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술연구소 -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
제현주.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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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신이 드로메다로 탈출하는 부류는 아니고, 내 자신을 들들 볶는 안달루시아 과였다.

아니 물속에서는 아둥바둥 간힘을 하며 수면 위로는 우아한척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 과라고 해야 하려나?

이제 나이를 먹어 나아진건지,

아님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놓으려고 하다보니 편안해진건지,

그 상관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서도 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렇게 계속 살다 보면 인생 잘 살았다고 어느 시점에선가 생각할 수 있게 될까?'

하는 막막한 질문에 부딪히는 시기가 있나 보다.

그냥 하루하루의 '일상'에 충실하고 좀 더 행복하게 채우고 싶다고 만든 팟 캐스트 프로그램이 '일상기술 연구소'이고,

그걸 책으로까지 만들어 낸걸 보면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요즘 트렌드를 한박자 늦게 받아들이는 건지,

팟 캐스트 프로그램 제목을 들어본 일이 없었고,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일상기술연구소'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이 책을 펼쳤다.

 

책표지의 이 그림도 일조하였다.

대단한 그림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의 일상은 이 세컷의 그림이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지개를 켜는 그림이면 일상생활의 지난함 쯤은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고,

결론적으루다가 얘기하면 참 괜찮은 책이긴 하지만,

이런 책이 이제서야 나온게 아쉽다.

조금만 일찍 나왔더라면,

좌충우돌하며 보낸 나의 과거가 좀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이는 부질없는 것,

인생을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을 '쫌' 살아본 나도,

이 책을 통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 몇 가지 정도는 습득할 수 있었다.

기술이라기 보다는 마인드가 더 정확한 표현일수도 있겠다.

언제고 어디서든 궁금한 것은 탐구하면 되고,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그걸 이 책에서는 '가르친다, 배운다' 라는 표현보단 '공유'라고 얘기한다.

 

그동안의 나는 뭐든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두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조차도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

버거웠지만 대놓고 배척할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우선 순위를 정하는 법을 알려준다.

혼자서 뭐든지 잘 할 수 없으니,

손 내밀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별법' 같은 것도 '기술'이라기 보다는 '기준'을 정하는 마음가짐 같은 거다.

제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요.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값으로 환산해서 당당하게 요구하느냐입니다.

시간당 얼마, 이런 식으로요. 자기 기준이 없으면 남의 기준에 끌려갈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당당히 물어보는 편입니다. 그 일은 시간당 계산하면 어떻게 돼? 그랬을 때 딱 나오는 사람은 프로예요. ㆍㆍㆍㆍㆍㆍ미리 정한 기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해주어도 마음이 괜찮을 것 같으면 단가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면 그냥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32~33쪽)

 

'돈 관리의 기술' 같은 것도 아주 유용했다.

여지껏 돈과 관련하여 나만의 소신있는 기준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돈 얘기를 한다는건 왠지 겸연쩍었고,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추상적인 생각만을 갖고 있었다.

 

이 책에선 물건을 사고 났을때의 기분을 계속 필터링 해봐야,

다시 말해 20, 30대에 계속 해봐야,

40, 50대가 되었을때 경제생활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덟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다는,

멀티 테스킹이 되는 이로의 얘기도 흥미로웠다.

어쨌든 기술이라고 치면, 스스로 깎아먹는 얘기라는 걸 아는데요. 뜻이 맞는 사람을 모으지 않아요. 제가 정한 기준의 하나가 가까운 사람하고 일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주로 뜻은 가까운 사람하고 맞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의기투합 하거나 으쌰으쌰 한다는 측면이 제가 일할 땐 아예 존재하지 않고요. 그냥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까,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한 팀을 꾸리고요. 일을 할 때도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고 이메일이나 문주로 소통하고 클라우드 상에서 보통 일을 한 뒤 결과물을 낸 다음에 다시 흩어져요. 회식도 잘 안 하고요.(69쪽)

일의 종류나 성질에 따라 약간은 다르겠지만, 나는 웬만해선 멀티 테스킹이 불가능하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그런 반면 내 자신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고,

누군가에게 내 자신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은연 중에 내가 아니까 상대방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띄엄띄엄 스킵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금고문, 금정연 님의 삶도 인상 깊었는데,

저는 원래 진짜 개인주의자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저 혼자 자랐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사실 책 읽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있는 게 질린다고 해야 할까요? 에너지가 떨어지고 자기 자신하고 같이 있는 게 더는 재밌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점점 더 사람들하고 같이 하는 걸 찾게 되는 것 같아요.(129쪽)

 

나랑 비슷한 것 같지만 어느 부분에서 확연하게 반대이다.

직장에서 사람에게 치이고 관계에서 힘들어한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있는 삶을 꿈꾼다.

말을 할수록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모되고,

쉬면서, 여백 속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단순히 가르치고 배운다는걸 너머 '공유'하는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 정점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닐까.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더불어 사는 것이나 역할 분담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어려움이 존재하는데,

가족이 아닌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은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함께 사는 것'을 얘기를 통해서 조율하고 풀어나가는 방법도 긍적적이지만 쉽지는 않을터,

그렇게 '함께 얘기 하며 풀어나가는 자체'로 스트레스 받고 버거워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책의 많은 '기술'들이 처음엔 적용 불가(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가만히 얘기를 듣다보니(실상은 책을 읽은 것이지만,)

천천히 마음을 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토론을 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이전에,

기술자(?)가 하나하나 이론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걸 제책임 님은 이렇게 갈무리하는데,

ㆍㆍㆍㆍㆍㆍ말씀하신 것처럼 보편적인 기준,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상 혹은 평균치라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서 자기만의 질서, 조직화를 꿈꾸면서, 또 시도하면서 살아가는 분(156쪽)

이것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그리고 그들의 삶이 그럴듯 하고 부럽기는 하지만,

난 나름대로의 내달림 사이의 쉼,

가득 찬 삶이 아닌 여백을, 사랑한다.

 

뜨문 뜨문 넘기며 훑듯 읽어도 좋겠고,

앞에서 뒤까지 차근차근 정독을 해도 좋겠다.

그러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엿볼 수도 있겠고, 함께 공유하고 터득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때론 삶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고,

일상을 사는 기술까지 연구해야 하는건가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걸 어쩔 수 없다.

그런 '일상 기술'에 대비하여 '딴짓'을 생각해 봐야겠다.

일상기술연구소 만큼 딴짓연구소도 근사하니까 말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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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9 05:46   좋아요 1 | URL
일상기술연구소 팟캐스트 저는 대개 따분하더라는. 게스트 좋을 때는 가끔 노다지ㅎ
프로페셔널한 제목이나 금고문 정도 나오는 프로치고 뭔가 참 동네반상회 같이 심심함요ㅎ; 소위 정보 팍팍 팟캐스트 스탈이 아닌게 패널 성향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조용한 팟캐스트 듣고 싶다 싶을 때 들으면 좋더군요. 김영하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 비슷한 효과ㅎ;

sslmo 2017-06-30 09:2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전 지금 일부러 챙겨듣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은 없고,
‘서울부부의 귀촌일기‘라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남자가 음악을 한다고 하는데...은근 잼나요~^^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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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라는 제목의 김규항 아포리즘이란다.

김규항이 짓고 변정수가 엮었단다.

 

개인적으로 김규항의 글들을 완전 좋아하는지라,

이 책도 그러할 줄로 알았다.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도 그렇고,

리본끈으로 만든 책끈도 그렇고,

하드 커버의 장정도 좋았다.

 

그런데 몇 장을 넘겨 읽다가,

이 글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고 해야겠지만,

.

.

.

철푸덕~OTL

그렇지 않았다.

 

김규항의 책을,

아니 그의 글을 몇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의 글은 응축되고 집약되었으며 단정하다.

그의 '문장론'의 일부만을 봐도 그의 글쓰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움 같은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모름지기 글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내 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  '김규항'의 '나의 문장론'중 일부 -

 

물론 이런 그의 글쓰기 방식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이 책도 좋았다.

아포리즘이라는 격언이나 잠언집의 형태도 맘에 들었다.

그런데 그의 홈페이지나 다른 책들에서 보았던 글에는 연도와 날짜가 있었고,

제목이 있어서,

얘기하고자 하는 논점을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반면,

이 책에서는 글을 쓴 연도와 날짜, 제목도 없어서,

격언이나 잠언집이라는 함의는 알겠는데,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얘기를 하고자 쓰여진 글인지,

전달하는 바가 모호해진다.

 

그동안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서 좋았는데,

요번 책은 앞, 뒤 자르고 중간만 뭉뚱그리는 식이다.

어느 사안과 관련됐던 글인지 내 기억을 더듬는데,

내 몹쓸 기억력은 가물거리는 걸로 부족해서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며, 김규항 홈피의 이 글을 보여주었다.

이게 좌파 아닌가 했더니,

 

우리나라에 좌파는 없다.

좌파가 설 자리가 없다.

좌파는 설 여지가 있어야 생기는 거다.

김규항의 저런 정도 사고는 건전한 보수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이런 걸 묻길 기다렸던 듯 이런 얘기도 했다.

 

건전한 보수가 나라를 더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건전한 보수가 망하면 좌파는 죽는다.

심상정의 정의당처럼 건전한 보수를 세우는데 일조해야지

날을 세우는 건 좌파가 지금 할일이 아니다.

 

열변을 토하는데, 내가 뭐라고 했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구분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예수전을 쓴 그의 저력에 미루어 종교적으로 해석해도 좋겠고,

나처럼 그냥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완전 좋다.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가진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위험하거나 적어도 섣부르다.(7쪽)

 

어느 단계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수정란, 아니 난자 한 개라도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될 생명이지만, 진정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단계'부터다.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존중할 순 없다.(10쪽)

 

내가 김규항을 '이게 좌파가 아닌가'했던 것은 오랫동안 보아 온 아래 글과 관련해서 이다.

 

세상은 '청년 시절에나 하는 운동'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일생에 걸쳐 지속되는 신념들로 바뀐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21쪽)

 

친구가 하는 얘기를 이해 못 하겠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용어를 만들어 내는 건 결사반대다.

 

좌파도, 우파도 내겐 너무 어렵기만한 고로,

난 쪽파든 대파로 살아야겠다.

 

암튼 종교나 파를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읽어도 좋았을테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읽어도 좋았다.

 

이렇게 저렇게 넘기며, 한구절씩 외워두었다가,

격언이나 좌우명처럼 한번씩 써먹어야겠다.

 

입안에서 궁글리며 묵히고 벼려야겠다.

 

                    

2005/08/12 11:422005/08/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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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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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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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6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이 지지리도 안 읽히는 요즘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책이 안 읽히면 안 읽히는 걸로 스트레스 받고,

그걸 트집잡아 내 자신을 들볶았겠지만,

요즘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밀도가 낮아지는 번짐 기법처럼,

밖으로 희미하게 흐트리고 지우려고 하고,

안의 것들만 온전히 모아 정수라며 응축시키려 든다.

이러한 것들도 일부러는 아니다.

안 읽히면 안 읽히는 대로 내버려둔다.

.

.

.

라고 쿨한척 어깨를 으쓱하고 말아야 하는데,

지름신이 강림하사 책은 대대적으로 들이고 말았다.

알라딘 굿즈인 예쁜 티셔츠가 탐나서...였다는 안 비밀이다, ㅋ~.

 

다섯 권의 책을 들였는데, 1등 공신은 김규항이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김규항은 내가 허물어지거나 무너지려 할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다잡아 준다.

그렇다고 살갑게 말을 건네거나 자상하게 위로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냥 어깨를 한번 툭 치거나,

신발코를 땅에다 문지르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식으로 말이다.

 

 

 

 

 별★종의 기원
 박주민 지음, 이일규 엮음 /

 유리창 / 2017년 6월

 

그리고,

박주민의 책은 처음인데,

우리 옆동네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잡스'라는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섯 권의 책을 들이는 마당이니,

적어도 다섯권은 방출시키려 열심히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켄폴릿의 '20세기 3부작 시리즈'의 2번째 편인 '세계의 겨울' 두권이다.

 

세계의 겨울 1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세계의 겨울 2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전세계 1억 5천만 독자가 격찬했다는데,

부러워서...인정하기 싫어 버팅겨 보지만,

책을 펼쳐 몇 장을 읽기도 전에,

나도 거기에 숫자 1을 기꺼이 보탤 수밖에 없었다.

정말 좋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섯 가정이 이리저리 뒤얽혀가는데,

물론 얘기가 전개되고 펼쳐지려니까 그랬겠지만,

각 나라와 등장인물마다 나름대로 이념과 명분을 가지고 있는 게 설득력 있었다.

'거인들의 몰락'에 이은 두번째 단계여서,

거기서 주축이 되었던 주인공의 자식들이 전면으로 배치되는데,

십대 후반의 그들은 뭐, 지금의 나보다 성숙한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의 장래를 향해서도 분명하고 똑 부러진다.

거기다가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주도적이다.

어찌되었건 전 세계와 시대를 통틀어서 전쟁만큼 끔찍한 악행은 없고,

때문에 히틀러가 위악인 거겠지만,

세계사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도,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만행은 너무 끔찍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은 물론 소설이지만,

소설 속의 내용보다 더한 내용들이 그 시대에 펼쳐졌다는걸 상기할 필요가 있겠고,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겠다.

책 속의 모드와 에설도 그렇고 데이지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이어서 그렇게 강한 자를 심어준 것이겠지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간 그녀들이 부러웠다기 보단,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럴 용기가 없다는 사실이 돌이켜 안타까웠다.

 

좋은 책이고 재미도 있지만,

3부를 마저 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허영만 님의 식객 2부 3권도 읽었다.

 

 

 

 

허영만 식객 Ⅱ 전3권 완간세트
허영만 지음 / 시루 / 2014년 6월

1부는 다 읽지 못하고 띄엄 띄엄인 채로 2부를 읽어도 재미있었다.

설정을 그렇게 새서 그렇겠지만,

음식과 재료랑 관련된 부분은 직접 몸을 움직여서 재료를 구하고, 경험에 기초해서 탄탄했다.

 

'달래'라는 명명과 관련하여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다고 해서 달래라 부른 게 아닐까?'(1권 136쪽)

같은 부분도 재미있었다.

감자를 소금이나 설탕이 아닌 된장에 찍어먹는것도 신기했다.

그냥 만화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런 장면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런 부분도 그렇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인용한건 더할 나위가 없다.

 

난 그렇지 않아도 편식이 심한 편인데,

나이를 한살 더 먹을수록 먹고싶은게 점점 줄어든다.

새로운 맛집이라고 해도 찾아가보면 거기서 거기이고,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며 MSG를 잔뜩 넣거나 종잡을 수 없는 맛을 가지고 모르면 말을 말라며 횡포를 부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입에 맞았던 움식은 맛있거나 근사한 음식이 아니었다.

어렸을때 먹었던 소박하지만 따뜻한 음식들이다.

오랜 기억 속에 묻혀있던 음식들.

추억을 돌이키고 그때로 소환하는 음식들.

그러고보면 사람의 기억력만큼 가변적이고 믿을게 못되는게 없고,

사람의 입맛처럼 따뜻한 추억과 강력한 케미를 이루는게 없다.

 

버리고 비우겠다고 설레발을 쳐도,

추억마저 버리고 비우면 남는게 없고,

바리바리 움켜쥐고 있다가 죽을 때 싸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쨍쨍한 6월의 어느날,

평상 깊숙히 뜨거운 볕이 들어오는 어느날,

누군가와 그렇게 무심히 앉아 찬밥에 물말아 한술 떠먹었으면 좋겠다

그걸 찬물에 물말아먹는 사랑이라고 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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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7-06-22 09:23   좋아요 0 | URL
흰색은 세탁에 자신이 없어서리~--;
책 다섯권을 고르는데, 사은품으로 딸려오는 알라딘 굿즈가 8개인가 9개였다는~.
저는 다른건 과감하게 패쓰해 주시고 껌정 티 하나만 골랐는데,
옷감도 톡톡한 것이 면 백프로라서 나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6월의 사은품이라고 되어 있어서,
다음 달까지 남아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6-21 22:36   좋아요 1 | URL
예.. 알것 같아요

찬밥에 물을 말고, 얼음도 한두개 떠있고,
아삭한 오이지와 한술 떠먹었던 기억..
함께 했던 시간.. 사람.. 그리고 그리움

사랑이였네요

sslmo 2017-06-22 09:27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셔서 완전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김규항을 읽는데,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라고 얘기해요.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는 말과 함께요.

그래서 님의 댓글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꾸벅~(__)

cyrus 2017-06-23 15:21   좋아요 0 | URL
저도 가끔 책이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2, 3일 동안 북플에 접속하지 않아요. 그 기간동안 책 한 권 거뜬히 다 읽을 수 있어요. ^^

sslmo 2017-06-27 09:55   좋아요 0 | URL
아웅~, 이 댓글을 이제 봤네요, 죄송~(__)

전 책이랑 북플이랑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어요.
책이 안 읽힐때는 다른 모든 것도 시큰둥이예요.
군것질을 좀 좋아하는데, 심지어 간식도 안 땡기는걸 보면요.

조바심 내지 않고 그냥 버텨볼 밖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는 요즘이다.

멍 때리면서도 더, 더, 더...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찌보면 내 무기력함의 근원은 위, 아래가 꽉 막힌 만성체증 때문인듯도 싶다.

처음엔 책이 쌓이는게 중압감으로 다가오는것이라 생각했는데,

멍 때리며 한발자욱 떨어져 관조적으로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온지 어언 17년째,

책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이 적체되어 있다.

 

거기다가 나란 사람,

한때 무언가를 버리면 나도 버림 받게 될까봐,

과잉 감정이입을 해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었다.

 

이젠 많이 버려서,

바람도 왔다갔다 할 수 있고,

숨 쉴 구멍 정도는 확보하게 됐는데,

누리게 되니 바람이 왕래하는 숨구멍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달까,

더 격렬하게 비워내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빨리 치워야지 하고 여러권의 책을 설렁설렁 읽었는데,

몇 권은 리뷰나 페이퍼로 작성했던 것들이고,

오늘은 그 중 '명당은 마음 속에 있다'이다.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5년 3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2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5년 5월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라는 정보에서 알 수 있듯이,

최창조 님의 이론을 김진태 님이 만화로 재구성 한것 같은데,

만화로 그려지면서 걸러지고 간경해져서,

깊이 있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만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 재미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신,

개연성 확보에 실패했달까.

내용은 군데 군데 오류가 보이지만,

최창조 님이 그러하진 않으셨을 것 같다.

 

이런 내용은 좋았다.

제목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는데,

이런 게 만화책이 가진 힘인 것 같다.

 

1권의 내용이다.

'상황이 변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란 말은 맘에 들지 않는다.

이건 지극히 편협한 인간 중심의 사고일 뿐이다.

자연은 늘 그러할진대,

인간이 마음대로 이러구 저러구 하는게 아닌가.

 

2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2권 에서,

현대 도시 풍수의 가장 큰 지향점을 현시점에서 자연과 친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집을 잘 고르는 법과 외국에서 인기있는 인테리어 풍수 팁에 대해서 나오는데,

풍수 이론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알아두면 유용한, 생활의 지혜 정도되겠다.

 

 

 

 나의 첫 한문 공부
 공원국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오늘 훑어본 책은 '공원국'의 '나의 첫 한문공부'이다.

6월14일 오늘이 '키스 데이'라는데,

키스데이에 협조하기 위해 그런가,

이책은 '존재의 이유, 사랑'이란 내용으로 시작한다.

사랑의 바탕은 진실함과 헤아림이라고 하는 것이나,

진 목공과 윤회를 언급한 것,

궁극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얘기하는 등,

책의 짜임이 단계적이고 차근차근하다.

중반으로 넘어가면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최창조 님의

'상황이 변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라는 명제와 대비하여 생각해 볼만하다.

 

그 간 '공원국'님의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사상과 역사, 문학을 아우르는,

한문 고전의 좋은 구절들만을 추려만든 책이란다.

구절들도 좋지만 해설도 일품이다.

 

 

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아무래도 환자이다 보니,

책 얘기는 아무 생각없이도 술술 풀어낼 수 있지만,

휘리릭 읽고,

착착 정리하고,

비울 수 있는 건 비우는 건 아직 낯설다.

비우고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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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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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6-14 20:36   좋아요 0 | URL
최창조 선생의 저서를 다 소장하고 읽어오다가 어느 순간 부터 읽지 않게 되었어요. 그 양반도 이제 ‘기‘가 다 한 것인지 그닥 감흥이 없더라구요..ㅎ

sslmo 2017-06-15 09:09   좋아요 0 | URL
찌지뽕~^^
그쵸?
초창기의 그분의 글들은 논리적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어거지 부리고 떼 쓰는 느낌이예요.
뼈대는 튼튼히 하지 못한채 몸집을 부풀려 기진맥진해진 느낌이랄까요.
아무리 만화책이라도 당신 이름 달고 나온 책인데,
한번 읽어보는 수고는 하셨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2017-06-14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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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6-15 09:24   좋아요 1 | URL
저 동그라미는요.
풍수하시는 분들, 명당을 고집 하시느라 현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풍수도 사람이 있고 나서 있는 거잖아요.
내용이 신선했다구요.^^


2017-06-14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7-06-15 09:27   좋아요 1 | URL
일부러 챙겨서 하는 그런 거 말고요.
제 나이에 너무 없으면 또 궁상맞은 거 같고, ㅋ~.
바람이 드나들고 숨 쉴 수 있는 만큼이요.
몸도, 마음도~^^

나와같다면 2017-06-15 00:13   좋아요 0 | URL
명당을 고르지 못해 나쁜 땅에 부모를 모실 바에야

화장을 해서 안 좋은 기운이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왜 죽음이나, 죽음 그 이후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지..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읽어보고 싶네요..

sslmo 2017-06-15 09:33   좋아요 0 | URL
사실 전 명당을 고르고 어쩌고 하는 것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게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기감응론이란게 그런거잖아요.^^

만화책이라 술술 넘어가서 금방 읽으실 수 있을 듯~^^

단발머리 2017-06-15 08:09   좋아요 1 | URL
제목부터 딱 제 맘입니다.
더 더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ㅋㅋㅋㅋㅋ
쌓아놓으신 책탑 중에서는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와 <로마의 일인자 1>이 눈길을 끄네요^^

2017-06-15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5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1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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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6-27 15:58   좋아요 0 | URL
역대 대통령의 선친 묘는 명당일까? 챕터 중에서
- 구미 상도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선영은.... 조부 묘 하단에 있는 커다란 암석 덩어리가 후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동작동 국립묘지의 터는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많은 곳이다. 한강 물길이 터를 감싸 주지 못하고 휘어져 돌아간 것이 풍수적으로 흉하다는 이유였다.

이 부분 읽고 놀라서 얼른 책 발행일을 봤어요 2015년 3월.. 최창조 교수님 학자로서 자신의 연구를 시대 분위기 상관없이 소신있게 쓰신점 멋있었어요..

2017-06-28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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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Insure safety distance'로 바꾸었지만, 원래 내 서재의 타이틀 명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였다.

있는지도, 실체도 알 수 없는 마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대략 난감이 아니고, 대략 꿀꿀이었던 터여서,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꾼'처럼 그렇게 찾아나서면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마음이란 것이 찾아나선다고 하여 찾을 수 있는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는 고사하고,

나를 객관화시킬 수 없는 데,

내 마음이란 것을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말고 가슴에 작은 둥지를 만들어 쉬고 날아갈 힘을 주어야 하리라.'라고 노래하던 서정윤의 시 한구절처럼,

곁에 둔다고 해서 '마음'의 실체를 찾게 되는 게 아니란걸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란 건 사랑과 마찬가지로 곁에, 가까이 있을수록 해치고 상처입힐 수도 있으니,

적절하게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자기장처럼,

안전 거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 는 것이 요즘의 깨달음이다.

 

이 시집의 제목만해도 그렇다.

제목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1부부터 4부까지의 목차를 쭈욱 모아놨을때에야, '온'으로 읽힌다.

1부,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2부,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3부,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를수록 좋았다,

4부,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

로 되어있다.

 

한때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고 했으니,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를 놓고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 시집은 나의 그런 과거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시집 곳곳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시집 속의 '마음'은 '온'이라고 하여 '전부의, 모두의'라든지,

'진짜'라고 하여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여겨지지만,

자세히 시집을 읽다보면 'all or nothing'이고,

'진짜'이지만 동시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허허로움은 꿈의 형태로 드러나고,

일기의 형태로 독백되어진다.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스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빼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이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마이클 코넬리의 '로스트 라이트'가 생각났다.
'로스트 라이트'는 이렇게 시작했었다.

"There is no end of things in the heart."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두고 '전부'나 '모두'라던가 '진짜'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게 아닐까?

'끝'이 없고 '다함'이 없는 거,

그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불 꺼진 고백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가두어둔 물. 멈

춰 있는 몸.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

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진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

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조언

 

  벽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림자를 빛으로 생각한 적

이 많다 어제의 날씨는 아주 오래전에 지나간 일 같고

 

  멀리 있는 단어들을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 적

도 생몰연도 부탁 비스킷 소원처럼

 

  누군가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놓는다

 

  울퉁불퉁한 기침과 기울어진 위불 위

  노란색으로 된 달력을 갖게 될 때까지

  모과 냄새는 썪지 않는다 잠깐이라는 말을 모른디

 

  네가 붉은빛 금붕어의 얼굴로 듣고 있어서

  오늘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원 퍼레이드 바이올린 두발자전거

  그림 속 개구리들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하고

 

  큰 옷은 내일 입고 싶다고 말하게 될 때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정면에는 흐르는 나무가 있다

  가끔은

  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벽돌을 매개로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그림자 속엔 빛이 들어있다.

벽돌은 매개일 수 있지만,

빛과 그림자 사이에선 기준점일 수도 있다.

 

정면에 흐르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를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그래야 비로소...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좋은 시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불 꺼진 고백'과 '조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랬더니 마음은 쓸쓸해져 오는데,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쓸쓸함으로 충만해져서 어쩌지 못하겠고,

난 그런 마음을 잘 다독여, 느낌을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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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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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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