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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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아주 좋았어도,

좋아서 감동이 쓰나미로 몰려왔어도,

리뷰로 풀어내려야 낼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책 전에 읽은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를 읽을 때부터 그러하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완전 팬이 되어 버렸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속담에 한마디 보태자면 '아버지도 만들었다'정도가 되겠다.

사실 이렇게 곳곳에 '눈물' 코드를 장착한 책은 예전에도 잘 안 읽었고,

아들 일 이후론 더 안 읽게 되는데,

이 책은 꺼이꺼이 울면서 다 읽었다.

 

책 뒷표지에 보면 소설가 정용준 님이 이 책은 반성문으로 쓰였지만 러브레터나 최고의 시집이 될거라고 했는데,

나도 딱히 반박할 마음은 없다.

 

나는 내 선택이 아닌 선택이 온당하고 바름을 증명해낼 것이고 그 일을 성실히 잘하고 있음을 검사할 것이다. 날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삶은 은근한 지속에 더 가치가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결국 내키는 대로 사는 자가 이룰 일이다. 나는 이 일이 선뜻 내킨다.(53쪽)

이 말은 어찌 읽으면 중의적으로도 읽힌다. 중의적으로 읽어야 뜻이 선명해지고 그의 깊고 융숭한 속이 돋보인다.

 

시인의 어머니가 하셨다는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 두고 두고 되새겼다.

 

이틀 후, 고향에서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마침 술을 마시며 속이 상해 죽겠다고 다소 과장된 몸짓을 곁들이며 떠들어댔다. 주위가 시끄러웠다. 애기 혼자 두지 말고 일찍 다녀. 잘 들리지 않아 밖으로 나온다. 입김이 난다. 하얀 그것이 네온사인에 부딪혀 사라진다. 우리가 계절 앞 입김만도 못하게 느껴진다. 곧 취위 속에 사라질 것이다. 액체. 소량의 눈물. 내것인가? 진짠가? 엄마가 말한다. 왜 우냐. 우린 87년에도 울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면 다 살아지는 법이다.(57쪽)

 

난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시인의 팬이 되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이 구절을 읽고 시인의 어머니에게 무한감동 하였고,

시인이 깊고 융숭한 것은 다 어머니 덕분이지 싶었다.

실은 이 구절이 나 또한 다독이고 다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아니 나는 언제부턴가,

한번 허물어지면 감당할 수 없게 될까봐 온 힘을 다하여 버티고 있었고,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스스로에게 '어떻게든 살면 다 살아지는 법이다'라고 하며 입안에 고이는 침을 눌러 삼키듯 눈물을 눌러 참고 있었다.

 

행복하니? 어머니는 가끔 묻는다. 나는 뭘 그런 걸 묻느냐고 답한다. 어머니는 당신의 손녀가 당신의 아들에게 커다란 짐이 될까 겁나게 무섭다고 했다. 그리하여 내가 불행해질 것 같아 불안해 죽겠다고 말했다. 매일 가는 등굣길을 앞에 두고 차 조심, 길 조심, 신신당부를 하던 보통의 엄마들처럼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그뿐이다.

 

어머니는 해외여행이나 가방이나 등산복을 원하지 않는다(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게 행복을 요구했다. 역시 그뿐이다. 나는 내가 괜찮음을, 아이가 나에게 짐이 되지않음을, 아이가 나에게 괜찮은 존재임을, 아이가 나에게 있어 멋진 선물 꾸러미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를 위해 안방에서 혼자 몇 번 울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그뿐이다.(148~9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존재로 인해 불행해지는 법은 없는 법이라고,

시인의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현명하게도 그 사실을 금방 터득하신 모양이다.

 

난 아들의 부재로 인하여 더 이상 행복할 일이 없음을 쓸쓸히 깨닫지만,

그건 알려드리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사실 저 구절을 읽을 당시에는 '어머니는 당신의 손녀가 당신의 아들에게 커다란 짐이 될까 겁나게 무섭다고 했다'는 부분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거의 끝부분-아버지의 등장 부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뭐~(,.)

 

누군가가 그제는 'Gerald garcia'의 'Milonga'를,

어제는 '헨델'의 '울게하소서'를 권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권해준 음악은 물론 들었고,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하여 이런 음악을 덤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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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4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4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9-01-24 18:2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전 서효인 님을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보지 않더라도 좋은 아들이요, 좋은 남편이요, 무엇보다 은재와 은재 동생에게 최고로 좋은 아빠라는걸 깨닫게 되었달까요.
아울러 매번 느끼는 건데,
모든 글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모두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서효인 님의 글이 그렇듯, 글 속 어머니의 말씀 또한 제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으니까요~^^

카알벨루치 2019-02-01 23:2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명절연휴 즐겁고 행복한 시간되시곷늘 건강하십시오

양철나무꾼 2019-02-02 11: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님도 이제 시작하는 명절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9-02-02 21:49   좋아요 0 | URL
금요일 저녁부터 연휴가 시작되는 분도 계시겠지만,
양철나무꾼님은 어쩐지 오늘 오후부터 연휴 시작하실 것 같아서 주말에 인사드리러왔어요.
양철나무꾼님, 설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양철나무꾼 2019-02-07 10:58   좋아요 1 | URL
연휴 전에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연휴가 다 지나고 댓글에 덧글을 다네요.

덕분에 설명절을 잘 지냈습니다.
조금은 쓸쓸하게 지냈지만,
비비고만두를 넣고 만둣국을 끓여서 먹었는데,
맛났습니다.

님도 원하는 대로 다 이루는 새해 되셔요~^^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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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문집 역시 좋다.

그런데 읽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깊은 상념에 젖게 된다.

오래된 기억이나 감정을 소환시킬 요량이라면 이 산문집만한 것이 없다.

이름은 산문집이지만, 시와 산문, 어머님의 스케치북 그림까지 있는 것이 종합선물세트 같다.

다른 사람의 시에 해설을 덧대고,

다른 시집으로 묶였던 자신의 시들을 불러온다.

한번 읽었던 시들을 다시 읽는 것이고, 한번 봤던 산문을 다시 보는 것인데도...눈물을 찔끔거린다.

펑펑 울지 않고 찔끔거리는 것은 울다보면 어김없이 낄낄거리는 대목을 만나기 때문이다.

맘 놓고 퍼질러 앉아 '엉엉~'거릴 틈을 주지 않는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나왔을 해학이라고 하는 거, 골계미라고 하는 것들이, 적재적소에 버무려져 있다.

 

좋기는 하지만 한번에 내처 읽으라고 권하진 못하겠다.

정수만을 뽑아놔서 그런 것이겠지만,

밀려오는 감정의 후폭풍이 거세다.

찬찬히 아무렇게나 펼쳐서 한꼭지씩 아껴 읽어야 되겠다.

 

제목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를 짐작하게 하는 그의 창작론도 겸손하기만 하다.

나는 감히 말한다. 시는 창작이 아니라 줍는 것이라고. 마트에는 물건이 있지만 재래시장엔 사람이 있다고. 대형 슈퍼에는 충동구매와 끼워팔기가 있지만 오일장에는 어우러짐과 덤이 있다고.(55쪽)

 

한편 한편 골라낸 시 뿐만 하니라 시평 또한 아름다웠는데,

이윤학 님의 '유리컵 속으로 가라앉는 양파'의 시평인 '모든 상처'는 처연해서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박상률 님의 '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는 처음 만나는 시였는데, 돌아가신지 햇수로 9년째인 시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본인의 시 '의자'에 단 덧글의 '자석 브라자'가 정겨웠다.

'엄니 아버지'라는 제목의 글에 등장하는 구절도 좋았다.

지금 당장의 말이 아니라, 먼 훗날에 대련을 다는 품새 때문이다. 어떤 말은 넉달이나 지나서 깨우치고, 어떤 말은 30년 지닌 뒤에 무릎을 친다.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처박는 말이 아니다. 어깨를  툭 치고는 먼 깨달음의 언덕길, 그 길가의 찔레나무 덤불 속에 꽃봉오리를 걸어놓는 넉넉한 말씀 때문이다.(205쪽)

 

언젠가 한번쯤 봤던 시나 산문이 많았는데,

이렇게 묶어 놓으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5부 글짓기 대표선수의 글들 중 내가 그러께 맛을 들린 한창훈 님이 등장해 반가웠고,

내가 예전부터 눈독들였던, 나만 알고싶었던 시인 유용주 님이 등장해서 좋았다.

'개그장이', '반장이니까', '취미는 효도, 특기는 불효' 같은 글들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당연히 가장 좋았던 건 6부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어머니 스케치북을 본다' 꼭지이다.

그림이 하나같이 예쁘고 꾸밈이 없다.

미술 장학금으로 대학을 갈뻔했던 시인의 그림솜씨는 아무래도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것 같다.

좋다.

이래 저래 책에서 위로받는 요즘이었는데,

요즘 여러가지 의미에서 의로가 될 책들만 찾았는데,

이 책은 또 다른 의미로 위로가 된다.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라고 이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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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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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주변에서 접하고 한번쯤 생각해본 명제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비틀어 꼬집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의 고착되었던 사고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생각의 전환을 갖는 방법으로 사유를 확장시킨다.

 

나는 그동안 일반론을 당연시하며 세상을 살아온 구태의연한 사람이어서인지,

처음진입하기가 좀 힘들었다.

차차 적응되어 그의 문체에 익숙해지자,

반어법과 비틀어 쓰는 그의 깊숙한 진심이 읽힌다.

 

일상에서, 학교에서,사회에서, 영화에서, 대화에서 라는 소단락의 주제에 맞게 묶인 내용들이 하나 같이 재밌게 읽혔다.

어느 하나 구태의연하지 않았고, 예상된 결말로 흘러가지 않았다.

문체도 통통 튀는 것이 경쾌했다.

다만 그의 모든 글들이 반어법을 사용하고 비틀어 애기하는 기법으로 쓰여 있어,

나도 그렇게 삐딱하게 읽은 것일테지만,

세상을 그렇게 읽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정도이지,

나도 강하게 동의한다고 하긴 힘들었다.

 

'영화에서' 코너가 좀 잘 읽혔는데,

홍상수의 그것은 좀 불쾌했지만, *표 주에 2003년 9월 '현대문학'에 실린 글이라고 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맨헌터', '양들의 침묵', '한니발'로 이어지는 한니발 렉터에 대한 글은 흥미로웠다.

난 이 시리즈를 책으론 읽었는데 영화로는 보지 못해서 이 영화평에 호의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프롤로그의 이 구절이 인상 깊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꺘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8쪽)

마찬가지로 에필로그의 이 구절 또한 여운이 길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야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와 닮은 전도연 씨. 이건 불장난이 아니라 오독을 피하려는 구마 의식이랍니다. 글에서 읽고 싶은 것을 읽는 것은 저자가 어찌할 수 없는 독자만의 특권일 터. 책을 출판하면, 둑자들이 너무 그럴싸한 메시지를 책에서 읽어낼까 두렵습니다.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없죠. 저는 차라리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큰 고통 없이 살아가기를 원해요.(340쪽)

 

책의 마지막에 '신동아(2018년 11월호)' 송화선 기자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옮겨본다.

각자 다르게 사유를 확장시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책을 읽는 이유만은 나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그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만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질까. 한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단면을 조명한 영화를 본 뒤라 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적어도 각자의 삶은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아니, 즐겁기보다는 풍요로워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적어도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김교수의 답이다.(338쪽)

 

거침이 없지만,

나와는 생각이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던,

그래서 고여있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게 해준 자극적인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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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21 21:51   좋아요 0 | URL
인용하신 마지막 문장 마음에 들어요.
많은 것들이 저의 오늘과 내일을 조금 더 따뜻하고 즐겁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소소한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는, 오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씩 서로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 같은 책도 있으니까요.^^;

양철나무꾼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양철나무꾼 2019-01-23 09:35   좋아요 1 | URL
저 문장 말고도 매너리즘에 일침을 가하는 문장들이 많아요.
당신을 결혼했으면서 ‘결혼하고 말겠다는 이들을 위한 세가지 주례사‘ 같은 칼럼은 완전 아이러니컬해요.
맞아요, 책이 없는 삶, 음악이나 영화가 없는 삶...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삶이 무미건조해지겠죠.
오늘은 봄날 같아요, 내마음도 님의 마음도 그러했으면~^^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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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분이 이 동네에서 후와 님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울때,

그 분의 서재를 방문하여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들을 읽고 댓글을 남기곤 하였었다.

어느 날은 지하철의 시 한편을 인용하면서 집에 가서 어머니 저녁밥을 지어야 한다는 코멘트를 남기셨다.

그 글을 보고 난 '효녀 후와 님'이라는 댓글을 남겼더니 성별을 정정해 주셨었다.

어쭙잖은 호기심에 저녁밥을 짓는다는 말만으로 성별을 '여자'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지만 표현하지는 못 했었다.

 

그런데 리뷰 소설이라는 이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발견했다.

병원에서나, 어머니를 부축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의원을 오가는 길목에서나,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이구 효자 아들을 두셨네요"라며 말을 건네곤 했다. 처음엔 칭찬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이 말은 말하자면 사회적 은어인 셈이었다. 저런 인간들을 효자나 효녀, 효부라고 칭하자. 그래야 우리 맘이 편하니까.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를 간병하는 건 착한 아들이나 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게 만들려는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부모와 자식 간에 개인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103쪽)

 

소설 속의 상황이 저때쯤이었을 것 같은데,

저 구절을 읽다보니 미안한건 성별을 오해한거 정도로 끝나는게 아니라,

효자라는 굴레를 씌워버린 것 자체를 두고 정중하게 사과할 문제임을 알겠다.

나도 효녀나 효부 따위의 사회적 은어의 무게에 허리가 굽고 무릎이 꺾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책에는 이런 구절도 등장한다.

어머니가 아팠고, 집이 아팠고, 내가 아팠다. 내 아픔만 티가 나지 않았다. 티가 나지 않는 아픔처럼 골치 아픈 아픔도 드물다. 마흔이 넘을 때까지 입에 대지도 못하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홀짝홀짝 들이켰지만, 나중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투명한 소주잔에 조용히 술을 부었다. 생각없는 기계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105쪽)

 

나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깊이 공감하겠다.

아들을 잃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아팠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못했고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멍때리고 있기 일쑤였다.

나는 괜찮은데(괜찮은지 어떤지조차 모르는데)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상황을 거칠게 설명하면 그제서야 수선스럽게 호들갑을 떨었고,

그게 상처를 헤집어 놓아 아팠다.

처음엔 통증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는데,

꿀잠은 덤으로 따라왔다.

 

오래전 우울감에 시달릴 때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책을 찾아 읽으셨다는데,

이 책엔 다양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곳곳에 인용되고 재편성된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작품들이 이 소설을 통하여 해석되었고 그리하여 한걸음 바짝 다가왔다.

 

재밌게 읽지는 못 하고 아프게 읽었지만,

우울할때면,

아니 팬텀 사인처럼 나의 어딘가가 아파올때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나의 어디에도 없는 그 상처를 이 책은 어루만져 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너무 늦게 깨달아 미안하다는 말은 시기를 놓쳤지만,

이런 책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그 어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책보다 제대로 위로가 되었다.

 

이 구절을 옮겨보며 이 글을 끝맺어야겠다.

다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행복'은 '사랑'과 달라서 내가 온전히 주도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다'는 동사여서 주어인 내가 그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온전히 주재할 수 있지만, '행복하다'는 형용사여서 주어인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나는 다만 그 '행복한' 형용, 즉 행복한 그림 안에 들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땐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사랑과 달리 행복은 내가 추구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상태를 누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196쪽)

 

사는 동안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길 수는 있어도 또 다시 행복하긴 힘들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구절을 읽으며 행복할 순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있는 동안 마음껏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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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1-18 15:15   좋아요 0 | URL
저도 후와님 글 좋아했었고 이 책 역시 보관함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양철나무꾼 2019-01-19 08:3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계실때도 후와님 글은 여전히 좋았었죠.
이 책은 읽는 동안은 좀 슬프고 아팠지만,
읽고나니 묘하게 위로되는 느낌이었어요.
님도 그러하실 수 있을 듯~!^^

2019-01-18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9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9-02-01 10:16   좋아요 0 | URL
후와 님이 쓰신 책이군요.
저도 그분 글 좋아했었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양철나무꾼 2019-02-02 11:10   좋아요 0 | URL
사실 엄청 위로받긴했지만,
셰익스피어니 그의 작품들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좀 겉도는 부분도 있었는데,
님이라면 충분히 좋아하실 수 있을 듯~^^

그나저나 명절 잘 지내세요~!
 

책을 읽다가 작가에 필이 꽂히면 그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은 물론, 그가 좋다고 한 책도 일단 사들이고 보는 경향이 있다.

'서효인+박혜진'님의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의 서효인 님이 그랬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 헐렁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골라 잘 차려진 소박한 한끼 밥상을 선물받는 느낌이었다.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서효인.박혜진 지음 / 난다 /

 2018년 12

 

사실 난 다른 사람이 쓴 독서일기나 서평집 따위 보는 것을 즐기지만,

그 독서일기나 서평집을 통해서 내가 읽거나 또는 읽지 않을 책들을 골라내는 건 쉽지 않다.

하긴 나만 하더라도 별로인 책을 향하여 '별로'라는 평을 남기는 건 웬만해선 조심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 책을 만드는데 공들인 사람들과 베어 넘겨진 나무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의 박혜진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거다.

속으로 백만번의 땡큐를 날려드리고, ㅋ~.

그 책 재미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신뢰하는 독서가가 곁에 있어서 좋은 건 훌륭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보지 않아도 될 책을 걸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효인 선배가 ***을 읽고 가볍게 한마디했다. "이 책은 안 봐도 될 듯."(235쪽)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다.

전지현 님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전지현 지음, 순두부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2월

 

웹서핑을 하다가 필이 꽂히면 책을 들이는 편인데 책의 상세 정보 따위를 살피는 일은 거의 없다.

책 소개를 보고 일단 재밌을 것 같아서 들였는데,

실물을 받아보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가 12000원짜리 책인데, 책의 크기도 작고 얇다( 176쪽 짜리).

책 제목 아래 부제를 보면 '여덟 해 동안 만난 일곱 의사와의 좌충우돌 현재진행형 우울증 치료기'라고 되어 있는데,

내용을 보면 8년의 세월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뜨문뜨문이고,

일곱 의사라는 것도 한의사와 내과의사, 지금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에 이르기까지 버라이어티하기도 하다.

뭐랄까, 난 좀 자세하고 깊이있는 무엇인가를 원했었나 보다.

 

좀 자세히 읽다보니, 초창기엔 이분한테 맞는 의사를 만나지 못해서 설렁설렁한 느낌이 들었던 거고,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밀도도 있고 안정적인 책이 된다.

그렇게 만난 세 번째 의사는 학원 친구 같았다.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동질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오히려 적당한 물리적 거리감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는 그런 친구.

이 의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춰 진료를 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당뇨나 고혈압을 생각해보세요. 평생 약을 먹는다는게 이상한가요? 약을 먹어도 치료되지 않는다며 병원을 거부하나요? 아니면 병을 숨기나요? 오래 먹어도 괜찮다는게 입증된 약들이에요. 비타민 드신다고 생각하세요. 몸에 좋다는 건 다들 고민 없이 잘 챙겨들 먹잖아요."(81쪽)

 

148쪽 밑에서 셋째 줄의,

애긴데-->얘긴데

 

이쯤에서 고백해 보자면,

내 서재의 이름인 'insure safety distance'는 내가 이곳에서 적당히 물리적 거리감을 느낀다는 의미로 지었다.

거기서 내가 편안함과 위안을 느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익명성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라딘 서재 이곳이 좋은 것은,

책으로 '연결'되었다는 소속감이 좋은 것이고,

힘들어할때 수선 부리지 않고 조용히 의지가 되어주시고 손 내밀어 잡아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럼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대기 중인 책은 김정선 님의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이다.

해답을 찾을 순 없어도 위로가 되어줄 수는 있겠지.

 

아참참, 우리 아들과 이름이 한 끗 차이인 이정록 님이 수필집을 내셨나 보다.

난 이정록 님의 경우 시보단 수필을 애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번 책엔 내가 왕애정하는 시인 어머님의 그림이 등장하나 보다.

어젠가는 상품 준비중이더니,

오늘은 나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나 보다.

이제 받아서 재밌게 읽을 일만 남았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0월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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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9-01-17 15:50   좋아요 1 | URL
저도 별로인 책은 별점을 매기지 않거나 아예 리뷰를 남기지를 않고 조용히 되파는데요. 가끔 북플 벗님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원스타 투스타 리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합니다. 그럴땐 소심하게 좋아요 누르고 사라지죠.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9-01-17 16:03   좋아요 2 | URL
전 예전에 별 하나도 주기 싫었던 책인데 별 하나를 줬더니,
저자는 가만 있었는지 어쩐지 모르겠는데,
문하생들이 악플을 달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얼마 있다가 확인해보니 제 리뷰가 블라인드 처리된것인지,
제 서재에서조차 삭제되어있더라구요.
암튼 그런 일이 있은 후론 책이 별로이면 별점을 매기지 않아도 좋은 페이퍼로 돌려버립니다.
님과 저 찌찌뽕이었네요, ㅋ~.
저도 원스타 투스타 리뷰 통쾌할때가 있거든요~^^

2019-01-1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9-01-17 16:12   좋아요 3 | URL
맞아요, 알라딘이 책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예요.
저 예전에 다른 인터넷 서점에, (인터파*)에 잠깐 잠깐 리뷰를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곳보다 더 간단하게 100자평 정도로 쓰면 되는데,
그게 되게 공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느껴졌어요.
알라딘 서재 이곳은 거기에 비하면 내밀하고 친밀하죠~^^

저도 주변에 책얘기 나눌 분 없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어르신들은 책읽기를 포기하시고,
저희 남편만 하더라도 저랑 독서취향에 교집합이 없습니다~--;
그래서 책 얘기 맘껏 할 수 있는 이곳이 좋습니다~^^

쎄인트saint 2019-01-17 16:19   좋아요 0 | URL
살아가며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저는 다른 인터넷 서점 블로그 대문에 이런 글을 남겼지요.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애틋한 사랑을 만남과 같다.” 사실 내가 불러서 오는 책들보다, 나를 일부러 찾아온 책들은..“너 참 못생겼다. 종이가 아깝다. 나무가 불쌍하다.”하기 참 힘들어요. 어떤 땐 아예 그 책을 리뷰는커녕 조용히 다시 종이로 보낸 적도 있습니다(아주 가끔). 아무리 못 나도 예쁜 구석을 찾아보려고 애쓰기도 하구요. 그러나 권책가(勸冊歌)는 안 부릅니다. 못 부르지요. 책과의 만남도 福不福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양철나무꾼 2019-01-17 16:31   좋아요 1 | URL
네, 살아가면서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복이지만,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온라인이 됐든 오프라인이 됐든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좋은 책을 권해주긴 쉽지만,
별로인 책을 가려내주는건 쉽지않은 일이겠지요.
그래서 저 책의 박혜진 님을 보면서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애틋한 사랑을 만남과 같다.” 라 완전 멋집니다.
김탁환 님이 쓰신 ‘열하광인‘이었나(?) 하는 책에 보면 명은주라는 여자가 저렇게 책과 애틋한 사랑을 했었는데 말이죠~^^

이박사 2019-01-17 18:10   좋아요 0 | URL
저도 서효인X박혜진 님 책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안 봐도 될 듯˝이라는 말이 참 부럽네요.

책 이전에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말 같아서.

양철나무꾼 2019-01-18 09:32   좋아요 0 | URL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한번씩 맥을 짚어주는 장르소설 리뷰(?) 100자평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이 책은 안 봐도 될 듯˝이라는 말 속에 참 많은 배려가 담겨 있죠.
저는 박혜진 님이 완전 부럽더라구요.
서효인 님이 소개하신 책들 뿐만 아니라 서효인 님의 책들을 다 들이는 중입니다~^^

서니데이 2019-01-17 19:37   좋아요 0 | URL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나 상품소개란이 잘 되어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실물을 확인하고 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사도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책도 있기도 합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겠지요.
잘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9-01-18 09:44   좋아요 1 | URL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을 반반씩 이용했던 것 같은데,
이젠 온라인 서점만, 그것도 알라딘 서점 한곳만 이용해요.
그래도 산 책을 또 사고, 선물 받고...똑같은 책을 4권까지 들여봤습니다, ㅋ~.

가끔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확인하고 사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일부러 가게 되진 않네요.

오늘은 어제완 다르게 포근하고 따뜻한거 같아요.
님 따뜻한 댓글 덕분에 하루를 경쾌하게 시작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