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를 언급하고 지나가야 겠다.

새책을 구입하였는데 책배에서 이런 자국을 발견하게 되면 기분이 나쁘다.
그동안 책의 표지 일부가 부분 부분 찢어져 있거나,
띠지가 파손 훼손된 책을 받더라도,
책을 구입하고 한참 후에 읽게 되는 경우라서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책의 띠지 또한 책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원형의 그것과 다르면 좋을리 없다.
그리고 이 책은 교정을 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탈자가 많다.
문법이나 맞춤법의 오류를 말하는게 아니라,
기본적인 오탈자의 문제는 책의 질을 떨어뜨린다.
누군가는 이런 날 보고 까탈스럽다고 하겠고,
또 누군가는 그러니까 친구가 없고 외로운거라고 하겠지만,
이게 40년 넘게 고수해온 나만의 스타일인걸 어쩌겠는가~--;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난 외톨이였다.
그렇다고 외톨이라는 사실에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일찍이 혼자라는 사실에 길들여지고 적응해서,
나름 혼자인 것을 즐기는,
급기야 혼자놀기의 달인에 이르렀던 것 같다.
다시말해, 혼자인것을 청승맞게 방치하지 않고,
나름 고고한 전위 예술 내지는 행위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은,
(사회성을 유지하며) 삶을 산다는 것은,
매순간순간을 내가 주도적으로 얼마나 잘 운용하여 즐기며 노는지에 관한 문제이지,
그 순간 그곳에서 혼자인지 함께인지, 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외톨이였고 사람들이 유명인사의 변호사에게 흔히 갖는 이미지와도 정반대였다. 어쩌면 그런 점이 아버지를 신뢰하고, 아버지를 인기 있는 협상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침착하고 온화했으며 잘난 체 하지도 않았고 다소 순진해 보일 정도로 실리에 어두웠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따금 아버지의 직장 동료라든지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아버지는 기억력이 비상하고, 묘하리만치 사람 보는 감식안이 있었다. 한번 힐끗 보기만 해도 무엇이든지 기억했다. 과거에 쓴 메모와 편지도 그야말로 줄줄 읊었다. 대화할 때면 마치 노래에 빠져들듯 눈을 감고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했고, 그래서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이며, 그 말을 얼마나 확신하는지, 진실인지 허세인지 정확히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어디선가 배울 수 있는 기술일 테지만 아버지는 내가 아무리 졸라도 언제 누구한테 배웠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속이지 않았다.(37쪽)
이 박스 글의 아버지로 묘사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틴 윈처럼 나도 외톨이다 보니,
여럿이 함께 나누어서 하면 수월한 일들을,
버겁게 혼자서 온갖 공감각을 활용하여 하면서 호젓하고 홀가분하니 좋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는 감식안까지는 아니어도, 선무당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보고 듣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온갖 공감각을 두루두루 활용하여 죽을똥 살똥 노력하였기 때문이지,
틴 윈의 딸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억력이 비상했거나 집중을 잘했거나 머리가 월등히 좋아서 터득한 것은 아니고,
틴 윈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독일 작가에 의해서 쓰여지긴 했지만, 미얀마가 배경인 만큼, 미얀마의 정서가 짙은 소설이고,
미얀마라고 하면 대다수의 국민이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이지만,
과거로 가면 갈수록 점성술, 산파술과 같은 미신적이고 비과학적 신앙에 대한 의존도가 더 심했으리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그당시에는 삶의 시련에 굴복해야 마땅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으면 별자리가 나빠서였으며,
운명은 본인의 노력 여하와는 상관없이 예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요즘의 나처럼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라고 하며 나름 즐기고 살았다면,
독특한 생사관을 가진 까다로운 사람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ㅋ~.
미얀마의 불교가 독특한 것인지, 아니면 옛날의 미얀마의 그것이어서 그렇게 독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술적이다.
본인의 삶을 '운명예정론'이라는 미명하에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그것에 의존하던 그런 시대에,
자신의 삶과 사랑과 죽음 마저도 자신의 뜻대로 운용하고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이 책이 보는 관점에 따라 로맨스 소설로도 분류가 될 수 있겠지만, 한 남녀의 성장소설로 보고 싶은 이유이다.
모든 불신과,
모든 편견과,
모든 선입견의 벽을 허물어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
이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걸 난 다른 말로 '로맨스'라기 보단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은 까닭이다.

30여년을 같이 살던 처자식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하루 아침에 증발해 버린 틴윈을 두고,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인 점을 감안해야 하겠고,
40여 년동안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해 오다 보니(나만의 에고에 갖혀 있다 보니),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어서,
진짜 내 자신이 원하는게 뭔지조차 모르고 있는 나와 비교하여 볼때,
몸이나 마음이 어떤 신호에 반응할라치면 낯설고 두려워 뒷걸음질 치기 바쁜 나와 비교하여 볼때,
오히려 응원하고 박수쳐 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왜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죠?"
ㆍㆍㆍㆍㆍㆍ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렸다고요?"
"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졌어요."
"왜 사랑이 그렇게 어려워야 하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 악이든 선이든 - 이미 갖고 잇는 개념에 비취 다른 사람을 판단하죠. 사랑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에 부합하는 것만 사랑이라고 인정해요.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다른 모습은 불편해하고, 그래서 의심하고 의혹을 품죠. 신호를 잘못 해석하기도 하고. 언어를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그래서 상대를 비난하죠.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하죠. 하지만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이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이에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에요."(296~297쪽)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선무당 노릇을 해도, 그걸 이용하여 맹신하게 된다.
나의 경운, 환자가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를 듣지 않는다.
환자가 하는 말은 참고만 하고,
여러가지 정황과 상태를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하여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 즉 공감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내가 워낙 말이 짧은데다가,
어떻게 해서든 이해를 시키려고 하지않고('내가 뭐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야?'이런 생각을 하는것 같다~--;)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을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생략을 하고 지나가니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과정에서의 환자 입장에서는, 날 상대방의 의견도 귀담아 듣지 않는 돌팔이나 선무당 취급을 하게 된다.
그는 목소리를 귀로 듣지 않았다. 두 손처럼 피부로 느꼈다. 틴 윈은 그저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영혼 또한 그러고 싶었다. ㆍㆍㆍㆍㆍㆍ다시 말해 틴 윈은 소리를 보았다.(140쪽)
"사물의 참된 본질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 긴 침묵 끝에 우 메이가 말했다. "우리는 오히려 감각 기관 때문에 길을 잃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은 우리를 잘 속인다. 우리는 지나치게 눈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거든.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믿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껍데기일 뿐이란다. 사물의 참된 성질, 사물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해. 그런 점에서 눈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방해만 된다. 눈은 우리를 교란시키거든. 우리는 쉽게 현혹된단다. 게다가 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은 다른 감각을 무시하지. 청각이나 후각말고 그 이상의 감각 말이다. 내가 말하는 그 감각은 아직 이름이 없는데, 뭐라고 부를까. 그래 마음의 나침반이라고 부르자꾸나."
스님이 틴 윈에게 손을 내밀었다. 놀랄 만큼 따뜻한 손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동작 하나 하나, 숨소리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 내 경우에는 산만하거나 마음이 어지러우면 감각이 나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든단다.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말썽꾸러기 녀석처럼 나를 골탕먹인다. 예를 들어 마음이 조급해지면 나는 모든 일을 빨리 해치우려고 하지. 그러다 보면 빨리 움직여서 차를 쏟거나 국그릇을 엎지르게 되지. 남이 하는 말도 제대로 듣지 않지. 왜냐, 내 생각이 이미 딴 데 가 있거든. 마음속에서 분노가 아우성칠 때도 그렇단다. ㆍㆍㆍㆍㆍㆍ그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눈이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지. 그러니 인내해야 한다."(149~150쪽)
"두려움보다 강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152쪽)
그런 의미에서, 스님 우메이와 틴 윈과의 대화는 많은 깨달음을 줄 뿐더러,
더 몸을 낮추고 아래로 겸손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틴윈은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이 심장박동 소리 또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66쪽)
암튼 이 책은 사람의 목소리가 각자 다른 것처럼, 사람의 심장 박동소리도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다.
목소리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가능하니,
심장 박동 소리로 신원을 확인하는 그런 시대도 와야 할텐데 아직까지 그런 건 없는걸로 알고 있다.
지문은 이제 구식이 되었고,
눈동자, 홍채를 가지고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고 병도 읽어낼 수 있다.
지문은 그 손가락만 잘라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는 고로,
요즘은 손등의 혈관분포를 가지고 신원 확인하는 방법도 사용하는 걸 봤다.
그리고 임상에 적용하는 예로는 CST라고 하여 두개천골 요법, 수진(手診), 전신조정술, 동종요법 등 여러가지가 있다.
사람의 심장소리를 임상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성의 문제일 것 같다.
심장 박동소리말고도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와 병인을 구분해 내는 많은 편리한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요즘은 심전도검사에서만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윽고 미밍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미밍의 심장 소리를 듣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세상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 그녀의 심장은 다른 사람들의 심장과 달랐다. 더 자주, 더 음악소리처럼 고동쳤다.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불렀다.(174쪽)
다만 이 문장은 작가의 필력과 내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고,
이 심장 뛰는 소리는 한때 볼 수 없었던 틴윈만이 구사할 수 있는 유용한 진단법이고,
미밍의 심장소리 또한 틴윈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치료약인 것이다.
이쯤에서 좀 무거운 얘기를 해야겠다.
우리는 삶을 사는 것과 관련하여서만,
내가 주도적인지를 놓고 얘기하지,
태어나고 죽는 건 나의 의지가 개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태어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이것도 전생 운운하며 업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논외로 하고),
죽는건 나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줄리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물리적으로 멀고 가까운 것은 정말로 그녀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난 그녀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표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종종 궁금했어요. 아름다움과 추함을 결정짓는 것은 코의 크기도 아니고 피부색도 아니며, 입술이나 눈 모양도 아니에요.ㆍㆍㆍㆍㆍㆍ
그건 사랑이에요. 사랑은 우리를 아름답게 해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것도 조건 없이 사랑하는데 추한 사람이 있을까요?ㆍㆍㆍㆍㆍㆍ"(353쪽)
"그래요, 줄리아. 사실이라고 해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설명할 수 없어도 사실일 수 있죠."(387쪽)
다시 말해, 한날 한시에 같이 죽는걸,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보이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고,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때로는 상대를 시험하기도 하고,
사랑은 가시밭길처럼 험난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추한 모습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어렵기도 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그 순간 그곳에서 혼자인지 함께인지, 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멀고 가까운 것은 간절히 원한다면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다고 나 또한 믿는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인지, 는 관건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내고 통과했을때만이,
우린 삶을 살았다 또는 사랑을 했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별자리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181쪽)' 같은 구절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책은, 나를 비롯해서...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만 믿는 요즘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 순간 그곳에서 혼자이더라도,
매순간순간을 내가 주도적으로 운용하여 즐기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강권한다, ㅋ~.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었던게 있는데,
하트(heart)를 어느부분에선 마음, 어느부분에선 심장, 어느부분에선 가슴 등으로 일관성 없이 사용한다.
몸이라는 의미의 반대로 사용될 때는 심장으로,
감정과 관련하여 사용될때는 마음으로,
신체를 머리, 가슴, 배와 같이 구획을 나눌때는 가슴으로 사용하는게 적절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책은 자기 주도적으로 사랑하고 살았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죽음을 택하였다는 점에서,
내게는 무시무시한 책이다.
근간에 보기드문 수작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동안 내가 읽은 책 중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지만,
이 사람의 글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훌륭하더라도,
후속작을 읽겠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지요' 정도로 대답하겠다.
내게는 너무 무시무시한 책이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