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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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가 다상담이라는 제목의 강연과 책으로 인간사 생노병사, 사랑, 지지고 볶고,모든걸 다 두루섭렵하여 상담을 하시더니, 이번엔 감정수업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셨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이런 제목의 책을 냈다면,

엄청 산만하고 방대해서 하나로 아우르지 못했을테고,

그래서 나는 '이 뭥미?'하고 툴툴거렸을 텐데,

내가 강신주를 그동안 애정하기는 애정했었는지,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내게로 한줄로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고독한 사유주체'라는 걸 발견하자마자, 근대철학에서 '타자와의 소통'이란 문제가 전면으로 대두되었다고 한다.

스피노자처럼 기쁨과 슬픔은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한 철학자가 있었는가 하면,

라이프니츠처럼 타자와의 소통은 불가능하며 동시에 불필요하다고 한 철학자도 있었다.(강신주의 '철학VS철학'인용)

 

근데, 강신주가 누구인가?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으로 논문을 쓴 사람이고,

대중과 소통하고자 상아탑에서 벗어나서, 대중이 알아듣기 쉬운 저술 활동과 문턱을 낮춘 강의들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무려 철학박사' 아니겠는가 ?

 

그런 그가 스피노자를 들고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존재이지만,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던 철학자가 있는가 하면,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이성적으로 발휘하고자 했던 철학자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강신주가 하는 얘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고개를 주억이며 수긍하게 될때도 있지만,

그의 저변이나 전작을 읽지 못하였다면 '뭐, 이런 넘이 다 있나?'하며 열변을 토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를 놓고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어쩜,

그가 양극으로 치닫는 극단적인 충격 요법을 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열고 소통을 간절히 원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몇몇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모든 사람을 다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잘 하고 있는 사람은 잘 하니까 된 것이고,

아무리 말해도 소귀에 경 읽기인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과감히 포기해 버린다.

그가 대상으로 삼는것은,

너무 바른 생활을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

착하게 곧이 곧대로만 숙맥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다보니, 직설법으로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전후 사정에 대한 파악없이 그냥 받아들이려고 하다보면 그래서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정말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교리이고 불문율인 셈이다.

그들이 하루 빨리 세상의 때가 묻어 덜 순수하고 덜 순진해지길 기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강신주가 하는 얘기들을 둥글리고 완화시키고 미화시켜 미사여구가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래야 되는건지,

그것도 아니면 강신주보다 더 쿨한 구루가 나와서 강신주의 수위 정도야 별거 아닌게 되길 꿈꿔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에 언급되고 있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어본것도 아니고,

에티카를 인용하며 나오는 다양한 감정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느껴본 것도 아니고,

소개되는 책들도 읽은 것과 안 읽은 것 반반 정도 되는 것 같고,

그림 또한 본적이 있는것, 처음보는것의 비율이 2;1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526쪽이나 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48가지 감정을 다 구분하여야 겠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다시말해, 나에게 어떤 감정이 오면...

그 감정이 나를 충실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오픈시켜 받아들이자는 거다.

벽은 타인과의 소통에만 장애물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것도 굴절시킨다.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나 자신의 벽이나 경계 먼저 허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내 자신의 명확한 가치관이나 에고를 갖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유약한 감정을 가진, 우유부단한 사람이란다.

강신주는 '프란츠 카프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ㆍㆍㆍㆍㆍㆍ카프카는 소설가로서도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원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쓴 원고를 펼쳐 볼 생각도 안 했다고 한다.

ㆍㆍㆍㆍㆍㆍ하지만 '영원한 아이' 카프카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지인의 집에서 자신이 들고 온 꽃다발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어느 색깔의 꽃을 골라야 할지 몰라 너무 여러 색의 꽃을 섞었다고. 또 카프카는 사랑에 자주 빠졌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불평했다. "나를이해해 주는 사람, 예컨대 연인을 갖는 것은, 신을 갖는다는 뜻이리라."(255쪽)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감정과 책의 인용이 좀 잘못되지 않았나 싶었던 부분이 있는데,

어쩜 잘못된게 아니라, 감정의 해석을 내가 잘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질투(invidia)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라고 말하며 알랭 로브그리예의 소설 '질투'를 예로 든다.

화자의 아내와 이웃집 남자가 시내에 나가 하룻밤을 보내고 온 것을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질투 때문에 화자의 내면이 산산이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투는 화자에게 이미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증발해 버린 예기치 못했던 건강한 긴장을 가지고 온다고...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한 긴장 정도를 가져오는 것을 난 '시샘'정도로 대치했으면 좋겠다, ㅋ~.

 

개인적으로, 난 이 책의 <철학자의 어드바이스>코너가 가장 좋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 말이다.

말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하하!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이 함께 이야기할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대화를 할 만한 사람이면 계속 이야기하면 되고, 불행히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과 헤어지면 된다. 식사도, 운동도, 여행도, 영화 관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좋은 것은 다른 것이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욕정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허락한다는 조건에서 기꺼이 섹스를 시도하라! 그 순간 우리는 그가 지속적으로 정사를 나누면서 그 외의 것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섹스는 사랑의 완성이나 결실이 아니다. 그건 단시 사랑이 시작되는, 혹은 사랑이 진척되는 한 가지 계기일 뿐이다.(338쪽)

상상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한다.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선 혼자 상상만 해선 안된다, 행동으로 보여주든지, 함께 행동을 해야 하는게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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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7 10:44   좋아요 0 | URL
마음을 열면 모든 책이
내 마음밭에서 푸른 나무로 우거져요

sslmo 2013-12-30 09:45   좋아요 0 | URL
마실도 뜨문뜨문이고,
댓글의 덧글도 뜨문뜨문인데,
항상 제 글에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시는 님, 감사해요.

새해에는 님처럼 부지런을 내볼까 하다가도,
엄두가 안나서리~ㅠ.ㅠ

아무개 2013-12-17 10:45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연민과 박애란 감정에 대해 제가 좀 혼란스러워 했었는데,
이제 좀 정리가 되는거 같네요.

강신주씨 쉽게, 알아 먹게 글 잘써주는거 참 좋아요.
하지만 강신주처럼 살라면 못 살것 같습니다.
너무 외롭고 힘들것 같아요.....

sslmo 2013-12-30 09:52   좋아요 0 | URL
그의 다상담3권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그 또한 엄청난 트라우마로 똘똘 뭉친사람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런 그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걸어나와,
이렇게 우리 같은 사람을 상대로 쉬운 강의를 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저도 결코 그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는~--;

차라리 김어준처럼,
'그래 나 동물이야...어쩔래, 꼬우면 배째?'
가 속편할 것 같다는, ㅋ~.

동물은 생각 따위를 하고 살 필요가 없다잖아요.

한해가 또 이렇게 저물어 가네요~^^

하늘바람 2013-12-17 12:14   좋아요 0 | URL
저두 읽어야겠네요
닐 님따라쟁이 될테야

sslmo 2013-12-30 09:57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가 되는거야 님의 자유지만요~,
제가 그렇게 건설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해서리~ㅠ.ㅠ

저는 오히려,
좋은 책도 내시고,
남매도 이쁘게 잘 키우시는 님이 무한 부러울 뿐이고~(,.)

세실 2013-12-17 14:11   좋아요 0 | URL
이책 구입해놓고는 바라보고만 있어요^^
연말이 가기전에 읽어야겠네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 ㅎ

sslmo 2013-12-30 09:58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에서 세실 님도 멋져보이세요.
늘 마음 움직이는 대로 쿨하게 사는것처럼 보이거든요, ㅋ~.

같은하늘 2013-12-18 00:32   좋아요 0 | URL
여전히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항상 책과 가까이 하시고 이렇게 좋은 글도 남겨주시고...
오랜만에 들려 좋은 마음 담고갑니다. ^^
이 책 저도 곧 읽어야겠어요.ㅎ

sslmo 2013-12-30 09:59   좋아요 0 | URL
같은 하늘 님,
정말 오랫만이네요.
반갑다~, 와락~(( ))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8 05:09   좋아요 0 | URL
전 덥썩 에티카 사놓고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못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으 입문서로 해서 다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sslmo 2013-12-30 10:0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에티카 중에서,
48가지 감정부분만 끄집어내어,
책과 그림과 얽어낸거라서,
입문서로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다만 곰발 님처럼 그렇게 섬세한 감성을 지닌 분이라면,
(그간 엿본 님의 글에 미루어~)
강신주에게 따로 감정수업을 받을 필욘 없지 않을까 싶다는~--;

다크아이즈 2013-12-18 07:15   좋아요 0 | URL
인간유형을 세 가지 정도나 분류하면 할 말 없을 것 같았는데,
무려? 48가지 얼굴로 분류했으니.. 제 얼굴은 어디에 넣으면 좋을지 따라가 볼게요.^^*
아침부터 신나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sslmo 2013-12-30 10: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건 일정부분 우리나라의 교육과 문화적인 부분의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너무 감정표현이 서툰 시대를 살아왔으니까요,
부디 그 감정표현이 우리 아이들 대에는 대물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노력하고는 있는데,
감정표현하고 사는것,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 생각만큼 쉽지는 않네요~.

2016-03-19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나의 책수다는 라디오 북클럽 얘기로 시작이고,

방현주는 이권우의 '여행자의 서재'로 시작을 했으며,

이권우는 김두식의 '다른 길이 있다'를 소개했는데,

나처럼 책밭, 책탑, 책무덤에서 노는 사람도 오늘 소개했던 '김두식'의 '다른 길이 있다'는 생소해서 귀를 기울이게 됐다.

듣다보니 한겨레 토요일판에 연재되던 김두식의 인터뷰들을 묶어낸 것이더라는~^^

 

 

 

 

 

 

 

 다른 길이 있다
 김두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암튼 내가 오늘하려는 얘기는 이권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거다.

실은 얼마전 '여행자의 서재'를 읽으면서 '죽도록 책만 읽는'이나,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에서 느껴지던 달인의 느낌이 들지 않길래 나의 그의 대한 애정이 예전만 못한건가, 아님 그의 책에 대한 애정이 예전만 못한 건가 했었는데,

오늘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가 수박겉핥기 식의 책읽기를 박학다식한것처럼 위장한게 아니었었나 하는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었다.

"이 뮝미?@"하고 나를 잠시 화딱지 나게 만들었던건,

책 속의 내용 중 고미숙 편을 소개하면서 연암에서 동의보감, 거기서 넓혀 사주명리로까지 관심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방현주 아나운서와 나눈 대화 때문이다.

명리학을 일컬어 길흉화복을 점치는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학문이라고 하는 고미숙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수의 기질을 타고나면 유머러스하지만 꼼수를 부리게 되고, 토의 기질을 타고 나게 되면 식욕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자,

방현주가 저는 "목인데요, 그럼 목은요?"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이권우는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안나와있어요."라고 퉁쳐 버린다.

되새김질해 생각해보니,

수와 토의 기질이면 연암과 다산을 라이벌 구도로 그렸던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를 얘기한 것일테고,

이권우가 읽은 김두식 책의 고미숙 부분에 수와 토의 기질 외에 다른 기질에 대한 설명이 안 나와있다는 것이지,

그동안 수많은 책들을 읽고 서평을 쓴 그가 '오행'정도를 못돌려서  '풍'의 기질 정도를 모르고 설명할 수 없어서 안나와 있다고 한 것은 아닐게다.

단지 그가 소개하려는 책과는 상관없는 얘기로 짧은 시간을 잡아먹고 싶지 않아서라는 걸 눈치채게 되자,

그의 내공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나또한 반달 눈썹을 만들어가며 '역쉬, 멋져~^^'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어디까지가 잡담이나 수다이고, 어디까지가 방송인지 모르겠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수위를 적절히 조절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6월

 

이렇게 수위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게 또 있는데, 요번엔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이제는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이 번역을 하고,

그리고 서평집을 여러권 낸 작가로 유명한 라디오 PD 정혜윤이 강추한 책인가 보다.

 

 

 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근데, 이 책을 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걸 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품이 훌륭한 '문학동네'와 '고종석'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이런 책이 되어 나왔을 수 있었을까?

이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죽음에 관한 푸념이나 읊조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다가 여든 둘 할머니의 서른 다섯 연하의 애인을 상대를 향한 그것이어서 상품가치가 있었을게다.

글로 쓰여진 모든 것이라고 해서,

종이에 적혀진 글이라고 해서 모두, 책이라고 해도 좋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서른 다섯 연하의 애인을 두고라면 더 더욱 그럴 수 있겠지만,

암튼 난 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가 난 저 '두 손의 아름다움'이란 구절을 놓고 엉뚱하게,

영화 '박하사탕'의 '손이 착하게 생겼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우리는 눈에 익은걸 아름답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성형외과를 영어로 '플라스틱 서저리'라고 하는데,

난 그말이 꼭 인조인간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ㅋ~.

요즘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웬만한 눈썰미로는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알게 모르게 성형외과 동창생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겉으로 봐서 그렇고 그그렇게 비슷한 아름다운 사람들을 구분하는건, 아름다운 마음, 즉 착한 마음일텐데...

요즘은 착하다고 하는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란다.

그럼 영화'박하사탕'에서 '손이 착하게 생겼던 남자'는,

마음이 착한데 착하게 생긴 손으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남자를 편들고 위로하기 위해했던 말인가 보다.

여기서 '손이 착하게 생긴'은 '손이 아름답게 생긴'으로 대치되어도 좋겠다.

그리하여 '손이 아름답게 생긴'은 '손이 이쁜 남자'와 동격이 되어 내가 입에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리는 딱 내 스타일 되시겠다.

 

얘기가 이리저리 메뚜기 튀듯 엉뚱한 데로 튀지만,

엉뚱한 데로 튀는 게 내 주특기이고,

가만히 곱씹어 보면 아주 엉뚱하지만도 않다.

 

눈은 또 다시 비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여러가지 할 일들로 머릿속만 분주하고,

엉덩이는 땅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오늘 같은 날은,

(뜨뜻한 아랫목에서 군고구마 먹으며 책이나 보는것이 나의 희망사항 되시겠고)

눈싸움 한판을 벌린다아, 으다, 아다~아다, 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아

하늘이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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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3-12-16 17:17   좋아요 0 | URL
걱정마세요. 전 성형외과 동창생은 아니에요. 제 동창은 찾기가 힘들거에요. 제가 그래도 이런 건 자신있게 얘기할 수가 있네요. 하하하하
전 항상 엉뚱한 생각이 꼬리에 이어집니다. ㅋ 라디오 북클럽이라 그런 것도 있군요. ㅎ
양철나무꾼님은 여전히 책과 책 속에서 사시네요 ㅋ 부러워요 ㅋ 리뷰도 쓰시고 ㅎ

sslmo 2013-12-17 10:34   좋아요 0 | URL
'부러워요'가 앞의 말과 호응인가요, 아님 뒤의 말과 호응인가요?
책탑에 갇혀 사는 제가 부러우시면,
빨랑 왕자님이 되어 나타나 절 구해주시면 되고,
리뷰도 쓰는 제가 부러우시면, 전 양보다 질로 승부하시는 교주님의 리뷰가 부러울 따름이라는~--;

다크아이즈 2013-12-16 20:52   좋아요 0 | URL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양철님의 서재에 오면 믿고 고를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
아니 제 기준에는 넘쳐난다는 것. 어떤 걸 골라야 하나 즐거운 고민. 다 살 순 없으니^^*

sslmo 2013-12-17 10:38   좋아요 0 | URL
어쩌죠, 팜므님~--;
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가 좀 어려워서 읽다 팽개쳤다는~--;
제가 팜므님 서재에서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얼마나 고민을 하는지 아실랑가 몰러~(,.)
 

카피를 써서 먹고 살았으니 내게 글은 쌀이고 카피는 밥이다. 그러나 글을 씻어 카피 짓기를 멈추고 말하기, 가르치기 같은 천렵과 낚시에 넋을 판 지 오래, 아궁이 느리게 치우고 옛 기억 더듬어 불 피우고 거친 글을 씻어 책을 지었다. 밑이 보이는 쌀독을 기울여서 무딘 손이나마 계속 먹거리를 지으라고 다그쳐주는 인생이 고맙다.

ㆍㆍㆍㆍㆍㆍ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 깨닫는다. 밥의 맛은 씹어서 입안에 퍼지는 것만이 아니라 오래 지켜온 아궁이의 온기, 열망이 세월의 장작과 어우려져 타올라 뿜어내는 부엌의 훈내 그것이 모여 만든다고. 쟁여놓은 쌀독 다 털어 여한 없이 지었으니 열심히 살아 마음곳간 채워야겠다. 모른다는 말이 편안해지는 데 사십 년이 걸렸다.

                                                                  - 윤수정의 '한 줄로 사랑했다'의 '나오는 말'중에서 -

 

 

 

 

 

 

 

 

 

 

 

 

 


'맹난자'의 '주역에게 길을 묻다'를 집어들었는데 그만,

주역에게 잠을 물었는지 침을 질질 흘리고 졸다가 안되겠다 싶어 집어든 책이,

카피라이터 윤수정의 '한 줄로 사랑했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유를 하면 어떤 책에게 미안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맹난자는 너무 어려웠고, 윤수정은 겉도는 느낌이었다.

맹난자는 서너 번째 읽기를 시도하는데,

번번히 길을 구하려다가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 뭐라고 할 말이 없어주시고,

윤수정의 '한 줄로 사랑했다'는  글은 좋았다.

매 꼭지꼭지 글은 뛰어났고,

감성은 빛났으며,

명 카피라이터답게 제목으로 뽑은 한줄 한줄은 시처럼 반짝였다.

근데, 한데 어우러지지가 않았다.

물론 그간의 카피를 갈무리해놓은거니까 어울리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용만이 아니고, 본문의 그림들도 통일성이 없이 다 따로따로이다보니,

책이 산만하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글마저 산만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 본문 디자인, 그리고 본문에 들어간 그림이 다 다른 사람의 작품 같은데,

영화 한편 만큼의 짤막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니까,

적어도 본문의 디자인과 거기 들어간 그림이라도 어떤 통일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하나 하나 떼어놓고 봤을때는 다 훌륭해서 빼어날 것 같은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들쑥날쑥 어째 좀 이상해져 버렸다.

모두가 나같이 생각하지는 않겠지 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누군가가 삼겹살 굽는 법도 가지가지라며,

그걸로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한참 설명을 하였다.

손하나 까딱 안하는 공주형, 왕자형은 차치하고,

고기가 익든 말든 수수방관하는 타입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단다.

그리고 고기가 익을까 무섭게 뒤집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배려해서 그런게 아니고 재 성질을 못 이겨서 그런거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기를 열맞춰 가지런히 올리고 자르고 뒤집고 하는 사람은 편집증이 있는 사람이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첫번째와 세번째가 해당한단다.

 

그러고 보면, 같은 Fact를 놓구서도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법, 해석하는 방식, 대처하는 행동 양식이 다 가지가지이다.

저 러브스토리의 명대사 "Love i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만 하더라도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것'이라고 해석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원 뜻은 미안하다고 말할 일을 만들지 않을 거라는 의미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교과서처럼 꼽는 영화<러브스토리>의 유명한 대사 "Love i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처럼 미안하다고 말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즉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지언정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흔히 말하는 사랑의 교본인데 <물고기자리>의 사랑은 미안함을 넘어서 잔인하기까지 한 사랑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넘어서는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을 가지기 위해 모든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감정이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문득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은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 '사랑해'라고 말해놓고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면 '아 그래?'하고 털어낼 수 있는 사랑, '엄마 나 그 사람을 사랑해요' '안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 '예'하고 잘라낼 수 있는 사랑, 이런 것들은 사랑이 아닌 게 아닐까. 그렇게 카피가 출발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사랑이 특이한 게 아니라 너희들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게야. 정말 사랑이라는 건 이 영화 같은 게야,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카피가 '멈출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였다.(52~53쪽)

주역이란 책에게 길을 물으려 했으나, 뜻하지 않게 잠에 빠져들게 될 수도 있고,

좀 산만하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명문장이 적힌 책에 반응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가지각색일 수도 있다.

그 어느 것보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사람에 따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지기도 하는 그것,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그것이 어쩜 제대로 된 감정이 아닐지도 모르는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난 사랑에 서툴다.

그동안 사랑에 관하여 나의 오롯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동안의 나는 '사랑해'라고 했다가 '아니야'라고 했으면 '그래, 아님 말구~(,.)'라고 했었을 것이고,

'아빠 나 그 사람을 사랑해요'라고 했다가 '안된다'했다면 '예'하고 며칠 들어앉아 울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남이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진실하고 진정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그건 마음으로부터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테고,

때문에 이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은 '유명한 건축가'와 '좋은 건축가'의 차이를 말했었다. 좋은 건축이란 사람의 선함과 진실함,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어야 하며, 눈에 띄는 근사한 건물을 만드는 유명한 건축가는 대개 좋은 건축가가 되기 어렵다고.(69쪽)

저 건축가의 자리에 '사람'을 대입시켜도 용케 말이 성립된다.

난 좋은 사람이란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움과 더불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집이 편해야 하듯이, 좋은 사람도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상자의 '물고기자리'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편집증적인, 누군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불리워선 안된다.

 

난 아무래도 '주역에게 길을 묻다'를 그냥은 읽어내기가 힘들것 같고,

내가 편안해 하는 종류의 책에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책마실을 다니다보니, 이런 책이 나와주셨다.

딱 내 스타일이다, ㅋ~.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고진석 지음 / 웅진서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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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 한권을 읽고 이렇게 두들겨 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무거워져 보기는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제목이 다분히 중의적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도 후르츠 펀치라고 할 수 있고,

권투에서 상대를 훅 가게 만드는 한방도 펀치라고 할 수 있다.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는 나중에 모래의 남자가 먹게 되는 음료와도 묘하게 연결이 된다.

그냥 읽어버리고 말면 그뿐인 책이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입시켜 읽을라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것이...

눈이 퀭해지는게 한뼘은 꺼지고 심장은 저만큼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맨 뒷장을 펼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위로 갈수록 읽은게 많았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최근 것으로 박일문, 이만교, 김혜나의 '제리'가 있고,

전석순과 최민석은 구해놓고는 아직이다.

때문에 기억에 남는것이라곤 김혜나의 '제리'가 있겠는데,

난 '영 아니올시다'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다, 괜찮다...해도,

이 책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쳐뒀었는데,

좋다.

왜 엄지손가락이 두개밖에 없는지 한탄할 정도는 아니어도,

별 다섯개를 꽉꽉 눌러 채워줄 수는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 할까, 무서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한방에 훅 가는 펀치에 비해, 얘기를 빚어낸 필채는 경쾌하다 못해 좀 가볍다.

개연성의 확보 면에서도 좀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여고생에게, 친부모를 향하여 그렇게 맹렬한 살의를 갖게 만든 이유가 구체적이지가 않다.

실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어쩜 이 책에 나오는 방인영이 나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라면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아쉽고 무서웠다.

 

 

 

 

 

 

 

 

 

 펀치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책을 읽고 내가 제대로 된 펀치를 맞은 느낌을 받았던 것은,

뒷표지의 "독자들의 윤리관과 도덕관에, 그리고 삶에 남겨 둔 약간의 기대에 펀치를 날린다'는 문구와 난폭한 냉소와 당돌한 폭력으로 무장한  반성하지 않는 10대 소녀라는 표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윤리관과 도덕관이란 무얼 얘기하는 걸까?

과연 그 기준이란 무엇이며,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걸까?

반성하지 않는 10대라고 했는데, 무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책은 요즘 세상을, 가치관의 부재,혼란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윤리관과 도덕관이 땅에 떨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봐야 할 것은 어쩜 존속살해의 개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존속살해를 하고도 어쩜 반성조차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 아니라,

존속살해라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적 장치일 뿐이고,

이를 통하여,

10대 소녀가 어떻게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다시말해, 자립하는지의 과정을 엿보아야 하는것이 아닐까?

깊은 곳에 저장된 자신감이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 속의 직유가 깊이 침범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 냈다.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동영상에서 태아를 긁어낸 것처럼,

아이가 기계를 피해 도망가듯 내 자존감도 달아나려 안달했다.

이젠 더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나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란 걸,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187쪽)

 

내가 이 책의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쉽고 무서웠다고 한 것은,

우리집안이 이 책의 방인영의 그것만큼 하이 레벨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친인척의 관심은 이 책의 방인영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들이 이 책의 방인영과 얼추 비슷한 또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생각하려 든다.

내가 어른들의 집요하고 과한 관심에 숨이 턱턱 막혔었으면서도,

지금도 그때의 잔재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우리 아들의 장래에 간섭하려 든다. 

아들이 원하는 직업을 향하여 한번도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걸로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없으니,

일단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 후에 취미활동으로 하라고 한다.

밥을 빌어먹고 살아도 그건 네 운명이라며 쿨하게 넘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친구 중 하나는,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모범적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 친구에게 사주하는 과정에서 이 친구 또한 별천지를 경험하게 되었을테고,

근데 이 친구는 나와는 태생이 다른지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내색을 한다.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니 충분히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경우, 친구도 비슷한 부류이기 쉽다.

누구의 심장은 웬만한 열에는 끄떡 없는 강철로 만들어 졌고,

또 누구의 심장은 아주 작은 체온이나 온기로도 녹일 수 있는 얼음으로 만들어졌겠는가?

게다가, 그게 사람의 감정 따위,

시간이나 세월에 비례하여 쌓여가는 정이나 미움 따위의 문제였을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를 강신주에게 보내야 겠다.

착해지지 말란 말입니다.

나빠져도 괜찮단 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강신주 말고 또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 친구에게,

그동안 살던대로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사주라도 하였단 말인가?

매 순간순간을 살면 되는거다.

매 순간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거다.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이고,

울아들도, 이 친구도 그럴 수 있도록 자리를 넓게 펴주는 수밖에 없다.

옛날에 '넓은 맘과 깊은 속'의 뉘앙스를 몰라서 한참 고민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친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다.

넓은 맘과 깊은 속.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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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16:35   좋아요 0 | URL
책은 언제나 스스로 불러들이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 책을 불러들인 삶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십이월 추위도 기쁘게 맞아들이는 하루 누리셔요.
펀치는 푸른기와집에서 지내는 분들도 좀 맞으면 좋겠네요~

sslmo 2013-12-17 10:31   좋아요 0 | URL
전 오늘 아침 우리나라 젤 오래된 문학지라는 '현대문학' 사태랑 관련하여 맘이 영 꿀꿀합니다.
아무리 매서운 검열의 시대에도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덩여.
사전 검열의 형태인지,
알아서 기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씁~쓸~해서 더 춥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여~--;
 
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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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3대 구라의 뒤를 잇는 한국의 3대구라에 유홍준이 들어간다는 얘길, 어제 오늘 들은 게아니다.

그의 책을 제법 찾아 읽었지 싶은데, 책을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은 글은 말과는 또 다른 것인가 보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은 꽤 재밌어서 찾아 들을 정도인데,

글은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동어 반복에다, 만연체의 느낌까지 들어서 인내심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난, 일본문화답사기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일본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이 없는데다가 늘어지니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걸 '아~부~지, 도~올~굴~러~가~셔~유~'꼴로 은근 슬쩍 구렁이 담을 넘듯 만연체로 풀어내니까,

짜증 또한 슬금슬금 밀려왔다.

결정적으로, '명작순례'라는 이 책은 전에 나온'국보순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예로 국보순례에서 이미 언급되었던게 26점이나 된단다.

 

제목은 <명작순례>라고 하여 '옛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머릿말 격인 '책을 펴내며'를 통하여선,

이 책을 통하여 전하려고 한 것이 당신의 작품을 보는 안목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 감상은 되도록 절제하면서,

당신이 사사받았던 고유섭, 최순우, 김원용, 이동주, 안휘준 선생님들의 명작 해설을 길라잡이 삼았다고 하고 있다.

대신...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사회적ㆍ예술적 배경, 화가의 예술적 노력과 특징이 그림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옛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을 갖도록 하려고 애썼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의 주특기인 지루한 만연체의 연장선 상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를 미술사가의 사회적 실천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ㆍㆍㆍㆍㆍㆍ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 마주친 나무꾼이 "먼저 깨친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주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ㆍㆍㆍㆍㆍㆍ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미술사가로서 내가 배운 지식을 대중과 나누어 갖는 것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순례기'와 '답사기'를 써오고 있는 것은 스스로 세상에 진 빚이라고 생각한 것을 하나씩 갚아가는 과정이다.(6쪽)

 

아무래도 유홍준의 책을 읽다보면, 손철주가 생각나게 마련이다.

문장이 아주 화려하고 빼어나지만 넘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얼마전 방현주가 진행하는 '라디오 북클럽'에 손철주가 나왔었다.

옆에 있는 이가 내로라 하는 말빨을 자랑하는 아나운서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방현주에게 주눅들어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난 이 책이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깜냥이 부족해서 그런거겠지만,

명작이 너무 한꺼번에 쏟아지니까 '희소성의 원칙'에 반하여 어느 작품이 좋은지 잘 모르겠고,

게다가 그가 말하는 명작이라는 것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분류하고 묶어 소개됐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난초 그림이면,

탄은 이정의 난과 능호관 이인상의 난과 표암 강세황의 난과 수월헌 임희지의 난과 소호 김응환의 난과 운미 민영익의 난과 추사 김정희의 난과 흥선대원군의 난을 차례로 나란히 열거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는데,

'우봉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이상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19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다.' 라는 부분이다.

그 바로 밑에 추사 김정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난초를 치는 법은 역시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 조희룡 輩(무리)가 나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식 한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문자기(氣)가 없는 까닭이다."(142쪽)

라고 하며, 우봉 조희룡의 예술을 낮추어 보았으며,

반면 이 책에는 안 나오지만, 조희룡은 추사의 부작란(不作蘭)만 하더라도(-세한도 같은 그림) 과장되었다고 조롱하였다.

세살 차이니까 얼마든지 경쟁관계에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라면 쉽지않은 상황 설정이다.

조희룡이 추사와 똑같은 글씨를 썼다것만으로 김정희의 예술적 이상을 훌륭히 구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둘 중 어느 누구도 스승과 제자라 칭하지 않았을 뿐더러, 상대방의 예술을 엄청 낮추어 보았다.

시서화일치라는 청나라 화법을 도입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오히려 그럴듯 하다.

암튼,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 둘이 지향하는 바가 한참 달라보이는데 말이다.

 "내가 난초를 그리는 것은 이것으로 즐거움을 삼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라고 했다.(145쪽)

 

암튼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을테지만,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조희룡 輩(무리)가 나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식 한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문자기(氣)가 없는 까닭이다

라고 하는 사람과

'나에겐 그림 그리는 법이 따로 없다'

라고 하는 사람을 대비시켜 놓고,

'우봉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이상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19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다.'

라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 느껴진다.

 

'조희룡'의 '매화'(10곡 연결 병풍) 부분

'조희룡'의 '홍매도(대련)'

(암튼, 난 조희룡의 이 매화 그림만으로도 넋이 나가...책을 마냥 쓸고 닦고 어루만지고 하였지만 말이다, ㅋ~.)

 

차라리, 당신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그림을 보고,

그리고 이런 것을 명작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랬을 경우, 여기서 비껴간다고 하더라도 유홍준 개인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비껴가는 것이지,

일반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에서 비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책의 맨앞에 내로라 하는 사람들을 나열해 놓으니까,

여기서 비껴가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소외감으로 고독이 몸무림칠 것 같다.

 

암튼 내가 주구장창 주장하는 건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다.

유홍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손철주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글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말이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한겨울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를 높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봉 조희룡처럼 그림을 그리는 창작 행위 자체를 통하여 세상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다들 방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뿐이지, 생각이나 행동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하는 안목을 갖고 싶어하고,

그런 안목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명작을 통하여 예술가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을 읽어내고,

그대로 따르진 못하더라도 따를려고 노력하는게 아닐까 싶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흔히 습관이나 버릇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리고 누군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변하시키거나 그에 맞추어 내가 변화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명작이 위대한 이유는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든지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도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 있고 말이다.

 

12월이 벌써 1/3이나 지나갔다.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아무 해놓은 일도 없이 나이를 먹는 것 같고 멜랑꼬리해지려고 한다.

이럴때일수록 감성을 말랑하게 해놓을 필요가 있다.

말랑해진 감성은 스프링처럼 밑바닥을 치고 튀어 올라, 이내 명랑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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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0 16:12   좋아요 1 | URL
'명작'이라기보다는 '옛그림 읽기'나 '옛글씨 읽기'이지 싶어요.
'명작'이라는 말을 먼저 붙이면,
독자는 모두 '명작'으로만 바라보아야 할 테고,
해설자가 들려주는 대로 따라가야겠지요.

양철나무꾼 님 스스로 옛그림과 옛글씨 즐겁게 누리면서
오늘 우리 삶도 예쁘게 돌아보시리라 생각합니다~

sslmo 2013-12-17 10:21   좋아요 1 | URL
명작이 아니면 어때요?
그리다 맘에 안들면 부욱~ 뜯고 다시 그리고,
쓰다가 틀리면 쓰윽~ 지우고 다시 쓰고,
그냥 제 멋에 겨워 사는거죠.
더디더라도 천천히 가고 싶어요, 헤에~^^

다크아이즈 2013-12-11 11:09   좋아요 1 | URL
우울했는데 갑자기 멜랑꼴리해지네요.
우울에 미소가 곁들여지면 멜랑꼴리 - 제 식 멜랑꼴리 버전인데, 이 글 읽은 제 느낌이 그래요.
유홍준보다는 손철주, 손철주보다는 양철님.
왜냐면 우울 - 멜랑 - 말랑 - 명랑의 순서로 읽는이의 감정이 순화 중 ㅋ

sslmo 2013-12-17 10:26   좋아요 2 | URL
팜므 님표 감정의 4단변환가요?
멜랑꼬리 버전 명명이 참 이쁘잖아요, 췟~(,.)

하늘바람 2013-12-11 13:30   좋아요 1 | URL
님의 멜랑에 커피 한잔 곁들여야하는데

sslmo 2013-12-17 10:27   좋아요 1 | URL
우리 둘, 둘, 둘 삼합을 이루는 봉지커피로 하죠.
님은 거기서, 난 여기서...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