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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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 길에 은행 자동화기기에 돈을 입금시키면서 이 책을 잠시 손에서 놓았다가,

영영 놓아 버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책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자기와 아들이 아닌 책을 잃어버린걸 다행으로 알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한다.

어제 잃어버린 책이 바로, '서재에 살다' 되시겠다.

어차피 읽은 책을 향하여 미련이 없는데, 왜 이리 연연하게 되는건지~--;

잊혀지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그렇게 다른가 보다.

 

그러고보면, 난 책들을 의인화하다 못해, 추앙하고 있었나 보다.

이 책의 제목 '서재에 살다'를 보면서,

'사람' 이 서재에 사는 것이 아니라, '책'이 서재에 사는 것인데,

뭐 이리 당연한 것을 제목으로 뽑았나 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동안의 나의 사고 방식이나 행태는,

'사람은 집에 살고, 책은 서재에 산다'가 말이 될 정도로 책탐을 부렸었다.

그러던 차에, 언젠가 소유한 책의 1/10정도만을 읽게 된다는 이권우의 말에 위로가 됐었는데,

이 책의 저자 박철상 같은 경우도 서재의 이름을 '수경실;긴 두레박줄'이라고 한걸 보면,

책탐이 만만치 않음이 분명하다, ㅋ~.

 

그런데, 그동안 난, 책을 읽었어도 헛 읽었었던 게다.

책을 탐한다는건 어찌보면 지식을 탐한다는 건데,

책을 탐하고 쌓아두기만 한다고 하여,

책 속의 내용들이 내 머릿속으로 순간이동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엔 요즘의 서재 관련 책들처럼 조선 지식인들 24인의 서재가 그림이나 책의 목록 만으로라도 쭈욱 나열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었다.

이들이 어떤 종류의 서재에 기거했는지에 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떤 책을 읽고 소장했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었는지를,

그들이나 후손이 남긴 글이나 그림 따위를 통해서 엿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재의 이름을, 그 시대엔 호를 서재의 이름으로 사용했으니,

호를 쭈욱 나열하고 호의 의미를 새겨보는 수준이어서 아쉬웠다.

서재의 이름은 조선 문화를 탐색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국회도서관보』'서재이야기'코너에 매월 연재했던 것이다. '서재이야기'는 본래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실으려고 기획되었지만, 서재 자체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은 탓에 서재의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바꿨다.(10쪽)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서재를 통해서 내가 엿보고 싶었던 것은,

단지 그가 읽은 책 제목, 책 속에 담겨있는 죽은 지식은 아니라,

그가 읽은 책들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리하여 그와 교류했던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였고,

나아가서 내 삶에 어떻게 받아들여, 적용해야 할지였다.

 

이 정도를 끄집어내어 삶에 적용하겠다는 것도,

어찌보면 정조와 북학파라고 불리우던 19세기 조선시대 지식인들,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실학자들 덕분이지 싶다.

난 한때, 김탁환에 열광하였었기에,

다른 이들의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던 내용이었는데,

이분이 '금석학 전문가'여서 그런지, '유금의 기하실'같은 경우 재미있었다.

 

'정조'의 '홍재' 얘기를 하면서,

이산이 아니라 이성으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유득공의 서재 '사서루'라고 했나보다.

유득공의 아들이 지은 '사서루기'에는 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전한다고 한다.

사서는 임금이 신하에게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임금으로부터 받은 글씨나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따로 누각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서루' 역시 그런 의미로 지은 건물이었다.

  이 사서루 횡액에는 누구에게 써준 것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추사가 유득공의 사서루 편액으로 써준 글씨가 분명하다. 당시 유득공처럼 사서루라는 명칭에 걸맞는 장서를 갖춘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95쪽)

라고 되어 있으나, 성해응 부자라는 다른 의견도 있어서 여기 링크를 걸어둔다.

 

저자의 약력에 논문으로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가 있는 것을 보니,

이쯤되면 허투루 유득공을 끌어들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서루에 걸맞는 장서를 갖춘 다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쓰레기고서들의 반란'과 비교하여, 글이 투박하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읽다보니,

참고가 되는 문헌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않고,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그걸 다시한번 해설하면서 살을 입혀 설명을 하니,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원문을 번역하여 옮기는 부분의 글씨가 좀 작고 빽빽했다.

'사서루' 같은 경우는 여러명이 사용했을 수도 있는 서재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득공'만을 내세워 일관성을 유지한 반면,

다른 사람들의 경우엔,

한사람이 호를 여러개 사용한 경우,

그 뜻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관련된 사람과 에피소드를 등장시키다보니 그리 된 것인지,

내가 설렁설렁 읽어 내용을 제대로 파악을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난한 시인의 서재 조수삼 이이엄'으로 시작해서 장혼의 이이엄이 어쩌구 하면서 마무리가 되는 종류의,

구렁이가 담을 넘은건지, 용두사미인건지 모르겠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역사적 관점과 문제의식, 행동력, 실천력 따위는 치열하다.

배울 점이다.

나도 서재를 '책이 사는 집'으로만 여기지 말고,

책에서 보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접목시키고 실천하는 것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역사가 과거에 책 속에 묻혀 있는 그것이 아니고,

현재의 삶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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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5-02-25 10:51   좋아요 1 | URL
`서재`라는 공간이 가지는 함축된 의미가 오늘날에도 유용했으면 합니다. 서재가 사라지면서 우리가 누려야 할 많은 것들도 함께 사라졌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넘어선 마음입니다.

sslmo 2015-02-25 13: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서재나 공부라는 것이 학이시습지 뿐만 아니라, 유붕이 자원방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텐데 말이에요~^^

해피북 2015-02-25 11:14   좋아요 1 | URL
예전에 제 여동생도 은행에 볼일보러가며 <오만과 편견>들고 갔다가 잃어버려서 마음 고생하더라구요 실은 제 책이였는데도 말이죠 동생이 그 책을 너무 좋아했던 탓에 결국 다시 구입하더라구요ㅋㅡㅋ

저두`서재에 살다`읽으며 좀 아쉬운 느낌을 받았어요 한 인물이라도 깊이있게 다뤄주셨거나 책과 관련해서 사람사이의 이야기를 다루주셨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으로 말이죠 ^~^

sslmo 2015-02-25 13:33   좋아요 0 | URL
제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말이죠~,
책에 들이는 돈이 아까운 줄 모르는 저도,
이 책이 다시 사서 읽을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랍니다~^^


만병통치약 2015-02-25 11:17   좋아요 1 | URL
지하철에 두고 내린 책만 모아도 한질되죠 ㅋㅋ

sslmo 2015-02-25 13:35   좋아요 0 | URL
전 지하철에 책을 두고 내리진 않고,
책을 보는 대신 손에 들었던 다른 소지품들을 두고 내리죠, ㅋ~.

붉은돼지 2015-02-25 12:39   좋아요 1 | URL
주인 잃은 그 책이 험한 꼴 당하지 않고 부디 또다른 애서가의 손에 들어가기를 기원합니다 ^^

sslmo 2015-02-25 13:36   좋아요 0 | URL
호, 불호를 타게 생긴 책이라서 과연 그럴 수 있을지...원~(,.)

쉽싸리 2015-02-26 09:05   좋아요 1 | URL
잘 잃어버리셨군요! 라는 얘기는 너무 과격하겠죠? 예날 양반들 서재라는게 도통 현재 우리네와 다른 점이 많은거 같아요.

sslmo 2015-02-26 09:13   좋아요 0 | URL
과격하기는요, 일상인걸요~^^
박지원이랑 이덕무는 책을 팔아 밥을 빌어먹었다는데,
전 책을 잃어버리고도 밥만 잘 먹더라는~--;
(모라는거래니~?@@)

서니데이 2015-02-26 15:47   좋아요 0 | URL
다른 것도 그렇긴 하지만 책도 잃어버리면 마음이 좀 그래요, 특히 다 읽지 않은 책이면 아쉬운 것도 있구요,
그 책은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까요,

sslmo 2015-02-28 10:07   좋아요 1 | URL
제 책이 아니다 생각하고 잊는 수밖에요~--;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은 돌아오고, 가래떡을 만들고 떡국 떡을 써느라고 다들 분주하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나이 먹는게 싫다며 난 떡국을 안 먹는다고 했었고, ㅋ~.

귀요미 조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며 떡국을 두그릇, 세그릇 욕심내곤 했었다.

 

우리 조상들은 추석엔 송편을, 동지엔 새알이 들어간 팥죽을, 설날엔 떡국과 두텁떡을 해먹었단다.

모두 추운 계절이다.

긴긴 겨울밤에 입이 심심해서 떡을 해먹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여기엔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단다.

 

떡이란 쌀을 가장 차지게 만든 음식이다.

차진 것은 주리와 피부를 단단하게 틀어막아주고 피부를 단단하게 해주므로 겨울 추위를 이기게 해준단다.

한마디로 쌀에 뭉치게 하는 힘(vector)이 추가된 것이 떡(236쪽)이란다.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최철한 지음 / 라의눈 / 2015년 2월

 

 

의식동원(醫食同源), 약식동원(藥食同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생명체의 이런 노력과 운동성을 관찰해 치료에 이용해 왔고,

이러한 원리를 음식 문화로 발전시켜왔다.

 

이 책이 좋은 것은 '무엇이 어디에 좋다'가 아니라 '왜 그런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을 밥으로 먹을 때와 떡으로 먹을때, 누룽지를 눌려 숭늉을 마셨을때의 효능이 달라진다.

식당 음식과 엄마가 만든 음식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니,

실생활에 적용,

생명력 넘치는 삶을 누리기만 하면 되겠다.

 

오랜만에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실생활에 적용하기 쉽겠다 싶어서 이쪽에 관심을 갖는 친구에게 일부를 캡쳐하여 보내주었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이런 내용을 캡쳐하여 보내왔다.

 

 

 

 

그리하여,

내가 '친히' 저 차이를 분석해주시는 수고를 해주셨다.

밀은 가을에 심어서 추운 겨울을 나고 여름이 되어 열매를 맺으면서 사계절을 거치는 식물이다.

그 겉 껍질인 밀기울은 성질이 차고, 속 열매는 성질이 오히려 따뜻하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밀이라고 할때는 밀의 겉껍질째인 밀기울의 속성을 얘기해주지만,

속 열매를 갈아서 만든 밀가루는 따뜻한 성질을 지닌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선 33가지 종류의 물이 있다고 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소와 뱀의 습성상, 같은 종류의 물을 먹을리가 만무하다.

 

음식도 그렇고, 약도 그렇다.

음식을 만들고, 약을 짓는 사람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음식의 효능, 약의 효능을 판단하는 기준점은,

'나 자신'이다.

 

내가 맨날 하는 말,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와 더불어,

'각자 다름을 인정하는' 속에서 삶은 풍요롭고 값질 수 있다.

이 말은 곧,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와 다름 아니지만,

오늘 하고 싶은 얘긴 나름 간단하고 소박하다, ㅋ~.

 

 

 

 

 본초기
 최철한 지음 / 대성의학사 / 2009년 11

 
 圖表 本草問答
 당종해 지음, 최철한 옮김 / 대성의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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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5-02-17 16:31   좋아요 0 | URL
여전히 수많은 독서와 글 속에서 사시는군요 ㅎ 전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ㅋ
고립된 독서실에서 절에 들어온 듯이 열 몇시간 씩 보내고 있어요 허허
공부라는 게 참 힘들다고 뼈 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보내고 즐거운 봄을 맞이 해야죠 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

sslmo 2015-02-25 10:43   좋아요 0 | URL
여전히 열.공.하시면서 잘 지내시는군요~^^
님을 보면 고립이나 고독 따위를 즐기시는 듯 느껴지는 것이,
달래 제가 교주님으로 모시는게 아니죠, ㅋ~.

봄이 오는 것일수도 있지만,
맞이하는 봄이야말로 즐거울 거예요, 그쵸~?^^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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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때 꿈은 헌책방 주인이었다.

그러다가 구겨지고 먼지 묻고 낡은 책들, 다시말해 다른 사람의 손때 묻은 책을 힘들어하는 날 발견하곤 서점, 북까페 주인으로 방향선회 하였다.

지금도 가게 한칸을 빌려 공방 겸 북까페로 꾸미는 것이 나의 로망이지만,

꿈은 좀 실현 불가능하여도 좋지않나? ㅋ~.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은,

안달루시아과였던 나의 기본적인 성향도 넉넉하게 바뀐 것을 들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이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을 하는 부류로 바뀌었는데,

그런 내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다른 사람의 서재나 책장을 엿볼때이다.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집을 읽는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들의 서평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러니까 서평을 쓸 정도의 고수들은 어떤 책을 콜렉션하는지가 궁금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적독'-즉, 쌓아 놓는 즐거움은 졸업하기로 다짐하였고,

한번 읽은 책을 나중에 다시 들춰보게 되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건 예전에 터득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부러운건,

책이 좀 많은 책장도 아니고,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도 아니고,

정리가 잘된 책장도 아니고,

읽고 싶은 책의 레파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대기 중인 책장이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도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 또한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사랑하면 된다. 책을 정말 사랑하니까 한 시라도 책하고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이, 책이란 곧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연인 같다고 그이는 말한다. 이렇게 폭넓게 읽으면 책에서 얻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알고 싶은 분야의 책 몇 권만 읽고서 쉽게 단정하고, 자기 지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처럼 위험한 게 없다. 좁게 쌓아 올린 지식은 높아질수록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무너진다.(17쪽)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을 갖는 특정 분야에만 한정적으로 관심을 갖게 마련이고,

그얘긴 전문화된다는 거지만, 바꾸어 말하면 편협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깊어질수는 있지만,

자칫 책을 다양하게 읽기는 힘들어지는데,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여 좋은 것은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심 분야 외의 책을 처음 선택할때는,

자신의 선택이 바른 것인지 어떤 것인지,

자신의 독법이 제대로 된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경우,

인터넷에서 만나게 되는 각 분야의 고수들이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게 관심 분야를 넓혀 갔다.

 

글을 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책으로 만들려고 안철수 교수 원고를 받아서 검토했는데, 거의 손볼 곳이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잘 쓴 글이어서 놀랐어요.이공계 학자들이 쓴 글은 대부분 그렇지 않거든요. 안 교수의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냐를 떠나서 제가 지금껏 편집자로서 겪은 사람 중에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건 확실합니다.(28쪽)

이젠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글 말고도 사람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편집자의 입장에서 손볼 곳 없는 매끄럽고 잘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종류의 글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논리의 비약이 없는 매끄러운 문장이었다는 말일텐데,

그건 사고력의 균형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이 특별히 모나지 않았다는 소리이지,

그게 그 사람이 좋은 사람과 동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 하면, 글 말고도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수영 시인처럼,

시를 쓰는 것은 머리도 아니고, 심장도 아니고, 몸의 일부분도 아닌,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김수영 시인은 말한다. "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기억해낼 때마다 가슴이 뜨뜻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읽을 때도 되도록 내 온몸으로 동시에 읽어내고 싶다. 시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를 읽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저 친구가 아니라 더 끈끈한 동지가 된다. 한 시대를 함께 고민하는 동지다.(70쪽)

그렇게 김수영의 그것에 안철수를 대입시켜보자면,

글 또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 실천이랑 결부시켜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할텐데,

실천, 행동력이랑 결부시켜서 얘기했을때 그의 글들은 너무 매끄럽고 잘 씌여서,

일반인들이 읽고 따라하기엔 숨고르기마저 버겁지 않을까?

 

"제게 책읽기는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비우는 느낌입니다.무위자연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그건 제 안에서 깔끔하게 소화돼 없어지는 겁니다. 한번은 이곳에 와서 만난 어느 후배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가 덜컥 화를 낸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심리학을 깊이 공부해서 말끝마다 비트겐슈타인이 어쨌다는 둥 어려운 사람들이 한 말을 끌어다 쓰기를 즐겼어요. 듣고 있자니 꽁해져서 한마디 했죠. '너는 왜 네 얘기를 안 하고 다른 사람 얘기만 하느냐'고. 후배는 공부를 많이 해서 보고, 듣고, 읽은 게 그만큼 쌓였는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그저 그것뿐이었어요. 그걸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해서 마냥 쌓여 있는 거예요.ㆍ수업의 기본은 지식 전달이라는 걸 바탕에 깔고 하는 거지만, 그 위에 제가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양념처럼 뿌려주니 소화가 잘 되죠. "(288~289쪽)

 

책이 빼곡히 꽂힌 서재면 다 부러운게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의 레파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대기 중인 책장이 부러운건, 이런 이유에서이지만,

이젠 이마저도 졸업해야 하려나 보다.

한권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생되어 읽고 싶은 책이 생기는 걸로 만족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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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2-16 21:46   좋아요 1 | URL
오늘 책을 읽는데
지성을 갖는다는 것이 선의를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라고 하는 말에 공감~

글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인 마음으로 다가가기보다는 머리로 한번 먼저 거른다는 글도 읽었는데 이것도 공감했어

그래두 평생 안 질리는게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야 그징~♥

하늘바람 2015-02-17 01:55   좋아요 0 | URL
전 님의 마지막 그징~♥이 넘 부러운데요.
그징 언니♥

sslmo 2015-02-17 16:04   좋아요 0 | URL
요즘은 알라딘서재 마실도 다니고,
어째 좀 덜 바쁜건가?

바쁜 일 한풀 꺾이면 얼굴 한번 보자구,
정말 행복할거야~^^

sslmo 2015-02-17 16:06   좋아요 0 | URL
하늘 바람님도 부러워만 말고,
`그징~♥`하시면 되져~^^

전 언제나 대환영이예요~^^
그징~♥

AgalmA 2015-02-17 00:06   좋아요 1 | URL
제 꿈은 만화책방 주인이였는데 ㅎ... 절친이랑 얘기할 때 그런 구박 자주 했죠. 누군 어떻고 회사는 저떻고... 언제나 그러길래 네 속의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요즘은 둘이서 정치와 세상 욕을 실컷ㅋ;; 서로의 자아비판은 너무 들어서 통과ㅎ;;

sslmo 2015-02-17 16:14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 어릴때 꿈이었는지는 모르겠고,
책 좋아하시는 분들 중 어릴때 만화방 하셨다는 분들이 좀 계세요.
번역가 중에도 한분 알고 있구요, ㅋ~.

근데 말이죠, 댓글이 힙합버전인거 알까요?
라임이 끝내주는걸요~^^
˝~욕을 실컷 ㅋ/~들어서 통과 ㅎ˝
완전 멋져욧~!

AgalmA 2015-02-17 17:50   좋아요 0 | URL
만화방 일화들 재밌네요ㅎㅎ
힙합버전ㅋㅋ...다시 보니 말이 너무 거친가 싶기도 한데a; 좋게 봐주셔서 다행^^
양철나무꾼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욥!
 
[eBook] 역사 e 3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3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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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건,

한 나라의 역사도 그렇고,

개인의 삶도 그렇고,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의 그것마냥,

모든게 일정한 패턴을 그린다는걸 깨닫게 되고 나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가만히 돌이켜보게 된다는 것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해온, 내가 속해 있는 나라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예측해보게 된다는 의미일터,

스케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것이, 도돌이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패턴을 그리면서도 눈곱만큼씩 변하는데,

그 변화가 나은 방향으로의 그것이었고, 그래야 하겠다는걸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동안 나는 역사를 재미없어 했었는데,

그 이유가 역사라는 것은 유적이나 기록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인데,

유적도 그러하지만, 기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대의 권력자들과 함께 가는 특성이 있어서 왜곡되거나 과장된 채로 전해져 오는 것이어서 진의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이,

프랙탈이론 마냥, 자기유사성을 띠면서 되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역사를 돌이켜보고 되짚어보다보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왜곡되거나 과장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걸 알게 되자,

역사가 재미있어졌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는 왕조의 기록이다. 당대를 알기 위해선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만 역사를 바라봐서는 당시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없다. 기록 사이사이, 그 행간에서 숨 쉬며 살았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다녔던 민낯의 선조들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역사를 가장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해서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6쪽)

기록 사이사이, 그 행간에 숨쉬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민낯을 만난다는 것은,

왕조의 기록인 역사라기 보다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옛이야기에 가까운 것이고,

그렇게 선조들 개개인의 삶을 확장시켜 나가다보면 그게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역사에 대해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

사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그런 역사관은 내가 아는 만큼만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내가 독선적이고 편협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면,

'부분을 전체를 대표한다'는 프랙탈이론에 근거하더라도,

딱 그만큼의 생각들을 펼쳐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일례로 생각해 볼 수 있는게, 초딩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다.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그리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아니란걸 깨닫게 된 것도 어른이 되고 나서였지만,

그나마 우리민족이 단일한 혈통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아주 오래전으로 올라가서부터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짐작하게 되었다.

혈통이라는 것이 인재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조 때를 보면, 왕위를 놓고는 부자지간도 암암리에 암투가 있었던 것을 볼때,

혈통에 근거한 신분제, 그리고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그렇게 얽매였다는 건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통로로 열어 놓은 것이 '과거제도'인데,

 이마저도 제한적이어서,

'경국대전'에서는 서얼 외에도 역적의 자손이나 뇌물을 받은 관리의 자손, 재가한 여자의 자손은 과거시험을 절대 볼 수 없도록 제한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닌데, 퇴계는 아무래도 비범한 인물이 틀림없다.

아들이 일찍 죽자 며느리를 몰래 앞장 서서 재가시켰단다.

그때의 풍습으로 미루어 봤을때는 아들이 죽고 며느리가 집안을 잘 일구고 혼자 수절하면 열녀문을 짓는 그런 세상이었을텐데 말이다.

 

이건 오늘날에는 다문화사회라는 개념으로 우리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하고 있다.

서양에서 동양을 얕잡아보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월한 입장에서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약소국의 이주민들을 바라보게 되는 걸 그렇게 얘기한단다.

이러저러한 이유와 그로 인한 망명, 귀화를 설명하는 예도 보인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평화의 문제다. 이 강연을 압박하는 것은 조선 문제만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압박하는 것이다."(305쪽)

 

이 책이 좋은 것은 역사를 인식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의식과 관련된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해결책을 다함께 강구하려는데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왕 중심의 왕조의 기록을,

우리 같은 일반인 중심의 기록으로 바꾸어 놓았다는데 있다.

왕 중심의 왕조의 기록을 우리 같은 일반인 중심의 기록으로 바꾸어 놓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기록 사이사이, 그 행간에 숨어있는 문맥의 뜻을 살려내는 방법을 통해서친근감을 갖고 애정하게 된다.

 

시대를 사는 것은 우리지만,

우리가 흠뻑 담굼질하고 살아갈때는 어느쪽으로 치우쳤는지 제대로 판달할 수 없다.

고로 역사를 판단하는 것은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이 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 것이고,

판단은 후대의 몫의 남겨두어야 하겠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지금은 우리의 외모와 성격들을 사실적으로 남겨둘 수 있으니, 

후대에 제법 정확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전만 하더라도 왕의 그것 또한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었다.

일례로 세종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어떤 책에서는 육식을 아주 좋아한 임금으로 알려졌었는데,

또 어느 책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고도 하고,

영조나 사도세자, 정조의 외모와 성격, 건강 상태 따위 등에 대해서도 그렇다.

 

정확한 평가, 자세한 기록은 또 다른 이름의 역사이고,

우리는 그 역사를 읽음으로,

갈팔질팡하는 우리가,

헤매이지 않고 가야할 길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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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6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2-13 18:21   좋아요 0 | URL
저는 역사를 암기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 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이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거요. ^^

sslmo 2015-02-16 18:20   좋아요 0 | URL
사관이나, 관점이라는 거...
나로부터냐, 나로말미암음이냐 겠죠?
그래도, 내 인생은 내 입맛대로 살고 싶어요, ㅋㅋ~.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고전의 지혜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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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옛 선인들이 너나 없이 읽은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그동안 그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 내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었고,

그러니 아무리 잘 쓰인 주역서를 읽어도 책이 재미있을리 없었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람이 운명이라는 것을 왜 점 따위에 의지해야 하느냐 하는 거였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고,

차라리 내 자신에게, 내 자신의 가능성에 미래를 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상수 님, 이분께서 이 책에서 천기를 제대로 누설해 주셨다.

이 책은 그러니까 별 다섯개, 열개 따위로는 부족한 책인 것이다.

 

이분이 주역을 공부해온 과정은 주역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깨달아 오는 과정이었단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덕과 지혜였지만,

그렇다면 왜 덕을 쌓고 지혜를 기르라는 책을 쓰지 않고, 점치는 책 '주역'을 편찬했을까?

그것은 부정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어차피 점을 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란다.

그럴바엔 애먼 거북을 죽이고 정인들을 괴롭히는 대신 '주역'에 담긴 덕과 지헤의 틀을 통해 세계를 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을 했을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점의 형태를 띄었다 뿐이지,

주역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행이나 요행을 조장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다.

 

64가지 경우의 수가 나와 있는데, 이게 항상 좋은 얘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적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탁상공론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하면 길할 것이다' 뒤에 숨은 얘기는, 그렇게 못했을때는 흉할 것이라는 경고가 숨어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저 짧은 구절을 읽고 안도하게 되는 것은,

길하면 더 없이 좋지만,

흉하더라도 그게 나혼자만 감당하는 흉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도 한번쯤은 흉함을 당했었다는 무언의 동료의식, 동료애,

내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 임을 짐작할 수 있어서,

사람 사는 세상 다 그렇게 그렇게 '지지고 볶고' 임을 알 수 있어서,

안도하고 위안을 얻게 되는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흉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심기일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지, 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간단히 얘기했지만,

주역에서 유사한 맥락을 찾자면 '동인괘'라고 하여 네가지나 등장한단다.

* 피붙이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어려워질 것이다.

*문잒에 나서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교외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벌판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형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길함에서 흉함까지 낱낱의 상황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일까?

위에서 주역은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고 했듯이,

어떤 실천이 길하고 흉한지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서란다.

 

내가 이 책이 좋다고 설레발 치는 것은 이 같은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발상의 전환만 보인다고 하여,

'내 인생은 나의 것'내지는 '냅둬, 이대로 살다죽게~(,.)' 이랬던 내가 이 책에 혹했을 리는 만무이다.

일단 이 사람이 인용한 '순자'를 나도 인용해 보겠다.

자기가 힘써야 할 일에 힘쓰고 씀씀이를 아끼면 하늘도 그를 가난하게 할 수 없고, 몸을 잘 돌보고 때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은 하늘도 그를 병이 나게 할 수 없으며, 길을 따라 오로지 한 마음으로 걸어가면 하늘도 그에게 재앙을 내릴 수 없다. 장마와 가뭄도 이런 사람은 굶주리게 할 수 없고, 모진 추위와 모진 더위도 이런 사람은 병들게 할 수 없으며, 요괴 잡신도 이런 사람은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순자>의 <천론>

이상수 님은 글을 쓸 줄 아는 분이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다'라고 하지 않고,

'의 운명을 경정하는 것은 의 생각과 행동이다'라고 해서,

독자를 책에 적극적인 사유와 행동, 실천의 주체로 끌어들일 줄 안다.

 

암튼, 이책을 통하여 깨닫게 된 주역이란 이런 것이다. 

점을 부정한다는 것, 미래는 점괘에 달려있는게 아니라는 것과,

점은 비록 한번 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최고통치자가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다시 칠 수도 있었단다...

주역점이라는 것이 만방을 잠 재우고 포용하는 도구일 때는 원칙에서 벗어나 재차 점을 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길한 것과 흉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주역' 책에는 실제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도 있는데,

땅 속에 산이 파묻혀 있는 <겸괘>라든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는 <태괘>같은 것들이다.

자연계라면 이 둘은 아무런 교감도 생기지 않는 불통이겠지만,

'주역'에서는 상징이기 때문에 이런 뒤죽박죽의 상황도 가능하고,

위에 있을것이 위에 있고 아래에 있을 것이 아래에 있다고 하여 길한 것도 아니고,

위와 아래가 뒤바뀌었다고 해서 흉한 것도 아니다.

 

미래가 상반상성과 물극필반의 동그라미 운동을 깨닫게 되면,

공짜로 길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조건 흉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변화의 조짐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복을 짓고, 덕을 쌓는 '행함'으로 까지 이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왕이라면 어떻게 점을 쳐야 하는지 <상서>에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임금님께 큰 의문이 있거든 먼저 임금님의 마음에 물어보고, 귀족과 관리들에게 물어보고, 백성들에게 물어보고, 거북점과 시초첨에 물어보십시오...그렇게 해서

(1)임금님의 마음에 좋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며, 귀족과 관리들이 따르고, 백성들까지 따른다면 이를 일러 크게 하나됨(大同)이라고 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안락하고 자손들은 창성하게 되니, 길합니다.

                                                                                                                                 - '상서'홍범'

라고 되어 있단다.

 

갑자기 그니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수첩에게 물어보려나나?

그렇다면 수첩을 소셜 네트워크 기능이 빵빵하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쉬운 걸로 하나 선물해야 하려나? 

그럴거 없다.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선물하면 되겠다, 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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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8 11:16   좋아요 0 | URL
운명앞에서 주역을 읽다 표지가 왜 서양스타일일까용???^^;;;;

sslmo 2015-02-08 11:22   좋아요 0 | URL
저거, 르네 마그리트 그림 이잖아요~^^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고 그런 `관점`을 잘 표현한것 같아요.

라로 2015-02-09 03:13   좋아요 0 | URL
저도 마그리트 팬이라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이 고정관념에 쩔어 있는 늙은이 눈에는 안 어울려 보여요~~~^^;;;

sslmo 2015-02-09 09:46   좋아요 1 | URL
저 그림의 제목이 `백지 위임장`인가 그렇죠?
르네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는 거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둘다 중요하다.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요.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그러니깐, 저 그림에서 반대로 음양처리된, 삶의 역풍으로 느껴지는 시련도 꼭 시련만은 아니다... 이런 거겠죠?

마그리트의 그림을 넣은 이윤, 삶이란 곧, `백지 위임장`이다... 이런 의미 아닐까요?
외적인 조건은 그저 삶의 역풍으로나 존재할 뿐이고,
나에게 주어진 `백지 위임장`의 내용을 채울 사람은 결국 나`라는 의미.
아, 땀나라~ㅠ.ㅠ

님처럼 한 센스, 한아트 하시는 분께서 고정관념에 쩔어게시다고 하니,
제가 어찌해야할까 몸둘바를 모르겠다는~ㅠ.ㅠ

만병통치약 2015-02-08 13:27   좋아요 1 | URL
주역책에 마그리트 그림을 표지로 쓴게 핵심같네요.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주역이란게 우주의 원리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아닐까요? 황제내경은 인간의 육체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같고요.

sslmo 2015-02-09 09:54   좋아요 1 | URL
님 같은 고수 분께는 댓글에 덧글 달기가 겁이 난다는, ㅋ~.

우와, 멋져요.
주역이 우주의 윈리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라~.
황제내경은 그럼 인간을 우주의 윈리에 빗대어 이해하고 싶은 마음쯤으로 할까요?^^

2015-02-08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5-02-09 10:01   좋아요 1 | URL
전 항상 님이 엄청 부럽고, 항상 속으로 응원하고 했었습니다.

갑자기 생활에 변화가 생기신듯 한데,
작년 울아들이 고3인바람에,
고3엄마놀이를 하느라고 지난해 좀 경황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꾸벅(__)


사람이 종교가 없다는 것 또한 기고만장한 것 같아서 별로이지만,
현대 과학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사주니, 점이니, 미신 따위를 절대 신봉하는 것도,
결코 옳은 일은 아닌것 같아요.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하지요?
그게 젤 그럴듯 한거 같아요, ㅋ~.

단발머리 2015-02-13 10:2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새로운 걸 많이 배우게 되네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읽어도 사실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요.
길한 것과 흉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네요.
댓글까지 꼼꼼하게~~ 많이 배우고 읽고 갑니다^^

sslmo 2015-02-13 16:33   좋아요 1 | URL
우리는 보통 자기랑 성향이 닮은 사람에게서만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시간 안배의 면도 있고,
최선을 택할 것이냐, 차선을 택할 것이냐, 는 개인의 선택에 딸린 문제겠지요.

저도 단발머리님의 글들을 보면서 자극 받던 일들이 떠올라서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