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테치먼트'를 보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온다.

또 내가 요즘 흠뻑 빠져 있는 '춘추전국이야기 2권'에 보면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안 된 이들에게는 글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선현들의 충고가 떠오른다(354쪽)'고 해석하며 인용하는데,

비단 글에 국한된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춘추전국 이야기 2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디태치먼트
 토니 케이 감독, 마샤 게이 하든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8월

 

 

'춘추전국이야기1'이 관중과 제나라 환공의 얘기였다면, 2권은 진나라 문공의 얘기다.

1권을 읽고 역사서가 이렇게 재밌어도 되냐고 설레발을 쳤던 나의 전적에 미루어,

2권도 겁나 재밌다고 해야겠지만,

2권은 그렇게 '겁나' 재밌지는 않았다.

왜 재미가 덜 한가 하고 나름 분석을 해봤더니,

역사는 흐르면서 되풀이 된다고,

1권에서 나왔던 환공과 관중의 얘기가,

2권에서 문공과 목공으로 인물들만 달리하여 펼쳐지고 있는데,

1권으로 미루어 2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이 다르고,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이나 원칙도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일뿐이다.

2권 책머리에 보면,

관중은 적이 비도덕적일 때 쳤지만 이들은 적이 약해지면 쳤다.(15쪽)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 시대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모른다면,

환공과 관중이 도덕과 원칙을 앞에 둔 仁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춘추전국이야기 1건과 2권을 읽은 사람, ㅋ~.

문공만 하더라도 아버지는 그에게 칼을 들이댔고,

동생은 군주가 되기 위해 외국에서 떠도는 그를 핍박했으며,

열국의 군주들과 심지어 첩까지도 그를 무시했었던 상황이었으니,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것이 다른 나라들보다 인구가 많지도 않았던 진이 강해진 이유이기도 한데,

변화하는 정세를 재빨리 간파하고 다른 나라들 보다 먼저 준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철저한 준비성, 시대의 조류를 읽는 예견력 따위로 얘기될 수 있겠지만,

일관되게 체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관중과 비교하게 되면,

명분보다는 실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책에 나오는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권모술수에 능했다.

1권보다 '덜'이었던건 위 이유말고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별주를 달아,

『국어』에 나오는 원문은 노래이기 때문에 해석하기 매우 어렵다...고 하면서,

~맞추기 위한 허사로 보인다...라고 하고 있다.

해석하기 매우 어려운걸 해석한 공은 알겠는데,

'~보인다'라는 추측을 독자에게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내용이 책의 흐름 상 꼭 들어가야할 부분도 아니고 말이다.

또 한군데,

'동주의 순마갱'이라는 제목의,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사진이 한장 등장하는데,

'그 밑에 개방하지 않아서 빗장 틈 사이로 어렵게 사진을 찍었다'(111쪽)고 한다.

사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지면을 할애해 놓고 할말은 아닌 것 같다.

말하자면 도촬인데, 너무 떳떳한거 아닌가?

또 한가지,

1권 때도 느낀 건데,

『국어』『사기』『춘추』『한비자』따위 여러 권의 책을 인용하면서 일관성이 없는데,

그렇다고 당신의 견해에 힘을 주어 얘기하느냐 하면,

자신감이 없다.

적어도 기존의 의견을 반대할땐 '그냥 그렇다', '그렇다 카더라'가 아닌,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만한 의견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저런 책들이 후대에 만들어져 권력에 의해 입맛에 맞게 수정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까지를 감안하고 쓰여지고 읽혀지는 것이 역사서이리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 인사도 있고,

그것과 관련하여 청문회도 있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재는 항상 있기 때문에 군주는 배워서 인재를 식별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자신과 원수를 진 사람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까지 쓸 수 있어야 군주다. (330쪽)

1, 2권을 통틀어서 하는 얘기는,

환공과 관중이 도덕과 원칙을 앞에 둔 仁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고,

문공은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거다.

그렇지도 않은 사람이 패자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본바탕이 대단히 의로운 사람이라고 예단하긴 어렵지만,

끊임없이 반성하는 인물이었다는 데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

  

얼마전 누군가의 '노 룩 패스'와 관련하여, 썰전 유시민의 코멘트가 큰 울림을 준다.

 

보좌관과 국회의원의 관계는 장군과 장교의 관계와 비슷하다.

서로 계급과 역할이 다른거지 인격의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가속도 붙여 읽을 자신도 없으면서,

이런 책을 간과하지 못하고 들였다.

 나의 첫 한문 공부
 공원국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언제 읽게 될지 모르지만,

사놓으면 기분은 마냥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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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7-06-07 17:05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한표를~^^

겨울호랑이 2017-06-02 18:3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진 문공은 60살에 패자가 되기까지 오래 기다릴줄 안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sslmo 2017-06-07 17:11   좋아요 1 | URL
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또 그렇네요.
지금은 100세,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공자는 72세까지 살아 장수하였다고 하는 걸 보면 말예요.
그 시대에는 4, 50정도가 평균 수명이었을텐데,
60세까지 살아서 패자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면서 그렇게 갈고 닦은걸 보면,
범상한 인물은 아닌 듯.
춘추전국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다 대단한 인물들이어서 나라를 달리하고, 기원전, 후를 넘나들며 회자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6-02 19:32   좋아요 0 | URL
선현들의 충고가 맞았습니다. 사람이 안 된 ‘닭‘이 글을 배우니까 비상식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sslmo 2017-06-07 17:15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엔 재판 중 그림을 그리셨다죠~.
글은 배우면 안되다 하는데,
그림은 어찌해야 돼죠?^^

cyrus 2017-06-07 18:56   좋아요 0 | URL
닭의 아버지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닭은 아버지의 취미를 물려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닭이 그림을 그려봤자 얼마나 잘 그리겠습니까? ㅎㅎㅎ
 
단어의 배신 -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원어민의 영단어 사용법
박산호 지음 / 유유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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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 님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박산호 님을  아는것 같다.

소싯적 장르소설을 즐겨 읽을 당시 로렌스블록, 마이클 코널리와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등의 역자로 알게 되었고,

난해하다던 '콰이어트 걸'을 통해서 완전 애정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페터 회'는 스밀라도 그랬지만, '콰이어트 걸'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역자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행간의 뉘앙스까지 번역해 내지않는다면,

독자가 이해는 고사하고 읽기조차 쉽지 않은 책이었으니까 말이다.

(돌이켜 보면 완전 영광인데, 그때 내 리뷰에 뭐라고 비밀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했었다, ㅋ~.)

 

그렇게 역자 박산호 님과 나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단어의 배신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조우하게 된 셈이다.

 

실은 젊은 시절의 나는,

장르소설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읽다보면 너무 날림인 번역들을 만나곤 해서,

'그렇다면 내가 번역을 해봐?'하는 허무 맹랑한 꿈을 꿨었던 터라,

'콰이어트 걸'의 탄탄한 번역이 참 좋았었고,

그런 역자에게 무한 애정을 가지고 신뢰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 책에는 박산호 님이 그동안 번역하며 만난 단어중에 다양한 의미와 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100개가 소개됐다.

다 알고있는 듯 여겨지는 단어였지만,

읽다보니 의미와 역사에 대해선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방식이 좋았던건 단어를 무조건 외우도록 소개하는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단어와 뜻을 연결시켜서 설명하는 방법을 취한다.

하나의 뜻에서 꼬리를 물고 다른 뜻을 유추해낼 수 있도록,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연결을 한다.

그렇다고 수다스럽거나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깔끔하다.

 

예를 들면 fix를 설명하면서,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속성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하면서 상황 속에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끼워넣는 식으로 말이다.

책의 내용은 한 단어에 한장을 할해해서 설명하고 적절한 예문을 나열하는 식으로 좋은데,

아쉬운 점이라면,

편집이라고 해야 할까,

단어를 배치하는 방식과 글씨체가 낯설다.

단어가 앞에 나오는게 아니라,

발음기호와 단어의 뜻이 나열되고,

본문 내용 중에 검은 원 안에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 단어가 또 멋을 부린 글씨체다.

 

영문을 보게 되면,

우리가 흔히 인쇄체와 필기체라고 알고 있는 글자들이 섞여 있다.

g나 y같은 것도 그렇지만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닌데 s는 좀 심하다.

 

영문과 번역문에서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확인 하기 쉽게,

그 단어를 돌출시키는 방법으로 필기체를 사용한 예문에 익숙했던 터라,

이 책에서도 그런건가 자꾸 쳐다보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얇고 가벼우면서도,

단어의 다양한 의미와 역사를 흥미롭게 써내려간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머릿말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공지능이 번역 시스템에 도입된 시대에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단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이 아닐까? 세계 각국의 사람과 수월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영어 단어에 담긴 여러 갈래의 뜻을 음미하며 원서를 읽고 섬세하게 사유하며 고른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될 것이다.(11쪽)

비단 외국어의 번역에만 국한된 건 아닌것 같다.

내가 내뱉는 말이나 쓰는 글들이 얼마나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한 것인가 라고 한다면,

글쎄다, 상대방 보다는 내 편할대로, 내 위주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에 있어선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번역된 내용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국어실력도 중요하다.

 

그렇게 단어에 담긴 여러 갈래의 뜻을 음미하고,

섬세하게 사유하며 고른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번역을 하고 글을 썼는가는,

작품이 대신 말해주는 것이다.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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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19:30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까 제가 번역 관련 책을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그동안 제가 번역본 비교질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

sslmo 2017-06-02 17:08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cyrus님처럼 우리말을 구사하시는 분이라면,
번역본을 가지고 비교질 하는 거,
충분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언어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하니까요~^^

나와같다면 2017-05-30 22:16   좋아요 0 | URL
fix.. 마음이 상했을때 콜드플레이 <Fix You> 를 들려줬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켜놓은 향초 때문인듯..

sslmo 2017-06-02 17:13   좋아요 0 | URL
아, 이 노래 알아요.
기네스 팰트로랑 관련된 노래지요?

마음이 상했을때 ‘Fix You‘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옆에 ‘Fix‘해 놓으셔야죠.
‘들려줬던‘이란 과거형에 제 마음도 아립니다.
아마도 향초의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 해서요~--;

서니데이 2017-05-31 23:11   좋아요 0 | URL
번역하는 분들은 외국어도 잘 해야하지만, 우리말 어휘도 많이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은데, 말로 옮겨지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sslmo 2017-06-02 17:15   좋아요 1 | URL
때로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상황을 말로 표현해 내려면 말문이 콱 막혀버리는 경우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가 드니까 어휘 수가 확 줄어드는것 같아요.
작은 사전이라도 하나 끼고 살아야 할까봐요~^^

AgalmA 2017-06-06 01:50   좋아요 0 | URL
저도 스밀라만큼 콰이어트걸 좋았는데 박산호 번역가님의 노고란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sslmo 2017-06-07 17:02   좋아요 0 | URL
전 아무래도 페터 화가 어려웠나 봐요.
수잔 이펙트인가, 새로운 작품이 나왔는데,
엄두가 안나는거 있죠~--;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아침달무늬 1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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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때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렵다.

아니 나이를 먹어가며 책을 읽는다는 것이 두려워진다.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해보자면 책이 내가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디게 나이를 먹거나,

내가 책과 더불어 나이 들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나 할까.

 

시인의 예전 시집이 참 좋았어서 새로운 시집이라 혹하였다.

'오늘 아침 단어'를 읽고 리뷰를 올린게(<==링크) 2011년 7월이니까 한 6년정도 됐는데,

시인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를 먹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집을 읽고 싶었는데,

예전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이 치기어린 젊은날의 추억마냥 고스란히 살아나서 좀 당황했다.

 

그러다가 6개월도 아니고 6년인데,

나이를 먹고 생각이 여물어가고, 의 문제가 아니라도,

그때의 시나 지금의 시가 같게 느껴지면,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건 또 읽는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 싶었다.

 

시집을 다 읽고,

지난 '오늘 아침 단어'의 리뷰를 찾아 읽다보니,

그 시집 속의 시랑 중복되는 시도 있고,

(제일 앞에 나오는 '당신의 자리' 같은거, ㅋ~.)

자주 사용하는 시어와,

생각의 자취들이 비슷해서 느낌이 비슷하다보니 그 시가 그 시 같은 것도 있었다.

 

나이 먹고, 여물고, 무르익고, 하지 않고,

6년 전에 머물며 청춘을 또는 젊음을 돌이킨다고 해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시가 얼마나 가볍거나 무거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단어가 가진 제 각각의 무게를 가늠하고,

그에 맞춰 시를 썼으면 좋겠다.

 

이러구러한 시가 여럿 있었고,

난 이 시가 좋아 여러번 소리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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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9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9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9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9 19:01   좋아요 2 | URL
시집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 몇 년 지나서 똑같은 시집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서로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시에 대한 반응이 점점 달라져요. 과거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 한 편이 몇 년 지난 후에는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

sslmo 2017-05-30 17:36   좋아요 0 | URL
시집 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달리 읽히는것 같아요.
같은 책을 두고 나이 들어 읽으면 달리 읽히는 것으로 나이듦이나 성숙 따위를 점 칠 수 있을까요?

전 나이 먹어도 시집 한권 읽고, 시 한편 욀 수 있는 감수성은 갖고 싶은데,
어쩌면 죄다 까먹어 시 한편 욀 수 없는 날이 오는건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 시집은 6년만의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라는데,
짜깁기를 해도 너무 했지 싶습니다.
그게 아쉬웠었습니다.
 

강신주의 '철학의 시대'를 읽으면서 춘추전국시대에 관심을 갖게 되어,

공원국의 10권짜리 '춘추전국이야기'를 구매했었다.

전에 알케 님이 상찬한 것도 보았고, saint236님도 좋다고 추천해 주셨었는데,

또 다른 친구는 별로라고 하길래 미뤘었다.

며칠전 이 책이 눈에 띄길래 '어디 한번~, 내가 직접 읽어 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펼쳐들었는데,

웬걸, 재밌어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거라.

 

 

 춘추전국 이야기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강신주의 책도 좋았는데, 이 책은 강신주와 비교하기 민망찰 정도로 재미있다.

춘추전국 시대와 관중에 대한 얘기니 겹치는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강신주는 철학적으로 접근했다면, 공원국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접근한다.

물론 강신주도 '춘추전국시대'의 무대가 된 중국의 그곳들을 가봤을테지만,

공원국은 지도와 함께 사진을 실었으며,

그 시대의 문헌들을 여러권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데다가,

권말 당신의 여행기를 실어서 현실감과 현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고사를 중심으로 한 책들과는 달리 역사적 사실의 기록과 더불어 지리를 특히 강조했다. 사실 황하나 정강, 태행산맥 등 자연이 인간에게 강요한 한계를 이해하지 않고 춘추전국의 극적인 순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춘추전국의 무대를 구성한 지리를 잘 이해하면 아마도 복잡할 것 같은 열국들의 각축도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 책에서 지도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18쪽)

 

아직 1권만을 읽은 상태여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2권까지 나온 강신주의 그것들이 더 이상 못 나오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이 좋은 또 한가지 이유는,

우리는 현대인의 지혜를 가지고 고대를 상상하되, 고대를 마음대로 비틀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은 사실일 뿐, 상상에 의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 많은 사건들을 기억하며 역사를 읽는 것보다는 차라리 소설을 읽는 것이 낫다. 그러나 역사를 다룬 많은 저작들이 이런 우를 범한다. 그래서 역사를 마치 개인들의 무용담이나 민담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고 원인과 결과가 아래 위도 없이 춤을 춘다(60쪽)

책을 읽어나갈 방향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 또는 논리적 사고가 굉장히 탄탄하고 정확할 것 같지만,

논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논점의 윤리대로 발화하거나 서술하는지, 의 여부에 따라서 기초부터 어긋나거나 흔들릴 수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

 

또 한가지, 전제에 편견이 생기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며, 그것이 역사 해석의 함정이라고 한다.

로마를 제압했던 훈족을 예로 들어,

이길 때는 용감하고 질 때는 비겁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야만적이지 않았고 유달리 초인적이지 않았다.(62쪽)

얘기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 책이 좋았던 건 관중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이다.

관중은 인간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이다. 뻔뻔한가 하면 염치는 있고, 몰아치는가 하면 부드러운 마음도 있다. 자신이 다 안다는 듯이 교만하다가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도 한다.(164쪽)

그는 적이라도 훌륭하면 인정하고, 자신에게 득이 되더라도 적의 배신자는 좀처럼 신뢰하지 않았다. 관중은 이익이 있더라도 인간적으로 호감이 없는 인물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348쪽)

 

책을 읽으면서 의아한 부분이 있었는데 토사구팽과 관련해서 이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팽 당하는 것은 권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제거하는 것과는 좀 다른 애기가 아닐까.

 

페이퍼를 이쯤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년 추도사 때문에,

마음이 어쩌지 못하겠어서 내용이 길어진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추도식 참석이라고 하는데,

그 중의를 알겠는지라...눈물이 났다.

 

분위기를 바꾸어,

읽을 책이 밀렸는데 백승종 님의 신간을 발견했다.

 

 

 

 생태주의 역사강의
 백승종 지음 / 한티재 /

 2017년 5월

 

백승종 님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란 책으로 알게 되었는데, 나는 참 좋았었다.

공원국도 이제 시작이고,

친구한테 최명희의 '혼불'도 내놓으라고 해서 대기중인데,

언제 읽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책은 들여주셔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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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3 21:52   좋아요 0 | URL
권력을 가진 자는 늘 불안할 겁니다. 자신이 믿었던 충신을 의심할 거고, 간신은 권력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약점 삼아 충신을 제거하도록 종용합니다. 토사구팽에 간신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sslmo 2017-05-29 16:30   좋아요 0 | URL
제가 토사구팽 관련 부분에서 궁금했었던 건,
쓸모 없어져서 잡아먹을 정도면,
이미 ‘권력에 위험이 되는 세력‘은 아니지 않나 하는 부분이었어요~^^

잃을 게 없어서 불안하지는 않은데,
하늘이 무너질까 하는 ‘기우‘를 종종 품고 삽니다~--;

AgalmA 2017-05-24 02:34   좋아요 0 | URL
노무현 대통령 8주년 추모날 그를 탄핵했던 이가 첫 재판을 받는 역사적인 날 역사를 환기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sslmo 2017-05-29 16:3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역사는 주연과 조연이 바뀔뿐 되풀이 되나 봅니다.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안목을 적절히 안배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17-05-26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7-05-29 16:40   좋아요 2 | URL
관포지교의 그 관중 맞습니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에 의해 ‘관자‘라는 책을 쓰게 한 그 ‘관중‘이요~^^

제가 보기엔,
포숙은 완전 학자스타일이었고,
관중은 실전형 정치가 스타일 이었다고나 할까요.

전 관중이 자신의 허물을 그냥 덮지않고,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점이 좋았습니다.

오늘날 관중이 살았더라면, 인기만발이었을 듯~^^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전 넷 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진과 함께 청와대를 산책하는 사진 한장이 화제였다.

사진 한장을 놓고도 다방면에서 여러가지 정치적인 언급이 나올 수 있겠지만 차치하고,

산책이 주는 풋풋함이랄까, 삶의 활력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로베르트 발저의 이 책 '산책자'를 읽었다.

 

실은 책을 읽다가 몇번을 집어던질뻔 하였다.

뭐, 특별하게 바쁜 일도 없고,

그렇다고 '바빠~'를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부류도 아닌데,

독백조의 너무 느린 호흡이 답답했다.

그걸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읊조리듯이 쏟아낸다.

호흡이 느리긴 하지만 생각의 전개방식과 어조가 느긋한 것이고,

내용은 뒷부분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한호흡에 내달린 것처럼 짧다.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해야지 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끝이다.

중심에 다다르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는 꼴이다.

글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읽는 내가 그러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끝이 나 있다.

 

 

로베르토 발저는 어찌보면 이솝우화를 닮았다.

간결하면서도 해학적이다.

독일어 특유의 어떤 운율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글만을 놓고봤을때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저자는 때때로 우울한것 같고,

어떤 때는 우울이 몰고온 슬픔 속에 침잠하는 것 같다.

이 책 속의 글들은 소설집이라고 되어있지만, 어찌보면 수필같기도 하고 꽁트 같기도 한데,

정작 발저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시인'이었나 보다.

ㆍㆍㆍㆍㆍㆍ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모한 무용수처럼 구석진 내 방으로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8쪽)

이 글의 제목은 '시인'이고, 곳곳에 보이게 보이지않게 '시인'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그는 '시인'에서.

자연이나 시간,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8쪽)

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려나,

그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구사하지만,

그래서 글들이 가볍고 경쾌하지만,

글 속에 담긴 내용은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있어서 산책이란 단순히 발을 내딛어 걷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붓 가는대로 쓰는' 수필이라는 형식의 결과물로 등장한다.

 

발저에게 있어서 산책은 '여러 가지의 번쩍이는 발상이 번개처럼 동시에 떠올라 한꺼번에 마구 밀려오는 것이 보통이니까. 그래서 생각을 차분히 정리를 좀 해보려고(309쪽)' 하는 것이다.

 

'산책'의 앞부분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로지 내 길을 갈 뿐입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겉으로 보이는 외양이란 진실과는 다른 모습일 경우가 흔하고, 그러니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그 사람 자신에게 맡겨두는 편이 가장 좋겠지요. 어떤 사람을, 더구나 이미 충분한 경험과 식견을 쌓은 사람을 그 사람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나는 종종 안개 속에 갇힌 채 불안에 휩싸이고 수천 가지의 곤경을 겪으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비참하게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투쟁의 시간을 소중하다고 여깁니다. 남자가 긍지를 얻는 원천은 기쁨이나 쾌락이 아닙니다. 남자가 영혼 깊숙이 긍지와 희열을 느끼는 것은 큰 어려움을 담대하게 극복하고 끈질긴 집념으로 고통을 견뎌냈을 때뿐입니다. (289쪽)

그가 글을 쓰는 이유, 산책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책이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그의 이력을 잘 모르거나,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무릇 산책이란 어떤 목적도 띠지 않는 것이고,

그리하여 좀 지루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하면,

내 또 할말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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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6 21:33   좋아요 1 | URL
내 길 알아서 잘 가고 있는데, 그거 대해서 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 의심이 생겨요.

sslmo 2017-05-17 14:33   좋아요 1 | URL
전 때론 고집불통이고 때론 팔랑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은건 오지랖 넓은, 바꾸어 말하면 말 많은 그 사람들 때문인것 같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랬는데, 자꾸 반대로 하고 싶어져 큰일이예요~--;

서니데이 2017-05-17 15: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오후 되세요.^^

sslmo 2017-05-23 17:10   좋아요 1 | URL
오후되니까 좀 꾸물거리고 빗방울이 떨어져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라서 그런가 봐요~--;

2017-05-23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3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