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파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2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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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手來 空手去  世上事 如浮雲    

成墳土 客散後  山寂寂 月黃昏

'인생무상'이라는 시 제목을 들먹일 것도 없이, 다른 건 모르겠으나 난 혼자 노는건 자신 있다.
짬뽕공 튀듯 통통거리면서,
이리 저리 넘나들며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심심해 하지 않고 혼자 노는건 자신 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무리에 떨어져 나와 '따'가 되려는 경향이 농후한 '스''따'인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전혀 영양가 없는 엉뚱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나름 바쁘고 분주하게 혼자 놀기의 진수를 제대로 경험해 주셨다, ㅋ~.

아무래도 영화 '관상'을 재밌게 본터라, 책으로도 읽으려고 쟁여두어서 더 그런 것 같은데...
'블랙 에코'가 처음 시작이었고,
이 책 또한 '에코'라는 단어를 포함한 '에코 파크'가 제목이어서 그랬는지,
해리보슈가 어떻게 생겼었더라?@@ 싶어 다시 찾아 보았다.
'블랙 에코' 20쪽에서 찾아냈다.

보슈는 몸집이 크지 않았다. 키는 180센티미터에 많이 모자랐고, 몸도 가느다란 편이었다. 기자들은 기사에서 그를 호리호리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점프슈트 밑의 근육은 마치 나일론 끈 같았다. 자그마한 몸집 때문에 힘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희끗희끗하게 물들인 흰머리는 대개 왼쪽에 더 치우쳐 있었다. 그의 눈은 거무스름한 갈색이고, 감정이나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블랙 에코' 20쪽)

'블랙에코'를 읽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순서가 뒤죽박죽이라서,
그때까지 읽은 전작을 통틀어 해리 보슈의 외형에 대한 가장 자세한 설명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해리 보슈도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어,
그 안에 파란 색인표가 붙은 개별 파일들이 여러 개 담겨 있는 것을 보았지만 너무 멀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갖고 다니기 시작한 돋보기를 끼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혀 불가능(35쪽)해 졌으며, 
담배를 끊은 지 여러 해 되었다지만,
꼭대기에 도착하자 그는 숨을 헐떡였다. 그의 뒤를 바짝 쫒아온 레이첼은 그처럼 산소 부족 현상을 보이진 않았다. 그 이전에 25년 동안이나 피운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346쪽)고 하는데,
왠지 작가 마이클 코넬리도, 주인공 해리 보슈도, 그리고 열혈 독자인 나도 그렇게 그렇게 나이를 먹는것 같아서...
그렇게 그렇게 아무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시려웠다.

암튼 '관상쟁이' 흉내를 내서 '해리 보슈'의 장래를 예측해 본다면,

부모 복, 처자식 복도 지지리 없고,
재산도 없고,
빽이라고 그러던가? 기대고 비비고 구를 언덕 또한 없다.
그런 넘(子)이 정과 낭만은 주체 못할 정도로 넘쳐나서,
평생 외롭고 고독할 상이다.

관상쟁이 흉내를 이 정도에서 끝내야 하는데,
내가 누군가?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 싶은것도 왕 많은 오지랖 아줌이 아니던가?

사실 관상쟁이가 아니라도,
해리 보슈가 여지껏 해온 꼬락서니를 보면...말년이 명약관화하지만 말이다.

해리보슈와 함께 나이 먹고 늙어 가는 동지로서,
부디 기우(杞憂)이기를 바라면서 한마디 오지랖을 펼치자면,
해리 보슈 아자씨, 노령 연금은 들어놓으셨예예?

미국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공적부조가 발달한 나라도 아니고,
명색이 형사이니 공무원 연금이 나오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글쎄~(,.)
물론 지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법을 고칠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나아지기야 하겠지만,
과도기로 한동안이었지만 공무원 월급도 한때 중단됐었던 걸로 알고 있다.

사람이 외롭든 외롭지 않든 간에,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노는건 할 수 있지만,
혼자서 나이 먹고 늙어 가는 건 좀 구질구질하지 싶고,
혼자서 돈도 없이 아프기까지 하면 못할 노릇이다 싶은데~--;
우리의 해리 보슈 아자씨는 나이 먹고 늙어 가는 걸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해리 보슈가 나이 먹고 늙는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에코파크가 어떤 곳인지를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LA 다운타운과 한인 타운 사이에 있는 곳으로,
요즘 류현진이 활약하고 있는 다저스 스타디움이 바로 옆에 있다.
지금은 많이 변모했다고 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흑인과 라틴계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살던 빈민가였다.

해리 보슈는 에코파크에서 편모슬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베트남 전쟁에 땅굴쥐로 참전했다가 군인에서 형사가 된다.
형사가 되어서도 온갖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다 겪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 좀 단단해지고 무감각해 지기도 할텐데,
십수 년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한 미해결 사건에 연연해 하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유약한 면모를 가진 걸로 되어 있다.

내가 해리 보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돌이켜보고 싶었던 이유는,
언젠가 (블랙 에코'였던 것 같다~@@)
그가 베트남전쟁에서 땅굴쥐를 했었다는 전력이 그의 뒤에 트라우마로 따라 다녀 마음 아팠었는데,
이 책 '에코 파크'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 해리보슈가 강력계 형사라는 이유만으로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내맘대로 미루어 짐작했었다.
땅굴쥐의 선발요건은 왜소한 신체조건이 우선라고 하는데,
땅굴쥐였다가 살아남은 자는 얼마 되지 않고,
그들마저도 정신적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는데, 말이다.

결국 해리보슈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가족도 그렇고, 환경도 그런데다가, 본인 스스로도 노력을 하지 않으니,
평안하고 안녕한,
그리하여 심신 양면으로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그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두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열고 내보이지 못하는걸 보고...자초했다고들 하는데,
난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에코 파크 태생이라면 비일비재한 어머니와 단 둘뿐이었던 불우한 어린시절이 그렇고,
그가 잠시 있었다고 하는 매클래런 청소년원이 그렇다.
그렇게 홀로 외롭게 컸고,
홀로 외롭게 청소년기를 맞이하였고,
군대를 다녀오고,
살아남아 형사가 되었다.

한번도 가정의 화목함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로서는,
한번도 아버지이나 누구, 자신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또는 그녀의) 그늘밑에서 평안하고 안녕함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로서는,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면서,
해리 보슈는 에고(ego) 내지는 자아가 강해진 걸로 묘사되는 걸로 미루어,
아내와 이혼 하고 딸도 생기고,
실직이 되었다가 다시 복직하기도 한다.
돋보기를 사용하는것과
담배를 끊은것,
그리고 예전처럼 커피를 양손에 들고 다니지 않고,
술을 냉장고에 채워넣는 걸 까먹기도 한다는 점 따위 말고,
그동안은 '감정이나 속내를 거의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고 했었는데,
딸을 잃은지 13년 된 여자와 전화로 자신의 딸 자랑을 하는 푼수를 유감없이 떠는 등,
삶의 더께가 더해가는걸로 미루어,
그가 쌓아올린 외로움과 고독함의 벽으로 인한 단절 또한 점점 커져만 가는걸 짐작하고도 남겠다.
인간관계는 차치하고라도,
강력계 형사인 그가 직업적으로 전혀 지장이 없을지...
지금까진, 그럭저럭 버텨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법~!
그동안 외로움 방지책으로 사용하던 담배를 끊은 것이나,
커피와 술을 줄인 것이나,
속내를 드러내고 헛헛하게 비워내기도 하는게,
보기에 따라서는 삶의 더께가 더해가는걸로 보일지라도,
그는 나름 이 외로운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한꺼번에 상대를 향하여 마음을 활짝 열지는 못하지만,
이건 딱히 상대로부터 내가 거부당할까봐 두려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느 누구에게고 마음을 열어본 적이 없어서 마음을 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엔 그랬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만이 외로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의 동의어는,
'술도 마셔본 사람만이 마신다'이거나,
'사랑도 해본 놈이 한다'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보슈는 이런 친밀감을 갈망했고 그것이 주는 해방감을 즐겼다. 그는 레이첼도 이런 기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에게 준 선물은 그를 세상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지만 입가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174쪽)

이랬던 그가,

"그런 얘기가 아니예요, 해리. 자기 생각과 똑같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죠. 그런 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여잔 남자한테 안전한 느낌을 원해요.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말이죠. 당신이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걸 본 내가 어떻게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겠어요. 내가 그런 식으로 하고 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난 지금 경찰 대 경찰로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얘긴 난 결코 평안과 안전을 누릴 수 없다는 거예요. 어쩌면 밤마다 당신이 영원히 못 돌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건 못할 짓이에요."
ㆍㆍㆍㆍㆍㆍ
"위험한 직업이잖소."
그가 변명조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아요. 잘 알죠. 그렇지만 오늘 내가 본 당신의 행동은 너무 무모했어요. 나는 무모한 사람에 대해 걱정하기 싫어요. 그런 일 아니라도 걱정할 게 너무 많은데."
보슈는 한숨을 토해냈다.(415~416쪽)

레이첼 월링의 이렇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걱정에 한숨부터 토해내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니까 말이다.

같은 얘기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고 아무나를 향하여 마음을 열게 되지도,
단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그 (또는 그녀)를 맞아들이게 되지는 않는다.

결국 해리 보슈는 나이를 먹었을 뿐 아직 어른이 될려면 한참 멀었거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적어도...누군가를 오랫동안 공들여 품어갖고 마음 속에 들이는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다, 그 얘기가 그얘기다, ㅋ~.

난 이런 사람들의 습성, 내 그것이랑도 닮아 좀 아는데,
자신의 벽을 너무 높고 견고하게 쌓아 놨지만,
어떻게든 한번 균열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어져 버릴까봐,
강한게 아니라 강한 척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견고하고 단단해져서 자기 자신을 우기거나 타인에게 강요하는게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유연해져서 숨통이 트이듯 여유롭고 성글어 지는게 아닐까 싶다.
모쪼록 해리 보슈가 한숨을 토해낼 수 있게 된 그곳으로, 
레이첼 월링, 그녀와 소통 '또한' 도모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책을 읽은 감상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겠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하였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 책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난 언젠가 '하찮은 장르소설'이란 표현을 반어법처럼 썼다가,
알라디너 누군가의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하찮은'이란 단어는 장르소설이 처음 생겨난 배경이,
가판대 옐로우 페이퍼가 시작이었다고 한데서 가져다 붙인 수식어였었는데,
오해를 받은 걸 보면,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부적절한 표현이었나 보다.
어찌되었건, 난 그 '하찮은 장르소설'에 울고 웃으며 목숨걸고 연연해 하는 일개 중생일 뿐이다.
난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장르소설이 발전하고 대접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길 기대하는 한명의 독자이다.

번역이 이상하여 원서와 비교하게 만든 시작은 이 문장 때문이었다.


* 5 foot 6=>1 foot이 12inch이고 뒤의 6은 12inch에 못미쳐 그냥 적어준것이니까,
              5X12=60 inch+6inch=66inch=167.64cm
* 142 pounds Xo.45=63.9
  환산프로그램을 돌리면, 64.410117 =>둘다 어림잡아도 64kg정도이다.


원서와 비교한 건 한두 쪽인데,

난 꽤 촘좀하고 질긴 그물을 가진 낚시꾼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러나,
다 부질없지 싶어...해리 보슈처럼 한숨을 토해 내는것으로 이만 총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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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3-10-19 17:58   좋아요 1 | URL
황색 신문, 황색 언론... 그런 말이 하찮은... 이란 말과 연관되는군요.
장르 소설 리뷰가 가을처럼 깊습니다~ ^^

그렇네요.
168에 65킬로면 적당하지만, 158에 그무게면, 똥똥하단 소릴 들을테니, 덩치가 작은~은 안 맞겠습니다.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아버지들의 죄 밀리언셀러 클럽 12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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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의 작품 중 '무덤으로 향하다'를 제일 먼저 읽었고,

'800만가지 죽는 방법'을 읽었으며,

그리고 이 책 '아버지들의 죄'를 읽었고,

그 후 '죽음의 한가운데'를 읽을 예정이다.

 

이 책을 미룬 까닭은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매튜 스커터'가 너무 멋져서 그 느낌을 해치지 않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였고,

이제 읽게 된 것은, '죽음의 한가운데'가 나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그 '매튜 스커터'가 너무 강렬하였던 나로서는,

책을 좀 읽다가 어느 부분에 이르러 허를 찔린 듯, 다시 처음부터 되짚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어설프게 초보 탐정 행세를 하는 것도,

'800만가지 죽는 방법'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심각한 알콜리즘인줄 뻔히 다 아는데도,

의뢰인을 앞에 두고 버번을 홀짝거리는 상황이 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이 책이 1976년에 쓰여진 '매튜 스커터'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작품 후 '죽음의 한가운데'가,

그 후 '800만가지 죽는 법'이 쓰여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완전 순서가 뒤죽박죽 번역되었으니...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건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이렇게 오래 전에 쓰여져 순서가 뒤죽박죽인 작품이 나에게 감동을 고스란히 줄 수 있는 것을 보면,

작가 로렌스 블록이나, 역자 박산호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매튜 스커터가 짱 멋있거나,

내가 감정이입을 하는 능력이 탁월하거나 둘 중 하나인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 '아버지들의 죄'를 두고,

이 땅의, 아니 우리나라의 보통 아버지들의 삶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았었다.

1976년의 상황을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의 연장 차원에서 생각했고,

그래서 일에 치여 처자식에게 관심 갖지 못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그것을 '죄'라고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래 구절을 읽다가,

그리고 이 책의 원서 제목이 fathers나, a father가 아닌,

'the sins of the fathers'에서 the fathers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책에서  얘기되고 있는 아버지는 그런 모든 아버지들 중 랜덤으로 추출해낸 그런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아버지들을 지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구절에서 카인과 아벨로 대표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지만,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카인과 아벨의 아버지는 아담인 것이다.

아담은 신으로 남아 영생할 수 있었는데,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내쫒기고 인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담은 구백 몇 살까지 살았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할까? 뉴욕에서는 하루에 네다섯 번씩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작년 여름, 지독히도 더웠던 한 주에는 무려 쉰세 명이 살해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 친지, 연인 들을 죽인다. 롱아일랜드에 사는 한 남자는 자식들에게 가라데 시범을 보여 준다고 하다가 두 살배기 딸을 때려 죽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카인은 자신이 아벨을 지켜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인가? 지켜 주든가 아니면 죽이든가?(12쪽)

난 아무래도 장르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이렇게 생각이 엉뚱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장르소설 중 드라큐라가 나오는 <렛 미 인> 따위를 읽다보면,

드라큐라마저도 영생이라는 것을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선악과' 라는 용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선과 악의 구별이 없고,

잘, 잘못의 구별이 없고,

그리하여 죄를 짓지 않아 벌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인간이 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들의 세계라는 것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원래 논리대로라면, 선악이나 잘ㆍ잘못, 행ㆍ불행 따위가 존재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삶이 굴곡없고 그날이 그날 같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삶이 되어 재미없을 것 같다.

(게다가 신들의 세계에도 선악의 구별을 위하여 약간의 악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완벽하게 다 채워져 있어서 더 채워 가질게 결여된 신들의 세계보다는,

잘못을 하고,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그리하여 뉘우치고 나아질 수 있는 '인간'의 삶이 훨씬 맘에 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예로 들어보면,

그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온갖 악행을 일삼는데,

그리고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은 상황에서도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영원히 살아간다.

그렇게 보면, 지켜주는거나 죽이는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필요악인것도 같다.

 

하지만, 이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걸 정당화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지켜주거나 죽이는걸 인간이 할 수 있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그게 인간의 과업이어서는 안되고 신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말이 오락가락, 이랬다 저랬다 이해불가라고?

 

 "좀 전에는 웬디가 희생자처럼 말하더니. 지금은 마녀처럼 말하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192쪽)

모든 사람에겐 양면성이 있다지 않나?

그리고 그 사람에 나도 포함됨은 물론이고 말이다, ㅋ~.
왜  이 성경구절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들은 자기 자식들로 인해 죽어서는 안 되며 자식들도 자기 아버지들로 인해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해 죽어야 한다. (신명기 24:16)
너희는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 갚으신다" 하고 말하지만, 그런 말 말아라! 죄 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제 죄를 깨닫는다. (욥기 21:19)

 

구관이 명관이고,

형만한 아우 없다고 들 하는데, 

그래도 난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이 강하게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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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10-14 22:55   좋아요 1 | URL
800만 가지 죽는 방법, 아버지들의 죄, 무덤으로 향하다, 죽음의 한가운데. 제목도 멋져요, 로렌스 블록은ㅎㅎ(이러다 꺅! 할 기세네요. 히히) 전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는데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의 마지막 광경과 그 대사. 아, 하드보일드 스릴러 읽다 심지어 대사 한 마디로 눈물이 핑 돌긴 처음이야 싶었어요. 좋아할 수 밖에 없어요 매튜 스커더는.

sslmo 2013-10-19 17:41   좋아요 1 | URL
저, 지금 죽음의 한가운데 읽고 있는데...
로렌스 블록도 메튜 스커터도 완전 좋은걸요.
아, 멋져요~^^
저런 남자, 어디 책속에서 걸어나오지 않나?
내가 버선발로 달려갈 수 있는데, ㅋ~.

재는재로 2013-10-15 02:48   좋아요 1 | URL
저는 죽음의 한가운데가 처음이고 이제 무덤으로 향하다 읽는데 매튜 스커더 재미있나요 죽음의 한가운데가 괜찮아서 이제막 시리즈 읽으려고 하는데 죽음의 한가운네 260페이지 정도인데 죽음은 460페이지 정도네요 너무 분량이 많은게 아닌지

sslmo 2013-10-19 17:47   좋아요 1 | URL
장담할 수는 없지만, 두 '죽음'이 로렌스 블록의 압권인것 같아요.
전 '죽음의 한가운데'는 읽고 있는 중이어서 뭐라고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고,
'800만 가지 죽는 방법' 같은 경우는 나름 매튜 스커터만의 묘한 정서와 어조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필 꽂힐때마다 몇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단연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로렌스 블록을 또 찾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ㅋ~.
 
저 많이 컸죠
이정록 지음, 김대규 그림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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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뿐하고 그리하여 마음이 상쾌해지고는 아마 모든 사람의 로망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같은 몸이 가뿐해지고 마음이 상쾌해지는 현상을 가지고도,

시인과 凡人은 다른 결과를 예측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몸이 가뿐한 게, 동시가 솟아오를 거 같아."

ㆍㆍㆍㆍㆍㆍ

"마음이 상쾌한 걸 보니, 두세 편 어깨동무하고 찾아오려나 봐."

ㆍㆍㆍㆍㆍㆍ

동시를 만난 뒤로, 동시가 올 때의 몸 상태를 알게 되었어요.

ㆍㆍㆍㆍㆍㆍ

혼자 가는 오솔길이 아니라 함께 가는 들길이 되었답니다.(5~6쪽, 머리말' 중에서)

오랜 변비로 시달리고 있는 나는,

'몸이 가뿐 마음이 상쾌'...이런 문장을 만나면 당근 '쑤욱~' 시원하겠다...

내지는 날개가 없어도 날라가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날개가 솟듯 동시가 솟아 오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난 혼자인것을 성가시지 않고 홀가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어깨를 떠걸어 의지가 되는 어깨동무를 마음이 상쾌하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오솔길을 외롭지만 고고해서 운치있다고 애써 생각했던 나에게,

더불어 함께 하는 '들길' 소중함을 조곤조곤한 어조로 담담히 읊조리고 있는데,

이게 마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처럼 들려 정겹다.

 

암튼,

"사람마다 오장육보로되 놀부는 오장 칠보인가 보더라. 어찌하여 칠보인가 하니 심술보 하나가 왼편 갈비 밑에 주먹만하게 딱 붙어있어..."하는 판소리 <흥보가>의 한대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줄이고 내려놓기가 참 힘든 존재 임에 틀림이 없고,

이렇게 힘든 욕심을 내려놓아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상쾌해지는 법을 터득한 그가 부러울 따름이지만,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이건 凡人의 영역이 아니니,

탐욕 덩어리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내려 놓으련다.

 

가을 운동회

 

노랗고 쪼그만

배추 속잎

하나하나 차올라

 

속이 꽉 찬

배추 한 통 되지요.

 

배춧속 같은

우리들 웃음

끝없이 울려 퍼져

하늘까지 꽉 찬

배추 한 통 되지요.

 

동시란 어린이가 읽는 시이고,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쓰여진 시이지만,

어린이만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린이도 어른도 같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시를 읽는데, 언젠가 만났던 알라딘 서재 이곳의 ㅅ님이 생각났다.

그때는 봄으로 가는 길모퉁이였는데, 이 시는 '가을 운동회'란 제목이다.

시인의 다른 동시들은 읽는 연령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히고 해석이 가능한데,

그리하여 전연령을 아우르는 시이지,

결코 동시라는 한정으로 가두는게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시만큼은,

분명 어린이가 읽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고 단어들이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론 여간해선 가을 운동회랑 배추를 연결시킬 수가 없지 싶다.

내가 사람들 지나다니는 전시용 화분의 배추('봄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를 보고도,

ㅅ님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꽃이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동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다, 동시여서 더더욱,

'어린이라면'이 아니라 '어린이로 돌아가' 경험하고 느낀걸 옮겨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거야>페이퍼 링크

<꽃으로 말해줘>길들여진것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것 사이의 관계-리뷰 링크

어린이가 읽어도 좋고,

어린이로 돌아가고픈 어른이 읽어도 좋겠다.

아니다, 동심을 닮고픈 어른이 읽어도 좋겠다. ^^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내가 한권의 시집을 읽는게 아니라...

온갖 공감각을 사용하여 흡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긍정적인 에너지 조각조각 부스러기들을 얻어오는것 같고,

그리하여 어느새 내게도 긍정에너지가 스미고 물드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에 나오는 사람들도 하나 같이 시인표 사람 좋은 웃음을 빼닮았다.

'원 플러스 원'에선 민지 민정이가 서울 이모랑 마트에서 까르르 웃고,

'훌라후프 돌리는 별'에선 아빠가  엉덩이를 빼며 웃는다.

'꼴등 아빠'에선 '나처럼 눈웃음은 백 점'이어 주시고,

'닭발'에선 '통닭'을 시켰다며 아줌마에게 애교웃음을 날린다.

암튼 웃음의 형태와 이름은 다르지만,

내겐 '속 좋은 듯 허연 이를 한껏 드러내고 눈꼬리에 자글자글 주름을 만들어가며 웃는' 시인과 시인의 어머니 표 웃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ㅋ~.

그래서 사람들이 창작의 고통을 산고에 비유하고,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나 보다.

작가는 돈 굳어 좋겠다.

친자확인소송 비용 따윈 들이지 않아도,

읽으며 어떤 형태로든 웃음 웃게 되거나 무한 긍정 에너지가 솟아오르면,

딩근 시인의 작품이니 말이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하는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소박하되 찬찬히 그 안에서 한단계 한단계 밟아나가는 꿈을 가르친다.

 

하긴,

이런건 어찌 이해해야 하나 모르겠다.

서울에선 생일잔치를 숯불갈빗집에서 하지 않는다.

햄버거 집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패밀리래스토랑 같은 곳에서 한다.

이런 걸 옛날에 해학이라고 배운거 같은데...ㅋ~.

 

숯불갈비

 

숯불갈빗집에서

생일잔치를 했다.

 

양념 갈비에

물냉면도 먹었다.

 

입가심으로 수박이 나왔다.

 

수벅도

고기 구워 먹었나?

 

이쑤시개 물고 있다.

 

 

 

눈사람

 

눈사람은 살빠지면 죽는다.

 

햇살 다이어트가 가장 위험하다.

 

 

참 잘했어요.

 

선생님은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꽝꽝 찍어 준다.

 

"얘들아. 안 볼 거야."

 

일기를 훔쳐보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강아지 잃어버려서

엉엉 울었다, 밑에도

"참 잘 했어요."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피가 났다, 옆에도

"참 잘했어요."

 

칭찬이 너무 많은

담임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언제 한번, 우리도

박수 쳐 보나?

 

이 시는, 요즘 내가 이모티콘을 쓰면서 느끼던 한계를 같이 느끼게 해주었다.

이모티콘이 참 편리하고 간편하지만,

내 감정과 상황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다만, 카카오톡의 대화에서 읽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때...빨리 편하게 사용하는 이모티콘을 닮아서...

웃으면서 눈물이 났다.

 

 

분명, 이 시들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인데...난 시인의 어머니를 만나는 듯 착각이 드는 구절이 있다,

반가웠다.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선생님이 빨간 글씨 써 놓았다.

-- 그건, 어머님들이 하느님을 업어 주는 거란다.

                                   ('생강밭 하느님' 부분)

 

할머니는 내편

 

"왜 자꾸 틀리니?"

엄마가 꾸중하면,

 

"어미야, 걔도 틀니니?"

시인이 아무리 얘기하여도 동시를 쓰는 마음은 모르겠고,

동시를 읽는 마음은 내내 기쁘고 행복했었다.

다음 작품은 '동화'라고 한다.

동화 읽는 마음은 어때야 할지 모르겠지만,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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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10-07 10:06   좋아요 1 | URL
이정록 시인이 동시를 쓰는군요 하 좋아요

2013-10-07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10-07 15:32   좋아요 1 | URL
재미있을 것 같네요.
아이랑 함께 읽어봐야겠어요. ^^

순오기 2013-10-07 18:08   좋아요 1 | URL
요 동시집 지난달에 구입해서 읽었어요.
이정록 시인은 이제 이름만으로 책을 사는 그룹에 들어있거든요.^^
인용한 시들은 나도 좋다고 표시해놓은 시들이네요.
봄동의 추억은 무한리필이고요.ㅋㅋ

yamoo 2013-10-08 12:50   좋아요 1 | URL
저는 참 잘했어요, 저 도장만 눈에 들어 오는데요~ㅎㅎ
저는 아이가 없는지라 뭐라 드릴 말씀은 없고....그냥 양철나무꾼님이 잘 지내시는 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미생 9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종국, 완결 미생 9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전 오랫만에 애인과 데이트를 했다.

결혼해 고2의 아들을 둔 아녀자가 애인이라고 하면,

화득짝~놀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려고들 들지만,

愛人-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귀하고 즐거운 시간은 다름 아닌 울아들과의 쇼핑 되시겠다.

 

누굴 닮아 패션 감각이 뛰어난건지 또는 까탈스러운건지,

남들이 아무리 멋있다고 칭찬을 하고 부추겨도,

자기가 내키지 않으면 입고 쓰고 걸쳐주질 않으시는고로 내겐 지독한 강행군이다.

 

자식이 부몰 닮지 누굴 닮겠냐고 하지만,

지 딴엔 한껏 멋을 낸다고 냈는데, 내 눈엔 눈꼴신 경우가 한두번이 아닌 걸 보면...결코 내 쪽은 아닌 게다.

 

며칠 전부터 무슨 모자를 산다고 노래를 불러대는데,

묘사하는 걸 머릿속에 상상하여 그려보니...소위 힙합모자다.

"학생이 지금 날티나는 힙합 모자를 쓴다는 거니?"

"왜 안되는데...?"

"너,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커서 모자를 '투 엑스 라아지' 를 쓰면서,

 모자 챙이 반대로 뒤집어진 힙합 모자를 쓰면 완전 여라 동산인거 알지?"

난 이정도 충격적인 언사를 사용하면 포기할 줄 알았다.

"엄마는 왜 써보지도 않았는데... 쓴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된다는 거야?

 일단 쓴걸 보고 나서,

 그게 엄마가 상상하는 그 모자가 맞는지...

 정말 엄마가 상상하는 대로 날티나는지 아니면 어울리는지, 판단해도 늦지 않잖아?"

하고 일목요연하게 따지는데, 난 암말 못하고 입 다물 수밖에 없었고,

녀석이 모자를 골라서 쓴 걸 본 후에는 완전, 급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쓴건 분명 '야구모자'였는데, 간단히 챙의 굴곡을 한번만 반대로 뒤집으면 '힙합모자'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주제파악을 좀 하는 녀석은 챙의 굴곡을 반대로 뒤집어 힙합모자로 쓰는 만행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

 

"야구모자라고 말을 하쥐~~~~~"

난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녀석은 이미 내가 뱉어낸 뾰족한 말들로 상처를 받았을 터였다.

"이미 여러차례 얘기를 했거든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계하던게,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멀게 되는거...

타성에 젖어 아무 생각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반복하게 되는 거...이런 거였다.

사람들, 심지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은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친근감이 아니라 누추하고 소박하더라도 진실된 마음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깨어있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세월 흐르고 나이가 먹어도, 난 눈 밝히고 마음 말랑말랑하게 하고 살자고 다짐했었는데,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을 고집하게 되는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고 늙나 보다.('그녀의 취향' 페이퍼 링크)

 

 

늘 그대로인듯 하지만 눈곱만큼씩 변하는게 세상이고 삶이라지만,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완전 범생이과여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만 사는 꼭두각시 유형이었는데도,

그럭저럭 여기까지 버텨왔던건 시대를 잘 만난 탓이지 싶다.

난 언젠가부터 (그래봤자 시어머니 돌아가실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신통방통한 생각도 해가며,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기분 내키는 대로 '배째라, 나몰라라~' 하고 버티기도 해 보지만,

남들이 보기에 상어른인 남편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어른들에게 '예스맨'으로 통한다.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토다는 법이 없다.

'예' 한마디로 끝이다.

 

뭐, 어떤 땐 내가 치마 저고리만 안 입었을 뿐이지,

봉건시대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때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혼자 해결을 보려고 하지,

나나 아들에게까지 확장시키지 않아 그럭저럭 건너간다.

세상은 더 이상 혈연이나 지연,또는 학연 따위에 의해 얽힌 어느 특정한 이들만을 위하여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평범한 내 자신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목소리를 내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내 자신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말 그대로 '내 인프라는 내 자신'인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예스맨'을 원하지도 않지만,

내자신을 말끄러미 들여다보고 앉아서 내 자신의 인프라가 뭔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거울에 내 자신을 비추듯, 또 다른 나를 보고 있는 듯 하여...

나의 인프라를 알아 차릴 수 있는게 바둑의 '맞수' 다른 말로 '호적수'가 아닐까 싶다.

드이어 흑이 돌파를 시작한다. 흑▲ 때 준비해둔 그 시나리오다.

포위망이 뚫리느냐, 대마가 죽느냐. 이 한 판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지금까지의 수순은 모두 이 장면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비정한 바둑판에서 삶과 죽음은 동의어나 다름없다.

한쪽의 삶은 다른 한쪽의 죽음과 닿아 있다.(123쪽)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친절한 해석을 9권'완간'에서야 보았다.

'아직 살아있는 못한자'라는 말은, 언젠가는 살아있게 된다는 뉘앙스로 들리지만,

'완생'도 왠지 좋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채워가질 수 없는 결여'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삶에 대입시켜 봤을때...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멀고, 타성에 젖은 내 자신의 모습은,

완생은 꿈꾸지도 않았지만,

미생 또한 아니어서,

방향성을 띠지 못하고 고착되었으니 퇴보나 매한가지다.

 

경쟁자 뿐만 아니고,

마음맞는 동료와 친구라든지 제대로 된 사수 등,

삶을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맞수' 또는 '호적수'이고,

그를 가늠하여 거울에 나를 비추듯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일테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내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진다.

시야와 생각도 점점 좁아진다.

자꾸만 한계에 부딪친다.

 

하지만, 거울에 나를 비추듯 하는 '맞수' 또는 '호적수'는 내 삶을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시킨다.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멀게 하거나,

타성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고,

내 스스로 기꺼이 변화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제 겨우 1부 완결인데 벌써 2부를 기다리는 난 뭐란 말인가? ,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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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05 19:56   좋아요 0 | URL
앞으로 언제나 아들하고
즐겁게 마실 다니면서
재미난 이야기 일구셔요.

아들도 어머니하고
재미나게 마실하기를 바라리라 믿어요.

감은빛 2013-10-07 15:38   좋아요 0 | URL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잖아요.
그러니 장그래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존재가 아닌,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훌륭히 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요?
전 이 만화 왠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끝까지 다 읽긴 했어요.(웹툰으로)

순오기 2013-10-07 17:53   좋아요 0 | URL
애인과의 데이트~ 아들 가진 엄마는 척 알아들어요!^^
나도 지난주에 휴가나온 아들과 영화보고 점심먹고 쇼핑하고 제대로 데이트했어요.ㅋㅋ
오랫만에 서재들러 리뷰도 읽고 안부도 전합니다.

2013-10-0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 - 이권우의 책읽기와 세상읽기
이권우 지음 / 황금비율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마다 읽을 책을 마련하는 방법이 각양각색이겠지만,

난 서평집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쓴 리뷰를 보고 고른다.

지금은 읽지 않고, 아니 읽지 못하고 쌓아올린 책탑이 오늘 무너질까 내일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느라,

아주 많이 자제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의 리뷰나 페이퍼, 또는 서평집 따위는 책을 고르는 나만의 '보물찾기'비법이다.

뭐, 그렇다고 하여...다른 사람의 리뷰나 페이퍼, 또는 서평집의 내용을 정독, 숙독하는 것은 아니고...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나 하고 경향을 탐색하고 훔쳐보는 정도라고 해야 겠다.

독서 취향이 나와 비슷하면 비슷해서 좋고,

독서 취향이 나와 다르면 다른대로,

눈에 띄는 책들을 골라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만들면서 내내 행복하니까 말이다.

 

'이권우'는 <죽도록 책만 읽는>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을 읽다가 그의 전작들을 다 찾아 꼼꼼히 챙겨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던것 같다.

라디오를 이리저리 돌려 듣다가 '방현주의 라디오 북클럽' 이라는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고,

그 방송의 '책마을 소식'이라는 꼭지를 그가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지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로,

책을 읽지 않거나 대충 발췌하여 읽고도 독서를 한듯 만용을 부리고 서평을 써댈 수는 있지만,

그가 책을 소개하는 방법은 다소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되어서,

절대로 읽지않은 책을 막무가내로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그가 내세우는 주관적인 견해가 책에 어떤 대단한 영향을 미치겠는가...라고 하겠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그가 특별한 서평가나 독서가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한사람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나도 이곳 알라딘 서재에 둥지를 튼지 제법 되었다.

내가 리뷰나 페이퍼를 쓸때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인터넷 검색 몇번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줄거리나 내용은 될 수 있으면 적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 책이나, 그 책을 읽을 때의 상황과 관련된 주관적인 느낌을 기록해 두기위해 노력한다.

읽지 않은 책을 가지고, 내맘대로 작문을 하거나 추측난무한 글들은 쓰지 않는다.

칭찬 일색의 주례사 서평이나 리뷰, 댓글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주관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서평이나 리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목적과 방향이 없이 온통 책들로 도배된 책소개 페이퍼가 참 싫어,

그런 글은 보려고도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암튼, 내가 이권우를 가지고...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나와 묘하게 독서 취향이 겹치기 때문인것 같다.

난 아직 <정보는 아름답다>류의 책에 관심을 갖고 소개하는 서평을 또 못봤다.

  도표나 그림으로 표현해서 내용을 더 극적으로 바꾸는 예도 있다.ㆍㆍㆍㆍㆍ주문하면서 눈치보지 않으려면 이 항목을 보면 좋다. 마로키는 에스프레소+초콜릿 파우더+ 우유 거품으로 이루어진다. 많이 마시는 카페 라테는 에스프레소+ 따뜻한 우유+우유 거품이다. 역시 많이 마시는 카페 모카는 약간 복잡하다. 에스프레소+초콜릿 시럽+따뜻한 우유+휘핑 크림이다. 아이리시는 에스프레소+물+위스키+휘핑크림이다.(42쪽)

<정보는 아름답다>라는 책을 가지고 '주문하면서 눈치보지 않으려면'하면서 너스레를 떠는게,

의뭉스러운것 같으면서도 맛깔나다.

책은 어찌보면 지극히 고전적인 도구이다.

<정보는 아름답다>라는 책은 어찌보면 이렇게 고전적인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가뜩이나 책을 읽는사람, 개 중에서 종이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어떻게 하여야... '도표나 그림으로 표현해서 내용을 더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하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 할 수 있고,

그리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을지...

대책과 보완책을 강구하는 의미에서도 생각해볼만 하다.

  이 시대, 우리가 왜 소설을 읽고,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전율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49쪽)

이렇게 멋진 프로포즈를 해대는데, 그가 권하는 책을 안 읽고 견디겠는가 말이다.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 것은, '강신주'이다.

이권우가 꼬집어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신주의 책들을 읽은 이권우라면...

그리고, '푸페이룽'의 '장자교양강의'라는 책을 소개할 정도의 내공이라면,

강신주의 장자 해석법이 푸페이룽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권우는 아무것도 모르는듯 은근슬쩍 퉁치고 넘어간다.

ㆍㆍㆍㆍㆍ양의 동서를 넘나들며 장자를 이해 가능하게 풀어 준다는 점에서 <장자교양강의>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오로지 비교 철학 관점에서만 장자를 풀고 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붕이 왜 하필이면 남쪽으로 날아갔다고 했는가 하면, 구대 중국인들은 남쪽을 빛의 상징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근거로 해, 지혜를 추구하고 장자를 풀이하고 있다.장자를 무성한 이야기 책으로 읽어도 된다. 그래서 통이 크고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 이왕이면 푸페이룽의 새로운 해석에 기대 읽으면 더 흥미로울 터다.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삶의 지혜라는 알맹이를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46쪽)

 

이권우가 좋은 이유는 또 하나, 같이 읽어볼만한 책들을 적절하게 권해준다는 것이다.

안 좋은 점은, 제대로 지름신 강림이다.

읽어 없애기보다는, 읽고 싶어 새로 들이는 책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 책을 향하여서만 지름신을 보내시진 않는다.

  세상은 변하는 법이다. 굳이 석가가 남긴 마지막 말이라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한다. 이즈음에는 그냥 변한다고 말하면 적절하지 않은 듯싶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다고 해야 할 성싶다. 그런데 묘한 일이 있다. 다 변하는 듯 싶은데, 변하지 않는게 있으니 말이다. 여기저기서 고전이라는 우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는 풍경을 보면 딱 그렇다.ㆍㆍㆍㆍㆍ한마디로 만시지탄이나 반가운 일이다. 본디 세상일이 그런 법이다. 근본으로 되돌아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마르지 않는 샘이 고전이다. 문제는 그곳으로 달려가지 않는 데 있다.(59쪽)

이쯤되면 눈치 챘겠지만, 고전을 향하여서도 골고루다.

 

옛말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이권우가 권하는 책들이랑 놀다가는 파파 할아버지, 호호 할머니가 되는 것은 눈깜짝할 새일 것 같다.

나이 들면서 가장 무서운 새가 '눈깜짝할 새'가 아닐까?

이권우를 소개하는 것까지만 내몫이다.

이권우가 권하는 책들은 내 소관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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