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간다 창비시선 36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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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이영광의 시는 힘들었다.

요번에도 여름에 쓰여진 시를 가을이 지나 겨울의 초입에서 읽어냈으니 말이다.

 

이영광이 힘든 것은 시가 어려워서이거나, 읽기 어렵게 쓰여져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인데,

읽다보면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게,

그게 제대로여서...또 다른 날 보고 있는 듯 느껴져서이다.

죽음, 어둠, 슬픔 따위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시인의 이러한 행태를 '자발적 유폐'라고 명명한다.

때로 나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고 싶어지는데, 그걸 내 '스스로 따시킨다'하여 '스.따.'라고 부른다.

 

이건 내가 감히 시인이랑 영혼의 색깔이나 냄새가 비슷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벙어리 심정은 벙어리가 안다'고,

그의 심정을 알겠어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이 시집은 앞에서부터도 읽고, 중간에 아무곳이나 펼쳐서 거기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 읽기도 했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문구는 책 맨 뒷장 '시인의 말'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이 문장을 시인이 어떤 뜻으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 맘대로 중의법, 반어법으로 읽었다.

 

죽음, 어둠, 슬픔 따위가 주된 정서였던 시인은 아마 '꽃이 피고 지다'의 '지다'와 연관하여 '질 수 있는 걸까.'로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피고 지는 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또 피어나는 걸로 윤회를 떠올릴 수 있고,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나 절망 속에 피는 꽃처럼,

희망을 함께 얘기해도 좋은게 아닐까?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널을 뛰어,

'등에 와 얹히던 손길'에 무게를 실어 보았고,

'봇짐을 등에 지다'의 연장선 상에서 '등에 짊어지다'로 생각하고 읽어보았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말이 생각 났고,

산은 등에 진 등짐의 무게로 오른다던 누군가의 말도 생각이 났다.

이쯤 되고 보면,

사람은 정말, 등에 거뜬히 질 수 있지 않을까?

 

'저녁은 모든 희망을'이란 시는 제 11회 미당 문학상' 을 받은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 또 만나게 되는데,

위의 두 '지다'와 비슷하면서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와의 해후가 반갑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 이 영 광 -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
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
그는 병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
그는 병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병이 좋은가
왜 나는 내 품 안에 안겨 있나
그는 버르적댄다
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
침이 흐른다
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 평에
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벌 받고 있지 않은가, 그는
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변혁에 대한 갈망으로 불탄다
새날이 와야 한다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 듯이 저녁이 온다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안 된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
그는 힘없이 낫는다
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
대홍수가 나지 않아도
메뚜기 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덮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안락하게 죽었다
나는 내가 좋다
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
소주와 꿈 없는 잠
소주와 꿈 없는 잠

물론 이 시에서는 '죄를 짓다'대신 '죄가 있다'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뭐,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한 것쯤으로 생각하면 상관없다.
(사실, 해석이야 어떻든 간에,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이지...어떤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 상관없다, ㅋ~.)

전에도 얘기했지만, 죄를 지어 받는 벌마저도 비교 대상이 없을때는 형벌인줄 모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에서 반의법을 읽어내지 않더라도,
'혁명'과 '기적'과 '변혁'과 '천재지변'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거다.
그러니,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여기에 죄를 대입시켜 봐도 좋겠다.
사람은 정말, 죄를 질 수 있는 걸까.

세한

 

네가 참아버린 말을 나는 찾는다

네가 잊어버린 말을 나는 믿는다

설사하는 몸으로 변비를 견디듯

너를 쓰러뜨린 말들을 꼭 사랑할 것이다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병원에

있었다, 다디단 중독들을 버무려

이 병실에서도 약을 짓는다

나으려 하지 않는 병에게,

웃고 있는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다

 

인간답게, 짐승답게 으스러지도록 사는 허망의

하염없이 하염없이 희망에 대해

희망의 꿈 같은 사슬과 채찍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생각되지 않았다

 

추운 날엔 살을 쓰다듬고 뼈를 만진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캄캄한 내장들을 주물러도 본다

몸은 안 좋을 것이다

몸은 안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슬픈 몸은 기쁨의 失禁을 안다

되었다, 헛되었지만 되었다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슬픈 몸은 숱한 사랑의 말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유독 슬펐는데,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이란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긴 하지만,

시인은 말이 희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처 입히는 것 또한 말을 통해서...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네가 참아버리고 잊어버린 말들 찾고 믿고 사랑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약을 짓는 행위를 통해서이다.

살을 쓰다듬고 뼈와 내장을 만지고 주무르는  행위를 통해서이다.

그러면서 몸에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금지(失禁)하는 걸로 스스로를 유패시킨다.

하지만 유패시키고 유배시키는 걸로 끝나지 않고,

몸과 말의 공존과 화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게 '헛되지만 되었다'와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라는 사실이 슬펐다.

 

이 시에서는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로 바꿔 생각해보았다.

 

'구름과 나'라는 시에서는,

배설, 카타르시스를 떠올렸다.

'참고 싶은 것은, 다 참아낼 수 없는 것'이고,

참아냈던 건 참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참아야 했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눙치는 이 시인을 어쩔 것인가?

부디 그가,

침입한 그곳으로 문 닫고 사라지지 않고,

울고 싶을 때 참지 말고 울기를 기대해본다.

사람은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걸까.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에선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고 하였다.

사람은 정말, 지워질 수 있는 걸까.를 대입시켜 보았다.

 

내가 언급한 시들 말고도 여러 시를 가지고 '질 수 있을까'놀이를 해보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부디 '이기다&지다'의 그 '지다'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도들

 

해장국집에 들어가 술을 시켰는데

잔을 두개 가져다준다

저는 소주를 세병 마신

한 사람입니다

이상하다는 듯 남자가 잔 하나를

도로 가져가버린다

나는 내 반쪽이 찢겨나가는 것 같다

한 사람일 수도,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있지만

<모닝와이드>는 삼월 찬바람에 쓸리는

독도를 보여준다 독도만 가면

깃발 흔들고 만세 부르고 사진 찍는

민족 문인들이나 기자들이 있겠지

업소 출신이 업소에 안 가듯

나는 독도엔 안 간다

소주잔에 떠다니는 내 심장을 본다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돌투성이 국토 너머

망망대해를 본다

모든 홀몸은 분쟁 중이고

모든 홀몸은 부유 중인데

독도는 어디에 있는 섬인가

독도는 어디에 없는 섬인가

투사처럼 비쩍 마른 밥집 남자는

소주잔에 담아간 심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독도들'이란 시가 제일 좋았다.

'한 사람'의 '한'을 숫자 '1'이 아니라, '어떤'으로 바꿔보면 덜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민족 문인나 기자'들 상징성이나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홀로 의미있어 질 수 있다.

 

나무는 간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제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 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나무가 나무에게로 가버리고 깊이 사라져버리듯이, 나는 당신에게로 가서 번지고 스며 물들어버리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단어 바꾸기 놀이의 절정은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나무는 간다'에서 '간다'를 가지고 바꾸었을 때이다.

'움직이는 것'도 '간다'지만 '미치는 것'도 '간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움직여서 흠뻑 빠져버리는 것을 가지고 난 훅~ '간다' 라고 한다.

 

옛날에 이런 시인과 시집을 만났으면 '아흑~--; 죽음이야'라고 했을텐데,

이젠 '훅~간다'라고 표현하게 생겼다.

 

새로운 내 스타일대로 이 시집을 평해보자면, '지려가든 가지나 말지~(,.)'쯤이 되겠다.

아니다, '가려거든 지지나 말지~'가 더 '훅~간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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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3-11-26 12:21   좋아요 0 | URL
'스따'란 표현 너무 좋은 데요. 저도 그 판국이네요 ㅎ
양철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ㅎㅎㅎ
죄송해요 ^^;;;; 살아 돌아올려고 책 샀어요. 오랜만에 ㅋ

sslmo 2013-11-26 12:27   좋아요 0 | URL
어머머, 이게 누구예요~?
(,.)<----심드렁, 왕삐침의 이모티콘.


책이 생명물?
그렇다면 말씀만하세요.
루쉰P님이 돌아오신다면,
제가 그까잇거 책쯤 얼마든지 제공할 의향있습니다여.

근데, 진짜 반갑다.

감은빛 2013-11-26 13:07   좋아요 0 | URL
사람은 정말 질수 있을까?
저는 매일 지고 삽니다.
아내에게 지고, 사장님께 지고, 거래처 부장님께 지고.......

시를 안 읽은지 제법 되었네요.
집에가서 시집 한번 들춰봐야겠어요.

sslmo 2013-11-28 14:29   좋아요 0 | URL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잖아요.
매일 지고 산다고 말하시지만,
지는게 이기는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듯~^^

북극곰 2013-11-26 14:56   좋아요 0 | URL
이런 리뷰를 보고는 항상 시집을 한 두권 끼워서 사기는 하는데 잘 안 읽게 되네요. 아직은 저는 뭔가 읽어내는 데에 급급한가봐요.
저는 일단 나무꾼님 이런 글로 대신할래요. ^^

알라딘에서 댓글 달고 있으니 너무 좋아용 핫~!

sslmo 2013-11-28 14:31   좋아요 0 | URL
저는 뭔가를 읽어내는 것보다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쉼이고 휴식이예요.

한마디로, 책으로의 도피쯤 되겠죠, ㅋ~.

yamoo 2013-11-26 17:52   좋아요 0 | URL
저는 자신에게 맨날 깨지는 걸요~

전 시는 읽지 않지만, 그냥 뭐...나무꾼님의 글로 대충 때울랍니다~ㅎ
전 그냥 닥치고 추천입니다~^^

sslmo 2013-11-28 14:33   좋아요 0 | URL
저는 맨날 넘어지고 부딪혀 제 자신을 깹니다, ㅋ~.
시를 잘 안 읽는 yamoo님이나,
님이 읽는 어려운 책들을 못 읽는 저나,
각자 취향으로 생각하면 되겠죠~?
 

옛날 옛적, 그러니까 소싯적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나서는, 도대체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됐는지를 모르겠었었다.

뭐랄까~,

약간 우울하고 애조띤 것같은 분위기,

하지만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 가 참 낯설었다.

 

소싯적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책들도,

나이가 들면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웬만한 책이나 작가들을 향하여서는 고개 끄덕여가며 수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나이를 먹도록 수긍을 할 수 없는 사람 중에 '고은'시인이 속해 있었다.

고은 시인을 두고는,

왜 그의 시가 좋은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지에 대해서,

수긍할 수도, 내 자신을 납득시킬 수도 없었다.

급기야, 문학외적인 무언가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 들었었지만,

한편으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작품을 통하여 얘기해야 되는 존재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인 중에 고은 시인과 가까운 분이 한번씩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실때도,

훌륭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건 작품이랑은 별개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이란 것은 삶의 반영이지, 삶과 별개의 어떤 것은 아니지 싶다.

 

내가 생각이 이렇게 너그러워진건,

지난 수요일날 들은 '시선집중'의 '미니인터뷰' 코너가 결정적이었던듯 하다.

때마침, 고은 시인이 나왔는데,

나이 여든에 55년동안의 작품 생활을 해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벼린 칼날 같은, 말 매무새 또한 깊은 감동을 주었다.

607편의 대작으로 구성된 '무제시편'이라는 시집을 향하여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무제 시편
 고은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하지만, 무엇보다 내게 큰 감동을 준건,

시인의 작품을 향한 열정이었는데, 시인의 말씀중 기억나는 부분만 대충 옮겨보면 이렇다.

시 한편을 가지고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시 자체로 운명을 개척하기도 한다.

시는 나의 내부에서도 오지만, 우주의 저끝에서 달려오기도 한다.

시를 쓰기위해서 깨는게 아니라, 시심 자체가 잠을 깨우게도 한다.

 

시가 우주 저끝에서부터 나에게로 달려오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내게 주어졌다면,

난 시인처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시를 쓰기 위해서 깨는게 아니라, 시심 자체가 나를 잠깨우고, 깨어있게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채 여물지 않은 생각들을, 글로 옮겨써야 할 때가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글의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을때,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을 한적도,

생각을 묵혀두어 글이 무르익기를 기다린 적도, 없었다.

글이 나의 내부에서 샘솟듯 퐁퐁 솟아날 줄로만 알았었지,

우주의 저 끝에서 글들이 나를 향하여 달려오는 경험을 한 적도, 그런 상상을 한 적도...없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글을 잘 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글이 막 샘 솟을때,

글을 쓰지 않고 묵혀둬 보는 것도 글쓰기의 방법 중 하나일거라며, 떠벌리고 다녔었다.

반성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3년 10월

 

요즘 이윤기 님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묵혀두고 야금야금 아껴 읽는다.

한장, 한쪽, 한문단, 한문장, 한단어, 한글자...허투루 할 수가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윤기 님은 입말과 글말, 이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신 분이다.

글의 골짜기 골짜기마다, 구비 구비, 그런 고민의 흔적,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도 따라서, 좋은 글이란,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글이란, 좋은 책이란...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한권 만들어지기 위해 베어넘어지는 나무가 아까운 줄 안다면,

그런 나무를 애도하기 위해서라도,

글이나 책은 사람에게 어떤 빙향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리라.

 

암튼, 나의 이런 생각들을 엿보기라도 한듯,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는 이런 얘기가 등장한다.

 

10월 13일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고은 시인이 수상자가 될 경우 그분과의 개인적 친분과 문학 세계에 관련된 글을 두 신문사에 써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6시부터 잔뜩 긴장한 채 서재와 안방을 오가면서 신문 원고를 메모하거나 TV 화면을 힐끔거리거나 했다.ㆍㆍㆍㆍㆍㆍ고은 시인이 수상할 경우, 밤늦게까지 써야 할 원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ㆍㆍㆍㆍㆍㆍ고백하거니와, TV 앞에서 일어서면서 내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고, 살았구나."

ㆍㆍㆍㆍㆍㆍ이런 의례적인 인사 끝에,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마음고생과, 발표를 듣는 순간 내가 보였던, 이기적인 반응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긴장했다.

ㆍㆍㆍㆍㆍㆍ그러나 아니었다. 고은 시인은 나의 고백을 듣고는 한동안 탁자를 치면서 박장대소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안 섭섭해. 이 사람아, 그게 인간이야. 우리는 그런 인간에 대해서 써야 해!"(86쪽)

이리하여, 난 좋은 글쓰기란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누구는 호평을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악평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좋은 글이란 그런 인간에 대해 솔직히 쓰는 글이란다.

솔직히 쓰는 글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니까 말이다.

 

알라딘 서재, 이 동네에서 지금 이시간에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또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그 누군가의 글과 책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시샘의 대상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모두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부디,

사람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좋은 글과 책에 대한 무게감을, 기억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를 바란다.

 

 

 나는 자랑스러운 이태극입니다
 이상미 지음, 강승원 그림 / 파란정원 /

 2013년 11월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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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11-22 17:29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나무꾼님 페이퍼를 보고, 이윤기님의 책 담아갑니다. ^--^

sslmo 2013-11-26 11:49   좋아요 0 | URL
어머머~북극곰님이시다, 와락~( )
아흑~--; 이윤기 님 완전 죽음이예요.

숲노래 2013-11-22 17:35   좋아요 0 | URL
다 다른 사람이지만 다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사랑' 하나를 놓고.
다만, 다 다른 사람이기에 '사랑'을 놓고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sslmo 2013-11-26 11:55   좋아요 0 | URL
따로 또 같이, 그렇게 그렇게 어울려지내는게 삶이겠지요.
그리고 삶과 사람, 삶과 사랑은...이음 동의어 같아요.

프레이야 2013-11-23 10:51   좋아요 0 | URL
으악! 주욱 읽어내려가다가ᆞᆢ 다락방님 책이잖아요!! 그래서 그랬구나ㅎㅎ 아주많이 축하해요.
양철나무꾼님 서재에서 축하인사를ㅎㅎ

sslmo 2013-11-26 11: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넘 멋지죠?
전 많이 부럽고, 솔직히 좀 배가 아프기도 해요, ㅋ~.

근데, 프레이야 님은 왜 이리 뜸하신거예엿, 췟~=3
 
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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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이었다.

그녀는 환자가 하도 말을 못 알아듣자,

"보청기를 하셔야 겠네요?"

했더니,

"보이차를 왜 해? 나 보이차 안 해도 돼. 사주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아무 영양가 없는 보이차는 먹으래, 췟."

하고 역정을 내시는 거다.

 

그보다 며칠전엔 다른 환자가 와서,

"내가 부애가 치밀어서 죽는 줄 알았어."

하며 윗옷 단추를 열고 부채질 하는 시늉을 한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왜여?"

하고 겸연쩍은 미소라고 짓는데, 그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영낙없는 울상이다.

"내가 허리 아픈데 먹는 약을 달랬지, 언제 무릎 아픈데 먹는 약 달랬어?"

"네에~ㅇ? @@"

"내가 이래뵈도 눈썰미가 있어서 다 알어. 무릎 아플때 먹는 약이랑 똑 같더구만..., 으흠~!"

그녀는 계지(桂枝)와 계피(桂皮)와 유계(柳桂)와 계심(桂心)의 용처가 다르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대증치료를 하는 양약이 무릎용 진통제와 허리용 진통제가 따로 있는줄은 몰랐다, 끙~--;

 

어젠가는 허리가 아파 돌아가시겠다는 환자가가 와서,

"내가 허리 하나만은 성한 것이 자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안 낫는거요? 혹시 상한 약을 지어준거 아니요?"

"네에? 며칠이나 치료를 받으셨다구요~. 8~9년을 하루같이 다니며 치료받으시는 분들도 많아요."

라고 했더니,

"그게 미친넘이지 성한 사람이우? 왜 성한 나를 미친넘이랑 비교를 하는거야, 내 참~(,.)"

이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건강과 관련하여선 정도가 더 심하다.

그래도 섣불리 이들을 갖고 잘ㆍ 잘못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잘ㆍ잘못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 이리저리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어?'하는 일들이 번번이 '사람이니까 저러지, 누가 또 저럴 수 있겠어?'하는 일들로 바뀌어 버려, 제대로된 가치관을 정립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 책 처음의 시작이기도 하고, '로드 스튜어트'가 부른 노래 가사이기도 한,

'내가 사는 이유는 오직 당신 곁에 눕기 위해서이나, 이렇듯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기만 한답니다.' 하는 '문 라이트 마일'처럼, 당신 곁에 눕고 싶지만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기만 하는게 현실일지라도,

어떤 의미로든 '사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행복할지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문라이트 마일'은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상처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기 나름이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여러가지인데,

본인의 의지로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의 지극 정성으로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영영 극복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렇기 때문에...우리는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상처를 끌어안고, 피 흘리면서도 꿋꿋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는것만으로 기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ㆍ악이나 잘ㆍ잘못의 판단 기준 같은 건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행동을 했다고 하면,

그 결과가 '당신 곁에 눕고 싶었으나, 헛다리짚어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는 그런 것일지라도...

그게 삶의 이유가 될 수 있고,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데니스 루헤인을 좋아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이다.

너무 인간적이어서,

인간적인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실수를 끌어안고 뭉개고 앉아 있는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치고 나아지려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생각이나 가치관이 유연한 것인데...

이건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듯,

천안삼거리에 걸린 능수버들처럼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축 늘어진거랑은 다른거다.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이어야만 가능한 태도이다.

 

이 책이 '켄지와 제나로'시리즈의 마지막 편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다시 이들 환상 콤비 플레이어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우면서도,

이들의 앞날을 내다볼때 바른 선택인 듯하여 기꺼이 보내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암튼, 난 '켄지와 제나로'의 사람을, 일을, 그리하여 삶을 향한 이같은 호ㆍ불호가 맘에 드는 것이고,

이것이 이들에게, 또 데니스 루헤인에게, 내가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끔직하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다행히 그가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44쪽)

 

솔직히 총을 들고 다니는 건 양배추 먹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45쪽)

 

아이의 얼굴 가득 엄마와 똑같은 미소가 번졌다. 너무나 따뜻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미소.(96쪽)

 

내가 아는 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친구들 사이의 전제는, 누군가 마이크를 싫어한다면 정작 우리가 싫어하는 건 그가 아니라 말한 당사자가 된다.(228쪽)

 

93번 도로 남쪽으로 달리는 도안, 문득 나를 초조하게 만든 일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커다란 벽돌처럼 내 심장을 짓누르고 처절한 스트레스로 나를 괴롭혔던 일들. 깨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일들, 잃어버렸기에 되돌릴 수 없는 일들 사랑한다. 나는 내 짐들을 사랑한다.ㆍㆍㆍㆍㆍㆍ

아버지는 자신의 짐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어느 것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상처 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상처 많은 남자다.

ㆍㆍㆍㆍㆍㆍ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콜롬비아 로에 접어들었을 때쯤 하루가 자두 빛 하늘 속으로 빠르게 접혀들었다. 가벼운 눈발도 주저하듯 계속 흩날렸다.ㆍㆍㆍㆍㆍㆍ사실 그 모든 것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으나 그건 아니었다.(388~389쪽)

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하나도 없다.

복잡하지도 않고, 군더더기도 없다.

단순명료하다.

 

아무래도 역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자는 '켄지와 제나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알고,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반영한다.

많은 번역자들이 언급했던 우리말을 벼리는 재주이다.

다시 말해 책상머리에서  사전만 펼치고 앉았지는 않는다.

사전도 안 펴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거기 실려 있는 말은 화석화된 개념이지 저잣거리의 말이 아니다.

그는 살아있는 표현, '이 땅의 켄지와 제나로' 들이 사용하는 '잘 익은 말'들로 갈무리해 낸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켄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나로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지금까지 가브리엘라에게는 흡연의 증거를 들키지 않았으나 세월은 흐르고 아이도 자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악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만큼, 대개의 경우 나는 악습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들은 자기보존을 위한 자아도취적 본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혼동한다. 더욱이 소속 공동체의 삶을 빨아내기도 한다. 앤지도 내가 금연을 원한다는 사실을 앍고 있다. 그녀도 금연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담배를 끊지 못했다. (117쪽)

아무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성숙한 사람(그의 표현대로라면, 상처 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상처 많은 남자)만이 제대로 된 사랑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다.

다시말해,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쓸쓸해서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가시로 상대방의 가시를 부딪혀 부러뜨리지 않고,

상대의 가시에 제 살이 찔릴 줄 알면서도 옆으로 비껴 서로를 끌어안는 그런 사랑 말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데니스 루헤인의 그것을 그냥 재미나 흥미를 위한 장르소설이나 하드보일드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구절들 때문이다.

항상 눈높이를 낮추어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부드럽고 넉넉한 어조로 얘기하지는 않는다.

비판도 할 줄 알고, 불의를 향하여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안다.

"이 화려한 도시의 이면을 봐요. 그럼 수많은 균열과 만납니다. 두 자리 수에 이르는 실업률에 고용주의 착취. 사회보장?(웃음) 개뿔도 없어요. 보험? 우리 선조들이 당연히 여겼던 노동에 대한 보상, 사회 안전망, 공정임금은 물론,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금시계도 모두 사라져버린 거요."(106쪽)

 

"ㆍㆍㆍㆍㆍㆍ이봐요, 브라이언, 거론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166쪽)

 

"의사가 사람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국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매상 문제입니다. 재화와 용역을 예로 들어 최저가에 얼마나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을 처방하고, 내쫒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비싼 치료로 유혹하고ㆍㆍㆍㆍㆍㆍ."(184쪽)

나중에 이런 말을 한 자의 진의가 밝혀지지만,

암튼 미국이란 나라는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의료보험 제도 하나만 놓고봤을때도 암울하고 꿀꿀한 것만은 사실이다.

얼마전 오바마 정부는 건강개혁법안과 관련하여 미 연방 정부가 셧다운하는 그런 사태로까지 치달았었으니까 말이다.

 

세상은 변하여, 내가 사는 이유는 오직 당신 곁에 눕는다' 는 희망을 위해서이나,

'이렇듯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기만' 하는게 현실일지라도,

아직은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따사로운 햇볕은 아닐지라도, 서늘한 달빛일지라도...길을 밝혀주고 안내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모쪼록 켄지와 제나로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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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11-21 18:08   좋아요 0 | URL
책 안읽은지 백만년입니다. 아마 문라이트가 제가 근래 마지막으로 본 책일 듯 ㅎ 전 이 커플 이야기로 한 오십권만 더 나왔으면 합니다. 현장에서 글 남겨요. ㅋ 찬 날씨 강건하시길

sslmo 2013-11-21 18:16   좋아요 0 | URL
우와~^^
알케님이다, 부비 부비~, 와락~( )

날씨가 엄청(맘 가난한 사람 얼어죽게) 추워요.
현장이면 작년 어느땐가처럼...맥심 커피 두개를 머그컵에다 타서 드심서 언 몸을 녹일 수도 없으실테고,
옷을 꽁꽁 동여매 입으시고,
팔을 쭉 길게 늘여 팔짱을 껴서 스스로 감싸 안는 수밖에요, ㅋ~.
 
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겉표지뿐만 아니라, 속지도 참 예쁘다.

겉날개 안쪽의 저 안내 문구를 보자마자, 난 몇개가 해당될까 하고 체크를 시작한다.

01 심각한 야행성이다

02 책 먼지 알레르기가 없다

03 외출보다는 퍼즐 풀기처럼 가만히 안장서 뭘 하는게 좋다

04 솔직히 마법사가 있다고 믿는다

05 세상 그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한다

 

저 다섯 개의 항목 중에서 '솔직히 마법사가 있다고 믿는다'만 '때때로 예스'이고,

다른 것들은 '강하게, 심하게 예스'이다.

이걸로 미루어 '페넘브라24시 서점의 손님자격'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내가 책중독환자라는 것만은 판명되었다, ㅋ~.

 

내가 장르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판타지는 또 별로이다.

그건 꿈이나 낭만, 상상력이 부족하다 못해, 결핍된 인간이라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뭐, 어쩔 수 없다.~--;

이 책도 광고를 봤을때 너무 재미있었고,

책을 막 시작했을때 흥미진진했었고 했던 것에 미루어,

뒤로 갈수록 좀 황당한것이 판타지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때문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재밌을 수도 있는 것이라서...이점을 명확이 하고자 한다.

 

이 책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내게 이 책이 별로였던 까닭을 곰곰 생각해보니,

영생, 불멸의 방법으로 선택되어지는 '그것'이 좀 뜬금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지적소유권의 개념이 미미한 나라에선 크게 와닿지 않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비밀결사단이라는 것이, 그동안 여러 책에서 보아오던 프리메이슨의 그것과 비슷할 뿐더러...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안드로이드(인조인간내지는 로봇쯤 되려나?)가 나온다는 설정은,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특별날 것이 없다.

다시 말해, 이런 종류의 책들을 좀 읽은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구태의연할 수 있는 설정이다.

대단히 넓고 방대한 대신에 깊이가 없는 것이 시대조류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넷 상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처럼이나, 넓고 방대한 대신...인간적인 깊이가 없다고나 할까?

체온의 따뜻함이 그립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즉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의 라틴어-옮긴이)(26쪽)

이 말이 도대체 왜 쓰이는지를 모르겠다.

이 얘기의 주축이 되는 사람들은 컴과 모바일,핸드폰 등을 이용해서...엄밀하게 말하면 구글과 아이폰, e-북 리더기인 킨더를 통해서, '페스티나 렌테'를 외쳤던 사람들이 500년에 걸쳐서 완성한 일들을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참, 아이러니컬한게 모든일을 더 빨리 속전속결로 해치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그것들만 적절히 활용하면 시간을 훨씬 길고 효용있게 쓸 수 있는데도,

옛날의 구태의연한, 어찌보면 고전적인 방법을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고는, 그러면서 불멸을 꿈꾸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불멸을 얻게 되면, 뱀파이어의 그것처럼 살아있는게 지옥처럼 생각되지나 않을까?

'희소성의 법칙'처럼 귀해야 그게 소중해지지는 않을까?

 

내가 이 책이 별로였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클레이라는 인물 성격이 좀 평면적이고 구태의연해서 이다.

시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 훨씬 미래의 일인것 만은 사실이고,

인터넷 홍수에 빠진 그 시대에도 직업의 귀천이라는게 있어서,

중요한 학위 하나를 따고 앞으로 전진할 직장 동료에게,

직장이라고는 하지만 헌책방에서 시간 교대를 해서 같이 있지조차 못하는 그런 직장동료에게 질투심을 느낀다는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의 투사로 봐야할 것 같다.

그런 올리버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질투심이 솟구쳤다. 현재 그와 나는 같은 직장에서 동료로서, 똑같은 의자에 앉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올리버는 매우 중요한 학위 하나를 따고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갈 것이다. 그는 한적한 서점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기술 말고도 잘하는 것이 있는 까닭에 진짜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33쪽)

 

여자는 불꽃 같은 활기를 지녔다. 남녀를 불문하고 새 친구를 사귈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그거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칭찬이 바로 그런 활기를 지닌 사람이라는 거였다. 나는 정확히 무엇이 불꽃을 점화하는지 알아내려고 수차례 시도했었다. 어떤 형질들이 모여야 차갑고 어두운 우주에 반짝이는 별을 만드는지. 주로 얼굴 표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알았다. 눈뿐 아니라 이마와 볼, 입, 그리고 이 모든 걸 연결하는 미세근육들.

캣의 미세근육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ㆍㆍㆍㆍㆍㆍ

더없이 흥미로운 얘기로 들렸지만, 그건 캣이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었다.(74쪽)

이렇게 활기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직장 동료가 중요한 학위 하나를 따고 앞으로 전진할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질투심을 느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직장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하는 그런 모습,

그건 생동감 쯤으로 표현해도 좋을 그런 것이고,

생동감은 불꽃 내지는 활기로 대체되어도 좋을 것이다.

'더없이 흥미로운 얘기로 들렸지만, 그건 캣이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었다'는 구절은,

재미있는 얘기인지 아닌지, 의 여부는 내용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는,

같이 있는 대상이 얼마나 흥미로운지에 관한 문제라는 걸, 나 또한 경험해봤기에 알겠다, ㅋ~.

 

"도서관의 목적은 책을 보존하는데 있는가, 책을 읽기 위한 곳인가?"-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167쪽)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난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책의 목적은 정보를 보존하는데 있는가, 책을 읽어 정보를 내것으로 만드는데 있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고나면, 내가 읽지도 않은 책들로 책탑을 쌓아두고도 또 내가 갖지 못한 책들에 연연해 하고 집착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 책에서 정녕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난 내맘대로 책 속에 등장하는 책을 통하여 이런 것을 깨달았다.

아니라구?

정답은 없다, 내 맘이다, ㅋ~.

 

"트리포의 금빛 나팔은 정교하게 만들어졌군."

텔레마크의 보물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제노도투스가 말했다. "마법은 오직 만드는 방법에 있어. 이해하겠나? 여기엔 주술 같은 게 전혀 사용되지 않았지.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그 말에 펀웬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은 이 마법의 나팔을 되찾기 위해 무수한 공포와 용감하게 대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제1마법사는 이 나팔에 특별한 힘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건가?

"세상에는 마법 말고 다른 힘도 존재해." 늙은 마법사가 나팔을 왕족인 주인에게 돌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리포는 죽은 이들까지도 그 소리를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너무나 완벽한 악기를 만들었어. 그는 주문이나 용의 노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만 만들었지. 나도 그처럼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264쪽)

세상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해도,

인터넷이 발달하고,

그리하여 그것들이 부려내는 재주가 마법보다 판타스틱하다고 하여도,

세상에는 마법 말고 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것.

과학의 발달이나 인터넷의 발달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은 다름아닌, '손수'만든 것이라는 것.

손수 만든 것이라는 말 속에는, 정성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그건 마음이라는 말을 또 담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손수'내지는 '정성'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마음'을 능가하는 것은 없나 보다.

난 그렇게 믿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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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15 21:05   좋아요 0 | URL
책은 삶을 가꾸려고 있고,
책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가꾸는 사람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사랑스레 가꾸는 사람이겠지요.
저는 이렇게 느낍니다.

다른 분들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요.

그런데,
책뿐 아니라,
밥을 짓고 먹을 적에도
옷을 빨래하고 입을 적에도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놀 적에도,
언제나 이러한 마음 그대로예요.
 
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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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그림 자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사람 보는 눈'은 대단한 책이다.

기자 출신의 미술평론가답게 '그의 그림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번엔 '사람 보는 눈'이란다.

'관상'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형상의학'차원에서의 '망진'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이쯤되면,

'청맹과니가 아닌 다음에야, 겸양이라고는 모르는 자화자찬으로 무장한 생색내기의 달인이라고 퉁쳐버릴텐데,

그를 통하면 독특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것이 간과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으니 말이다.

그는 앞서는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누가 묻는다. "그림에 좋고 나쁜 것이 있습니까?"

나는 답한다. "좋고 나쁜 것이 있다기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지요."

또 묻는다. "그림은 만드는 것이지요?"

또 답한다. "만들어야 그림이 생기지요."

다시 묻는다. "만든 것이 어떻게 감동을 주나요?"

다시 답한다."생긴 듯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무릇 사람 그림에서는 생김 생김새를 따질 노릇이다.

사람 그림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은 다르지 않다는 뜻이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변덕이 죽끓듯하여,

좋아하는 작가도 때와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답이 달라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가 '손철주'다.

난 그동안 화려한 수사를 쓰는 사람은 별로라고 했었는데,

그의 글을 깊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화려한 수사'를 제일 먼저 떠올릴테고,

"이, 뭥미~?"하고 툴툴거릴 수도 있을테지만,

그의 글은 화려하기만 하지 않다.

화려하고 고혹적인 동시에 깔끔하고 청순하다.

 

난, 그림과 글을 벼려내는 솜씨로 미루어 그의 '사람을 보는 눈'을 살짝 엿보거나 전수받고 싶었나 보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 꽃을 보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숲을 걷는 사람과 물에 가는 사람 들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는 그의 말 속에서,

'사람이 그림 밖에 있는 사람 그림'도 있다...를 읽어낸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다시말해 화폭에 사람이 없는 그림도 있지만, 그런 그림들이라고 하여 사람이 배제된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화폭에 사람이 없는 그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람을 보는 눈'은 밝히고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람 그림들을 죽 펼쳐놓고 보면서 깨단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으로 모자라,

'그림 밖의 사람은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고, 그림 속의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이럴진대 사람 그림을, 그려진 사람으로만 여기겠는가. 보고 또 볼 일이다.' 라고 눙친다.

 

말 그림 하나를 본 두보가 '살만 있고 뼈가 없다'며 탓했다. 소동파는 정색하고 두보를 나무랐다. '길고 짧은 게 있는데 살진 것만 보는가.' 다들 보이는 것만 본다. 살과 뼈, 길고 짧음, 설혹 모두 다 갖췄다고 명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소매가 길면 춤 잘 춘다지만 장식과 기교는 군더더기가 되기 쉽다. 겉모습을 그려도 설탄처럼 고갱이를 콕 짚어내야 잘된 그림이다. 그게 어디 그림뿐이랴.(19쪽)

위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식과 기교는 군더더기가 될 수 있으니, 고갱이를 콕 짚어내야 잘된 그림이겠다.

화려하고 고혹적인 동시에 깔끔하고 청순한 그의 글맵시처럼 말이다.

'그게 어디 그림뿐이랴' 뒤에는 '사람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라는 의미가 생략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소제목을 뽑아낸 품을 보면,

각양각색, 다채롭고 버라이어티한, 이런 저런사람들 속에서 그가 어떤 사람들을 보고 있는가 하는 그의 '사람보는 눈'을 짐작할 수 있겠다.

김홍도의 '세마도'를 두곤 '저 사내의 느긋함이 부럽다'고 하며,

한시각의 '삿갓 쓴 사람'을 일컬어 '덜 그려도 다 그렸다'라고 한다.

김홍도가 그렸다고 傳해지는 '미인화장'을 두곤 '꾸민 티와 노는 짓'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유신의 '포동춘지'를 가지곤 '옷자락에 꽃향기 나눌 친구'라는 제목을 뽑아냈다.

 

'꽃사랑도 지나치면 밉보인다' 강렬하게 시작해서 얘기를 어찌 풀어나가나 했는데,

'두보 같은 대시인의 탄식이 그렇다'느니, '왕안석의 토로는 더 안쓰럽다'느니, 하다가는...

이내, '아끼는 마음도 유만부동, 이 정도면 속이 간지러워진다'며 은근슬쩍 구렁이 담을 넘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아흑~--;

이런 문장은 또 어쩔 것인가 말이다.

멀쩡한 사내들이 왜 봄날의 꽃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해댈까. 아무려나, 다 봄이 짧은 탓인데 어쩌겠는가. 봄은 짧아서 황홀하고 황홀해서 훅간다. 꽃인들 다르랴. 열흘 붉기가 어려울 때, 꽃은 서글피 아름답다.ㆍㆍㆍㆍㆍㆍ (59쪽)

책을 읽는 내내 눈만 환해지는게 아니라, 마음까지 밝아지고 환해지진다.

이쯤되면 두루두루 호사다.

하지만, 이런 글 속에서 느끼게 되는 단 하나는,

화려하다 못해 흐드러지는 수식이어도,

그게 자연의 일이고, 또 진심을 담고 있다면...그게 장식과 기교라는 군더더기가 아니라 고갱이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지금의 손철주에게 '마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젊었더라면 아무리 글이 화려하고 고혹적이더라도 농익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테고,

좀 더 나이가 들었더라면 깔끔하고 청순하다기보다는 초라하고 궁상맞게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이런 구절이 한몫을 하는데,

우리는 중늙은이다. 얘기는 연애담으로 올라갔다가 금방 회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 젊은 여자들의 물 오르는 푸르름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락한다고 했다. 청춘은 축복이고 여자는 은총인데,축복과 은총을 넘보는 우리의 눈길은 추파라고 했다.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득한 것이 아니라 머쓱한 것이라고 했다.

'마침'하면서 '맞춤'하기까지하다.

 

예를 들면,

'눈동자가 또랑또랑한데다 앵둣빛 입술이 남정네를 안달하게 만들거라며, 이 저녁에 기생이 부릴 수작이 눈에 선하다'는 그림 설명 바로 밑에,

'그 그림에 그 대거리다. 다들 멋들어지게 논다' 라고 첨언하는데,

그의 입을 통해 나오니 풍류가 되고 추임새가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농짓거리나 욕 이상도 이하도 아닐 뻔 했다.

 

초상화에서는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외양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선의 초상화는 '傳神기법'을 큰 자랑으로 삼는다. '정신을 전달한다'는 얘기다. 모델의 정신까지 화면에 살려내는 이 기법은 눈동자 묘사에 성패가 달려 있다. '눈은 정신을 빛내고 입은 감정을 말한다'고 했다. 송인명 초상의 백미는 입이다. 입은 '口心'이라 했다. ㆍㆍㆍㆍㆍㆍ 사람 좋아뵈는 이 인상은 저항하기 힘든 포용력으로 비친다. 그의 품성이 손에 잡힐 듯하다. 초상화는 서양 것이 눈에 쏙 든다는 사람이 많다. 인물을 닮게 그리는 솜씨, 휘황찬란한 복색, 자르르한 유화의 기름기는 보는 이의 눈을 현혹한다. 우리 초상화는 어떤가. 색은 칠한 둥 만 둥, 붓질은 듬성듬성, 게다가 작은 종이나 천에 그려 압도하는 위용이 없다. 그렇다면 비교우위가 어디에 있는가. 앞서 말한 '전신', 곧 '이형사신(以形寫神)'에 있다. '얼굴을 통해 정신을 그리는' 방식이다. 겉을 꾸미느라 속을 놓치는 초상화는 허깨비 인물상에 머문다. (63~65쪽)

 

수묵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물의 거죽보다 사물의 뜻을 그리는 방도로 각광받았다.(70쪽)

 

결국 그림이라는 것은 사물의 거죽을 통해 사물의 뜻을 그려야 하는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사람 그림은 얼굴을 통해 정신을 그려내고 또 전달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 보는 눈'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거죽'이나 '사람의 얼굴'을 미루어 '사물의 뜻'과 '사람의 정신'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을 말하고 있는 것이 된다.

윤두서의 <자화상>에는 이런 평이 달렸다.

처음에는 옷도 귀도 다 그려진 상태였지만 세월이 가면서 닳아버렸다. 얼굴만 허공에 붕 떠 있는데, 그게 묘한 아우라를 빚는다. 공재의 됨됨이가 궁금하면 자화상을 보라.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기보다 실존이 본질이다.(99쪽)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기보다 실존이 본질이다'는 말은...

사물의 거죽이 사물의 뜻을 이미 담고 있다는 뜻이겠고, 사람의 얼굴이 사람의 정신을 이미 담고 있다는 뜻이니, 대단한 찬사가 아닐 수 없다.

아주 멋지지만, 멋지다고 하고 퉁쳐 버리기엔 너무 큰 뜻을 담고 있다.

처음 옷도 귀도 다 그려진 상태였을때도 '실존'이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닳아 얼굴만 허공에 붕 떠 있는 상태인 지금도 '본질'은 훼손되지 않았다.

그러니 실존이 곧 본질이 되는 것이다.

그의 옷이나 귀가 장식이나 기교 따위의 군더더기가 아니라, 고갱이인것은 명명백백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다 닳아 얼굴만 허공에 붕 떠 있는 지금도 고갱이가 흐려지거나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실존이 본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옛것은 답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 옛것에서 얻은 앎이이 되지못하는 것은 옛것의 결함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자의 결핍일 뿐이다.(152쪽)

손철주의 글을 읽노라면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 같아서 황홀하다.

함포고복하고 배 두들기기에 충분하다.

맞춤법이나 어법 내지는 오ㆍ탈자를 가지고 거슬렸던 적도 없기 때문에, 위의 문장은 한참을 쳐다보았다.

처음엔 '함'이라는 낱말이 '힘'을 잘못 적은게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결함(缺陷-이지러지고 빠지다)과 대구가 되려면 '함'은 결함과는 반대 의미여야 되는데,

자꾸 결함의 '陷(빠질 함)'만을 떠올렸다.

앞의 함은 '다,모두'의 뜻을 가진 咸이었다.

이런 문장의 진의까지 깨닫게 되고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비밀 댓글로 저 '함'은 지행일치의 그 '함'인 것 같다고 해주신 분이 계셨다.

그러고 보니, 말된다.

알다와 행동하다, 앎과 함~

 

이 책이 지금의 손철주에게 '딱'이라고 했던 또 하나의 '예'다.

봄날 풍정을 그렸는데 맛문한 여름의 꿀잠과도 맞다. 할 일 없어서 낮잠 자는 게 아니다. 마음이 편해서 잔다. 눈이 바깥을 보면 마음도 바깥으로 간다. 마음을 거두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여름날의 낮잠은 엉킨 시름을 풀어준다. 잠시 눈을 감아보라. 바쁘면 하루가 짧고 고요하면 하루가 길다.(170쪽)

김홍도의 '낮잠'을 설명한 그림이다.

난 닉네임이 '또 자니?'의 'jani'일 만큼 잠에 일가견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하나, 둘, 셋, 레드썬~!'처럼 잠들 수 있다.

그래도 염치라는건 있어서, 

벌건 대낮에 낮잠나는 제자를 보고 공자가 화를 냈다더라...하는 문장을 만나면 마냥 허허로울 수만은 없는데...

김홍도를 편들고 나선 손철주의 저 문장이 내게도 힘이 된다.

하지만, 좀더 이르거나 늦은 나이의 그를 통해서 나왔다면...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못하고 허물어진 담장은 회칠을 못한다는 공자의 지청구를 들었어여 했을 것이다.

 

또 이런 문장은 어떤가?

신윤복의 남녀 통정에는 관계의 금칙을 벗어나려는 모종의 심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관계를 트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관계인데, 관계를 넘어서야 이뤄지는 사랑. 그 사이에서 도리는 갈등한다. 도리가 감시하기에 사랑이 뜨거워지는 그 얄궂은 심리와 정황을 신윤복은 늘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206쪽)

내가 언젠가 읽었다던,

 '우리는 중늙은이다. 얘기는 연애담으로 올라갔다가 금방 회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 젊은 여자들의 물 오르는 푸르름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락한다고 했다. 청춘은 축복이고 여자는 은총인데,축복과 은총을 넘보는 우리의 눈길은 추파라고 했다.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득한 것이 아니라 머쓱한 것이라고 했다'

는 자중자애하는 문장을 통하여 그의 속내를 이미 들여다봤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래야 단원과 혜원을 향한 그의 이랬다 저랬다 하는 찬사가 변심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 구절이다.

단원과 혜원의 진면목이 그러하듯이 조선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 풍속화는 은근한 에로스가 진국이다. 다소 싱거운 듯해도 자극을 걷어낸 담박한 맛이 일품이다. 봄은 덧없다. 오는 듯 가버린다. 그 찰나적 황홀이 한 줌의 재가 될지언정 봄날의 상사는 누가 말려도 핀다. 그래서 사랑은 가없다. 조선의 풍속화는 봄날의 짧은 황홀과 아찔한 유혹, 남녀의 가녀린 떨림과 끌림을 담는다. 되바라지지 않게 묘사된 사랑의 풍속화, 그것이 남녀의 춘심을 바라보는 우리 조선의 오래된 서정주의다.(211쪽)

인생의 봄이나 여름을 살고 있는 사람이, 봄은 덧없다,오는 듯 가버린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다면...누가 콧방귀나 뀌었겠는가 말이다.

'젊은 여자는 봄을 타고 늙은 남자는 가을을 앓는다. 갈바람에 울적한 백거이는 '취한 내 모습 서리 맞은 단풍/발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하며 한숨지었다. 올 가을 단풍에 또 누구 가슴이 멍들까.(225쪽)'

라는 읊조림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 때문에 읽는 이에게까지 전달되는 여운이 있는것이니까 말이다.

강세황은 산수화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바 있다. '진경은 닮게 그리기 어렵다. 참된 것을 감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은 숨겨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인적 없는 산수화가 이윽고 그윽해졌다.(216쪽)

내동 같은 얘기이지만,

나같은 사람이 책 한권 읽었다고 '사람 보는 눈'을 하루아침에 전수받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얘기이고,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을 찾아나서는게 빠르겠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의 제일 끝에라도 가서 줄을 서는게 빠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사람보는 눈'에 관한 비법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쯤 되겠는데,

다시말해 '사물의 거죽'이나 '사람의 얼굴'을 미루어 '사물의 뜻'과 '사람의 정신'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쯤 되겠는데,

말이 쉽지 그게 어디 쉬운 얘기겠느냐 말이다.

계획되고 계산된 여백과 절제의 미, 극소에서 극대의 효과를 끌어내고...따위는 내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계획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냥 마음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데...그것이 자연에 가까운 그런 것이었음 좋겠다.

다시 말해, 난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을 보는 눈'따위는 가질 재간이 없으니,

저런 눈을 가진 사람 근처에서 얼씬거리다가, 간택되어지는게 더 빠를 거라는 얘기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은 감상은, 이쯤으로 정리해야 겠다.

나 같은 凡人들은 그냥 마음 움직이는대로 살아도, 그게 크게 하늘이나 자연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보는 눈' 따윈 의식하지 말고,

한번 사는 인생, 지지고 볶고 웃고 다투고 화해하고 토라지고... 하면서 순간 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 것이다.

신은 내게 따로 '사람 보는 눈'은 주지 않으셨을지 모르지만,

사람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사람 저사람 보고 고르는 유난 떨지않고,

수더분하고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분지족하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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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10 16:18   좋아요 0 | URL
읽을 마음이 있으니 책도 삶도 사람도 읽을 수 있어요.
양철나무꾼 님 스스로 마음이 맑아지고 싶으니
어느 책을 읽더라도 마음이 환하게 맑아지면서 트일 수 있구나 싶어요.

sslmo 2013-11-15 15:48   좋아요 0 | URL
항상 좋고, 긍정적인 말만 남겨주는 함께살기 님.
고맙습니다여, 꾸벅(__)

2013-11-10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3-11-15 15:51   좋아요 0 | URL
흠~~, 책이 무지 좋았습니다여.
저 앎과 함의 귓속말은 쌩유~^^

아무개 2013-11-11 09:10   좋아요 0 | URL
지난번에 보내주신 속속들이 옛그림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이 책도 장바구니에 담아 놨는데, 역시나 리뷰 읽고 나니
사야겠습니닷!!

날이 갑자기 추워졌네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sslmo 2013-11-15 15:53   좋아요 1 | URL
네, 손철주는 강신주와 더불어 절 실망시키는 일이 좀처럼 없더라구요, ㅋ~.
님도요~^^

하늘바람 2013-11-11 11:15   좋아요 1 | URL
님 리뷰는 너무 재미나서 읽고 다시 읽고 싶어져요

sslmo 2013-11-15 15:55   좋아요 1 | URL
음메, 기죽어~(,.)
예쁘고 잼난 동화책까지 쓰시는 님이 거럼 안되는거 아시죠???
동화책 참 좋더라구요,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