로 중환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하며 북돋우려 든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가 느끼는 온도차와 통점도 모두 다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잘못된 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디고 험한 길이 있을 뿐이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 내가 갖고 있는 일상의 매뉴얼이 누군가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혹여 쓸 만한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어 참고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서문, 11쪽)
그런데,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설레발을 치지않을 수가 있나.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란 멋지다.
기분을 전환하는 법은 저마다 다르다. 마음 편한 사람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방법들은 확실히 즉각적인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이 따른다.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에 해롭거나, 내 기분은 바꿔주지만 다른 이에게 민폐를 끼치며 상대의 기분을 구겨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부작용 걱정 없는 걷기를 선택하는 편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추워지면 외투를 입는 것처럼 나는 기분에 문제가 생기면 가볍게 걸어본다. 누구에게나 문제없는 날은 없고 고민 없는 날도 없다. 고민이 내 머릿속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어깨 위에 올라타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면 나는 '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돌아와서 마저 고민하자'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간다.(31쪽)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도 다르긴 하다.
난 반식욕 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잠을 잔다.
나는 이 방법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안으로 움추리고 누워있을때, 누군가는 나의 그런 상태를 걱정하고 염려할 수도 있겠다.
'아,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ㆍㆍㆍㆍㆍㆍ
내가 일을 좋아하는 만큼, 일을 오래하고 싶은 만큼, 휴식도 신경쓰고 잘 계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과 휴식을 어중간하게 뒤섞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 일이 바쁠 때 '나중에 몰아서 쉬어야지' 같은 얼토당토않게 핑계를 대지 않는 것.(57~58쪽)
일(=노동)과 운동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 가장 찔렸던 구절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모든 생각마저도 내려놓는 것이 휴식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ㅋ~.
그리고 이 루틴이 습관으로 자리잡으면, 힘들 때마다 망설이고 고민하기보다는 이란 움직이게 될 것이다.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내 삶에 결정적인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생각의 덩치를 키우지 말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살다보면 그냥 놔둬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 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인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166쪽)
그러니 하정우의 루틴은 걷기이고, 나의 루틴은 반신욕 후 잠자기라는걸 받아들이면 쉬워진다.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다는 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에선 괜찮지만,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을 멈출 줄 아는 것과,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엄연히 다른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나 주술 따위에 의지하는 것 같아서 되게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난 사람에게서 나오는 어떤 기운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 책에서는 '(언령言靈)이라고 표현하며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말에만 적용시키는게 아니라 좀 확대시켜 인간 전체에 적용되는 아우라나 에너지 따위로 표현하고 싶다.
좋고 선한 기운일때도 있고 나쁘고 악한 기운일때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섞여 있을 때도 있다.
좋고 선한 기운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떤 에너지든 간에 강도에 따라서 내쳐지거나 북돋워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한 나는,
하정우의 이 책을 통해서도 그러한 것들을 느꼈다.
그러면서 영화 '신과함께'의 대사를 인용하는데,
"그러니까 인터넷 댓글 같은거 함부로 달면 안 돼!"
는 하정우가 김용화 감독에게 강력하게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악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지난 페이퍼에서 많은 분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공감과 댓글로 위로를 해주셨다.
그 위로들은 내게 혼자가 아니라는,
같이 보금어 안자는,
툭툭 떨고 걸어나아가 보자는 위로가 되었었다.
그 중 비밀 댓글 하나를 그 분의 동의도 없이 옮겨보자면 이렇다.
그럴게요.언제라도.
혼자 안을 수 없으니 우리는 함께 서로를 안아주겠네요.
서로를 안아주다, 참 포근합니다.
하정우를 빌리지 않아도 '독서'와 '걷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은 걷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읽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루 아침에 습관을 바꾸어 걷게 되긴 힘들지 모르지만 꾸준히 읽기는 해야겠다.
명제를 살짝 비틀어 보면 꾸준히 걷든지, 읽는 존재가 인간이라니 말이다.
이렇게 따뜻한 이들이 있는데,
내가 함께 또는 오롯이 걷고 읽지 못할 이유가 무어 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